사무엘 에투

(에투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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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탈리아스포르 No.9
사뮈엘 에토 피스
(Samuel Eto'o Fils)
[1]
생년월일1981년 3월 10일
국적카메룬
출생지두알라
신체 조건180cm, 75kg
포지션스트라이커
유스팀카디지 스포츠 아카데미 (1992~1997)
소속팀레알 마드리드 CF (1997~2000)
CD 레가네스 (임대) (1997~1998)
RCD 에스파뇰 (임대) (1999)
RCD 마요르카 (임대) (2000)
RCD 마요르카 (2000~2004)
FC 바르셀로나 (2004~2009)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9~2011)
FC 안지 마하치칼라 (2011~2013)
첼시 FC (2013~2014)
에버튼 FC (2014~2015)
UC 삼프도리아 (2015)
안탈리아스포르 (2015~)
지도자안탈리아스포르 임시감독 (2015~2016)
국가대표118경기 56골
2005 FIFPro World XI
FW
안드리 셰브첸코
FW
사무엘 에투
MF
프랭크 램파드
MF
클로드 마켈렐레
MF
지네딘 지단
MF
호나우지뉴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존 테리
DF
카푸
GK
디다
2006 FIFPro World XI
FW
호나우지뉴
FW
티에리 앙리
FW
사무엘 에투
MF
카카
MF
지네딘 지단
MF
안드레아 피를로
DF
잔루카 참브로타
DF
존 테리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릴리앙 튀랑
GK
잔루이지 부폰
2005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호나우지뉴
2위
프랭크 램파드
3위
사무엘 에투

1 개요

흑표범

축구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트레블을 경험한 선수.[2]

조지 웨아와 쌍벽을 이루는 아프리카 역사상 최고의 선수[3][4]

카메룬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2 클럽 경력

2.1 레알 마드리드


10대의 어린 나이에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거의 대부분의 시즌을 다른 팀에 임대를 가거나 B팀에서 잠시 뛰는 등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활약은 미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결국 2000년 레알 마요르카로 이적했다.

2.2 레알 마요르카

01/02 시즌 알베르트 루케, 아리엘 이바가사와 삼각편대를 구축하여 리그 3위와 챔피언스리그로 이끌었고, 02/03시즌 14골 03/04 시즌 17골을 터뜨리며 마요르카를 스페인의 강팀으로 발돋움하게 만들며 단숨에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특히 자신의 친정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레알 마드리드 킬러로 불리게 된다.

이러한 활약과 레알에게 유독 강한 성향으로 무려 2,400만 유로의 이적료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2.3 FC 바르셀로나

그의 화려한 전성기의 막이 올랐다. 바르셀로나의 쟁쟁한 포워드, 미드필더진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주전 공격수로서 맹활약하여 04/05시즌 24골[5], 05/06시즌 26골, 08/09시즌에 30골을 몰아치며 명실상부 라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고, 중요한 경기마다 골을 터뜨리며 수많은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특히 05/06시즌과 08/09시즌은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즌으로 기억된다.

2006년에는 레알 사라고사와의 경기 도중 사라고사의 팬들로부터 인종차별적인 모욕을 당해 경기를 포기하려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한동안 축구계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후 2009년 여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트레이드되었다.

2.4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초기에는 둘 다 괜찮은 활약을 보였으나... 즐라탄은 전반기 메시의 자리를 메우며 라리가 전반기 MVP를 차지하는 맹활약을, 에투는 사비의 패스빨로 먹고 사는 기계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부진했다.

자신의 스타일과 팀의 컬러가 맞지 않은 불상사가 골 가뭄으로 이어진 것. 그나마 에투는 무리뉴의 뛰어난 지휘력에 힘입어 단숨에 폼을 되찾았으나, 즐라탄은 후반기 메시의 복귀와 함께 챔스, 리그 가리지 않고 전반기에 미치지 못해 팽당하며, AC 밀란으로 임대 이적했다.

10/11시즌에는 지난 시즌의 부진을 털어내는 듯 훌륭한 득점력을 보이며 밀리토의 부진을 메꾸고 있다. 베니테스의 흑마법에도 굴하지 않으며 대활약을 선보이며 칠테르인테르의 부진을 보는 팬들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었으며, 이후 레오나르두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도 좋은 폼을 보이며 득점 경쟁 중.

이렇게 뛰어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같은 아프리카 출신의 스트라이커 디디에 드록바에게 인기가 밀리거나 저평가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누구냐는 설문에 잘 끼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

이는 에투가 전성기였던 시절 프리미어 리그에 비해 프리메라 리가가 거의 인기를 끌지 못했던 데다, 그의 국적이 다름아닌 카메룬인 탓이 크다.[6][7][8]

나가토모 유토의 증언에 의하면 검열삭제의 크기가 무시무시하다고 한다(...). 팀에 합류 후 처음으로 샤워룸에서 그 크기를 알현하고 믿기지 않아 두 번 쳐다봤다고.

2011년 8월 12일 인테르에서 FC 안지 마하치칼라로 이적료 541억에 연봉 310억으로 이적 세계 최고의 연봉을 가진 사나이가 되었다.[9]

그런데 최근 350만 유로, 한화 수백억을 탈세한 혐의로 스페인 당국에 고발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최고 5년형까지도 받을 수 있어서 진위 여부에따라 에투의 커리어가 끝장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누구든 탈세 하면 좆되는 거에요. 아주 좆되는 거야.

2.5 FC 안지 마하치칼라


세계 최고의 연봉을 받지만 별다른 활약은 하지 못한다.

구단주인 슬레이만 케리모프의 사업실패로 인해 긴축재정으로 돌입을 시작되어 2013년 8월 30일 자유계약으로 이적했다.

안치의 전 단장이었던 호베르투 카를로스는 공격수 사무엘 에투가 팀 분위기를 망쳤다고 밝혔다.

2.6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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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시절

다시 무리뉴와 재회하게 되었다. 에투가 영입되면서 첼시의 공격진은 페르난도 토레스, 뎀바 바, 로멜루 루카쿠 등 과포화 상태가 되었고 정작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자원은 별로 없지만 결국 루카쿠가 임대를 떠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에투가 첼시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다. 전성기 때에 비해 스피드가 상당히 느려졌고, 무엇보다 1대 1에서의 득점을 못 하고 있다. 덕분에 첼시는 올 시즌에도 해결사 공격수 없이 보내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에투가 다른 공격수들보다는 폼이 괜찮다는 것과, 골 감각은 조금이나마 살아 있어서 가끔씩은 골을 넣어준다는 것이지만...어짜피 자유계약이라 토레기처럼 까일 일도 없고 그리고 리그 22라운드 맨유전에서 해트트릭까지 기록했다.

이상하게 첼시 이적 뒤에 굉장한 예능(?)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과연 사냥스타일도 흑표범.
이들 중 카디프전에서의 행동은 반칙이다. 즉 오심(...).

여타 아프리카 선수들처럼 나이를 속이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심지어 현재 감독인 무리뉴도 에투에 대해 "그는 32살이지만, 잘 모르겠다. 어쩌면 35살이지 않을까"라고 얘기하는 상황(...).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에투의 전 여자친구가 에투의 실제 출생연도는 1974년, 즉 13-14시즌 기준으로 39세라는 인터뷰를 했다(...).#

2년 연속 트레블하던 때 나이가 35세라는 얘기니 이건 뭐 충공깽. 그러나 실제로 에투가 나이를 속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런 세계적인 선수가 20대때 레알 마드리드 유스에 있었다는 건데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나이를 적당히만 속였다면?

이후 무리뉴 감독의 무리한 언플로 폼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컸으나...오히려 선발 출장할 때마다 골을 박아넣으며 첼시 스트라이커 중에서 믿을 만한 건 에투밖에 없다는 의견에 힘을 넣어주었다.

3월 9일 토트넘 전에서 선제골을 넣고 한 노인 세레모니는 백미 중의 백미. 이후 갈라타사라이 홈 경기 선제골, 아스날 홈 경기 선제골 등 넣으며 3월에만 3경기 3골이라는 대활약을 펼쳤으나 아스날전 선제골 이후 6분 만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고내 역할은 여기까지요. 토레스와 교체되어 들어왔다.

2013/14 시즌 종료 후 첼시와의 계약이 만료되었고 자유계약으로 2014년 8월 27일 (한국시간) 에버튼으로 이적하였다.마침 에버튼에는 로멜루 루카쿠도 있다. 첼시산 공격수를 애용하는 에버튼.

2.7 에버튼


그러나 2014/15 시즌 도중 세리에 AUC 삼프도리아와 2년 반 계약에 동의했다는 기사가 떴다.

2015년 1월 27일 (한국시간) 삼프도리아 이적이 확정되었다. 등번호는 99번.

2.8 삼프도리아


그러나 이적한지 1주일도 안 되어서 감독인 시니샤 미하일로비치와 추가 훈련을 놓고 대판 싸웠고, 퇴단 이야기 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화해했다.

2.9 안탈리아스포르


2015년 7월 7일 터키 쉬페르리그 소속의 안탈리아스포르로 이적하였다.

그리고.......안탈리아스포르의 구세주로 자리잡았다. 리그 15경기에서 13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 득점 1위를 기록 중이다.하위권팀이던 안탈리아스포르는 그의 활약 덕분에 7~9위 정도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그리고 유수프 심세크(Yusuf Şimşek) 감독이 물러나 공석인 팀 감독까지 임시로 맡게 되었다.

3 국가대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만 17세 3개월이라는 역대 월드컵 출장 최연소 2위의 기록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그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특히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2000년, 200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우승, 200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득점왕, 그리고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 3연패라는 눈부신 성적을 거둘 정도. 안타깝게도 월드컵에서는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011년 3월 26일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지역예선 원정에서 세네갈한테 깨지고 6월 4일 안방에서 설욕전을 벌이려고 했는데 0:0 무승부 상태에서 종료 직전에 얻은 페널티킥을 에투가 허무하게 실축해서 무재배 모드가 되었다. 이거 그냥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는데 이 개같은 경우 때문에 결과적으로 1경기 남겨놓고 조 1위 세네갈에 승점이 5점이나 밀려서 본선 직행은 안드로메다로, 게다가 조 2위 추가진출도 물 건너 갔다. 왜 나 에투는 햄보칼수가 업서! 만일 그 페널티킥이 들어가서 1:0 승리를 거두었더라면 승점 차이가 2점으로 좁혀져 그나마 희망이 있었지만...아 그저 지못미.

2012년에는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지역예선 최종전에서 본선 진출을 위해 대표팀에 복귀했지만 팀은 2:1로 승리하고도 골득실에 밀려 으앙 망함 카보베르데한테 본선 진출권을 내 주고 말았다.

이 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합류하나 조별리그 1경기만 출전하고 팀은 광탈. 결국 그 후 본인은 은퇴한다.

4 플레이 스타일

흑인 특유의 쫄깃함과 폭발적인 스피드, 그리고 타고난 센스를 바탕으로 한 엄청난 골 결정력을 보유했던 스트라이커로, 중앙 뿐만 아니라 좌우 윙포워드로도 훌륭한 활약을 보였던 선수다.[10] 특히 바르셀로나에서 보여준 탄력적인 모습은 칭찬받을 만하다. 비단 수비라인을 찢어발기며 득점을 올리는 걸 제외하더라도, 윙포워드 에이스들의 돌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스위칭하던 모습, 중앙 미드필더들이 유기적으로 판을 짜올 때의 대응해주는 예민함은 왜 에투에게 흑표범이란 별명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물론 얼굴은 말고

특히 전성기 페르난도 토레스와 대등할 정도로 상대 뒷공간을 잘라 먹고 들어가서 골을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는데, 전성기의 웨슬리 스네이더가 있던 인터 밀란과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있던 바르셀로나에서 처럼 창의적인 능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들과 찰떡 궁합이었다.

5 기타

일화중에 웃긴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삼프도리아와의 경기 전 당시 감독이던 무리뉴가 에투에게 "넌 소심해서 시뮬레이션 액션을 절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자 에투는 빡쳐서 할수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로 500달러를 걸고 내기를 들어갔는데...

박스안에서 에투는 삼프도리아 수비수의 차징을 받는 순간 곧바로 시뮬레이션을 시전, 하지만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심판에게 딱 걸리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벤치에 앉아 있던 무리뉴는 대 폭소, 에투는 어필을 해보고 주변의 삼돌이 선수들 역시 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지만 에투의 표정을 보면 삐질거리는게 눈에 보인다.

결국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에투는 심판조롱죄로 2경기 추가 출장정지를 받게 된다.

...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냥 전체적으로 심판에 맘에 안 들었던 무리뉴가 심판판정에 어이없어서 웃은거다. 한마디로 조롱조로 웃은 거다. 에투는 무리뉴가 웃으니까 그냥 덩달아 웃은 거고. 진짜로 그랬으면 저렇게 에투가 격렬하게 항의할 이유도 없다. 굳이 사석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서 출장정지 먹을 멍청이도 아니고.

팀 동료들을 위해 뽕따를 사온적이 있다. [11]

6 기록

6.1 득점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 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7/98CD 레가네스프리메라 리가30400--
1998/99레알 마드리드프리메라 리가1000--
1998/99RCD 에스파뇰프리메라 리가0000--
1999/00레알 마드리드프리메라 리가200030
1999/00RCD 마요르카프리메라 리가13600--
2000/01RCD 마요르카프리메라 리가281152--
2001/02RCD 마요르카프리메라 리가3061153
2002/03RCD 마요르카프리메라 리가32146500
2003/04RCD 마요르카프리메라 리가32172074
2004/05FC 바르셀로나프리메라 리가37251074
2005/06FC 바르셀로나프리메라 리가352622116
2006/07FC 바르셀로나프리메라 리가19114141
2007/08FC 바르셀로나프리메라 리가18164071
2008/09FC 바르셀로나프리메라 리가363040126
2009/10인터 밀란세리에 A321232132
2010/11인터 밀란세리에 A352178118
2011/12FC 안지러시아 프리미어리그22131000
2012/13FC 안지러시아 프리미어리그251032169
2013/14FC 안지러시아 프리미어리그420000
2013/14첼시 FC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2195093
2014/15에버튼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1432041
2014/15삼프도리아세리에 A18200--
2015/16안탈리아 스포르터키 쉬페르리그251710--

6.2 개인 수상

  •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 : 2003, 2004, 2005, 2010
  •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 2005-06
  • FIFA 올해의 선수 : 3위 (2005)
  •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 최우수 공격수상 (2005-06)
  • UEFA 올해의 팀 : 2005, 2006
  • FIFPro 월드 베스트 XI : 2005, 2006
  • FIFA 클럽 월드컵 골든볼 : 2010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득점왕 : 2006, 2008
  • 2002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사우디아라비아 (조별리그)

6.3 우승 기록

  1. fils는 '아들'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단어다. 발음은 /fis/. 영어에 대응될 수 있는 단어로는 '주니어(junior, jr)'가 있다. 즉, '사뮈엘 에토오 2세'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2. 08-09시즌 바르셀로나, 09-10시즌 인터 밀란. 물론 트레블 2번을 한 는 있다. 운이 좋았던 면도 있지만 정말 대단한 기록.
  3. 골이나 우승 경력을 비교하면 디디에 드록바는 물론이고 조지 웨아보다 한 수 위다.
  4. 물론 웨아에게는 발롱도르가 있다. 사실상 무의미한 비교.
  5. 본래는 25골로 포를란과 동률이었지만 마르카에서 24골로 표기하여 피치치 수상에 실패했다.
  6. 비단 에투뿐만이 아니라 몇몇 스타 플레이어를 제외하고는 당시의 라리가 선수들 중 국내에서 저평가를 받은 인물은 한두명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같은 시기 사라고사에서 뛰었던 디에고 밀리토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뛰었던 디에고 포를란. 게다가 같은 라리가 출신이라 해도 페르난도 토레스다비드 비야와 같은 스페인 국적의 선수들에 비하면 이들의 인지도는 거의 공기 수준이나 다름이 없었다. 만약 월드컵에서의 활약이나 인테르의 트레블이 없었다면 국내에서 이들을 탑클래스의 스트라이커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꼭 저 시절까지 가지 않아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르히오 아구에로다비드 실바와 같은 선수들 역시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하기 전까지는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사실.
  7. 게다가 토레스, 비야, 아궤로, 실바응?는 얼굴 때문에라도 인지도가 어느정도 있었는데 에투는 얼빠마저 없었다. 한국에서 축구선수를 평가하는데엔 은근히 얼굴이나 이미지가 비중을 꽤 차지하는데 에투는 둘 다 좋지 않았다.
  8. 이를 메시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메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에투에 대한 저평가는 메시가 아직 전성기에 접어들기 전부터 있어왔으며, 오히려 에투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메시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인 인테르의 트레블 전후의 일이다.
  9. 2위는 호날두 186억 3위는 메시 163억
  10. 인테르 시절 첫 시즌인 09/10 시즌에는 수비적인 임무도 상당히 부여 받았고, 4-2-3-1 포메이션이 자리잡힌 후에는 거의 수비형 윙어 수준의 역할을 부여 받았고, 아주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트레블의 숨은 공신이 되었다. 10/11 시즌에는 좀 더 사이드에서 플레이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부진의 늪에 빠진 공격진을 하드캐리하며 흑마법에 빠진 팀을 홀로 구해내곤 했다.
  11. 합성인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 세레머니다.(!) 2011 클럽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뒤 팀 동료가 건네준 비닐봉지를 들고 춤을 추며 세레머니를 했다. 근데 도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