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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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性主義 治療, (영어)Feminist therapy

1 소개

페미니즘 담론에서 무르익은 논의들을 심리치료 및 상담의 분야로 옮겨오려는 시도. 대략 1980년대부터 제안되기 시작했으며, 2010년대 현재에는 다문화주의적 상담, 집단상담 등과 함께 최신의 상담기법 중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주요 논자로는 진 밀러(Jean Baker Miller), 캐롤린 엔스(Carolyn Z. Enns), 올리바 에스핀(Oliva M. Espín), 로라 브라운(Laura S. Brown) 등이 있다. 이들이 발휘하는 영향력 덕택에, 이들이 소속된 웰즐리 여자대학교, 코넬 대학교,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등에서는 실제로 여성심리학 관련 연구 프로그램들과 연구소들이 크게 탄력을 받고 있다.

페미니즘 문서에서 보듯이, 이 분야 자체가 사상적으로 굉장히 분파가 많기에 이를 전부 고려하여 여성주의 치료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그 정도로 전문적인 논의를 찾고 있는 위키러라면, 여러분의 대학교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Enns(1993; 2004), Enns & Sinacore(2001)[1] 등의 논의를 찾아볼 것. 여기서는 각각의 분파별 차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 핵심적 특징

2.1 평등하고 호혜적인 상담가 - 내담자 관계

다른 많은 상담기법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주의 치료 역시 내담자(來談者)가 어떠한 존재이고 상담가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유의 관점이 존재한다. 여성주의 치료사들은 양자 간에 철저하고 완전한 평등이 존재해야 함을 강조한다. 상담가도 평등한 한 인간이요, 내담자도 평등한 한 인간인 것이다. 여기서의 평등은 주로 권력적인 부분을 의미하지만, 그 범위가 상당히 폭넓어서 지식적인 부분도 포함된다. 그래서 상담가는 일부러 상담 초기에 내담자에게 치료에 필요한 이런저런 전문지식들을 모두 알려주며, 여성주의 치료에 관련된 책들을 이것저것 갖다주며 읽으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주의 치료에서 독서치료는 굉장히 유용한 방법론 중 하나로 취급된다. 다른 상담기법들과는 달리, 여성주의 치료에서 상담가는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제거해야 하며, 마침내는 내담자를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담가 자신보다도 더욱!) 최고의 전문가로 격상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상담 과정에서 궁극적 권위는 여성주의 치료법의 각종 이론들이 아니라 오히려 내담자의 개인적 서사(敍事)와 경험, 호소 내용 등에 부여될 수 있고, 부여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들은 항상 불필요한 진단을 피하며, 내담자의 호소 내용을 섣불리 "해석" 하려는 것도 경계한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이 한 여성으로서, 내지는 한 사람으로서 경험한 것들에 대해 공공연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자기개방(self-disclosure)을 하고자 하며, 이 상담을 통해 상담가가 내담자로부터 어떤 성장의 계기를 경험하였음을 보이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교정하고 하는 관계가 아니라, 전적으로 평등하고도 호혜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2.2 권력관계의 분석, DSM의 전적인 거부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궁극적으로 기존의 임상적 체계와 심리적 문제에 대한 진단기준을 거부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다른 치료법들이 DSM이나 기타 주류 평가방법들에 의하여 개인의 문제를 진단하고자 한다면, 여성주의 치료는 그러한 "진단하려는 태도" 자체를 거부한다. 이들은 심리적 어려움의 증상이 질병의 한 종류가 아니라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환경에서의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보면 여성주의 치료는 기존의 치료법에 만족하지 못한 내담자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피난처가 될 수 있다. 내담자들이 "어디서 그러는데, DSM에 따르면 제가 우울증의 문제가 있다는데요?" 라고 말했을 때, 상담가가 "누가 이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이익을 얻을까요?", "선생님께서 우울증 환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면 어떻게 사회적 권력을 빼앗기게 될까요?" 와 같은 식으로 문제를 다시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DSM적 태도는 여성주의 상담가들이 임상적인 문제에서도 권력 관계를 분석하려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귀결이다. 여성주의 치료의 관점에서 기존의 모든 치료법들은 상담자의 권력에 매우 종속적이고,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것으로서, 여성주의 치료 이론가들은 사실상 기존의 모든 치료법들과 임상적 판단기준, 정신병리학[2]적 기여들이 전적으로 남성들에 의하여 주도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절차적으로도 결과적으로도 무시되었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여성주의 치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여성 환자들이 겪는 문제들은 더 큰 차원에서 보자면 결국 사회의 왜곡된 성 관념과 잘못된 성 역할, 그리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부당하고 불의한 체제(system)와 제도(institution)에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운 문제들이다.

2.3 궁극적 치료목표 : 세상을 바꾸자

여성주의 치료의 우선적인 치료목표는 내담자가 불의(不義)하고 불공정하며 불평등한 사회로부터 주입받은 억압적 성 관념 및 성 역할을 벗어던지고, 자신에 대해 비로소 올바르고 건설적인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개인은 여성주의 치료를 통해 "정말 나 자신만을 위한" 자기실현[3]적인 역할을 새로이 설정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안녕과 행복을 저해하는 불의한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며, 이 속박에서 비롯된 자기정당화[4]와 불필요한 죄책감, 패배의식, 혼란스러움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진정한 치료가 될 수 없다. 이는 잘해봐야 대증요법[5]이며, 언제든지 다시 재발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괴로움 속에 여전히 방치되는 여지가 남아있게 된다. 여성주의 치료사들은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변혁을 바라본다. 그래서 이들은 "여성주의 치료의 최종적인 목적은, 여성주의 치료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 이라는 말을 즐겨 한다. 이는 히어로물에서 흔히 나오는 대사, "우리는 우리가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와도 맥락상 일치하는 말이다. 그 일환으로, 치료사는 최종적 단계에서 내담자에게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 여성들의 권리와 행복을 위하여 부당한 억압에 맞서 싸우라." 라는 주문을 할 수 있다. 심리상담 스케일류 甲 어쨌건 이는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은 정치적이며, 개인은 그 정치적 맥락과 제도 및 체제에 밀접하게 상호작용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는 여성주의의 인간관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는 한편으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상, 개인의 완전한 치료가 불가능한 치료법" 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기도 한다.

3 쓰임새

3.1 성범죄 생존자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강간이나 데이트 폭력,[6] 아동 성범죄 등의 각종 범죄에 노출되거나 경험한 "생존자들" 을 재활시키고 사회에 복귀시키는 데에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시달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여성주의 치료사들 역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문제시하는 부분이다. 이 점에 있어서, 여성주의 치료사들은 기존의 접근법들이 성범죄 생존자들의 심리적 고통과 어려움을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식으로 꼬리표달기(labelling)를 한다고 비판하므로, 애초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표현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들은 기존의 생존자들을 단순히 회복시키는 데에서 더 나아가 "다시는 나와 같은 사람이 더 있어서는 안 된다." 라는 위기의식을 촉구시켜서, 이른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의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자신의 성장의 계기로 삼음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계기로까지 확장하고자 하게 된다. 생존자들 간의 연대와 부조(扶助), 유대, 결속 역시 크게 장려된다.

짐작하겠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미술치료 등이 그 활용 및 목표에 있어 여성주의 치료의 양상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 편이다.

3.2 성 차별 문제

여성주의 치료는 그 상담 과정에 있어서 내담자로 하여금 젠더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을 증진시킨다. 여성주의 치료는 내담자가 권력관계의 불평등과 불의함에 예민해지고 이를 통찰하도록 만들고자 하며, 가정과 학교, 직장 등에서 대놓고 또는 암암리에 가해지는 다양한 차별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직시하도록 만든다. 물론 개인의 혼자 힘만으로는 이렇게 하면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불행해지고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게 되므로, 경험과 입장, 대의를 같이 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직접 맞대는 끈끈하고 강력한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SNS 상에서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차라리 페미니즘을 몰랐던 때가 더 행복했어, 마치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처럼, 이미 페미니즘을 알고 나니까 모든 것이 불편해져 버렸어" 같은 식으로 글을 남기곤 하는데, 사실 이런 부분도 여성주의 치료의 주요 관심 대상에 속한다. 이를 통해 삶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겉으로 드러나거나 암묵적인 차별에 대해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단호하게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3.3 남성을 위한 여성주의 치료 : 맨 박스

흔히 여성주의 치료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여성만이 상담사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수요층은 사실상 여성이다. 특히 여성주의 치료에 경험과 소양을 갖춘 상담사들의 사실상 전원에 가까운 비중이 여성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성주의 치료가 남성과는 전혀 무관하다거나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성주의 치료가 겨누고 있는 문제는 일정 부분 남성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가상의 사례들[7]에서 인지치료 등에 더하여 여성주의 치료를 활용할 수도 있다. 더 많은 상담사들이 여성주의 치료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다면 그 활용 빈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는 탐색에 머무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 내가 피부도 하얗고 어려 보이고 키도 작아서 만만해 보인다고? 남자답게, 남자답게! 나는 싸나이다! 날 얕보고 까불었다간 큰 코 다칠걸! 나는 10점 만점에 12점짜리 진짜 사나이! 음...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고치면 내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겠지?
  • 여자만 보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도 안 나오고, 당황해서 떨리고, 나... 이대로 과연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안 생겨요
  • 나는 남자니까... 요리를 좋아해도 요리에 관심을 보이면 안 돼. 매운 걸 못 먹지만, 싸나이가 되어 가지고 그런 것도 못 먹는다고 놀림받을 테니 억지로 먹어야 해. 나는 성격이 내향적이고 성생활에도 소극적이지만, 남자가 첫날밤에 제대로 리드하지 못한다면 남자 구실 못 한다며 한심하다는 대접을 받을 거야!
  • 여자들은 이해가 안 돼. 여자들은 전부 비합리적이고, 쓸데없이 감정적이야. 자기들끼리만 뭉쳐서 마냥 부둥부둥 해 줄 상대방을 찾을 뿐이지. 애초에 대화가 안 통해. 그냥 쉽게 말해서, 답이 없지.
  • 남자는 말야... 때로는 17대 1의 싸움이라도 당당하게 맞서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이야... 어때, 나 좀 멋져 보이냐? 그러나 잠시 후에 벌어질 참상은 전혀 멋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3.4 성소수자 담론에는?

일반적으로 여성주의 치료는 성소수자 문제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들의 커밍아웃 이후의 관리, 아웃팅 이후의 중재, 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의 상담, 소수자 지인을 둔 주변인들의 상담, 자신의 성적 특성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사례, 자신의 성적 특성을 애써 숨기려 하는 사례, 성소수자 증오범죄에 대한 개입, 자기거부적 호모포비아의 상담 등, 효용성 자체는 몹시 크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효과적일지는 아직은 분명하지가 않다.

3.5 비서구권에도 적용 가능한가?

서구권이나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근대화된 국가들에서는 덜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화권에서 실시하거나, 그렇지 않은 문화권 출신의 이주자를 대상으로 실시할 경우에는 위험이 존재한다. 여성주의 치료는 여성이 가부장제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의 지배 논리에서 벗어나도록 하지만, 이러한 상담가의 입장에 대해 내담자 본인부터가 자신의 친가부장제적 관점을 굽히지 않고 대립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터키 같은 곳이나 남아시아, 동아시아 국가의 여성들은 기존의 사회 구조와 체제, 여성 억압적인 성 역할에 대해서도 그것이 올바르다고 여길 가능성이 있으며, 상담가가 자신에게 억지로 사회적 통념을 깨라고 하거나 불필요하게 "이기적으로 굴어라." 라고 주문하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가는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내담자에 대해서 여성주의 치료를 적용할 때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한 일찍, 그리고 명료하게 상담가가 지닌 성 평등적(gender equality) 가치를 드러내 보이고, 공격적이지 않은 방법을 통하여 내담자가 상담을 지속할지에 대해 숙고하여 결정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상담가는 젠더 문제에 대해 마구잡이로 여성주의 치료를 적용하기보다는, 기본적 가정이나 인간관과 조화 가능한 다른 치료법들도 고려하여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권장된다.
  1. Enns & Sinacore, Feminist theories, Encyclopedia of women and gender : sex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and the impact of society on gender, San Diego, Calif. : Academic Press, 2001
  2. 정신 장애, 질환을 겪는 환자의 정신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심리적 작용이나 과정을 밝히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인지, 지각, 지적 기능의 문제에 중점을 둔다. psychopathology
  3. 자아실현. 자아의 본질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 self-fulfillment.
  4. 사람이 인지부조화를 겪거나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그 행동과 관련된 부정적인 평가, 결과를 부정하려는 경향. self-justification.
  5. 對症療法. 땜질식 처방
  6. 데이트 폭력에 대해 페미니즘적 접근을 취하는 것에 부정적인 연구자들도 있긴 있다. 예컨대 도널드 두턴(D.G.Dutton) 등이 그 사례.
  7. 실제 임상서적에서 인용된 예시가 아님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