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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웃찾사의 시작과 전성기
SBS는 개국 직후부터 한동안 KBS, MBC의 개그맨들을 대거 끌어 모으며 코미디에 힘을 쏟았지만, 90년대 중후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예능의 트렌드로 대두되면서부터 점점 투자를 줄이게 된다. 그러던 2003년 초에 개그 콘서트에서 스타밸리 출신 개그맨들이 소속사 문제[1]로 대량으로 빠져나간 사태가 있었다. 그 때 개콘에서 빠져나간 개그맨들이 SBS에서 만든 프로가 바로 이 웃찾사이다. 그래서 개그 콘서트 같은 형태의 무대 개그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이다. 좋은 친구들이 시청률 부진으로 종영하자, 일요일 오전 11시라는 암흑 시간대에 편성이 되었다.
초기에는 개콘 따라하기, 억지웃음 강요 등의 이유로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이때는 박준형 사단이 이끈 개그 콘서트가 20%대의 시청률로 한참 인기를 구사하던 시기였다. 이에 개콘과 대조적으로, 웃찾사는 시간대를 토요일 오후 6시대, 일요일 오후 5시대로 마구 이동하였다. 개콘에서 넘어왔던 개그맨들의 대부분은 다시 개콘으로 복귀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개그 콘테스트를 통한 신인 육성과, 지방 투어를 통한 인지도 향상에 힘썼다.
어느 정도 경쟁력이 생겼다고 판단한 SBS는 웃찾사를 목요일 밤 11시에 편성하는 강수를 보여주었고, 그 기대에 걸맞게 리즈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인기를 끌게 되었다. 초창기부터 활약한 컬투는 '먹어, 배고프니까', '그때그때 달라요'로 공개 코미디에 완전히 적응하였다. 강성범, 김숙, 이병진 등의 선배급 개그맨들이 비둘기 합창단[2] 등의 코너에서 중심을 잡아주었고, 나몰라 패밀리, 김태현, 김형인, 리마리오, 윤택, 정만호 등 당시의 신인 개그맨들도 활약하기 시작했다. 미녀 삼총사, 백보람, 김신영, 정주리 등 여자 개그맨들도 활약하였다.
2004년 후반부터 2005년 초반까지는 완벽하게 웃찾사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행님아', '택아', '화상고', '그런거야', '왜 없어!?', '비둘기 합창단', '희한하네', '단무지 아카데미' 등의 코너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시간대에 방송되던 해피투게더, 그리고 업계 라이벌(?)인 개그 콘서트를 시청률에서 앞서던 시기였다. 광고에는 웃찾사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이 나오고, 웃찾사의 유행어를 가끔씩 개그 콘서트에서 따라했을 정도. 당시 웃찾사 개그맨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박승대홀에는 시청률 30%에 도전한다는 말이 써져 있었고, 실제로 최 전성기에는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었다. 웃찾사와 개콘이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청률 경쟁을 하는, 공개 코미디 전체의 리즈 시절이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그런데, 웃찾사의 전성기를 이끈 개그맨들은 이른바 박승대 사단이라고 불렸던 스마일매니아 소속[3] 개그맨들, 그리고 컬투를 중심으로 한 컬트엔터테인먼트 소속 개그맨 두 파벌이었고, 과거에 개콘에서 대거 이적해왔던 스타밸리 출신 개그맨은 웃찾사에서는 별로 반응이 없어서 대부분 나중에 다시 개콘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박성호, 김준호, 김대희). 개콘 출신 중에서 웃찾사에서도 히트한 개그맨이 김숙과 강성범.[4] 이태식은 개콘으로 돌아왔다가 이후 사실상 은퇴했고, 황승환은 이태식과 함께 다시 개콘으로 돌아왔다가 개인 사업을 하면서 원음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던 중 중매전문가로 대성했다.
이렇게 웃찾사가 잘 나가던 도중 컬투와 리마리오가 웃찾사를 떠났다.거기에 일요일이 좋다-X맨을 찾아라에 출연했던 김기욱이 말타기 게임 중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악재가 여기서 끝이었으면 좋았겠지만...
2 노예계약 사태
2005년 5월, 윤택, 김형인등을 주축으로 한 스마일매니아 소속 개그맨들 14인이 박승대와의 이면계약 및 15년 노예계약을 폭로하고 나서며 큰 논란을 불러왔다. 당시 SBS는 SBSi라는 자회사를 이끌고 각종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려던 참이었고, 개그사업분야에서는 공채개그맨 개념 비슷한 SBSi 개그콘테스트를 열고 2003년 윤택, 김형인 등의 신인 개그맨들을 선발하게 된다. 이때 SBSi는 개그맨 매니지먼트 경험이 부족하니, 박승대와 제휴해서 당시 신인 개그맨들은 모두 박승대가 오너인 스마일매니아의 매니지먼트를 받도록 하였다. 스마일매니아 측은 매니지먼트 비용을 다 부담하는 대신에 대학로 공연에서의 수익을 챙겨갔다. 이러한 구조에서 방송사:스마일매니아:개그맨들은 35:35:30으로 부가수익을 배분했다. 당시 신인 개그맨들은 다른 기획사에 소속되었어도 어차피 7:3 정도로 수익배분받는 건 당연하고, 방송 출연이 보장되는 것이니 별 불만없이 계약했다.
그런데 이런 3자 계약기간이 만료되어갈 때쯤에 웃찾사의 인기가 초 절정을 달리기 시작하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매니지먼트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하던 스마일매니아 측은 소속개그맨들과 접촉해서 술자리에서 으쌰으쌰하다가 계약서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의리문서'를 만들고 계약금을 받지 않은 채 10년~15년 정도의 기간을 정해 도장을 받은 것이다.
스마일매니아 측이 이렇게 애매하게 의리문서를 받아뒀던 건 SBS와의 제휴관계가 있는데 이면'계약'을 했다고 하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였다. 어찌되었건 군기 강하기로 유명한 개그계에서 선배 개그맨이자 소속사 사장이고 방송사와 밀접한 박승대에게 쉽게 NO라고 할 수 있는 개그맨은 아무도 없었고, 나중에 이게 걸림돌이 되자 개그맨들은 충분히 노예계약을 했다고 여길만도 했다. 그래서 나중에 방송사와 전속계약기간이 만료될때쯤 되자 개그맨들이 집단으로 폭로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 사태에서 박승대와 웃찾사 개그맨들이 이 이면문서가 계약서다 아니다 진흙탕싸움을 벌일 때쯤에 SBSi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었는데, 어차피 개그맨과 기획사의 출연여부를 좌우하는 SBS가 슈퍼 갑이었기 때문에 굳이 개입할 필요를 못 느낀 것이었다. 어차피 같은 구조로 SBS와 선이 닿아있던 컬투쪽 개그맨들도 있었고... 결국 방송사의 파워를 넘지는 못했던 개그맨과 박승대는 방송사에 대한 전면전은 포기하고 1주일만에 흐지부지 화해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노예계약 사태는 결론적으로 웃찾사 몰락의 단초가 되는데 SBS와 스마일매니아에 제대로 미운털이 박힌 윤택, 김형인 등은 한동안 제대로 방송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고 김신영, 김태현 등은 결국 개그판을 떠나 버라이어티에 정착하고 말았다. 그리고 갈등을 적당히 봉합한 박승대는 아예 웃찾사의 기획작가로 들어가게 되어 프로에 출연할 개그맨의 출연여부까지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가지게 된다.
그 결과 개그맨들은 개그 기획사의 수익에 도움이 될만한 행사용 개그, 유행어 남발 등의 말초적인 코너만 꾸려오게 됐고, 이를 마땅히 바로잡을 견제책이 없었던 웃찾사는 차츰 몰락하게 되었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컬투쪽 개그맨들도 당연히 상황이 좋진 않았는데, 몰락 중이라곤 해도 어찌되었던 주도권은 박승대쪽이 완전히 잡고 있었기 때문. 그러니 자연히 컬투계는 밀려날 수 밖에 없었으니, 주도권을 쥔 박승대계는 서서히 몰락하고 있고 반면에 몰락하지 않은 컬투계는 주도권을 빼앗기는 바람에 둘 다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되어버렸다.
3 몰락
결국, 노예계약 사태 이후 개콘에 시청률을 역전당하게 되고, 점점 시청률이 하락하게 된다. 물론 사태 직후 대부분 개그맨들이 복귀함으로써 개콘과 비슷한 수준의 인기는 유지하였다. 하지만 해피투게더의 약진으로 인해 동시간대 시청률 경쟁에서 밀리면서, 예전의 개콘을 능가하던 포스는 더이상 내지 못했다. 개그 내용도, 외부적 활동도 곳곳에서 문제를 지적받게 되었다. 그 좋던 시절은 다 어디로 가고...
한편, 2006년 후반기 MBC 개그야의 런칭으로 공개 코미디 방송의 삼국지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SBS는 개콘에 다시 한번 도전하기 위한 노력으로 웃찾사를 일요일 오후 6시 40분으로 편성이동하였다. 하지만 미녀 삼총사의 교통사고와 김형은의 사망, 소속 개그맨들의 점진적 이탈로 인해 10%대 시청률도 깨지기 시작했다. 무한도전과 1박 2일 등 버라이어티 방송의 도래로 인해, 웃찾사 뿐만 아니라 개콘, 개그야 등의 시청률도 이 당시엔 부진했다. 공개 코미디의 최고 전성기가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2009년 8월 13일에, "이름 빼고 다 바꿨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코너들을 완전 물갈이하고 로고까지 바꾸는 등의 초강경 개편을 했지만, 그 실체는 컬트 엔터테인먼트 소속 개그맨들의 대폭 퇴출 및 박승대의 전권장악에 불과했다. 강압적이고 전근대적인 개그맨 육성시스템을 유지했던 박승대 사단은 한 때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 해병대에 가서 특훈을 했다고 언플을 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해병대 특훈과 개그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니 오히려 그 직전에 7%의 시청률이 10%대까지 오르면서 장수코너였던 웅이 아버지를 필두로 조금씩 부활을 하는가 했었지만 이 개편으로 인해 시청률이 반토막나고 2% 시청률까지 내려갔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의 개편이 웃찾사가 종영되는데에 결정타가 되었다.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웅이 아버지와 초코보이가 방송되면서 조금씩 부활을 하고 있었는데 개편을 했던 것은 웃찾사의 마지막 매니아들마저 등을 돌린 원인이었다.
실제로 홍보하는 방식을 보면 비슷한 다른 프로그램보다 언플로까지 보여질 정도로 언론에 많은 노출을 하려하며 개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알리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2009년에는 컬투가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컬투는 기획작가로 있던 박승대와의 갈등으로 이내 하차해버렸다. 컬투는 스케쥴 조정 등의 이유로 하차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긴 했지만, 이내 MBC의 하땅사로 갔으니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옮겨간 하땅사도... 망했어요.
결국 2010년이 되자마자 시간대를 토요일 오후 4시 10분으로 변경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간대에 음악중심을 봐서[5] 현시창은 여전했다.
결국 2010년 5월 29일 시청률 2.5%라는 애국가 시청률 급의 엄청난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최 전성기와 비교하면 10분의 1토막. 참고로 2010년 3월 20일 방송된 웃찾사는 3.2%를 기록하여 같은 날 방송된 KBS 1TV '황사 이렇게 대비합시다' 5.2%에도 뒤졌다. "웃음 잃은 '웃찾사', 백약무효일까?"
결국 백약이 무효였던 웃찾사는 2010년 9월 24일날 녹화를 끝으로 종영이 결정되었다. 마지막 방송인 357회 방송분은 2010년 10월 2일 자정이 지나 방영됐다. 이 시간대에는 경쟁프로는 KBS의 개그스타인데, 시청률로는 이겼지만 한 때 전성기의 개그콘서트를 위협하던 시대와 비교해 보면 몰락의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더불어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경쟁 프로그램이었던 하땅사의 종영 때와 똑같이 제작진과 개그맨들 전원이 마지막 녹화 때까지 이게 막방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 무대 위에서 제대로 된 인사도 못 한 채 종영하여서 허탈감이 상당히 크다고 한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개그맨들도 종영이 임박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녹화를 마친 후 대기실에서 개그맨들이 올린 '제발 무대를 지켜 달라'는 편지를 이창태CP가 읽어나가면서 모두가 함께 울었을 때는 개그맨들이 모르는 사이 이미 종방이 결정되어 있었고 그 녹화가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이 일로 책임감을 지게 된 이창태CP는 후속프로그램을 올리기 위해 일년동안 노력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종영이 발표된 당일날 소속 개그맨인 강준은 결혼 청첩장을 돌리는 짓을 했고(…) 그걸 주체할 수 없는 개그 본능이라는 개드립으로 엮었다. 날짜를 좀 더 일찍 잡았으면 하객 상당수가 졸지에 백수로 전락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7년 6개월이라는 장기간 방영했던 프로그램 치고는 여러모로 씁쓸한 결론이였다. 그래도 한때는 이런 것조차 보다가 웃기다고 죽어버린 드라마 캐릭터도 있었을 정도였는데... ☞ 이 장면이 유행하자 '웃찾死'라는 드립이 나왔던 게 자랑. 하지만 그 이후 웃찾사가 진짜로 웃찾死가 됐던 건 안 자랑.
2011년에는 개그맨 최성민이 2009년에 웃찾사의 메인작가가 된 박승대와의 외압설 논란에 휩싸이면서 또다시 거론이 되고 있었다. 가뜩이나 죽은 프로그램이었는데 안좋은 이야기로 다시 언급되는 부관참시를 겪으니 끝나도 편하게 눈을 못 감고 있었다.(...)
4 개그투나잇, 그리고 부활
2011년 11월 5일부터 후속 프로그램 개그투나잇이 방영됐다. 제작발표회에서 이창태CP가 웃찾사가 문을 닫은 이유를 밝혔는데, 초반 30%였던 시청률이 3%대로 추락하였으며 회사에서 5년간 20억씩 투자했지만 시청률이 회복되지 않아 경영상의 이유에서 중단 결정이 내려졌던 것.# 또 같은 자리에서 정용국은 "안 웃겼고, 틀만 그대로 가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웃찾사가 문을 닫은 후 풀빵 장사나 주차요원 등으로 연명하는 개그맨들이 많았으며 정용국은 KBS 공채에 지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데뷔를 준비하던 예비개그맨들도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SBS에서 개그맨 공채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2011년 10월 기준으로 개그맨을 공채하던 방송사는 KBS와 MBN 뿐이었다. 2011년 12월 SBS는 2009년 이후 중단된 개그맨 공채를 다시 시작했다. 이창태CP는 그동안 공백기가 있었음을 감안해 적어도 1년은 방송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
아니면 대학가에서 공연을 하는데 몇몇은 무개념 개그로 욕을 퍼먹고 있었다. 실제 콜센터에 전화하여 욕질과 인격 모독을 하며 지들끼리 웃던 장난전화 개그는 도지삽니다를 쌈싸먹을 정도로 무개념의 극치 자학개그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부랴부랴 2012년 1월 11일 이게 조작된 것(그 콜센터 여직원도 개그맨.)이라고 뒤늦게 해명에 나섰었다. 그러나 이딴 걸로 사람 웃기냐는 비난과 콜센터 종사자들의 비난은 당연할 듯.
웃찾사의 후신격인 개그투나잇은 심야시간대에 방송된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웃찾사가 망해갈때에 비해서는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2012년은 공교롭게도 MBC 예능이 시망하고 있는 사이 SBS의 예능프로가 나름대로 주가를 올리던 때라 신설 개그프로그램이 끼어들만한 시간대 슬롯이 좀처럼 나오지 않던 시기였고, 때문에 곧 시간대가 옮겨질 거라 예상되었던 개그투나잇은 방송이후 1년 6개월 동안이나 시간대를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초반의 동정여론 및 신선한 개그에 대한 호평도 너무나 접근이 어려운 시간대의 방송이라는 한계 때문에 곧 사그라들어서 후발주자인 코빠에도 밀리는 형국이 되었다. 한편 신동엽, 유재석, 컬투 등은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개그투나잇의 시간대 변경을 요청하는 등 개그계 안팎에서는 나름 SBS개그 부활에 힘을 실어주는 훈풍이 불고 있었다.
이에 SBS는 사실상 웃찾사의 부활 발판으로 여겨졌던 개그투나잇을 다시 웃찾사로 이름을 바꾸고, 2013년 4월 14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 45분으로 시간대를 옮겨 방송한다고 밝혔었다. 위의 역사 소개에도 나와있지만, 웃찾사라는 브랜드는 SBS가 자회사를 통해 직접 만들어낸 것이라 이런 저런 미운정이 있어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던 모양.
물론 일요일 오전시간대는 주말 심야시간대만큼이나 개그프로그램이 그리 재미를 보지 못하는 시간대임은 분명했지만,[6] 월~금 황금시간대 슬롯의 SBS 예능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최소한의 성의는 보였다는 평가.
개그투나잇 항목에서도 나와있듯, 개그투나잇은 사실상 웃찾사 2군 선수들의 꾸준한 출연보장을 통한 웃찾사의 회생 프로젝트의 성격에 가까웠던만큼 웃찾사의 부활은 어느 정도는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부활한 웃찾사의 주축 출연진들은 개그투나잇부터 출연하여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대다수로, 기존 웃찾사 시절의 선배 개그맨들 상당수는 코미디빅리그로 이탈한 상태이다. 물론 몇몇 고참 개그맨들은 웃찾사 시절부터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5 웃찾사의 현재
2015년 3월 22일부터 방영시간이 일요일 20시 45분에 방송을 시작해 22시에 끝난다. 개그콘서트가 일요일 밤 21시 15분에 시작해서 23시에 끝나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면대결을 벌인 것이다.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컸으나 시간대 조정 이후의 시청률이 개콘과 웃찾사 양쪽 모두 조정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상태다. 2015년 7월에도 웃찾사는 4~5% 정도의 시청률이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다. 좋게 보면 개콘과 맞붙어서 시청률을 지켰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보면 프라임 시간대로 옮기고도 시청률을 끌어 올리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는 애매한 결과다(...)
2015년 10월 기준으로 약 6~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개콘을 3% 차이까지 좁히며 위협하고 있다. 웃찾사의 시청률이 많이 올라갔다기 보다는 개콘의 시청률이 많이 내려와서 격차가 좁혀진 측면이 크지만 남자끼리의 경우 네이버 tv캐스트에서도 개콘 최다 조회수와 비등한 수준을 보여주는 등 재미있다는 반응이 최근 많아졌다. 앞으로도 이런 격차가 유지될지는 지켜볼일.그런데 김수현 작가의 신작 그래, 그런거야로 9시대 주말 드라마가 부활이 확정되면서 다시 금요일 심야 방송 시간대로 옮기게 되었다.
2월 12일 밤 11시 25분으로 이동했는데, 시청률이 5.4%로 시청률 2위라는 나름 좋은 위치에서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이 기록을 어떻게 잘 끌어가느냐에 따라서 올라가느냐 떨어지느냐가 갈릴듯. 다음 주에는 황현희와 손헌수가 합류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다음 주 시청률이 4.3%로 1.1% 하락하고 말았다. 인간의 조건의 삽질로 계속 동시간대 2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함정
최근에 MBC 출신 개그우먼인 맹승지가 3월 17일 녹화분에 출연을 했다는 기사가 떴다. 그리고 시청률이 조금이나마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금요일로 옮길 때의 우려와는 다르게 제법 잘 굴러가고 있다. 물론 경쟁 프로그램들의 부진으로 잘 올라온 것이지만, 그래도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한 땀에 대한 보답이 매우 달콤하다.
요즘 새롭게 합류한 손헌수와 맹승지, 그리고 황현희의 기량과 새로운 코너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 코너들을 격주로 돌리고 있다. 3월 18일 방송에서는 '호찬아'가, 3월 25일 방송에서는 '전설의 무대'와 '세기의 대결 알파코'가 방송되지 않았다. 그리고 반응이 미지근한 '말이오 말이지'는 2주 연속으로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금요일 밤 예능 시청률은 2등이다.
그런데 4월에 KBS 2TV에서 새 예능 프로그램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시작하면서 웃찾사의 시청률이 급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했는데 급기야 5월 27일에는 2.6%로 최악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말았다. 5월 20일 파일럿 프로그램 <좋아요>의 방영으로 1주 결방에 따른 타격과 언니들의 슬램덩크의 상승세의 영향을 받은 거로 보인다. 게다가 2016년 8월 개편으로 수요일 오후 11시로 다시 이동을 하면서 13년동안 16회나 시간대 이동을 하는데 다가 MBC 라디오 스타와 동시간 경쟁을 해야 하는 어려운 전망을 보이고 있었다. 8월 26일 방송분에서 결국 그 전망이 사실이 되면서, 시청률이 2.2%로 3개월만(5월 27일 방송분)에 다시 최악의 시청률를 기록하고 말았다. # 이후 한달만(9월 21일 방송분)에 2.0%로 하락하면서 또 최악의 시청률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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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세한 사항은 김준호, 심현섭 항목 참조.
- ↑ 개그 콘서트의 봉숭아 학당과 유사한 포지션.
- ↑ 90년대 말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캠퍼스 영상가요에 소속 개그맨들을 출연시키기도 한 적도 있었다. 과거 "갈갈이" 박준형이 2003년까지 스마일매니아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시절 캠퍼스 영상가요의 패러디 PV에서 간혹 얼굴을 내밀었던것.
- ↑ 웃찾사에서는 김숙은 난다김, 강성범은 형님뉴스로 히트를 쳤다. 참고로 강성범은 원래 SBS 공채 출신.
- ↑ 음악프로그램 시청률도 만만치 않게 낮다.
- ↑ 웃찾사가 시간대를 마구 널뛰기하던 시절에도 일요일 오전슬롯에 편성되던 시절은 흑역사 취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