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영(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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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 국적의 배우. 1960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계에서 박중훈, 안성기, 최민수와 함께 충무로 4대 트로이카로 잘 나가던 배우였다. 특히 사랑에 빠지는 멋진 남자[1] 역할을 많이 하여 '젠틀맨 이미지'를 통해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스타. 남성미가 강한 최민수와는 라이벌 관계. 네 배우들 중에서 멜로적인 성격까지 제대로 연기할 수 있는 연기폭[2]을 지녔지만, 지나친 다작출연으로 가치마저 훼손되기도 했다.[3] 그러나 같은 장르를 연기하는 한석규가 충무로에 입성한 이후부터 하락세가 시작되더니 1996년에 본인이 감독으로 데뷔하여[4] 제작한 귀천도가 실패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래도 1900년대 후반~ 2000년대초반까지는 40대의 나이에도 주요시간대 드라마의 멜로 주인공을 잘 소화하며 30대 멜로전문 = 이경영이라는 공식을 어느 정도 유지할 만큼 잘 나갔었고, 점잖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젠틀맨 이미지로 당시 드라마 좋아하던 세대인 30~40대 여성시청자 팬들도 굉장히 많았다.

사족일 수도 있으나 90년대 후반 이경영이 잘나갔다는 증거이기도 한 사건으로, 당시 잘 나가던 아나운서 유정현[5]과 모델출신 유명방송인 이소라가 연예정보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를 진행하던 당시 레전드로 남았던 유명한 방송사고 2개, 야이 X박 쉐끼야 잔소리하지 말고 돈 되는 거 있으면 다 내놔!연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주말드라마 '사랑해 사랑해'의 후속작인 로맨스..가 '모두 이경영이 자신이 주연을 한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출연'했을때 벌어졌던 사건이다.

첫번째 욕 사건은 당시 절친이던 이경영과 김민종강도 역할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삼인조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나왔을때 유정현이 자꾸 김민종에게 영화 속 거친 연기를 한번 해 달라고 했다가 실제 쌍욕이 들어간 강도 역할 대사를 질러버려 화제가 되었던 방송사고이고, 두번째 '연기리(?)' 사건은 당시 이경영과 이영애가 출연하던 SBS드라마 로맨스를 홍보하기 위해 방송에 나왔다가 유정현이 드라마 소개하는 말을 '인기리에 방영'으로 할 걸 '연기리에 방영'으로 하는 바람에 이소라가 웃음이 터져 멈추지 못했던 방송사고였다.

이경영은 이때도 당대 최고 젠틀맨이미지 스타답게 연륜있는 유머로 넘겼었다. 첫번째 사건 때는 유정현은 당황한 감정에 시킨다고 욕을 하냐 살짝 화가 겹쳐 나 있어 말을 잇지 못했고, 이소라도 어찌할바를 몰랐으며, 김민종 본인도 자꾸 시키니까 욱하는 마음에 실제 대사를 질렀다가 "시키시니까 했는데요.. 아 방송사고다, 어떡하지.."이러면서 제대로 수습을 못했는데, 이경영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웃으며 "제가 앞으로 김민종씨 언어순화 교육까지 책임지며 살겠습니다."라며 적절하게 마무리시키고 넘어갔었다. 두번째 사건 때는 소개하는 말을 했던 유정현은 당황했고, 이소라는 웃느라 아예 정신을 못 차렸으며, 이영애는 어찌할바를 몰라 조금 웃기만 하며 가만히 있었는데, 이경영도 당황은 했으나 더 이상 멘트가 안 나오면 더 큰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여 미소와 함께 차분하게 "아 예, 연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로맨스에 출연하고 있는 이경영입니다"라고 인사하며 유머로 받아쳐 넘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소라의 웃음터진게 이미 너무 심해서, 이경영의 자연스러운 아재 유머에 계속 터져 버려 한동안 방송사고가 지속되었다. 이 두 개가 1997 ~ 98년, 1년 사이에 터진 일인데, 정리하자면 특정 프로그램에 출연할때마다 연속으로, 사고는 다른 사람이 치고 수습은 이경영이 했던 셈. 그러나 홍보를 해야 하는 입장의 이경영 본인도 단기간 연속된 방송사고로 출연작에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기면 위험하기에 당혹스럽고 화가 날만한 상황[6]에서도, 이렇게 혼자 의연하게 대처했던 모습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이경영의 이미지는 "역시 젠틀맨 이경영"이라는 식으로 평판이 더 좋아졌었다.

2001년에는 이요원과 같이 출연한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아가씨와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는 유부남 역을 맡아 화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나 싶었으나...

2 원조교제 사건(요약 : 유죄, 일부무죄)

2.1 개요

2002년에 원조교제 혐의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미성년자 L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드러났는데, 첫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상태에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번째와 세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게 되었다.

한편 형사재판이 종결된 후, L양과 L양의 부모는 이경영을 상대로 정신적 손해에 대해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는데, 2004년 5월 L양 측이 승소하였다.

그런데 이경영은 여러 인터뷰에서 유죄판결 받았던 부분은 숨기고, 단순히 무죄판결만을 받은 듯이 말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적잖은 기사에는 잘못된 정보(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가 실려 있는 상황이다.

2.2 쟁점

- 3차례의 성관계를 가질 동안 이경영은 L양이 미성년자임을 알았는가? 몰랐는가?
- 이경영이 L양에게 준 10만원, 3만원 등의 금전은 화대 명목이었나? 교통비 명목이었나?
- 이경영이 L양에게 한 영화출연 약속은 성관계의 대가였는가?

2.3 사건 일지

  • 2002년 5월 14일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소위 원조교제) 혐의로 긴급체포
  • 2002년 5월 16일 구속영장 발부
  • 2002년 7월 30일 보석금 700만원을 내고 석방되어 불구속상태에서 재판 받게 됨
  • 2002년 8월 12일 형사재판 1심 판결 선고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
1심 재판은 인천지방법원에서 있었다. 재판결과 이경영이 미성년자인 L모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인정되었는데,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L모(18)양과의 첫번째 성관계시 미성년자인줄 몰랐다는 점은 인정되나 두번째는 성관계전 L양이 '나이를 말했다'는 진술이 신빙성이 높아 유죄가 인정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재판부는 "피고인이 제작한 영화에 L양을 출연시켜 줄 것 같은 느낌을 준점도 인정된다"며 성 관계의 대가성 부분도 인정했다. 그리하여 1심 재판부는 이경영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하였다. # 그런데 검찰은 첫번째 성관계 때도 이경영은 L양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고등법원에 항소하였다.
  • 2002년 10월 25일 형사재판 2심 판결 선고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
2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있었다. 검찰은 이경영이 첫번째 성관계 때도 상대 여성이 미성년자임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2심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1심 법원과 똑같은 판결을 하였다. 한편 검찰과 이경영 모두 2심 재판 결과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2심에서 끝이 났다. 이에 따라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의 형이 확정되었다.#
  • 2002년 11월 사회봉사명령 이행 #
  • 2003년 10월 SBS 드라마 출연 무산
본인이 출연한 SBS '은실이', '도둑의 딸'의 담당 PD 성준기씨가 연출을 맡았던 '애정만세'에 출연이 결정되었으나 원조교제 유죄 판결을 받은 전과 때문에 좌절됐다. #
  • 2004년 5월 민사재판 판결 선고 (L양 측 승소)
형사재판이 끝난 뒤, L양과 L양의 부모는 이경영을 상대로 정신적 손해에 대해 배상하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배우가 되려는 청소년에게 영화출연을 내세워 자신들의 성적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 삼은 것은 미성년자인 L양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L양의 정신적 손해를 인정하였다. 즉 L양 측이 승소하였다. #
  • 2009년 2월 MBC 드라마 까메오 출연 무산
원조교제 유죄판결받은 전력때문에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의 까메오 출연이 무산되자, 자신의 미니홈피에 "항소를 했더라면 부끄러움은 씻지 못하겠지만 범죄자의 오명은 씻지 않았을까" 라는 글을 올렸다. 즉 유죄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

2.4 본격적 재기 이후 이경영의 언론 플레이

이경영은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 이후 2005년부터 간간이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다가 2011년 이후에는 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언론과의 인터뷰가 자주 있었는데,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면, 유죄판결 받은 부분은 숨기고, "무죄판결 받았다"고만 답하였다. 그리고 언론들은 이경영의 말을 검증없이 그대로 내보냈다. 두 건의 인터뷰를 예로 들어 보겠다.

*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 #

기자: 성매매 스캔들은 어떻게 종결됐나?
이경영: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고, 그 친구한테 사과도 받았다.
* 여성중앙과의 인터뷰 (여성중앙 2015년 1월호)

기자: 어느 순간부터 미디어와 방송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어요
이경영: 그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위 인터뷰를 보면 이경영은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런 기사들 때문에 이경영이 무죄판결을 받은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경영의 말은 1/3만 진실이고, 2/3는 거짓이다. 3차례 성관계 중 첫번째 성관계만 무죄고, 나머지 두 번의 성관계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니까.

※ 여성중앙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위 대화 부분은 2015년 1월 15일부로 온라인판에서 삭제되었다. 하지만 이미 종이로 출판된 여성중앙 2015년 1월호 책자에는 위 내용이 여전히 실려있다. 해당 인터뷰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메일로 문의하였는데, '무죄판결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온라인판에서 삭제하였다고 답변해왔다.

2.5 이에 놀아난 일부 언론의 오보 (2004년에 무죄판결 받았다고?)

2012년 이경영은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라는 토크쇼에 출연했는데, 그 방송은 "이경영은 2002년에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법정공방 끝에 2004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자막을 내보냈다. 이경영이 해당 방송 제작진에 그런 얘기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방송이 나간 직후 "이경영이 2004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또는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기사들이 등장하였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무혐의 처분은 검사가 수사 후 내리는 결정 중의 하나로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면 피의자는 재판을 받지 않게 된다. 따라서 법정공방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것은 성립자체가 불가능한 말이다. 법정공방 끝에 나올 수 있는 것은 검사의 처분이 아니라 판사에 의한 유죄판결, 무죄판결 등이다.

무혐의 처분 받았다는 표현을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의미로 이해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사건 형사재판 판결은 2002년에 확정되었다.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다시 재판을 열어 새로운 판결을 받아내려면 재심을 청구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데 재심청구는 극히 예외적인 사유가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다. 한편 이경영 사건이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던 것임을 감안할 때 만약 이경영이 재심을 청구하여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아냈다면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 제 OO 재판부(재판장 아무개 부장판사)는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2002년에 유죄판결을 받았던 배우 이경영씨에 대한 재심재판에서 … 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등의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의 보도가 있었을텐데, 2004년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런 구체적인 보도는 단 한줄도 없다. 오히려 2004년에는 L양과 L양의 부모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이경영이 배상해주어야 한다는 민사재판 판결에 대한 보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 잘못된 정보인 결정적인 증거는, 2009년에 이경영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항소를 했더라면 부끄러움은 씻지 못하겠지만 범죄자의 오명은 씻지 않았을까" 라는 글을 올리며 항소를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는 점이다.# 만약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면 2009년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2004년으로부터 11년이 지난 2016년 현재까지 이경영은 KBS, MBC 등 지상파 방송에 출연금지된 상태이다. 이것 역시 이경영이 2004년에 무죄판결받았다는 것이 오보라는 증거이다.

한편 2015년 1월, 한 언론사는 "이경영이 무죄판결 받았다"는 정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내기도 하였다. # #

2.6 판결 정리

  • 형사재판: 3차례 성관계 중 첫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임을 몰랐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번째와 세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짐.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의 형이 선고됨.
  • 민사재판: "배우가 되려는 청소년에게 영화출연을 내세워 자신의 성적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 삼은 것은 미성년자인 L양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 이라며 "이경영은 L양과 L양의 부모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배상해주어야 한다"는 판결이 선고됨.

2.7 네티즌들이 자주 궁금해 하는 사항

법원은 이경영이 L양(당시 18세)과 가진 3차례 성관계 중 첫번째 성관계는 무죄라고 판결하였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설령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도, 성매매했다는 사실만으로 첫번째 성관계 역시 유죄아닌가?'라며 의아해한다.

궁금증을 풀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죄목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려준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죄목에 대해서는 판결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불고불리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경영은 2002년 5월 14일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소위 원조교제) 혐의로 긴급체포 되었고, 성매매 특별법은 2004년 3월 22일 제정되어 같은해 9월 23일에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으니 그에 따른 처벌은 피할 수 있었다. 이를 불소급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이경영을 원조교제(=미성년자 성매매 =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은 첫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원조교제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라고 하였다. 한편 미성년자임을 몰랐더라도 일반 성매매죄가 성립할 수 있지만, 검찰이 일반 성매매죄로는 기소하지 않아서 일반 성매매죄에 대해서는 판결자체가 내려지지 않았다.

3 학력위조 의혹

충남대 의대를 중퇴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입학한 사실이 없음이 드러났다. 실제로는 충남대 상경대에 입학 후 자퇴한 사실이 있다. 이에 대해 데뷔 당시 인터뷰에서 꿈이 의사였다고 한 것이 의대 출신으로 기사화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해명하였다.

4 재기

최종 보스 전문배우

10년만에 주인공에서 악당으로 이미지 변신 성공

오랜 자숙 기간을 거쳐 2011년 이후 영화 등장이 늘었다. 부러진 화살에서 악역으로 판사역을 맡았고, 2012년엔 같은 감독의 남영동1985에서 이근안을 모티브로 한 고문경찰 이두한을 연기했다. 같은 시즌에 함께 개봉한 26년, 베를린에도 모두 출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주로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 그리고 사망[7] 혹은 카리스마 있는 악역을 맡아 이경영을 모르는 신세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2013년에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하정우와의 연기 호흡을 선보였다. 그 이후에도 장준환 감독의 화이에서도 화이의 친아버지인 임형택으로 출연하면서 악역이 아닌 무고하고 불쌍한 피해자도 연기했다. 이렇듯 자신만이 가진 유니크함으로 여러 영화에 캐스팅되며 (비록 공중파는 못 나오지만)완벽히 재기한 상태.

더욱이 2014년에 들어서면서 어마어마한 다작을 하고 있다. 그 목록을 보면

2월 : 관능의 법칙(최성재 역), 또 하나의 약속(교익 역)
4월 : 백프로(교장 역)
5월 : 무명인(유강진 역)
7월 : 군도: 민란의 시대(땡추 역)
8월 : 해적: 바다로 간 산적(소마 역)
9월 : 타짜: 신의 손(꼬장 역)
10월 : 제보자(이장환[8] 역)
11월 : 패션왕

거의 한 달에 한번 꼴로 영화가 개봉하고 있다. 게다가 10월에 방영된 드라마 미생에도 출연했다!뭐야 이 아저씨 무서워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농담조로 한국영화에는 '이경영 쿼터제'가 있다고 하기도...

이렇게 다작을 하게 된 원인은 물론 자숙기간 활동을 못한 본인의 활동 욕구도 있겠지만 현재 영화판에서 이경영 정도의 나잇대에 어느정도 연기가 되면서 조연을 맡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도 있다. 너무 가볍지 않고 개그 캐릭터가 아닌 격조가 있는 중간보스급의 위치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주연급이라면 몰라도 조연급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판국이다. 그런데 이경영은 이미 90년대 격조 있는 주연으로도 다작을 하며 연기력도 좋다는 평가를 유지했던, 그야말로 탁월한 실력이 있는 배우니 그런 상황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어 적역이었다. 그래서 주연급은 아니지만 조연급으로는 여기저기서 캐스팅되고 있다. 또한 이경영이 선역부터 악역까지 다양하게 맡을 수 있는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도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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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의 얼굴에 비하면 살도 살이지만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이 특징이다.

2015년에도 이런 행도는 계속되어 영화평론가 듀나는 그의 연기를 영화 완성도의 척도로 볼 수 있다는 의견까지 제시했다. 이른바 "이경영 지표".

5 주요 출연작

5.1 영화

연도제목배역관객수
1987연산일기중종1만 명
1987아다다수룡2만 명
1989구로 아리랑현식2만 명
1990비 오는 날 수채화천호
1990있잖아요 비밀이에요오 선생
1990영심이교생
1990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상대 변호사
1990난 깜짝 놀랄 짓을 할거야주연
1991있잖아요 비밀이예요 2오 선생
1991부활의 노래오 선생1만 명
1991잃어버린 너이종환18만 명
1991하얀 비요일고묵
1991사의 찬미홍난파18만 명
1992하얀 전쟁변진수
1993아침이 오면 그대 이름으로주연
1993그여자, 그남자주연21만 명
1994세상 밖으로경영25만 명
1995손톱정민14만 명
1995테러리스트사현32만 명
1995런 어웨이장주혁 형사
1996코르셋한상우11만 명
1996귀천도좌운검20만 명
1997미스터 콘돔경호15만 명
19973인조3만 명
1997베이비 세일상준5만 명
1997할렐루야오동팔31만 명
1998죽이는 이야기하비4만 명
1998기막힌 사내들베테랑1만 명
2002몽중인이윤호-
2002미워도 다시 한번 2002안지환1만 명
2002패밀리최무영13만 명
2005종려나무 숲원양어선 최 선장2만 명
2007눈부신 날에상준28만 명
2010파주보스특별출연
2010무적자박 경위157만 명
2011최종병기 활김무선747만 명
2011써니한준호특별출연
2011푸른소금최고문77만 명
2011카운트다운조명석47만 명
2012부러진 화살이태우 판사345만 명
2012봄, 눈아버지2만 명
2012후궁 : 제왕의 첩내시감263만 명
2012회사원반지훈110만 명
2012남영동1985이두한33만 명
201226년김갑세296만 명
2013베를린리학수716만 명
2013신세계석회장468만 명
2013더 테러 라이브차대은558만 명
2013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임형택239만 명
2014또 하나의 약속김교익49만 명
2014관능의 법칙최성재78만 명
2014백프로교장3만 명
2014무명인유강진-
2014군도: 민란의 시대땡추477만 명
2014해적: 바다로 간 산적소마866만 명
2014타짜: 신의 손꼬장401만 명
2014은밀한 유혹김석구14만 명
2014제보자이장환 박사172만 명
2014패션왕원호부특별출연
2015허삼관옥란부95만 명
2015암살강인국1,270만 명
2015치외법권왕팀장34만 명
2015협녀, 칼의 기억스승43만 명
2015소수의견철거민 박재호38만 명
2015뷰티 인사이드우진 아버지205만 명
2015서부전선유 중령60만 명
2015내부자들장필우915만명[9]
2015조선마술사안동휘62만 명
2016대배우깐느 박16만 명
2016리얼노염개봉 예정
총 관객수9,096만 명

5.2 드라마

연도제목배역시청률
1998로맨스[10]
1998은실이장낙도
2000불꽃|
2001푸른안개윤성재
2014미생최전무7.9%
2015디데이박건
2015Sense 8박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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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론 살짝 악역 느낌이 나거나 남녀 주인공 사이를 갈라놓는 삼각관계 축 역할도 했었지만, 주로 저 이미지가 강했다. 당시는 그가 나중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 조단역으로 간다 해도, 천하의 이경영이 지금처럼 악역, 그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는 악독한 역할 전문 배우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좋은 이미지의 배우 시절이었다.
  2. 근데 멜로나 로맨스, 즉 애정 연기 쪽을 잘했던 만큼 다른 장르는 저 셋에 비하면 약했던 면도 있다. 코믹한 역할로 영화같은 것도 찍긴 했었지만 흥행은 망하거나 그저 그랬었다. 사실상 30대 애정 드라마 전문 주인공 느낌. 그러나 그 애정연기라는 것도 스펙트럼이 나름 다양하게 있는데 이경영은 선한 쪽, 악한 쪽, 19금(?) 쪽, 소프트한(??) 쪽 등 모든 종류의 애정 연기를 다 잘 소화한 배우라 멜로나 로맨스에서의 연기력이 특출나다는 것으로 폄하될 이유는 없다. 아무튼 21세기에도 젊은 주연을 원하는 다른 장르에 비해, 나이 있는 배우가 주연을 하는 멜로는 수요가 나름 많이 있었던 만큼 후술될 사건만 없었다면, 오히려 저 셋보다 주연으로 더 오래갔을 지도 모르는 탁월한 연기력의 소유자였다.
  3. 사실 이 시기에는 충무로 배우 연령폭이 얇았던 탓도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이 배우 저 배우 돌려쓰기 현상이 심하여 관객들이 외면해 버린 시기이기도 했다
  4. 원래는 심승보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려 했으나 사정으로 이경영에게 넘어갔다. 여주인공 교체 등 다사다난에 시달렸지만 흥행성적도 안습이었다.
  5. 후에 프리랜서 생활 후 국회의원도 했었다.
  6. 드라마, 영화 외의 방송출연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닌데 이 정도 상황이 온다면 어떤 주연급 배우도 심하게 빡칠만한 상황이다.
  7. 악역, 최종보스 역도 많이 맡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죽는다. 당당 사망전대.
  8. 이름은 다르지만 황우석과 동일인물이다.
  9. 일반판(707만 명)과 디 오리지널(208만명)의 관객수을 합친 기록이다.
  10. SBS에서 방영된 주말극. 상술된 한밤의 TV 연예 사건의 그 연기리에 방영중인'사랑해,사랑해'의 후속 드라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