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비에이라

(파트리크 비에라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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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선수 시절 최전성기를 보낸 아스날 시절.

이제는 뉴욕 시티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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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티 FC 감독
파트리크 도날레 비에라
(Patrick Donalé Vieira)[1]
생년월일1976년 6월 23일[2]
국적프랑스
출생지세네갈 다카르
신체 조건193cm, 85kg
포지션중앙 미드필더(박스 투 박스)
소속 클럽AS 칸 (1993-1995)
AC 밀란 (1995-1996)
아스날 FC (1996-2005)
유벤투스 FC (2005-2006)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6-2010)
맨체스터 시티 FC (2010-2011)
지도자맨체스터 시티 FC 기술이사 (2011-2013)
맨체스터 시티 FC 리저브팀 감독 (2013-2015)
뉴욕 시티 FC 감독 (2016-)
국가 대표107경기 6득점
별명라 피브레[3]
EURO 2000 BEST XI
FW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FW
프란체스코 토티
MF
지네딘 지단
MF
파트리크 비에이라
MF
에드가 다비즈
MF
루이스 피구
DF
파올로 말디니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로랑 블랑
DF
릴리앙 튀랑
GK
프란체스코 톨도
2001 UEFA BEST 11
FW
다비드 트레제게
FW
티에리 앙리
MF
킬리 곤살레스
MF
지네딘 지단
MF
파트리크 비에이라
MF
데이비드 베컴
DF
비셴테 리사라수
DF
파트리크 안데르손
DF
사미 히피아
DF
코스민 콘트라
GK
산티아고 카니사레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마르셀 드사이
(2000~2004)
파트리크 비에이라
(2004~2005)
지네딘 지단
(2005~2006)
지네딘 지단
(2005~2006)
파트리크 비에이라
(2006~2008)
릴리앙 튀랑
(2008)
아스날 FC 역대 주장
토니 애덤스
(1988~2002)
파트리크 비에이라
(2002~2005)
티에리 앙리
(2005~2007)

1 소개

아스날프랑스의 전성기를 이끈 중원의 핵.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에서 최고였던 사나이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가치를 몇단계로 끌어올린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아이콘

강력한 피지컬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전범위 커버하던 최고 미드필더였다.

초코파이 코코볼

2 어린 시절

세네갈다카르에서 카보베르데인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나, 8살 때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해왔다. 비에이라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어머니와 살게 된다. 이후 아버지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비에이라라는 이름은 카보베르데에서 유래했으며[4] 어머니쪽 성씨이다.

3 클럽 커리어

3.1 초기

17세에 AS 칸에서 성인팀에 데뷔하였으며, 19세에 이미 주장을 맡았을 정도로 뛰어난 리더십을 가졌다. 1995년 여름 이탈리아 세리에 AAC 밀란으로 이적하였으나 경기에는 출장하지 못하고 대부분 벤치에 머물렀다.

3.2 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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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벵거가 이끌던 전성기 아스날에서 중원 핵심이었던 비에이라. AC밀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그를 벵거가 영입하여 1997-1998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더블을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토니 아담스가 주장이던 때에 부주장을 맡았는데 아담스가 은퇴하고 주장이 된다. 주장이 된 첫 시즌인 2001-2002 시즌에 또다시 리그와 FA컵을 거머쥔다. 아스날 무패 우승의 멤버로서 질베르투 실바, 피레스 등과 함께 아스날의 강력한 미들진을 이끌었으며 맨유의 로이 킨과의 라이벌관계는 유명하다. 대표팀 동료인 티에리 앙리피레스, 데니스 베르캄프와 함께 무패 아스날을 이끌었다.

당시 월드클래스 선수로 도배되다 시피한 아스날인데다가 공격진에서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 조합이 쩔기도 해서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는 적지만 아스날에서 비에이라의 존재감은 실로 어마무시하다.

그 사실은 벵거가 비에이라 이적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비에이라의 대체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5][6]

2016년 기준으로 오늘날 슈퍼 퀄리티로(?) 도배된 벵거 아스날의 미드필더진이 가진 최대 약점 중 하나가 피지컬인데[7]
외질, 카솔라, 램친놈 등등 암만 좋게 이야기를 해 줘도 이 미드필더들이 패싱플레이에는 매우 뛰어나지만 훌륭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중원장악력을 가졌다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문제는 아스날과 경쟁하는 클래스들은 대부분 그러한 피지컬우위, 완벽한 피지컬적 우위가 아니더라도 태클을 통해 볼을 탈취하여 동료들로 하여금 중원을 장악하도록 하는 스타일의 선수를 왠만해서는 한명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FC 바르셀로나가 중원에 공중볼과 같은 부분에 우위를 지니는 선수 없이[8]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들인 챠비 에르난데스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등의 미드필더들로 하여금 티키타카로 대표되는 지공 플레이를 펼치면서도 한동안 준수한 성적을 냈으나 바르셀로나와 동급의 클래스의 선수들로 구성되어있고, 피지컬적으로는 명백하게 우위에 있는 FC 바이에른 뮌헨을 챔스에서 만나자 로베리, 다비드 알라바, 필립 람에게 측면이 봉쇄되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하비 마르티네즈로 대표되는 막강한 중원 압박에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던, 최강이라고까지 일컬어지던 미드필더진이 개발살이 나면서 종합 스코어 7:0으로 대패했다.

뮌헨과 바르셀로나의 예시는 여러 면에서 극단적인 예시이기는 하지만 비에이라는 비슷한 클래스의 팀들과의 경쟁에서 이러한 우위를 한가지라도 만들어 줄 수 있는, 벵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슈퍼 퀄리티의 선수였다는 것이다.
프랜시스 코클랭이 14-15시즌에 수비적 역할을 잘 해주면서 역할을 해서 벵거에게 부족한 퍼즐을 하나 매꿨고매꿔야 할 퍼즐조각이 좀 많은 것 같지만 15-16시즌에도 부상 전 까지 활약했으니 메데타시 메데타시.

라이벌이던 맨유의 공격적인 영입 정책과 달리 아스날은 소극적인 영입 정책을 펼쳤고 비에이라는 항상 불만을 제기해왔다. 레알 마드리드가 매년 여름마다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은 유명한 일. 비에이라도 레알로 갈 것처럼 행보를 보여오면서도 항상 아스날에는 꼬박꼬박 남았으나...

피지컬적인 측면에서 점차 하향세가 오던 그에게 2004-2005시즌이 끝나고 유벤투스가 접근해왔고 비싼 값에 마지막으로 팔 수 있는 시점이라 여긴 벵거 감독이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허락해주었다.[9] 비에이라는 늘 챔스 트로피를 열망했고 장기적으로 팀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옮기는 데에 따른 소극적인 이적시장 정책을 계속해서 보일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늦기전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고 2004-2005시즌 FA컵 트로피를 마지막으로 팀을 떠난다.

3.3 아스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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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4일 그의 유벤투스행이 확정되었다.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나 경기력은 아스날 시절보다는 다소 떨어졌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친정팀 아스날을 상대하였는데 자신의 등번호를 이어받은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면서 유벤투스를 제압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하지만 2006년 월드컵에서는 좋은 활약을 보여 클래스는 죽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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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즌 칼치오폴리로 유벤투스가 세리에 B로 강등되면서 비에이라는 인테르로 이적했다. 인테르 이적 이후에는 과거와 같은 포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첫 시즌은 인테르의 압도적인 스쿠데토 획득에 기여했지만 점점 나이도 30대가 넘어가면서 피지컬이 하락하여 과거와 같은 운동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고,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2008-09 시즌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맨유를 상대했지만 별다른 활약 없이 인테르는 패배하였다. 이후 하비에르 사네티가 중앙 미드필더 롤을 소화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다음 시즌 티아고 모타, 베슬리 스네이더르의 합류로 인해 완전히 후보로 전락하여 벤치에만 머물게 되었다.

결국 2010년 1월 꾸준한 출장을 위해 맨체스터 시티로 임대를 떠났고 다음 시즌 완전 이적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팀을 떠난 후 인테르는 스쿠테토, 코파 이탈리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여 이탈리아 클럽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뤘다. 여러모로 챔스 트로피와는 인연이 지독하게도 없다.

이후 맨체스터 시티에서 한 시즌을 더 뛰다가 2011년 여름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였다.

4 국가대표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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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월드컵 까지만 해도 엠마누엘 프티 혹은 카랑뵈의 백업으로 활약했으나 유로 2000부터 당당한 경쟁력울 갖추면서 막강 프랑스 중원의 한축으로 자리 잡는다.[10] 2002 월드컵과 유로 2004에서는 부진했으나 2006 월드컵에서는 클로드 마켈렐레와 함께 플레이메이커 지네딘 지단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막강한 후위 미들진을 구성, 16강에선 스페인, 8강에선 브라질 중원을 완벽하게 차단하며 프랑스의 결승 진출에 기여한다.
그 중에서도 16강의 스페인전이 최고의 백미인데 챠비 에르난데스, 사비 알론소,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주축으로 한 미드필더진을 지네딘 지단과 함께 축구 레슨을 시켜주며 탈탈 털었다.
유로 2008에서 월드컵 준우승팀이었던 프랑스가 최악의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이후 노쇠화된 프랑스의 세대교체와 비에이라는 잦은 부상으로 인한 노쇠화로 점점 국가대표 차출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 2010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탈락하였다.

5 플레이스타일

그야말로 BTB 미드필더의 상징과 다름없다. 당대에 수비적 전술이해도로는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거기에 우월한 신체조건까지 결합되었다. 190cm가 넘는 큰 키와 당당한 체구에 흑인의 유연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긴 다리로 남들보다 수비반경 또한 넓었다. 상대방의 공만 정확히 따내는 태클이 일품. 활동량과 피지컬을 바탕으로 중원을 장악하는 능력은 역사상 손에 꼽을만큼 특급이었다. 피지컬을 앞세운 전진능력도 준수하며, 순간적인 침투로 득점을 뽑아내는 능력도 상당했다. 다만 피지컬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뛰는 BTB 스타일이다 보니 게임을 조율하는 창의성은 뛰어나다고 하기 힘들다. 패스에 있어 부정확한 패스로 공 소유권을 내주고, 위기를 초래하는 수준은 아니였으나 알론소나 피를로처럼 3선에서 빌드업과 플레이메이킹을 맡기고 기대하기는 힘든 선수다. 아스날과 프랑스에서는 베르캄프와 지단이라는 역대급 2선 자원들이 있어서 이런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11] 유벤투스와 지단이 없는 프랑스에서는 정말 답답한 경기운영능력을 보여줬다. 유벤투스에서 브라질의 에메르송과의 함께한 미들 조합이 이론상 최강으로만 남고 과거 마케렐레와 조합이 안맞았던 이유도 이런 점에 근거하게 된다.[12] 하지만 2006 월드컵에선 지단이 2선~3선을 왕성히 오가며 빌드업을 직접 이끌자 둘은 장점인 미들 장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준우승의 성과를 거뒀다.

6 여담

전형적인 만능 육각형 미드필더답게 FM시리즈에서는 능력치가 20으로 도배되어 있는 선수로 유명했다(...) 원조 FM사기유닛.

상당한 성질(...)로 유명하다. 로이 킨과의 앙숙관계는 이미 전설[13][14][15]이며 그 마리오 발로텔리 마저도 비에이라의 말은 고분고분 들었다고 한다.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그를 자극하면 말릴 수 없을 정도이고 실제로 그는 인종차별퇴치 홍보대사이기도 했고...뭐 더한 선수들도 있긴 하다. 미하일로비치라든가...

클로드 마켈렐레와 영혼의 듀오로 손꼽혔지만 그건 2006 독일 월드컵만 본 사람들의 평가[16]로 출장시마다 잉글랜드의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의 조합처럼 현실은 시궁창인 조합이였다. 무엇보다 플레이스타일이 유사한 둘의 플레이는 시너지는 커녕 서로의 동선만 방해하는 플레이만 보여주었다.
뭐, 그래도 끝까지 답을 못찾은 제라드-램파드 조합과는 다르게, 2006 월드컵에서 기어이 제대로된 콤비플레이를 보여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확실히 월드컵 토너먼트에서는 지단의 마지막 불꽃과 마켈렐레-비에이라 조합의 포텐이 터진 것 때문에 프랑스가 결승에 갈 수 있었다.

아스날에서의 마지막 시즌때 스페인파[17] 선수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레예스가 아스날에서 떠나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알려진 선수 중 한 명. 그리고 아넬카가 과거 자서전에서 언급하기를 라커룸에서 과거 자신에게 본인의 ' 그것 ' 을 보여줬다고 한다. 대충 평을 보면, 반할과 같은 성격이지 않았을까 싶다는..

그의 다리는 워낙 길어서 구너들이 학다리라고 불렀었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그의 다리는 한쪽다리가 다른쪽다리보다 3cm나 길다고 한다. 뛸때야 모르겠지만 사실 반듯하게 선 자세를 가만 보면 매우 구부정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좋지 못한 신체조건이 하향세가 빨리 오는 결과를 낳았다. 비에이라가 아스날에서 뛰던 시절 토니 아담스가 비에이라의 다리길이가 상이하다는점을 지적하며 말년에는 부상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고 발언했었는데 과연 그 말대로 30대가 넘어간 인테르 시절 이후부터 점점 부상이 많아졌다.

2011년 은퇴 이후 맨체스터 시티의 기술 이사로 일하면서 유소년 훈련 시스템을 개혁 및 개발 하였고 2013년 5월에는 맨체스터 시티의 리저브 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2015년 12월까지 2년 7개월동안 활동했다. 2015년 5월에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감독 부임 설이 있었으나 단순 설에 그쳤다. 그리고 2016년 1월 뉴욕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했다.[18]


피파온라인3에서 굴리트와 함께 미드진 사기라고 한다

7 경력

7.1 대회 우승

  • 아스날 FC (1996/97 - 2004/05)
  • 인터 밀란 (2006/07 - 2009/10)
  • 맨체스터 시티 (2009/10 - 2010/11)
    • FA 컵 (1) : 2010/11

7.2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리그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3/94AC 칸느프랑스 디비전 1501000--
1994/95AC 칸느프랑스 디비전 1312201141
1995/96AC 칸느프랑스 디비전 1130000040
1995/96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2010--20
1996/97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12303010
1997/98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32902020
1998/99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43501030
1999/00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022010140
2000/01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066100120
2001/02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627000111
2002/03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2435010121
2003/04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293503070
2004/05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26610060
2005/06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31530--70
2006/07인터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20130--41
2007/08인터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16330--30
2008/09인터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19120--30
2009/10인터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12110--20
2009/10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1311000--
2010/11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152831080

7.3 개인 수상

  • 2001 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득점 왕
  • PFA 연간 베스트 일레븐 1998-99, 1999-00, 2000-01, 2001-02, 2002-03, 2003-04
  • UEFA 올해의 팀 2001
  • 프랑스 축구 2001
  • FIFA 100
  • 레지옹 도뇌르 훈장 1998
  1. 영어식으로 읽던 영향이 남아서인지 비에이라로 많이 알고 있지만, 불어에서 'ei'나 'ey'는 자음 앞에서 '에'로 읽는다. 비슷한 예가 프랑스 영화배우 레아 세두(Léa Seydoux)
  2. 지네딘 지단과 생일이 같다. 6월 23일.
  3. 문어라는 뜻...
  4. 정확히는 카보베르데의 옛 식민모국이었던 포르투갈계 성이다.
  5. 대부분 의 선수들은 비에이라 수준의 퀄리티를 갖추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그런 퀄리티에 근접한 야야 투레는 유망주 시절 영입하고자 했고, 실제 합의까지 했으나 워크퍼밋 때문에 영입하지 못하고 여러 과정을 거져 결과적으로(...) 맨시티가 가져가버렸다.
  6. 만약 그러한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유망주가 아니고서야 벵거가 무리해서 영입하진 않았을 것이다.
  7. 벵거에게 있어 선수들의 피지컬은 전술상 이점을 갖고 + 짱짱한 피지컬로 무장한 무리뉴의 첼시에 항상 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8. 부스케츠는 키가 크기는 한데 신체적 조건에 비해서 공중볼은 글쎄올시다..
  9. 말이 좋아 새로운 도전이었지 사실상 내친 거나 다름없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비에이라는 이 당시 나갈 생각이 없었는데도 팀으로부터 재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슬프고 당황했다고 말했다. 유벤투스 이적 이후 밝혀진 비화에서는 벵거가 이제 세스크 파브레가스도 써야 하니 비에이라에게 주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자극했다. 지금이야 세스크가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중 하나로 꼽히지만 당시엔 비에이라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였고 세스크는 미래가 촉망되어도 17살짜리 꼬맹이었다.
  10. 이 때 프랑스는 데샹을 고정으로 놓고 프티와 비에이라를 로테이션으로 이용하면서 매 경기 다른 중원구성을 선보였다.
  11. 게다가 프랑스의 최전성기 때 지단과 호흡을 맞춘 중미 디디에 데샹은 이런 면에서 탁월한 선수였다.
  12. 마케렐레는 미들 장악에 탁월한 선수였고, 생각보다 패스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 역시 빌드업을 이끌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13. 둘의 앙숙 역사는 이 동영상으로 정리된다.
  14. 로이 킨은 자신의 두번째 자서전에서 비에이라와 대치할때 속으로는 무척 겁을 먹었다고 고백했다. 만약 비에이라가 폭발한다면 자신은 비에이라의 상대가 되지 못할거라고.
  15. 앙숙과는 별개로 서로의 실력은 인정하는 편이다.
  16. 국내에 해축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05년으로 마켈렐레는 유로 2004 이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상황이라 당시 소속팀인 첼시에서의 활약만 볼수 있었다. 2005년에 다시 국가대표 복귀했다.
  17. 파브레가스, 레예스, 로렌을 위주로 한 선수들.
  18. 뉴욕 시티 감독 임명 자체는 15년 11월에 발표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활동을 시작한건 16년 1월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