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욱

(국민노예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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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한민국노예이니라!! 정현욱이 국가대표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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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줄무늬 노예이니라!!
진짜로 우규민 나오는 곳으로 왔다
먹튀로 시작하였으나 위암을 이겨내고 마운드에 다시 선 인간승리자

LG 트윈스 No.19
정현욱(鄭現旭 / Hyun-Wook Jong)[1]
생년월일1978년 12월 2일[2]
출신지경상북도 고령군
학력장안초-건국중-동대문상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6년 2차지명 3라운드(전체 21번, 삼성)
소속팀삼성 라이온즈(1996~2012)
LG 트윈스(2013~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2번
최우채(1994)정현욱(1996~2004)최재현(200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9번
김현중(2005~2006)정현욱(2007~2012)김희걸(2013~2014)[3]
LG 트윈스 등번호 19번
김기표(2010~2012)정현욱(2013~ )현역

1 선수 소개

삼성 라이온즈, 현 LG 트윈스 소속 노예. 혹은 LG의 4강 또는 5강 토템투수. 현역 한국프로야구 선수. 프로입단 연도는 1996년이지만, 1군 데뷔는 1998년에 이루어졌다.

삼성 시절에는 권혁, 권오준, 안지만과 함께 삼성의 허리를 책임졌다. 아래 선수 생활 항목에서 보면 알겠지만, 그야말로 대기만성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선수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고단한 직책을 맡음에도 철저한 몸관리와 성실함을 보여주며 삼성 투수진에게는 그야말로 귀감이 되는 모범적인 선수였다. 하지만 FA가 되어서는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플레이스타일은 일반적인 속구(전통적인 포심)를 던지지 않는게 대표적. 대신 모든 속구는 투심 패스트볼을 던진다고. 그런데도 구속이 꽤 나오는 편. 변화구는 커브와 스플리터를 주로 던진다. 특히 커브 각이 꽤나 좋은 편.

대부분의 불펜 투수는 쉬면 컨디션이 회복되어 구위가 더 좋아지지만, 정현욱은 오래 쉬면 오히려 컨디션이 나빠진다. 과연 노예 선동열, 류중일 모두 이 점을 인정했을 정도. 원래 속구형 투수기 때문에 오래 쉬면 컨트롤의 감을 잃는다고. 대략 3일 정도 쉬면 감을 잃는 듯.[4] 선동열 감독이 정현욱을 그렇게 쓰다가 혹사한다고 욕먹은 적도 있을 정도.

삼성 시절에는 투수 조장을 맡았다. 고참임에도 스스로 먼저 나서 훈련하는 등 성실한 면을 보이는 데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2군 선수들에게 야구용품을 챙겨주는 등,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거기에 담배나 술을 안 하는 건 물론이고이정도 자기관리를 하는데 위암이 왜 걸렸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술은 2012년에 안지만, 오승환과 같이 마시다 걸렸다, 매 홈경기 전에 경산에서 2시간 동안 훈련하는 등 자기 관리도 철저했다. 룸메이트 정모 군은 이런 것 좀 보고 배우길

2 선수 생활

2.1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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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그의 데뷔 시절(...) 이러고 논다!!!


야 우리집에 안 오냐? 야 부침개 나오냐? 야 술집 바로 가냐? 야 기죽지마 형우야 야 웃지말라고 새꺄 "야 웃음이 나오냐?"
2010년 4월 20일 경기가 끝나고, 하이파이브 할 때 실책성 플레이를 저지른 최형우가 웃으면서 들어오자 확 분위기를 잡는 장면이다. 그 전날까지 삼성은 5연패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입모양은 "야, 웃지 말라고 X꺄"라고 해석될 여지도 있다. 아니 그걸 넘어서 온갖 설이 다 나왔다. 야갤에서는 "야, 우규민 나오냐?"(…)라는 설까지 나오기도 그리고 정말로 우규민이 나오는 팀으로 갔다 잘 보면 뒤에다 대고 '어!'라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도 있다. 옆에서 선수들 다독이다가 정색하는 신명철채태인의 긴장한 듯한 표정이 보이는가? 그리고 삼팬들은 최형우가 2015 시즌 후반기 부진하면서 정현욱 참교육 드립을 날린다

3년 뒤에 어느 팀법규를 좋아하시는 분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적이 있다

2.1.1 2004년 이전

초창기에는 불같은 강속구를 지닌 투수로 많은 기대를 받았었다. 그러나 볼만 빠르고 제구가 형편없어 적지 않은 기회를 부여받았음에도 전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투구 폼도 전성기 시절과는 달리 많이 딱딱하고 엉성하여 더욱 제구가 안 되는 모습이었고, 그렇게 평범하게 볼만 빠른 미완의 대기로 남아 있다가 사라지나 싶었다. 그래도 정현욱을 키웠던 장본인이 바로 임호균.

여담으로 1998년 시즌 후 해태 타이거즈와의 임창용양준혁, 곽채진, 황두성 트레이드 때 원래 황두성 대신 해태로 갈 뻔했다. 그러나 해태 구단 실무자의 착각으로 공 빠르고 밥 잘 먹는 황두성이 대신 갔다.

2000년에 2군 생활을 하던 도중에는 김성근에게 맞기도 했었다.[5]

2.1.2 2004년 시즌

2004년에 선동열 투수 겸 수석코치가 부임함으로써 투구 폼 교정과 그의 조련 덕택 이 때부터 조금씩 포텐을 터뜨려 나가기 시작한다. 시즌 중반까지 윤성환과 함께 특급 불펜으로 쏠쏠하게 활약하며 삼성의 막강 허리로서 잘 나가나 싶었는데 윤성환, 현재윤과 함께 병역크리가 터졌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구속된 후 구치소에서 푸쉬업을 하면서 체력을 유지했다고 한다.

2.1.3 2005년 ~ 2008년 시즌

2004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으로 구속되어 단기 징역을 살고 출소한 후, 관련 법규에 따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경산시청에서 복무를 마치고 2007년 8월에 소집 해제되어 마운드로 돌아왔다. 이후 삼성 마운드의 기둥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황두성 대신 해태로 트레이드될 뻔한 걸 생각하면 삼성팬으로서는 아찔한 일.

병역비리로 야구인생이 그대로 끝날 뻔 했으나, 교도소에서 복역하며 팔굽혀펴기[6]로 체력을 유지했다. 인터뷰에선 "다른 재소자들도 운동을 하는데 운동선수인 내가 운동을 안 하면 어떡하냐." 면서 구슬땀을 흘렀다고. 출소 후 복무하면서 퇴근 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그 노력은 그대로 빛을 발해 불명예를 이겨내고 재기에 성공하는 원동력이 된다.

2008년 프로야구에서 LG 정재복, SK 정우람과 함께 소위 정노예 3인방 중 수장으로 떠올랐다. 불펜 투수로 주로 나왔음에도 정규이닝을 채웠을 정도로[7] 이닝을 많이 소화한데다 선발, 불펜, 마무리 같은 보직을 가릴 것 없이 등판했기 때문. 선동열 감독의 야구 스타일에 부합하는 투수 중 하나. 다만, 정현욱의 등판 간격을 보자면 혹사라고 하긴 뭐하다. 집중 관리되는 노예인 듯.

한화 마정길과의 호각지세로 마노예 vs. 정노예라고 불리기도 했다. 다만 팀이 유리할 때에는 나오고 점수차가 벌어져 질 듯한 경우 안 나오는 케이스.

이 당시 캐롤 'The First NoyeahNoel'를 개사한 노예송이라는 흑역사 응원가가 나오기도 했다. 역시 김용일 당연히 처음 나왔을 때부터 비난받고는 바로 사라졌다.

2.1.4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회 WBC 대회에 처음으로 국대에 뽑혔으며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국대를 상대로 국민노예라 불릴 만큼 훌륭한 활약을 했다. 심지어 유니폼에 들어간 로마자 성 표기도 JONG(). 모처에선 명성황후를 패러디해 "내가 조선의 국노다"라는 말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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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노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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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볼 수 없는 전성기 투심 패스트볼

그리고 2라운드가 열리는 노예해방의 땅 미국박동희 : 자! 노예해방의 땅, 미국에 왔어요!에 가서 멕시코 타선을 상대로 호투를 했고, 이후 한동안 등판하지 않아 정말 해방되었나 했으나...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에서 다시 등판하여 1⅓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일본과의 결승전에도 5회 무사 1,3 루 위기에 구원등판하여 무실점으로 이를 막아내고 6회에는 일본 타선을 삼자범퇴로 처리하는 등 나카지마 히로유키에게 1실점을 했지만 호투를 펼쳤다. 우승 상금으로 노비 면천첩을 사기 위해, 누구보다도 한국 팀의 WBC 우승을 간절히 바라고 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결승전 10회초 사인이 차단당한 채 임창용의 8구가 이치로를 향해 날아가고….

2.1.5 2009 시즌

WBC에서 돌아오자마자 쉴 틈도 없이 꾸준히 등판하며 초반부 초토화된 삼성의 투수진의 한 줄기 희망으로 자리매김했으나 점점 방어율이 상승,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부상이 아닌 계속된 투구로 인한 피로누적으로 인한 부진이었으며, 11일만에 다시 1군경기에 출장하여 다시 위력적인 투구를 보여주었었다.

그러나 9월 잔여경기 시즌에서 롯데와 피말리는 4위 싸움을 하는 도중, 롯데를 상대로 등판해서 권혁과 함께 두들겨 맞아버렸다. 그리고 한화를 상대로 3:3 상황에서 등판하자마자 4안타 볼넷 1개를 내주면서 방어율 99.9를 찍어버린뒤에 강판당하면서 그날 패배의 원인이 되어버릴 정도로 페이스가 하강.

2.1.6 2010 시즌

겨울과 봄에 국제대회가 없는 상황 속에서 푹 쉰 결과, 팀내 홀드, 세이브 1위로 2009시즌보다 나은 성적을 보여주며 권혁, 안지만과 함께 안정권 트리오를 결성하며 삼성의 무적 불펜 전설을 완성했다. 구속도 150km/h까지 올랐으며 2009년과 비교해봤을 때 커브도 많이 좋아졌다. 오오~! 노예신! 그러나 2009 시즌과 마찬가지로 시즌 막판 피로가 누적되면서 페이스가 다소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최종 성적은 ERA 3.20 9승 1패 11세이브 12홀드.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5:2로 지던 6회말 2사 2루에서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다섯 타자를 상대하여 단 한 명도 출루시키지 않고 1⅓ 23투구수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은 8회말에 4점을 뽑아 5:6으로 재역전승했다.

10월 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6회초에 권혁이 3실점하여 팀이 스코어 스코어 4:0으로 지고 있던 1사 1, 2루에서 등판하여 3개의 공으로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냈다.
이날 정현욱은 ⅔이닝 3투구수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3으로 패했다.

10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4:2로 앞선 4회말 1사 2,3루에서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1번타자인 정수빈에게 2타점 3루타를 맞고 3번타자인 이종욱에게 1타점 내야안타를 맞아 스코어 4:5를 만들고 말았다.
정현욱은 이날 1⅔이닝 27투구수 4피안타 1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4:6으로 지던 8회초에 2점을 뽑아 패전을 면했으며 팀은 9회초에 2점을 뽑았지만 9회말에 3점을 내줘 8:9로 패했다.

정현욱은 2010년 플레이오프 전 경기에 등판하여 5⅔이닝 5피안타 1사구(死球) 1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정현욱은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2⅔이닝 3피안타 1사구(死球) 2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6.75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정현욱은 2010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7경기 등판하여 8⅓이닝 8피안타 2사구(死球) 7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3.24를 기록했다.

2.1.7 2011 시즌

2011년 시즌 초기, 삼성 불펜진 중 제일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월 3일 기아전에서는 8:8 동점상황에서 이범호에게 솔로홈런를 맞았으며, 4월 8일 SK전에서는 1:1 동점 상황에서 차우찬 뒤에 등판하여 정상호에게 투런홈런을 맞았다. 그리고 4월 13일 LG전에서는 박용택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이리하여 개막한지 2주도 안되어 3패를 기록하게 되었다. 4월 22일 넥센전에서도 강정호에게 역전 적시타를 맞았다. 카도쿠라 켄이 쌓아놨던 주자라 패전투수가 되진 않았지만. 이렇게 시즌 초, 구위와 구속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제구가 잘 안되는 모습에 '노레기'로 격하되어 불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차츰 안정을 되찾더니 4월 이후에는 예전의 페이스로 돌아와 팀의 막강 허리의 한 축을 책임졌다. 감이 살아난 5월 이후의 방어률은 0.85(…) 결국 1점대 방어율까지 떨어뜨리며 관리받는 노예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었다.

8월 4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홀드를 기록하면서 16홀드로 LG 이상열과 홀드 공동 선두를 달리게 되었다. 8월 7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에 등판하여 끝판대장 없이[8] 9회에 롯데의 클린업 트리오를 깔끔하게 막아내며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끝판대장만도 벅찬데 중간보스까지 이 정도면 대체 어쩌라는거냐

2011년에 24홀드로 홀드 2위를 차지하였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앞선 2011년 10월 26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0:2로 앞서고 있던 8회초에 등판하였는데, 노예 생활을 한동안 하지 못해서 감을 잃었는지, 박재상에게 2루타, 최정에게 볼넷, 박정권에게 안타를 허용하여 폭풍 같이 스코어 1:2를 만들고 끝판대장을 소환하게 만들었다.
끝판대장의 위엄과 대수비로 나온 이영욱의 활약으로 팀이 1:2로 승리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현욱은 예능이 뭔지 아는 선수+잔인한 희망고문 선사자[9]가 되었다.이겼으니 됐지, 뭐
이날 정현욱은 0이닝 7투구수 2피안타 1볼넷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99.99를 기록하였는데 이날 등판이 정현욱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 그리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다행히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한국시리즈의 부진을 만회하듯 중간 계투로서 예전같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팀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2.1.8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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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되어버린 삼성 라이온즈 시절.

성적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2011년에도 시즌 초에는 부진하다가 5월부터 여름성 종특 버프로 서서히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12시즌엔 6월 들어서도 컨디션을 되찾지 못했다.

5월 4일, 한 팬이 새벽에 술집에서 정현욱, 안지만, 오승환을 봤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팀은 침체기에 빠져 있는데 이나 푸러 다닌다며 까이고 있다. 특히 정현욱은 평소에 굉장히 성실한 이미지인데다, 웃음이 나오냐 5월 4일 당일 경기에 등판해 1이닝 3실점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보여 더 까였다. 하루 쉬고 올라온 나머지 둘은 홀드와 세이브

6월 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 전에서 4년만에 선발로 등판했다. 윤성환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생긴 선발진의 공백을 메꿈과 동시에 떨어진 정현욱의 컨디션을 노예니까 오랜 이닝을 던져보며 올려보자 하는 의미의 선발등판으로, 대부분은 60구정도를 던지고 또는 1이닝만에 탈탈 털리고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류중일 감독은 80구에서 100구는 던져야 하지 않겠냐고 발언. 실제로 93개의 투구를 하며 4⅔이닝 3실점을 하였다. 성적만 보면 상당히 좋지 않지만 불펜 투수로 뛰다가 4년만에 선발로 등판한 점도 그렇고, 5회 투아웃까지는 꾸역이지만 상당히 호투하다가 1아웃을 남겨놓고 연타를 맞아 만루 상황에서 강판되었고, 후속 투수가 필승조도 아닌 이우선이 올라와 공 두개로 깔끔히 3점 전부를 분식회계 해버렸다는 점[10] 등등 때문에 정현욱은 그리 까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공격은 이우선류중일

그나마 추격/패전조로 내려간 후로는 제 몫을 해주며 2012년 9월에 접어든 후론 방어율도 3점대로 많이 낮아졌다. 그런데 하도 말아먹은 경기의 임팩트가 커서인지 평균자책점'만' 보면 많이 까였다.

팀은 또다시 우승했지만, 본인은 이전 시즌에 비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다만 리그 전체적으로 봤을땐 여전히 중상위권 성적이라 할 수 있었다. 뛰는 곳이 뛰는곳이라 말이지…

정현욱은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1⅔이닝 2피안타 1탈삼진 2실점 비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1.9 FA

시즌이 끝난 후 FA를 신청. 본인은 4년 계약을 원했지만 구단 측에서는 3+1 계약을 제시하여 아귀가 맞지 않았고, 결국 FA 시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나올 당시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를 보여주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삼성 팬덤의 분위기는 좋지만은 않았다. 대부분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멍한 반응을 보였으며, 일부 팬들은 배신감마저 느껴진다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오히려 2군에서 썩던 신인들에게 간만에 기회를 줄 수 있게 되었다며 전화위복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어찌됐건 정현욱은 다른 구단과의 협상을 가지게 되었다. 불펜 사정이 널널하지 못한 KIA나 한화, NC 등지에서 노릴 가능성이 컸다.

2.2 LG 트윈스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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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2012년 11월 17일, LG와 4년 28억 6천만원에 계약하며 LG 트윈스로 둥지를 옮겼다.# 원소속구단 우선 협상 기한을 넘기자마자 LG 김기태 감독으로부터 함께 하자는 문자를 받았고, 백순길 단장이 직접 찾아와 오랫동안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야구선수로서 어느 정도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는 정현욱에게 4년의 계약기간을 보장한 것이 정현욱의 마음을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며, 봉중근이라는 마무리 투수가 있우규민도 나올 수가 있LG에서 그나마 부담갖지 않고 하던 필승조 역할을 계속 할 수 있어서 LG행을 선택한 듯[11]. 자녀들 교육 문제도 있고... 나이가 나이인만큼 괜히 입쥐효과가 걸리는 건 아닐런지 보상선수로 이승우가 삼성으로 갔다.

한편 이적 이후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그선수 혹은 후배위하는 선수라고 불리고 있다. 이유는 이적 후 인터뷰에서 전 소속팀인 삼성을 그 팀[12]이라고 칭하며 후배를 위해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언급했기 때문(...) 그리고 2012년 정현욱을 주구장창 기용했다고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욕을 먹은 류중일 감독에 대해서는 알고 보니 FA로 풀어 주기 위해 출장 일수를 채웠던 것이라며 재평가하였다.

이적 후에는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세 가지 표현이 유행했는데, 첫째는 웃음이 나옵니다 ㅋㅋ[13], 둘째는 박수친다[14] 정현욱이 털릴 때마다 삼갤은 갓삼봉느님ㄷㄷ 으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세번째는 위에 쓴 그 선수

2.2.1 2013 시즌

전반기엔 그럭저럭 활약했으나, 후반기 들어서 성적이 나빠져 등판 빈도 자체도 적었고, 포스트시즌에는 나오지도 못한 채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정현욱/2013년 항목으로.

2.2.2 2014 시즌

먹튀.
꾸준히 등판한 만큼 꾸준히 맞았기에 꾸준히 욕먹었다. 그럼에도 계약 내용에 출전 일수 보장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할 정도로 계속 경기에 출전하는 통에 팬들은 미칠 노릇이었다. 삼성팬들은 미치게 좋아하였다. 그런데 패전조로 나온 덕에 생각보다 이닝은 많이 먹어서 불펜 과부하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 패전조로 나와서 잘 막은 경기가 꽤 되는 편이었지만,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고 시즌을 마감했다.

정현욱/2014년 항목으로.

2.2.3 2015 시즌

재활이 길어지면서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6월 말경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이전의 정현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살이 확 빠져버렸다. CC사바시아가 생각난다.

2.2.3.1 위암 투병

링크에 있는 사진에서 보듯이 살이 쪽 빠졌는데, 딱 봐도 운동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메마른 몸이다. 엠팍의 엘지팬 중 한 사람이 이천에 갔을 때는 등번호를 보고서야 정현욱임을 알아봤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링크 밑의 댓글에서 위암 투병이라는 말이 나온 것.

위암이라는 소문이 맨 처음 나온 건 6월 19일디시인사이드 엘지 트윈스 갤러리의 한 유동닉의 댓글이다. 이후 삼갤에 소식이 전파되었고 이 소식이 꼬리를 물어 결국 정현욱 연관검색어에 '정현욱 위암' '정현욱 암투병' 이 뜨기에 이르렀다.

LG 편파 중계로 유명한 사람이 현재 정현욱이 팔꿈치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 아프다고 언급했다는 카더라 또한 언급되었다.

현역 선수 중 위암에 걸렸던 선수는 위의 정현석과 (당시 현역인)김상진 선수가 있었다. 김상진은 항목에도 있지만 먹성이 좋았던 것로 유명했다고 한다.

LG의 담당기자인 윤세호 기자에 의하면 2016년 복귀를 목표로 재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2.2.4 2016 시즌

LG의 5강 토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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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6일 LG 트윈스 신년하례식에 나타났다.
정현욱 '올해는 부활 할게요'

2군 대만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되었다.

3월 26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시범경기에서 6회초에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해 공 7개로 두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참고로 2014년 7월 8일 두산전 이후 무려 627일 만의 등판이었다고 하며,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잠시 오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위암 투병 사실이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2014년 말 뼛조각제거 수술을 하면서 종합검진을 했고, 이 과정에서 위암인게 밝혀졌다고. 수술 후 20kg가 빠졌고, 한때 야구를 놓아버릴 뻔도 했지만 인터뷰를 한 당시에는 치료가 끝났다고 했다.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4월 9일 2군 경기에 선발투수로 등판해 5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4월 15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647일만에 1군 등판하여 3 ⅓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1043일만에 세이브를 올렸다. 대부분의 팬들은 정현욱의 복귀에 박수를 보냈다.

4월 22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대신 코프랜드가 1군으로 콜업되었다.

5월 22일, 컨디션이 좋지 않던 우규민이 내려간 자리에 한 달만에 콜업되었다. 우규민 안나오냐 이준형, 코프랜드 등판 경기에 각각 1이닝씩 등판하며 롯데 타선을 틀어막았다. 전성기만은 못하지만 클래스는 여전하다는 것을 증명한 역투. 암투병한 이 분보다 더 불안불안한 유원상은 뭥미??

6월 7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가 26일날 1군으로 올라왔다.

8월 12일 잠실 NC전에서 8회초 진해수소폭탄이 최동환이 내보낸 2명의 주자를 모두 분식하여 역전당하고 박민우를 헤드샷까지 하면서 퇴장한 가운데 등판하여 나성범을 고의사구로 걸러 1사 만루의 절체절명 최대의 위기 상황에서 조영훈과 박석민을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며 자칫하면 614 참사 때의 대량실점이 재현될 뻔할 상황에서 팀을 구원하고 9회초에도 등판하여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처리하면서 팀의 9연승의 발판을 마련한 LG 이적 이후 최고의 호투를 보여주며 승리를 챙겼다. 이날 우규민 나왔다 특히 박석민을 삼진 잡을 때 낙차 큰 커브로 얼어붙게 만든 것은 일품 중의 일품. LG 포스트시즌 간다고 떠들어라

3 기타

  • 20대 때는 식욕이 왕성해서 라지사이즈 피자 2판을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다고 한다. 2군에 있었을 때 별명이 경산 볼파크하이에나. 30대가 된 이후로는 피자 1조각만 먹어도 배부르다고. 어렸을 때는 편식이 심해 약골이었다고 한다.
  • 생긴 것도 그렇고 위에서 나온 우규민 나오냐"웃음이 나오냐" 발언 때문에 엄청 까칠하고 무서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호호아저씨다. 팬들에게 매우 상냥. 목소리도 캐발랄해서 입을 여는 순간 깬다는 반응이 많다. 말주변도 생각보다 좋으며 심지어 말도 무지하게 빠르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훗날 은퇴한 후 해설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카더라.
  •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에 우락부락한 모습으로 걸쭉한 사투리를 쓸 거 같지만,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서울에서 보내서 사투리 사용을 안 한다. 목소리도 쾌활한 스타일.
  • LG 이적 후 강남구 청담동에 전세집을 구했는데, 평소에 워낙 안 꾸미고 다니다 보니 야구팬들조차 못 알아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 이걸 뒤집어 말하자면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얘기려나?
  • 장성호의 은퇴로 1996년에 프로에 지명된 선수 중 마지막까지 남은 현역 선수가 되었다!
  • 쥐갤에서는 떠들어라갑으로 불린다. 이 인터뷰 기사 제목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정현욱이 온 후 팀은 비밀번호를 끊고 2연속 포스팅진출을 했다.
  • 암에서 복귀한 이후의 별명은 암전드가 대표적이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8삼성 라이온즈57⅔10004.70662
19992578⅔37005.03803256
20002500003.60632
20011군 기록 없음
2002203611004.00321834
20034385⅓45134.59913477
20042785⅔45013.36814267
2005군복무(공익근무)
2006
20071114⅔01105.5215116
2008531271040113.401085697
2009627985616
(2위)
3.42773866
20106170⅓9112113.20663061
20115972⅓43124
(2위)
2.36703452
20125462⅔25033.16572148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13LG 트윈스5447⅔25216
(5위)
3.78552631
20142532⅓22014.73391624
통산501805⅓504423863.71783367623
  1. 보통 정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로마자 이름 표기를 'Jeong' 이나 'Jung'으로 하는 데 비해 정현욱은 이름을 Jong Hyun-Wook 역시 노예으로 등록했다.
  2. 실제로는 1977년생이라고 한다.
  3. 개명후 49번으로 등번호 변경
  4.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2011 한국시리즈 2차전. 너무 오래 쉰 정현욱은 컨트롤 난조로 화끈하게 불지르고 오승환을 소환하게 된다. 그리고 오승환이 Save us 하셨다.
  5. 김성근은 쌍방울에서 해임된 후 2000년에 삼성의 2군 감독을 1시즌 동안 맡았다.
  6. 하루 1천 개를 했다고 한다.
  7. 53경기 등판, 7경기 선발, 127이닝 투구.
  8. 8월 2일 ~ 8월 5일 경기에서 오승환이 4연속 등판했기에 휴식을 위해서 등판하지 않았다.
  9. 이날 양팀의 경기 내용은 심각한 투수전+물빠따 양상이었고, SK의 박희수가 불을 지른 후에는 삼성이 무난하게 경기를 이기는, 타 팀 팬들이 보기에는 지루한 경기라고 할 수 있었다.
  10. 즉 정현욱이 올라와 있는 상황에서 직접 실점한 점수는 0점.
  11. 위에서 언급된 한화, KIA, NC에 제대로 된 마무리감이 없기 때문에, 만약 정현욱이 갔다면 꼼짝없이 마무리 낙점이다(…).
  12. 정확히는 그 팀에서는 기회를 안 줬다
  13. 이적 후, 시범경기에서 최형우에게 홈런을 맞았다.
  14. 3년 계약을 뿌리치고 LG와 4년 계약을 했을때, 삼성 라이온즈 단장인 송삼봉의 박수치며 보냈다에서 유래.
  15. 2011년까지 정현욱은 야구를 한 지 24년째가 되는데, 1억 개를 던지려면 쉬지 않고 하루에 적어도 11,000개를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