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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러쿼터 산맥 서부 지방을 규리하라 부르며, 규리하는 이 지방의 동부에 위치한 성 이름이다. 그리고 이 지역을 변경백 작위를 계승하는 규리하 가문이 다스리고 있다. 별명은 무향(武鄕). 별명답게 이 지역이 숭상하는 가치는 상무(尙武) 정신이다. 하지만 작중에선 묘하게 전투력 측정기 기믹이 있는데 눈마새, 피마새 두 작품에서 모두 주인공들에게 자랑인 무력으로 완전히 발렸다. 한번은 일대일 싸움으로, 한번은 전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마새 때에는 북부군의 대장군과 군사가 배출되어 전투의 중추로 활약했고 피마새 때에도 규리하를 약화시키기 위해 온갖 뒷공작이 들어갔었고 패배한 뒤에도 나중에는 중심이 되어 활동할 수 있었다. 상대가 주인공만 아니라면 무력으로는 절대 약하지 않았다.
1 규리하 가문
정통 규리하 가문은 후사린 규리하가 제1차 대확장 전쟁에 가병들을 이끌고 참전, 전사하면서 대가 끊겼다[1]. 그러나 제1차 대확장 전쟁이 끝나고 아라짓 왕국이 멸망했을 때, 과텔이라는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규리하 가문의 방계 혈족이라고 주장하면서 규리하라는 성을 쓰기 시작했고, 후사린 규리하의 한계선을 향한 남진 이후 방치되어왔던 규리하 성을 보수한 뒤 변경백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이로서 정통성이 의심되는 가짜 규리하 가문이 시작된 것이다.[2]
지러쿼터 산맥 서부는 왕도 어쩌지 못했던 거칠고 야만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험한 땅 안에서 어떤 미치광이가 가짜로라도 지위를 가지려 하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과텔은 미치광이라는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규리하 지방 내에 몇 개 도시도 부럽지 않을 변경백령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규리하 지방은 날로 번창했으며, 규리하 사람들은 과텔에게 왕위에 오르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과텔은 자신이 왕국의 방패인 변경백이며, 왕이 돌아올 것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는 것은 반역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 이것이 충성 서약으로, 변경백이 왕의 귀환을 기다리며 충성으로 변경백령을 지키겠다는 서약이다. 사람들은 그의 의도를 존중해 과텔 규리하를 변경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과텔 사후 그의 딸인 케나린 규리하가 갑작스레 변경백의 지위를 계승하겠다고 선언, 그를 정략 결혼의 상대로만 보던 주변 지역을 당황케 했다. 그녀는 행정 체제와 군사 체제를 일원화시켜 1만 명의 상비군을 육성해낸다. 다급해진 주변 지역들이 규리하의 의도를 떠보기 위해 사절을 보내면, 케나린은 단 한 가지로만 대답했다. '변경백령은 왕국의 방패일 뿐, 왕국을 겨누는 단검이 아니다.' 불침선언인 셈이다. 이를 두고 어리석은 제왕병자들은 자신이 왕이 되면 규리하는 자신에게 충성을 바칠 거라며 좋아했으나, 현명한 사람들은 '진정한 왕이 없는 이상 나머지 지배자들은 반역자이며 우리는 그들을 겨누는 단검이 될 수 있다.'라는 의미인 걸 알고 경악했다고 한다.
이후 규리하 가문은 표면적인 불침선언을 잘 지켜서 지러쿼터 산맥 동쪽으로부터 무수한 도전을 받아왔지만 그 때마다 여지없이 그 세력들을 격파함으로써 저 부녀의 의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충심으로 왕의 귀환을 기다리는 지방답게 이 지역에서만큼은 제왕병자가 얼씬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죽으니까.
이렇듯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가문으로 보이겠지만, 이에 대해 케이건 드라카는 괄하이드 규리하를 만났을 때 변경백에 대해 '왕의 재산을 갈취한 자들 중 가장 속 편한 자'라는 냉담한 평가를 내렸다. 만일 왕이 돌아온다면 다른 제후들은 불법점유자지만, 변경백령은 왕도 간섭할 수 없기 때문. 하지만 이것은 여신소환을 군웅들이 방해하지 못 하게 하려고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서 괄하이드를 도발하기 위해 한 말로 이후 케이건이 바라기의 주인임을 알게 된 괄하이드가 왕이 되거나 왕에게 그 칼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을 때 케이건은 이렇게도 말했다. "당신은 이미 왕의 것을 보관하고 있소, 그것도 훌륭히. 더 이상 왕을 위해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오." 이렇게 말한 걸 보면 케이건이 규리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건 후자인 듯 하나 규리하측에서도 전자의 평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듯 하다. 산에게 부동심을 가르칠 수 있다는 괄하이드가 그 도발에 홀라당 넘어간 걸 보면...
제2차 대확장 전쟁에서 가장 큰 공훈을 세우는 지방이다. 우선 괄하이드 변경백이 대호왕의 즉위를 최초로 지지했으며 규리하의 군대는 북부군의 주축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괄하이드 본인은 북부군의 대장군, 사촌동생 라수 규리하는 북부군의 상장군 직을 맡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 공훈을 인정받아 종전 후 신 아라짓에서 괄하이드는 태위, 라수는 사도 직위를 맡았다.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아라짓 제국에 반기를 들게 된다. 치천제가 충성 서약을 거부한 것에 반발한 것이다. 충성 서약을 통해 황제에게 직접 서약을 할 수 있는 대귀족의 권위를 높이고 제국 정부가 파견한 태수에 의해 통치되는 제국령을 점진적으로 축소, 폐지하여 귀족의 힘을 강하게 하려고 했다. 여기에 인간은 충성할 대상을 고를 수 있다는 모토의 서약지지도 표면적 이유로 작용했다. 개돼지 모냥 무조건적으로 치천제에게 지배를 받을 순 없으니 치천제에게 충성서약을 하겟다는 것. 하지만 치천제는 그딴 건 필요 없고 그냥 무조건 충성을 받아야 했기에 자기한테 충성하겠다는데 군대를 보내서 개발살을 내놓는 그냥 척 보기엔 요상한 구도가 나오게된다.
이것은 결국 황제의 권위가 제도(제국법/충성서약) 위에 있다는 왕권신수설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 일종의 입헌군주제와 유사한 개념이다. 물론 피를 마시는 시대는 전제군주의 시대이며 충성 서약을 지지한 것도 엄격히 귀족들이기 때문에 엄연한 입헌군주제라고 볼수 없으나, 그 기초쯤은 될 수 있기 때문에 몇백년쯤 지나면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반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즉 표현을 달리한 사회계약설. 전제황권을 강화하려는 치천제입장에선 미래에 대한[3] 아주 강력한 위협인 셈.
단, 피마새에 등장하는 서약 지지파의 입장을 입헌군주제와 유사한 개념이라고 보는 것에는 상당한 이론의 여지가 있다. 작중 서술을 보더라도 황제가 6억명의 제국민 전부에게 능동적인 충성 서약을 받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문제 제기에 대하여 서약 지지파가 내놓은 대답은 평민은 하위 귀족에게, 하위 귀족은 상위 귀족에게, 상위 귀족은 황제에게 충성을 서약하면 된다는 것이었고,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면 신분의 상하를 구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즉, 절대적이고 전제적인 권력을 가진 황제 이외에는 본질적으로 모든 제국의 신민이 평등한 입장이어야 한다고 본 치천제의 입장에 비해, 서약 지지파는 황제를 정점으로 고위 귀족에서 하위 귀족, 평민에 이르기까지 계급과 서열의 높고 낮음이 구별되는 피라미드형의 사회상을 지향한 것. 이는 입헌군주제나 사회계약설의 논리보다는 오히려 봉건제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런 관념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서약 지지파들이 황제가 직접 태수를 파견하여 통치하는 제국 직할령을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역시 황제의 권력을 억제하고 봉건 영주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시도의 전형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치천제와 서약 지지파의 대립은 전제군주제와 입헌군주제 사이의 갈등이라기 보다는 봉건제와 절대군주제 사이의 갈등에 훨씬 가까우며, 실제 역사의 사례에 비춰본다면 오히려 치천제의 입장쪽이 몇백년 후 민주주의의 기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왕권신수설에 기반한 절대왕권이 발전하면서 왕들은 봉건 대귀족들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소귀족이나 교육받은 중산계급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근대적 의미의 정치적 시민계층이 바로 이런 중산계급으로부터 탄생했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결국, 현실의 역사 발전에 대입해 본다면 서약 지지파의 입장은 왕권신수설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긴 한데, 절대군주정보다 더 발전한 근대적 입헌군주정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정 반대로 구시대적인 봉건질서의 유지를 지향하는 것이고, 황제에게 직접 충성을 서약할 수 있는(또한 자기 영지의 신민들에게 충성을 서약받을 수 있는) 봉건적 신분 특권을 지키고 싶어한 것에 더 가깝다. 실제로 작품 내용을 보더라도, 골케 남작의 악행을 제국법에 따라 처벌해야 하느냐는 정우 규리하의 질문에 대해 엘시 에더리는 영지 내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제국법을 참고할 수는 있겠으나 영주의 임의대로 처벌해야 할 사안이라고 대답했고, 이에 대한 처벌 수위 역시 엘시답게 올바르기는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지나치지 않으냐는 것이 대다수였던 점으로 볼 때, 작중의 봉건 영주들은 황제에 대한 반역을 저지르지 않는 한 자신의 영토를 독립적으로 지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발케네의 락토 빌파가 신부 절도는 발케네의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정우 규리하를 납치하여 납치혼을 자행하려 하는 상황에서도 (규리하측에는 이 신부 절도 풍습에 응할 마음이 전혀 없었고, 납치 대상이 힘없는 서민도 아닌 규리하 변경백이며 실제로 이 결혼이 이루어진다면 아라짓 제국의 정치역학 관계 전반에 대격변이 몰아닥칠 것이 확실한데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막기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작중 아라짓 제국의 정치체제가 입헌군주제의 태동을 따지기에는 아득히 멀고 먼 봉건제 수준에 머물러있음을 쉽게 알 수 있는 것.
결국 엘시 에더리가 지휘하는 제국군이 규리하 성을 개발살내버리자 아이저 규리하는 도망자 신세가 되고 정우 규리하가 변경백이 된다.
이후 발케네에 망명을 갔던 아이저 규리하와 이이타 규리하가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하늘치 소리[4]를 통제하게 되었고 정우 규리하가 치천제에 대항하기 위해 엘시와 함께 떠나면서 이이타 규리하가 변경백을 물려받는다.
1.1 규리하 가문의 인물
- ↑ 본문에서는 왕국의 방패와 왕의 충신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둘 다 잃어버렸다고 표현했다. 즉, 왕의 충신으로써 변경백을 지키는 역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거나, 나가가 침공한 순간 왕국을 지키기 위해 곧바로 출병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후사린의 출병은 이미 너무 늦은 상태에서 감행되었고, 결국 변경백을 지킨다는 임무도, 왕국을 지킨다는 목적도 이루지 못한 채 전사했다.
- ↑ 이를 통해 어디에도 없는 신의 역사적 수복력이 1차 대확장 전쟁 말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전이라면 후사린의 대가 끊기지 않았을 테고, 그 이후라면 과텔이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케이건 드라카가 나가살육자가 되는 시점과 일치하기도 하고.
- ↑ 그녀의 목적은 일만 육천 년 동안의 지배이기 때문.
- ↑ 이이타의 아내될 사람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