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선수 경력

1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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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고시절 김현수똑같은데?

지금보다 더 늙어보인다 김현수 앞에 이쁜 치어리더 있음

신일고 시절부터 뛰어난 타격으로 이름을 날리며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혔다. 하지만 AAA대회 당시 멤버중 김현수만 혼자 프로구단에 지명을 받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미스터리지만, 발이 느리고 수비를 무성의하게 한다는 평가가 있었던 점, 하지만 김현수를 가르쳤던 한 코치의 증언에 의하면 "현수는 쳤다 하면 2루타여서 열심히 뛸 필요가 없었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보면 스카우터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 하다. 그리고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타자치고 대성한 타자가 없었다는 징크스도 함께 고려되지 않았을까 하는 평이 대세이다.[1] 미국으로 진출한 신일고 동기 남윤희에 대한 보복으로 각 구단 스카우트들이 담합하여 지명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2] 1987년생 드래프트를 보면, 남윤희와 김현수 사이에 지명된 신일고 선수들도 있고 김현수와 남윤희는 태어난 해만 다를 뿐 신일고 동기이다. 2차 지명 회의 다음날 국내/외 많은 구단 관계자들이 김현수의 집을 찾았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롯데 자이언츠에서 김현수를 지명할 예정이라 했으나 김문호를 지명하면서 그만뒀다고도 한다. 대학 진학보다는 프로에서 뛰고 싶어 고민하다, LG 트윈스에는 박병호정의윤이 이미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기에 두산에 신고선수로 들어가기를 선택했다고. 박동희의 기사 [3]

2 프로경력

2.1 2008년 이전

신고선수로 입단한 만큼 절치부심하며 훈련했다. 김광림 타격코치의 지도 아래 매일 하루 1000번의 스윙을 했다고 한다. 입단 첫해 훈련 중 외야 수비를 하다 펜스에 제대로 부딪쳤는데 툭툭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김경문 감독의 눈에 들었다.

2006년 시즌 후 교육리그에서부터 잠재력을 인정받고 2007 시즌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며 1군 무대에 첫 등장하였다.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으로 팬들로부터 김경문 감독의 양아들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점점 리그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이후 주로 2번타자로 출전해 99경기, 타율 0.273을 기록하며 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2.2 2008 시즌

2008년에는 일거에 수위 타자로 떠오르며 리그 최고의 교타자로 등극했다. 신인이나 마찬가지인데도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해서 호타를 보여주며 활약했지만[4] , 그 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1사 만루에서 병살타를 쳐서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마지막 타자였던 쿠바율리에스키 구리엘이 친 병살이랑 똑같다고 하여 김쿠바, 김구리엘이란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하필이면 상대도... [5]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5차전 9회 1사 만루에서 또다시 1-2-3 병살을 치며 두산의 2년 연속 준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당시 병살타를 치고 1루에서 펑펑 울던 어린 김현수의 모습은 모든 야구팬들에게 안쓰럽게 다가가기 충분했다.

결국 한국시리즈 최종 성적은 21타수 1안타 그리고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최형우가 21타수 1안타를...

2008시즌은 타율 0.357 (리그 1위), 안타 168(리그 1위), 출루율 0.454(리그 1위), 홈런 9, 타점 89, OPS 0.963이라는 매우 쓰레기같은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이 시절 김현수를 똑딱이 시절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홈런 갯수가 적었다 뿐이지 잠실구장에서 장타율 5할[6]에 OPS 9할을 기록한걸 보면 똑딱이라고 하긴 무리가 있다.[7]

2.3 2009 시즌

2009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8]는 개나 주라는 듯, 2008년의 놀라운 안타 생산능력에다가 부족했던 장타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가 되었다. 특히 6월 초반까지 4할대 타율을 유지하는 괴물같은 스탯을 찍어주었다.

2009 KBO 드림팀을 뽑는 투표에서 7개 구단 감독 만장일치로 3번타자로 낙찰되기도 하였다. 한참 선배인 홍성흔이 김현수를 가리켜 "타격의 신"이라고 하거나, 이승엽도 베이징 올림픽 때 김현수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치냐"라고 묻기까지 할 정도로 타격 능력에 있어서는 자타공인 천재.

2009시즌은 타율 0.357 이 기계는 신규패치가 없네 (리그 3위), 안타 172(리그 1위), 홈런 23(리그 11위), 타점 104(리그 2위), OPS 1.037(리그 3위)등 단지 타격왕만 놓쳤을 뿐 월등히 좋아진 장타력으로 2008시즌보다도 더 좋은 괴물같은 성적을 내었다.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김거김을 만들어내는 등 펄펄 날았지만 SK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진하였다. 그러다 10월 13일 플레이오프 5차전 SK와 경기에서 2회 선제 솔로홈런을 쳤는데, 직후 경기가 우천으로 중단되었다가 결국 취소되면서 그 홈런은 아예 무효 처리되었다. 홈런을 치고 포효하며 기뻐하다가 비가 많이 내릴수록 점점 근심에 싸이는 모습을 보며 두산 팬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홈런을 치는데 왜 경기를 못하니... 다음날 또 홈런을 치면 된다고 인터뷰했지만, 14일 리셋하고 다시 시작한 5차전에서는 두산이 참패하였다. 5차전에서 크게 지고 있던 상황 중 정말로 홈런을 치고 베이스 도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가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슬픈 홈런을 보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습지못미.

2.4 2010 시즌

시즌 KIA와의 개막전 2연전에서 도합 8타수 7안타를 치면서 역시 김기계라는 평을 들었으나 최훈 카툰 이후 극도의 부진(?)고장에 빠지면서 김기계답지 못하게 타율이 2할대까지 떨어졌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어느정도 기량을 되찾아 3할을 회복했으며 결국 20홈런 80타점도 무난하게 달성했다.

최종 성적은 타율 겨우 0.317(리그 7위) 장타율 0.531(리그 6위) 출루율 0.414(리그 5위)[9] 88득점(리그 3위) 150안타(리그 3위)[10] 24홈런(리그 6위) 89타점(리그 6위) 78볼넷(리그 3위)

이러한 부진(…)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했다. 4번 타자에 배치된 게 심적으로 부담이 됐다거나, 베이징 올림픽과 WBC 이후 유명해지면서 펄모씨과 얽히면서 멘탈이 망가진 것 아니냐는 카더라도 있었다. 김경문 감독은 이러한 김현수의 부진에 대해 "야구하면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부진이다. 계속 잘하기만 하면 얼마나 야구가 쉬워 보이겠는가." 라며 현재의 부진이 더 발전하기 위한 성장통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3할 20홈런에 90타점 가까이 기록해놓고 부진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쩌면 김현수 개인에게는 불행한 일일지도 몰랐다.[11]

식빵을 자주 입으로 굽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야갤에서 신나게 까였고, 또한 발전도 없는 새끼가 겉멋만 들었다며 까였다. 그러다보니 기레기라는 별명이 생겼다.

2010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10개의 홈런을 기록, 역대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런데 이 기록은 2012년 김태균이 14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깨졌다. 그러나 2014년, 다시 김현수가 14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보란 듯이 타이기록을 기록했다.

이 와중에 8월 5일 잠실 롯데와의 경기에서 사구를 맞자 성질을 내던 모습이 제대로 걸렸다. 네티즌들의 심한 비난에 직면해 있는 상태이다.#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팀이 뒤지던 10월 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3:2로 앞선 9회초 무사 1, 2루에서 희생번트를 대야 했을 정도로 준플레이오프에서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었다. 뒤에 나온 정수빈은 쓰리런…. 뭔가 바뀐 듯한 기분
김현수는 이날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고, 팀은 9회초에만 8점을 뽑으며 스코어 11:4로 승리했다. 점수 못 뽑았으면 역전패 당할 뻔..

김현수는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7타수 2안타 4볼넷 2득점, 타율 .118, 장타율 .176, 출루율 .286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부진해 선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4차전 7회 대타로 나와 안지만의 높은 공을 때려 2타점 적시타를 만든 것 정도가 인상적인 활약. 김현수는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9타수 1안타 2볼넷 2타점 1득점, 타율&장타율 .111, 출루율 .27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김현수는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26타수 3안타 6볼넷 2타점 3득점, 타율 .115, 장타율 .154, 출루율 .281를 기록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2.5 2011 시즌

6월까지의 김현수는 한마디로 삼못쓰=삼할도 못치는 쓰레기로 요약 가능했다.

작년 6월에 비해 모든 스탯이 하락하였고 두산의 타선 침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타율이 3할이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장타율로, 무려 1할 정도가 하락했다. 똑딱질도 안되고 2010시즌부터 선언해 왔던 거포 변신에도 완벽하게 실패한 모습이었다. 안타기계가 2땅 기계로 바꿔치기

2011시즌의 두산의 믿기지 않는 부진에 한몫을 했으며 , 2009시즌 올스타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차지한 적도 있는 그가 최형우, 박한이, 전준우에게 밀려서 올스타 출전도 불투명한 상태가 되면서 본인에게는 올해가 최악의 시즌이 되는 듯했다.

그리고 중심 타자였던 김현수까지 무너진 가운데, 김경문 감독은 사퇴를 선언하였다.

결국 감독 사퇴의 여파인지 다음 날인 6월 14일 경기에서 그간의 타격 부진을 만회하듯, 1회 말 이종욱오재원의 연속 출루로 무사 1, 3루인 상황에서 초구를 걷어 넘기는 홈런에 이은 연속 안타로 4타석 3타수 3안타 1홈런 1볼넷으로 경기 MVP 선정과 동시에 3할로 복귀하는 쾌거를 이뤘다. 프로 생활의 은인인 감독의 사퇴에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낀 듯 수훈선수 인터뷰 때 침울한 모습을 보였다.

8월 9일 SK 와이번스전에서 9회말 끝내기 안타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하필이면 심수창이 승리한 날이라서 완벽하게 묻혀버렸다. 두산팬들조차도 심수창 인터뷰를 보고 있다가 두산이 왜 이겼냐고 할 정도였다...

8월 23일까지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어느새 타율도 10위권(.308로 9위)에, 타점 71점으로 5위, 4위 박석민과는 2점차에, 공동 2위인 이범호, 최형우와 6점차, 8월 중순까지 12점을 올려 50점대 후반에서 여기까지 페이스를 올렸다. 물 건너 알버트 푸홀스도 그렇고 몰아치기에 재미들렸나 보다.

9월 들어 부진에 시달리며 2할 9푼대의 타율에 머물렀지만, 10월 2일과 3일 경기에서 안타 및 홈런을 몰아치며 귀신같이 3할에 복귀하였다.

2011시즌 타율 .301, 안타 143, 13홈런, 91타점, 출루율 .392, 장타율 .444, OPS .836을 기록했다. 타율은 겨우 3할을 맞췄지만, 홈런과 타율이 둘다 부쩍 떨어진데다 장타율마저 떨어진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2.6 2012 시즌

시즌 초 극심한 침체에 빠진 두산 타선을 거의 홀로 이끌며 기계의 귀환을 예고하나 싶었으나 3할도 못 치고 말았다.

4월은 좋았으나 5월 이후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는 가운데 남은 두산 타선의 마지막 자존심. 클린업 김동주최준석이 모두 부진한 가운데, 삼진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꼴찌경쟁 중인 두산 타선에서 활약하는 유일한 선수이다. 6월이 다 가는 시점에서 3할을 충분히 넘고 있는 상위권 타자이며, 팀내 타점 1위(31타점)이다.

7월 3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5:4로 앞서고 있던 9회말 2사 상황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나지완이 건 시비에 대응하며 언쟁이 있었다. 경기 종료 후 이종욱이 나지완을 다독이며 들어가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이 신일고 2년 선후배 사이인 탓에 나지완과 함께 논쟁거리를 만들게 되었다. 게다가 슬로모션으로 잡힌 영상에 입모양이 '뭐 x신아'로 보여 야구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나지완의 욕설에 대응한 '뭐가 x신이야'라는 설 등 논란의 여지가 많다.

다행히도 7월 17일 광주에서 다시 두산과 KIA가 만난 자리에서 서로가 당시 상황에 대해 이해를 하면서 좋게 화해. 두 사람간의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화해로 마음이 홀가분해졌는지 첫 타석에서 2점 홈런을 때려내는 등 공격면에서는 크게 활약했으나 9회말 2아웃에서 경기를 끝낼 뜬공을 놓치면서 1점을 내주어 두산팬들의 염통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이겼으니 다행이지

8월 13일 기준 타율 0.315로 리그 전체 4위, 타점은 57타점으로 6위를 기록하였다. 특히 득점권 타율이 0.447로 1위. 매년 문제로 지적된 좌투수 상대 타율도 나아지는 등 상당히 좋아진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예년에 비해 장타율이 0.425로 떨어진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8월 14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1회초 한현희를 상대로 솔로홈런을 쳤으나, 이날 경기가 우천취소가 되면서 오랜만에 김첨지의 면모를 과시했다(…).

침묵하는 팀 타선에서 손가락 부상과[12] 발목에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부상을 견디며 분투하였으나 결국은 3할 타율을 넘기지 못하고 정규 시즌을 마무리했다. 사실상 데뷔 시즌이었던 2007년을 제외하고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좌익수 겸 3번타자로 출장하여 17타수 7안타 2타점 2득점 2볼넷, 타율, 장타율 .412, 출루율 .474로 예전의 '포스트시즌의 김현수'와는 다르게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정작 팀은 1승 3패로 탈락하였다(…). 안습.[13]

2.7 2013 시즌

최악의 커리어 로우에서 벗어난 해. /2013년 문서 참조.

2.8 2014 시즌

김현수/2014년 문서로.

2.9 2015 시즌

두산 베어스 역사상 한 시즌 최다 타점 달성
KBO 리그 역대 6번째 100타점-100득점-100볼넷 달성
국제전에서도 멈추지 않은 타격 기계,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끌다!

김현수/2015년 문서로.

2.9.1 FA

2015시즌 전 우승을 한다면 두산에 잔류하겠다고 더불어 유희관의 옷을 벗기겠다고 협박 선언했다.

우승 공약으로 두산에 남겠다고 했지만 그건 시즌 전 이야기였고 우승할 줄 몰랐겠지 본인은 현재 신중한 상태이지만 MLB의 호평도 있고 김현수 MLB 관련기사 박병호 역시 해외 진출을 했기 때문에 미국행 티켓을 끊을 것이 유력해 보인다. 므찌나황청이 지못미

프리미어 12가 끝난 후 귀국 인터뷰에서 남는다면 다른 팀은 못갈 것 같다는 말을 해서 두산팬들을 안심시켰다. 팀을 떠나고 싶은게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는 내용이었기에 두산팬들은 안 가면 좋겠지만 가게 되면 잘하라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김현수가 두산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

김현수,MLB 사무국으로부터 신분조회 요청 12월 1일 MLB에서 정식으로 신분조회 요청이 들어왔다. 김현수 본인은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일단 관심이 있는 팀은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다.

그리고 12월 15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비트 라이터 댄 코널리의 트윗에 따르면 오리올스가 김현수에게 2년 6~8M의 오퍼를 날렸다고 한다. 같은날 미국 '볼티모어선'은 '볼티모어가 김현수와 협상을 벌이며 2년간 연평균 300만~400만 달러 수준을 제의했다'고 알렸다. 제의가 사실인 것으로 보여 오리올스와의 계약이 진행중으로 보인다. 그 외에 피츠버그 샌디에이고에서도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호크스, KIA 타이거즈NC 다이노스가 FA 거취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사도 떴다. #

그리고 12월 17일 오전 메디컬 테스트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7M 노옵션 계약에 합의했다는 트윗이 떴다!! 국내의 리코스포츠가 김현수의 에이전트 역할을 맡아 주도적으로 움직였는데, 김현수의 이해관계와 딱 맞는 좋은 계약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메디컬 테스트가 끝나고 주말이 지났음에도 정식입단 발표가 나지 않아 고질적인 뼛조각 부상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인터넷에 잠깐 돌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크리스 데이비스 계약과 연동되어 늦어지는 것이라면서 이는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예전부터 저질러온 짓거리라 한다.

그리고 한국 시각으로 12월 24일 새벽 공식 입단이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25번. KBO리그 최초로 FA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수이다. 배리 본즈의 번호라는 에이전시의 권유로 25번을 달았다고. [14]

2.10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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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식도 못 가는 연습생이었는데, 그런 것도 없는, 이게 진짜 신기해 나는, 전광판이...

ㅡ 볼티모어 입단식에서.## 그가 걸어온 길(연습생에서 메이저리그까지)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김현수 두산와도 자리없다[15]

우투상대 매우 뛰어난 타격[16], 평균 이하의 주루[17], 리그 하위급의 수비가[18][19] 공존 하는 시즌


김현수는 시범경기 45타석에서 0.178 / 0.224 / 0.178 OPS 0.402라는 기대 이하의 처참한 바닥 수준의 성적을 기록했고, 이를 빌미로 구단이 막 나가는 막장언플을 해서 하마터면 마이너로 가거나 한국에 돌아올 뻔 했다. 하지만 김현수가 결국 마이너 거부권을 행사하며 25인 로스터에 들어왔고, 현지 팬들의 야유를 받으며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자세한 것은 김현수/2016년 시범경기 논란. 개막도 하기 전부터 내홍을 겪은 김현수는 4월에 출장이 들쭉날쭉했고 경쟁자도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 점점 입지가 줄어들어 메이저리그 적응에 실패한 선수로 보였다. 그야말로 최악의 시즌 초반 분위기.
그러나 4, 5월 내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본인과 팀 스텝이 함께 특별훈련을 [20] 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회를 기다렸고 간간히 출전할 때마다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21], 마침내 5월 24일, 개막전부터 1위를 지키던 볼티모어가 2위로 떨어진걸 계기로 리카드 대신 주전 좌익수로 출전하게 되고 출전할때마다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 현지 팬과 언론,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볼티모어는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많은 팀 홈런수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그에 비해 득점이 시원치 않았다. 이유는 홈런 갯수는 많지만 출루율이 시원찮아 다득점 기회를 만들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선의 홈런이 다득점으로 이어지게 해줄 출루를 잘하는 선수가 필요했는데 김현수가 그에 적격임을 경기를 통해 증명해내면서 팀에선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선수가 된 것이다.

현재까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대부분의 한국 선수들은 즉시 좋은 성적을 보여주거나, 제대로 올라가보지도 못하고 마이너를 돌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김현수는 현명하게 계약의 정당한 권리인 마이너 거부권을 행사했고[22], 간간히 주어지는 기회를 잘 살려서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만약 마이너 거부권을 행사하고도 성적이 계속 리그 최하위권이었다면 먹튀논란과 불명예스런 방출로 이어졌을 테지만[23] 김현수는 반대로 적은 출장기회에도 자신의 실력을 묵묵히 증명해내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범경기 당시 21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는등, 부진한 모습을 보여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하자 "피안타율 1위의 노폭전드 투수", "오늘도 현수는 무안타"라는 뜻의 오현무라는 별명이 붙었으나, 이후 5월부터 맹활약 하기 시작하면서 오현무의 뜻이 "오늘도 현수는 무시무시"로 바뀌고 노폭전드는 윤석민이 다시 독차지하게 되었다.

시즌성적으로 타출장OPS .302 .382 .420 .802 wRC+ 119를 기록하였고 이는 MLB전체에서 300타석 이상 소화한 선수들 중에서 타격으로 66위에 해당하고, 좌익수 중에서는 8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또한, 0.382를 기록한 출루율은 MLB전체에서 18등, 좌익수 중에서 2위에 해당하는 성적으로 시즌전에 볼티모어가 김현수에게 요구한 '"출루율이 높은 좌익수"' 역할을 충분히 소화했다고 볼수있다. [24] 좌투수 상대로 약하지 않다는것을 증명한다면, 리그 최정상급 공격력을 가진 좌익수로 발돋움 할수있을듯.

다만 수비에서는 상당한 약점을 드러냈는데, 좌익수 600이닝 기준 에러부분을 제외한 모든 세부 스탯이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25]

자세한 내용은 김현수/2016년 문서에서 다룬다
  1. 김현수가 입단하자마자 최정이 성공적으로 프로에 안착했고 김현수 또한 정식선수로 성공해 사람들은 이 징크스가 종지부를 찍었다고 보았지만... 저주는 아직 진행중이다.
  2. 정근우가 고교 졸업 당시 지명받지 못했을 때도 추신수의 미국 진출에 따른 보복설이 거론된 바 있다. 그와 유사한 소문. 당시 부산고 출신으로는 김백만이 한화에 2차 1라운드로 뽑혔고, 이후 (대졸이긴 하지만) 2명이나 더 지명받았다.
  3. 손시헌, 이종욱, 김현수 같이 두산에서 신고선수 성공 사례가 많다 보니, 이후 서울 팜 중 두산에 입단하고 싶어한 고교 선수도 많았다고 한다. 허나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많이 가는 대신 베테랑들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4.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9회 대타로 나와 좌투수 이와세의 공을 툭 건드려 적시타로 연결하는 장면이 좋은 예
  5. 심지어, 김현수의 병살타 장면에 허구연 의 아앍! 따불푸레이더블플레이! 더블플레이!" 하는 샤우팅을 합성한 플짤마저 돌았다. 완벽한 싱크로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문제의 영상(...)
  6. ISO 0.152
  7. 잠실구장이 넓다는걸 생각하자
  8. 사실 김현수의 첫 1군 풀타임 시즌은 2007년으로 2008년이 소포모어인 셈이다. 하지만 이 시즌 수위타자를 먹었다.
  9. 2010시즌 출루율 5걸 중에서 유일하게 BB/K 비율이 1.2를 넘어간다.(BB/K 1.31)
  10. 이로써 3년 연속으로 150안타 이상을 쳤다. 이는 1999~2001년의 이병규, 2001~2003년의 장성호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11. 5월 2할대 후반 타율을 기록할 때는 확실히 부진하다 할 만하기는 했다. 그러나 9월에 맹타를 치며 준수한 평균 성적을 기록.
  12. 당시 손가락 통증 탓에 네 손가락만으로 타격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13. 미디어데이에서는 3전 전승에 세 경기 모두 완봉승(…)이 될거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게 다 홍삼작가커피고자 때문이다
  14. 참고로 이 당시 25번을 달고 활약했던 거포로는 배리 본즈뿐만 아니라 마크 맥과이어, 라파엘 팔메이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셋 다... 다만 이 번호를 단 선수 중에는 짐 토미마크 테세이라앤드류 존스도 있었던 만큼 완전히 약물로 더럽혀진 번호는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 번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영구 결번이기도 하다.
  15. 이미 박건우라는 최강 스타가 자리잡고 있는데다가 좌익은 김재환이 있기 때문에 외야에 자리 없는데다가 김현수가 다시 두산에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16. 우투 상대 .321 .393 .446 wRC+ 129, 좌투 상대.000 .217 .000 wRC+ -19
  17. 팬그래프 베이스러닝 수치 -0.5
  18. 좌익수 수비를 600이닝 이상 소화한 19명 중에서 에러수치를 제외한 모든 수비수치들이 최하위권이다. 종합하면 수비 범위 안에 오는 공은 안정적으로 처리하지만 그 범위가 매우 좁고 어깨도 안 좋아 주자의 추가진루를 막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19. 메이저리그에서 수비로 가중치를 받을려면 쉬운타구를 100%로 처리하는 것 보다 어려운 타구를 처리하는 것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난이도가 높은 타구를 처리할때 높은 점수가 주어진다.
  20. 같이 특별훈련을 한 스텝은 오리올스의 타격 코치인 스캇 쿨바로, 98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용병타자로 활동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21. 이때 조이 리카드 선수는 점점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22. 사실 본인은 마이너에 내려가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에이전트인 이예랑 대표가 하루 꼬박 설득해서 거부권 행사를 했다고 한다.
  23. 어쩌면 노폭전드로 인해 생겼던 볼티모어 팬들의 한국 선수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완전히 고착화될 수도 있었다.
  24. 제한된 출전기회에서 뛰어난 타격으로 팀에 보탬이 되었다는것만 알아줬으면 한다.
  25. 수비 스탯은 2~3년치 표본이 쌓여야 신뢰성이 생긴다지만 김현수의 경우는 에러를 제외한 모든 세부 스탯이 낮게 나오는 상황이라서 표본이 쌓여도 수비 스탯이 크게 좋아질 확률은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