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
2013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
Mick Foley
파일:S9znKkc.png | |||
맨카인드 | 캑터스 잭[1] | 듀드 러브 | 믹 폴리 |
본명 | Michael Francis Foley Sr.[2] |
별칭 | The Hardcore Legend |
생년월일 | 1965. 6. 7 |
신장 | 188cm (6'2") |
체중 | 130kg (287 lbs) |
출생지 | 미국 인디애나 블루밍턴 |
테마곡 | Wreck[3] Whole Lotta Groove[4] Dude Love[5] Schizophrenic[6] Fued [7] |
피니쉬 무브[8] | 맨디블 클러 더블암 DDT 파일 드라이버[9] |
前 WWE, TNA, 前 GFW 소속 프로레슬러, 현 WWE RAW 공동 제너럴 매니저.
"사람들이 기억하는건 순간들이야."- CM 펑크와의 대립 세그먼트 중에서. 그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한마디라 볼 수 있다.
3 Face 1 Legend
무서웠지, 완전 겁이 났다고근데 왜 그랬어요?
"왜냐면 난 믹 폴리니까, 그게 내가 할 일이었지"
- 2016년 3월 14일 딘 앰브로스의 RAW 백스테이지에서 출연해 브록 레스너와 싸우려는 딘 앰브로스를 말리려다 딘 앰브로스의 '언더테이커와의 헬 인 어 셀에서 천장에서 뛰어내릴때 무섭지 않았냐'라는 질문에 한 대답 [10][11]
하드코어의 전설. 추락의 아이콘[12] 다양한 기믹을 소화해내었으며 인디나 ECW등 PPV형 레슬링에서나 볼 수 있던 하드코어 레슬링을 애티튜드 시대 공중파 방송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다. 단순히 삼신기(?) 쓰는 수준을 벗어나서 압정을 뿌리고 자기가 거기에 박힌다거나 와이어 두른 야구 방망이(barbed wire baseball bat. 바비(Barbie)란 애칭으로 부른다.)를 휘두르는 등 광기에 가까운 수준의 기믹을 지녔다. 주요 기믹으로는 맨카인드, 듀드 러브, 캑터스 잭이 있다. 참고로 지금은 인터콘티넨날 챔피언쉽과 통합되어 사라진 WWE 하드코어 챔피언의 초대챔피언이자 영구수여자이기도 하다. 또한 월요일 밤의 전쟁에서 WWE가 WCW와의 시청률 전쟁에서 역전을 이룬 순간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13].
그를 상징하는 기술은 더러운 양말 친구인 미스터 사코(Mr.Socko)를 손에 끼우고 상대 입에 쑤셔 넣는 맨디블 클러. 엄연히 서브미션 기술이다[14] 미스터 사코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믹 폴리의 경기복에 기술에 사용되는 손가락 부분만을 가죽으로 감싼 장갑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 손을 그냥 상대의 입 안에 집어넣어 시전했다.(...)
2 데뷔 전
믹 폴리는 인디애나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가족이 뉴욕 롱아일랜드로 이사를 갔다. 부친은 고등학교에서 스포츠 클럽을 관리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믹 폴리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다양한 단체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가장 흥미를 가졌던 것은 아마추어 레슬링이었다. 고교시절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기도 하며 훗날의 프로 레슬러로서 기본기를 다져갔다. 놀랍게도 어린시절 상당히 수줍음을 많이 탔다고 한다. 그렇지만 축제나 행사 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할 때면 똘끼를 발휘하며 여장으로 하이스쿨 퀸에 등극하기도 했다고. 그가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전설적인 경기를 직접 관람하게 되면서였다. 지미 스누카가 피칠갑을 하고 케이지 메치에서 탑로프 슈퍼플라이 스플래시를 하는 모습을 경기장에서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 레슬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 집 안마당에서 레슬링 연습을 하고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홈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 홈비디오에는 훗날 WWE에서 사용할 히피 스타일의 '듀드 러브' 기믹이 등장하는데, 당시에도 똘끼는 어디가지 않아 집 지붕에서 매트 위로 뛰어내리는 대담무쌍한 모습을 보이고 "보고 있나, 빈스 맥맨?"을 외치기도 한다. 그 후 정식으로 도미닉크 데누치라는 레슬러에게 훈련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레슬링에 뛰어들게 된다. 멀리 피츠버그까지 가서 레슬링 수업을 받는 열정을 보였다. 그러다 WWE에 자버로서 한 경기를 치루는 제안을 받게 된다.
3 현역 시절
1983년 당시 잭 폴리[15]란 링네임으로 WWF에서 자버로 출연했다. 굉장히 평범한 경기였는데 폴리는 클로스라인 한 방에도 엄청난 고통을 느꼈고 턱이 아파 며칠 동안 식사조차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더욱 커져만 갔고 '캑터스 잭'이라는 캐릭터로 독립단체에서 활동하게 된다. 인디 시절부터 캐릭터를 구축하기 시작했는데 카메라 앞에서 자해를 하고 스턴트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오랜 동료이자 전설적인 하드코어 레슬러 테리 펑크는 이 시절 처음 폴리를 보고 '돌아이 같지만 왠지 멋있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후 일본 등에서 해외 생활을 하며 경험을 쌓던 폴리는 1991년 WCW에 데뷔한다. 폴리가 WWE에서 메인이벤터가 되기 전까지 듣던 말은 '슈퍼스타가 될 재목은 아니다'였는데 이는 WCW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스팅의 상대가 되는 기회를 얻었는데 크고 거친 레슬러에게 당하다 주인공 스팅이 승리하는 스토리의 조연이었다. 하지만 맨바닥에 몸을 날려 엘보우 드롭을 날리는 등 몸을 아끼지 않는 폴리의 모습에 관중들은 처음으로 환호를 보내게 된다. WCW 시절 베이더와 대립하면서 독일에서 경기를 갖게 되는데 그 유명한 로프에 귀가 절단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1994년에 ECW를 거치며 더 거친 하드코어 매치로 명성을 쌓아가게 된다. 당시 활약으로 하드코어의 전설로 꼽히게 되었는데, 영원한 동료 테리 펑크와 미국, 일본 등지에서 바브 와이어 매치 등 잔혹하고 과격한 매치들을 소화해냈다. 한편으론 마이크웍도 능숙했는데, 스티브 오스틴은 ECW에서 믹 폴리를 보면서 마이크웍과 프로모를 배웠다고. 이 무렵 폴리는 WWE로부터 계약 제의를 받게 된다.
1996년 WWF로 이적했다.
WWF로 이적하면서 음울하고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맨카인드란 새로운 기믹으로 데뷔했다.[16][17] 1996년 3월 레슬매니아 12에서 언더테이커를 공격하면서 데뷔했다. 언더테이커와 대립[18]하기도 하고 숀 마이클스와 PPV: Mind Game에서 경기를 가지는데 이 경기는 폴리가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경기라고 한다. 이후 짐 로스의 추천으로 듀드 러브란 히피 스타일의 기믹으로 바꾸게 된다.[19] 여담으로 믹 폴리 자신의 기믹 중 제일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였다고. 그러더니 아예 캑터스 잭 기믹까지 들고나와 경기를 치루기도 한다. 이 시기 짐 로스와 인터뷰를 하는 세그먼트에서 점점 더 정신 분열의 모습을 보이던 폴리는 당시 뉴 하트 파운데이션을 상대로 혼자 싸우던 오스틴의 친구가 되고 싶어했다. 스티브 오스틴 vs. 오웬하트, 브리티쉬 불독의 핸디캡 매치에서 오스틴의 태그팀 파트너가 되고 싶어 Austin 3:16 티셔츠를 입고 어필하지만 역시나 돌아온 건 스톤콜드 스터너였다. 오스틴 曰 "너 같은 괴물은 필요없어". 이에 다음 주 Raw 오스틴 vs 오웬 하트, 브리티쉬 불독의 경기에서 듀드러브의 모습으로 새로운 등장음악과 함께 나타나 맨카인드같은 괴물 말고 듀드 러브와 파트너가 되라고 한다. 듀드 러브가 등장할 때 오스틴의 표정이 아주 인상적이다. 오스틴은 듀드 러브를 파트너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폴리는 자신의 WWE 첫 타이틀이었던 태크 팀 타이틀을 따낸다.
안타깝게도 그 해 섬머슬램에서 오웬 하트의 파일드라이버에 오스틴의 목이 부러지게 되어 경기를 치를 수 없게 되자 태그 팀 파트너인 폴리 역시 태그 팀 타이틀을 반납해야 했다. 이 후 1998년 로얄럼블에서는 캑터스 잭, 맨카인드, 듀드 러브까지 세가지 기믹으로 로얄럼블에 출전하기도 했다. 캑터스 잭으로서 레슬매니아 14에서 체인소 찰리[20]와 팀을 이루어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는데, 이 후 빈스 맥맨의 똘마니가 되어 듀드 러브로서 2연속 PPV에서 스티브 오스틴의 상대가 되지만 두 번 다 패배하고 만다. 특별 심판까지 맡으며 듀드 러브의 승리를 지원했던 빈스는 이에 분노해 링에서 폴리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종용하고 듀드 러브는 이를 거부하다 해고된다. 하지만 바로 맨카인드로 복귀했다(…). WWF 데뷔 때 대립했던 언더테이커를 공격하면서 다시 대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8년 6월 28일 킹 오브 더 링에서 헬 인 어 셀 매치가 열렸다. (주의: 이 경기 영상 및 설명은 사람에 따라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당시 경기 영상. Pro Wrestling Illustrated에서 선정한 1998년 이 해의 경기에 뽑혔다. 그 임팩트는 자사 역사상 역대급 경기에도 손꼽힐 정도. 더 무서운건 이 경기 이후 열린 스톤 콜드와 케인의 경기에 난입했다. 또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Don't try this at home에 단골로 등장하는 영예를 누린다.
이 경기에서 두 번이나 철창 위쪽에서 떨어지는 미친 짓을 하면서,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얻었다. 하지만 이빨이 2개나 부러지고[21], 어깨 탈골에, 내장기관까지 손상(콩팥 하나가 파열 되었다.)당하는 등, 그에 대한 대가도 뼈저렸다. 거기에 믹 폴리의 아내는 울음을 터뜨리는 등[22] 경기 내내 마음고생이 심해 이 때문에 은퇴할까 고민도 했다고 하고, 빈스 맥마흔은 경기 후 믹 폴리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다신 이런 짓 하지 말게."라고 얘기했다고. 믹 폴리 본인은 추락의 충격 때문에 경기 과정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해 자서전을 쓸 때도 이 경기에 대해서는 경기 영상을 보면서 썼다고 한다. 하여간 두 번의 추락과 뜯어말리는(관용구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의료진을 뿌리치면서 경기를 마쳤던 그의 투혼으로, 기존의 음울했던 맨카인드란 캐릭터는 잃게 되었지만 팬들의 인기를 얻으며 메인이벤터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헬 인 어 셀 매치 후 맨카인드가 인기를 끌면서, 선역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맨카인드의 기믹도 개그 캐릭터로 바뀌었다. 이 때 맨카인드의 상징 중 하나인 미스터 사코가 등장했고, 하드코어 챔피언십 첫 챔피언이 된 것도 이 즈음. 1999년 1월 4일 RAW에서는 당시 WWF 챔피언이었던 더 락에게 도전해서 DX와 스톤 콜드의 도움을 받으며 WWF 입단후 처음으로 WWF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23] 1999년 8월에는 더 락과 태그팀을 맺어 락 앤 삭 커넥션으로 활동했다. 더 락 특유의 말빨과 맨카인드의 미스터 사코를 동반한 개그씬으로 인기를 끌며, 1999년 9월 27일 둘의 세그먼트는 8.4%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RAW 사상 역대 최고 시청률.
그리고 1999년 연말 각본상으로 실권을 잡은 트리플 H에 의해 더 락과 일자리를 내건 경기에서 패해 해고되었으나 2000년 초반 트리플 H와 대립하면서 트리플 H를 공격하며 "넌 아직도 내가 맨카인드로 보이니? 그래! 맞아! 캑터스 잭이다!!!"라는 세그먼트로 캑터스 잭 기믹으로 복귀하지만[24][25] 2000년 2월 27일 노웨이아웃에서 트리플 H와의 헬 인 어 셀 경기에서 '폴리가 패배하면 은퇴'라는 조건을 내걸고 싸워서 패배했지만, 은퇴를 번복해서 레슬매니아 2000에 출전했고 그 경기를 끝으로 은퇴했다. 믹 폴리가 밝힌 후일담에 따르면 빈스 맥맨은 극단적인 하드코어 경기 때문에 믹 폴리의 몸이 너무나 망가진 것을 알고 그를 은퇴시키려고 결정을 내렸지만, '폴리에게 레슬매니아 순간을 주지 못한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판단, 그렇게 해서 믹 폴리의 은퇴는 2000년도 노웨이아웃에서 레슬매니아로 연기된 것이라고 한다.
4 은퇴 후
은퇴 선언 후에는 본명인 믹 폴리로 커미셔너로 활동하다[26] 2000년 12월 빈스 맥마흔에게 각본상으로 해고되었다. 그러다 레슬매니아 17에서 빈스 맥마흔과 쉐인 맥마흔 경기의 스페셜 레프리로 등장하면서 복귀,[27] 이후로는 WWF 관련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다 2001년 10월 인베이전 각본이 끝날 즈음해서 커미셔너로 복귀했다. 그러나 복귀 후 WWF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11월 빈스 맥마흔의 요청으로 WWF를 떠났다.
2003년 6월 트리플 H와 케빈 내쉬의 헬 인 어 셀 경기의 심판으로 복귀했으나, 랜디 오튼과 릭 플레어에게 공격당했다. 12월에는 스티브 오스틴 대신 GM을 맡기도 하지만 랜디 오튼과 맞서기 두렵다는 이유로 WWE를 떠났다. 실은 이 기간 동안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글을 썼다고. 로얄럼블 2004에서 경기 당일 21번으로 등장할 예정이었던 테스트를 눕히고 대신 출전하여 랜디 오턴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면서 복귀. 더 락과 락 앤 삭 커낵션으로 다시 뭉쳐 에볼루션과 상대했다. 레슬매니아 20에서 랜디 오튼에게 RKO를 맞고 패하면서, 랜디 오튼과 대립이 진행되었다. 백래쉬에서 하드코어 매치에서 패하면서 대립이 끝났다. 하지만 랜디 오튼도 등에 압정이 박히는 등 꽤나 고생했다.
이후로는 종종 레프리나 매니저, 스페셜 게스트 등으로 WWE 뿐만 아니라 ROH 등의 미국 독립단체를 포함해 일본의 HUSTLE 등에 출연했다. 2008년부터 스맥다운의 해설자로 활동하다 빈스 회장의 갈굼에 빡쳐(...)[28] 2008년 9월부터 2011년 6월까지는 TNA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TNA와 계약이 끝난 후엔 WWE와 레전드 계약을 체결한 후 종종 모습을 보인다. 사실 '은퇴 후'라는 제목을 쓰긴 했지만 이 계통 레슬러들 치고 은퇴하고 정말 쉬는 레슬러들은 거의 찾기 힘들다. 이 사람보다 20년은 먼저 하드코어, 데스매치계에 몸담았던 1941년생 압둘라 더 부쳐도 70세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2012년 초까지 인디계를 돌면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한창 나이인 믹 폴리도 이런 식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큰 편.
WWE 서바이버 시리즈 (2012)에는 팀을 만들어 CM 펑크의 팀과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펑크가 챔피언십을 가져야 하게 되면서 상대팀이 돌프 지글러 팀으로 변경되었다.[29] 폴리의 팀은 코피 킹스턴, 케인, 대니얼 브라이언, 랜디 오턴, 마지막에 합류한 미즈로 네임밸류는 돌프의 팀보다 앞섰지만 서로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막판 돌프의 역전 슈퍼킥으로 랜디가 탈락하면서 패배했다. 그 대신 리카르도 로드리게스에게 맨디블 클러의 맛을 보여주기는 했다.
그리고 2013년 1월, 올 해 첫 명예의 전당을 뽑는 자리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연설 중 "난 선수생활 하면서 한번도 크리스 제리코를 꺾어본 적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제리코가 흔쾌히 무대 위로 올라와 누웠고 믹 폴리가 그 위로 엘보우 드랍, CM 펑크와 관중들이 다함께 카운트를 해서 이겼다(!!). 영상
2014년에는 WWE와의 레전드 계약이 만료된 후 재계약을 거부하고 제프 제럿의 단체인 GFW에 임원으로 합류한다.
2014년 12월 1일 WWE 샵의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산타 복장을 하고 딸 노엘 폴리와 함께 등장했다. 노엘은 이전부터 트위터로 감상을 자주 올려 블리처 리포트에 올라왔는데 WWE에 성인으로 등장한건 이번이 처음.[30][31]
2016년 3월 14일 RAW 백스테이지에서 마주친 딘 앰브로스에게 '횃불을 넘겨주는 것'이라며 선물상자를 건넸는데 그 안엔 바비(가시 철선 야구방망이)가 들어있었다. 이는 현세대의 하드코어 레슬러 딘 앰브로스를 자신의 후계자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적인 세그먼트다. 그리고 레슬매니아 32에 깜짝 등장. 미스터 레슬매니아, 맥주를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뉴 데이를 꺾고 마이크로 건방을 떨던 리그 오브 네이션스를 혼내 주고 뉴 데이와 함께 춤을 추어 관중들을 즐겁게 했다.
2016년 7월 18일 WWE RAW 커미셔너인 스테파니 맥맨에 의해 RAW의 단장으로 임명된다. 다만, 스맥다운 단장 대니얼 브라이언이 스맥다운 커미셔너 셰인 맥맨과 사이가 괜찮은 상황인 반면 믹 폴리와 스테파니는 각본상 썩 좋은 사이는 아니라 본격적인 대립 각본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5 이모저모
- 헬 인 어 셀 매치에 4번이나 출장했으나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안습.
- 하디 보이즈 자서전에 의하면 하디 보이즈가 출혈 장면을 넣으려고 폴리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는데 폴리는 그 자리에서 자기 이마를 직접 째면서 설명을 해줬다고 한다.
조언만 구하러 갔는데 피 본 하디 보이즈
- 글 솜씨가 좋아 여러 자서전에, 동화책도 썼다. 특히 그의 자서전은 3권 연속 뉴욕 베스트셀러에도 들었을 정도.
- 릭 플레어와 실제로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믹 폴리가 자서전에서 WCW 시절의 릭 플레어는 잘못된 부킹을 했다고 비판했고, 릭 플레어는 '믹 폴리는 레슬러가 아닌 스턴트 맨에 불과하다'며 기량적인 측면에서 강력하게 비판했다.[32] 그 이후로 서로 차가운 관계를 유지하다가 2006년에 화해. 그 이후로는 함께 각본을 수행하는 등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 몬트리올 스크류잡 당시 크게 분노해서 일하러 오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하루 지나서 돌아오고 말았다. 자서전에 따르면 정말 심하게 분노하고 WWF에 대한 환멸감이 생겨서 선수에게 이런 짓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고. 그래서 그에게 말하러 오던 빈스 루소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수 있냐고 악담을 했는데, 실제로는 이에 대해 전혀 몰랐던 루소가 크게 상심했다고. 빈스 맥맨에게 자신은 쇼에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메세지를 남겼고 다음날 쇼에도 불참했는데, 그 쇼에서 브렛 하트를 조롱하는 세그먼트가 나오고 자신을 따라서 WWF를 떠날 것이라고 얘기했던 다른 선수들이 등장했고[33] 빈스 맥맨이 제발 회사로 복귀해 달라고 애원하고(강경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유일한 선수였다고 한다.) 믹 폴리 본인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돌아왔다. 믹 폴리가 복귀를 결정하자 동료 레슬러들은 그를 환영하고 WWF 측에서는 그가 빠졌던 쇼의 출연료를 평소의 두배로 정산해 주었다고 한다. 브렛 하트 본인도 폴리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편들어준 것에 감사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 아이들을 위한 기부활동이나 군부대나 군병원 위문 방문 등, 자선사업에도 적극적이다. 과연 대인배.
- 앞니도 없지만 귀 한쪽도 없다(...). 그 이유는 즉슨 베이더와의 경기도중 로프에 귀가 끼었고[34] 그대로 2/3가 잘려버렸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경기를 "강행"했다고...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참고로 첫번째 자서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이거다. 그리고 병원에서 간호사가 "레슬링은 다 가짜 아니었어요?" 하고 놀랐다는 장면도 나온다.
- 참고로 온 몸에 꿰멘 자국이 325바늘 이상이라고 한다. 그의 전성기 시절이 어땠는지 잘 알수 있는 대목이다.
- 1998 로얄럼블에서는 캑터스 잭, 듀드 러브, 맨카인드로 총 세번연속 출전했다. 근데 우승을 못하고 3번 다 탈락.
- 2013년 12월, 국제 과일 케이크 먹기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경기 후 냅킨이나 주머니에 케이크 일부를 숨긴것이 발각(...)되는 바람에 실격처리되었다. 그러나 최고의 의상상으로 금색 트로피를 수여받았다고. [1]
외모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그렇고 그냥 후덕한 아저씨.
- 아바타 아앙의 전설에서 목소리 출현을 하기도 했다.
- 2014년 로얄럼블에서 대니얼 브라이언이 로얄럼블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TV를 부숴버리겠다고 했었는데 끝내 브라이언이 로얄럼블에서 나오지 못하자 손수 TV를 박살내는 걸 영상으로 찍어서 인증하였다(...).# 역시 화끈하시다. 그리고 2015년 로얄럼블에도 기어코 브라이언의 우승을 예상한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으나 현실은...WWE 로얄럼블 (2015) 참조.
- WWE 레슬러들을 소재로 한 만화책 스토리를 집필하기도 했다. 제목은 WWE Superstars로 첫 스토리 아크 제목은 머니 인 더 뱅크이며...범죄 느와르물이다. 레슬링과 느와르적 요소를 적절히 버무린 센스가 일품인데, 머니 인 더 뱅크는 비자금이 가득 들은 돈가방이며
단어 그대로의 의미가 되었다, 존 시나의 You can't see me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존 시나가 대중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못하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 있는 처지"를 한탄하는 독백에 나오며, 후반부에 대니얼 브라이언과 랜디 오턴이 머니 인 더 뱅크를 두고 추격전을 벌일땐 대니얼이 사다리를 가지고 천장의 환풍구로 도망가는 장면이 있다. CM 펑크의 은퇴 이전이라 펑크가 혁명을 꿈꾸는 반항아 검사로 나온다. 대니얼의 YES! 챈트는 악당들을 관광보내며 대니얼이나 그 동료들이 외치는 구호로 후반부엔 악당들을 시민들이 엎어버리면서 구호를 외친다. 트리플 H와 스테파니, 빈스는 도시를 지배하는 사악한 기업가로 나오며 쉴드는 도시를 과거의 평화로운 시절로 되돌리기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격한 경찰 특공대로 등장한다. 크리스찬의 경우는 별명이 캡틴 카리스마이니만큼 경찰 고위직으로 등장. WWE의 소재를 느와르물에 절묘하게 융합한 믹 폴리의 솜씨가 돋보인다.
- 만화 원피스의 등장인물 스팬담 장관이 맨카인드의 가면을 쓰고 있다. 이에 믹 폴리가 트위터에다 기믹 표절이 아니냐고 언급했는데 팔로워들이 오다 작가가 프로레슬링 팬이고 믹 폴리 이외에도 다른 레슬러들의 오마쥬 캐릭터들이 나온다고 언급해주자 기분 좋게 넘어간듯 하다.
- 다른 레슬러들이 자식들에게 자신이 실전을 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동심파괴로 아이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있는데, 믹 폴리는 좀 다른 방향으로 동심파괴를 했다. 폴리는 자식들에게 자신은 링위에 올라가서 다른 선수들과 즐겁게 노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헬 인 어 셀에서 두번이나 낙하한뒤 아이들은 아버지는 노는게 아니라 다칠수도 있는 위험한 짓을 한다고 깨달아서 동심파괴를 당했다.
- 현역 선수중 데미안 샌도우 선수를 좋아하는것 같다. 유튜브에서도 미즈도우 푸쉬좀! 이라 하거나 트위터로 샌도우 감사제를 하는등 말이다.
- 딸인 노엘 폴리는 남자친구[35]와 '링사이드'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종종 선수들을 인터뷰하거나 WWE에 특별출연하기도 한다. 180cm가 넘는 엄청난 장신이며 CM 펑크의 팬인듯. 여담이지만 믹 폴리와 그의 아내는 노엘이 레즈비언이었으면 했다고
- 장남인 듀이 폴리 역시 WWE에 보조 작가로 들어가는 등, 레슬링 선수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레슬링과 연을 맺어가고 있다.
- 2016년 8월 Nxt Takeover Brooklyn ii에서 딸인 노엘 폴리와 함께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의 옆에는 은행장님과 베키 린치가 관람하고 있었으며 이들도 포착됬다. 참고로 릭 플레어 또한 아내와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나 그의 딸 샬럿은 이들과 떨어져 혼자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 ↑ 이 푸른색 복장보다는 아래 유튜브 영상 섬네일에 나온 검은색 복장이 유명하고 자주 입었다.
- ↑ 믹 폴리의 차남(3남 1녀 중 셋 째) 역시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쓰면서 Sr.(시니어)가 붙게 되었다.
- ↑ 믹 폴리 기믹. 정확히는 'Fued' 테마를 사용하던 맨카인드가 생애 첫 WWE 챔피언을 차지한 다음 RAW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 ↑ 캑터스 잭 기믹
- ↑ 듀드 러브 기믹
- ↑ 맨카인드 기믹
- ↑ 맨카인드 기믹
- ↑ 기믹에 따라서 피니쉬가 변하였는데 맨카인드 때는 맨디블 클러, 듀드 러브 때는 더블암 DDT, 캑터스 잭 때는 파일 드라이버를 피니쉬로 사용했다.
- ↑ 일반적인 파일드라이버와는 다르게 바지를 잡고 DDT처럼 찍어버린다. 파일드라이버의 원형이었지만 현재는 풀링 파일드라이버로 개명되었다.
- ↑ 그리고 미친놈은 "난 딘 앰브로스입니다, 그래서 하는겁니다"라는 대사로 패러디 했다.
- ↑ 그리고 믹 폴리는 딘 앰브로스에게
딘이 쥐고있던 크로우바를 던져버리곤자신의 애마(?)인 바비를 선물했다.믹 폴리가 나간뒤 악당처럼 웃는 앰브로스는 덤(...) - ↑ 진짜 추락이다.
- ↑ WCW로부터 0.6의 시청율을 뻈어온 믹 폴리의 챔피언 등극 순간과 역대 RAW 최고 시청율을 선보인 세그먼트의 주인공이다.
스톤콜드와 더 락으로 콤보 먹이고 믹 폴리로 결정타, 거기에 내쉬,홀의 스포일링 자폭쇼는 덤 - ↑ 정확히 이야기하면 턱 안쪽의 뼈가 없는 말랑말랑한 부분을 3, 4번째 손가락으로는 입 안 혀 아랫쪽에서, 엄지 손가락으로는 입 밖에서 잡고 세 손가락이 맞닿는 기분으로 꽉 움켜쥐는 기술이다. 실제로 해보면(?) 굉장히 고통스럽기는 하다...
- ↑ 여담으로 믹 폴리 아버지 이름이 잭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하는 레슬링(...) - ↑ 이 기믹의 모티브는 하수구 괴물이다. 흠좀무.
- ↑ 계약 당시 기믹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 했는데 빈스 맥마흔이 감탄했다고.
- ↑ 정말로 치열하다 싶을정도 대립을 했다. 섬머슬램 96에서는 보일러룸 매치라 해서 보일러룸에서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 경기에서 언더테이커는 평소의 그의 기믹에 맞지 않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결국 이 경기는 폴 베어러가 배신을 하는 바람에 패배. 그후 이번에는 생매장 매치를 통해 다시 경기를 했고 이번에는 언더테이커가 승리했지만 경기 후 다른 악역 레슬러들의 난입으로 언더테이커가 역으로 생매장을 당하고 말았다.
- ↑ 사실 듀드 러브는 믹 폴리 자신이 어린 시절 고안했던 기믹이다. 수십년이 지나서야 WWF에서 첫 선을 보인 것.
- ↑ 테리 펑크. 일본에서는 형인 도리 펑크 Jr과의 태그팀으로도 유명했고 근육맨의 테리맨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90년대 초 한번 은퇴한 뒤 복귀하여 일본의 데스 매치 단체 및 ECW에서도 활동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고 WWE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레전드.
- ↑ 철창에서 두 번째로 떨어졌을 때, 하필이면 철제의자가 함께 떨어져서 그게 입을 강타했기 때문에 이빨이 부러진거다...경기 중간에 믹 폴리가 철제 계단을 들다 놓치고 얼어가는 모습에서 코에 뭔가 하얀 게 튀어나온 게 있는데 그게 부러진 앞니 중 하나다...그것만 아니었으면 우리는 믹 폴리의 앞니가 성한 미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 때문에 현재까지는 믹 폴리는 앞니 두 개가 없다.
비록 많은 돈을 벌었겠지만 임플란트를 받기에는 미국 의료보험이 워낙 ㅈ구리니...물론 레슬링 레전드급의 유명인사인 믹 폴리가 돈이 없어서 임플란트 못받는다고 생각하면 골룸하다. 2016년인 현재에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명 경기에서 얻은 '영광의 상처'나 다름없으니 본인도 나름 훈장으로 여기는 것 같고, 팬들에게도 앞니가 없는 것은 믹 폴리의 상징처럼 느껴지게 되었으며 그의 격렬한 하드코어 이미지를 강화시켜 준다. 가지런하게 임플란트한 믹폴리라니, 격렬한 하드코어 이미지에 좀 안맞지 않은가? 앞니가 없는게 더욱 거칠게 보이며 하드코어 캐릭터를 살려주는 면이 있다. - ↑ 믹 폴리의 가족들에겐 트라우마로 첫번째 자서전에선 그때까지도 집에서 헬 인 어 셀에 대한 얘기를 전혀 안했다고 한다.
- ↑ 이 장면은 WWF와 WCW의 흥망을 결정한 결정적인 장면중 하나로 꼽히는데, 그 이유는 당일 WCW 나이트로에서는 믹 폴리가 챔피언에 오르는 것을 방송으로 스포일러를 날려버렸으며(당시 WCW는 생중계, WWF는 녹화방송이라 가능한 일) 거기에다 케빈 내쉬와 헐크 호건의 막장 타이틀 매치, 일명 Finger Poke of Doom이라는 병크를 터뜨려버렸기 때문. 당시 WCW에서는 "믹 폴리 따위가 챔피언이 되었대요ㅋㅋㅋ"라는 의도로 스포일러를 뿌린 것이지만 정작 사람들은 "헐 그게 진짜야? 대박ㄷㄷㄷ" 하며 그 장면을 확인하기 위해 60만명이(시청률 0.6%) RAW로 채널을 돌려버렸다. 자세한건 애티튜드 시대 참고.
- ↑ 여담으로 로얄럼블에서 트리플 H와 가진 경기는 그 해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2위를 차지하였다.
- ↑ 참고로 캑터스 잭 기믹으로 WWF에서 첫경기를 가진 상대가 바로 트리플 H. 그때는 거의 일방적으로 사위를 발라버리고 승리했다.
- ↑ 커미셔너로 활동하던 당시 섬머슬램 2000에서 그 유명한 더들리 보이즈, 하디 보이즈, E & C의 최초의 TLC 매치가 열렸다.
- ↑ 그런데 이것도 뒷 이야기가 있는데 당초 레슬매니아 17에서 빈스와 붙는 상대는 믹 폴리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믹 폴리 본인이 거부해서 쉐인 맥마흔이 빈스와 붙었단다.
하지만 만일 빈스 회장님이 믹 폴리와 붙었다간 아마 몇년간 병원에만 있어야 했을지도... - ↑ 사실 빈스회장이 촬영 도중에 해설자들이 쓰고 있는 헤드폰으로 이래라 저래라 갈구는게 꽤 심했다고 전해진다.
- ↑ 라이백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변경되었다.
- ↑ 어렸을 당시 믹 폴리가 더 락에게 챔피언쉽을 뺏긴 날 경기를 보고 운 모습이 포착된 적이 있다.
- ↑ 여담으로, 이 장면은 WWF(당시)의 백스테이지를 다룬 다큐멘터리에도 들어있는데, 경기 후 백스테이지로 가면서 우는 노엘을 달레느라 진땀을 빼는 믹 폴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아빠가 눈앞에서 얻어맞고 피 철철 흘리는데 안 울만한 딸아이가 어디 있겠냐만은... 어쨌든 붕대를 감으면서도 딸 달래랴 좋은 경기였다고 인사하러 오는 동료들
과 지나가던 회장님까지상대하랴 바쁜 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 아주 빈말은 아니라서 하드코어 매치가 아닐경우 경기의 재미가 좀 떨어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브렛 하트와 크리스 제리코는 믹 폴리가 단순한 하드코어 레슬러가 아니라 순수한 레슬링 실력도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스티브 오스틴의 경우 믹 폴리의 운동신경은 별로라고 했지만 링위의 스토리텔링 능력과 경기운영이 그 모든 것을 커버하고도 남는다고 호평했다. 다만 본인도 자신의 신체능력이 떨어지는건 인정하며, 그 때문에 창의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려 했다. 덕분에 창의적인 경기를 하는 딘 앰브로스, 케빈 오웬스, 그리고 사샤 뱅크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본다고 섬머슬램 2015의 소감 도중에 밝히기도 했다.
- ↑ 믹 폴리는 몬트리올 스크류잡 사건 자체보다 이들의 행동에 더 환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 ↑ 사실 그냥 끼이는 정도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당시 경기하던 곳에서 링 로프를 너무 타이트하게 설치해놔서 그런 참사가 벌어졌다고 한다.
- ↑ 열렬한 레슬링 팬인데, 노엘은 이 남친외의 남자에게는 끌린 적이 없다고 한다. 근육덩어리 남자에겐 큰 관심이 없다는듯. 참고로 이 남자친구 노엘보다 키가 상당히 작다! 그래도 개성넘치게 잘생긴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