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문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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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의복
몽골의 전통 의상으로 델이 있으며 몽골이 한창 세계적으로 힘이 셌을때 한복과 상당한 영향을 주고 받았고 그 이후에는 만주족의 치파오와 영향을 주고받았다.
3 음식
몽골 요리 항목 참조.
옛날부터 유목을 했기 때문에 주식이 고기와 유제품. 옛날에는 신선한 말고기, 양고기[1][2]를 많이 먹었는데 이때 당시에는 몽골인들은 계절에 따라 수시로 이동해야했고 양이나 말을 치는것이 생각외로 고된 일이었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은데다가 대체로 싱겁게 먹어서 육식위주의 식사에도 대체로 건강했지만,[3] 몽골의 도시인구가 늘어난 이후에도 도시지역 사람들이 이전의 식습관을 유지하고 자극적인 음식들도 많아지는 바람에 비만율이 급증하여 사회문제화 되었고 덕택에 채소와 과일을 서서히 먹기 시작하는 중이다. 또 홍차를 함께 먹는다.
고기를 많이 먹어서인지 몽골의 청년층은 키가 크고 덩치가 좋다. 반면, 나이가 먹을수록 소화기능이 저해되어서인지는 몰라도 남녀를 불문하고 배가 심하게 나왔다.(...) 성인병으로 인해 평균 수명은 남성 기준으로 61세에 불과.
새우를 벌레로 생각하고 먹지 못하는 듯하다. 내륙지방이라 해산물을 별로 접하지 못해서 그런 것[4]으로 생각된다. 물에서 나는 것 자체를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러나, 호숫가에 사는 사람들은 생선을 잘 먹는다. 몽골 최대의 호수 훕스굴 호수가 있는 훕스굴 지방에서는 호수 물고기를 통째로 구운 것과 잼 병에 넣어 삭힌 것처럼 보이는 음식이 특산물. 서나래, 김진, 엄마와 딸X2를 그린 필냉이, 이렇게 웹툰 여작가 셋이서 몽골 여행을 갔을 때도 현지인 길라잡이는 훕스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 그 자리에서 요리해준 걸 맛있게 먹고 다 같이 먹은 게 나온다.
물론 이런 경우는 일부일 뿐, 보통은 꺼려한다. 칭기즈 칸이 젊었을 때 아버지가 죽고 부족이 붕괴되어 거지꼴이 되자, 물고기를 잡아 먹던 일화가 당시의 비참함을 상징하던 일로 통할 정도. 한국에 유학 온 몽골 학생이 포장지에 새우가 그려진 새우깡을 먹는 한국 학생을 보고 "벌레가 함유된 과자를 먹는다"며 경악했다는 일화가 있다.
4 음악
몽골의 전통 악기로는 머린 호르(морин хуур)가 있으며 이는 한국어로 마두금이다.
후미(Хөөмий)라는 독특한 창법이 유명하다. 성대기관을 단련시켜 한 사람이 여러가지 목소리를 내게 하는 창법이다.
주로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다.
몽골 전통 음악 그룹 후숙툰(Хөсөгтөн)의 공연. 2분 16초 부터. 짧은 건 여기
몽골의 현대적 모습 중 하나인 몽골어 갱스터랩을 들어보자. 노래 제목은 Буруу газар зөв цагт(Buruu gazar zuv tsagt). 부른 그룹의 이름은 Click Click Boom.
5 영화
민주화 이전에는 프로파간다 위주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소련의 붕괴 이후로는 일본과 합작으로 푸른 늑대 (2006)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돈을 대준게 일본이다 보니 작중에서는 몽골어가 하나도 없고 일본어로만 말한다. 안습
독일과 합작으로 만든 영화 The Story of the Weeping Camel (2003) 은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6 스포츠
6.1 농구
기후적 원인으로 실내 종목이 주로 많이 이뤄지고 곧잘 하는 편이던 실내 구기종목인 농구도 인기가 있는 편. 하지만 배구는.... 농구 실력은 그다지 내세울 게 없지만 축구나 야구보다는 훨씬 잘한다. 남녀 모두 대학리그, 자국프로리그를 갖추고 있고 외국인선수도 뛰고있을 정도로 기본구성이 탄탄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농구에서는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농구 7위를 거둔 몰디브를 112-54로 처뭉갰고(2003년 축구에서 몰디브에게 0-12로 참패한 몽골이다. 뭐 몰디브가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16위 꼴지이긴 했다.) 농구를 좀 하는 편인 요르단까지 83-74로 이기며 2차 토너먼트를 넘어섰다(더불어 4년전 이 대회에서 요르단에게 패했던 걸 설욕했다). 비록 한국에게 67-90, 중국에게 67-108,이란에게 69-107같이 강호들에게 참패를 면치 못했으나 축구와 야구에서 그야말로 동네북인 걸 생각하면 농구는 아시아 중위권 성적.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참가국 16개국에서 8위를 차지했으니 꽤 한 셈이다.
여담으로 박성근 전 성균관대 감독이 2005년부터 5년간 대표팀 감독을 재직하기도 했다. 성대시절 악명 높았던 빠따농구를 몽골에서도 그대로 써먹었다.
6.2 축구
실외 스포츠 분야에서는 아무래도 약체 국가. 적은 인구와 경제적 문제 말고도 기후 탓이 크다. 축구가 그나마 인기가 많지만 세계적인 최약체이다. 몽골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할 것. 몽골은 여름에는 40도가 넘는 맹렬한 더위가, 겨울에는 반대로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추위가 들이닥치고 거기에 거친 바람과 황사까지 곁들어 제대로 축구경기를 치르기 어렵다.
덕분에 국내 리그인 몽골 내셔널 프리미어리그[5]가 겨우 7월부터 9월까지 단 2달동안 치뤄진다. 모두 10팀으로 구성된 리그에선 9, 10위가 다이렉트 강등. 8위는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룬다.
에르침(ERCHIM)과 호르무혼(KHOROMKHON)같은 구단들이 우승을 주로 차지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12년이 되어서야 AFC프레지던트컵에 겨우 참가할 수 있었을 정도. 그리고 추위와 더위 문제로 제대로 된 국제대회 예선을 비롯한 경기 개최 문제를 위하여 수도인 울란바타르에 전천후형 돔 경기장을 건설 중(2017년 완공예정)이다.국제경기를 주로 내셔널 스포츠 스타디움(관중석이 2만석 정도)이나 MFF 풋볼 센터(관중석이 겨우 5천석 수준)에서 치룬다... 그렇긴 해도 축구 인기는 꽤 있다.
한편 2015년부터 2부리그격인 몽골 퍼스트 리그가 출범했다. 총 10팀으로 구성되어있으며 1, 2위팀은 다이렉트 승격, 3위는 내셔널 프리미어리그 8위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룬다.
6.3 야구
농구같은 실내종목말고 실외 구기 스포츠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축구가 이러다보니 야구나 실외 구기종목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 야구가 정식종목이 되던 대회에 처음으로 나와 대만에게 0-20, 한국에게 0-21로 졌다. 그 뒤 아시안 게임 야구는 참가하지 않다가 오랫만에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야구에 참가한 몽골 야구 대표팀은 중국에게 0:15 콜드게임 패, 일본에게 0:24 콜드게임패, 태국에게 0:25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 무득점에 64실점이란 최다 실점 기록 및 태국에게 허용한 25실점은 역대 아시안 게임대회 최고 실점 기록(!)으로 아시안 게임 축구, 야구 두 종목 최다실점 기록을 몽골이 가지고 있는 셈. 우습게도 종전 최다실점 기록은 1994년 대회에서 일본에게 2-25로 진 태국이었는데 그 태국이 반대로 기록을 세운 셈.
몽골이 야구로 참가한 것도 바로 이웃이 개최국이라 가까워서 참가한 것이지 비행기나 배를 타고가야했다면 차비가 없어 불참했을 대회였다.(1994년 대회같은 경우 일본이 지원해서 참가했지만 그 뒤로 줄곧 불참했다) 결국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파키스탄에게 0-25로 참패했고 중국에게 또 0-15 콜드게임패를 했다.이제 남은 1경기 일본전에서는 또 0-24로 진다면 4년전 대회랑 똑같은 무득점 64실점 기록을 연속으로 기록하게 되었는데 0-21로 져서 무득점 61득점을 기록했다. 역대 아시안 게임 성적은 8전전패 0득점 166실점! 이렇듯 도무지 1점을 내본 적 없으니 아시안 게임 야구에서 1점이라도 거두면 무척 기뻐할 듯 하다. 사실 야구선수들도 전문 선수도 아니라 그냥 야구가 좋아 하는 조기 야구 수준 평범한 사람들이긴 하다. 장비도 없어서 2014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한국야구계에서 배트 5개를 선물해주자 엄청 기뻐했는데 야구배트가 몽골 선수들은 모두 3개밖에 없기 때문이었다...그나마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때는 몽골은 야구배트가 딱 1개라 이걸 가지고 경기에 임해야 했던 걸 한국에서 중고 배트라든지 여러 장비를 중고(!)로 무상지원받아 연습하고 남은 것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6.4 개인 격투 종목
그런데 스모나 유도같은 개인 격투종목은 꽤 상당하다. 현재의 일본의 스모대회는 아예 몽골인들이 장악했을 정도로 압도적. 21세기에 접어든 이후로 나온 4명의 요코즈나 (아사쇼류[6], 하쿠호[7], 하루마후지, 카쿠류)는 전부 몽골인이다! 아무래도 위에 나온 기후 탓에 제대로 구기종목은 훈련이나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거와 달리 실내경기장에서 치르는 이 종목들은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인 듯.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유도와 레슬링에서 여러번 나왔다. 공교롭게도 몽골 유도 발전에 한국이 기여했는데, 한국인 코치를 초빙하고 경기장 시설이 열악한 탓에 한국가서 훈련받은 몽골 선수들이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과 일본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받았었다. 일본에선 아시안게임에서 자국 유도 유망주가 몽골선수에게 패해 중도 탈락하자 한국을 비꼬는 기사를 싣은 적도 있지만 일본에서도 유도나 실내 종목 연습을 하러 몽골선수가 가기에 이건 지 얼굴에 침뱉기일뿐. 몽골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도 유도에서 나왔다. 주인공은 나이단 투브신바야르(Найдангийн Түвшинбаяр), 2008년 남자 100kg 금메달리스트, 2012년 동 체급 은메달리스트이다. 다만 나이단 투브신바야르는 어릴때부터 유도를 해오던 선수가 아니라 부흐를 하던 선수였다. 덕분에 올림픽에서도 부흐 기술을 응용한 하체공격위주의 유도를 보여주었다.
레슬링도 꽤 잘한다. 올림픽 은메달까지 받은 적도 있다. 한국이 광복 이후 첫 금메달 획득 한 것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양정모 선수) 바로 몽골 선수를 상대로 이겨 얻어낸 것이다[8]. 그 밖에 국제레슬링 대회나 아시안게임에서도 꽤 상위권 성적을 거두고 있다.
6.4.1 부흐
매년 7월에 열리는 나담 축제(эрийн гурван наадам,Naadam Festival)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 몽골식 씨름인 부흐(Бөх)이다. 이 나담은 유목민의 삶에서 중요한 가축들의 성장과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적 의미와, 힘과 기술을 겨루는 경기를 통해 병사를 모집하고 훈련시키는 군사적 의미를 지닌 행사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몽골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되새기고 스포츠 경기로 전 국민을 단결시킨다는 정치적 의미가 강조된 행사로 그 성격이 변했다. 나담 축제는 몽골 기마병과 전통 복식을 갖춰 입은 주민들의 행진으로 시작되며, 열띤 스포츠 경기 외에 몽골 전통 음악 공연, 음식과 공예품 판매 등이 함께 이루어져 몽골의 전통과 문화가 집약된 축제인데 기마, 활쏘기 등등 고유 놀이를 한번에 다한다. 이런 전통 대회 맥이 끊겨버린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몽골 최대 스포츠 행사로 인기가 많다. 때문에 부흐나 활쏘기나 기마에서 우승하면 후한 상금에 명예를 누리기에 인지도가 높다.
이 나담 부흐에서 우승한 씨름선수는 아와르가(Аварга)라고 불리우며 부와 명예를 누린다. 더불어 부흐는 일상 유목생활에서도 가장 흔하게 즐기는 스포츠이기에 이를 이용하여 스모선수나 레슬링 선수로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래도 스모 챔피언이 더 경제적으로 막대한 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인지 주로 스모로 많이 진출한다. 스모에선 몽골 출신 역사들이 여럿 있고 요코즈나(아사쇼류, 바쿠호 등...)도 많이 나왔다. 2010년대부터는 한국 씨름 대회에도 몽골인 선수가 등장하는 등 부흐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6.4.2 밴디
그 외엔 동계스포츠인 밴디[9]를 그나마 좀 하는 편이다. 2011년 동계 아시안게임 해당 종목 은메달 획득. 사실 카자흐스탄(금메달), 키르기스스탄, 몽골 이렇게 3개팀이 출전해서 그 중에 2등한 것이라 잘한다기보다 아시아에선 보기 드물게 이 스포츠를 즐기는 나라[10]
7 종교
몽골은 전통적으로 텡그리(Tengri) 사상을 중심으로 한 샤머니즘을 신봉하였다. 이는 몽골제국 시절까지 이어졌으며 특별히 타 종교를 편애하거나 탄압하지 않았다.
현대에는 과반수 이상의 몽골 사람들이 티베트, 부탄 등과 같은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몽골의 불교는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16세기 때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는데, 일설에 의하면 몽골인들의 호전성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전파했다고 전한다. 실제로 당시엔 집안의 첫째 아들은 무조건 라마승이 되어야 하며, 여성들에게는 승려가 초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법이 있었다. 냉전 시기에 공산 정권하에서 티베트 불교가 탄압받았는데, 냉전이 끝나고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이후 재기하였다.
최근에는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독교(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골고루)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특히 가톨릭은 주한 교황청 대사관 산하 지목구로서 한국 가톨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천주교 대전교구는 몽골 교회를 돕는 대표적 교구이며, 총 68명의 외국인 선교사들 중 한국인 선교사는 23명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던 경제가 갑자기 무너지자 몽골 정부는 서방 세계와의 교류와 지원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교황청에 “선교사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1992년 교황청이 몽골 정부와 수교를 시작하였다. 몽골 가톨릭교회에서 중요한 사업은 버려진 아이들, 노숙자들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정부는 선교사를 초청하였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오히려 외국 종교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따라서 종교 활동을 교회 건물 안으로 제한하였고, 아직도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종교 활동에는 추방이라는 강한 제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이렇게 형식상으로나마 종교의 자유가 있긴 하지만 몽골 여론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또한 몽골인들은 신에 대한 종교성은 있지만 동방의 어느 나라처럼 기복신앙적인 면이 강하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누군가 아플 때, 죽을 때 신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몽골인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자신이 힘들 때 찾는 신’으로만 받아들이는 수준이다. 그런 면에서 매주 주일 및 의무대축일 미사 참례가 의무인 가톨릭을 이해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한편 2016년 8월 28일 몽골인 최초의 사제가 서품되었다. 바타르 엥흐 (요셉) 신부는 한국의 천주교 대전교구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고 2015년 부제품을 받았으며, 2016년 8월 28일 사제품을 받았다. 몽골 대목구장 웬치슬라오 파딜랴 주교의 주례하에 유흥식 주교, 교황청 한국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사와 몽골 내 선교사, 대전교구 성소국장,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신부 등이 참석하였다.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에 몽골인 신학생 1명이 재학중이며, 대전가톨릭대에 진학할 예정으로 논산대건고등학교에서 재학 중인 학생이 1명 있다.
한편, 몽골 서부에 사는 카자흐족[11]들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8 유목 문화
조상대대로 유목민들의 나라인 만큼 목축업을 하고 게르(Ger)에 살면서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는 유목민들이 많았다. 현대에는 유목민의 수는 줄었지만 가축의 수는 늘어난 것으로 통계되고 있다. 몽골의 카자흐 유목민들은 양과 염소를 지키기 위해 검독수리를 길들여서 늑대를 사냥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현재는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서 유목을 하는 이들은 소수가 되었으며 인구의 절대다수는 도시민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몽골 이야기가 나오면 열에 아홉은 초원에서 양 치고 염소 젖 짜먹고 '게르'에서 거주하는 장면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아무리 발달한 나라라도 시골은 있다. 외국에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내보내면서 밭 갈고 소 몰고 돼지 키우는 장면만 줄창 틀어준다고 생각해보자, 모르는 사람은 한국이 아직도 농사만으로 밥 먹고 사는 나라인 줄 알 것이다.(...) 몽골도 마찬가지다. 거기도 도시가 있고, 상대적으로 '촌'이 있을 뿐이다.[12] 많은 몽골인들과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국내언론이 몽골의 발전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9 건축
게르의 이미지가 커서 천막만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몽골의 궁전, 절들도 다른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전통 건축물처럼 기와를 사용한다. 복드 칸 겨울궁전, 초이진 라마 사원이 대표적인 예. 중국, 티베트 건축과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간단 사원이 대표적인 티베트식 건축물.
10 성 문화
유목 민족 출신이라서인지 의외로 성이 개방적인 편이었다. 에스키모와 마찬가지로 손님이 오면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었을 정도.[13] 또한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아 현재도 개방적인 성풍속을 지니고 있다.- ↑ 다만 가축이 곧 재산이기 때문에, 늙어 죽기 전의 가축이나 겨울철을 앞둔 것이 아닌 이상은 유제품 위주로 먹었다.
- ↑ 이 때문에 한국에서 양꼬치를 잘 먹는 사람들도, 몽골의 양고기는 누린내가 심해 못 먹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한국은 어린 양을 잡기 때문에 누린내가 덜 나는 것. 만약 몽골로 가서 어린 가축을 잡자고 말하면 몽골인들은 '오래 산 것을 안 잡고 왜 어린 걸 잡어?'
히익 로리콘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 ↑ 다만 이건 소금과 향신료가 구하기 쉽지않거나 구할려고 해도 비쌌기 때문이다.
- ↑ 이건 내륙국가, 게다가 수출입이 잘 안되고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그런 경우에는 더더욱 많다. 아프가니스탄으로 의료 봉사를 하러 간 종교 봉사단체 JTA측이 겪은 일화인데 새우 사진을 보여주자 아프가니스탄 오지 사람들은 이런 벌레를 먹냐고 어이없어 했다는 반응을 똑같이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륙국이 아니라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인도 여행 간 배낭여행자가 말린 새우를 가져가 먹자, 인도 사람들도 벌레를 먹냐며 어이없게 반응했다는 (다만 여기도 바다와 멀리 떨어진 지역) 일화가 있다.
- ↑ 니슬렐 리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 ↑ 최초의 몽골인 요코즈나. 하쿠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역대 요코즈나들중 최고승률과 우승률을 자랑하며 일본 스모판에 혁명을 선사한 리키시이다!
- ↑ 90%에 가까운 승률과 역대 요코즈나들중 압도적인 우승률을 가지고 있는 현역 리키시.
- ↑ 당시 레슬링은 경기를 치르면서 전적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선수들이 차례로 탈락하고 마지막 3명이 남으면 리그를 통해 1-3위를 결정하는 방식였다. 사실은 양정모 선수는 몽골 선수를 이긴 게 아니라 그에게 졌다. 그러나 최후 3인의 리그와 그 앞 경기를 종합한 결과로 인해 양 선수가 1위, 몽골 선수가 2위가 된 것이었다.
- ↑ 야외에서 하는 아이스하키 비슷한 종목이지만 겉은 아이스 하키같으나 사실상 빙판 축구라고 할 정도로 축구와 규칙이 매우 같다. 11명씩 경기를 하고 전후반 45분, 오프사이드도 있으며 러시아에서 나온 종목이라 그런지 러시아 하키라고도 부른다.
- ↑ 사실 국제 밴디 스포츠 협회 가입국만 보면 인도, 일본, 미국, 캐나다,잉글랜드, 아르헨티나,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들도 가입(한국은 미가입)은 했으나 그냥 동호회 수준으로 하며 사실상 밴디를 확실히 자주 즐기는 나라는 러시아 및 옛 소비에트 연방 나라 및 몽골,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로 보면 되겠다. 이래뵈도 2년마다 세계 대회를 꾸준히 치루고 있다.
- ↑ 카자흐스탄 사람이 아닌 몽골에 사는 카자흐 민족이다.
- ↑ 한국의 남매 가수인 악동뮤지션의 사례에서 이러한 편견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악동뮤지션은 부모님이 선교사라 어렸을 때부터 몽골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처음에 몽골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소위 몽골의 스테레오 타입, 즉 게르와 초원, 양과 함께하는 생활(...)을 상상했으나 현실은 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고 했단다(...)
- ↑ 이는 씨를 받기 힘든 혹독한 지역에서 우러나온 풍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