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평소 부탄가스라고 불리는 Butane(뷰테인)에 대해서는 부탄가스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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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Bhutan [1]
270px
남아시아에서 부탄의 위치

부탄의 지도

부탄의 국기[2]그릴테면 그려보거라

부탄의 국장이자 왕축 왕조의 문장
국명Bhutan[3] / ʼbrug-yul[4]
국가(歌)전룡의 왕국
수도팀푸
국왕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200px-Jigme_khesar_namgyel_wangchuck_name.svg.png) 국왕
정부수반체링 톱가이 총리
통화눌탐
공용어종카어[5]
면적38,816km²[6]
인구741,919명(2015)
인구밀도km²당 19.9명
군대부탄군
GDPPPP 5,860,000$(2014),
GDP 명목 22억 900만 $(2015)
1인당 GDP명목 2,837$(2015)
시간대UTC +6:00

부탄 지형도 보기

1 개요

인도중국 티베트 자치구 사이에 낀 남아시아의 작은 산악 국가. 이 나라의 북쪽의 히말라야 산맥을 경계로 중국 티베트 자치구와 접해 있다. 영어로는 Butane Bhutan.[7] 수도는 팀푸(Thimphu). 팀부(Thimbu)라고도 한다. 면적 38,816km2, 인구 약 74만 명(2015년). 종교티베트 불교가 대다수이며 네팔계들이 힌두교도 믿는다.

2 역사

2.1 고대사

기록되어 전해오는 역사적 정보가 부족하다.[8] 부탄 현지의 경우, 부탄에 처음 정착한 민족을 샤르초프인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인구조사를 할 때는 같은 한장어족이고 불교가 대다수라는 이유로 보티야인과 샤르초프인을 그냥 같이 묶고 네팔계만 따로 분류할 때도 있다. 그러나 보티야인들과 같은 티베트 계열이 중국어파와 분리된 것은 이미 선사시대에 있었던 일인 반면 샤르초프인들은 기원전 2세기에야 분리되었기 때문에[9] 그 사이 많은 차이가 생긴 데다가, 인도의 영향으로 아삼어를 모국어로 쓰는 샤르초프인들도 있기 때문에 보통은 샤르초프인도 따로 집계하는 일이 더 많다. 그런데 티베트 쪽의 역사 기록을 보면 고대로부터 부탄 땅을 로몬(Lhomon, 남쪽의 어두움)이나 몬율(Monyul, 어둠의 땅)이라 부른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샤르초프인들이 정착하기 전 이미 벵골인들이 선주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방향으로 딱히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7세기에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감포가 부탄에 2개의 사찰을 건립하였으며, 9세기 경 인도의 승려 파드마삼바바가 부탄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이러한 티베트인들의 남하는 꾸준히 이어졌다. 이외에도 구전되어 오는 전설이나 야사들에 따르면, 몽골에서 온 군사들의 침입에 당시 부탄을 아끼던 공주가 항복을 거부하다 죽으면서 늪지 거머리가 되어 몽골군을 막아주었다고 한다. 전설의 진실여부를 떠나 외부 세계 침략자들도 이 산악지대를 공격해도 이로부터 별달리 얻을 이득이 없었기에 부탄의 땅은 늘 평화를 유지했다고 한다. 때문에 옛날 몽골의 훈족이 침략전쟁을 벌일 때 유목민족이 티베트를 점령하면서 일부 티베트인들이 부탄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인도나 중국의 기록들에는 15~16세기에는 왕과 승왕이 따로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인 권력을 누렸으며, 지방영주들이 자치적으로 산악령에서 권력을 가지는 봉건제와 같은 정치적 구조를 가졌다고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1627년에 포르투갈인 예수회 선교사 이스테방 카셀라(Estêvão Cacella)와 주앙 카브랄(João Cabral)이 부탄을 지배하던 까규빠[10]의 승려이자 영주인 응아왕 남걀(Ngawang Namgyal)을 알현하고 망원경을 바쳤으며, 티베트의 침공에 대비하는 차원의 군사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응와왕 남걀은 이를 거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저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가톨릭 개종 및 가톨릭 선교 자유화와 같은 종교적인 조건을 내세웠으니 거절했던 것. 그리고 남걀은 이런 지원없이도 티베트 침공을 막아냈다.

17세기 경, 티베트의 5대 달라이 라마는 전 티베트를 통합하려는 목적으로 1629년, 1631년, 1639년, 1647년에 걸쳐 무려 4차례나 부탄을 공격했으나 살생하지 않는 불교의 나라라면서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악이 받친 티베트는 몽골의 지원을 받아 1714년에 또다시 부탄을 공격했으나, 또 실패하였다. 지금도 부탄에는 티베트와 싸우던 요새 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로써 결과적으로 티베트와 부탄은 완전히 갈라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중국에게 완전히 먹힌 티베트의 운명을 생각해보면 불행 중 다행인가 물론 부탄 또한 같은 티베트계 국가인 옆동네 시킴을 몇 차례 침공한 전력이 있으니 완전한 피해자는 아닌 셈이다. 게다가 외세인 영국군과 함께 동족인 티베트로 쳐들어간적까지 있다. (....) 사실 다른 티베트계 왕국인 무스탕 왕국 역시 네팔의 편에서 티베트와 싸우다가 네팔으로 편입되기도 하는 등의 일도 있었다.

1907년에 지방영주이던 우겐 왕축절대군주제를 선언하며 왕축 왕조가 세워졌다.[11] 그리고 이를 영국이 자치령 국왕으로 인정하면서 비로소 세계사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2.2 현대사

1949년 8월 8일에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 사실 부탄의 영토안에는 별다른 자원이 없기 때문에 인도가 겪은 것과는 달리 착취가 없었고, 따라서 반영감정은 그리 없었다고 한다. 기껏해야 일부 영국인들이 각박한 사회가 싫어서 조용하게 살고자 찾아오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1800년대 말에 서방의 나라들이 아시아의 시장을 놓고 경쟁하던 때, 부탄의 지형적인 요건은 영국 육군에게는 전진기지를 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험준한 산악 지형은 공격하기는 어렵지만 지키기는 쉽다.

종교적으로도 같고, 민족도 티베트계들이 대다수인 부탄이었기에 이웃 티베트를 큰 형님 나라로 우대하였으나, 티베트가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무너지면서 시킴이나 같은 라다크와 남티베트 일대의 다른 티베트계 작은 왕국들이 혼란에 빠진 끝에 친인도측에서 집권하였다가 인도를 불러들여 인도에게 합병[12]된 것과 달리, 부탄은 독립국을 유지하였다. 더하여 이전 영국 식민지 시절때부터 인도에게 외교권을 넘겨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지만, 중공의 침략을 견제하고자 더더욱 친인도 성향이 되었다. 사실 맨 위에 나오는 것처럼 면적 크기랑 중국과 영토분쟁을 봐도 인도가 없었더라면 진작에 티베트처럼 침략을 받아 강제합병될 가능성이 압도적이었다... 사실상 티베트 라인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2.1 민주화

부탄은 예로부터 절대적 왕권을 추구했지만 왕축 왕조에 대한 여론은 매우 긍정적이었고, 교육수준이 높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지식인 계급의 국민수가 매우 많다. 지식인 대다수도 왕권을 타파하고 민주제도를 뿌리내리자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의회는 물론 심지어 국민들조차 국정의 근본 원리가 절대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국왕 자신이 생활소득보다는 행복지수에 중점을 두고 말 그대로 <행복정책>을 펼쳤기 때문인지 사실 절대왕정 제도 하에서 불만이 없었던 것이며, 또한 의회 역시 변화를 두려워 했다.

그러나 2002년 170위권에서 오늘날의 남한에 비견될만큼 발전한 부탄의 언론자유와 함께 국왕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민주주의를 외쳤고, 국왕의 끈질긴 설득 끝에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말하자면 역민주화(...) 부탄에서는 국민이 아니라 국왕이 민주주의를 주장합니다! 이는 2008년 3월 24일에 이루어진 선거를 통해 굳건해졌다. 이후 하원구성을 통해 민주주의를 성립하였다. 사상초유의 성과이다. 그래도 국민들의 왕실에 대한 지지는 절대적인지라 선거에서 왕의 삼촌이 이끄는 당인 평화번영당이 압승했다고 한다...낙하산 하지만 5년 뒤인 2013년 7월 13일 총선에서는 야당인 인민민주당이 전체 의석 47석 중 32석을 얻으며 압승을 거두어 정권이 교체되었다. 물론 부탄에도 1990년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적은 있었는데, 이는 네팔계 탄압과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젊은층의 욕구와 관련이 있으며, 실제로 이때 인도로 망명한 민주화 인사도 있었다. 더불어 이건 좀 더 복잡한 이야기가 있는데 네팔계 탄압은 1990년 네팔의 왕권 약화 및 선거제도 도입때문에 네팔계들이 부탄에서도 같은 요구를 한 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실은 네팔계들의 정계 및 여러 입지 강화가 목적이였던지라 네팔계 사람들이 강제로 추방되었는데, 이에 대해 네팔계 사람들은 반발하여 인도로부터 무력을 빌려 부탄을 강제로 힌두교 네팔계 입지를 넓히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인도로서는 여러면에서 친인도파인 부탄을 뒤엎을 생각은 전혀 없었으므로, 되려 부탄에게 네팔계가 이랬으니 알아서 하라는 충고만 한채 좌시했다. 이로 인하여 더 많은 네팔계 사람들이 강제로 추방당했고, 이 여파로 민주화를 갈망한 부탄계 사람들도 억울하게 네팔계 사람들과 한패거리로 몰려 여론의 비난을 받았던 사례도 있다.

행복론으로 행복정책을 펼쳐서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준 뒤에 민주주의를 이룬 부탄 국왕의 전통은 그의 아들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말 그대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중이다.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이고 부탄 입헌군주제의 첫번째 왕이며, 또한 전 세계 독신 지도자 중 가장 매력적인 배우자감 5명 중 한 명으로 뽑힐 정도로 미남이다. 심지어 그는 오지에 사는 국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자 직접 배낭을 맨채 걸어서 찾아가기도 한다.

지도자가 현명하면 국민들이 행복해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증빙하는 사례다. 최고의 권력과 동시에 국민의 지지를 받는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고집하는 부왕이나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결국 이루어낸 왕이나, 본받을 점이 차고도 넘친 왕족이다. 한반도 북부의 어느 왕조국가그 지도자 일가와는 비교돼도 너무 비교된다.

지식채널e에서 자세히 다뤘다.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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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0일,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은 10살 연하(1990년생)의 일반인 신분의 제선 페마와 결혼을 발표하였는데, 제선 페마 역시 영국 리젠트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파다. 10월 13일 온 국민의 축복을 받으며 검소하게 결혼식이 치러졌다.

3 정치

  • 이 항목은 부탄의 정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탄의 정부는 부탄이라는 나라가 건국될 때 부터 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결정하던 전제군주제의 나라였고, 의회는 그저 왕에게 약간의 충고나 조언을 하고, 자료 정도를 조사하고 실행하던 역할이었다.

그러나 부탄의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과 그 뒤를 이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은 자신들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 정치를 펼치지만 후대를 이을 왕이 폭군이거나 국민들을 못 살게 굴면 나라의 존립이 위태롭고 행복정책과 국민들의 행복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여, 자신들이 가지는 왕으로서의 모든 권력을 포기하고, 전제군주제였던 부탄을 민주주의로 바꾸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먼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알렸고, 의회에도 이러한 안건을 통보했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왕이 직접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고 국민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민주주의로 나아가겠다고 했는데도 오히려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정말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반대와 의회의 초강력 반대에도 불구,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은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민주화를 외쳤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어필하며 국민들의 동의를 얻고 의회의 반대를 일축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왕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인구 77만명의 부탄에서 2008년 7월 18일부로 민주주의가 실행되게 된다.

3.1 민주화 그 후

그 후 부탄은 헌법을 만들고 지방 정부를 설치하며[13] 상원하원을 설립하고 입법부사법부민주주의에 필요한 기관들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총 47명의 하원의원이 선출되게 되는데, 2008년 치루어진 하원 선거에서는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의 친인척(삼촌)이 이끄는 평화번영당이 압승을 했으나, 2013년 치루어진 하원 선거에서는 야당이었던 인민민주당이 47석중 32석을 차지하여 역전하였다. 그리하여 현재 부탄의 총리는 인민민주당의 총수인 체링 톱가이다.

한편 상원은 총 20명을 선출하고, 5명은 정부에서 임명하는데, 특이하게도 상원의원 25명은 어떤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부탄의 상원에서는, 화폐와 예산에 대한 일을 제외한 다른 부탄의 법률을 작성하고 검토한다고 한다. 상원 선거는 2007년 12월 31일 부터 2008년 1월 29일에 걸쳐서 한번[14], 2013년 4월 24일에 한번이 더 치루어졌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민주주의가 들어오면 왕권은 자연스럽게 약해지게 되어 있는데, 부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헌법을 통해 왕의 재위에 관련된 몇 가지의 법률이 생겨났는데, 아래는 그 중의 일부다.

 부탄을 다스리는 왕축 왕조의 국왕은 이러한 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를 설립하나 국왕은 그대로 유지하는 입헌군주제로 전환한다. 왕의 혈통은 이어진다.
그러나 왕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왕은 65세가 되면 반드시 은퇴해야 한다.[15]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부탄의 모든 국민에게 뜻을 물어 과반수면 즉위를 할 수 있다.
또한 왕이 폭정을 일삼을 때에는 의회가 왕의 폐위 투표를 개최할 수 있으며, 국민의 3분의 2가 왕의 폐위에 찬성하면 왕은 즉시 폐위된다.

이러이러한 규정들이 왕권을 약화시키는 주범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을 추진해 온 국왕도 어차피 왕권이 약해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법률이 통과되게 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우스운 것은 국왕의 이러한 솔선수범한 개혁, 검소한 생활, 국토 구석구석까지 방문하여 국민들의 의견들을 들으려는 행보, 평민과의 결혼에 수많은 국민들이 감동하여 왕가의 인기와 권위가 가히 절대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국왕의 결혼식이 열렸을 떄는 국민들이 국왕이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전국에서 축제를 열고 환영했을 정도였다.

3.1.1 선거제도

정국의 안정을 중시해서인지, 여러 당 중에 1, 2위를 뽑는 1차 투표를 하고, 그 두 당에게 의석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결정하는 2차 투표를 한다. 제도적으로 양당제를 강제하는 특이한 나라다.

4 자연

 
부탄의 지형도

히말라야로부터 기인한 여러 산맥들에 위치한 지형상 남쪽은 해발고도가 낮은 반면에, 북쪽으로 갈수록 고산들이 많고 고도가 높아진다. 북쪽 끝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어서 남쪽은 아열대~열대기후, 중부지방의 2,000m~3,000m 지역은 온대기후, 북쪽은 고산기후 또는 냉대기후에 속한다. 수도인 팀푸는 약 2,300m에 위치한 도시로 온대기후에 속한다.[16] 최고봉은 강카르 푼섬이다. 높이는 7,570m.

부탄에서는 자연을 보존하고 이를 후대에 물려준다는 확고한 원칙 때문인지 헌법에도 삼림의 비율이 60% 이하로 떨어지면 안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부탄 국민은 나무를 벨 때는 반드시 부탄 산림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만일 이를 어길 시에는 무거운 처벌이 가해진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부탄인들이 얼마나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5 경제

6 행정구역

부탄에는 우리나라의 도라고 부를 수 있는 행정구역인 종카그(Dzongkhag)가 20개가 있고, 종카그는 또 다시 우리나라의 시.군이라고 할 수 있는 게워그(Gewog)와 세종특별자치시급에 해당하는 특별 행정 구역인 둥카그(Dungkhag)가 있다.

자세한 것은 부탄/행정 구역 참조.

7 사회

2000년대 후반 들어 국민소득이 큰 폭으로 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지수는 떨어졌다고 한다. TV나 라디오 따위가 들어와 상대적으로 가진 게 많은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 원인이라는 듯하다. 부탄에 퍼져 가는 한류도 이런 행복 지수 하락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맥도날드피자헛도 없는 이 나라에 디스코텍이라든지 퇴폐 산업 같은 술집이 늘면서 폭력이나 밤문화가 생기는 것을 우려한다고 한다.

반면 경제 성장이 빈부/도농 격차를 심화시켜 행복 지수가 떨어졌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단순히 외국과의 비교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 모든 사업이 수도인 팀푸 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이미 팀푸의 월세는 일반 노동자 월급보다 더 비싼 수준으로 올라갔으며 고급 주택의 가격은 억대를 호가한다. 팀푸에는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클럽에서 사교를 즐기는 부유층이 존재하는 반면, 농촌에는 국가가 무상으로 교육을 지원함에도 자식들을 다 학교로 못 보내는 가정이 흔하다. 몇 명은 일을 시켜야 생계를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렇게 학교에 보낸 아이들도 시설이 낙후된 학교에서 학용품 부족으로 고생하면서 힘겹게 공부한다. 물론 귀족 및 부유층은 외국으로 유학을 가면 그만이지만.

소득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 돈이 별로 없고, 경제의 규모 자체가 크지 않다보니 모든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다. 일례로 부탄 전체에 의사는 180여명밖에 없다. 그나마 수도인 팀푸에 의사들이 몰려있어서 지방으로 내려가면 약방 주인[17] 한 명이 주민 1만명(...)을 케어해야 하는 지경이다. 난치병에 걸리거나 심각한 장애를 입은 환자는 인도 병원으로 보내는 것 말고는 사실상 답이 없다. 부족한 의료 인프라를 방증하듯 아직까지 국민 평균 수명은 60대에 머물고 있다. 국가가 추구하는 복지 정책은 훌륭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자본이 심히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 이 때문에 부탄의 행정을 맡은 사람들은 현재의 부탄이 행복하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돈과 물자가 없는 상태에서 키울 수 있는 행복은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

또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엔 아직 유권자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인구중 적지 않은 수가 제대로 교육 이수를 못 마친 상황이기 때문. # 또한 남한의 1/6만한 험지에 74만명밖에 안 되는 인구가 이리저리 흩어져 살다보니 동시 투표가 힘들다고 한다. 헬기로 투표 용지를 전달하려 했으나 실패한 지역도 있다.

국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는 하나, 실질적으로 부탄의 국교는 티베트 불교이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은 차별받기 쉽다. 불교와 부탄의 정체성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탄 정부는 자국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네팔계 부탄인 힌두교도들에 대한 매우 강력한 배척 정책을 펼친 바 있으며, 이 때문에 10만명의 네팔계들이 부탄으로부터 도망쳐서 난민이 되었다. 말이 10만명이지, 인구 85만명인 나라에서 10만명을 쫓아냈으니 무려 인구의 1/8을 국경 바깥으로 내몬 셈이다. 이들은 네팔로 가지도 못하고[18] 부탄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20년을 난민촌에서 떠돌다 UN의 도움을 받아 겨우 다른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정착했다. 또한 기독교 관련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기독교도 부탄인의 사례가 나오는 등, 기독교에 대한 배척 사례도 간간히 나타나고 있다.

언론에서 부탄이 범죄가 없어 감옥에 벌레들만 있는 평화로운 나라라고 소개되곤 하는데, 현실은 개뿔전혀 아니다. 불교 유물 도난 사건만 연간 200건 넘게 일어나는데 감옥에 벌레들만 있을 턱이 있나(....) 어쨌거나 부탄도 사람 사는 곳이니만큼 살인, 성폭행, 강도 등의 중범죄가 일어난다. 물론 이웃나라 인도 공화국에 비하면 범죄가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 없고, 부탄의 범죄율은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며 정부도 범죄를 줄이는데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행복지수가 높아 자살자가 몇 년에 한 번 생겨나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부탄은 2012년에 세계 자살률 22위를 기록했다.# 부탄이 아직 발전 중이고, 빈부격차가 다른 개발도상국에 비해 낮으며, 극빈층이 드물다는 점, 날씨가 특별히 우울한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 행복에 크게 신경 쓰는 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 자살률은 낮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훨씬 혼란스러운 남미 국가들이 자살률은 더 낮다.

부패인식지수가 높은 편으로, 근래 수년간 상승세에 있다. 국민소득이 크게 늘어나는 것에 비해서 사회 청렴도는 잘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도 최근에 청년 실업문제, 마약 중독 문제로 골치를 썩는 중이다. 특히 10-20대에서 마약 복용이 늘어나며 처벌 강화와 동시에 마약퇴치 캠페인, 마약 중독자 재활프로그램 운영을 벌이고 있지만[19] 애초에 이것도 앞에서 얘기한 청년 실업문제와[20] 연결된 터라 쉽지는 않은 모양. 청년실업같은경우는 부탄 정부에서 해외인턴쉽, 취업을 적극 장려하는식으로 문제 해결 노력을 하고 있다. 참조할 만한 기사. [1]

8 교통

9 외교 관계

부탄은 32~33개의 국제연합 회원국, 그리고 유럽연합직접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직접 외교관계가 없어도 미국, 영국, 독일 등 명예영사관 등을 통해 비공식 교류를 하는 경우도 있고, 부탄과 개별적으로 직접수교하지 않은 유럽국가의 경우라도 유럽연합 회원국이면 유럽연합을 통해 간접적 관계가 유지되고 교류가 이루어진다. 인도를 통하여 외교가 이루지면서 인도와 외교권을 가진 나라들은 거의 간접적으로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부탄인이 해외로 올 일은 거의 없고 소수의 관광객이 부탄을 방문에도 높은 치안 덕분에 크나큰 문제도 없기에 해외 대사관들은 굉장히 한가롭게 일한다는 말이 있다.

다른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부탄/외교 참조.

10 문화

부탄에 새로 건축되는 건축물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건축되어야 한다는 명문화된 헌법이 있다. 겉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재료부터 인테리어, 구조까지 모두 전통에 따라서 지어져야한다. 때문에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건축물들도 사실 알고보면 지어진지 몇 년 지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한 건축물 층수 제한까지 둬가지고 6층이상 높이를 못넘게 되어있다.

부탄에서는 이 나라와 국민을 잇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며, 종을 중심으로 나라업무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의 자유를 국법으로 보장하지만, 사실상 티베트 불교가 국교나 다름없다.

부탄은 세계 유일의 금연 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에 유학와서 담배를 피우는 부탄 사람이 있다. 본국에 돌아가서 어쩔 것이냐고 물어보면 암시장을 통해 담배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부탄의 길가와 들판에는 대마가 수북히 자생한다고 한다.[21] 그러나, 채취는 불법이므로 자칫 잘못하면 감옥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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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전통의상 고(Gho), 키라(Kira)

전통을 사랑하는 부탄인지라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과거엔 전통의상을 입지않으면 경찰이 잡아서 벌금을 매길 정도로(....)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했다. 요즘은 복장자율화시대라 현대식 옷을 입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학생 및 공무원은 학교에 갈때나 출근할때 의무적으로 입어야한다.

11 언어

부탄은 긴 세월 동안 티베트, 네팔, 중국, 인도 등 여러 나라의 문화가 뒤섞이며 언어도 뒤섞였기 때문에 언어는 혼잡하기 짝이 없다(...).

 
부탄언어 지도. 혼잡하기 짝이 없다(...)

부탄에서는 공용어로 종카어영어를 제정했지만, 수 세기 동안 티베트, 중국, 네팔, 인도 등에서 들어온 각종 문화들이 뒤섞이며 고유의 부탄 문화가 형성된 것처럼, 언어도 사방에서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서로 섞이고 창조되며 위의 지도처럼 난잡하기 짝이 없는 언어군들이 형성되었다. 현재 부탄에서 사용 중인 언어의 종류는 무려 53종류이다. 학교에서는 종카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아이들에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는 남부 지방에서 학교에서 네팔어로도 수업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네팔이 중국마오이즘 사상을 받아들이고 친중 국가가 되자, 부탄에서는 반중 정서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남부에서는 무장 봉기가 일어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 후, 부탄에서는 중국의 ㅈ자만 꺼내도 혐오하는 극도의 반중과 함께, 인도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네팔과의 관계가 소원해짐에 따라 결국 네팔어는 1990년이 오기 전, 학교 수업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언어가 많다 보니 부탄의 언어는 여전히 고립 상태에 놓여 있는 추세이다. 그래도 종카어는 전국민의 25%가 기본적으로 사용이 가능하고, 현재 부탄의 청소년들은 기본적으로 영어교육을 받기 때문에[22] 복잡한 언어실태도 현재로서는 많이 나아진 편이다.[23]

12 스포츠

한 때는 세계 축구 동네북으로 알아주기도 했으며, 지금도 세계적인 최약체다.

국대 축구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부탄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 하라. 그나마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 진출을 이루어냈다.

이 작은 나라도 1986년에 시작된 프로리그인 부탄 A-디비전이 있다.(2부리그는 B-디비전) 이름은 꽤 뭔가 있어보이는 트랜스포츠 유나이티드 팀이 90년대 후반에 아시안 위너스컵 예선에 나왔다가 우즈베키스탄 파흐타코르에게 13-0으로 뭉개진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자라는 대나무로 만든 죽궁은 북방계 나라들의 각궁과 거의 비등한 사거리와 관통력을 자랑한다. 일본 만화에서 죽궁으로 쏜 화살이 몇 백미터를 날아가는 표현은 과장이지만, 부탄의 죽궁의 사거리과 관통력은 거짓이 아니다. 세계 국궁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전력이 있는 유일한 죽궁이다. 부탄의 왕들은 기본적으로 죽궁을 잘 쏘아야 하며, 부탄에서는 매년 여러 차례의 활쏘기 대회가 열리며, 어린아이들도 죽궁을 가지고 놀 만큼 활과 인연이 깊은 나라다.그럼 부탄 대나무로 각궁을 만들면 어떨까? 어떤 조사에서는 부탄의 최고 인기 스포츠에 활쏘기를 꼽기도 했다.

아마 부탄이 올림픽 양궁에 참여하면 한국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 양궁 지도자들이여. 부탄을 눈여겨 보시길 바랍니다.

활쏘기 외에도 다트던지기도 주로 한다. 우리가 아는 조그만한 다트가 아니라, 표적이 3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팽이만한 다트를 던진다.

농구의 경우 한국인 감독이 대한체육회의 국제교류사업 하에 부탄에 진출하여,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고 한다. 참고기사 다만 이 기사에는 오류가 있는데, 부탄 역사상 구기종목에서 국외대회 1승을 거둔 게 농구가 처음이라고 하지만, 2003년 서남아시아컵에서 파키스탄을 상대로 거둔 1승이 있다.

13 종교

부탄인의 75%는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으며, 부탄은 엄연한 불교 국가다. 그러나 나머지 25%의 사람들 중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도 22%나 되며, 민속종교도 있는데 약 2%의 사람들이 믿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1%의 사람들은 기독교 등의 외부 종교를 믿는다. 즉 7,700여명만의 사람들이 부탄의 토착 종교나 힌두교, 민속 종교가 아닌 외부 종교를 믿고 있다. 기독교랑 사이는 나빠서 반기독교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기독교 탄압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14 창작물에서의 부탄

김인권이 주연한 영화 <방가방가>는 취업난에 시달린 청년이 외국인 노동자 행세를 하여 취직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는데, 주인공이 사칭한 국적이 부탄이다. 극중 김정태가 분한 친구의 대사에 의하면, 가는 데마다 주인공이 사칭하는 국가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어서 부탄인 행세를 하게 된 것으로 그려진다. "대한민국에 부탄 사람은 딱 3명이 있어. 대사, 대사 부인, 그리고 (부탄 국적을 사칭하는) 너"(…)[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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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드래곤의 관계때문에 웨일스와 엮이기도 하는데 두 나라의 국기에 그려진 용이 서로 뒤바뀌기도 한다.

  1. 주의할 점은, 부탄에는 Kingdom, 즉 왕국이 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탄의 정식 국명에도 왕국은 없다.
  2. 국기를 세로로 게양하는 것은 금지된 게양법이다. 그렇게 하면 원래 국기에서 시계 방향으로 90도 각도로 회전하게 되고 용이 향하는 방향이 →쪽에서 ↓쪽으로 바뀌어 용이 추락하는 형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냥 세로용 국기를 따로 만들면 안 되나? 뭐 한국에서도 태극기 방향 건곤감리 맞춰서 안 걸면 사람들이 난리치긴 하잖아 바람 안 불어서 국기가 바닥을 향한다면?
  3. 부탄(Bhutan)이라는 국명은 산스크리트어로 "티베트의 끝"이란 뜻인 "보따-안따(भोट-अन्त)"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앞의 보따(भोट)는 고대 티베트어티베트를 가리키던 말인 "보드(བོད་)"이며, 티베트의 끝이라는 이유는 말 그대로 티베트 고원의 남쪽 끝에 있었기 때문.
  4. 종카어 'འབྲུག་ཡུལ་(파일:Attachment/부탄/Druk Yul 2.png)'를 와일리식 표기법에 따라 라틴 문자로 옮긴 것이다. 공식 로마자 표기법(25p)에 따른 표기는 "Dru Ü"로 (다만 실제로는 "Druk Yul"이라는 표기가 더 흔히 쓰인다.), 소리나는 대로 옮기면 쭈 위가 되며 TWICE 멤버 이름 쯔위 아님 용의 나라라는 뜻이다.
  5. 중국티베트어족티베트-미얀마어파에 속하는 언어. 글자는 티베트 문자를 쓰나 발음이나 단어가 좀 다르다고. 그래서 티베트 인과 부탄인들이 만나면 대충 서로 알아 듣는다고 한다. 일단 종카어가 공용어이긴 한데, 학교에서는 우리나라의 윤리시간과 국사시간에 해당되는 시간을 제외하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므로 젊은층은 대부분 영어가 상당히 유창하다.
  6. 자료마다 각각의 수치가 다른데, 종전 글에서는 47,500으로 면적이 표기되었었다. 정확한 면적 측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어서 (인도가 없었더라면 부탄은 진작에 티베트 꼴이 되었을 것이다.) 해외 자료들도 차이가 심한데 구글 지도에서는 약 38,394km2로 나와서 여기도 아주 조금이지만 차이가 있다. 다만 해외 자료가 가장 많이 표기된 게 그중 38,816이기에 나무위키에서는 가급적 38,81KM2를 사용하기 바란다.
  7. 에스페란토로도 부탄 국민과 뷰테인 모두 Butano로 같다. (…)
  8. 이렇게 된 원인은 지진과 화재로 인해 역사적인 사료가 될 문서들이나 역사서들이 대거 소실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세기 이전의 역사는 개괄적인 파악이 가능한 선에 머무르는 것이다.
  9. Burling, Robbins. "The Tibeto-Burman Languages of Northeastern India," <Sino-Tibetan Languages>. Abingdon: Routledge, 2013
  10. 이 당시 까규빠는 겔룩빠와의 경쟁에서 패배해 티베트에서는 영향력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하지만 부탄에서는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까규의 분파인 둑빠 까규의 법왕은 부탄 국왕의 국사(國師)로 대접받는다.
  11. 티베트어(종카어)의 영문식 표기를 모르는 많은 한국인 역자들이 "왕추크"라고 음역하는 경우가 많다. 동국대학교 경주 캠퍼스 부속 티베트 장경연구소에서 만든 티베트어 표기안이 있다.
  12. 그래서 남티베트계 나라들이 있던 아루나찰프라데시 주는 중국 땅이라고 중국인들은 주장하지만 인도에서는 무시하며 군대를 주둔시켜서 악사이친처럼 허무하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 부탄은 이에 대하여 강제로 합병당한게 아니라 원해서 합병한 것인데 왜 중국이 끼어드느냐며 인도 편을 든다. 사실 몇몇 작은 왕국들은 인도에게도 반협박도 당하던 터라 불쾌해했지만, 그래도 중국이 아니라 인도에게 병합된 곳이 대다수였다.
  13. 2011년에 지방선거가 있었고, 총 205명을 선출했다.
  14. 각 지역이 날짜를 나누어 선거를 치루었다.
  15. 이는 왕의 나이를 제한하는 법률로써, 이러한 법률을 가진 나라는 전세계에 몇 곳 되지 않는다.
  16. # 이곳의 기후는 해발고도가 낮았다면 아열대나 열대기후였을 곳이 해발고도가 높아서 온대기후에 속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이런 기후를 아열대고원기후라고 한다.
  17. 의사가 아닌 보건소 직원이나 한약방 할머니, 할아버지
  18. 네팔은 이들이 부탄인이므로 부탄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입국을 거절했다. 일단 주된 이유는 10만명씩 되는 난민을 네팔이 갑자기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겠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저 난민들은 19세기부터 부탄에 정착을 시작한 네팔인들의 후손이고 정식으로 부탄에서 국적을 받았다.
  19. 아예 왕실에서 도맡아 마약 퇴치 캠페인과 중독자들의 재활을 진행하고있다.
  20. 부탄 경제가 발전하면서 시골에서 청소년들이 공부하여 팀푸의 대학으로 오게되고 기존의 팀푸 출신 청소년들까지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에 따라 고학력자도 늘어났지만 문제는 부탄의 국력상 한계가 있어서 이들을 전부 취업시키기가 힘들다. 따라서 대학은 졸업했는데 일자리가 없거나, 학교생활에 찌들어버린 청년들이 마약을 접하게 되는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이 마약복용문제가 미성년자들에게까지 번져가고 있다는 것.
  21. 대마는 줄기의 섬유는 옷감(삼베)소재로, 씨앗은 기름짜는 용도로 쓰인다. 흔히 말하는 환각효과를 바라고 피우는 부분은 대마 암그루의 꽃이다.
  22. 국어, 국사시간 빼고 나머지 과목은 전부 영어로 진행한다.
  23. 부탄여행가신분의 말을 들어보면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영어대화가 가능하다고ㅎㄷㄷㄷ.
  24. 다만 이는 고증오류(?)라고 볼 수 있는 게 실제로 부탄에서 한국에 파견한 외교관은 없다. 수교는 했으나 외교관을 파견하기 애매할 경우 근처에 있는 지역 강국의 외교관이 해당국의 외교 업무를 겸임할 때가 많은데, 한국과 부탄이 딱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한국은 주(駐) 방글라데시 대사가 부탄 대사를 겸임하고 있고, 부탄은 한국인 가운데 명망 있는 사람을 명예 총영사로 임명해서 공백을 메꾸고 있다.(이명박 전 대통령이 14대 국회의원 시절에 부탄 명예 총영사로 임명된 적이 있다). 혹시 한국인이 입국 비자를 받아야 한다면 명예 총영사에게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