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중근

(봉의사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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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5일 어린이날 야생마가 아닙니다. 꼬마가 불쌍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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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트윈스 No.51
봉중근(奉重根 / Jung-Gun Bong)
생년월일1980년 7월 15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서울특별시 강북구
학력수유초-신일중-신일고-성균관대[1]
포지션레슬링 투수 타자
투타좌투좌타
신체조건188cm, 98kg, B형
프로입단1997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7년 LG 트윈스 1차 지명
소속팀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2~2003)
신시내티 레즈 (2004)
LG 트윈스 (2007~)
등장음악Drowning Pool - Soldiers[2]

2010년 KBO 리그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대호(롯데 자이언츠)봉중근(LG 트윈스)박용택(LG 트윈스)
LG 트윈스 등번호 47번
김광우(2006)봉중근(2007~2008)이형종(2009)
LG 트윈스 등번호 51번
정의윤(2005~2008)봉중근(2009~ )현역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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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 이상훈의 뒤를 이은 LG 트윈스 좌완 에이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LG 트윈스의 수호신이자 LG 프렌차이즈 역사상 한시즌 최다 세이브 투수.
해외리그에서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프로로 복귀한 선수들 중 가장 좋은 통산성적을 남긴 선수[3]

그리고 윤석민상을 3년 연속 수상한 불운의 투수

봉황신공의 그걸 찾았다면 여기

2 선수시절

2.1 아마추어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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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고시절 타자 봉중근.

신일고 시절 투수로서 뿐 아니라 타자로도 대단한 재능을 보여주었던 선수다.[4] 또한 1997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4게임 연속 홈런, 타율 5할을 기록하며 최우수선수가 되었다. 같은 해 청룡기에서는 타율 .688이라는 후덜덜한 기록을 보여주며 MVP, 타격, 타점왕을 휩쓸기도 했다. 1997년 신일고의 황금 클린업 트리오[5] 봉중근-안치용-김광삼 그리고 1번타자 현재윤[6]은 국내 4개 대회에서 신일고의 3관왕을 이끌었고 세명은 최우수타자, 최우수선수, 최우수투수, 대회MVP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이 놀라운 활약 덕에 97년 당시 고3의 신분으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스카웃되어 메이저 리그 무대를 밟는다.

2.2 메이저리그 선수 시절

2.2.1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시절

원래 애틀란타에서는 타자로 키울 생각이었으나 좌완에 148km/h를 찍는 것을 보고 투수로 전향시켰다. 이와 관련 봉중근 선수 본인이 인터뷰 및 자신의 자서전에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설명하자면, 훈련장에 간 첫날 타격연습을 시작했는데, 자신의 스윙이 잘못된 것인지 계속해서 배트가 부러졌다고 한다. 4,5자루의 배트가 전부 부러진 상태에서 여분의 배트도 없던 중에 좌완인걸 보고 투수쪽 연습에 합류하라고 얘기하였고, 그때부터 투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당시 어려서 다른 의견을 내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다고 하는데, 훗날 은퇴 전 팀에서 허락한다면 딱 1년만이라도 타자로 전향해보고 싶다고 한다. 대개 나이를 먹음으로 인해 스윙스피드 하락이 오기 시작하면, 제구력을 갈고닦아 롱런할 수 있는 투수와는 달리 타자생명은 하향세가 되므로 이는 그냥 얘기하는 정도로만 생각해도 될듯.
2002년 메이저리그로 콜업. 2002년 4월 23일 터너 필드 對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전의 선발투수로 메이저리그 첫 경기 등판. 애리조나의 에이스 커트 실링과 맞대결을 벌였으나 6이닝 5실점을 기록했다.

2.2.2 신시내티 레즈 시절

이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며 2004년 시즌 시작되기 직전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된다. 2004년 6월 2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원정경기에 등판, 6이닝 무실점으로 메이저리그 첫 선발승을 거둔다.[7] 참고로 봉중근의 메이저리그 첫 승은 2003년 7월 6일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경기에서 거둔 구원승이었다. 이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다가 2005년 팔꿈치 부상으로 한 해를 통째로 쉬고 2006년 WBC 이후 LG 트윈스에 입단한다.

2.3 한국프로야구 선수 시절

2.3.1 2007 ~ 2008 시즌

2007년에 LG 트윈스에서 수준급의 선발을 기대했으나 초반에 반짝하고 후반엔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5월 4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5회말 안경현에게 머리로 향하는 투구를 하였고 이에 화난 안경현이 달려들자 난투극을 벌였다. 그리고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으며 심판진에 의해 퇴장당한다.

Don't Try this at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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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바디 드랍 시전 후 롤업으로 역공격 당해 폴패.[8]

2007년도 기대치 이하의 성적으로 인해 연봉이 1억이나 깎이는 폭풍세일을 당하기도 했으나, 2008시즌에 들어와서 LG 마운드의 당당한 에이스가 되었다. 새로 얻은 별명은 봉타나… 하지만 팀 성적이 팀 성적인지라 8이닝을 무실점으로 던지고 내려가도 9회에 역전당하는 가슴아픈 순간을 자주 겪어서 2007년의 윤석민을 보는 듯 하였다는 평이 다수 존재한다. 그리하여 평균자책점 2.66의 뛰어난 호투에도 불구하고 11승으로 두자리 승수를 겨우 넘긴데다 8패나 당하는 바람에 2008년 윤석민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 아래 짤방이 마리오의 노래 'Good bye'의 뒷 부분에 가사 'Don't Cry'가 반복되는 부분이 브금으로 깔려 돌아다니며 봉크라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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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투수는 바라지도 않아요. 자책이라도 막아줘 개새끼들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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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견제하는 능력은 국내 최정상급이다. 이 분이 생각난다

2008시즌 9월 3일 등판하여 롯데 자이언츠의 연승 가도를 막았다. 6⅔ 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여 롯데 자이언츠의 폭발적인 화선을 잠재웠다. 덕분에 12연승을 노리던 롯데 자이언츠에게 고추가루 포를 제대로 먹였다. 만약 9월 3일에 LG가 승리하지 못했더라면 롯데는 16연승까지 가능했기에 롯데 팬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2.3.2 2009 시즌

2009년 초엔 이런 투수를 마무리로 기용한단 기사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참조) 야구팬들은 김재박 감독이 또 사고쳤다면서 맹비난하였다.

하지만…WBC 이후 선발로 기용하기로 다시 방침을 변경했다. (참조)

WBC에서 일본과의 예선 2차전에서 본인이 지망해서 선발투수로 출전해 일본을 상대로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줘 야갤등에서 엄청난 찬양을 받았다. 그리고 야갤에서는 안중근 의사와 이름이 같은 것을 빗대서 만든 짤방까지 나왔다. 일명 의사 봉중근. 그리고 LG 트윈스는 이걸 프린트한 티셔츠를 한정판으로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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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검은색 실루엣은 스즈키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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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벌어진 일본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두차례에 걸친 견제구 동작(퀵모션)만으로 이치로슬라이딩을 할 정도로 당황스럽게 만들어 이치로 전용 조련사 타이틀을 획득했다(…). 실제로도 국내에서 주자견제능력은 최고수준... 견제율이 약 7할에 근접한다.

한편 이와 반대로 일본과의 승자조에서 난조를 보인 김광현은 더더욱 까이는 중…

한일 베이스볼 클래식 5차전WBC 결승 대 일본전에 세 번째로 선발 등판했지만, 지난 2경기에서 당한 것에 칼을 갈고 나온 일본 타자들의 집요한 커트 신공에 말리고,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성적 자체는 4이닝 1실점(비자책)으로 준수하였지만 투구수가 많았던 것이 흠 아닌 흠이었다.

어쨌든, 이제 봉신연의는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2008년 4월 15일, 잠실 KIA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서, 타선이 무려 8점씩이나 내준 덕에 손쉽게(?) 승리하나 했으나, 우규민정찬헌의 퐈이야로 날려먹었다. 이 경기를 세간에서는 415 막장대첩이라 부른다. 역시 엘롯기. 그리고, 정확히 1년 후인 09년 4월 15일, 문학 SK전에서 먼저 3실점하긴 했으나 타선이 4점을 내 준 덕에 승리투수가 될 뻔 했으나, 이번에도 우규민이 9회말에(이하생략). 더더욱 안습인 것은 09년 4월 15일 새벽에 봉중근 딸이 태어났고, 봉중근은 '딸을 위해 승리투수가 되겠다'라며 등판한 것... 참으로 지못미. 이때 잠시 "딸아, 네가 태어나던 날 아빠는 선발투수였단다. 아빠가 내려가기 전까진 이기고 있었지. 그런데 규민이 삼촌이..." 라는 드립이 유행했었다.

2009년 6월 4일 한화 이글스와의 대결에서 6이닝동안 9개의 탈삼진을 잡아냈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패전투수가 됐다. 안습한 팀내사정 때문에 선발과 마무리 보직을 오가며 컨디션까지 흔들렸던 윤석민과 함께 2009년 윤석민상 타이틀을 경합 중이었다....만 윤석민이 폭발한 팀타선을 배경으로 호투로 승수를 쌓고있던데 반해 봉중근은 여전히... 다만 류현진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참고로 류현진과 함께 다패 공동 2위였다.[9]

2009년 8월경 팔꿈치 통증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라는 LG트윈스 최악의 악재가 벌어지고 말았다. 근데 자고 났더니 통증이 사라졌다고. 사실이라면 흠좀무. 하지만 8월 27일에 결국 시즌 아웃 기사가 나왔다.

10월 25일 일요일에 같은 팀의 박용택과 함께 현대백화점 신촌점에서 사인회를 가졌다.

결혼한 아내와의 이야기가 특이한 듯. '날 때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식 발언부터해서 부모님에게도 맞은적 없는데등등의 발언을 했다고(...)기사를 한번 보자

2009년에 랩퍼 이비아와 함께 사랑해요 LG 힙합버전을 불렀다. 이대진과는 달리수준급의 랩을 했다. 이곳에서 들어보자

팀의 유일무이한 에이스였는데...연봉 동결. 이쯤 되면 이 사람이 선수인지 자원봉사자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 이게다 신연봉죄때문이다

2.3.3 2010 시즌

2월 25일, 훈련을 하던 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최훈의 GM카툰에 의하면 이곳 부상은 완치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LG 트윈스 망했어요

4월 4일 경기에서 3이닝 동안 많은 실점을 하고 강판 당한 직후에 몸 상태도 안 좋은 데다가 에이스 답지 못한 태도의 경기를 했다는 이유로 감독과 트러블이 생겨서 2군행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감독과의 트러블이 생긴 과정에서 봉중근이 부인에게 감독에게 들은 말을 옮겼고... 위의 이야기에서도 봤듯이 기가 센 것으로 보이는 부인이 그 말을 듣고 빡쳐서 싸이에 감독을 욕하는 심경문을 올렸다. (링크바람) 이형종의 싸이 감독 맞짱신청 사건이 있은지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터진 싸이홈피 사건이었다.
덕분에 봉중근과 박 감독과 봉중근 부인에 대해 보는 시점에 따라서 각자 다르게 까였다.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게 내조

그러나 그 이후로 서서히 페이스를 살려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중. 마운드가 불안하면 언제든지 구원투수로 나갈 수 있다그냥 내가 연투해서 이기고 만다 잉여들아고 밝히는 등 팀 케미스트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2010년 8월 25일까지 10승(리그 9위) 8패, 평균자책점 3.31(리그 5위), 탈삼진 112개(리그 5위) 160⅓이닝(리그 2위)를 기록중. 거듭된 혹사와 부상으로 직구 구속을 크게 떨어뜨린 채 던지고 있다고 한다.

2010년 최종성적은 178⅓이닝 10승 9패 평균자책점 3.58, 탈삼진 130개를 기록. 08년 이후로 정상적인 선발로테이션을 돌린 적이 거의 없는 LG 트윈스에서 유일하게 3년동안 자기 자리를 지켜왔지만 이 병신들 불지르는거 보는 것도 한두번이지완만하게 성적이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것이 안타까울 따름. 또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류현진-김광현-양현종 과 함께 좌완 에이스부대의 맏형노릇을 해야한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주장으로 발탁됐으나 훈련기간 불미스러운 루머[10]시달렸다. 루머가 사실이면 이 분라인에 들어가려나?

아시안 게임 1차전 대만전에서는 7회초에 원래 윤석민이 등판하려고 했는데, 윤석민이 경기 전 등록된 선수 명단에 없어서 쫓겨나고(…) 대신 급히 등판했다. 그리고 역시나 몸이 안 풀린 건지 볼은 볼대로 많고 상대 타자들도 잘 잡지 못했다. 그나마 손시헌의 센스로 무실점으로 잘 막았으니 다행이었다.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 10학번으로 입학했다.

산다라박을 격하게 아낀다는 말을 했다.

김성근이 탐나는 선수 톱3중 하나라고 밝혔다. 나머지 둘은 당연히 이대호류현진. 사실 둘 다 SK가 지명할 수도 있었는데[11] [12]

2.3.4 2011 시즌

3년간의 혹사때문에 몸에 무리가 많이가서 전훈때도 2월이 지나서야 공을 만졌다고 한다. 그런데 시범경기에서 덜컥! 팔꿈치통증을 느껴 팬들을 놀라게 했으나 이상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무리하면 안되기에 4월말에 복귀한다고 한다.

관중석에서 LG경기를 관람하는게 카메라에 잡혔는데 LG가 찬스를 놓치거나 역전을 당할때 역동적인 안타까움을 몸으로 표현해서 관중근 이라는 별명이 새로 생겼다.

그렇게 재활과 준비의 시간 끝에 5월 1일날 볼질로 판을 거하게 말아먹은 심수창과 교체되어 등판했다. 이 때의 환호성은 그야말로 잠실이 떠나가라 수준. 이 날의 기록은 3⅔이닝 4볼넷 3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다. 아직 몸상태가 완전하지 않다는 걸 고려하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다.

5월 3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역동적인 응원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박용택이 적시타를 때리자 기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관중석에서 쌓은 응원내공! 역시 관중근!

5월 10일 한화 이글스와 경기전에 류현진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었는데 그 포즈가 꽤나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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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봉 : 고백할게 , 류현진 : 왜그러세요 무서워요

경기 때 이외에는 다 선후배간이니 친해서 그런것이겠지만 봉중근이 좀 장난스럽게 들이댄 듯한 모습이다. 거기에 난감해하는 류현진의 모습이 인상적. 마성의 봉중봉

그러나 시즌 시작 전부터 봉중근을 괴롭혔던 부상문제가 결국 완전히 그의 발목을 잡고야 말았는지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고 말았다.관련기사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하는 것이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인데 이럴 경우 수술 후 재활까지 생각한다면 빨라야 2013년에 복귀가 가능하기에 봉중근 본인에게도 크나큰 아픔인 셈이다. 박종훈 감독이 부상사실을 빨리 말하지 않은데 대해 책망을 했다고 카더라... 봉중근은 팀 분위기가 좋은 이때에 꼭 보탬이 되고 싶어 부상을 참았다는데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 이후 LG 트윈스내려갔다.

인대접합수술을 마치고 재활에 들어갔다고 한다. 다시 150km/h를 던질 수 있을 거 같다는 말을 덧붙이며 수술소감을 밝혔다.

6월 26일 다시 LG선수단을 방문해서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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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을 복귀시점으로 잡고 재활에 매진한다고 했다. 일부 팬들은 괜히 쓸데없는 책임감과 의욕만 가지고 서두르는 거 아니냐며 언론에 입털지 말고 확실하게 완치될 때까지 재활에나 매진하라고 깠다. LG 트윈스연이은 트레이드로 투수를 많이 확보해 놓은 상황이라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재활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된 상태였는데, 그놈의 승부조작 사건이 터져 트레이드해온 두 선수가 없어져버렸다.DTD

2012시즌 연봉협상에서 신연봉제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하고 무려 전년대비 61%가 삭감된 1억 5천만 원에 사인했다.

2.3.5 2012 시즌

해당 문서 참조.

야생마를 이은 LG의 새로운 좌완 마무리 투수.

재활 후 시즌 초 마무리로 전향했던 레다메스 리즈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대신 마무리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후 좋은 성적으로 LG의 불펜진을 안정시키며 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6월 말 엘 꼴라시코에서 블론세이브를 저지르고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화전에 화풀이하다 오른손을 다치고 만다. 마무리 부재로 결국 LG는 다음날에서도 9회에 동점을 허용하고 연장에서 역전을 당했고, 마지막에는 이용훈에 퍼펙트게임 직전까지 끌려간 졸전 끝에 엘꼴라시코에서 스윕패를 당했다. 이후 7월 10일부터 1군에 복귀하였으나, 그간의 부재가 DTD의 큰 원인이 된 터라 자기 몸관리 하나 못 한다며 욕을 엄청나게 얻어먹었다. 엘지 타선이 터져주면 이런일은 없었다,봉중근보다 엘지 물빠따를 욕하자[13]

2.3.6 2013 시즌

2013년 정규시즌 두산 베어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2위 확정 세이브를 한 직후 저렇게 소화기를 때렸다 카더라

해당 문서 참조.

김용수, 이상훈을 잇는 LG 트윈스의 철벽 마무리.
프랜차이즈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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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 때의 개그 본능

그리고 2013시즌 위의 저 패션을 경기중 덕아웃에서 또다시 보여줘 네이버 중계창의 팬들을 제대로 웃겨주었다.영상 링크

2.3.7 2014 시즌

전반적으로 난타당하기도 했지만 극한의 타고투저 속 마무리로서는 평균자책점이 제일 낮았다. 이 해 세이브왕 손승락이 4.33, 2위 임창용 모두 5.84의 평균자책점에서 놀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2.3.8 2015 시즌

봉포영화
마음고생이 심했던 마무리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선발 투수로...
해당 문서 참조.

2.3.9 2016 시즌

시즌 전 10승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선발로 등판한 횟수가 10번이 안되는...
다시 불펜투수로 돌아왔지만 실패

해당 문서를 참조. 너무나도 급속도로 퇴물이 되어버렸다. 2군에서도 방어율이 심각하게 처참할 정도이니... 8월 16일 2군 경기 기록을 보면 이제 1군 등판, FA는 포기 해야할것같다.

2.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2애틀랜타 브레이브스1601000.0007.508024551.667
2003445762120.7505.05568394732321.526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4신시내티 레즈315⅓11000.5004.7017310111381.761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사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7LG 트윈스24111⅔67000.4625.321216605671661.558
200828186⅓
(1위)
118000.5792.66
(3위)
1531380140
(3위)
66551.186
200926172⅓
(4위)
1112000.4783.29160137112770631.259
201028178⅓
(3위)
109000.5263.581661383130
(5위)
74711.318
2011416⅓12000.3334.96131147991.347
20124038012600.0001.182611436550.947
201355618138
(2위)
00.8891.3344230541091.164
20145049⅔2430
(3위)
00.3332.90512214516161.369
20154749⅓521500.7144.936010293928271.68
MLB 통산(3시즌)4878⅓74120.6365.178111516250451.583
KBO 통산(8시즌)302863544610900.5403.35794614026343493211.31

2.5 여담

  • 봉중근은 특이하게도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오히려 더 실력이 향상된 케이스인데, 미국식 훈련이 아닌 한국식 훈련이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오히려 더 도움이 되었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 실제로 스즈키 이치로의 광팬이다. 본인이 타자를 꿈꾸는 것도 이치로를 존경했기 때문. 그의 등번호인 51번도 이치로를 존경하기 때문에 단 것이다.[14] 메이저리그 시절에 이치로에게 가서 싸인을 받으며 "당신을 존경하기에 51번을 달고 있다"라고 말했고, 2회 WBC때 일본과의 경기전에 이치로에게 가서 나를 기억하냐고 묻자, "너 아직도 51번 달고 있니?"라고 봉중근을 알아보면서 대답하자 진심으로 기뻐했다고. 하지만 이치로의 오랄질을 질책하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특출난 견제 능력으로 이치로에게 굴욕을 선사하기도 했다.
  •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던 삼성 라이온즈브라이언 매존이라는 용병투수가 같이 마이너에서 뛰었던 봉중근이라는 선수를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미미한 선수까지는 다 모른다" 라고 답해 졸지에 봉미미라는 별명을 지니게 되었다. 팀 내에서는 변화구가 밋밋하다고 '봉밋밋'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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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이 매우 튼실하다. 최동수 못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팔뚝
  • 2004년 결혼했다. 부인은 한 살 연상. 연인 시절 여성 팬과 같이 술자리를 하던 봉중근에게 따귀를 때린 사건부터 2005년 부부싸움(…) 끝에 봉중근이 경찰서로 이송되었던 사건, 2010년 박종훈 감독을 디스하는 글을 미니홈피에 올린 것 등등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상당히 기가 센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가끔 시끄럽긴 하지만 궁합은 맞는지 잘 살고 있다.
  • 상당한 효자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택시운전을 했고, 그 택시를 타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아들 자랑을 많이 하셨었다고.. 가족 중 아들은 자기 혼자인데다가 누나들만[15] 있기 때문에 고교시절 미국으로 갈 때에도 집에서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한다. 2012년 홈구장에서 아버지가 시구를 하고, 아들이 그 공을 받는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으나,, 얼마 못 가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고, 2013시즌 들어와서는 자신의 글러브에 아버지 사진을 새겨넣은 상태이다.
  • 2012년 소화전 사건 때 골절당한 오른손을 수술하면서 상처가 거의 남지 않게 수술할 수도 있었으나 앞으로 보고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상처를 일부러 크게 남겼다고 한다.
  • 2012년부터 마무리 투수을 맡고 있고, 팀의 든든한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으나, 마무리 투수로서 금기해야 할 과도한 흥분과 자책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앞서 언급한 소화전 사건도 블론세이브에 대한 본인의 자책과 분을 이기지 못한 결과로 인해 생긴 참사. 뿐만 아니라 2013년 6월 14일 넥센전에서도 블론세이브를 범하고 덕아웃에서 심하게 자책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다행히 문선재의 끝내기 안타로 이겨서 망정이었지, 아닌게 아니라 문선재의 끝내기 세리모니때 상당히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문선재가 사람... 아니 주먹 하나 살렸다 어쨌든 희노애락이 뚜렷한 본인의 성격상 어쩔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팀의 마무리이자 수호신으로서 이런 면은 분명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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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사진도 있다.봉중봉 완벽한 좌우대칭[16] 봉칼 코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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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업으로 파스타집을 하고 있다고 한다.
  • 류현진과 사적으로 친한 걸로 보인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진출 때 지지해주면서 조언도 해줬고, 연락도 종종했다고. 2013년에는 둘 다 각자 정신이 없어서 연락은 못했지만 2014년 애리조나 스프링 캠프에서 만났을 때는 오랜만에 만나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 웹툰 야심작 정열맨에서는 봉중근이라는 이름의 기술이 나온다. 봉황의 가운데 근육(...)이란 뜻으로, 김정열의 가슴에서 제 3의 손이 나오는 기술.
  1. 하지만 성균관대 야구부 소속인 적은 없다. 류현진(대전대), 한기주(광주대) 등과 같이, 프로입단 후 뒤늦게 대학교에 입학한 케이스. 10학번으로 입학했다.
  2. 전주 부분에서 사이렌이 나오는데, 이게 상당히 위압감이 넘친다. 그야말로 간지폭풍.근데 20초룰때문에 그냥 싸이렌만 울리고 끝난다.
  3. WAR 기준. 24.66으로 1위. 2위는 WAR 24.62의 송승준으로 2016시즌의 결과에 따라 1, 2위가 뒤바뀔 수 있다. 참고로 3위 최희섭 15.90, 4위 채태인 14.81, 5위 서재응 13.78
  4. 봉중근을 애틀란타로 스카우트했던 빌 클라크는 "나는 영원히 내가 베이브 루스를 잡았다고 믿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스탠 뮤지얼을 잡았다고 믿을 것이다. 어깨 부상 때문에 타자로 전향해 슈퍼스타가 된 스탠 뮤지얼 말이다. 나는 영원히 메이저리그 홈런 기록을 깨뜨릴 주인공과 계약했다고 믿을 것이다. 빅리그 스카우트 경력 36년 동안 나는 그런 재능을 가진 선수를 본 적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출처
  5. 신일고 다이너마이트 타선 내지 신일고 봉삼이(봉중근+김광삼)라고도 한다
  6. 웃길지 모르지만, 현재윤은 발 빠른 포수였다!! 그래서 발 빠른 포수라는 유니크한 점은 그가 드래프트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현실은 통산 도루 10개
  7. 이날 경기에서 켄 그리피 주니어는 통산 500홈런을 기록했다. 국내에서조차 봉중근의 선발승이 묻혀버릴 뻔 할 정도.
  8. 이 당시 동영상이 2012년 5월 6일 잠실 두산-LG 경기의 SBS ESPN 중계 때 재연되었는데(6회초 최준석 아웃 이후), 이 경기 해설자인 안경현은 "이 사람들 너무 하네~"라며 멘탈붕괴했다.
  9. 참고로 다패 1위는 김혁민. 하지만 평균자책점의 차이가(…) 넘사벽이다.
  10. 부산에서의 국가대표 평가전 후에 봉중근, 류현진, 이용규가 여성들과 어울려 술마시고 숙소까지 데려갔다는 주장이 KBO 게시판에 올라왔다. 실명제인 KBO 게시판에 올라와서 신빙성있다는 측과 증거가 없고, 기사화되지 않았기에 신빙성이 없는 루머라고 하는 측이 엇갈린다.
  11. 류현진은 2006년에 한화에 지명받았고 김성근은 2007년에 SK로 왔다. 결론은 SK 프런트 또는 조뱀의 실수.
  12.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실수라고 하는거지, 실제로 고교때 아무리 특급이었다고 해도 수술이나 부상경력이 있는 선수를 쉽게 뽑을 순 없다. 삼성의 STC같은 재활시설이 잘 갖춘 곳이라면야 고쳐쓴다는 마음으로 지를수도 있지만 그렇지못한 팀에서는 망설일 수 밖에 없으니. 더군다나 그 시절 SK에는 투수자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한게 없었고 박경완의 뒤를 이을 포수재원 마련이 더 시급했기에 이재원을 택했을 뿐이다.
  13. 엘지 물빠따의 문제도 맞지만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 하고 소화전에 손가락을 부딪혀 부상을 당했다는건 멘탈측면의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14. 타자로써 51홈런을 날리겠다고 51번을 달았다는 얘기도 있다.또한 신일고 시절 5번이였던 김광삼은 그보다 딱 한개만 더 날리겠다고 52번을 달았다고(...)
  15. 누나 3명의 막내아들이다.
  16. 관상학적으로는 이렇게 좌우가 대칭되는 얼굴이 매우 좋은 얼굴이라고 한다. 이렇게 짤방을 만들면 웃겨서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