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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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진한
비지국
신라에 복속

比只國

1 개요

원삼국시대 변한(경상도) 지역의 소국들 중 하나. 창녕 척경비 등에 나타나는 비자벌(比子伐) 등의 지명과의 유사성으로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으로 비정된다.

2 역사

이미 음즙벌국, 실직국, 우시산국 등을 점령해 삼척부터 울산, 부산까지 지금의 경상도 동해안 지역을 장악한 지 6년만인 신라(사로국) 파사 이사금 29년(108)에 다시 영역 확장에 나선다.

29년(108) 여름 5월에 홍수가 나서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10도(十道)에 사자를 보내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 군사를 파견하여 비지국(比只國), 다벌국(多伐國), 초팔국(草八國)을 쳐서 병합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 이사금

비지국이 위치한 창녕 지역은 북으로는 반로국(후의 대가야), 남으로는 안야국(후의 아라가야) 등이 있는 요충지인데, 이후 삼국사기 기록들을 보면 신라가 가야 계열 국가들과의 본격적인 힘싸움을 위해 창녕 땅을 교두보로써 점령한 듯 하다.

나라 자체는 신라의 침공 한 방에 세트로 망한 세 나라 중 하나 정도로 듣보잡이지만문헌기록과 다르게 고고학 자료로 본다면 듣보잡 수준은 아니다. 창녕지역에는 지역군 별로 봉분직경 10m 이상의 고총고분이 산재하고 있다. 창녕박물관 뒤에 있는 교동고분군만 가도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정도 급의 고분이 계성고분군, 송현동고분군, 영산고분군 등 구역별로 존재하고 있다. 금동관 관모, 금제이식 ,환두대도 등의 위세품과 토기류등도 수백점에서 수천점이상이 매납되었다. 현재의 고고학적 연구성과로는 신라가 가야를 정복하기 위한 전진기지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창녕 지역에 많은 지원을 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훗날 신라 진흥왕이 정복한 뒤 창녕 척경비를 세워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