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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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종걸(李鍾杰)
출생일1957년 5월 22일
출생지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상도동
(現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본관경주 이씨
학력예원학교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법학과 학사
소속 정당더불어민주당
지역구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종교가톨릭(세례명: 그레고리오)
배우자정락경
자녀2녀
약력(현)제20대 국회의원
(전)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전)제16~19대 국회의원
(전)법무법인 나라 대표 변호사
외부 링크공식 사이트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1957년 서울특별시에서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자 이회영과 한산 이씨 이은숙의[1]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이규동[2]의 장남로 태어났다. 전 국회의원이자 국가정보원 이종찬의 사촌 동생이다.[3] 그리고 성재 이시영의 조카손자이다. 그리고 타임지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150대 영향력 있는 정치인물 중 93위에 들기도 했다.(2013)

2 행적

국민학교 시절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현 안양시)으로 이사하여 성장[4]했다. 예원학교-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5]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노동자 야학운동을 하다가 대한민국 육군 병으로 복무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학사편입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3학년에 편입하였다.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가입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노무현을 지지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6] 이후 2013년까지 대한농구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MB의 졸개"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유인촌 장관이 "찍지 마 X발"이라는 표현을 하게 만들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5년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를 주도했으며 3월 2일 마지막 주자로 나와 대한민국 국회의원 단독 연설론 가장 오래 발언한(12시간 32분) 인물이 되었다. 그동안 문재인 대표체제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파업을 벌인 행위는 잘못된 것이지만[7]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고,[8] 새삼스레 선친들의 독립운동 행적이 재조명 되기도 했다.

다만, 지역구인 만안구의 여론 자체로는 새누리당 후보와 기껏해야 박빙 우위인 데다, 당 내에서는 강득구 후보[9]에게 밀리는 지라 20대 국회에서 그를 보게 될지는 미지수. 평촌신도시를 업은 동안구만안구를 앞지른 상황[10]에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딱히 발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유권자들이 피로감을 느낀 탓이다. 안양 지역구 3구를 전부 의 원로 의원이 차지[11]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 때문에 안양 내 타 지역구 의원들에 비하면 컷오프 유력 후보 쇄신 대상으로 더 부각되는 처지.

그런데, 경쟁력 높은 같은 당의 강득구 후보를 제치고 경선도 아니고 단수공천 됐다.(!) 공천위원장의 말로는 딱히, 이종걸 후보가 경쟁력이 있어서 단수 공천한 것이 아니라 원내대표로서 고생했기 때문에 단수공천을 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며, 공정하지 않은 선정 방식 즉, 계파 배분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정청래의원이 같은 당내 인물에게 날린 막말을 이유로 공천배제를 당한 반면, 밑에 나와 있듯이 현 대통령에게 막말을 날린 적이 있는 인물이 막말 논란 없이 단수공천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공천의 불공정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되고 있으며 필리버스터로 얻은 인기를 다시 날려먹고 있다.

단수 공천 확정 이후로는, TV조선을 비롯한 종편에 출연하면서, 이해찬 전 총리에게 자진해서 출마를 포기 하라고 압박을 하는 등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걸 보여주며, 친노 진영 네티즌들에게 필리버스터로 쇄신된 이미지를 다 날려먹었다.

본선에서는 만안구에서 시, 도의원을 지낸 새누리당 장경순 후보[12]와 맞붙었다. 투표전 여론조사에서는 별로 상황이 좋지 못했으나 개표결과, 45.4%를 득표해 8762표차로 이기고 5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15일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와 함께 비주류로 분류되는 김종인, 박영선 의원 등의 만류에도 7월 29일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로 출마하였고, 8월 5일 당 대표 예비경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8월 27일 본 전당대회에서 추미애에 밀려 패하였다.

2.1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테러방지법을 막아내기 위해 다시 써내려간 연설 최장시간 신기록.
필리버스터의 시작을 주도[13]하고, 가장 오랜 시간을 지켰으며 필리버스터의 마지막까지 장식[14]한 의원.

이종걸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취임 이후 문재인 당시 당대표와 사사건건 대립하며 당대표의 당연한 권한인 당직 인사권에 시비를 걸며 대립각을 세워 왔다. 특히 2015년 12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수십여일 넘게 당무를 거부하기까지 해 더민주 주류파 지지층 내에서 "쫑걸 리"란 비아냥을 들어왔으며 조금 더 강경한 더민주 지지자들은 20대 총선에서 반드시 물갈이를 해야할 의원들 중 한 명으로 꼽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 필리버스터를 기획한 주역이었고, 박영선 의원의 잘못으로 인해 하마터면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심히 미약할 뻔 했던' 필리버스터를 가까스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수습하는데 성공했다. 이 덕분에 더민주 지지층에게서 잃었던 점수를 상당 부분 회복한 분위기다.

마지막까지 비상대책위와 의원 총회에서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려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종걸 의원의 노력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꺾였고 막바지 동력을 잃은 필리버스터의 마무리라는 중책이 그에게 맡겨졌다. 결국 이종걸 의원은 마지막에 국회연설시간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서 모든 필리버스터 참여 의원들에게 노고를 전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참고로, 이종걸 의원은 원하지 않은 계기로 인해 필리버스터를 종결하는 것이 아쉬웠는지, 수정안에 대하여 새누리당과 합의되기 전까지는 필리버스터를 끝내지 않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15]

3 논란

  • 2000년 5월 17일 광주민주화운동 전야제를 끝나고 동료 정치인들과 단란주점에 갔다가 물의를 빚었다. 자세한 것은 새천년 NHK 사건 참조.
  • 2016년 1월 8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의원더러 부산 마이너리티라면서 여의도 쪽관 말이 통하지 않는 개혁파라고 비판했다가 또 논란이 일어났다.
  • 2015년 12월 22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이 병신인가. 국민이 바보인가" 라는 발언을 했다. 당내에선 "아무리 정부·여당을 비판하려는 의도였다고 해도 국민을 '병신' '바보'에 빗댄 것은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나향욱이 더한 발언이 있어서.. 묻혔다
  • 2015년 8월 13일 이덕일의 국회 강연에 참석한 바가 있으며 이 때문인지 김현구 교수의 고소장이 접수되었단 이유로 검찰총장에게 항의하는 등 유사역사학에 호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애초에 이덕일은 이종걸의 할아버지인 이회영 평전을 쓰는 등 이종걸 입장에선 예쁘게 보이고도 남을 만한 인물인지라... 다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할 때 "고대사는 환단고기,[16] 근현대사는 박씨 가문 행장기로 채워지는 것은 아닌지 주시해야 한다"라고 한 바 있어, 환단고기 자체의 문제는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이덕일이 어떤 짓을 하고 다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는 듯. 사촌형님이 떡사마랑 가까이 지내기도 하고(...)
  • 2015년 8월 1일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변절자들을 위한 조국이란 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이렇게 독립운동가 후손 다운 발언을 하는 사람이 신기남이나 김희선, 이미경 하고는 같은 당에서 어떻게 같이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
  • 2012년 8월 트위터에서 당시 새누리당 경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그년으로 칭했다. 당시 공천장사로 문제가 되었던 사안에서 화가났는지 검열없이 바로 SNS에 올려버린 것. 이후 비판이 이어지자 '그녀는'의 줄임말이라는 졸렬한 변명을 했다가 추가적인 비판을 받기도 했다.[17] # 개인적으로는 속시원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권위주의적인 한국사회에서 종교적 광신수준인 비판을 받았고 정치적으로도 새누리당 공천장사로 문제가 되었던 박근혜의 이미지를 한방에 회복시켜주고 피의자에서 피해자로 둔갑시켜줬다.
  • 3년 후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0월 22일 여야 지도부 청와대 회동에서 "아까 뵈니까 인상도 좋으시고, 말씀도 잘하시던데, 예전에 저보고 '그년'이라고 하셨잖아요" 라고 말하며 이 사건을 언급했다. 이 말을 듣자 이 원내대표가 매우 놀라고 당황하며 "그땐 죄송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다.
  • 이종걸의 '그년' 발언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였고, 이후에 문재인 대표를 향해서 '박정희의 유신을 보는 것 같다.' 라고 비판한 것이 더 구설수에 올랐다. 이때 당시 새정치연합 당원들이 이종걸 대표의 징계를 요청했고, 윤리 심판원까지 열렸다. 이로 인해 본인이 부랴부랴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 2016년 5월 29일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겨냥해 "대통령이 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된다면 국민이 시궁창에 버리는 이름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해서 역시 구설수에 올랐다. 위의 막말 발언과 마찬가지로 역시 다음날 부랴부랴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1] 얼마 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였는데, 여론조사 전문 업체 알앤서치의 김미현 소장은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이 발언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기사
  • 위의 사건들을 볼 때 깊게 고려하지 않고 행하는 언행으로 종종 문제를 일으키지만, 같은 당 정청래 전 의원이 너무 넘사벽이었던 탓인지 달리 크게 주목을 받진 않는 거 같다.

추가바람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시 만안구)
새천년민주당36,557 (38.8%)당선 (1위)2003.11 열린우리당으로 당적 변경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시 만안구)
열린우리당59,346 (51.6%)당선 (1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시 만안구)
통합민주당41,660 (44.6%)당선 (1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시 만안구)
민주통합당58,326 (50.9%)당선 (1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시 만안구)
더불어민주당55,217 (45.4%)당선 (1위)
  1. 첫 부인이었던 달성 서씨가 죽은 이후 1908년에 다시 장가를 들었는데 그 주인공이다.
  2. 2014년 3월 12일 별세
  3. 다만 전술한듯, 아버지인 이규동은 이종찬 전 원장의 부친인 이규학과 이복형제지간이다.
  4. 이건 이종걸 의원이 상당히 강조하는 내용이다. 실제 그의 집도 현재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에 있고, 출신 초등학교도 안양에 있는 만안초등학교일 정도.
  5. 참고로 최후의 고입고사 세대다. 경기고등학교를 비롯한 모든 서울시내 고등학교 입시가 폐지된건 1974년부터. 뿐만 아니라 화동 교사 마지막 졸업생이기도.....
  6. 참고로 이때부터 2012년까지 내리 경쟁후보로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정용대 후보가 나섰으나 매번 졌다.(...)
  7. 이전에는 친노, 친문 한정이라고 하는데, 원내대표가 2달 가까이, 당내 업무를 거절한 것은 당시 진보진영 대다수가 비판했던 일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회사에서 일하라고 뽑아 놓았더니(국민들이 투표로), 회장 마음에 안 든다고 사장이 업무를 거절하고, 회사 출근을 몇달 동안 안 한 거다. 그럴거면 본인이 사퇴하거나 짤려도 할말이 없는것이다. 실제로 최고위에서 징계논의까지 오갔다.
  8. 필리버스터 철회 명분이 무엇이었든 간에, 절차로 보면 김종인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철회 요구를 한 터라, 당 지지 세력 및 당내 강경파를 달래기 위해 원내대표로서 고육지책을 쓴 걸로 보면 될 것이다.
  9. 전 경기도의회 의장. 여담이지만 이쪽도 안양 출신이다.
  10. 유명한 1번가가 만안구에 있지만, 이미 과거의 위세를 상실한 상태다.
  11. 5선 이석현, 4선 이종걸, 4선 심재철.
  12. 17,18,19대 선거에서 모두 패한 정용대 후보는 결국 공천을 받지 못했다.
  13. 새누리당의 직권상정에 맞서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필리버스터를 기획했는데, 많은 의원들이 우려하는 중에 김광진 의원이 "총대를 매겠다."고 첫 발언 순서를 자청했고, 여기에 은수미 의원이 "아마 우리가 질 겁니다. 하지만, 우리부터 지는 게 낫지, 어떻게 국민더러 지라고 합니까?"라고 말하며 동참해 필리버스터가 성사됐다. 따라서, 이종걸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의 기획자였고, 김광진 의원과 은수미 의원이 각각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었던 셈.
  14. 박영선 의원의 깽판 때문에 필리버스터 철수 작전이 엉망이 된 바람에 마지막 발언자의 책임이 무거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발언자로 나선 점은 지도부로서의 책임을 졌다고 볼 수 있다.
  15. 여당과 야당이 법안 순서를 두고 싸우고 있는데, 일단 선거법이 먼저, 보안법이 나중에가 야당이다. 당연히 여당은 보안법이 먼저다.
  16. 박근혜 대통령은 몇몇 연설에서 환단고기와 관련된 인물들의 어록을 인용한 바 있어, 역덕들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17. 문맥을 보면 "그녀의(박근혜 후보의) 서슬이 퍼래서 사과도 하지 않고 얼렁뚱땅..."이었기 때문에 '그년'을 '그녀는'으로 읽을 만한 여지는 없었다.
  18. 애초에 사촌형님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미사협을 구성하는 식민사관해체 범국민운동본부이덕일과 함께 공동대표로 있는 마당이니 이종걸 역시 친척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통하여 건너사이로 연을 맺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