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당(일본)

(일본 자민당에서 넘어옴)

일본국의 주요 정당
(괄호 안은 일본 중의원 / 참의원의 의석 수)
집권당자유민주당
(291 / 122석)
공명당
(35 / 25석)
야당민진당
(97 / 49석)
일본 공산당
(21 / 14석)
일본 유신회
(15 / 12석)
사회민주당
(2 / 2석)
자유당
(2 / 4석)
일본의 마음
(0 / 2석)
원기모임
(0 / 2석)
신당대지
(1 / 0석)
오키나와사회대중당
(0 / 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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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民主党
(じゆうみんしゅとう)
영문 명칭Liberal Democratic Party: LDP
한글 명칭자유민주당
창당일1955년 11월 15일
이념보수주의
민족주의
국민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
주소도쿄치요다구 나가타쵸1초메 11-23
(東京都千代田区永田町一丁目11番23号)
총재아베 신조(安倍 晋三)
간사장니카이 토시히로(二階 俊博)
스펙트럼중도우파[2]
의석수(중의원)292석 / 475석 (61%)
의석수(참의원)122석 / 242석 (50%)
상징
공식 사이트홈페이지
한때 일본 정치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던 자유민주당 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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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볼로고

1 개요

일본정당. 약칭 자민당(自民党). 영어 약자는 LDP. Liberal Democratic Party의 약자. 리버럴이란 단어가 미국에선 보통 진보쪽을 뜻한다는 걸 생각하면 뭔가 아이러니하다. 창당한지는 60년이 넘었으며 그 기간 중 대부분을 원내 1당 정당으로 존재했다.

성향은 중도우파를 지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민당의 당 강령 등에는 딱히 대놓고 극우적인 성향을 보이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은데, 그렇기에 자민당이 세계평화를 기치로 내건 공명당하고도 연정구성이 가능한 것이였다. 진짜 극우 정당은 따로 있다 실제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전 의원도 자민당 출신.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런 온건파 성향의 인물들이 많이 빠져나가면서 한국에서의 인식이 많이 나빠졌는데,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아베 신조 총리를 위시한 일부 극단적인 우익 정치인들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자민당내 파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자세한 내용은 후술된 파벌 항목 참조.

2010년대 들어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자민당이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2016년 제24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를 승리하면서 마침내 아베 내각은 중의원, 참의원 양원 개헌선 확보에 성공했다.[3] 다만 전반적인 일본의 여론은 여전히 개헌에 부정적인 상황.

2 성립

자민당 정권의 55년 체제를 다룬 다큐멘터리(1993년작)

1955년 보수우파 기믹인 일본 자유당과 중도 보수파 야당 기믹이 강했던 일본 민주당의 합당으로 이루어졌다. 이른바 55년 체제의 시작. 어찌보면 3당합당을 통해 한국의 가장 큰 보수 정당으로 거듭난 민주자유당(현 새누리당)과 비슷한 점이 여럿 있다. 애초에 3당합당의 모토 자체가 민자당이란 약칭에서 보이듯 일본 자민당을 본따 만든거기도 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이후 일본 정치는 크게 자유, 민주, 사회로 나누어져 있었다. 보수 우파 정당인 자유당은 자유, 민자를 중심으로, 중도 보수 정당인 민주당은 일본 진보당과 뒤를 이은 개진당, 자유당의 비 요시다 시게루 계열(하토야마 이치로 등)을 중심으로 창당됐으며, 사회당의 약진으로 의석이 위태로워지자 합당을 결의하게 된 것이다.

반면 일본 사회당은 좌우로 분열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자민당 결합이 될 쯤(1955년)에야 다시 심기일전하여 뭉쳤으나, 그 결과는 1958년 선거의 자민당 287석 vs 사회당 166석이었다.[4] 이후 사회당이 당내 노선 투쟁으로 지리멸렬해지면서 자민당은 사실상 일본 정계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3 일본 정치의 핵심

일본의 정치를 1955년부터 현재까지 1993년 8월부터 1994년 6월 (10개월), 2009년 9월부터 3년 3개월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일당 우위 체제를 유지해 온 일본 최강의 권력 집단이며, 그 탓에 일본의 현대 정치에서 대다수 기간 동안의 자민당 총재 선거는 거의 일본 쇼군총리를 가리는 자리나 다름이 없었다. '자민막부'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이렇게 자민당이 너무나 오랜 세월을 지배해왔기에 일본의 정치는 거의 정당 정치가 아닌 자민당 내의 파벌 정치나 다름없었으며[5], 이는 일본의 민주주의를 허약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6]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만큼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협 요소가 된건 아니었다. 우선 자민당은 전체 의석의 2/3 이상은 차지하지 못해서 헌법 수정은 불가능했고, 21세기 들어서 세가 크게 위축되었지만 자민당 내에서도 호헌파가 상당수 있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일본의 우익세력들이 헌법 9조를 바꾸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즉,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삼선 개헌, 유신 개헌 등 개인 독재나 군사, 일당 독재에 의해 자국 헌법을 누더기로 만들어 온 한국과는 기본적으로 인권수호나 언론자유, 민주주의 수준 등에서 차이가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냉전 시기 아시아에선 그래도 민주주의 선진국이었던 셈.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55년 체제는, 정확히는 1.5정당(또는 1 1/2 정당) 체제를 의미했다. 무슨 말이냐면 제1야당으로서 자민당의 2/3 의석확보를 저지하는 일본 사회당(좌파)이 부분적인 양당제를 유지시켜주었기 때문. 애초에 55년 체제란 표현 자체가 정확하겐 이합집산하던 일본 정치판이 1955년 이후 자민당과 사회당의 양당체제로 통합된 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여담으로 1996년 이후 사회당은 자민당과의 연정 과정에서 동의한 소선거구제 하에서 대거 의석을 잃고 사회민주당 등으로 분당되면서 주요 지지 세력인 노동조합 등이 민주당으로 대거 이탈, 군소 정당이 되고 만다.

자민당의 상당수 의원은 일제시대 구 지도층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인물이 많아,[7] 보수 우파적 성격을 띄기 쉬우며 이것이 현재까지도 일부 자민당 의원들의 일본 제국 시절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와 각종 망언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부패 문제도 심각한데 매우 긴 시간 동안 고인 물인지라 제대로 썩은 건 사실이고, 의원 세습 문제로 가면 더 심각해진다. 그래도 이토록 오래 집권한 것에 비하면 각종 조사기관의 청렴도 조사에선 비교적 양호한 편이 나와 부패도가 절대적인 수준(?)까진 아니란 일부 반론도 있긴 하다.

그나마 일본군 신설 등의 우익 성향은[8] 안보 투쟁 이후 아베의 외조부로 유명한 기시 노부스케가 물러나면서 많이 잠잠해졌으나, 2000년대 모리 요시로가 집권한 이후부터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소 다로,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 신조 등으로 이어지며 다시 심화되고있다.

3.1 파벌

자민당의 파벌은 역사도 대단히 길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크게는 보수 본류와 보수 지류(방류), 그외로 나뉘는데[9][10] 그 안에서도 여러 파벌로 나뉘고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그 중 당내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파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등 많은 총리를 배출했다. 2천년대 자민당 마지막 총리였던 아소 타로의 파벌은 본인을 영수로 하고 있는 아소 파로 6번째 규모였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이런 군소 파벌 난립 자체가 내각제 정치의 특징이기도 하다. 일본이 유독 자민당 체제로 오랜 기간 집권해서 그렇지, 다른 내각제 국가들도 다 파벌이 있고 심지어 일본내 다른 정당에서도 파벌은 있다.

사실 자민당내 파벌들의 크기는 30여명 가량으로 적당하게 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파벌이 빠지면 과반수가 깨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기에 한다하는 파벌은 죄다 정권에서 지분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웬만한 파벌은 빠진 적이 없었다. 이러면서 총리는 다른 파벌에서 내보내고 알짜 상(장관)들을 장악하는 "킹메이커"도 꽤나 많았다. 제왕적 총리를 막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겠지만, 결국 그것도 자민당 안에서의 이야기. 더구나 솔직히 말이 파벌 안배 내각이지, 바로 말하면 나눠먹기 내각이다.

그리고 파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세습 정치이다. 한땐 세습 정치인의 수가 자민당 중의원 중 무려 50%를 넘었던 적도 있었다. 이들은 △명문대를 졸업해 △'정치인 직업 학교'격인 사숙에서 현실 정치를 학습하고 △대기업·정부관청에 잠시 근무한 뒤 △정·재계 명문가 자녀와 결혼해 △아버지의 선거 기반으로 의원에 당선되는 과정을 주로 통한다. 이런 세습 정치인들은 ‘오봇짱’, 한국으로 치면 '도련님' 이라 불리며, 서민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일절 겪어보지 못해서 빈부격차 문제에 둔감하다는 지적이 있다. 또 일본 보수화 경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평이 있다.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파벌 영수'가 거의 필수이며, 파벌에 들지 않고 총리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란 소리도 있다. 일본의 총리는 의원들의 간선제로 내각에서 결정하는 것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건 민주당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파벌 때문에 총리 개인이 뭔가 정책을 실현하려고 해도 다른 파벌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09년 중의원 총선거에서 대패함에 따라 파벌들이 대부분 반토막나고 심지어 궤멸되면서,# 파벌이 4~5파 정도로 붕괴하기도 했지만,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자민당 파벌 정치가 시작되고 있다는 평.

2016년 9월 21일, 국경 인근 유인도가 영해나 배타적 경제 수역(EEZ)의 기점으로서 중요하다는 인식에 공감하는 일부 자민당 의원들이, 이들 섬이 인구 감소로 무인도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명 '유인 국경 외딴섬 의원연맹'이란 것을 결성했다.# 모임의 회장은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자민당 총무회장이 맡았는데, 이는 앞으로 독도오키노토리시마 같은 영토 문제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여진다.

4 트리비아

2006년 7월 19일 미 국무성에서 공개한 외교사료집 FRUS에 의하면, 미국 CIA가 50년대 말부터 64년도까지 자민당 선거비자금 및 야당 분열(사회당과 민사당) 등을 지원했다고 한다.[11]

2012년 5월 코메디언 코모토 준이치의 어머니가 생활보호금을 수급하고 있었던 점을 자민당 소속의 카타야마 사츠키 의원 등이 고발했는데, 이 때문에 코모토 준이치는 사죄는 물론 예능 활동에도 지장을 받았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생활 원조를 하지 않은 코모토 준이치의 도의적 문제도 문제지만, 생활보호 제도개정을 위해서 카타야마 사츠키 의원이 개인을 공격한 점도 문제가 되었다.

2013년 5월 자민당, 공명당, 일본유신회가 힘을 합쳐 아동 포르노 개정안을 중의원에 제출했는데, 이 법이 한국에서도 논란이 된 일명 아청법 열화판 격으로 18세 이하 청소년의 수영복 차림이나 멀쩡한 교복 차림의 사진집 등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바람에 자민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던 넷우익과 오타쿠를 비롯한 서브컬쳐층과 관련 기업들이 한때 등을 돌리기도 했다. 넷우익이 어디 가겠어

2009년 8월 30일 중의원 총선거에서 중의원 총 480석 중 119석밖에 못챙기는 기록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이전에 사상 최저치였던 1993년도 선거에서도 223석은 확보했다. 다만 참의원 선거에서는 이 정도 수준의 참패를 당한 적이 1989년, 1995년, 1998년, 2007년 과거 4번 정도 있긴 했다. 이로서 1955년 이후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던 원내 다수당(제1당) 타이틀을 민주당한테 넘겨주는 치욕을 맛보기도 했다.

5 역대 선거결과

5.1 중의원 선거

[12]

연도의석수정원득표율(지역구/비례대표)
195828746757.80%
1960296[13]46757.56%
196328346754.67%
196727748648.80%
196928848647.63%
197227149146.85%
197624951141.78%
197924851144.59%
198028451147.88%
1983250[14]51145.76%
1986300[15]51249.42%
199027551246.11%
1993223[16]51236.62%
1996239[17]50038.63%/32.76%
2000233[18]48040.97%/28.31%
200323748043.85%/34.96%
2005296[19]48047.77%/38.18%
200911948038.68%/26.73%
2012294[20]48043.00%/27.62%
201429147548.10%/33.11%

5.2 참의원 선거

연도개선/비개선득표율(지역구/비례구)총합 의석수/참의원 정수
195661/61--122/250
195971/62--133
196269/73--142
196571/69--140
196869/68--137
197163/72--135/251
197462/64--126/252
197763/61--124
198069/66--135
198368/6943.2%35.3%137
198672/7145.1%38.6%143[21]
198936/73[22]30.7%27.3%109
199269/3945.7%33.2%108
199546/6525.4%27.3%111
199844/5930.4%25.8%103
200164/4741.0%38.5%111/247
200449/6635.0%30.0%115/242[23]
200737/4631.0%28.9%83[24]
201051/3333.3%24.0%84
201365/5042.7%34.7%115[25]
201656/6539.9%35.9%121

6 참고항목

  1. 참고로 정식 당 로고는 따로 존재한다. 국화문양 가운데에 '자민(自民)'이라고 새겨져있는 것이 정식 당 휘장이다.# 그리고 심볼 로고는 밝게 웃는 태양과 반기면서 웃는 사람 두 명이 로고이다.
  2. 이전에는 확실히 중도우파 정당이였고 90년대까지는 온건적인 색채가 있었지만 온건파 의원들이 정계개편을 거치면서 많이 빠져나간데다가(...일단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다.) 모리 요시로부터 시작해서 극우 성향의 총리들이 여럿 재임하면서 많이 우경화된 상태다.
  3. 사실 그전인 2015년 4월 12일 통일지방선거에서도 20년 동안 난공불락의 민주당(현 민진당) 요새였던 홋카이도사이타마를 함락시켜 본격 장기집권의 기반을 닦았다.
  4. 자민당은 후보 분열을 잘 통제한 반면, 사회당은 8석 밖에 늘리지 못했다.
  5. 애초에 후술되어있는 자민당의 파벌이란 성질을 생각하면 사실 1당이라고 보기도 조금 힘든 감은 있다.
  6. 동아시아 정치를 연구해 온 미국의 정치학자 T.J. pempel은 일본 정치를 가리켜 'uncommon democracy'라고 칭하기도 했다.
  7. 대부분이 화족 출신이다. 단, 자민당 출신 도쿄 도지사이던 이시하라 신타로는 평민 출신이었던 데 비해 민주당 전 대표였던 하토야마 유키오는 매우 유서 깊은 화족 가문 출신이었듯 예외도 가끔은 있다.
  8. 일본은 평화 헌법에 따라 정규군 보유가 금지되어 있다. 자위대는 어디까지나 '군사 조직'이지 '정규군'이 아니다. 그래서 자위대는 다른 나라의 정규군처럼 바깥으로 나가기가 어려웠었다.
  9. 간단히 정리하면, 보수 본류는 평화 헌법 유지 · 미일 안보 하에서 경제 우선 · 대미협조외교 노선을 따르는데 반해 보수 방류는 헌법 개정 · 재군비 · 자주 외교를 기조로 삼고 있다. 보수 본류는 요시다 시게루로부터 시작되어 이케다 하야토, 사토 에이사쿠로 이어지면서 80년대 후반까지 일본 경제 발전을 이끈 주류 세력이었다. 한편 기시 노부스케로부터 연원을 찾을 수 있는 보수 방류는 방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90년대 후반부턴 줄곧 주류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본문에 소개된 마치무라파가 바로 보수 방류의 대표 주자. 이러한 보수 방류가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 야스쿠니 신사 참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가 더 빈번해져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그들의 이념 성향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사태는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10. 위키백과자유민주당 파벌 항목도 참조.
  11. http://www.randombooks.co.kr/book/book_detail.asp?ea_key=9390
  12. 참고로 1993년까지 일본 중의원 선거구제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였지만 1996년부터는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있다.
  13. 역대 최고 의석점유율
  14. 1976, 1979년, 1983년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야당들의 분열 혹은 무소속 의원 영입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심지어 사회당 지지자들도 자민당 과반 붕괴에 별 감상 없었다고.
  15. 역대 최다의석
  16. 이번엔 정권 붕괴가 일어난다. 물론 오래가지 못했고, 1994년 6월에 사회당(일본), 신당 사키가케와의 연합정권(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도로 여당으로 돌아온다.
  17. 사민당 등과 연정.
  18. 공명당, 보수당 등과 연정.
  19. 단독 과반수 확보. 공명당 31석을 더하면 327석으로 개헌선인 2/3를 넘었다. 물론 헌법 개정은 실패.
  20. 공명당 31석을 더하면 325석으로 개헌선인 2/3를 넘은데다가 일본 유신회(54석)와 민나노당(18석)까지 있다! 보수적 성향의 무소속 4석까지 더하면 보수의석이 401석이라는 무서운 숫자.
  21. 역대 최다의석.
  22. 55년 체제하에서 유일하게 개선 제1당을 뺏긴 때였고, 이때문에 우노 소스케총리가 사임했다. 이는 사회당(당시 46석 확보. 총 68석)의 여성당수 도이 다카코의 여성후보 공천 때문이었는데, 1991년 이후 사회당이 자멸하면서(대표적으로 자민당과 연정) 망했어요...
  23. 15년만에 개선 2당으로 전락했다.
  24. 사상최초로 참의원내 제2당으로 전락했다.
  25. 오랜만에 참의원 1당으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