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던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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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티모시 시어도어 "팀" 덩컨[1]
(Timothy Theodore "Tim" Duncan)
생년월일1976년 4월 25일
출신학교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신장211cm (6' 11") [2]
체중113kg (250 lbs)
포지션파워포워드, 센터
드래프트1997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지명
등번호21번
소속팀샌안토니오 스퍼스 (1997~2016)
수상내역NBA champion 5회 (1999, 2003, 2005, 2007, 2014)
정규시즌 MVP 2회 (2002-2003)
NBA Finals MVP 3회 (1999, 2003, 2005)
NBA All-Star 15회 (1998, 2000-2011, 2013, 2015)
NBA All-Star Game MVP (2000)[3]
All-NBA First Team 10회 (1998-2005, 2007, 2013)
All-NBA Second Team 3회 (2006, 2008-2009)
All-NBA Third Team 2회 (2010, 2015)
NBA All-Defensive First Team 8회 (1999-2003, 2005, 2007-2008)
NBA All-Defensive Second Team 7회 (1998, 2004, 2006, 2009-2010, 2013, 2015)
NBA Rookie of the Year (1998)
NBA All-Rookie First Team (1998)
USBWA College Player of the Year (1997)
Naismith College Player of the Year (1997)
John Wooden Award (1997)
ACC Player of the Year 2회 (1996-1997)
2004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1998년 NBA 올해의 신인상
앨런 아이버슨팀 던컨빈스 카터
2002년 ~ 2003년 NBA 정규시즌 MVP
앨런 아이버슨팀 던컨케빈 가넷
1999년 NBA 파이널 MVP
마이클 조던팀 던컨샤킬 오닐
2003년 NBA 파이널 MVP
샤킬 오닐팀 던컨천시 빌럽스
2005년 NBA 파이널 MVP
천시 빌럽스팀 던컨드웨인 웨이드
2000년 NBA 올스타 MVP
마이클 조던[4]팀 던컨 & 샤킬 오닐앨런 아이버슨
샌안토니오 스퍼스 영구결번
No. 2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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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랜스 암스트롱팀 던컨 & 데이비드 로빈슨보스턴 레드삭스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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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역사에 길이남을 최고의 파워포워드
Mr. Fundamental[6]

19년동안 샌안토니오에게 5번의 승리를 가져다준 샌안토니오 최고의 플레이어

90년대 후반, 00년대 그리고 10년대까지 샌안토니오를 산왕으로 만든 선수

샌안토니오 스퍼스프랜차이즈 스타이자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워 포워드

2 상세

NBA 역대 파워포워드 서열을 논할때 가장 논란이 없는 No.1 선수.[7] 통산 성적으로 따지면 마이클 조던, 샤킬 오닐 다음 시대의 최고의 선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데뷔 이후 던컨이 이끄는 스퍼스는 서부지구에서 단축시즌을 제외, 17년 동안 정규시즌 승률 6할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으며 플레이오프에서도 통산 239승을 기록해 팀 성적에서도 라이벌인 샤킬 오닐이나 르브론 제임스에 비해 우위에 있다. 하지만 르브론이 2016년 우승하기 전에 나온 미국 양대 스포츠 매체 ESPN과 SI의 설문조사에서 르브론은 각각 역대 3위와 역대 5위의 플레이어로 선정된 반면에 팀 던컨은 각각 8위와 10위로 선정되었고, 르브론이 우승트로피와 파이널 MVP를 하나씩 추가함으로써 그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되었다. 사실 던컨이 파워 포워드 포지션에서 이견없는 1위가 될 수 있었던 건 센터(압둘자바, 체임벌린, 빌 러셀)나 스몰포워드(르브론 제임스, 래리 버드), 슈팅가드(마이클 조던, 코비브라이언트)등 타 포지션에 비해 낮은 뎁스가 영향을 끼친 바 있다. 그의 가장 큰 약점은 평균득점 같은 통산 스탯이 타 레전드 선수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가 경기에 끼친 영향, 특히 샌안토니오라는 스몰 마켓 팀에 끼친 영향력과 지배력에 비해서는 NBA 선수들 사이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선수중 하나이다. 한 기자는 "던컨이 오기전에 스퍼스는 그저 강팀 정도였지만, 그가 오면서 우승팀이 되었다" 라고 이야기하였으며, 역대 윈쉐어와 팀 공헌도 및 가치 점수에서도 최상위를 유지하고 있다.[8]

4대 센터와 MJ가 떠난 이후 샤킬 오닐과 함께 NBA의 패권을 다툰 빅맨이다.[9]

화려한 농구 경력에서 흠을 찾자면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는 것과 올해의 수비상이 없다는 것. 그리고 백투백(2년 연속)의 우승이 없다는 것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10]
2016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였는데 그라면 치를 떨었을 선수들조차 축하해주면서 훈훈하게 은퇴하였는데 선수생활 큰 구설수 없이 팀을 우승후보에 올려놓은 아름다운 선수생활을 했다고 볼수 있다.

3 행적

3.1 NBA 데뷔 이전

원래는 버진 아일랜드의 국가대표급 수영선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를 강타한 허리케인 "휴고"로 버진 아일랜드의 유일한 국제규격 수영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고민끝에 수영을 포기하고 농구를 선택했다.[11]

ACC 컨퍼런스의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를 졸업. 대학교 2학년 시절부터 이미 두각을 나타내었고, 3학년 때에는 UMASS의 마커스 캠비와 함께 NCAA 최고의 인사이더로 인정받고 있었다. 당시 2학년이던 캠비는 1996년 드래프트에 얼리엔트리하여 토론토에 2번픽으로 지명받지만, 던컨은 1년 더 남게 된다.

어쨌든 대학에 남게 되면서, 대학생 신분으로 드림팀3와 대학선발과의 연습경기에 참여하였다. 실질적인 대학대표팀의 원맨 리더로, 곧 리그에서 라이벌이 되는 드림팀3의 센터 3인방(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 사기다!)과 모두 맞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연습경기라 드림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던컨은 그 셋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거의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이미 탈 NCAA급 선수로 인정받고 NBA에서도 통할거란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그래도 NBA는 아직이 아닐까라고 평가하던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 경기를 통해 확 바뀌고, 던컨의 대중적인 인지도도 크게 올라간다.

1997 드래프트는 그야말로 명실공히 팀 던컨 드래프트라 할 정도로 그의 1순위 지명은 사람은 먹어야 산다 수준으로 당연시되었다. 특히 리빌딩이 절실했던 보스턴 셀틱스는 공공연하게 팀 던컨을 노리고 있음을 드러내며 탱킹을 통해 동부 컨퍼런스 꼴찌를 획득했고, 트레이드를 통해 댈러스 매버릭스의 지명권도 얻어와 1픽을 뽑을 확률을 무려 35% 수준으로 확보해놓고 자신만만해 하고 있었다. 확률이 확률이었던지라 당시 많은 언론이 던컨의 셀틱스행에 초점을 맞췄고, 던컨 본인 또한 셀틱스의 일원이 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3.2 샌안토니오 스퍼스

그러나 그 시즌의 1픽은 뜬금포로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가져간다. 전 시즌 데이비드 로빈슨이 6경기 만에 무릎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어 20승 62패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고, 드래프트에서 세 번째로 높은 확률을 갖고 있었지만 1픽을 획득하여 던컨을 지명하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이는 비단 샌안토니오만의 호사가 아니라 팀던컨에게도 역시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 르브론 제임스 같은 1픽의 타 레전드들은 각각 클리블랜드 같은 루징 프렌차이즈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커리어를 시작하지만, 팀 던컨은 처음부터 60승 팀에 드래프트 됨으로써 그야말로 준비된 로얄로드를 걷게 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오매불망 던컨을 노려왔던 셀틱스는 두 장의 로터리가 각각 3픽과 6픽에 걸리며 졸지에 닭 쫒던 개 신세가 되어버렸고, 이 와중에 전 시즌 전체 승률 꼴찌였던 밴쿠버는 3픽 안에도 못들고 4픽이 되어버리는 피박을 쓰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던컨의 스퍼스 행은 본인에게나 팀에게나 서로 최상의 결과를 낳았다.

루키시즌 평균 21.1득점 11.9리바운드 2.5 블록을 기록하며 신인으로서 올 NBA 퍼스트팀에 입상"하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신인이 첫해 퍼스트팀에 들어간 케이스 대부분이 NBA 초창기에 몰려있고 그 이후 지난 40년 동안은 오로지 래리 버드와 팀 던컨 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하의 마이클 조던이나 카림 압둘 자바도 신인 첫 해는 세컨드팀에 만족해야 했다. 신인상 수상은 그야말로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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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입단 2년차만인 1999년, 트윈 타워의 명성을 알리며 우승과 동시에 파이널 MVP를 수상한다. 사실 로빈슨과의 데뷔는 던컨에게 있어 다양한 면에서 매우 행운이었는데, 물론 가장 큰 행운은 역시 수준급 강팀이자 NBA 스타 플레이어[12]와 함께 데뷔할 수 있었다는 점.

3년차인 2000년에는 시즌 말미에 무릎부상을 당해 플레이오프때 뛰지 못했고 팀도 1라운드에서 피닉스 선즈에 패해 일찌감치 탈락했다.[13] 3년차를 마치고 첫 번째 FA 자격을 획득한 던컨은 이적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올랜도 매직이 최고 대우와 더불어 팀 던컨-그랜트 힐 듀오 결성이라는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바람에 실제로 던컨은 올랜도와 계약하기 직전까지 갔었다.[14] 그러나 막판 스퍼스 팀 관계자들과, 데이비드 로빈슨의 간곡한 설득에 마음을 바꿔 스퍼스와 재계약하며 잔류했다.[15]

올랜도 행이 무산된것에 재미있는 점 하나는 팀 던컨의 전 부인 에이미 던컨의 역할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 던컨과 에이미는 오랜기간 교제 중이었는데 종종 팀 던컨의 경기를 보기 위해 스퍼스 팀 비행기에 팀 던컨과 동행하는 일이 있었다. 던컨이 올랜도에서 큰 환영을 받고 구애를 받던중 에이미는 그 당시 올랜도의 감독이었던 닥 리버스에가 자신이 종종 올랜도 팀 비행기에 팀 던컨과 함께 동행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대부분의 팀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별 생각없이 거절했고 에이미는 그 대답에 별로 마음이 들지 않았고, 닥 감독의 부인와 대화 후 에에미는 마음을 굳힌듯 샌안토니오로 돌아가게 되며 던컨도 그녀를 따라 샌안토니오로 귀향하고, 던컨이 돌아오자 샌안토니오는 결국 던컨이 잔류하는 설득을 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이렇게 된다더라 물론 그 이후 던컨은 에이미와 결혼은 했지만 결국 이혼으로 치닫게 되는 결과가 있던 걸 보면 올랜도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할 듯.닥 리버스가 웬수였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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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던 로빈슨에게 에이스 자리를 물려받은 던컨은 리그 최고급 빅맨으로 성장했지만 2001년과 2002년에는 샤킬 오닐의 LA 레이커스에게 가로막혔다. 그러나 2002-03 시즌, 전시즌에 이어 두번째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 던컨은 피닉스, 레이커스, 댈러스를 차례로 꺾으며 파이널에서 뉴저지 네츠를 이기면서 두번째 파이널 MVP까지 차지함과 동시에 데이비드 로빈슨에게 은퇴선물로 우승반지를 선사한다. 2003년 플레이오프 당시 스퍼스의 평균 출장시간,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블록 슛 1위가 모두 던컨이었을 정도로 완벽한 원 맨 우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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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부터 팀의 리더가 된 던컨은 당시까지는 인지도 낮은 외국인 선수였던 마누 지노빌리토니 파커, 악랄한 수비수 브루스 보웬, 클러치때만 빛나는 파워포워드 로버트 오리 등을 이끌게 된다. 2004년 레이커스와의 세미파이널때 5차전에서 0.4초를 남기고 득점에 성공했으나 데릭 피셔에게 통한의 어부샷을 맞고 패배했다. 2004-05 시즌에 다시 파이널에 가서 디펜딩 챔피언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대결하는데, 극악의 수비대결 끝에 다시 파이널 MVP를 수상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방송국과 NBA총재(디트로이트, 샌안토니오를 제외한 전 북미 시청자 포함)는 극수비팀끼리의 파이널경기로 시청률 저하를 우려했고 실제로 역대 최저급의 파이널 시청률을 기록했다.

당시 리그는 빈스 카터, 트레이시 맥그레디등의 스윙맨이 인기를 끌고 있었으나, 그러든 말든 데뷔때부터 2005년까지 쭉 All-NBA 퍼스트팀 자리를 차지하며 자기 할 일만 했고 샌안토니오를 서부 끝판왕 자리에 올려놓았다. 노화가 시작되어 에이스 자리를 토니 파커에게 물려준 후에도 기본기가 워낙 충실해서 몰락하는 일 없이 꾸준히 자기 몫을 해주었다.

2006-07 시즌엔 패기만만한 르브론 제임스가 이끌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만나 4-0 완승을 이끌며 개인통산 네번째 우승을 달성한다. NBA 역사상 가장 원사이드했던 이 시리즈에서 던컨의 스탯은 18.3득점 11.5리바운드 2.3블록. 18득점에 0.446의 낮은 야투율에서 알 수 있듯이 공격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돌격대장인 포인트 가드 토니 파커가 0.568이라는 굉장한 야투율로 평균 25득점을 몰아넣으며 클리블랜드의 수비를 붕괴시키며 우승하게 되었고 이 공로로 토니 파커는 07년 파이널MVP를 수상하게 되었다. 한편 망연자실한 르브론에게 던컨은 앞으로 이 리그는 너의 것이 될 것이다.라며 위로하기도 하였다.[17]

2010-11 시즌에 와서는 간만에 국대 차출 피한 지노빌리와 이혼남 파커의 다이나믹 듀오의 난동, 신불사 맷 보너, 이제 어느정도 적응한 제퍼슨, 무섭게 성장하는 조지 힐 등 팀원들의 컨디션이 너무 좋은 관계로 자기의 롤이 줄어들면서 출전시간도 줄어들고 스탯도 엄청 떨어졌다.[18] 근데 이 양반은 자기 스탯이랑 출장시간에 전혀 관심이 없다. 스퍼스 팬들은 '이제 갈 때가 됐구나' 하면서 없는 사람 20득점 10리바운드도 못하는 주제에 0.9조던이나 처먹는 욕심쟁이 취급하는 반면에, 다른 팀 팬들은 속는 것도 한 두번이지 또 플옵가면 돌변할 거란 걸 알기 때문에 절대 믿지 않는다.

요 몇년동안 플옵에서 종종 방전이 되면서 예년만 못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NBA의 수많은 센터들이 일류, 초일류 할 것 없이 30대 중반 나이에 급노화되어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것에 비하면 던컨은 굉장히 잘버티는 축에 속하나, 팀이 스퍼스이고 여전히 팀의 중심이다보니 방전으로 인한 플옵 뒷심부족의 책임은 어쩔수 없이 지게 되었다. 플옵은 DNP-OLD 못한다 특히 2011-12 시즌 플옵에서는 유타 재즈, LA 클리퍼스의 빅맨들을 상대로 속된말로 관광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전성기 모습을 보여주나 싶었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인 오클라호마와의 경기에서는 단축시즌에 몸을 너무 빨리 끌어올린게 독이 되어서 방전이 되어버렸다.

2012-13 시즌에 들어와서는 체중 감량을 통해서 예전모습을 어느정도 되찾았으며, 요 몇년동안 보여주는 플레이 중에서 가장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오랜만에 센터 포지션으로 퍼스트팀에 다시 들었고 플레이오프 통산 500블록을 기록하기도 했다.

팀은 승승장구하며 6년만에 다시 NBA 파이널에 진출하며 마이애미 히트와 만났는데, 대니 그린이라는 새파란 후배가 반짝 활약해서 3승 2패가 된 이후 6차전에서 말년에 파이널 MVP 하나 더먹겠다는듯이 대활약하며 미친 존재감을 뿜었으나 지노빌리의 대역귀짓과 대체선수인 티아고 스플리터의 잉여스러움 때문에 플레이시간 조절이 실패해서 막판에 방전, 6차전을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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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한치도 물러나지 않았던 7차전, 6차전에 이어서 매치업상대인 크리스 보쉬를 완전히 물먹이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4쿼터가 끝나기 직전 골밑 레이업과 팁인을 모두 실패하면서 그답지 않게 땅을 치면서 아쉬워했고, 우승컵은 마이애미에게 양보해야했다. 이것이 던컨 커리어 최초의 파이널 준우승.

2013-14 시즌, 던컨은 74경기에 출장해 평균 15.1득점 9.7리바운드 3.0어시스트 0.6스틸 1.9블락을 기록하며 소속팀을 정규시즌 서부 1위이자 리그 전체 1위로 견인했다. 토니파커, 카와이 레너드를 비롯한 다른 키 플레이어들이 잔부상으로 로스터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철저한 몸관리를 통해 팀의 플랜에서 한번도 이탈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던컨의 스퍼스는 노비츠키가 이끄는 8번시드 댈러스와 격돌했다. 카터, 노비츠키, 던컨, 지노빌리를 비롯한 포스트조던 시대의 영웅들이 노장이 되어 투혼을 보여주는 모습은 팬들에게 승패를 떠나 깊은 감동을 선사했고, 던컨 또한 1경기에서 27득점을 기록하며 기울어져가는 경기를 뒤집어서 이기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댈러스의 릭 칼라일 감독이 들고나온 스위칭 디펜스 위주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치열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스퍼스는 그런 댈러스를 상대로 7차전 대혈투 끝에 승리를 거두고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 진출했다. 댈러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은 시리즈가 끝난 뒤 팀 던컨이 어서 빨리 우승을 하고 커리어에 만족을 느낀 뒤 은퇴해버렸으면 좋겠다는 반농담성 인터뷰를 하며, 지난 17년간 서부의 지배자로 군림한 이 위대한 빅맨에게 우회적으로 존경심을 표했다.

이어진 세미파이널에서 벤치가 약한 포틀랜드를 상대로 낙승을 거둔 던컨의 스퍼스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2년 전 자신들에게 역스윕의 굴욕을 안겨준 듀란트와 웨스트브룩의 오클라호마를 상대했다. 오클라호마 최강의 샷블락커 이바카가 부상으로 결장한 첫 두경기에서 던컨은 오클라호마의 허약한 포스트를 박살내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생각 외로 부상에서 빠르게 회복된 이바카가 3경기부터 다시 선발출장을 시작하자, 던컨 또한 노쇠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며 원정 2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리즈가 7차전까지 갈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감독 포포비치는 5차전을 앞두고 이바카에 막혀 잉여인간이 되어버린 티아고 스플리터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외곽슛이 좋은 맷 보너와 보리스 디아우를 활용하여 이바카를 밖으로 끌어내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것은 보리스 디아우의 다재다능함과 팀 던컨의 골밑파괴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벼랑끝 전술이었는데, 팀 던컨은 보리스 디아우가 이바카를 밖으로 끌어내는 사이에 22득점 12리바운드를 찍으며 오클라호마 골밑을 파괴, 감독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그리고 이어진 6차전에서 엘리미네이션 위기에 몰린 오클라호마는 정규시즌 MVP 케빈 듀란트와 리그 최고의 돌파력을 가진 러셀 웨스트브룩, 그리고 레지 잭슨과 이바카를 앞세워 강력하게 저항해왔다. 던컨은 경기내내 이바카의 강력한 수비력 앞에서 고전했으나, 팀의 운명이 걸린 연장전에서 절묘한 풋웍과 슛터치로 1:1을 계속해서 성공시키며 소속팀 스퍼스를 2년 연속 NBA 파이널로 끌어올렸다. 마이애미와 스퍼스는 이렇게 2년 연속으로 NBA 파이널에서 격돌하게 되었으며, 같은 팀이 2년 연속으로 NBA 파이널에서 만나는 것은 97~98년 시카고 불스와 유타 재즈 간의 파이널 이후 처음이다. 아울러 던컨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모두 파이널에 진출하게 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6월 6일(한국시간 기준) 마이애미 히트와의 파이널 1차전에서 21득점(FG 9/10 90%), 10리바운드라는 나이를 의심케 하는 활약을 펼치면서 스퍼스의 110-95 승리를 이끌었다. 거기에 파이널 4차전에서 매직 존슨의 플레이오프 더블 더블 횟수, 카림 압둘 자바의 플레이타임 합계 기록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한다.

수많은 레전드들이 경기를 지켜본[19] 대망의 파이널 5차전. 1쿼터는 르브론이 맹활약하면서 마이애미가 유리하게 가는 듯 했으나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마이애미를 폭격하면서 우승을 결정지었다. 이로서 던컨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우승을 모두 차지한 위대한 선수가 되었다.

2013-14 시즌까지 통산 24,904득점 13,940리바운드 3,832어시스트 915스틸 2,791블락. 평균으로 환산시 19.9득점 11.1리바운드 3.1어시스트 0.7스틸 2.2블락. 2010-11 시즌부터는 2012-13 시즌의 30.1분을 제외하고 20분대 출전시간을 기록하고 있으며 커리어 20-10 기록이 깨졌다. 흔히 스탯으로 평가할수 없는 선수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카림 압둘 자바, 윌트 체임벌린, 칼 말론[20]같은 대괴수들 때문에 가려서 그렇지 막상 보면 스탯이 나쁜 것도 아니다.[21]

그리고 다가온 2014-15 시즌 한국기준 12월 6일 멤피스 그리즐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완전체에 가까워진 마크 가솔과의 매치업에서 통산 4번째 트리플 더블을 했다!!! 14득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015년 11월 3일, 뉴욕 닉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승리를 거둠으로, 통산 954승으로 한 팀에서 역대 개인 최다승을 거둔 NBA 선수가 되었다.[22]

2016년 현 시점에도 현역으로 계속 뛰고 있는데 드디어 그도 어쩔수 없이 늙는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3월 20일 골든스테이트 워러워스와의 경기에서는 선수 생활 동안 딱 두번 해본 벤치에서 경기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줬고, 사실 거의 활약하지 못했기에 플옵에서 골스를 만날때도 벤치를 지키지 않을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 20년간 이런식으로 뻥쳤지만 올해는 진짜가 될지도.... 실제 기량도 상당히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수비에서도 나이를 먹은탓에 발이 상당히 느려져서 힘겨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격력 역시도 상당히 많이 떨어진 상황.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고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와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 4차전에서 12분을 뛰었지만 슛 한번 시도하지 못하면서 무득점을 기록하고 말았다. 그의 커리어에서 플레이오프 무득점 경기는 이것이 처음. 그저 세월이 무상할뿐이다.

결국 팀이 원정 엘리미네이션에 몰린 2라운드 6차전 경기에서, 전반전부터 오클라호마에게 압도당하는 상황에서도 19득점 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후반전의 추격을 이끌며 투혼을 불살랐지만 결국 팀은 전반전의 큰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며 시즌이 종료되고 말았다. 11점차로 따라온 상황에서 첫번째 포제션을 실패하고, 다시 포제션을 잡은 상태에서 경기 종료 3분 남기고 9점차로 만들기 위한 덩크를 시도했지만 서지 이바카의 블락에 막히고 바로 이어진 속공에서 케빈 듀란트가 덩크로 13점차로 만들자 씁쓸해하던 던컨의 모습은 많은 팬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무언가를 암시하는지 그가 4쿼터를 풀타임으로 뛰도록했고, 카메라도 그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결국 경기 종료후 컨퍼런스 파이널로 올라간 오클라호마 선수들을 따뜻하게 격려해준 던컨은 격려를 마치고 관중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며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23]

16년 7월에 들어서 최근 은퇴를 진지하게 고민 중이며 곧 거취를 팀 관계자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라고 한다. 원래 왼쪽 무릎이 안좋았는데, 오른쪽 무릎 부상까지 겹쳐서 힘든 상황이라고. 은퇴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댈러스 총기난사 사건으로 인해서 잠시 발표를 보류했다. 자신의 뉴스로 사건이 잊혀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라고 그리고 한국시간 2016년 7월 11일 오후 11시쯤 결국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하는 모습까지 참 던컨답다

NBA의 많은 선수들은 그의 은퇴식이 결정되자 새로운 인생에 대한 축하를 해주었는데 그중에는 지겹도록 싸웠던 코비, 노비츠키, 르브론 등 많은 선수들이 있다. 던컨이라면 치를 떨었을 법한 댈러스 구단주 마크 큐반도 "스퍼스와 매버릭스의 게임에서 던컨을 배웅해주지 못하는게 너무 화가 난다. 하지만 네가 플레이하는 것을 볼 수 있어 즐거웠어" 라면서 축하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퍼스 팬페이지나 스포츠 기사들의 댓글들을 봐도 타팬들도 와서 고마웠다, 축하한다 등의 메세지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리그에서 사랑받고 존중받았는지 잘 보여주는지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3.3 은퇴 후

은퇴 후에는 아직 별다른 행적으로 보이지 않으며 조용히 자신의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다. 던컨 답게은퇴식 같은건 가지지 않았고 포포비치 감독과 RC 뷰포드 GM이 그에 대해 회상하는 인터뷰를 했다. 후에 던컨은 자신의 어렸을 적 친구이면서 온라인 라디오 방송을 운영중인 라쉬드 클래런스와 함께 인터뷰를 하였는데 영어를 잘한다면 들어볼만하다.

공교롭게도 은퇴한지 채 하루도 되지 않은시점에서 법적 논쟁에 휘말리게 되는데 부동산 기업중 하나가 팀 던컨에게 한번도 물어보지도 않고 그의 사진을 포샵해서 마치 팀 던컨이 광고하는 것처럼 사용했기 때문.

흥미롭게도 다음 시즌인 16-17 시즌에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코치로 재직되어서 나온다...는 말이 있었으나 정식 코치 자격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현재는 그저 시간이 나는대로 방문하여 젊은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응원도 해주고 농담도(...) 즐기는 역할 정도라고 한다. 여담으로 카와이는 그의 농담이 가장 그립다고 이야기 한적이 있다. 샌안 팬사이트중 하나인 "Pounding the Rock" 에서는 저러다가 시즌 중간쯤에 다시 돌아와서 우승하는거 아니냐고 드립을 치는 중(...)

3.4 국가대표

팀 던컨의 대표적인 흑역사

1999년 올림픽 퀄리파잉에서 10경기동안 경기당 12.7득점, 9.1리바운드, 1.3어시스트, 2.4블록을 기록하며 팀이 10승 무패로 본선진출하는데 기여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본선에는 무릎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2003년 올림픽 퀄리파잉에서 9경기동안 경기당 15.1득점, 8.0리바운드, 3.4 어시스트, 1.6블록을 기록하며 팀이 10승 무패로 본선진출하는데 기여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8경기동안 경기당 12.9점, 9.1리바운드, 1.6 어시스트, 0.0블록을 기록하며 팀이 5승 3패로 동메달을 따는데 기여했다.[24]

아테네 올림픽에서 던컨은 첫번쨰 경기에서 7턴오버를 기록했고 던컨의 극성팬들이 주장하는 상대를 지워버리는 수비도 없었다. 알드리지 정도는 그냥 지워버릴거다 라는 극성팬의 의견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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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진 않지만, 사실 던컨의 국가대표 커리어는 스퍼스에서의 어마어마한 커리어에 비하면 금메달이 없다는 점에서 거의 흑역사급으로 부족한 편이다. 역시 던컨의 카운터는 지노빌리가 맞다
15-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4 플레이스타일

빅맨의 정석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정말 단순하고 기본에 충실한 움직임을 계속 보여준다. 보기에는 정말 별 거 없어 보이지만, 유연성과 순발력, 좌우 움직임이 빅맨 중에서는 사기급이었기에 그의 기본기가 빛을 발하였다. 뛰어난 신체 스펙에 완벽한 기본기, 티안나게강력한 수비력을 자랑했던 완전무결한 선수. 전성기 시절에는 파워도 장난 아니게 강했다. 하이 포스트에서 공을 잡고 냅다 덩크를 찍고, 혼자서 코스트 투 코스트(!!!)도 하곤 했었다.[25] 루키 시절에는 쫄깃한 원 핸드 앨리웁도 선보였을 정도의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생긴거나 플레이 스타일로는 특징적일게 없어보일 것 같지만, 팀 던컨의 시그니처 무브이자 성명절기중 하나는 바로 뱅크 슛. 전성기 시절 기준으로

1. 엘보와 베이스라인 사이에서 공을 잡는다.
2. 상대가 작으면 포스트업 크면 페이스업[26]
3. 몇번의 무브를 보여준뒤 슛을 던진다.
4. 백보드 맞고 깔끔하게 들어간다.

이런 식의 기본적인 공격 루트를 사용했는데, 수비하는 상대 입장에서는 이걸 어떻게 해도 막을 방법이 없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코 베이듯 실점하는 상황이 잦았다. 상대팀 인터뷰에서 마치 벽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매 경기마다 20득점 10리바운드 3~4어시스트 2~3블락을 해주는 사나이. 단점이 있다면 인품이 조용하고 경기 스타일도 멋대가리 없는 뱅크 슛, 작대기 덩크등 기본기에 충실한 스타일이라 재미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 뿐만 아니라 이런 그가 팀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팀 전체에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안정된 득점을 선호하는 기본에 충실한 분위기가 전염되면서 스퍼스 팀 자체가 재미없는 팀이 되어버렸다.[27] 재미없는 팀의 재미없는 중심선수.[28] 덕분에 샌안토니오도 4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면서도 오히려 주목도는 데니스 로드먼, 데이비드 로빈슨 시절보다도 낮은 기현상을 연출.

그의 플레이 스타일 중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스크린. 케빈 가넷과 더불어 스크린을 리그에서 가장 잘 서주는 선수였으며, 토니 파커, 데니 그린, 패티 밀스 등 샌안토니오의 스윙맨이나 3점 슈터 들이 샌안토니오 특유의 시스템과 더불어 던컨의 스크린 덕을 많이 받곤 한다. 아래 영상은 토니 파커와의 스크린을 기반으로 한 투맨게임 영상. 이것을 보면 정말 스크린을 던컨이 잘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50초 부터 볼 것.


수비도 공격만큼이나 기본기에 충실하며 높은 수준이다. 유연하면서도 강한 몸, 긴 팔을 바탕으로 버티는 수비, 페이스업 수비, 헬프 수비 모두 우수했다. 전성기 샤킬 오닐의 포스트업, 르브론 제임스의 닥돌 모두 효과적으로 견제했다. 특히 파울이나 블락으로 집계되지 않더라도 긴팔로 상대의 슛을 방해하는 데엔 도가 텄다.

약점을 찾아본다면 미드레인지 점퍼 및 자유투에 있어 다른 역대 탑티어 파워포워드들에 비해 떨어지는 면이 있다.[29] 그로인해 공격력 자체나 파괴력은 노비츠키, 바클리 같은 선수들에 비해 밀리는건 사실이다.

5 평가

NBA No.1 파워포워드.
밸런스 잡힌 공/수 겸장의 파워포워드

팀 던컨/평가

6 논란

팀 던컨 본인은 굉장히 조용히 농구를 하며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 선수중 하나이지만, NBA 매니아나 디시 NBA 갤러리 같은 국내 농구 커뮤니티에서 일부 극성팬들이 하는 주장으로 인해 불필요한 논란이 일게 된다. (포지션 논란은 이외는 좀 별개)

6.1 포지션 논란 (센터 vs 포워드)

흥미로운 것은 바로 포지션의 문제이다. 실상 던컨의 포지션은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시절 센터였지만, NBA 데뷔때는 나이때문에 하향세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4대 센터로 위용을 떨치던 데이비드 로빈슨과의 조합 때문에 더블포스트에 가까운 파워포워드로 출장했고 로빈슨의 은퇴 이후에도 쭉 이어졌는데, 경기 내 포지션과 플레이는 센터와 파워포워드를 그때그때 바꿔서 플레이한다. 공격에 있어서는 비교적 레인지도 넓고 페이스업 공격기술이나 슛 거리, 작전 수행능력이 리그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에, 골밑에 센터파트너가 있을때는[30] 파워 포워드처럼 플레이하고, 코너나 하이포스트에 파워포워드형 파트너가 있을때는[31] 로우포스트에 자리를 잡고 센터처럼 플레이한다. 수비할때 팀원들의 성향에 맞추어서 파워포워드와 센터의 역할을 둘 다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때그때 센터와 파포를 동시에 수행가능하며, 파워포워드, 센터 두 포지션에서 모두 당대 최고를 넘어 역대 최상급 기량을 보여준 선수라는 것.

하지만, 데뷔시의 포지션 설정이 이어지면서 던컨은 파워포워드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포지션 설정은 꽤나 논란이 많은데, 일부 전문가들과 팬들은 파워포워드의 탈을 쓴 센터일뿐이라고 말하고, 올타임 베스트 순위 매기기에 집착하는 극렬 안티들은 센터로는 역대 최고에 올라설 수 없으니 꼼수 쓰는 거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비교대상이 PF가 되는것 이외에도, 시즌 수상시도 포워드로 분류되어 올스타 선발, All-NBA 팀에서 포워드 한자리를 쓸어갔기 때문. 센터는 1명만 받을 수 있지만 포워드는 PF라도 SF와 묶어서 두명까지 퍼스트팀을 받을 수 있다. 포지션이 센터로 분류되었다면, 2000년대 초반 리그 최고로 군림하던 정통센터 샤킬 오닐과 함께 퍼스트팀에 선발된 던컨이 오닐에 밀려 세컨드팀으로 밀렸을 거라는 뜻이다. 오닐은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단 한번(1999)을 빼고 전부 퍼스트팀에 올랐는데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오닐의 확연한 우위라는게 전반적인 의견이다. 만약 이런식으로 던컨을 센터 세컨드팀으로 밀어낸다면 수혜자는 같은 시기 세컨드팀 단골 포워드였던 크리스 웨버는 물론, 케빈 가넷이 연속 퍼스트팀에 들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던컨이 2년 연속 MVP를 탄 2002년과 2003년은 당연히 던컨의 활약이 더 뛰어났지만 그 전에 오닐을 제칠 확률은 극히 적다. 커리어 말미 선정되었던 2013년 센터 퍼스트팀도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는게 이때 포워드진은 케빈 듀란트,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등 엄청난 뎁스를 자랑한 반면 센터는 마크 가솔, 로이 히버트 등 경쟁력이 약했기 때문. (드와이트 하워드는 부상으로 부진해 써드팀에 그쳤다.) 이 때문에 "오닐 전성기 땐 포워드로 분류되어 이익 보더니 커리어 말미엔 경쟁력 약한 센터로 분류되어 이득보네"란 시각이 존재한다. 물론 던컨이 역대 최고의 파포인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센터로 분류되었으면 샤킬 오닐의 존재 때문에 루키시절인 98시즌부터 8시즌 연속 퍼스트팀은 불가능했다는 건 사실이다. 2000년의 오닐만 해도 MVP 투표에서 단 한 표를 제외하고 싹쓸이할정도로 압도적이었으니... 이때 오닐은 던컨이 아니라 조던이 와도 MVP를 뺏을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이게 현지에서도 문제가 되었는지 현재는 올스타의 경우만 프론트코트 2명, 백코트 3명 이런식으로 묶어서 뽑고 있다.[32]

실제로 DPOY 득표 기준으로 수비 퍼스트,세컨드팀을 선정할경우 던컨이 센터 포지션으로 가면 수비 퍼스트팀7회 세컨드팀 6회의 커리어가 퍼스트 0 세컨드6회의 평범한? 커리어로 변해버린다 그도 그럴것이 던컨이 뛰었던 기간에 센터 포지션 디펜시브팀 경쟁자는 모닝, 무톰보, 빅벤, 하워드이기 때문.

TNT의 데이비드 알드리지는 던컨 딜레마라는 용어를 통해 실제로는 센터의 플레이를 하면서 역대 No.1의 타이틀을 위해 파포 포지션에서 뛰었다는 비판을 칼럼에서 하기도 했다.

물론 워낙 대단한 선수라 이게 큰 흠결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이러한 논란은 한편으론 파워포워드와 센터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빅맨으로 통합해가는 2000년대 NBA의 포지션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나 팀이 명예욕에 미쳐서 기자단 상대로 로비를 한 것도 아니고, 리그 환경과 팀 상황에 맞춰서 두 포지션을 오가면서 로빈슨 이후에 그렇게 눈에띄지 않는 빅맨 파트너들을 데리고 2000년대 홀로 샌안토니오라는 프랜차이즈를 데뷔 내내 50승 이상 올리는 명실상부한 왕조로 이끌어냈다는 점은 포지션과 무관한 그의 위대함을 말해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센터로만 취급한다고 해도 그는 커리어면에서 NBA Top 10 센터에 들만한 위대한 선수이다.

클러치 상황에서 유독 강력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던컨은 데뷔 초부터 4쿼터 박빙 상황의 공격을 전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게다가 동포지션에서 상위권의 볼핸들링, 높은 수준의 게임조립능력까지 갖춘 토탈패키지형 선수였기에 파커와 지노빌리가 여물기 전까지는 하이포스트에서의 리딩도 담당할 정도로 클러치 상황에서의 게임장악력이 탁월한 선수였다. 최근에는 나이를 먹으면서 감량한 몸과 예전같지 않은 체력 때문에 과거처럼 리그를 지배하는 수준의 포스트업과 페이스업 능력을 꾸준히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 대신 리그 최고수준의 작전수행능력을 활용해 다양한 패싱게임을 전개하여 꾸준히 득점에 가담하고 있다.

결정적일때 꽤나 강력한 선수중 한명인데 2012-13 시즌 멤피스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연장 연속득점, 2013-14 시즌 오클라호마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 연장 연속득점같은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던컨은 여전히 중요한 경기에서 스퍼스가 가장 믿을 수 있는 1:1 득점원이다. 또한 전성기에는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 덕 노비츠키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오프만 가면 더욱 강력해지는 선수로 명성을 날렸으며, 실제로 플레이오프만 가면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클래스를 끌어올리는 기형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포스트 조던시대를 지배한 스몰마켓의 지배자로 평가받았다.

6.2 과대평가 논란

원래 본토보다 한국에서 평가가 좋았던 던컨이지만 2014년 안티가 많았던 르브론을 샌안이 꺾고 우승하자 몇몇 팬들을 중심으로 지나친 과대평가가 이루어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33]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과장하지 않아도 레전드급인 던컨의 기량을 부풀려서 수비왕을 3번이나 수상한 하워드보다 수비가 좋다던가 던컨이 수비왕을 수상못했으니 수비왕 신뢰도가 떨어진다던가 전성기 던컨은 공만 주면 2점 적립이었다는 찬양수준의 표현들이 등장한다. 이에 더해 일부 팬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투표하는 Poll 에서도 수비왕을 여러번 수상한 선수들보다 던컨이 더 수비가 좋다는 주장을 하여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NBA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던컨 vs 하워드, 던컨 vs 로드맨으로 수비력 투표를 하면 전부 던컨이 이긴다.[34][35]

단순히 던컨을 찬양만 하면 귀여운 수준으로 봐줄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 와중에 다른 선수들을 폄하한다는것. 실제 2006시즌에 무리없이 수비왕을 수상했던 캠비는 세월이 지난후 블락 스탯만 좋아서 던컨의 수비왕을 부당하게 가로챈 선수로 회자되고 있다.

허나 당시 수비왕 투표에서 던컨은 2위도 아닌 3위에 불과했고 당시 NBA 커뮤니티에서 수비왕 예상자를 묻는 게시물에도 캠비가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오히려 그 게시물에서 던컨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캠비는 그해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비왕 투표 상위권에 오른 수비로 던컨 이상으로 인정받는 선수였기도 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수상 실적과 실제 수비 영향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07-08시즌 케빈가넷이 보스턴에서 어마어마한 수비력을 보여주면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1차 수비 스탯없이도 수비왕을 차지하면서 트랜드가 변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후 타이슨 챈들러, 마크 가솔 등도 비슷하게 높지 않은 1차 스탯으로도 수비왕을 거머쥐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블록수 때문에 팀 던컨이 부당하게 수상을 빼앗겼다는건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는 것.[36]

최근 르브론이 우승반지를 하나 더 추가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 주목받았는데 몇몇 던컨 팬들이 르브론이 이번우승으로 "버드는 넘었어도 던컨에게는 안된다" 라는 발언을 하기 시작한것. 그러나 미국 메이저 언론 역대순위에서 던컨은 버드에게도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37]

이런 그릇된 팬심으로 인한 역사왜곡으로 인해 NBA 디씨 갤러리에서는 이를 중국의 역사왜곡인 동북공정에 빗대 던북공정으로 부르면서 희화화 당하는 중.

다만 팀 공헌도 자체를 놓고보면 팀 던컨은 가장 팀에 가치있었던 선수라는 평가가 은퇴후에 나오고 있다.[38] 던컨은 공수 면에서 샌안의 핵심에 있었으며 윈쉐어와 그 공헌도 면에서는 다른 어떤 선수보다 뛰어났으니 이 점은 던컨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항목.[39] 다만 이 항목은 던컨의 기량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게 아니라 말그대로 팀의 중요성과 가치를 논하는 것임으로 다른 선수와의 비교로 쓸 수 있는 숫자는 아니다. 단 그만큼 팀 던컨이 자신이 속한 팀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만 기억하자.

더욱이 가장 중요한 건 위 항목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던컨은 전혀 이런 행동의 원인 제공을 한적이 없다. 그러니 빠라면 제발 좀 적당히하자. 진심 창피하다. 대체 던컨은 무슨죄인가..

6.3 페이컷 논란 (일명 착한 페이컷 사건)

던컨이 페이컷을 하자 환호했다가 이후 르브론이 마이에미에서 페이컷을 한게 시장질서 위반이라고 비판받자 갑자기 당시 던컨은 페이컷한적이 없다고 주장하다가 무려 8년전 자료가 발굴되면서 망신을 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웃긴건 그 자료가 공개된 후에도 여전히 던컨은 페이컷이 아니라 받을만큼 다 받았다고 우기는중 허나 당시 던컨은 무려10밀이나 포기했고 이건 팀 선수수급을 위해 재정적으로 엄청나게 배려한거라고 발언한 또 다른 게시물이 발굴되면서 다시 한번 망신을 당하기도.. [40]

7 개그맨

게임 스타일이나 팀 자체가 재미없는 인식이 박혀있지만, 꿈뻑거리는 눈과 끔찍한 패션감각, 어이없는 허당짓 및 가끔 터지는 기행 등 개그 캐릭터이기도 하다. 좀 재밌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다 보니까 국내 한정으로 던말년, 던병장이라는 별명도 생겨났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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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후 백악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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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노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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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컨표 패션 [42]

선배[43] 해설 방해하는 패기.
스퍼스 경기를 보다보면 매우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발 헛디딘거 아니다 점퍼 준비한거다.

인 유어 페이스 버드맨 지못미.

벤치에서 웃다가 테크니컬 파울 2개 먹고 퇴장당한 던컨. 스퍼스팬들은 헛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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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다는 이유로 경기를 뛰지 못한 던잉여 지못미.[45][46]

어 나한테 팔이란게 있었나? 이게 뭐지?[47]

한 번은 팀원 전부를 페인트 볼 게임으로 초대를 했다. 그리고 대부분 총을 빌렸는데, 팀 던컨은 자기 총을 가지고 왔다. 참가한 팀원 마이크 핀리의 말대로라면 페인트볼 경기장 끝에서 반대 끝까지 쏠 수 있는 엄청난 총을. 그것도 부족한지 동료인 데니 페리에겐 영점이 안맞는 총을 주고 자신의 팀에는 잘하는 사람만 넣은 뒤... 불쌍한 동료들을 쫓아다니면서 실사 FPS를 했다 카더라.

- 2011년 팀 멤버가 점점 초라해져 가는 상황[48]에서 라커룸에서 코치 팝이 한탄했다.
"이놈들아, 네놈들은 대체 뭐냐!"
진지 빨고 포포비치에게
"제 이름은 팀 던컨입니다. 이 팀에서 12년을 뛰었습니다."

- 플레이오프 중 자유투 성공률이 워낙 저조하자 성이 난 포포비치가 선수들을 내 보내면서
"이제부터 자유투 실패하는 놈들은 사비를 털어 나에게 차 한대 사 내라."
그러자 이 날 일곱개 던져 하나만 성공해 포포비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던컨 왈...
"무슨 색깔이 좋겠습니까?"

- 애틀란타 백화점을 어슬렁거리다가 자신의 열혈팬과 만난 던컨. 팬은 던컨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던컨은 그 팬을 빤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야. 핫도그 먹을래?'
던컨은 어안이 벙벙한 팬에게 핫도그를 사주고 종이에 사인을 해준 뒤 헤어졌다.
'친애하는 크리스(가명)에게, 핫도그를 사랑하는 팀 던컨이.'

- 휴스턴과의 치열한 경기 도중 4쿼터에 휴스턴이 작전타임을 부르고 복잡한 작전을 설명하는 와중에, 던컨은 슬쩍 휴스턴 벤치에 들어가 작전을 엿듣고 있었다. 보다못한 휴스턴 감독이 던컨을 쫓아낼때까지 던컨은 표정하나 안바뀌고 귀를 기울이고 있더라...
(2014 플옵 인디애나의 랜스 스티븐슨이 히트 벤치로 가서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

- 휴스턴과의 경기는 정규작전타임 시간이 아닌 아웃오브바운스와 같은 레프리 타임 상황이였고 그럴땐 엿들어도 합법이긴 하다. 그러라는 건 아니지만

8 기타

  •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를 졸업하고 드래프트에 참가했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의 유언 때문. 홀어머니로써 던컨과 두명의 누나를 키웠던 윌리엄 던컨은 1990년 유방암으로 작고하셨다. 이는 던컨의 14번째 생일 바로 전날이었다고 한다. 눈감기 전 그녀는 3남매가 꼭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 대학교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미국의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그러하듯 공부도 열심히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 관련 전공서적의 일부를 공동집필하기도 했었다고. 흠좀무..
  • 심리학을 전공한 경력이 바탕이 되었는지 코트안밖에서 표정변화가 거의 없다. 파이널 우승후 활짝 웃는거나 2012/13 파이널 7차전에서 레이업과 팁인이 빗나가고 수비하러갈때 화나서 바닥을 꿍 친게 최근 들어서 감정표출을 보여준 예. 엄청난 강심장이기도 하거니와 트래쉬토크나 그 어떤 공격을 받아도 얼굴표정은 항상 무표정이 유지가 되어있으니 상대편 선수들 중 던컨이야말로 정말로 무서운 선수라고 말한 선수가 몇몇된다. 확실히 심리학 전공을 한게 던컨이 경기를 풀어나가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입 모아 말한다.
  • 게임 NBA98의 데모버전에서는 마이클 조던과 당시는 애송이였던 던컨의 일대일 매치가 수록되어 있었다. 모 게임잡지 부록으로 나오기도.
  • 2001년 같은 대학교 치어리더였던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었고, 남부럽지 않은 금슬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2013년 이혼을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도 시즌 중에! 팬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퍼진 설은 에이미의 외도 때문이라는 것. 또한 이혼 과정에서 충격적인 루머가 돌았는데, 던컨이 양성애자이며, 에이미가 외도를 하기 전부터 그의 대학 룸메이트(남자다)와 불륜관계(!)였다는 것이다.[49] 파커의 경우를 생각하며 '설마?'했던 팬들에게 잠깐이나마 동정심을 유발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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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더 빵빵한(?)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다른 의미에서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50][51]
  • 2015년 6월 기준으로 팀 던컨은 지난 1월 자신의 전 재정 관리자인 Charles Banks가 자신을 이해 충돌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밀어넣어 심각한 손해를 봤다며 고소했다. 그 금액이 무려 2천만 달러. 18시즌 동안 수령한 연봉이 2억 3천 4백 7십만 달러인데 2천만 달러면 대략 2년치 연봉에 조금 못 미치는 거액이다. 근데 그 돈을 빵꾸내고도 2015년 9월, 팀과 2년 1050만 달러에 재계약한 걸 보면 그 손실이 급전을 필요로 할 정도로 당장 큰 피해를 끼치지는 않은 듯.
  • 던컨의 마일리지가 점점 쌓여가면서 NBA 팬들 사이에서 던컨의 탐욕왕[52]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다. 특히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상대로 우승을 차지하고 르브론 제임스에게 건냈던 "이제 곧 너의 시대가 올거야" 라는 말을 던컨의 탐욕왕 이미지에 덧 씌우는 것이 NBA 팬들 사이의 하나의 유머코드로 자리잡았다. 1, 2, 3, 4, 5
  • 그가 은퇴하고 나서 샌안토니오 시에는 시장 아이비 테일러는 7월 21일을 "팀 던컨 데이" 로 지정했다. 올해만 할지 매년마다 기념할지 미지수지만 시내 경기와 홍보에 큰 기여를 한 팀 던컨을 기리는 날로 팀 던컨 선수복을 입는 날로 정했다.
  1. 던컨이라고 많이들 부르지만, 외래어 표기법상 '덩컨'이 맞다.
  2. 1997년 드래프트 측정 결과 맨발 신장 6' 11" = 210.8cm
  3. 샤킬 오닐과 공동 수상
  4. 99년의 MVP가 아니라 98년의 MVP다. 99년은 파업으로 올스타전이 열리지 않았다.
  5. 사실상 영구결번이 유력한지라...공식적으로 영구결번이 결정될 시 취소선 삭제바람.
  6. 샤킬 오닐이 한 인터뷰에서 지어준 것이다. 최초에는 'The Big Fundamental' 이었으나, ESPN의 리포터가 던컨과의 인터뷰에서 'Mr. Fundamental'이라고 호칭하면서 굳어진 것이다.
  7. 칼 말론이 우승을 1번만 했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우승이 없기 때문에 약간 밑으로 쳐준다. 케빈 가넷이나 더크 노비츠키도 우승 횟수가 모자르고.
  8. http://fivethirtyeight.com/features/farewell-to-tim-duncan-the-greatest-two-way-player-in-modern-nba-history/
  9. 보통 라이벌을 꼽으라면 전성기가 비슷했고 같은 21번인 빅 티켓 케빈 가넷을 거론하곤 하지만 중요한 무대에서 만난 일은 별로 없고, 오히려 같은 디비전인 텍사스 지역 라이벌 댈러스 매버릭스더크 노비츠키와 지겹도록 많이 상대했다. 심지어 2014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까지 만났다.
  10.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스퍼스의 동료인 마누 지노빌리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에 패해 동메달에 그쳤다. 2013년 파이널도 그렇고 가장 확실한 던컨의 카운터(...)는 지노빌리인 듯
  11. 농담같지만 연습할 수영장이 없어져서 바다에서 수영을 했어야 되는데 상어가 무서워 수영을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사실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12. 데이비드 로빈슨은 던컨 데뷔와 더불어 부상 이후 보조자 역할에 그쳤지만, 당장 부상 직전인 96년까지만 해도 득점랭킹 5위, 리바운드 2위에 MVP셰어와 윈셰어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초특급 스타 플레이어였다. 이런 클래스 있는 빅맨이 보조자 역할을 거리낌없이 맡아주니 루키에게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
  13. 이때 우승 2연패를 달성하기 위해서 던컨이 다소 무리해서라도 컴백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포포비치는 그런거 그냥 무시하고 던컨을 푹 쉬게 했다. 이로 인해 선수 수명이 길어졌으니 던컨은 포포비치 감독에게 평생 고마워했다한다. 그래서 지금도 포포비치 감독 말이라면 한번도 대들지 않고 듣는다.
  14. 당시 스퍼스의 주전들이 대부분 노쇠했고, 올랜도는 향후 5년간 8개의 1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갖고 있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상황이었다. 던컨 아니라 그 누구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15. 당시 데이비드 로빈슨은 휴가를 즐기고 있었는데 얼마나 급했는지 휴가까지 중단하며 와서 던컨을 간곡히 설득했다.
  16. http://www.orlandosentinel.com/sports/open-mike/os-tim-duncan-spurs-orlando-magic-wife-20160712-story.html
  17. http://ftw.usatoday.com/2014/06/tim-duncan-lebron-james-nba-finals 본문 참조.
  18. 현재 스퍼스의 공격은 전성기 새크라멘토의 모션오펜스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19. 션 엘리엇, 에이버리 존슨, 조지 거빈, 데이비드 로빈슨.
  20. 이 양반은 19시즌 동안 커리어스탯이 25득점 10리바운드다.
  21. 기량에 비해 스탯이 좋게 나온다는 논란이 있었던 라이벌 케빈 가넷은 보스턴 셀틱스 이적 후 득점이 급전직하하면서 20-10이 던컨보다 더 빨리 깨졌다. 나이먹고도 출장시간이나 득점-리바운드에 큰 변화가 없는 선수는 더크 노비츠키 정도.
  22. 기존 기록은 은퇴한 유타 재즈존 스탁턴.
  23. 코비와 같은 화려한 은퇴식은 바라지 않는다고 발언한 적도 있고,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타입의 선수인 던컨이기에 이대로 조용히 은퇴를 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국내외에 많은 편이다. 실제로 경기 종료 후 한 기자가 은퇴여부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던컨은 집에 가서 결정하겠다라며 확답은 피했다.
  24. 이는 NBA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국대에 나간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프로 선수가 올림픽에 나간 이후 미국은 늘 전승 우승을 했다.
  25. 던컨의 발목부상 이후로 이 운동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수비에 약점을 보이기 시작했다. 망할 아디다스 던잉여의 발목을 돌려줘
  26. 위치가 던컨 포지션답게 어중간하게 쓰여있는데 림과의 각도는 약 30도 전후가 던컨의 베스트 포지셔닝. 미국식 농구용어로는 엘보 위치이다. 위 NBA코트에서 3점슛 라인이 곡선에서 직선으로 꺾이는 지역 안쪽 1m 근방에 자리잡고 상황에 따라 페이스업, 포스트업, 픽앤롤, 픽앤팝등 상대에 맞게 이것저것 다 구사할 수 있다.
  27. 잠시도 눈돌릴 틈 없는 런앤건 스타일의 피닉스 경기를 보고나서 샌안토니오 경기를 보면 정말 재미없다.
  28. 우스갯소리로 스퍼스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던컨이 나와서 그냥 빈둥빈둥 거리는것만 보였는데, '경기 끝나고 나니까 트리플 더블을 했더라', '30-20찍고 벤치에서 놀고 있더라'라며 경기 다운받아서 다시 살펴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래서 붙은 별명이 던잉여. 던잉여도 은퇴했는데 푸잉여는 언제 은퇴하나여
  29. 자유투는 보통 커리어 내내 일정하게 유지되는 스탯 중 하나인데, 팀 던컨은 이상하게 자유투 성공률의 기복이 많았다. .599로 5할대로 한 번 찍었을 정도. 2011~2012시즌에 커리어 하이 .817을 찍은 후로는 70% 대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통산 커리어 자유투 성공률 .696을 기록했다.
  30. 데이비드 로빈슨, 라쇼 네스테로비치, 나즈 모하메드, 티아고 스플리터등이 해당된다.
  31. 로버트 오리, 맷 보너, 보리스 디아우, 라마커스 알드리지 등이 해당된다.
  32. 실제 오닐과 비볐다 라고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33.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nba&no=565860
  34.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nba&no=1005839&page=1&exception_mode=recommend&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2014 (수비왕 쓰리핏인 하워드의 굴욕현장)
  35. 다만 이런 poll은 원래부터 인기투표의 경향성 크고 팬심이 들어간 글들이 많이 나오는 부분은 감안해야 한다.
  36. 일부 팬들의 주장처럼 스탯이 전부라면 던컨보다 스탯이 훨씬 떨어진 보웬이 던컨보다 수비 투표에서 높았다는거 자체가 말이 안된다.
  37.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nba&no=1001315&page=2&exception_mode=recommend
  38. 던컨이 누구보다 오펜스 디펜스가 났다는게 아니고 팀내에서 그를 대체할 수 있는가의 평가.
  39. http://fivethirtyeight.com/features/farewell-to-tim-duncan-the-greatest-two-way-player-in-modern-nba-history/
  40.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nba&no=349261
  41. 사실 농구 선수 중에서 2미터가 넘어가는 선수 치고 패션센스가 좋은 선수는 보기 드문 편이다.
  42. 여담이지만, 데이빗 스턴 NBA 커미셔너가 2005년부터 선수들은 앞으로 경기장 출퇴근 등 공식 석상에서 수트만 입어야 한다는 강력한 드레스 코드를 제정했을 때 답사마와 함께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던 선수가 던컨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43. 션 엘리엇. 스퍼스의 영구결번 선수 중 하나로 신장 이식수술을 받고도 필드로 복귀한 선수. 풋풋하던 입단 2년차 던컨과 로빈슨과 함께 1998-99 시즌 팀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44. 심판인 조 크로포드가 스퍼스 선수의 반칙을 지적했는데, 던컨이 벤치에서 이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웃자 이를 본 크로포드가 던컨이 자신을 비웃었다고 판단해 던컨을 퇴장시킨 황당한 사건이다. 팀 던컨도 이 사건으로 벌금을 물었으며, 조 크로포드는 이 경기 이후 NBA 사무국으로부터 무기한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 크로포드는 NBA가 요구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거치고 약 5개월 후에 복직하게 된다. 참고로 조 크로포드는 터무니없는 테크니컬 파울을 자주 불러서 경기의 흐름을 끊어먹는 것으로 악명높은 심판이다.
  45. 더 웃긴건 이 경기에서 또 벤치에 앉아있다가 테크니컬 파울 먹었다.
  46. 리그 사무국에서는 해당 사유에 대해서 경고를 먹였다. 원래는 던컨이 제일 먼저는 아니고 로버트 호리를 먼저 DNP-OLD로 했던 건데 계속하니 사무국에서 경고한 것. 감독인 포포비치 曰 "농담을 모른다"고...
  47. 사실은 벤치에서 쉬는 도중 수건으로 팔을 닦다기 피가 묻어 나와서 상처가 있는지 살펴보는 장면이다. 슬램덩크 보면 알겠지만 경기중에 피나면 지혈할때까지 벤치로 들어가 있어야 한다.
  48. 높아져 가는 샐러리 기존 브루스 보웬, 브렌트 베리, 마이클 핀리 등의 노쇠화하면서 폼이 떨어졌지만 네임 벨류를 영입하진 못했다.
  49. http://www.hngn.com/articles/10405/20130819/tim-duncan-divorce-rumors-secret-gay-relationship-caused-wife-amy.htm 참조. 사실 두 사람 모두 이혼 사유에 대해는 입을 다물었고,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으니 억측은 자제하자.
  50. 참고로 저 티셔츠는 찰스 바클리가 샌안토니오는 여자들도 다들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어처구니 없는 지역드립으로 스퍼스를 디스하자 여성팬들이 단체로 맞춰입고 온 것, 그 필두에 선 쭉빵미녀가 바로 던컨의 여친(...).
  51. 참고로 이 여자친구는 바네사 마시아스라는 처자인데, 샌안토니오 토박이에 현재 샌안토니오 스포츠광팬이며, 몸에 산왕의 피가 흐르는 여자다.
  52. 20년째 정상급 팀에서 개인 기록에 대한 욕심보다는 팀 우승에 목말라 하는 데서 착안한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