Πανθεονας (Pantheon)
목차
1 만신전(萬神殿)
위에서 찍은 모습 | 내부 모습 |
도면 |
다신교 국가인 로마에서 특정 신이 아니라 모든 신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건축되었다. 그에 맞추어서 이름 또한 그리스어로 '모든(παν)' + '신(θεος)'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서기 12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재건한 것. 이전의 판테온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가 세웠는데, 하드리아누스가 118~125년에 재건하면서 아그리파를 존중하는 의미로 옛 판테온의 정면에 새겨진 라틴어 명문을 그대로 새겼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카라칼라 황제 때 건물을 수리하기도 했다.
M·AGRIPPA·L·F·COS·TERTIVM·FECIT (Marcus agrippa luci filius consul tertium fecit 루키우스의 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만들었다) |
현존하는 그 어떤 로마 건축물보다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가장 오래된 돔이기도 하다. 직경 43.3m에 달하는 거대한 돔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소피아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비견될 돔이 없었을 정도. 이른바 <완벽한 고대 건축>이라는 유럽인들의 한 목표이며, 판테온의 돔과 열주(기둥)의 양식은 르네상스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판테온 내부에는 자신들의 신앙 외에 피정복민들의 신까지 모셨으며, 고대 지중해의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지 않았으므로, 피정복민의 정체성을 뭉개지 않으며 그들을 자연스럽게 로마 제국 내로 흡수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원래 로마는 다신교였기 때문에 다른 신을 받아들이기에 그리 무리가 없었던 것. 그러나 7세기 이후 기독교가 득세한 세상에서, 판테온은 만신전으로써의 역할을 잃고 608년 교황 보니파시오 4세가 동로마 제국 포카스 황제의 기증을 받아 성당으로 변모해 '순교자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Chiesa Santa Maria dei Martiri)'이 되었다. 판테온이 파괴되지 않고 지금까지 거의 완전하게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성당으로 사용되면서 입구 양쪽에 마개조 종탑이 세워졌고,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철거되어 고대의 모습을 되찾았다.
로마의 판테온과 로톤다 광장[1] | 파사드 양쪽에 세워진 종탑이 찍힌 사진 |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2,000년 동안 내부의 장식 등은 크게 변화되었으며, 외부의 화려한 장식물 등은 많이 훼손되어 극소수만 남아있다. 원래 판테온의 외벽 등은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마감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벗겨지고 벽돌이 노출되어 있다. 내부 천정의 격자무늬 공간에는 금박을 입힌 청동 별들이 장식되었지만 남은 건 하나도 없다. 또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발다키노를 만들기 위해 1625년 교황 우르바노 8세의 명령에 따라 판테온 현관의 도금한 청동판 지붕을 벗겨낸 것도 그 중 유명한 사례.[2]
콘크리트로 된 거대한 돔이 특징. 물론 원시적인 콘크리트로, 지금의 것과는 다르다. 당시에는 철근이 없어 콘크리트에 말총을 섞어서 인장력을 보강했다고 한다.[3] 하지만 돔형 구조와 말총만으로는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어 아래 사진에 나온 것처럼 돔 안쪽에 사각형 모양의 홈을 다섯 층으로 28개씩 일정하게 파내 중량을 감소시키면서 장식적 효과도 나타냈고, 최상부는 그냥 뚫어 놓았다. 직경 9m인 이 구멍은 오쿨루스(Oculus)라 불리며, 태양을 상징한다. 비가 오면 어떡하지 싶지만, 기후조건상 한국처럼 굵은 비가 다량으로 오는 일은 없고 가는 비가 조금 오는 정도인데, 그 정도의 비는 안에서 생기는 상승기류가 구멍으로 나갈 때 기압차로 들어오지 못해 충분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문을 닫고 제사를 지낼 때의 얘기고, 보통은 개방되어 있는 건물이기 때문에 기압차가 없으니 그냥 쏟아져 들어온다.(…)#그리고는 비오는 날씨에는 가운데 부분에 접근을 못하도록 바리케이트를 친다.
또한 판테온은 소위 말하는 부정직한 구조를 가진 건물로, 실제 구조와 겉에서 보는 형상이 다르다. 큰 돔을 받치고 있는 아래의 원형 드럼 부분은 기둥과 보만으로 이루어진 인방 구조로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돔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1층의 두터운 벽처럼 보이는 대형 기둥 8개와 그 위의 대리석으로 가려진 거대한 아치들로, 돔 아래 1층의 보통 굵기의 기둥들이나 2층의 창문 등은 거의 장식에 불과하다. 로마의 건축가들은 아치를 써서 무게를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면서도 그리스식 건물처럼 기둥과 보만 사용한 정갈한 건물로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돔 내부의 형상은 완전한 구라지만, 구조적으로 필요한 돔은 약간 더 넙적한 모양이기 때문에 돔의 아랫 부분은 그냥 완전한 구형을 만들기 위해 더 두껍게 발라진 장식에 불과하다.
판테온 앞 광장의 분수 위에 놓인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파라오인 람세스 2세 때 만든 것으로, 헬리오폴리스에 있던 것을 로마로 운반해 이시스 세라피스 신전에 갖다두었다가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천년 뒤에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판테온의 돔을 능가하기 전까지 돔의 직경에서 이를 능가하는 돔은 세워지지 못했으며, 이탈리아의 후손들조차 이 건축물의 거대한 돔을 보고 인간이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4] 악마의 집으로 부르기 일쑤였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로마의 유산이 재평가 받기 시작했고 판테온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켈란젤로는 판테온을 천사의 작품이라 칭하며 극찬했다.악마에서 천사로 피렌체에 위치한 두오모 성당의 돔에도 큰 영감을 주었고 전면의 삼각형 지붕에서 후면의 원형 돔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성 베드로 대성당, 파리의 팡테온,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의 외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내부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 초기 바로크 시대의 화가 안니발레 카라치, 작곡가 아르칸젤로 코렐리, 건축가 발다사레 페루치,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움베르토 1세 및 움베르토 1세의 아내인 사보이의 마르게리타 왕비의 무덤이 있다. 참고로 AS 로마의 레전드인 프란체스코 토티가 죽으면 이곳에 무덤을 만들자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한국어 위키백과에도 설명이 잘 되어있는 건축물 중 하나. 참고하길 바란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건물은 팡테옹이며 철자는 악상기호를 빼면 똑같다.
이것의 마계 악마 버전으로는 판데모니움(만마전)이 있다.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에서 에치오 아우디토레가 판테온을 기어올라가 오쿨루스로 잠입해 타겟을 암살하는 미션이 있다.
2 메이플스토리의 지역
판테온(메이플스토리) 항목 참고.
3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력
티탄의 모임으로, 사실상 티탄을 의미한다.
4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판테온
항목 참고.
5 록맨 제로 시리즈의 야라레메카
판테온(록맨 제로 시리즈) 항목으로.
6 온라인 게임 <최강의 군단>의 지역 및 시스템
온갖 신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만신전이라고 불리고 있다. 자세한 것은 만신전(최강의 군단)으로.
7 판테온 온라인 (웹게임)
2015년 10월 엔틱게임월드에서 서비스한 웹게임으로, 유저 잔존률 60%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 아저씨들의 악마의게임이다.
8 (주) 판테온 (웹소설)
웹소설 사이트 조아라에 연재되고 있는 글.
작품소개는 "신들이 직원으로 근무하는 회사. 그곳에서 심사 합격 통지가 날아왔다" 라는 캐치프레이즈.
- ↑ 로마의 판테온과 로톤다 광장, 루돌프 폰 알트, 1835년, 18 x 24.8 cm, 종이에 수채, 오스트리아 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
- ↑ 하지만 발다키노 제작에 사용된 청동은 베네치아에서 가져왔고, 우르바노 8세가 벗겨낸 청동의 대부분은 카스텔 산탄젤로에 배치할 대포 주조에 사용되었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
근데 그럼 더 아까운데. - ↑ 중학교나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석고판을 만들어 조각을 해본 경력이 있거나 미술학과 출신으로 석고제품을 만들어 봤다면 석고를 굳힐 때 안에 비닐끈 등을 잘게 찢어 넣어 잘 깨지지 않게 하는 것을 해봤을 것이다. 그것과 같은 원리다.
- ↑ 로마시대 수도교도 같은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콘트리트들만 해도 서방 세계에서 실전된 이후 재발견에 1,0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동로마와 베네치아를 통하여 보존되지 못한 기술들은 영원히 사라졌으며 아직까지도 복구되지 못한 것이 수두룩하다. 특히, 로마의 정식 후계자, 아니 그냥 동방 로마 제국 그 자체인 동로마가 보전하던 기술인, 하기아 소피아에 쓰인 자체 재생(!)이 가능한 콘크리트는 지금도 복원하지 못한 기술이다. 그만큼 로마 말기에서 중세 초기에 이르는 동안에 벌어진 혼란과 그로 인한 기술 실전(失傳)이 엄청났다는 반증. 사방에 지어 둔 로마 가도들도 실전되었고, 이런 초장거리 도로들이 다시 등장하는건 고속도로를 고안한 현대의 일임을 생각해보자. 고전시대 이전의 역사 시대 극초기를 절딴 낸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 전투종족 바다 민족들의 대규모 침략으로 서방 유라시아-북아프리카 세계가 강제 리셋당한 수준에 버금간다. 그나마 동방의 경우 동로마가 멀쩡히 살아 있었으니 다행이지, 동로마까지 무너졌다면 그냥 바다 민족 침략의 재현이다. (...) 서방의 경우 확실히 리셋 당해버렸고, 라틴인에 의해 세워진 로마가 라틴인에게 잊혀질 정도였다. 동방까지 작살났다면 이슬람의 발흥이고 뭐고 없이 다 함께 "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