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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21과 똑같이 생긴 A형
500px
뾰족코로 성형한 B형. 왠지 더 날렵해보인다.
제원 추가 바람
1 개요
선양 항공기 제작 공사(沈飛航空博覽園 Shenyang Aircraft Corporation)가 만든 90년대 그리고 현재까지 중국의 주력 전투기. 현재는 수호이 Su-27의 라이센스인 J-11과 자체 개발한 J-10으로 대체되는 중이다. NATO 코드네임은 핀백(Finback). 원형을 핀백A, Ⅱ를 핀백B라고 한다.
2 제작배경
MiG-21의 카피판인 J-7의 개발에 성공한 중국은 소련과의 외교관계 악화로 고성능의 신형 기종의 도입과 기술협력을 기대할 수 없기에 고성능의 초음속 전투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J-8은 1964년 5월에 J-7을 기반으로 고고도 고속전투기 연구와 개발 지시가 그 기원으로 마하 2.2, 최대고도 20,000m, 표준항속거리 1,500km, 장거리 수색 레이더 탑재 등으로 소련의 MiG-23급의 전투기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부족한 기술력과 자원을 가지고 단기간에 개발하기 위해 개발진은 J-7의 쌍발, 대형화를 시도하였다. 덕분에 J-7의 형상을 거의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후부동체 구조만 약간 넓어진 듯한 모습인데 길이는 크게 늘어나서 전투기로선 매우 특이할 정도로 길쭉한 형상이 되어 버렸다.
개발 착수는 1965년 5월이며 시제기의 첫 비행은 1969월 7월에 성공하였다. 단순한 카피형인 J-7과 달리 처음으로 독자적 전투기 개발이기에 첫 비행에서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하였고 개발 완료직전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받은 J-7과 달리 직격으로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받아 개발이 대폭 지연되어 J-8의 양산형은 1980년 5월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같은해 첫 비행에서 엔진에 화재가 발생하며 또다시 연기되었고 이 문제는 1981년 해결되어 다시 비행에 성공하였지만 비행이 성공한 시점에서도 탑재될 전자장비의 개발이 지연되어 1984년이 되어서야 SR-4 레이더가 완성되어 J-8 생산은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J-8Ⅱ의 개발은 1986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중국 기술진의 언급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시제기의 첫 비행은 1984년 6월에 실시하였다.(레이더는 미장착)
J-8Ⅱ는 단순한 개량형이 아닌 사실상 별개의 기종으로 재설계된 전투기로, J-8의 개발 이전 소련과 사이가 틀어져서 도입하지 못한 MiG-23을 마찬가지로 소련과 사이가 틀어진 이집트로부터 구입했으며 이 MiG-23을 연구/분석한 데이터를 사용했다는 신빙성 높은 설도 존재한다. 실제로 중국의 모 군사박물관에 이집트 국기만 지운 이집트 공군 도장의 MiG-23 1기가 전시중이다.
비정상적으로 동체가 길죽하다.
기수에 공기 흡입구가 있어 노즈콘의 제약이 생겨 대형의 고성능 레이더 장착에 제한이 있던 J-8과는 달리 공기 흡입구를 동체 양측면으로 옮기고 기수에 대형 레이더 돔을 설치한 발전형 기종으로 덕분에 더 길쭉해졌다. 외형적인 모습은 Su-15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사실 Su-15도 유독 길쭉하게 생긴 것도 판박이다 초음속 성능도 비슷하고 공기 흡입구는 Su-15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F-4 팬텀과 비슷한 2차원 공기 흡입구를 설치하였다. 공기흡입구 아래에는 에어 브레이크를 설치하였고 엔진은 J-7Ⅲ에 장착된 청두 WP-13A형 엔진을 사용하였다.
주익은 후퇴각 60도의 대형 델타익이며 중앙동체에서 후방동체까지는 크게 변경되지는 않았다. 큰 후퇴각의 때문에 주익폭이 기체크기에 비해 매우 좁은 형태로 길이는 무려 21.6m에 달하지만 폭은 9.3m를 조금 넘는데 20m나 그 이상의 전장을 가진 F-15나 Su-27의 주익폭이 13~14m급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익폭이 매우 좁은 편이다. 어느정도냐면 F-16의 전폭보다 좁다. 공교롭게도 Su-15의 주익폭과 같다. 대형레이돔과 이러한 설계를 볼 때 운용은 Su-15와 유사하게 요격기에 가까운 듯. 알려지거나 추정되는 성능도 최대 상승고도 추정치를 제외하면 거의 비슷하다. 레이더등 전자장비는 중국의 기술부족으로 개발이 쉽지 않았기에 1980년대에 서방세계와 우호적인 관계가 되면서 중국은 미국에게 기술협력을 요청하였고 1987년 8월 노스롭이 협력하는 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 체결되었다. 레이더, 컴퓨터, 관성 항법장비로 구성된 전자장비 패키지는 1991년부터 인도될 예정이였지만 1989년 천안문 사태로 1990년 5월 계약이 파기되면서 다시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밖에 없었다. 양산은 1990년부터 시작은 되었으나 처음에는 생산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어 1993년까지 20대 정도를 생산하는 수준이였다.
미국과의 협력이 좌절되고 소련의 붕괴후 신생 러시아와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러시아의 장비와 기술 지원을 받은 내수와 수출을 위한 J-8Ⅱ형의 발전형은 1995년 J-8ⅡM으로 개발을 발표하였다. 파조트론 ZHUK-8 다기능 레이더를 장착하여 탐색과 추적이 동시에 가능하며 룩다운 슛다운이 가능하게 되어서 R-77 아더, R-27R 알라모의 탑재가 가능하게 되었다. J-8ⅡM은 1996년 4월 첫비행을 실시하였으며 이후 양산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현황
J-8 계열은 고성능인 J-11이 도입되기 전까지 중국군의 최강 전투기였으며, 원형과 II를 합해 모두 390대가 생산되었다. J-11이 나오기 전까지 1990년대 중반~ 2000년대 초반 잠시 중국군의 주력전투기였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들어 중국공군의 주력은 4.5세대기인 J-11과 J-10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주력전투기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중국으로서는 3세대기를 주력으로 내세울 정도로 취약했던 공군전력이 단숨에 업그레이드 된 셈.[1]
참고로 해군에서 쓰는 J-8II는 2001년에 하이난 도에서 미국의 정찰기 EP-3E와 공중충돌한 기종으로 그 전까지는 J-8이 실전배치되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이 사고로 실전배치되어 요격용으로도 사용 중이라는게 확인되었다. 추락후 조종사는 행방불명되고, EP-3은 하이난 도에 불시착했다.[2]
J-7이 F-7이라는 서방식 명칭으로 개명된 뒤 제3세계 국가들에 대규모로 수출되었던 것처럼, J-8II 역시 성능을 한층 더 개량한 뒤 F-8IIM이라는 서방식 명칭으로 개명하여 수출도 해보려 시도된 적이 한때 있었으나 이는 페이퍼 플랜으로 끝났다. 여러모로 저렴하면서도 적당한 성능을 갖춰 우방국에 대한 원조라는 의미에서 헐값에 마구 뿌릴 수 있었던 J-7과는 달리 제3세계 국가들이 구매하기에는 가격이 비교적 높았고, 또 성능 역시 미국의 F-4와 비슷한 수준이어서 중국 스스로의 기준으로 보아도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아무리 추가적으로 좀 더 개량을 해서 판다고는 해도 다른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선뜻 구매하고 싶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F-4가 1960년대에 나온 기종이고 그보다 좀 더 성능이 월등한 F-15가 1970년대에 나온 기종임을 감안하면 미국의 동급 기종들에 비해 20년은 뒤떨어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또한 F-15와 동급인 러시아의 Su-27도 1980년대에 개발한 기종이므로 러시아에도 10년이 뒤지고 있었던 것. 1990년대 중반에 배치된 시기로 보면, 문화대혁명과 천안문 사건의 영향으로 인해 나온 시기가 너무 늦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판인 J-8부터가 대형인 동체에 걸맞지 않은 구식 엔진을 달고 있었던 탓에 엔진을 쌍발로 늘렸다고는 해도 그 성능이 뻔했고, 여러 개량을 가해 대폭적으로 성능이 강화된 J-8II이나 그것을 또 한 차례 더 개량한 F-8IIM이라 해도 그러한 원판의 한계를 완전히 넘어설 수는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쌍발 대형전투기에다 나름대로 전자장비도 구색을 갖춘 기종이니 유지비도 싼 편이 아니었고 또 이런 쌍발 대형전투기 자체를 꼭 필요로 하는 나라들은 그리 많지 않은데다 그나마도 돈을 더 주고 미국의 F-15를 구입하거나 또는 러시아의 Su-27을 도입할 정도의 능력은 되는 나라들이다. 중국제 무기가 원래 뛰어난 가성비로 제3세계 국가들을 고객으로 하고 있는데, 돈없는 빈국으로서는 딱히 성능이 압도적이지도 않은 쌍발 대형전투기를 굳이 엄청난 유지비 들여가며 중국에서 살 필요는 없는 셈.
그러므로 이 전투기는 1970년대의 중국처럼 미국-소련 모두와 척을 지고 있었을 때나 울며겨자먹기로 사용해야 했을 전투기이며, 중국공군의 안습한 과거를 상징하는 기체이다. 물론 현재 중국 공군은 돈지랄과 쇼미더머니를 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류 전투기를 주력으로 내세우던 시절은 과거지사가 되었다. 일각에선 러시아제 데드카피로 도배한 중국공군은 아직 붙을만하다는 식으로 말하곤 하지만, 중국 공군이 한국군에게 상대가 될만 했을 때는 J-8이 중국군 주력기일때나 가능했던 이야기고 러시아제 직수입 Su-27계열기만 150 +정식 라이센스생산 J-11A 100여대+ 무단복제한 J-11B 100여대+ 지상공격용 J-16 30여대[3]를 보유한 현재 중국 공군은 더이상 과거의 수준이 아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조차도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주변국들이 현재의 중국 공군을 상대하기에는 매우 버겁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4]
4 관련 문서
- ↑ 당시 한국은 KF-16, 대만은 F-16A/B과 미라지 2000, 일본이 F-15J, 인도도 미라지2000 등의 4세대기를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2000년대 중반까지는 확실히 중국공군이 안습이었던 것은 맞다. 심지어 북한공군도 1980년대 부터 J-8급 전투기인 MiG-23이나 4세대기인 MiG-29를 운용했다. 북한공군이 막장으로 치달은건 1990년대 후반의 고난의 행군이후 부터이며, 1980년대만 해도 F-4, F-5를 주력으로 삼던 한국공군에 그다지 뒤지지는 않았다.
- ↑ 승무원들은 EP-3기를 불시착시키자마자 중국군의 손에 넘어가면 안될 민감한 기기들을 파괴했다. 승무원들은 10일간 구류되어 있다가 중국측에 사과성명을 한 후 석방되어 민항기를 타고 본국에 돌아왔고, EP-3은 중국당국에 철저히 조사되었는데, 중국측이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 측에서는 기체를 다시 비행해서 귀국하려 했지만, 중국측이 이를 거부, 완전히 해체된 후, An-124에 실려 미국으로 돌아 왔다.
- ↑ 여기에 라이센스 없이 생산한 100여대의 비라이센스 Su-27인 J-11B (그리고 이를 다시 개량한 지상공격용 J-16)가 형편없는 성능의 데드카피(즉 열화복제)라고 주장하는 밀덕이 있는데, 전후관계를 살펴보면 중국측이 러시아의 기술을 상당히 흡수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근거가 희박하다. 러시아측은 원래 J-11라이센스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적재산권 엄수를 요구했는데, 후에 중국측이 Su-27MKK의 기술보호를 위한 봉인을 뜯고 분석하여 라이센스 협정을 어기고 로우엔드기 J-10을 제작했다고 주장하면서 나중에 J-11B 조립에 사용할 100여대분의 부품공급을 중단했다. 즉 이것은 중국측이 Su-27MKK의 기술을 상당히 역공학적으로 분석해서 자기 기술로 소화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러시아가 부품공급을 중단한 후에(그래도 엔진은 계속 공급했다.) 만들어진 J-11B는 중국 고유의 기술이 아니라 지적재산권을 어기고 Su-27을 분석해서 습득한 기술이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원판에는 못미칠지 모르지만, 어느정도는 성능을 낸다고 봐야한다. (러시아는 이런 중국의 불법복제행위에 비싼 돈 들여 개발한 레이더 기술이 넘어갈까봐 중국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Su-35의 경우는 적정수량 (최소 80대) 이하로는 판매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어차피 복제될거 돈이나 두둑히 챙기려는게 주목적.) 중국은 이렇게 Su-27의 기술을 습득하여 만들어진 4.5세대기 (J-11, J-10) 를 현재 (제인연감의 기준으로는) 900여대를 보유, 양으로나 질로서도 아시아에서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다.
- ↑ 현재의 중국 공군은 대한민국 공군과 일본의 항공자위대가 협력해야 겨우 대적 가능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