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15

(J-2에서 넘어옴)
러시아(소련)의 제트전투기
도입/개발미그수호이야코블레프라보츠킨기타 제조사
1940년대MiG-9 파고
MiG-15 파곳
Yak-15
Yak-17
Yak-19
Yak-23 플로라
Yak-25(1947)
Yak-30
Yak-50
La-150
La-15 팬테일
La-168
La-160 스트렐카
알렉세예프
I-211/215
1950년대MiG-17 프레스코
MiG-19 파머
MiG-21 피쉬배드
Su-7
Su-9 피쉬포트
Yak-25La-250 아나콘다일류신 IL-28 비글
1960년대Ye-150
Ye-151
Ye-152
Ye-8
Su-11 피쉬포트
Su-15 플라곤
Su-17 피터
Yak-28 파이어바
Yak-32
투폴레프 Tu-28
1970년대MiG-23 플로거B
MiG-25 폭스배트
MiG-27 플로거D
Su-24 팬서Yak-38
Yak-45
1980년대MiG-31 폭스하운드
MiG-29 펄크럼
MiG-33 슈퍼펄크럼
Su-20
Su-22
Su-27 플랭커
1990년대MiG-MFI (Project 1.44)Su-30 플랭커C
Su-32 풀백
Su-33 플랭커D
Yak-141
(Yak-41M)
2000년대Su-37 터미네이터 (플랭커F)
Su-35 플랭커E (Su-27M)
Su-47 베르쿠트
2010년대MiG-35 펄크럼F
MiG-29K 펄크럼D
Su-34 풀백
Su-35S(Su-35BM)
수호이 T-50(PAK-FA)
Yak-130
2020년대MiG-LMFSSu-FG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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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MiG-15novocopy.jpg
북한 공군 도장의 미그-15. 전투기 앞부분 사진이 짤린 것이 아니다 북한군은 1990년대까지 미그-15를 운용했다고 하나 이걸 보면 아직도 퇴역하진 않은듯(...). 세상에 아 제발 뻥이라고 해줘

MiG기 계보
MiG-9MiG-15MiG-17

NATO 코드는 <Fagot>.게이제트기 혹은 알루미늄 토끼(Aluminum Rabbit)[1].

1 개발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 독일에서 입수한 후퇴익 기술과 제트기 기술윈스턴 처칠이 2차 대전 후 연합국간 우호 유지의 과시를 위해 무상으로 소련에 넘겨준 글로스터 미티어 계열의 영국제 제트엔진을 데드카피하여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상황을 따져 보면 적어도 기술 제휴였지 데드 카피는 아니었다.

독일의 기술(포케불프 Ta183)이 대폭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냉전 이후 러시아에서 발표된 자세한 개발사를 보면 소련의 독자적인 디자인에 독일의 기술이 참고해 들어간 정도다. 이미 소련은 MiG-8로 전쟁전에 후퇴익을 성공적으로 시험했고, 1946년에 제트엔진을 장비한 MiG-9를 개발했다.[2].

F-86 등과 마찬가지로 50년대 초기 제트 전투기들의 전형적인 기수에 설치된 공기흡입구 형태를 가지고 있다. 당시 전천후(야간)전투기가 아닌 이상 레이더를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근거리에서만 사용이 가능했기에 대형 노즈콘을 설치하지 않고 비행기의 자세에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당시 신뢰성이 아직 낮던 제트엔진에 비교적 안정적인 공기흐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이런 콧구멍 스타일은 겉보기엔 볼폼없어 보이고 공기저항을 많이 받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비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공기저항을 심하게 받거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엔진에 공기를 바로 맞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영국과 소련의 제트엔진 거래는 1946년에 이뤄졌다. 이당시 영국의 노동당 정권의 수상인 클리멘트 애틀리는 소련에 비교적 우호적이었고[3] 제트엔진 기술 이전을 해달라는 소련의 요청을 승인했다. 소련은 무단 복제가 아니라 1946년 영국정부의 허가 아래 정식으로 영국 롤스로이스사와 계약을 했고, 라이센스와 설계도, 시제품을 들여와서 카피했다.[4]

이러한 기술 제휴는 당시 처칠이 수상에서 물러난지 오래된 상황이라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5] 사실 처칠은 우파인 사람이라 절대로 소련에 우호적인 사람이 아니었다.[6] 그는 처음부터 소련을 믿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처칠은 1945년 독일 항복후 언싱커블 작전(Operation Unthinkable)을 통해 영국군과 미군이 유럽에 전개한 소련군을 공격, 동유럽에서 소련군을 몰아내려고 했으나 당시 작전수립의 요청을 받은 영국 육군참모부가 "3:1로 병력면에서 열세이기 때문에 소련군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포기.[7]

2 설명

미그 설계국의 제트 전투기. 역시나 주 생산국은 소련이지만 중국에서도 카피판을 생산했다.

강력한 N-37 37mm 기관포[8]와 NR-23 23mm 기관포 2정을 장착하였으며, 우수한 상승력, 속도와 기동성으로 매우 위협적인 기종이었다.

6.25 전쟁Yak-9와 함께 인민해방군 공군조선인민군 공군에 대량으로 지원되어 우리에게 악연이 깊은 기종이기도 하다. 당시 북한군은 파일럿이 모자랐기 때문에 많은 소련군 조종사들이 북한 라운델을 단 MiG-15를 타고 참전하였다.

당시 미합중국 공군의 주력기인 F-80 슈팅스타, F-84 썬더제트 등은 이 기체를 상대조차 할 수 없었고, 최신형인 F-86 세이버조차도 일부 성능에서 열세였다.[9] 여기에 당시 해군 항공대의 주력기인 F9F 팬서 역시 성능 열세여서 해군의 경우 가급적이면 교전을 피하려 하였다. 때문에 한국전쟁에서 B-29가 개털리는 결과를 낳았다.

MiG-15의 등장 당시 미국의 충격은 상당하여 이 기종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기체를 통째로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10만 달러를 주겠다고 현상금을 내건 적도 있었다. 다행히 1953년 폴란드의 조종사와 북한의 조종사 노금석 대위가 각각 MiG-15를 몰고 귀순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캐낼 수 있었다.

노획한 MiG-15를 몰아본 미군 파일럿들은 전투의 승패를 가른 요소가 조종석의 시야와 유압계통의 반응속도, 조준장치 같은 사소한 부분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참고로 MiG-17은 사실상 MiG-15의 개량형이나 다름없었기에 MiG-15는 4~50년대를 관통한 소련 전투기의 역사가 된다.

여담이지만 MiG-17이 사실상 MiG-15의 개량형이나 다름 없는 기종이 된 것에는 사연이 있는데, 바로 냉전 당시의 소련의 독특한 군용기 개발방식 때문이었다. 당시 소련에서는 신형 군용기의 개발 및 시험을 하면서 장래의 유망성이 확인되면 개발 및 시험의 완료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해당 기종의 생산을 준비하기 시작한다는 관례가 있었고, 이후의 변경점은 생산이 시작되고 난 후 개수라는 형태로 적용한다는 방침을 취하고 있었다. 이는 신형기의 개발과 배치에 있어 서방권에게 조금이라도 뒤쳐지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발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동소총에서 이 짓거리를 한 영국

아무튼 이러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MiG-15의 경우 개발 및 시험이 완전히 완료된 것은 아예 형식번호 자체가 새롭게 변경된(...) MiG-17이 되고 나서부터였다고 한다. 따라서 데뷔전인 한국전쟁 당시의 MiG-15은 아직도 개발 및 시험이 안 끝나서 여전히 결함을 잡기 위한 테스트가 진행중인 미완성 기종인 채로 부랴부랴 급거 생산되어서 최전선에 투입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프로토타입을 실전에 무리하게 들이밀진 않아서 다행이다 왠지 개발 및 시험과 생산이 동시에 진행되는 특유의 프로젝트 진행방식으로 인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F-35를 연상케 하는 대목.

3 실전

한국전에서 10:1이라는 격추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6:1, 소련군만 잡을 시 3:1 정도의 피해였다. 세이버의 무장은 기관총이었고 그걸로는 제트기인 MiG-15를 격추시키기에는 화력이 부족했다는 것.[10] 중국군 파일럿들이 조종하는 기체는 훈련도가 불충분해서 프로펠러기에도 격추당하는 예도 있었다.[11]

파일:Attachment/jun2.jpg
중국 공군 박물관에 전시된 6.25참전 "인민지원공군" 소속 MiG-15기. 기수에 한자로 소속을 적어놨지만, 라운델은 정규 인민해방군 공군 것을 그대로 썼다. 설마 지원병이 사비로 전투기를 사서 참전할리가 없지

MiG-15와 F-86의 공중전은 주로 미그 앨리(MiG-alley)라고 불리던, 개마고원과 평안북도, 함경북도 상공에서 벌어지는 일이 많았다. 제공권이 미군측에 있었기 때문에 미그기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본거지에서만 출격했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출격하는 Mig-15는 만주기지에서 출동했는데, 당시 미국 공군의 전투기들은 조중 국경을 넘어 추격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다.[12] 그래서 F-86의 M2 중기관총에 맞은 MiG-15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하강하여 만주 방면의 기지로 도주해버렸다. 미국 파일럿들은 이렇게 연기를 내품으며 만주방면으로 도주한 미그기들을 대개 격추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과장된 기록이 나온 경우가 많다.또 MiG-15 조종사들도 이런 기만전술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래야 확인사살을 당하지 않고 어쨌든 살아돌아갈수 있을테니...하지만 실제로는 무사히 살아돌아간 기체가 많다. 즉, 일부러 터무니 없이 과대포장을 한게 아니라 파일럿들이 격추했다고 생각하고 격추보고한 MiG-15중 많은 기체들이 실제로는 손상만을 입은채 어떻게든 기지로 돌아갔었다는 것이다. 어느정도 오차는 있더라도 전과확인은 최대한 엄중하게 하는게 상식이다. 외부에는 선전목적으로 어느정도 왜곡할수는 있어도 내부보고에서까지 전과보고가 엉망이면 지휘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10:1의 승률에 비하여 실제 교환비는 6내지 3:1로 F-86에 열세. 그것도 소련 파일럿을 제외한 중국-북한군 파일럿 대부분은 조종사 훈련을 마치고 갓출전한 초보들이었지만[13] 미군에는 상당수의 2차대전 베테랑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런 교환비로 기체자체의 성능을 따지는 건 어렵다. 사실 MiG-15 자체가 B-29를 요격하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F-86보다 꼭 성능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힘들다(그러니까 순수 제공전투기 vs 폭격기 요격기... 어라?). 나중에 2차대전에 참전했던 베테랑 소련 조종사들이 탄 MiG-15도 F-86에게 밀렸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도 미국 조종사들의 숙련도가 더 높았던 결과로 볼 수 있다.[14] 한국전쟁에 참전한 소련군 최고의 에이스는 예브게니 페펠랴에프 대령으로 22.5기 격추를 기록.[15] 니콜라이 슈탸긴 소령이 22기 격추로 그 뒤를 이었다.

좀 더 최근의 연구자료(2008년)에서는 MiG-15와 F-86의 교전비를 1.8:1 정도로 더욱 근소한 열세로 보고 있으며 소련군 파일럿이 탄 MiG-15의 경우에는 1.3:1 정도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pdf용량압박-85페이지 여기에 MiG-15는 폭격기 요격임무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F-86과 동등한 성능의 기체라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다. 때문에 AK47 VS M16 만큼은 아니지만 F-86 VS MiG-15도 상당한 떡밥이며, 이게 화제로 떠오르면 외국의 밀리터리 사이트나 유투브 등지에서 치열한 댓글전쟁이 벌어진다.

참고로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10월에 건국되었고 그 전에는 공군이라고 할만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창설된지 1년도 안되는 인민해방군 공군이 세계 최강 미군에 도전한 것은 대단한 감투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북한에 전개된 인민해방군 공군은 MiG-15 54대로 시작했고, 이 수는 점차 늘었다. 3년간의 전투에서 자오바오퉁과 왕하이가 각각 9대를 격추하였고(이것은 미국도 인정한 기록) 에이스는 이들을 포함해 7명이 나왔다. 특기할만한 것은 당시 중공군 공군으로 참가한 조선족 출신 리영태 공군중장(예비역)이 MiG-15를 몰고 미군기 4대를 격추했다고 한다.# 이 전과인지 몰라도 소수민족으로는 유례없이 중국 공군 부사령관까지 올랐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MiG-15 에이스는 김전덕(Kim Den Dek) 대위와 김지산(Kim Di San) 중위인데 각각 8대와 6대의 미군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들이 격추했다고 주장하는 날 미군기 출격기록이 없는 등 진위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여담이지만 소련이 중국에 참전하도록 꼬드겨서 MiG-15를 팔아먹었는데, 우방국 혜택을 주지 않고 거액을 중국에 청구하여[16] 후에 배신감을 느낀 중국은 소련측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중소결렬의 한 원인이 되었다. 지금도 중국 사람한테 "러시아 사람들 어때요?"라고 물어보면 "욕심많은 작자들이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카더라. 욕심으로 말하자면 둘이 도찐개찐(...)

1958년 중화민국군중국 인민해방군이 충돌한 진먼다오(금문도) 사태때도 중국군의 MiG-15[17]는 대만군의 F-86과 대결했는데, 이때 중국군은 전투기 11대[18]를 잃었고, 대만군은 3대를 잃었다. 이 결과는 중국군의 미그기들이 기관포만을 사용한데 반해, 대만군이 처음으로 실전배치된 적외선 유도방식의 사이드와인더 AIM-9 미사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중국군은 미그기의 동체에 명중했으나 불발하여 동체에 꽂힌 미사일을 소련에 넘겼고, 소련은 이를 역공학으로 카피하여 소련제 사이드와인더인 아톨 미사일(러시아 제식명 K-13)을 개발했다. 자국무기에 대한 다른 나라의 무기의 영향을 대체로 부정하는 러시아도 아톨 미사일만큼은 사이드와인더를 베꼈다고 인정했다.

4 여담

MiG-15의 테스트 파일럿 중에는 그 유명한 척 예거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노획한 미그기를 테스트한 것으로 몇 차례 목숨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실제 MiG-15에는 실속 경고기능이 없어 최대선회율을 유지하다가 스핀에 빠질 뻔하기도 했고 급강하 도중에 조종성을 상실하여 겨우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부분들이 애초에 설계를 잘못하여 발생하는 문제였기에 비행기를 살리는 것 자체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소련측 사람들은 척 예거의 이야기를 듣자 "헐, 님 뻥치지 마셈. 그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 아무도 없음"이란 반응을 보였다고. 그러나 역시 러시아제답게 관리 측면에서는 매우 간단하고 빠르게 보수할 수 있는 기체였다. 구 소련군 내부에서는 'Soldier Aircraft'라는 별명도 붙여줄 정도로 유지 보수가 용이했다고 한다.

귀순한 미그기 테스트 영상#

1953년 9월 21일, 노금석(1932년생) 당시 조선인민군 공군 상위가 귀순할 때 타고 온 전투기이기도 했다. 현재 그는 미국에 Kenneth Rowe라는 이름으로 거주하고 있다.

76.jpg

한국전 당시 MiG-15와 F-86의 교전에서 피격되어 조종사가 탈출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포착된 희귀 사진이 있다. 참고로 이 사진, 버즈 올드린이 찍었다. 아폴로 11호의 그 인물 맞다. 한국전에서 세이버 조종사로 복무하며 미그와의 격돌에서 2킬을 올린 올드린의 후일담에 따르면 이 당시 미군이 숨겨서 안 알려졌다 뿐이지 저 조종사는 소련군이었다고.
  1. 대략 13,000대가 넘게 생산되어 전 세계에 퍼졌기에 붙여진 별명.
  2. 마찬가지로 야코블레프 설계국에서도 제트 전투기 실험을 하고 있었다.
  3. 소련에 아주 우호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처칠보다는 유화적이었다. 2차대전기 영국 정치 언론계는 소련에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피터 드러커는 자서전에서, 당시 영국에서 "소련을 경계하라"는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사람 이야기를 적었다.
  4. 그런데 소련이 계약을 어기고 제대로 로열티를 안줬다며 롤스로이스가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5. 1945년 7월 처칠이 선거에 패해 수상직을 사임하고 노동당 정권 성립.
  6. 물론, 처칠도 히틀러는 깠다. 도를 넘어선 미치광이를 까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다.
  7. 영화 '패튼 대전차군단'에서는 이 시기 패튼이 "독일놈들이 옳았어!"라고 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8. 미국의 크고 아름다운 중폭격기 편대를 요격하기 위해서 탑재된 대구경 기관포로, 연사력과 탄속이 느려 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는 불리하였으나, 일단 한번 맞추기만 하면 전투기고 폭격기고 한방에 인수분해되는 무지막지한 위력을 자랑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미군 조종사들이 37mm탄을 호박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후방을 잡혀 사격을 당하면 호박만한 불덩이가 줄지어 날아든다고(...).
  9. 그러나 F-86 후기형에선 그 성능을 상당부분 능가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MiG-17이 곧 등장하지만 어차피 17은 15은 개량형이라...
  10. 2차대전 때의 프로펠러 전투기들에겐 충분히 효과(방어력이 부족한 일본전투기에겐 재앙이었다고...)가 있는 화기였지만 프로펠러기보다 훨씬 덩치가 커진 제트 전투기 시대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위력이 부족해진 것이라고 한다.
  11. 고고도 기동 때 산소공급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조종사가 순식간에 의식 불능에 빠지면서 추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12. 맥아더는 허가를 거듭 요청했지만, 트루먼은 확전의 우려때문에 허가하지 않았다. 맥아더는 심지어 만주의 중국공군기지를 폭격하려는 계획도 고려했다.
  13. 그래서 초기에는 어처구니 없게도 프로펠러기에 격추당하기도 했다.
  14. 한국전쟁 당시의 MiG-15의 성능은 F-86과 비교해 1000km/h 이상에서의 기동성이 아닌 이상 우위를 지닌다고 봐도 된다. 간단히 말해 숙련도 차이로 패배한거다.
  15. 공동 격추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소수점으로 나타난다.
  16. 헌데 중국과 대립하던 인도에는 우방국 혜택을 줘서 많은 할인을 해줬다(...).
  17. 중국의 MiG-17 라이센스 판인 J-5라는 설도 있다. MiG-17은 15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서 겉모양만 봐서는 구분하기가 힘들다.
  18. MiG-17(J-5)항목에도 있듯 MiG-15를 포함 29대 손실이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