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킨


선수 시절



현재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로이 킨 (Roy Keane)
생년월일1971년 8월 10일
국적아일랜드
출생지먼스터 주 코크
포지션중앙 미드필더
신체 조건178cm, 81kg
소속 클럽코브 램블러스 FC (1989-1990)
노팅엄 포레스트 FC (1990-199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3-2005)
셀틱 FC (2005-2006)
지도자선덜랜드 AFC 감독 (2006-2008)
입스위치 타운 FC 감독 (2009-2011)[1]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13-)
아스톤 빌라 FC 수석코치 (2014)
국가 대표67경기 9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주장
에릭 칸토나
(1996~1997)
로이 킨
(1997~2005)
개리 네빌
(2005~2011)

마르코 마테라치 이상의 최악의 인성과 최고의 실력을 지닌 맨유의 전설적인 캡틴.
조이 바튼의 롤 모델.[2]
로이킴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1 소개

최고의 실력, 허나 최악의 싸가지.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사례 중의 하나.

아일랜드 국적의 미드필더. 풀네임은 로이 모리스 킨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황금기를 이끈 당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이다. 애칭은 키노인데 그 키노랑은 전혀 상관 없다. 로이 킨의 라이벌로는 주로 아스날 FC파트리크 비에이라(현재 은퇴)를 꼽는다. 당시 둘은 그라운드에서 상당한 설전을 벌였다.[3][4]

로이 킨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알려진 것은 2005년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면서 부터인데, 이 영향인지 전형적인 홀딩인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로이 킨은 중앙 미드필더이며 공수를 겸비한 다재다능하고 중원 장악과 빌드업에도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으며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EPL을 호령하던 중원 사령관으로 명성을 떨쳤다.[5] 오죽하면 한준희 해설위원은 현대축구에서 4-4-2 포메이션에서 중앙 미드필더 두명을 선정하라면 비에이라-킨이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라 말할 정도.

2 지랄맞은 성질머리

성격이나 인격에 좀 문제가 많다(...). 오죽하면 해외에선 맨유팬을 제외하곤 로이 킨을 응원하는 팬들이 없다고 라이벌 팬들이 조롱할 정도. 그 유명한 키노게이트 사건은 물론이고 선덜랜드 감독 시절엔 성적 부진으로 경질당하자 선수단이 파티를 할 정도다.

기가 찬 그의 행적은 하단 참조.

3 클럽 경력

3.1 코브 램블러스

축구 선수로서의 출발은 초라해서 아일랜드 정부가 실시한 공공근로사업 중 축구분야에서 일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안습한 초창기를 보냈다.

3.2 노팅엄 포레스트

어쨌든 콥 램블러스에 재적중에 한 스카우터의 눈에 띄여서 그의 도움으로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선수 생활을 하게 되었고 역시 엄청난 성질머리로 유명한 명장 브라이언 클러프[6]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7]

점차 실력을 키우며 상위권 클럽들의 관심을 받던 킨은 본래 케니 달글리시가 지휘하던 블랙번 로버스로의 이적에 합의했었지만, 이적 서류에 실수가 발견되어 이적이 지연되는 사이 알렉스 퍼거슨의 전화를 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을 결정했다. 사실 블랙번도 이 실수를 발견했는데, 실수를 발견한 게 금요일 오후인 데다 주말에 사무실이 닫는 관계로 월요일에 이적을 확정짓기로 구두합의를 한 상태였지만 퍼거슨은 킨을 잡기 위해 토요일에 모든 서류를 완비해 킨에게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적료는 영국 기록인 375만 파운드.

3.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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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의 영광의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팀의 정신적 지주로 오랫동안 활약하였다.

당시 유나이티드의 중원을 구축한 핵심 멤버는 브라이언 롭슨폴 인스의 듀오였는데, 이 듀오는 리그 우승의 주축이 되었던 터라 킨이 주전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롭슨은 당시 이미 36세의 노장인 데다 부상에 계속 시달리고 있었던 덕분에 킨은 점차 출장 기회를 늘려가며 선발 멤버로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힐 수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 킨은 7번의 EPL 우승과 4번의 FA컵 우승, 1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맨유가 트레블을 이룩한 98/99 시즌에는 경고 누적으로 FA컵 결승전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뛰지 못했다.

실력 뿐만 아니라 불굴의 정신과 성공에 대한 열망,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유명했으며 알렉스 퍼거슨 경은 그를 함께 했던 선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였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그러나 그 불같은 성격과 자기자신이나 남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과격한 언행 때문에 충돌을 여럿 빚기도 했다.[8][9]

05/06 시즌에 맨유가 미들즈브러에게 4-1로 대파당하자[10] 로이 킨은 맨유 TV와의 인터뷰에서 미들스브러전 패배의 원인이 된 5명의 선수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면서(리오 퍼디난드, 키에런 리차드슨, 앨런 스미스, 존 오셔, 대런 플레처) 능력이 없으면 팀을 떠나라는 식의 독설을 퍼부었다. 퍼거슨 감독과 길 단장은 이 인터뷰의 내용이 너무나도 신랄해서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에서 맨유가 프랑스의 릴에게 1:0으로 패배하자 데일리 미러지가 이 인터뷰를 언론에 공개했고 키노게이트라 이름 붙여진 이 인터뷰는 일파만파 퍼지게 된다. 키노게이트로 인해 로이 킨은 상호 간의 계약 해지로 맨유에서 나왔으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맨유 이외의 팀에서는 뛰지 않겠다며 스코틀랜드의 셀틱 FC에 입단해 잠시 뛴 후에 은퇴했다. 그리고 두웨이를 만났다.그래도 팀에 큰 공헌을 한 레전드에 대한 예우에서인지 셀틱 FC에서 은퇴하는 그를 위해 맨유가 은퇴경기 상대팀으로 나섰다. 그리고 2006년 5월 은퇴 경기 때에는 올드 트래포드에 있던 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11]

4 지도자 시절

선수 은퇴 이후 06/07 시즌에 잉글리쉬 챔피언십 리그(2부)의 선더랜드 AFC의 감독을 맡아 프리미어 리그로 팀을 승격시켰다. 재미있는게 이 때 선더랜드의 구단주 컨소시엄의 대표가 니얼 퀸[12]이었다. 07/08 시즌 다소 고전하며 팀을 프리미어 리그에 잔류시키는데 성공했으나 08/09 시즌 중반, 성적부진으로 사임했다.

감독이 되면서도 그 거친 성격은 못 버렸는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주변 집기들을 부쉈다고 한다. 심지어 리저브 팀이 경기를 할 때 라커룸으로 찾아가 "1군에 올릴 선수가 있나해서 왔는데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면서 리저브 팀 선수들의 사기마저도 꺾어버렸다. 이 때문에 그가 사임하자 선수단은 환영의 의사를 밝혔고 심지어 축하파티를 벌였다는 루머까지 흘러나온....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열심히 파티를 했다.

2부리그 구단인 입스위치에 부임했을때 선수들이 군기가 빠졌다면서 선수들을 군대캠프에 보내서 굴렸으나 성적은 더 하락하고 본인은 잘렸다.선수로서는 일류였지만 감독으로서의 재능은 좀 없는 듯.동료 선수도 그가 감독직에 대한 이해나 준비가 없는 거 같다고 평했다.

2013년 아일랜드 국가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영입되었다. 그런데 감독이 마틴 오닐. 사이코와 또라이의 만남.
2014년 아스톤 빌라의 수석 코치로 임명. 국가대표 수석코치와 겸직인듯. 아일랜드 대표팀에 집중하기 위해 2014년 11월 28일 아스톤 빌라의 코치직에서 사임하였다.

5 기타

축구 역사상 유례 없는 복수극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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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으로 알려진 일명 할란드 사건.

97/98 시즌 불구대천의 라이벌 관계였던 맨유와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각각 전성기를 누리던 로이 킨과 알피 할란드는 리그 경기에서 격돌하게 됐는데 경기 내내 신경전이 오가면서 두 선수의 관계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알피 할란드가 로이 킨의 무릎을 고의적으로 찍어버리면서 로이 킨은 경기장에 쓰러졌고 알피 할란드는 쓰러진 로이 킨에게 "별 것도 아닌게 까불고 있어"라고 말하면서 침을 뱉고 퇴장한다. 이 부상으로 로이 킨은 십자인대가 파열되어 높은 수준의 재활훈련을 견뎌야 했고 다음해가 돼서야 필드에 복귀하게 된다. 로이 킨의 부재로 인해 맨유는 아스날에게 리그 우승을 빼앗겼고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도 탈락했으며 아일랜드 대표팀은 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

이 일이 있은지 5년 후, 알피 할란드는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고 맨체스터 더비에서 두 선수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공중볼 경합 도중 로이 킨은 알피 할란드의 무릎을 고의적으로 찍어버리고 5년 전에 자신이 들었던 말을 알피 할란드에게 똑같이 내뱉으며 퇴장당했다. 이때 입은 부상으로 알피 할란드는 8개월동안 재활운동을 해야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이 보복 행위에 대해서 맨체스터 시티와 알피 할란드 측은 로이 킨을 고소했으나 알피 할란드의 무릎은 로이 킨이 박살내기 전부터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 고소는 기각되었다.

알피 할란드는 8개월의 재활훈련을 거부하며 선수 생활을 끝냈으며 고소마저 기각 됐기 때문에 로이 킨의 복수는 제대로 성공한 셈이 되었다. 킨은 이 사건 이후 더 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가 최고의 기량에 달했던 순간에 국가를 대표하여 월드컵에 뛸 수 없었다. 재활이 엄청 힘든 상황이었지만 쓰러진 나를 향해 내뱉던 그의 말을 떠올리니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라고 밝히며 복수가 성공한 것을 자축했다. 사실 퍼거슨 감독은 이러한 사태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두 선수가 경기 중에 만나지 않도록 로이 킨의 포지션을 평소와 다른 쪽으로 돌리는 등의 노력을 다했으나 로이 킨은 근성으로 복수를 성공시켜 퍼거슨 감독의 수고를 헛되게 만들었다.그냥 빼면 되잖아

라고 국내에선 알려져 있었으나,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사실 일반적으로 국내에 알려진 위 내용과는 다르게 로이 킨의 부상의 원인은 되레 로이 킨이 할란드에게 태클을 걸다가 부상을 입은 것.적반하장 할란드가 태클을 건 것도 아닌데 킨에게 "별 것도 아닌게 까불고 있어"라고 말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로이 킨의 자서전에는 할란드가 "부상 당한척 하지마"라고 말했다 써있고[13] 침을 뱉거나 모욕적인 말을 한것도 아니다. 국내에서는 멋진 복수극으로 포장되었으나 실상은 중요한 때 부상을 당한 킨의 화풀이에 불과하다. 할란드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할 일이다. 찌질이 로이 킨. 현지 맨시티 팬들은 다른 이유도 아니고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로이킨에게 이를 간다.

국내에서는 맨유의 인기가 절대적이라 칸토나와 물타기를 하려는 의견이 간혹 보이는데 칸토나의 경우는 명백히 상대가 패드립을 시전했기에 나온것이라 로이킨과는 경우를 달리한다.[14] 쓰레기 로이킨.

이게 얼마나 형편없는 행동인가 하면 축구계에서 로이 킨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으로 성질이 더럽다던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슈테판 에펜베르크, 올리버 칸, 파트리크 비에이라, 마르코 마테라치[15]조차 상대선수를 고의적으로 부상을 입히는 행동을 하진 않았다. 당장 독일의 미친놈인 에펜베르크 또한 성질머리에 걸맞는 미친 플레이를 보여줬지만[16] 적어도 이쪽은 고의로 부상을 입히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힐란드의 무릎이 그 때 당시 너덜너덜한것은 중요하지 않다. 선수의 무릎을 고의로 아작내고 선수생명을 끝장낸 킨은 프로로서의 동업자 정신도, 배려도 없는 그야말로 인간 쓰레기에 불과하다.

라고 또 잘못 알려져 있으나 아래와 같이 바로잡는다. 쓰레기는 맞지만 첫째, 로이킨은 애초에 본인이 할란드의 태클 때문에 부상당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둘째, 할란드가 로이킨의 태클로 당한 부상은 경미한 타박상이었다. 그는 그 경기를 끝까지 소화했고, 며칠 뒤 국가대표 소속으로 경기에 출전했다. 셋째, 할란드는 로이킨을 고소를 한 적이 없다. 소송을 걸려다가 중간에 접은 적은 있는데, 애초에 소송으로 갔어도 승산이 전혀 없는게 로이킨한테 태클 당한 무릎은 오른쪽 무릎이고 그의 은퇴 이유는 왼쪽 무릎이다(...). 넷째, 로이킨은 그의 태클이 복수라고 말한 적이 없다. 자서전에는 '공 너 가져 ㅋ 근데 다시는 나한테 엄살피운다고 하지 마셈 ㅋ' '걔는 정당한 대가를 치른거임' 이라고 쓰긴 했는데, 그 정당한 대가 라는게 '부상당한 척' 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돌려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부상인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여튼 FA로부터 중징계를 받기는 했으나 이후로도 인터뷰에서 줄기차게 부상을 입힐 의도로 태클을 한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왜냐면 그 전에도 그런 정도의 태클은 줄기차게 날리던 선수였으니까... 흠좀무 단, 아프게 할 의도는 있었다고 한다. 그냥 원래 아프게 할 의도의 태클을 많이 한다... 다섯째, 킨과 할란드는 킨의 부상 이후 3~4번이나 만난 적이 있다. 복수를 하려면 처음 만났을 때 하지 않고 기다릴 이유가 없다.

로이킨은 그 이후에도 할란드를 여러번 비난했는데, 킨이 할란드를 걷어찼을 때 다른 시티 선수들이 자신에게 달려들지 않은 것만 봐도 할란드가 머저리라는 걸 시티 선수들도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디스했다.

또한 자신이 할란드에게 한방 먹이고 싶었지만 부상입힐 의도는 없었다고 얘기하면서, '그건 파트리크 비에이라, 앨런 시어러, 롭 리, 데이비드 베티도 마찬가지야. 언제 한번 걸려봐. 진짜 한방 먹여줄거야. 기회만 기다리고 있어. 이건 진짜야.' 라고 말했다(이제 철좀 들어라!)

오히려 더 구차하고 찌질해보이면 정상이다.

2002 월드컵 직전 감독과 선수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귀국해서 논란이 빚어졌다. 사실은 월드컵 예선 때부터 축구협회의 선수단에 대한 대우[17]에 불만이 많아 개선을 요구하여 개선에 대한 언질을 받았으나 본선 직전까지도 막장스러운 모습[18]을 보여주자 분노가 폭발했는데 그걸 구실로 감독이 명단에서 빼버린 것. 원래 로이 킨은 끝까지 대표팀에 남아 있으려 했으나 선수시절부터 사이가 안 좋았던 믹 맥카시 감독, 그리고 감독 편을 드는 고참선수 니얼 퀸의 주도로 일종의 추방을 당한셈. 정작 다른 선수들은 로이 킨 편이었다.[19]

2011-2012 시즌에서 맨유가 바젤전에 패해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하자 12월 초부터 신랄한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미숙함과 실력 미달을 비난하다가 마침내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디스하기 시작했다. 팀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팀을 운영한다는 둥, 이제 팀을 떠난 선수한텐 어떻게 못할 거라는 둥...퍼거슨과 척을 진다는 건 맨유와 척을 진다는 것과 진배없는 소린데... 디스하는 내용으로 봐서 그냥 성적 부진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고 뭔가 개인적인 감정도 느껴지는 듯. 이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 듯하다.

두번쨰 자서전에서 맨유를 떠난것에 대한 후회는 더 일찍 떠나지 않은 것 뿐이라고 서술한 걸 보면 내쳐지는 과정에서 퍼거슨에게 제대로 감정이 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서전에서 이미 2005년 키노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이전부터 퍼거슨과 알게 모르게 대립이 있어왔다고 했다. 그게 키노게이트로 인해 완전히 폭발한 것. 퍼거슨 감독은 그 사건 이후로 비록 킨과 사이가 전보다는 다소 멀어졌지만 그래도 맨유의 주장이자 레전드였기에 은퇴경기까지 열어주고 신경도 썼지만, 자서전에서 킨이 맨유 구단과 퍼거슨에게 신랄한 디스를 퍼부어 버렸기에 퍼거슨과 킨은 완전히 원수지간이 되어버렸다.
라고 하나 로이킨이 감독직을 수행하게되면서, 퍼거슨의 고충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사이가 나쁜 건 여전한 것 같다. 베컴이 한 번 유니세프 자선 경기에서 둘의 화해를 중재하려고 했으나 킨은 거절했다. (퍼거슨과는 달리 베컴과 킨의 사이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김남일의 별명인 남일 킨은 이 선수에게서 나온 것이다.

6 기록

6.1 선수 시절

6.2 감독 시절

7 관련 문서

  1. 09/10 시즌 중도 취임, 10/11 시즌 중도 해고
  2. 둘의 성질머리(...)는 비슷해보이나 사실 성향은 정 반대다. 로이 킨, 마테라치, 발로텔리, 제라드, 사노, 루니, 리세 이천수등의 흔히 말하는 '멘탈 갑'식의 다혈질들은 타고난 기질과 본능 자체가 강해서 자연스럽게 화가 뿜어져 나오고, 이는 경기장 안밖을 가리지 않는 편(...)이다. 반면 조이 바튼은 칸토나, 호날두처럼 자신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너무 뚜렷한 나머지 그걸 지나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에 가깝다. 물론 넘는다는 기준이 너무 낮아서 사고를 자주 치는거지만...
  3. 터널에서 비에이라가 개리 네빌을 위협하다가 킨에게 반격당한 사건이 대표적.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서로를 존중해주는 듯한 인터뷰도 하면서 정작 둘의 사이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는 듯하다. 2012년에는 BBC에 패널로 나란히 등장해 경기의 논평을 하기도 했다.
  4. 둘의 앙숙 역사는 이 동영상으로 정리된다.
  5. 물론 박스 투 박스형 중앙 미드필더들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꽤나 많다. 예시로는 로타어 마테우스, 슈테판 에펜베르크, 젠나로 가투소, 상기한 파트리크 비에이라 등등이 있다.
  6. 중소지역구단 노팅엄의 최전성기를 이끈 감독. 기존 선수단의 역량을 한계치로 끌어올리고 자신의 전술로 융합해 유러피언컵 2회 우승을 이끌었으나 이 후 노팅엄은 자금난과 전력약화로 다시 하부리그로 강등(...). 잉글랜드 최후의 명장 계보인 바비 롭슨, 밥 페이즐리의 전 세대.
  7. 여담이지만 킨은 FA컵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해 골을 헌납하고 팀이 탈락하는 빌미가 됐었는데, 라커룸으로 돌아온 킨에게 클러프가 주먹을 날려 그대로 뻗게 만든 적이 있다고 한다(...).
  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동료로 인간성 좋고 선량하기로 정평이 난 솔샤르도 훗날의 인터뷰에서 로이 킨은 선수와 감독 양쪽 다 깠다.좀 돌려말하긴 했지만 이름을 지목해서 유독 로이 킨한테만 그런 걸 보면...
  9. 일화가 많지만 한마디로 군인 마인드. 실제로 감독시절 선수들을 군인캠프에 보내기도 했고... 어쩌면 80년대 한국프로스포츠와 맥락을 같이할지도...
  10. 사실 이 경기를 망치게 된 경기외적인 요인으로는 그 경기가 맨유 통산 1000번째 골을 앞두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이 때문에 영국의 언론은 1000호골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기사가 연일 이어졌으며 심지어는 한 맥주회사에서 1000호골의 주인공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겠다고 하기까지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맨유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골을 넣기 위해 경기 내용에 대해 소홀한 모습을 보여준 면도 있다고 본다(경기를 본 친구의 말로는 수비수들마저 골넣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고 하니...). 참고로 이날 넣은 1골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넣어 1000번째 골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심각하게 대패를 당했기 때문에 이 1000골에 대한 화제는 순식간에 사그러들었다.
  11. 안좋게 나가긴 했지만 팀에 다년간 재적하면서 공도 많았고 맨유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리그로 옮겨가기까지 했으니까.
  12. 둘의 악연은 2002 월드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3. 특별한 것도 아닌 게, 킨이 백태클을 걸다가 일어난 일이기 때문.
  14. 물론 그렇다고 정당한 행동은 절대 아니지만.
  15. 발로 들어오는 태클로 악명이 높았지만 이는 공포심과 상대팀의 사기를 떨어트려 경기운영을 순조롭게 하기위해 다른 선수들도 많이 사용한다. 마테라치는 유독 심하긴 했지만. 지네딘 지단을 퇴장하게 만든 트래쉬 토크로도 유명하다.
  16.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옐로카드 수집(...).
  17. 식단에 패스트푸드가 나왔으니 말 다했다.
  18. 훈련시설이 전혀 준비가 안되어있는 사이판에서 훈련을 했다! 훈련용 공, 콘, 골키퍼 장갑조차 없었고 운동장은 떡잔디여서 부상위험이 컸다.
  19. 정작 아일랜드는 로이킨 없이도 16강에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