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문서 : 오키나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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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0년대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현황. 빨간색은 모두 미군기지이다. [1] |
2000년 7월 21일부터 23일까지 제26차 G8정상회의인 큐슈-오키나와 정상회의가 오키나와 나고시에서 개최되었다. 이는 일본 최초로 지방에서 개최된 정상회의이며, 당시 쟁쟁한 도시들이 후보군에 올라 있었으나 오키나와의 역사적 아픔과 지역의 뜨거운 유치 열기 때문에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결정으로 정상회의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슈레이몬 도안이 그려진 2천 엔권 지폐가 발행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그리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 세월이 흘러... 2012년 7월에는 중국 공산당 정권에 의한 영유권 주장이 나왔다! 오키나와의 전신인 류큐 왕국이 중국의 번속국(藩屬國)[2]이었고, 일본 제국주의가 청나라의 쇠락을 틈타 1879년 강제로 합병한 것이니만큼 중국에게 궁극적인 영유권이 있다는 얘기다. 흠좀무.
하지만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실제로 관철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게, 오키나와 주민들의 가장 큰 원성의 대상이기도 한 주류(駐琉)미군이 중국의 요구에 따라 얌전히 물러난다는 건 아무래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국적임이 분명한 주민이 1, 2만도 아니고 140만 명이나 거주하기 때문에[3] 과거에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현재의 영유권을 인정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2012년 다시 불붙은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분쟁에 따라 일본이 애초에 센카쿠 주변지대인 류큐 제도에 대한 주권도 없었다는 점을 거론해 일본의 주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중국의 야욕에 대한 주민들의 입장은 냉정하다. 류큐 반미주의자나 분리주의자들조차도 우리는 종륙주의자들이 아니다라고 하는 상황. 실제로 중국이 류큐 지역에 노골적으로 영유권 주장을 시작한 2012년 7월에는 중국이 우리를 먹으려고 한다는 플래카드를 나하 시내 곳곳에 걸어두어, 설령 반미주의를 표방하더라도 중국을 좇는 행위는 엄격히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11년판 일본 방위성의 방위백서에 따르면,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은 전체 주일미군 약 33,000명 가운데 23,000명(!)이며, 그들의 가족과 군속까지 합치면 총 43,550명에 달한다. 또 미군 기지는 오키나와 현 전체에 대략 37곳이 분포하며, 기지면적은 현 전체 면적의 18.7%에 달한다. 대충 평택시 면적과 거의 맞먹는 지역이 미군기지로 되어 있는 상황이다.
오키나와의 주요 미군기지는 코트니 캠프 등에 해병대 시설 및 해병대 관리구역이 있으며, 해병대 제3기동전개부대사령부가 위치한다. 토리이에는 미 육군 제1특수부대군 제1대대 및 제10지원군이 주둔하고, 유명한 후텐마 기지에는 해병대 제36해병항공군 산하에 다수의 CH-46, CH-53, AH-1, UH-1 등의 헬리콥터 부대와 KC-130 공중급유기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 기지에서 발진한 CH-53 헬리콥터가 2004년 오키나와국제대학 교정에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기적적으로 일반인 피해자는 전무했지만, 추락지점에 있던 건물은 대파되어 철거되었다. 그리고 철거하면서 남은 벽면 일부와 그을린 부분이 남은 나무를 보존하고 있다.
극동 최대의 공군기지라 일컬어지는 가데나 기지에는 미 공군 제18항공단 산하에 F-15전투기, KC-135 공중급유기, HH-60 헬리콥터, E3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같은 기지 내에 해군 P3C 대잠초계기, 육군 1-1방공포병대대의 패트리어트 PAC-3가 배치되어 있다.[4] 그 외에도 나하에 위치한 군항과 나하 국제공항, 캠프 화이트비치의 해군 저유시설, 구니가미의 해병대 훈련캠프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일부 시설은 자위대도 공유한다.[5] 자위대 83항공단소속 F-15J가 나하 국제공항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2012년 9월 중순, 센카쿠 문제로 불거진 중-일 관계를 기회로 미 국방부는 오키나와 주민의 거센 반대를 묵살하고 M-22A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의 배치를 확정했다. 일본 정부 역시 이에 동의해 오키나와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처사에 반발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10월 16일, 미군 병사 두 명이 귀가 중이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하려고 기도한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한 번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일본 정부는 총리가 직접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불쾌함을 표시했고, 주일 미국 대사도 "미국 정부가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오키나와 현민의 분노를 이해한다. 일본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은 "하늘에는 신형수송기 오스프리가 날고, 땅에는 걸어다니는 흉기(미군 병사)가 있다"면서 "현민은 어디로 걸어다녀야 하느냐"며 분노를 드러냈다.[6]
2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이후
2013년 4월 28일,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61주년을 맞아 이 날을 '주권회복의 날'로 명명하고 덴노 등이 참석한 식전행사를 거행하자 오키나와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날이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버림받은 '굴욕의 날'이라며 항의 집회를 개최했다. 이는 1952년 4월 28일 상기한 조약의 발효로 일본이 주권을 회복했을 때 일본 정부가 아마미 제도가 포함된 오키나와 열도를 거들떠도 안 보고 미군 지배하에 방치하고 외면했기 때문이다.[7]
2013년 5월 15일,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귀'한 지 41년이 되는 날에 마침내 '류큐 민족독립 종합연구학회'라는 일종의 독립(문제를 논의하는) 단체가 결성되었다! 목표로 '류큐자치연방공화국'의 건설을 내걸었다. 흠좀무. '복귀' 이래 4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일본 정부의 오키나와 차별, 미군기지 강요라는 구도에 대항하기 위한 움직임의 절정인 셈이다. 이로써 에우레카 AO의 오키나와가 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오키나와가 실제로 독립을 이룰 가능성은 낮다. 2007년만 해도 20%는 되던 독립지지 여론이 2012년에는 고작 1% 정도로 격감한 것도 있고, 일본 정부가 순순히 놓아줄 가능성 또한 제로에 가깝기 때문. 미군 기지 문제가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미국 역시 찬성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실제로 오키나와의 독립을 추진하기 보다는, 오키나와의 분리-독립 가능성을 공론화시킴으로써 오키나와에 강요되고 있는 무수한 미군 기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와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미군 기지 문제에 대해) 오키나와만 분발해 봤자 (일본 정부와 미국의 전향적 자세 없이는) 소용이 없다"는 식으로 확산되고 있는 패배주의 풍조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8] 다만 어떤 식으로든 오키나와 주민의 여론이 분리독립 찬성으로 기울게 되면, 일본 정부든 미국 정부든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제3자가 또 있으니...
바로 중국이다. 5월 15일 상기한 단체가 결성되자마자 다음날인 16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환추시보가 중국이 민간 차원에서 일본의 영토로 돼 있는 오키나와의 독립운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9] 센카쿠 문제로 일본과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센카쿠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커다란 틀을 손에 쥐기 위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 다만 전술했듯이 오키나와 독립운동 지지세력도 중국의 영향력 강화는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이 정말로 지원해 준다고 해도 이를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이다.
그래도 참의원 선거에서 이 논의가 영향을 미쳤는지 전국적으로 자민당이 우세인 상항에서도 혁신계 의원(오키나와 사회대중당, 단, 공식적으로는 무소속)인 이토카즈 게이코(糸数慶子) 의원이 3만 표의 격차로 자민당 후보를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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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물론 일본과 미국에서도 논란의 핵심인 후텐마 기지 이전 후보지인 헤노코 해변의 모습.
2013년 12월 27일, 일본(과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과 회유에 결국 나카이마 히로카즈 오키나와 현지사가 굴복, 후텐마(普天間) 미군 기지의 현내(縣內) 이전에 동의했다. 이전까지는 현외(縣外) 이전 내지는 기지 폐쇄가 현(縣)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으나 일본 정부의 압력과 회유[10]에 결국 오키나와 현정(縣政)이 굴복한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후텐마 기지의 현외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나카이마 현지사는 '사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관련기사들 한편 일본 정부는 헤노코 지역 기지 이전을 지역주민들이 방해할 경우 형사특별법을 적용해 엄격히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미 2002년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 엄포를 놓은 것.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사의 결정에 항의하며 집회를 가지고, 2014년 1월 9일 임시 현의회를 소집해 지사를 추궁할 계획을 밝혔다.관련 기사[11]
한편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로 이전하기로 합의하고 오키나와 현(縣)정부를 굴복시켜 헤노코 해안 매립을 오키나와 현정부가 승인함에 따른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노엄 촘스키, 존 다우어, 노마 필드, 마이클 무어 등 서방 국가의 진보적 지식인 29명이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해안 매립을 승인한 것에 대해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
오키나와 현지사의 후텐마 기지 현내 이전 승인에도 불구하고 복병은 남아있는 상황이다. 현지사가 주민 설득을 위한 마지노 선으로 정부에 요구한 '5년 내 기지 사용 중단'에 대해 일본 정부가 미국에 요구 사항을 그대로 전달했으나 미국은 확답을 거부했다는 것. 여기에 오는 11월 현지사 선거에서 나카이마 현(現) 현지사가 패배하게 된다면 정부와의 타협은 도로아미타불이 될 가능성도 있다.관련 기사
2014년 1월 19일 치러진 나고 시 시장 선거에서 헤노코 기지 이전 반대파인 이나미네 스스무(稻嶺進) 현(現) 시장이 연임에 성공함에 따라, 기지 이전 문제가 시작하자마자 좌초됐다(...). 실제 기지 이전을 위해서는 공사자재 적치장 설치 등 나고 시장의 인허가가 필요한 절차가 많기 때문에 나고 시장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그 부분에서 암초에 걸린 것. 집권 자민당 정부가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은 고이즈미 신지로 내각부 정무관,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 등을 동원해 기지 이전 찬성파를 도왔지만 '지역 경제 개발'이라는 고리타분한 구호에 나고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은 셈이다.관련 보도[12]
2014년 3월 13일, 현내의 야에야마 지구 소속 다케토미쵸(竹富町)가 일본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구가 결정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계열의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을 거부하고 도쿄서적 교과서를 쓰기로 결정했다. 다케토미쵸 당국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에 대한 실태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으나 일본 문부과학성은 직접 시정조치를 명령하여 압박을 강화했다.참조 4월 9일, 일본 정부가 법률을 개정하면서까지 극우 교과서 채택을 강요하자 다케토미쵸는 해당 교과서를 채택한 교육구에서 탈퇴해버리고(...) 독립적인 교과서 채택지구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상급 단위인 오키나와현 교육위원회도 이에 지지의사를 밝혀, 일단 다케토미쵸의 결정은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5월 21일, 오키나와현 교육위원회가 다케토미쵸의 독자적인 역사교과서 채택을 승인함에 따라 '교과서 내전'에서 일본 정부가 사실상 패배했다. 법률까지 바꿔가며 다케토미쵸 측이 극우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압력을 가했지만, 개정 법률의 허점을 파고든 다케토미쵸의 결정에 오히려 일본 정부가 승복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자승자박 관방장관과 문부과학성 모두 다케토미쵸와 오키나와 교육위원회의 결정을 인정하여 패배를 받아들였다.#
21일 오전 10시 30분경, 쿠메지마 앞바다에서 대폭발음과 함께 버섯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이 목격되었다. 섬에 미군 기지가 있긴 하지만 주민들조차 처음 겪는 일이라는 반응.버섯 구름을 포착한 일본 뉴스 현재로서는 미군이 MOAB 투하훈련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유력하지만, 자위대가 했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조금 나오는 상태.
한편, 아키히토 덴노가 6월 하순 쓰시마마루(對馬丸) 사건으로 희생된 민간인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키나와에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2014년 7월 8~9일, 초대형 태풍 너구리가 오키나와를 덮쳐 60만 명의 주민이 피난했고 3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오키나와 현내에서만 7만여 세대에 전기공급이 끊어지는 등 정전 및 재산피해도 막대하게 발생했다.# 하지만 국내 언론에서 떠든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사상자 중 가장 큰 상해가 손가락 2개 절단이었다. 또 7월 기상관측 사상 최악의 태풍에 직격당했으면서도 단 하루 만에 국도랑 고속도로 및 모노레일이 정상 복구되면서 태풍 다음날 도착한 관광객들로 하여금 "여기가 태풍에 직격당한 오키나와가 맞나?"라며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2014년 7월 14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1972년 오키나와 반환과 관련된 소위 '오키나와 밀약' 문서의 공개를 요구한 소송을 기각하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와중에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이래 줄곧 동아시아 내 최대 미군 거점지대였던 오키나와가 이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신호'가 잡혔다. 미국이 거센 주민 반대와 저항에 지쳤는지(...) 일본 본토, 야마구치 현의 이와쿠니를 새로운 미군 거점지대로 조성하기 시작했기 때문. 실제로 미군은 지난 15일부터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 있던 KC-130 공중급유기를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기지로 이전을 시작했고, 8월 말까지 15기 모두 이동할 예정이다. 또 차세대 스텔스기 F-35를 2017년까지 이와쿠니 기지에 배치하기로 했고, 오키나와 주민의 배치 반대가 격렬한 신형 수직이착륙 수송기 MV-22 오스프리 12대(2개 편대)도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 배치하기 전 이와쿠니 기지에 잠정 배치하기로 했다.# 이러한 배치 전환 및 이와쿠니 기지 거점화가 개시되면 오키나와가 짊어진 미군 기지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완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쿠니 주민들도 혐오시설(...)인 미군 기지 확장에 반대하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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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노코 해안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기지 이전 반대파 주민들. 2014년 8월 6일.
2014년 10월 30일, 여성 각료들의 연속 사퇴로 지지율이 떨어진 아베 정권에 정치적 부담을 더 얹어줄 수도 있는 정치적 사건이 오키나와에서 시작된다. 이날부터 오키나와 지사 선거전이 공식 시작되었기 때문이다(투표 및 개표는 11월 16일). 이번 선거에서는 미일동맹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인 오키나와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의 현내(縣內) 이전 문제가 최대 쟁점. 아베 정권이 오키나와의 여론을 무시하고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내 이전을 추진하는 만큼, 이번 선거에서 현내 이전 반대파가 당선된다면 아베 정권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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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의 지사 선거를 앞두고 내걸린 선거전 포스터. 사진 좌측 4명의 사진 가운데 기지 이전 반대파가 왼쪽 위의 오나가 타케시 후보, 오른쪽 아래의 키나 쇼키치[13] 후보이고 왼쪽 아래가 현재 현지사를 역임하고 있는 기지 이전 찬성파 나카이마 히로카즈 지사이다.
지사 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기지의 현내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오키나와 내의 선거전도 가열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현내 기지 이전 반대 여론이 우세하며, 지방지 류큐신보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후보가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3선에 도전하는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 지사가 뒤쫓고 있으며 유권자의 20% 이상이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
3 반 자민당파 오나가 다케시 현지사 당선 이후
11월 16일 치러진 현지사 선거에서 현내 기지 이전 반대파인 오나가 다케시 후보가 압승을 거두어 당선되었다. 이에 따라 헤노코로의 기지 이전 문제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였지만...
11월 18일, 충공깽스럽게도 방위성은 밤에 몰래 15대의 덤프 트럭으로 플로트 복구를 위한 자재를 운반하고 19일 공사를 강행하려 했다! 흠좀무. 이에 주민들이 해상과 육지에서 봉쇄 시위에 나섰다. 70여 명의 주민들이 진입로 앞에 주저앉아 트럭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봉쇄하고 농성을 벌였다. 경찰이 이들을 해산시키고자 했지만 주민들은 대치 끝에 진입로를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주민들은 해상에서도 카누 13척에 나눠 타고 공사를 저지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카누에 탄 이들은 높은 물살에도 불구하고 해상보안청의 보트 7대에 접근해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한편 새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문구를 들고 저지 시위를 계속했다.
한편 19일 오후 오나가 타케시 현 지사 당선인은 선거 후 처음으로 진입로 농성장을 방문해 “모든 방안을 생각하고 지혜를 모아 헤노코 기지가 건설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새 미군기지 건설 반대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NHK는 현지사의 소견과는 상관없이 중앙정부가 공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레이버넷은 “정부가 오키나와의 민의를 짓밟는데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면서 “상황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아베 정부는 '숨고르기'에 돌입했다. 민심의 강력한 반발을 확인한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 곤란해진 것. 11월 27일자 산케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헤노코(의 훈련장 건설을 위한 사전) 지질조사를 반대하는 시위대의 접근을 차단하는 해상보안청 고무보트를 정박시키는데 쓰인 부잔교(浮棧橋)가 지난 22일 철거됐다고 보도했다. 총선에서 승리하여 내각을 재편한 뒤 기지 이전을 다시 강행하려는 듯하다.#
12월 5일, 9일 퇴임이 예정된 나카이마 현(現) 현(縣)지사가 헤노코 기지 이전 반대 운동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과 일본이 원하는 미군 기지의 매립 예정지인 헤노코 일대를, 지역 자치체의 승인이 없어도 현지사의 승인만으로 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 이는 아베 총리와 자민당, 미국이 원하는 구도이지만 당연히 지역 주민은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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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6일 당선된 오나가 다케시(翁長 雄志) 신임 오키나와 현지사.
12월 10일, 오나가 다케시 신임 오키나와 현지사는 첫 출근 후 기자회견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매립해 헤노코 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그만두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오나가 지사는 또 오키나와 방위국이 현에 제출한 헤노코 연안 매립 관련 공법 변경 신청 건에 대해 "제대로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 12월 14일 치러진 제47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 결과, '본토'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이 오키나와에선 괴멸을 면치 못했다. 오키나와에 배정된 총 4개의 선거구 가운데 자민당 후보는 단 1명도 승리하지 못하고 모두 야당 후보나 무소속 후보가 승리했다. 이는 헤노코 기지 이전 문제로 촉발된 오키나와 주민의, 자민당에 대한 싸늘한 민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자민당의 득표율은 오키나와에서 25.36%에 불과해 오사카(24.79%)[14]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낮은 숫자를 기록했다.
이미지 출처는 세계일보. 사진 속의 광대한 활주로가 미 해병대의 후텐마 기지이다. 보다시피 기지를 둘러싸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기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이 기지는 미군에 의한 오키나와 '지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총선 후 아베 정부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 중론인 가운데, 12월 23일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 현(縣)지사는 니혼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 등에서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 弘多) 전(前) 지사가 후텐마 기지의 이전 대상지인 헤노코 연안부의 매립신청 승인과정을 검증할 위원회를 내년 1월 중순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검증 결과 매립 승인 과정에서 법적 하자가 드러나면 매립 승인도 취소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오나가 지사는 아울러 12월 25∼26일 도쿄를 방문해 후텐마 기지의 현내 이전 반대 여론을 전하기 위해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오키나와 담당상 등과의 면담도 추진하기로 했다. 내년 4월에는 미국으로 가 기지 이전의 문제점을 직접 호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은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스가 관방장관은 “헤노코 이전은 기정사실”이라며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히려 “오나가 지사가 (헤노코 이전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은 채 만나봐야 의미가 없다”며 지사와 면담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전했다.
대신 아베 정부는 예산안 삭감 카드를 동원할 태세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내년도 오키나와 진흥예산 요구안을 전액을 제공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어디서 감히 '을' 주제에 갑에게 대들어? 오키나와 기지 이전에 협력한 나카이마 전 지사 시절 오키나와 진흥예산은 2011년도 2,300억 엔에서 2014년도 3,400억 엔으로 증액됐고, 2015년도 진흥예산 요구안을 3,794억 엔(약 3조 4,782억 원)으로 설정됐다. 아베 정부는 기지 이전에 협력하는 대가로 2021년까지 매년 3000억 엔대의 오키나와 진흥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바 있지만, 신임 지사가 이전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면 자기도 안 지키겠다는 태도다.# 문제는 세상은 예산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빨리독립하는게 좋을거야 답이 없어 독립못하면 더답이없어질지도
오키나와 현의회 선거 전에는 오키나와현 의회에서 주일미군 철수요구, 기지 축소 결의안 채택 하였다.
게다가 2016년 6월 5일에는 오키나와 현 의회 선거가 있는데 후텐마 기지 이전에 대한 대응과 지역 경제 진흥책 등으로 평가가 내려지는 것에 대한 투표가 오나가 타케시 현지사에 대한 중간평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제24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의 전초전으로 주목 받고 있다.
주일미군 군무원의 20대 여성 살인 사건 여파 속에 치러진 6월 5일 오키나와 현 의회 선거에서 예상대로 오나가 타케시 현지사를 지지하는 일본 공산당과 일본 사회민주당이 각각 선거 전에 비해 1석 늘어난 6석, 지역정당인 오키나와사회대중당이 3석, 무소속이 12석으로 집계됐다. 오나가 지사를 지지하지 않는 세력 중에는 자민당이 기존 보유 의석에 비해 1석 늘어난 14석, 공명당과 오사카 유신회가 기존 의석수와 같은 4석과 2석, 무소속이 1석을 각각 차지했다. 투표율은 53.31%로 집계되었으며 앞으로 아베 정권과 극한 대립을 보여줄 것으로 보이며 본토 내 에서도 야권 내에서 큰 영향은 아니지만 조그만한 영향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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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주일미군 군무원이 일본 여성을 살해한 사건에 항의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현민대회'가 열렸다. 또, 후텐마 비행장을 오키나와 현 내부에서 이전하지 말고 폐쇄·철거하라고 촉구했다. 본토에서도 시위가 있었는데, 도쿄에서 국회의사당 앞에 약 1만 명(주최측 추산)이 집결해 살인사건에 항의하거나 SOFA 개정을 요구했고 나고야 시내 공원에 1천 명, 삿포로 도심에 약 500명이 모여 각각 시위를 벌였다. 기사
2016년 7월에 열린 제24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서도 오키나와 현에서는 야권 무소속 후보인 이하 요이치(伊波洋一)가 57.8%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6년 7월부터 오키나와 구미가미 군 히가시 촌에서 미군 해리팟 공사가 진행 중인데 주민들이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건설은 강행되고 있으며 이에 주민들은 자재 반입 막는 등 다방면에서 시위를 펼쳐지고 있다. 그러던 중 8월 말부터 경시청 기동대가 출동하면서 주민들의 분노가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경시청 기동대 비용이 오키나와 경찰들이 부담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동 비용의 지출 금지 등을 요구하는 주민 감사 청구를 현 감사 위원에 제출했다.
2016년 9월 1일. 미일 양국 정부가 후텐마 기지에 실시하고 있는 훈련의 일부를 오스프리 등 본토와 괌으로 옮기는 것으로 합의하였으며, 훈련 비용은 처음 전액 부담과 함께 괌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기사
고등재판소에서 이전 대상지인 헤노코 해안부 매립 승인을 취소한 오나가 다케시 지사의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9월 23일. 주일미군 소속 AV-8 1대가 오키나와 해상에 추락사고가 일어났는데, 예전에 일어난 추락사고으로 인해 불안한 주민들이 25일에 카데나 기지 입구 앞에 시위를 하였다. #
10월 9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주일미군 최대 시설인 '호쿠부(北部) 훈련장'의 일부를 연내에 돌려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오키나와/역사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 특히 일본에 주둔한 미국 해병대는 거의 전부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 위키백과 내용 해당 페이지에서 'Facilities' 표의 미 공군과 미 해병대 항목을 보면 미군 기지로 인해 오키나와가 받고 있는 압박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될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일간지《르몽드》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주일미군 약 41,000명 가운데 무려 25,000명이 오키나와에만 주둔하고 있다. 오키나와는 비교하기 무안할 정도로 거대한 혼슈 전역에는 고작 7,000여 명만 주둔하고 있는데 말이다!
- ↑ 도쿄대 명예교수인 이시이 아키라의 분류에 따르면, 번국은 종주국의 제후가 파견돼 다스리는 변방국가이고, 속국은 자체 왕조가 있되 종주국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은 타입을 말한다고 한다. 이 양자가 혼재된 형태가 바로 번속국. 동아일보 2012년 7월 13일자 기사 참고.
- ↑ 2012년 4월 통계에 따르면 오키나와 현의 인구는 140만 1730명.
- ↑ 미국의 주적인 북한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주한미군 보다도 많다! 그 이유는 위에서도 나와있지만 중국을 견제하기에 최적의 위치이며 한반도 유사시 공군이나 해군등은 오키나와나 사세보에서 출격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전쟁이 일어나면 주한미군부터 칠텐데(왜냐? 먼저 없애야 전쟁을 하기 수월하니까 그렇다. 한국군도 강하지만 미군은 더 강하다. 만약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하면 북한은 이번에도 단기간에 쉽게끝내는 전략을 택할수 밖에 없기 때문. 하지만 현재는 한국전쟁때보다 한국군은 북한군보다 넘사벽급으로 강해졌다. 그래도 지들이 보기엔 상대적으로 미군보단 만만해 보이는 모양(...) 한국에 비싼 전투기 배치했다가 파괴되어 잘못하다가 북한손에 흘러들어가면 안되니까 그런것이다. 그래서 주한미공군에는 상대적으로 싼 F-16을, 주일미공군에는 F-15나 F-22등 첨단고가 전투기를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투기의 속도는 매우 빠르고 한국군도 그 옛날하고는 다르기 때문에 북한군이 서울로 오기도 전에 주일미공군 전투기가 북한군을 폭격할 수 있다.
- ↑ 이상의 자료는 2011년판 일본 방위백서를 참조한 책『오키나와와 평화』(2007)에서 참조했다.
- ↑ http://reuters.donga.com/bbs/main.php?no=21280&tcode=10101&work=view
- ↑ 세계일보 보도 참조 http://www.segye.com/Articles/NEWS/INTERNATIONAL/Article.asp?aid=20130428002417&subctg1=&subctg2=&OutUrl=naver
- ↑ 한편 단체 명칭에 민족독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한데, 공식적으로는 철폐되었다지만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 열도 전체의 주민은 모두 '일본인'이라는 기치 하에 통합된 단일민족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체 명칭에 '민족독립'이라고 명기한 것은 오키나와 주민이 '일본인'과는 다른 별개의 민족으로, 자결권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 된다.
- ↑ 동아일보 외신 다이제스트 보도
- ↑ 이전 대가로 약 3460억 엔( 3조 5,13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이전 비용도 일본 정부가 부담한다. 비용은 약 3조 엔 가량. 또 현 주민의 의견을 고려해 이전 대상지인 나고 시 헤노코(邊野古) 지역의 환경보전을 위한 조치도 강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 ↑ 1995년에도 미군의 아동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민심이 폭발해 기지 문제가 미국과 일본 양자에게 곤란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현지사였던 오타 마사히데(大田昌秀)는 당초 주민들의 기지 폐쇄 입장을 지지하는 쪽에 섰다가 막판에 배신을 때렸다.
그리고 당연히 다음 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현 나카이마 지사도 현재로선 1995~96년 사이 오타 지사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뭔가 아주 강력한 외압이 들어간 거 아닐까? - ↑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는 정부의 '지역 개발' 논리가 식상한 것이, 1972년 일본에 '반환'된 이래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지역 관광자원 개발, 대규모 리조트 단지 건설 등을 지원해 왔지만 그로 인한 혜택은 토지개발업자 등 소위 '토건족(土建族)'에게 돌아가고 주민들에게는 별다른 수혜가 없었다. 여전히 오키나와는 '본토'에 비해 훨씬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으며, 지역 주민의 소득 수준도 일본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40년 넘게 이어져 왔는데 새삼스러운 '기지 유치를 통한 경제 개발'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 ↑ 하이사이 오지상을 부른 그 가수 맞다. 민주당(일본) 소속이었는데, 민주당이 미군기지에 대한 방침을 현내 이전으로 전환하는 바람에 낙선하고 말았다. 키나 쇼키치 본인은 당의 방침 전환에 격렬히 항의하다가 결국 탈당하게 되었다.
- ↑ 이쪽은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의 유신당이 우익 표를 많이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