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 도루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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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일본 유신회 홈페이지 공식 프로필)
한글 표기하시모토 도루
원어 표기橋下 徹 교하철 (はしもと とおる)[1]
로마자 표기Tōru Hashimoto
출생일1969년 6월 29일
학력와세다대학 경제학 학사
당적무소속(2007년~2011년)
오사카 유신회(2011년~2012년)
일본 유신회(2012년~2014년)
유신당(2014년~2015년)
오사카 유신회
정치 경력오사카부지사(2008년~2011년)
오사카시장(2011년~2015년)
홈페이지
공식 트위터
공식 페이스북

하시모토 토오루라고도 하나 일단 외래어 표기법/일본어에 따르면 하시모토 도루이다. 정치인 이름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2]

1 개요

일본의 정치인이자 전 오사카 시장(2011~2015)으로 극우적 발언을 많이 해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이끌었던 정당으로는 일본 유신회 - 유신당 - 오사카 유신회가 있었다.

2012년까지 차세대 일본정치리더로 부상하며 나름 잘나갔지만 2013년 위안부 발언으로 사방에서 욕을 퍼먹은 이후 그걸 '나름대로는' 수습하려다가 실패하고 국내외로 대차게 까인 이후 지지율도 많이 떨어져 예전만큼의 위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인생이 도루인 사람[3]

2 생애

2.1 어린시절

아버지는 야쿠자 혹은 불량배로서 여러번 감옥에 왔다갔다한 인물이며, 하시모토가 어렸을 때 자살했다고 한다. 스스로도 어릴 때 매우 불량학생이었고, 학교를 그만두고 복학하기를 여러번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거짓말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시모토는 기타노(北野)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4], 이 학교는 오사카의 공립 고등학교 가운데 가장 편차치가 높다. 결손가정 출신이지만 그렇다고 엇나가지도 않은 학생이었다. 애초에 그 깔끔떠는 나가타 초[5]에 그런 불량학생이 들어갈수나 있었겠는가 하는 것. 반대로 반론 측에선 하시모토 도루가 아직도 일본 내에서 차별받는 부락민 출신이라는 점을 언급한다. 부락민은 일본 계급에서 최하층에 해당하던 신분이었다. 그의 성인 하시모토(橋下)는 원래대로라면 하시시타로 읽어야 하는 부락민의 성이다. 차별문제로 인해 하시모토로 읽는다. 일본 내 부락민 차별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어있지만, 성이나 출신지를 잘 벗어나지 않는 일본인의 특성상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차별받는다. 아직도 대기업 임용이나 결혼에서 차별받는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차별 때문에 부락민이라는 단어는 방송 같은 곳에서 사용할 수 없을 정도. 그가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인정받는 건 이런 그의 출신 덕이 크다. 실제로 대부분의 부락민들이 아직도 차별받는 직업에 종사하며, 하층민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 생각해본다면 인간승리가 맞다.

이후 재수생활을 거쳐, 명문 와세다대학 경제학과에 합격했고, 이후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하였다.[6]

사법시험 합격 후 로펌에 근무하다가 때쳐치우고 개업을 한다. 이때 돈이 되는 교통사고 소송만을 집중적으로 담당하며 전문 변호사 역할을 하며 1년에 3억엔(약 30억원)씩 버는 고소득 변호사가 되었다. 이때부터 머리를 파마하고 물들이며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몰고 출근하는 등의 기행을 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튀는 행동으로 니혼TV의 법률 프로그램인 행렬이 생기는 법률사무소에 픽업되었다. 준수한 외모(?)와 화려한 말빨로 인기를 얻었다.[7] 이를 바탕으로 2008년 오사카 부지사에 당선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있는 일본 예능이다 보니 오와라이 커뮤니티에서는 축하한다는 글도 몇 올라 왔었다. 여기까지는 서울의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혼 전문 변호사가 되어 명성을 얻고 방송에까지 출연했다가 서울 시장이 된 오세훈과도 유사한 케이스. 여기까지만 하면 인간승리의 감동적인 스토리가 되었겠지만...

그때는 이딴 극우 쓰레기인줄 몰랐으니.

그러나...

2.2 오사카 부지사 당선 이후

취임사 때는 비장했다. "오사카는 파산 상태다. 청사를 해체하겠다", "나와 함께 죽겠다는 각오로 일해 달라. 그리고 마지막엔 죽어 달라" 라며... 오사카부의 5조엔이 넘는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과 공무원들의 급료를 절반으로 확 깎아버리고 각종 시민단체 지원금 및 복지 예산을 대폭 줄여버렸다.

덕분에 오사카의 재정적자는 줄긴 했다. 그러나 문제 또한 다량으로 발생했다. 일본은 "기업은 부자고 국민은 가난한 나라"라는 표현이 있다.

하시모토는 신나게 예산을 줄여 겉으로는 재정적자를 해소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으나, 오사카 거주민들의 삶의 질은 떨어트렸다. 또한 오사카 사회의 일원인 공무원들의 급료를 줄여, 이들이 오사카에서 소비활동을 하기 힘들게 했다. 근시안적으로 봤을 때는 재정적자가 준 것 같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세수가 줄어들고 거주민의 만족도가 줄어드는 정책을 편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야 어차피 오사카의 재정 상태가 워낙 막장이니 일단 줄이고 보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그의 방식이 너무 강압적이고 독선적이라는 데에 있다. 재정적자는 복합적이고 섬세한 문제이니만큼 예산 절약을 기본 원칙으로 하되 그 안에서는 다각도[8]로 접근해 해결하는 것이 제일이다.[9] 특정 분야 예산을 무작정 감축하는 방식만으로 손쉽게 해결하려 했다가는 예상 못한 역풍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심시티슈퍼파워2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

하시모토는 아래에서 나오듯이 현재는 복지 정책을 말하고 있는데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포퓰리즘적으로 정책을 미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3 오사카 시장 취임 이후

2011년, 오사카 부지사를 사임하고 11월 오사카의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우리로 치면 경남 도지사부산 시장으로 출마해 경남과 부산을 통합시켜버리려는 행위로 봐도 좋다. 이런 목적은 하시모토가 도쿄도와 같은 "오사카도 구상" 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많다. 오사카 부지사 선거 때는 자민당의 지원을 받았으나 이후에는 자민당이 맘에 안 든다고 스스로 뛰쳐나와서 "오사카 유신회" 라는 독자 정당을 만들고 자신의 측근을 오사카 부지사로 출마시켜서 당선시켰으며 자신도 오사카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오사카 시장으로 재임중인 현재도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중이다. 오사카 시 공무원을의 업무용 이메일들을 직접 검열하겠다고 자신의 고문 변호사들을 동원하는가 하면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 공무원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시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최근 2년간 특정 정치가를 응원하는 활동에 참가한 일이 있는가", "직장 관계자로부터 특정인에게 투표하라는 요청을 받은 일이 있는가" 등 22개 항목에 걸친 설문조사도 벌이고 있다. 소속과 직종을 적게 하고 조합원이든 아니든 모두 답을 하도록 하는 아스트랄한 설문조사까지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교육 전문가 오기 나오키가 "학생들의 개성과 특성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유연한 유급제도를 시행해야 한다"[10] 라고 주장한 걸 교묘하게 왜곡해서 "학력성취도가 낮은 학생은 유급을 시켜야 한다" 라고 교육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상황이다.

2.4 극우정치인

문제는 이런 인간이 일본에서 트위터 팔로워 61만을 거느린 인기 정치인이라는 점으로 하시모토는 자신의 이런 인기에 거침없는지 대놓고 "일본에 필요한 건 독재다" 라는 정줄을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듯한 발언을 한다는 점이다. 왜 이런 말을 했는고 하면 일본은 정쟁으로 1~2년마다 총리가 바뀌어 중앙집권정책 및 정치의 안정을 실현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 또한 중국에 정부개발원조를 주는 것을 매춘 행위라며 혐중임을 드러냈고[11] 일본의 무장도 주장하는 등 실로 위험천만한 소리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12] 한국에 대해서도 "한국에 진 빚 따위는 없다" 라면서 한국이 제기하는 과거사 청산을 생깔 태세인 걸로 보인다. 조총련조선학교에 대해서도 보조금을 끊어버렸다. 반면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에 대해서는 우호적이고 외국인 참정권에 있어서도 긍정적이라 한국은 멀리하면서 재일은 품는 이중적 태도로 극우 지지자들을 아리송하게 하고 있다. 뭐지 이 새끼[13]

결국 이시하라 신타로를 비롯한 인물들이 이런 하시모토의 인기를 배후로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유력한 제3세력으로 일어서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 하시모토가 이끄는 오사카 유신회는 차기 중의원 선거에 중의원 후보 300-400명을 내서 20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야심찬 포부까지 밝힌 상황. 총리 직선제를 주장하며 사실상의 대통령을 꿈꾸는 모양. 그렇지만 안 될놈안 되지

하지만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두고 오사카부와 오사카시에서의 대대적인 복지 축소와는 앞뒤가 안맞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14]

오사카부 지사 시절부터 월권, 남용으로 악명이 높았다. 유명 축구선수와 접견하는 자리에서 7명의 자식들을 동석시키고 그걸 언론이 비판하니 "아버지 직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어린이의 인권을 유린한 것" 이라며 흥분했다.

손정의 등 기업가들도 그에게 우호적 행보를 보였다. 뉴데일리도 신나게 응원한다! # 정치적 태도는 다르지만 기존 정치세력에 질린 젊은 층의 정치혐오를 지지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안철수에 비유된다.

그리하여 국내에선 2012년 들어서부터 그의 만행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잘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이 사람에 대해 말이 나올 경우엔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 누구든 이 인간이 벌이는 행각이 포퓰리즘에 기반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국민이 불만이 있는 부분을 해결한다는 것은 포퓰리즘이라 하더라도 좋은 것 아니냐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 하시즘(하시모토+파시즘)이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이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뛰어넘는 '극장 정치인', '정치 아이돌', '언변 정치인', 사실상의 독재자라는 평가도 있다. #[15] 한때 중앙일보에서 올린 평가도 있었지만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지워졌다.

2.5 2012년 이후

이시하라 신타로와의 보수 신당 창당도 생각해본 모양이지만 무산된 모양이다. # 다행이다. 진짜 되었으면 일본침몰이 현실화될 뻔... 하시모토 입장에서는 간사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오사카 유신회만으로는 전국적인 바람몰이가 힘들기 때문에 이시하라와의 연대를 지향한 것 같지만 서로의 입장차로 무산된 듯.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전 대표도 하시모토와의 연대를 꾀했으나(!) 하시모토가 '필요없다' 한마디를 시전, 쿨하게 무산됐다. 하지만 지금 하시모토가 하는 짓을 보면 오히려 거절당한 게 전화위복인 상황.

오자와 그룹이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중의원의 민주당 단독과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라 2012년 하반기중에 중의원 선거가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생각보다 하시모토의 오사카 유신회가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있다. 하시모토의 인기는 높지만 하시모토의 공언대로 300명 이상의 후보를 내서 200명 이상을 당선시키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란 의견이 많다. 실제 하시모토가 운영중인 유신정치학원에서 후보감들을 키우고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민주당이나 자민당의 현역의원들을 밀어낼 수준의 인물들은 아니라는 분석. 물론 하시모토의 인기빨로 당선자를 늘릴 수도 있겠지만 하시모토의 공언이 현실화 될지는 두고봐야 할 듯. 게다가 간사이 지방에 대한 간토 지방의 반감이 워낙 강한 것도 있고.

2012년 6월 4일 매일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차기 중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하시모토의 오사카 유신회를 찍겠다는 응답이 무려 28%를 기록했다. 이 비중은 간사이 지방에선 41%에 달했으나 간토 지방의 도쿄에선 22%로 비교적 저조했다. 그러나 자민당(16%)이나 민주당(14%)을 모두 앞선 수치이긴 하다. 후덜덜...

여담으로 한국에 방문했을 때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함께 대원외고를 방문해 "교육의 모범" 이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정작 뒤로 보이는 학생들은 그리 좋게 보지 않았던 듯. 뉴스에 나오는 것도 지겨우니까 연예인 좀 오라고[16]

법률프로그램 출연 당시 배용준과 닮았다는 의혹으로 '법률계의 욘사마' 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정작 도루 본인은 '닮지 않았다' 라며 부정하고 있다.

2012년 7월 19일, 일본 언론은 일제히 하시모토의 불륜 스캔들을 보도했다. 발단은 주간문예춘추가 2007년 하시모토와 불륜관계였다는 술집 여성과의 인터뷰를 내겠다고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하시모토는 불륜을 인정하면서 '오사카부 지사가 되기 전에는 성인군자처럼 살지는 않았다' 라고 언급했다. 되고 나서는 성인군자가 된 것마냥 말씀하시네요 주간문춘의 보도에 의하면 하시모토의 부인이 6번째 아이를 낳고 7번째 아이를 임신한 사이에 이 여성과 만났으며 모텔에서 코스프레 플레이를 즐겼대나 뭐래나. 이로 인해 이미지가 추락할 가능성이 거론되었으나 일본인들은 정치가의 사생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극히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며 도덕적으로 정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 보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고 넘어갔다.

이런 잡음을 일소하기 위해서인지 하시모토는 본격적으로 보수신당 창당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9월 중에 중의원이 해산될 것이 유력한 것으로 보여 이에 대비한 작업인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전현직 의원들에게 신당참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민주당에서는 오사카 유신회와 도주제[17] 연구회를 함께 하면서 인연을 맺은 마츠노 요리히사 전 관방부장관 등의 참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에서는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신당 참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민당이 다니가키 대표의 후임으로 아베 전 총리를 경선없이 대표로 단독추대할 가능성도 있다고 하여 참여는 유동적이다. 이시하라 신타로와의 연대가 무산된 상황이라 하시모토의 입장에선 아베 전 총리라도 끌어들어야 할 판. 하지만 결국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영입하는 건 실패했다. 다만 아베 전 총리는 자신이 자민당 대표가 되고 중의원 선거에서 제1당이 된다면 하시모토와의 연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하시모토의 최측근인 나카타 히로시 요코하마 전 시장의 발언에서 나온 것으로 오사카 시정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에 출마 가능성은 없지만 다만 국회에서 오사카도 구상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출마할 가능성은 있다고 하는 상황. 일각에서는 오사카 시장으로 남아있으려는 게 총선 패배 등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2.6 일본 유신회 창당과 중의원 선거

결국 2012년 9월 12일 일본 유신회라는 이름으로 전국구 보수정당[18]을 창당하고 말았다. 본인이 당대표를 하고 똘마니인 마쓰이 이치로 오사카 시장이 간사장을 맡아서 전국구 보수정당이라지만 사실상 오사카 출신들이 다 해먹는 정당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당 본부도 오사카에 둔다니 말 다했다. 거기에 하시모토와 마쓰이는 총선에 출마도 안하기로 확정했다. 일본 언론들은 어이가 없어하는 중. 당장 일본의 대표 주류언론인 요미우리 신문[19]부터 이 부분을 디스했으니...

게다가 일본 유신회의 로고가 일본 열도를 그려넣은 것인데 거기에 떡하니 독도를 그려넣었다! 거기에 영토수호를 위한 군사력 강화를 공약으로 천명해 이 양반이 총리라도 되었다간 진짜 독도로 자위대 파병해서 전쟁 일으킬 판이다.

일본 유신회를 창당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였으며 오사카시의 오사카 인권박물관[20]을 '일본에는 더 이상 인권 문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폐쇄하겠다' 라고 공언하면서 시의 지원금을 끊는 등 그야말로 막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언젠 어린이들의 인권이 유린됐다더니[21]

9월 23일, 뜬금없이 독도의 한일 공동관리란 걸 언급했다. 한국의 군사력이 만만찮은데다 미국도 한일간의 정면충돌을 바라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이 독도를 실효지배하는 것을 무력으로 바꿀 수는 없으니 한일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라고 언급한것. 그를 위해서 한국에 위안부 문제를 일본이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를 확실히 논의하자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강도가 약자를 죽도록 때리고 강도짓 해놓고 '쌍방과실이니 합의 봅시다' 랑 같은 의미. 한편으로는 러시아(쿠릴열도의 "북방 4도" 문제)와 한국에 국제사법재판소의 강제관할권을 수용하게 하도록 압박하자는 주장도 내놓았다. 나름대로 현실적이랍시고 내놓은 주장인 것 같긴 하지만 자국 우익들한테도 욕먹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런데 9월 말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자민당 대표가 된 이후로 하시모토의 인기는 추락중이다. 요미우리의 여론조사 결과로는 자민당 28%, 민주당 18%의 지지율이 나타났으나 일본 유신회는 겨우 2%에 불과했다. 아베 신조의 재등장으로 자민당과 민주당의 양당구도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자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민당 극우파의 대체제였던 하시모토의 입지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 것.[22] 게다가 독도 공동관리 등의 국내외 현안에 대한 발언을 당내 의원들과 의논도 하지 않고 쏟아내는 것도 지지율 추락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부분 일본의 정치전문가들은 하시모토와 일본 유신회가 총선을 치뤄도 자민당의 연정 파트너가 될 만큼의 유의미한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말해 사실상 하시모토의 정치는 최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런 위기상황을 나름대로 의식했는지 뜬금없이 도쿄도지사직을 박차고 신당창당을 선언한 이시하라 신타로와 다시 연대를 모색하기도 했다. 11월 3일에 교토 오쿠라 호텔에서 만나 제2의 10월 유신메이지 유신 개드립을 치면서 회동하였으나 원전과 증세문제에 부정적인 하시모토가 입장을 굽히지 않아 결국 성과 없이 끝났다.

11월 16일에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중의원 해산을 선언하면서 일본은 총선정국으로 들어선 상황. 이에 하시모토는 사실상 이시하라의 영향권에 있는 민나노당과 정책공조를 선언했으며 같은 날 도쿄에서 이시하라 신타로와 다시 만나 보수연대를 모색했다. 하시모토가 일본 유신회의 공약사항을 이시하라가 인정해준다면 보수연대를 할 수 있다고 밝혀서(이시하라 신타로의 직할 정당인 태양당과의 합당 포함) 이시하라의 입장표명이 주목되는 상황.

결국 11월 17일, 이시하라가 하시모토가 요구하는 사항을 전부 수용하겠다라고 선언하면서 하시모토의 일본 유신회와 이시하라의 태양당이 합당을 선언했다! 이시하라는 하시모토와의 연대를 위해서 전날 선언했던 감세일본과의 합당까지도 뒤집을 정도. 형식은 태양당이 일본 유신회로 흡수통합하고 당 대표는 이시하라가 맡으며 대표 대행은 하시모토가 맡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일본 중의원 총선거는 자민당-민주당-극우 보수연대(이시하라+하시모토+민나노당)의 3파전으로 치뤄지게 되었다. 게다가 당은 태양당이 아닌 일본 유신회로 통합하게 되었다고.

11월 21일 이런 기사마저 나왔다. 아베의 헛소리에 하시모토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것.[23] 일본 국민들은 강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는 설명을 보면 아마 진짜 어느 정도는 나치당의 길을 걸을지도 모르겠다.

12월 16일 중의원 총선거 결과 일본 유신회가 54석으로 약진하면서 제3당의 지위를 확보했다. 다만 현직의원이 된 이시하라와 오사카 시장의 지위를 유지중인 하시모토 사이에 벌써부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하시모토가 아베의 수상취임을 지지하자 이시하라가 이에 반발하고 나선 것.

여담으로 어차피 일본의 수상 선거는 국회의원들이 하므로 후보와 투표수는 정당에 따라서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고 투표 자체는 의례 행위에 가깝다. 이미 자민당이 과반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유신회가 아베를 지지하느냐 마느냐는 별 의미가 없다. 다만 아무리 야당이라도 총리 후보를 내고 투표를 하는 것은 관례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하시모토의 아베 지지 발언은 '유신회'라는 정당인으로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이시하라가 일본 유신회에서 자신 계파의 의원들을 이끌고 나가서 민나노당과 합당할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2013년 7월에 열릴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약진해서 자민당을 견제할 유력정당으로 떠오를 구상중인 하시모토의 머리가 복잡해질 듯하다.

2.7 위안부 망언 파문

하시모토가 전쟁 당시 일본군에서 종군위안부 제도가 필요했다는 망발을 늘어놓아 분노를 샀다. 기사. 이로서 천하의 개쌍놈 인증. 일본 정부에서는 "개인의 발언이며 정부 방침은 이와 다르다" 라고 변명하고 있다.[24] 또한 주일미군에게 "풍속업소를 활용하여 성욕을 해소하라"는 정신 나간 주장도 하였다. 기사.[25]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는 일본의 위안부 동원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하지만 일본 정부 측은 "위안부는 인정하지만 강제성이 없었다"는 주장이라 팀킬이라 하긴 어렵다.) 평가가 개념을 상실했지만. 일본 극우 입장에서는 팀킬 수준이고 일부 정치인들은 하시모토를 실드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어이가 가출한 발언에 주일미군 사령관은 "하시모토의 발언은 어리석다!!"라고 비판했으며 일본 언론들도 비판대열에 동참했다. 심지어 극우 논조로 유명한 우익언론인 산케이 신문조차도 "여성의 존엄을 해치는 것" 이라고 비판했으며 아사히 신문"이것이 정치인의 발언인가" 라는 사설로 가루가 되도록 깠다. 게다가 일본 유신회와 선거공조를 해왔던 민나노당은 하시모토의 발언에 대해서 선거공조를 재검토하겠다고 발언했다.[26]

사실상 하시모토의 발언은 천조국의 심기에 민감한 일본의 상황상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은 격이라, 하시모토는 정치 인생상 최악의 위기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입장에서도 자기가 통치하는 국가. 그것도 자기와 같은 진영에 속하는 유명 인사가 헛소리를 떠든 점에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

여기에 대해 하시모토는 '국제감각이 없었다' 라면서 표현이 부적절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위안부가 필요하다는 발언 자체를 철회하지는 않았다.역시 그럴 줄 알았다 심지어는 '파문을 일으킨다고 해도 의논하는 것이 세계 표준' 이라며 자신의 발언을 정당화했다. 마이니치 신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24일 하시모토 시장을 만나 면담할 것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혹시나 하는 일이지만 하시모토 시장이 할머니들 앞에서 망언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사.

미국에서도 하시모토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위안부 문제에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온 일본계 미국인 마이크 혼다 의원이 성명을 발표해 하시모토를 규탄했다. 국무부 대변인과 # 에드 로이스 공화당 하원의원 #까지 나서서 하시모토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일본 우익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이나 중국들의 반응은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그저 깨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시모토는 17일 트위터를 통해 '전시에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 제국에서도 현지 여성들을 사용했다' 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상황판단 못 하는 넷 우익들은 좋다고 하시모토를 응원하는 중.

결국 그의 이러한 망언으로 인해 일본은 물론 우익마저도 그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해당 기사 자민당과 민나노당이 이렇게 하시모토를 멀리하는 데는 하시모토의 망언이 일본 내에서도 여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27] 여성표가 대거 이탈할 것을 우려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일본 유신회 소속의 핵폭탄급 망언제조가 니시무라 신고가 "도쿄에 한국인 매춘부가 넘쳐난다"라고 하시모토의 망언에 기름을 들이붓는 짓을 했다. 특히 현장에서 일본인 기자가 국가명 언급은 철회하라고 항의하자 웃으며 "아, 그래 위안부?"아 그래 원폭?급 망언 같은 비꼬는 말까지 하여 하시모토를 더욱 궁지에 몰았다. 니시무라는 발언을 철회하고 급사과 하긴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결국 빠르게 제명되었다.

하시모토 대표는 5월 29일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니시무라 의원의 발언은 한국인에 대한 모욕이며 정치가로서 함량 미달이다"면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만큼 당을 떠나면 사퇴하는 게 당연하다"라는 자기 모순적인 발언을 하면서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였다.#

이런 상황인데도 하시모토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망언 퍼레이드를 했다. 5월 20일 일본 유신회 행사에 참석해서 일본도 전쟁에 위안부를 동원한 건 잘못이지만 서구 열강도 마찬가지였다. 한국도 베트남 전쟁 때 그렇게 했다라면서 물타기를 시도했다.[28] 그러나 일반적인 성매매와 엄연히 전쟁범죄인 위안부 제도를 구분하지 않은 점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이런 되도 않는 물타기에 비웃음만 사는 중. 한국인 매춘부 발언 파문을 일으킨 니시무라 신고는 제명시켜 놓고선 윗대가리인 하시모토는 저런 발언을 해도 제제를 가하지 않아서 형평성의 문제까지 제기될 조짐이다. 수습을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저런 망언 폭탄만 터트리고 있어서 일본 유신회의 지지율은 하락 추세이다. 여성을 성욕 해소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는 비판에 여성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며 같은 극우이지만 아베 신조와는 달리 능력에 의구심을 가졌던 다른 국민들도 등을 돌리는 추세인 걸로 보인다. 만약 상황이 악화된다면 일본 유신회 내부에서 내홍이 일어날 개연성도 있어 7월 참의원 선거 직전에 분당사태가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한술 더떠서 일본 유신회의 당 대표대행을 맡고있는 히라누마 타케오도 종군위안부를 매춘부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실상 일본 유신회의 입장이 저렇다고 봐도 좋을 정도지만 제명처리된 니시무라 신고를 빼면 당 중역들의 발언에는 전혀 제제를 가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결국 오사카 변호사 협회에서 하시모토에 대한 징계 청구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지만 하시모토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징계권 남용"이라고 맞섰다.

5월 24일로 예정되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하시모토의 면담은 할머니들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할머니들에 의하면 하시모토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무릎까지 꿇고 사죄 퍼포먼스를 벌이려고 해서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어 면담을 거부하기로 했다고. 너도 도게자 퍼포먼스 하려고 했냐? 지가 무슨 서독빌리 브란트 수상이야 이러자 일본 유신회의 중진인 나카야마 나리아키 의원이 할머니들의 면담 거부에 대해 "가면이 벗겨질까봐 두려워서 그랬다"라는 망언을 시전해 더 어그로를 끌고 있다.

하시모토는 주일미군의 풍속업소 이용 권장 발언을 사과했으나, 위안부 망언은 철회하지 않고 있다. 여성 표 이탈 때문에 일본 유신회에는 여성국을 신설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진정성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

그러더니 이제는 "나는 위안부 필요하다고 한적 없다. 언론이 오보낸 것"이라고 언론 탓[29]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싶으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라고 하기도 했다. 사실상 이판사판으로 막 나가기로 한듯.

이런 하시모토의 행태가 어이가 없었던지 5월 27일 도쿄 외신기자협회와의 기자회견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하시모토 레이드송곳 질문세례를 받았다. 이탈리아인 기자는 "당신은 풍속업소 고문 변호사를 했다던데, 시장이 되어서 그럴 수가 있나?"라고 물었고 하시모토는 "거기는 풍속업체가 아니라 요리업체"라고 둘러댔고 이탈리아 기자는 "거기가 매춘도 하는 건 중딩도 아는 일이거든?"이라고 디스를 당했다. 뉴욕타임즈 기자는 "관리가 위안부의 이송과 관리를 맡은 건 인정하는 것 같은데, 그걸 국제적으로 인신매매라고 부르는 건 아나?"라고 질문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어떤 기자는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나, 여자로 태어나고 싶나?"라고 묻기도(...) 이 기자회견에는 내외신 기자 300여명이 몰렸고, 200명 이상은 못 들어가서, 결국 100여명은 밖에서 모니터를 통해 기자회견을 지켜봤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깨소금맛1

결국 여론이 진정되지 않자 예정된 미국 방문을 연기했다. 명분은 "방문할 곳에 부담을 줄것 같고 메리트도 없어서"라지만 사실상 미국에 가면 영혼까지 털릴 것 같아서 연기했다는게 일반적인 시각. 실제로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해서 미국 여러 인사들을 만날 계획이었으나 하시모토의 위안부 발언으로 미국에서 하시모토는 기피인물이 돼버려 만날 예정이었던 인사들이 줄줄히 면담을 취소했다. 하시모토는 "관광으로라도 가겠다"라고 했으나 마쓰이 이치로 오사카 부지사가 "공무가 아니면 갈 수 없다"고 태클을 걸어서 결국 방문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깨소금맛2

하시모토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가이에다 반리 민주당 대표는 "말은 주절주절하는 것 같은데 기름종이로 불을 끌순 없지."라고 말했으며,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간사장은 "일본 정부고노 담화 수정하겠다고 한적 없다"라고 비판했고,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본 정치인들은 다 하시모토 같은 줄 알까 봐 걱정이다"라고까지 말했다. 정작 그 일본의 총리도 먹칠은 잘 하던데

결국 오사카 시의회에서 자민당, 민주당, 공산당의 3당소속 시의원들의 연합으로 하시모토 문책 결의안이 제출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하시모토가 위안부 망언에 대해서 오사카 시민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다"라면서 문책 결의안을 제출한 것. 오사카 시의회의 의석 구성은 일본 유신회가 최다의석을 보유하고 있고 공명당이 2번째로 많은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데 공명당은 당초 "문책 결의안에 동의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해 자민-공명-민주-공산 4당 시의원들이 모두 찬성하면 문책 결의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였으나...

하시모토의 측근 마쓰이 이치로 오사카 부지사가 "문책 결의안이 통과되는건 시장에서 물러나란 소리다. 시장에서 물러난 뒤에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시장 재선거로 재신임을 묻겠다!!"라는 폭탄발언을 했다. 결국 이에 공명당이 3당의 문책 결의안에 반대입장으로 돌아섰고 문책 결의안은 결국 부결되고 말았다.

공명당이 입장을 급선회한 이유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시장 재선거까지 치루게 되면 공명당의 조직력 한계상 집중이 어렵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문책 결의안을 부결시킬수 밖에 없었다는것. 한마디로 하시모토는 정치적 협박을 감행했고 이게 먹혀들어서 문책 결의안을 부결시켰다. 그러나 과연 하시모토가 언제까지 좋아할수 있을지는 미지수. 이미 7월 참의원선거에서 일본 유신회가 패배하면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을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상황인데 지금까지의 상황을 봐선 일본 유신회는 공중분해의 가능성도 높은 상황. 시장을 지키고 일본 유신회를 버리나?

이러한 논란이 일어나는 가운데 뜬금없이 2013년 6월 1일 트위터로 스마일 프리큐어라는 트윗이 올라왔다. 바로 해명이 올라왔는데 자신의 초등학교 1학년 딸이 썼다는 것이다. 딸바보라서 지우지 않는 건가? 프밍아웃 루리웹 반응 두근두근! 프리큐어가 아니고 스마일 프리큐어냐?! 근데 리트윗한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들이... 민나노당은 포토카노 보는데 뭐

항간에는 근래 들어서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좋지않은 것을 의식한 "자상한 아버지를 연출하기 위한 자작쑈 아니냐"는 비난도 나오는 등, 이 또한 의도적인 연출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 여담으로 그간 주로 정치 관련 발언으로는 하시모토의 리트윗 수가 3자리수를 넘지 않았던 반면, 이번 것은 무려 11만 이상(!)이 리트윗되면서 하시모토의 발언에서 최대 리트윗 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자 다른 정치인들도 프밍아웃하고 있다. 이러면 지지율 오르겠지? 지랄도 풍년이네

하시모토가 미국 방문을 포기한 이유가 밝혀졌다. 하시모토 본인은 관광으로라도 미국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공식방문으로 취급하지 않겠다. 인사방문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거절문서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서 번역본은 여기이며, 하시모토가 가는 곳마다 항의단체에 둘러싸일 거라고 명시하고 있다.

6월 19일에는 같은 당의 원조 막장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하시모토의 위안부 발언에 대해 "심각한 민폐다"(大迷惑だ)라고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누가 누굴 나무라는지'쓸데없는 소리를 해, 당의 지지도를 깎아 먹어 민폐'라는 말인데, 자국민에게도 망언을 남발하는 이시하라가 이런 비판을 할 정도면 하시모토의 이번 망언이 얼마나 파장이 컸는지 알 법하다.

이에 대해 적당히 물러서거나 입을 다물어도 모자랄 판에 하시모토는 (자신의 발언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間違っているとは思っていない)"며 끝까지 일관된 막장성을 보였다. 이시하라의 이런 발언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면서도 정신 못차리는 하시모토를 비판해 일본 유신회가 붕괴될 경우 발을 빼기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악의 경우 7월 참의원 선거 이전에 이시하라의 간토파와 하시모토의 칸사이파가 찢어질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 그러나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멸은 피하자는 생각이었는지 양측이 한발 물러서긴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 봉합이라는게 대체적인 의견.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열린 6월 도쿄 도의회선거에서 일본유신회는 그나마 있던 의석을 까먹으며 참패했다. 자민당이 전원 당선에 민나노당까지도 의석수를 그럭저럭 늘린 반면 일본유신회는 있던 의석을 까먹었다는 점에서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이런 상황이 반복될 전망이다. 물론 도쿄 도의회선거 결과가 참의원 선거와 꼭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으나 일본의 최대 도시인 도쿄의 상황이 이렇다면 참의원 선거의 흐름도 유사할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결국 하시모토 도루의 정치 인생은 파탄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

2013년 6월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20석 이상을 얻지 못하면 일본 유신회 대표직에서 사퇴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깨고 사퇴하지 않았다. 기사

별다른 효력은 없으나 오사카부 내의 사카이시 의회에서 하시모토 도루와 이시하라 신타로의 공직사퇴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또한 하시모토가 방문하려 했던 샌프란시스코시 의회에서도 하시모토의 망언을 규탄하고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말빨로 발악하는 게 남아서 7월 5일에는 미국이 일본 점령당시에 미군도 일본 여성을 위안부처럼 부렸다고 천조국 심기를 건드리면서 날뛰고 있다. 미국 상원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당시에도 일본 극우들이 "미국도 그랬다능~" 하는 개드립으로 네오콘을 비롯한 미국 극우들의 분노를 스스로 샀던 일을 열심히 재현중이다. 야 신난다.

그 후 잠잠하더니 또 망언을 퍼부었다. 2013년 11월 10일 후지 TV에서 '당신들도 해온 것 같은 일이니 '당신들도 반성하고 우리도 반성한다'는 스탠스로 임하면 좋겠다'라는 말을 꺼낸것. 전에 거론했던 베트남 전쟁 때 저지른 짓거리나 자기가 한 짓이 같다고 말한 전과 같은 뉘앙스다. 해당 뉴스

최근 계속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시비를 걸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고노 담화를 검증 수정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NHK의 회장인 모미이 카츠토의 "위안부는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망언을 정론이라 치켜세우며 동조했고 결국 2월 25일 아베가 고노 담화 검증에 매우 충만한 의욕을 보이자 일본 유신회 차원에서 기관 설치를 제안하는 등 계속해서 망발을 일삼고 있다.[30]

2.8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

제23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관서지방에서의 지지세가 남아있었기에 예상보다는 선전했지만 획득의석수가 하시모토 자신이 제시한 승리 기준에 못미쳐(그래도 1석 모자라긴 했다. 하시모토는 10석 공언했는데 9석...) 사퇴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본인은 사퇴하는 듯했으나 이시하라가 책임져야 한다면 나도 책임져야 한다면서 되려 하시모토를 만류해 둘다 사이좋게 당대표에 잔류하는 생쇼를 벌였다. 이렇게 된 것은 그나마 일본 유신회가 칸사이에서 선전한 반면 칸토에서는 전멸했기 때문에 칸사이의 맹주인 하시모토의 입김이 더 강해져버린 탓이다. 아마 칸토에서도 성적을 냈다면 이시하라가 당을 장악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대표는 계속 맡게되었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야권이 뭉쳐야 한다면서 야권발 정계개편을 추진해 일본 유신회의 생존을 도모하겠다는 전략이지만 다함께당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에 자기들도 참여시켜달랍시고 일본 유신회에겐 즐을 외치고 있는 상황.야권이나 여권이나 극우투성이 민주당, 공산당 안습 하시모토가 뭔가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지않는 이상 일본 유신회나 하시모토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2.9 사카이 시장 선거와 혐한 토론회

2013년 9월 29일 치뤄진 오사카 부 사카이 시 선거에서 무소속인 타케야마 오사미 전임 시장이 일본 유신회 니시바야시 카츠토시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하시모토 도루의 정치생명이 끝나가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기사 하시모토 시장의 목표였던 오사카도 구상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사카이 시에서 참패하면서 그의 목표에 커다란 지장이 생긴 것. 이러한 결과에도 하시모토 시장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그의 정치인생에 위기가 찾아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2014년 7월 10일, 오사카 인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한시위에 대해서 "너무 심하다. 직접적인 규제는 어렵지만, 일정한 개입은 어쩔 수 없다"며 시위 내용을 평가하는 제3자 위원회를 신설해 평가 결과를 경찰에 전달, 문제가 있는 단체에는 가두선전과 도로사용 허가를 내주지 말 것을 요구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할 것임을 밝혔다. 지금까지 재특회에 대해서 옹호 및 지지의사를 밝혀온 것 치고는 180도로 변한 시각이다.극우가 보기에도 이새기들은 답이 없는거지 또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민사 소송을 시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발언도 하였다..기사

10월 20일에는 재특회의 수장 사쿠라이 마코토를 오사카 시청으로 불러다 토론회를 벌였다. 유투브 링크. 사쿠라이는 늘 그렇듯 "당신이 말하는 헤이트란 무엇을 말하느냐." "한국도 반일이라는 명목으로 헤이트 스피치 한다. 고로 우리의 주장은 타당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고발하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반복했고, 하시모토는 "오사카에서 그따위 차별적 발언은 당장 그만둬라." "참정권도 없는 사람들에게 트집 잡아 봤자 뭘하겠냐. (뭔가를 주장해서 이뤄내고 싶다면) 힘있는 자들에게 가서 따져라." "민족이라는 카테고리로 싸잡아서 말하지 말라." "어쨌든 시설 관리는 오사카 시에서 하고, 오사카 시는 너네 같은 활동을 용인할 수도 없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고 따졌다. 사쿠라이는 하시모토에게 일개 지방의 수장 주제에 개소리 말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하시모토는 '잘났으면 니가 당선이 되보던가?'라고 맞받아치고 사쿠라이는 '나는 정치엔 관심이 없거든?'이라고 발빼고[31] 혐한질도 일단은 정치가 아닌가 서로 꺼지라고 욕을 퍼붓는 등 결국 니놈저놈 소리에 쌈박질 직전까지 가는 등 난장판이 되었고 30분 예정이었던 회견은 10분만에 끝나버렸다. 이건 그냥 2ch VIP판 병림픽이잖아

이러한 하시모토 도루의 행보에 대해 TV아사히에 나온 한 평론가는 “하시모토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단체의 대표를 공식 무대에 올려 놓고 취재진을 부른 것 자체가 저질 코미디”란 평을 했고, 일각에선 이런 행보가 오사카 방문 한중 해외 관광객이 너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아무리 일본 내수 시장이 넓다지만 관광객이 던져주는 수입도 무시하면 안된다. 특히 오사카는 한국, 중국 관광객이 많았는데 관광객이 줄어들었다는 푸념이 상인들 입에서 나오는 판국이라고. 또는 막말가이지만 본인 스스로가 일본에서 차별받는 부락민 출신이었던만큼 어떤 특정 집단을 카테고리로 싸잡는 인종주의적 행위에 본인 스스로가 피해를 봤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민감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막말가답게 초막말가와 아가리 배틀 히틀러보다는 무솔리니에 가까운 타입인 듯 하다.[32]

2.10 정계 은퇴

오사카부(府)/오사카시(市)/시정촌으로 나뉘어 행정지역이 센고쿠 시대가 되어있는(...) 오사카를 도쿄처럼 도(都)로 대통합하는 행정구역 개편안인 오사카도구상 주민투표가 부결되면 정계은퇴를 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지만, 개편직후의 혼란을 우려한 노년층의 반대로 인해 근소한 차로 부결되었고, 결국 은퇴를 선언하였다. 더군다나 하시모토 도루가 은퇴하면서 그를 중심으로 뭉쳐 있던 일본 유신회의 뒤를 잇는 유신당(維新の党)인물들이 줄줄이 사퇴하여 유신당이 박살나는 사태까지 나버렸다. 우익행보를 제외하면 말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일본 정계에서 유신이라 말할만한 행보를 보여줬던 유일하다시피한 인물이었지만, 무리수 덕분에 한방에 훅 간 것을 한국의 오세훈 서울시장에 비교하는 사람과 언론인들도 많다.

2015년 8월 27일, 유신당 최고고문 자리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탈당했다. 그와 동시에 하시모토의 측근인 마츠이 이치로 오사카부 지사도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 탈당했다. 그러나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하여 정계 은퇴를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유신당 탈당 선언을 하면서 "제 탈당은 절대로 당을 분열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닙니다."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시모토를 지지하던 세력들에게 새로운 당을 창당하겠다고 공지를 돌린 것이 알려지면서 애초부터 계획적인 준비였음이 드러났다.

2.11 은퇴 번복

2015년 10월 2일 오사카 유신회[33] 창당을 표명하고, 트위터를 통해서 "유신당은 일본에 있어서 백해무익하므로 세금낭비를 막기 위해서 직접 박살내겠다"라며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리고 유신당은 2016년 민주당과 통합해 민진당이 되었다.

이런 하시모토에 맞대응해 2015년 오사카 시장 선거에선 민주당일본 공산당 및 외곽단체들이 자민당 소속 오사카 시의원인 야나기모토 아키라 후보를 지원하는 그야말로 중앙정치에선 실현되기 어려운 3당의 그레이트 합체가 실현되었다. 물론 전에도 오사카에 한해선 했던 전력이 있지만...허나 선거에선 하시모토가 밀어준 요시무라 히로후미 후보가 오사카 시장으로 처음 당선되었다.

2015년 12월 12일 당대회에서 마쓰이 이치로가 당대표로 선출된 뒤 하시모토는 법률정책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12월 28일 오사카 시장직에서 물러난 뒤 잠행 중인데 2016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 나올 것이란 전망도 돌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16년 1월 유신회는 공명당, 일본 공산당과 함께 일본 전국 지자체들 중에선 최초로 오사카에서 혐한 헤이트스피치 금지조례를 통과시켰다. 다른 의미의 3당 그레이트 합체

정계 은퇴 이후에는 TV에 다시 나오는 중이다. 그러나 본인에겐 오사카부지사 시절 NHK 아나운서와 싸운 흑역사가 있다 TV 아사히에서 밤 11시 시사 예능프로그램인 <하시모토X하토리의 새로운 프로그램(가제목)>을 맡는 중. 이 프로그램에서 도널드 트럼프 SP를 다루기도 했다.
  1. 원래 "하시모토"는 하시시타로 읽어야 하지만 하시시타가 부라쿠민 계열 성이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성 읽는 방법을 하시모토로 바꿨다.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해석하면 다리(橋) 밑(下)이다. 그냥 봐도 부라쿠민 성 참고로 원래 하시모토의 한자 표기는 橋本.
  2. 정치인들은 매스컴을 잘 타고, 언론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이름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가 우세하게 된다.
  3. 야구의 도루는 제대로 하면 도움이 되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몇 배로 손해를 본다. 후술할 위안부 발언 등 무리한 망언을 질러대다 몇 배로 손해보는 게 똑같다. 작명 미래예지 돋네
  4. 2014년 들어 일본판 고승덕으로 유명해진 노노무라 류타로가 3년 먼저 이 학교를 나왔다.
  5. 일본 정치판을 일컫는 은어
  6. 일본사법시험한국에 못지 않게, 아니 한국보다 합격하기 더 어렵다고 봐도 된다.
  7. 예컨데 '사랑하는 그 마지막까지' 라고 새긴 커플링를 돌려받고 싶은데 가능한가?' 라는 물음에 다른 변호사들 모두 법을 따지고 있을 때 "여기 10만엔 받고 말아라. 찌질하게..." 라고 하는 식. 이 위엄폭풍에 인기는 급상승했다.
  8. 정말 가장 무난한 방법으로는 외부자금을 끌어오는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 자금이란, 대기업 일본으로 치면소니 라던가 와 같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이나 해외의 대기업 에게 부지를 제공하는것으로 잦은 테스트와 기밀성을 필요로 하는 업체의 연구소 라던가, 제벌 산하의 백화점이라던가와 같은 넓은땅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에게 부지들을 제공하여서 지역의 고용율도 높이고, 그 기업을 따라오는 외부 유입인구와 관련 인프라의 형성을 통한 자본 유입과 세수확보, 자본회전을 노릴수가 있다, 다만 역으로 이 기업이 이 지역에서 빠져버린다 해버리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니 그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야 하는것
  9. 행정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당연히 알아야 하는 기본사항인데, 이는 예산이 정치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며 삭감이 아주 어려운 비재량적 지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0. 유급제도가 필요하긴 하지만 신중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11. 물론 날이 갈수록 급상승 추세인 중국의 경제 규모나 국민소득, 반대로 갈수록 막장화되는 일본 재정과 성장동력이 거의 바닥난 국민경제를 생각하면 정부개발원조를 지금까지 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문제는 매춘 운운하면서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것.
  12. 일본과 한국은 핵무장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나 국제 협약에 의해 제조를 하지 않는 상태로, 일본이 핵무장을 해 한국에 핵무기 제조의 명분을 준다면, 세계의 화약고 중 하나인 동북아시아의 전 국가가 핵무장을 하는 아스트랄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13. 그런데, 이것은 태평양 전쟁 전후 일본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보면 이해가 아주 안 가는것도 아닌것이, 조총련 문제는 종전 후 대체로 일본의 좌파 진영에서 다뤘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비판하기 위한 살아있는 증인이자 핍박받는 소수민족인 조총련과 일본 좌파 단체들은 끊임없이 연대했다. 1959년 재일교포 북송이 이루어진 뒤부터 일본의 좌파들은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기 전 까지 "이웃 사회주의 국가"정도로 인식했다. 반공주의적 우파들 입장에서는 조총련의 산하기관이자 사회주의 교육기관인 조선학교를 못마땅하게 보는것이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합법적인 영주권"을 지닌 외국인에게 있어서는 차별하지 않는 주의기 때문에, 재일교포들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우익 정치가들 중에서도 제법 찬성이 나오는 편이다. 1945년 이전과는 다르다 이전과는
  14. 기초생활연금같이 귀여운 '기본소득제' 가 아니다. 복지 관련 시스템은 조직이고 예산이고 싹 다 없애버림으로써 재정을 확보하여 '기본소득' 을 줄 테니 그걸로 알아서 먹고 살란 얘기인데 이게 말처럼 쉬웠으면 애시당초 복지 관련 부서의 비대화 및 관료주의 문제가 복지국가들 사이에서 골칫거리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 특히 일본처럼 오랜 기간 경기침체와 좌절이 일상화된 국가에는 기본소득만 주고 외면하기에는 오랜 세월의 실패와 좌절, 학대의 경험으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15. 빅뉴스보다 좀 알려진 반대성향의 프레시안의 평가. 사실 이 인간에 대해 메이저 신문사의 짧은 우려나 보도수준을 제외한 평가는 보기 드물다... 양쪽을 적절히 필터링해서 보자.
  16. 정작 하시모토는 오사카의 교육제도와 고교입시제도를 고쳐서 나름대로 교육개혁을 하려고 했으나 오사카 학력은 투자 대비 전국 꼴찌(...)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으며 명문고도 오사카보다 옆동네 교토, 나라, 효고에 많이 있는 건 덤. 특히 효고현과 교토부는 동네가 동네라 명문 사립대학의 부속고교도 많은 편이다. 보다못한 오사카부는 2015년에 학력평가 결과를 고교입시에 반영하려고 시도했으나 문부과학성에서 '모의고사는 정식으로 성적에 반영되는 시험이 아니다'라며 극력 저지 중. 깨갱 정작 오사카 교육개혁의 모델이 된 대원외고 등의 한국 특목고는 학력평가 결과가 아니라, 당시 내신과 고난도 영어듣기평가 및 창의사고 면접을 이용해 학생을 선발했다. 실제로 카나가와현에서 공립고교 입학에 '아테스트(어치브먼트 테스트)'란 이름으로 1995년까지 학력평가 결과가 반영되었으며 부작용으로 인해 1997년에 전면 폐지되었다.
  17. 道州制. 하시모토의 역점 정책 중 하나로 현재 일본의 행정구역 체제를 도도부현을 도주제로 바꾸고 지방자치단체들을 통폐합하여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단, 도주제 자체가 하시모토에 의해 최초로 제안됐거나 한 것은 아니다.
  18. 사실 보수정당이 아니라 일본판 나치당에 가깝다.
  19. 우익 논조의 톱으로 꼽히는 신문이다.
  20. 제국주의 시대의 침략행위나 전쟁범죄, 부락민 문제를 비롯한 일본 국내의 인권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일본 유일의 인권 박물관. 1985년 개관하여 일본의 100대 박물관에 선정된 바도 있는 전시관이다.
  21. 대책없는 예산(특히 임금)삭감, 설문을 통한 직원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 때문에 오사카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상당히 나쁘다. 오사카 부지사 시절에도 오사카시와 재정개혁 문제, 행정구역 재편 문제 등을 둘러싸고 상당한 마찰이 있었기 때문에 부지사 재직 당시 오사카 시장이었던 히라마츠 쿠니오(아나운서 출신이다)마저 등을 돌릴 정도.
  22. 사실 자민당 극우파의 대체제는 한두 정파가 아니다. 당장 자민당 탈당파만 해도...
  23. 민주당은 경제정책 실패로 현재 일본 국민들에게 단단히 찍혀 반사이익을 얻지 못 했다.
  24. 그런데 아베 신조의 발언을 생각하면 그렇게 다른 것 같지도 않다 그때어느 나라에서 어느 정치인발언에 대해 이러지 않았나?
  25. 하지만 위안소 설치를 처음으로 고안한 천하의 개쌍놈오카모토 레이지 사령관조차도, 위안부가 강간 방지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26. 물론 민나노당의 이런 행보는 하시모토의 발언을 핑계로 껄끄러운 하시모토와 결별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27.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불을 싸지르는 수준이다. 일본의 여성계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민족 문제가 아닌 여성 인권과 젠더 문제, 즉 피해자 여성과 가해자 국가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기 때문. 이 시각으로 하시모토의 변명들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자. 이만한 도발이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이유 때문에 일본 여성단체들은 위안부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나자마자 한국 여성단체와 연대했다.
  28. 역사도 안 배웠다는 걸 인증하는 개소리다. 물론 베트남전 도중의 안타까운 사태로 발생한 피해자들과 라이따이한 논란이 있지만 주월한국군 사령부에서는 절대 일본군처럼 위안소를 세우거나 베트남 여성들을 강간하라는 미친 명령은 내린 적이 없다.
  29. 언론이 "위안부가 왜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어본 질문에 "필요하니까 있었겠죠. 저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용인할 생각도 없지만" 이라고 대답한 걸 짤라서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30. 아무래도 위안부 문제를 건드렸다 역풍을 제대로 맞은 탓에 앙심 품고 계속 찌질거리는 것 같다
  31. 그런데 그렇게 말했던 인간이 2016년 6월 29일에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1.7%로 낙선한게 함정 코미디가 따로 없군
  32. 엄밀히 따지자면 무솔리니는 히틀러만큼 막나갈 정도의 입지는 아니여서 그렇긴 하지만.(...)
  33. 기존의 오사카 유신회(大阪維新の会)와는 달리 당명의 오사카 부분을 히라가나로 표기한다.(おおさか維新の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