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더비

안양 LG 치타스가 사라지기 전 치뤄진 마지막 구 지지대 더비.

1 개요

K리그 팬들에겐 추억으로 남은 의 대결.

K리그에 존재했었으나 한동안 사라졌던, 그리고 다시 부활하게 된 더비 매치의 명칭.[1]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매치업을 가리킨다.

명칭은 경수산업도로의왕시 고천동에서 수원시 이목동·파장동으로 넘어가는 구간 중 하나인 지지대(遲遲臺) 고개[2]에서 땄다. 지지대(遲遲臺)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조 임금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참배하고 도성으로 돌아올 때 이 곳을 넘어가게 되면 더이상 현륭원이 있는 화산(華山)이 보이지 않아 정조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발걸음을 지체한 것에서 공자가 조국인 노나라를 떠나면서 한 말인 ‘지지하도다 나의 발걸음이여!’에서 지지(遲遲)를 따온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명칭이 쓰인 것은 싸커월드의 한 유저의 제안에 따른 것으로, 그 이전까지는 양 측의 써포터가 지지대 더비로 부른 적도 없고, 서로 합의한 예도 없다. 또한 제안 이후에도 서로 지지대 더비라 부르는 일도 없었으며 오히려 안양의 연고 이전 이후부터 이러한 더비를 회상하면서 인터넷과 기사들을 통해 명칭이 부여된 것이다. 실제 최초 작명자가 2013년에 쓴 글에 따르면 작명시기에는 LG의 연고 이전설이 암암리에 퍼져가던 때였으며, 연고지 이전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이름붙였다고 하니...

지지대 더비 명칭 최초 작명자가 오리지널 클라시코라는 새로운 더비명칭에 대해 쓴 글

2013년 FC 안양의 탄생으로 더비가 부활하였고 양 측 지지자들이 서로 공식적인 합의하에 오리지널 클라시코(Original Classico)란 명칭을 부여하였다.

슈퍼매치와는 다르다 슈퍼매치와는!! 더비를 이루는 주체 중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라고 할 수 있는 양 팬들의 대립 중 한 쪽이 안양에서 서울로 완전히 바뀐 슈퍼매치와는 엄연히 별개의 더비이다. 물론 안양 LG 치타스를 응원하다가 팀 따라 FC 서울로 팬고이전한 팬들도 없진 않겠지만 안양팬 전체, 서울팬 전체 중에서 그 비중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군다나 슈퍼매치가 흥행하기 시작한 것은 FC 서울이란 팀이 생긴 직후도 아니고 몇 년 후였다. 따라서 지지대 더비와 슈퍼매치 사이에는 단절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별도의 더비로 볼 수 있는 것이다.[3]

2 발단

수원과 안양 간에 라이벌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한 단초는 수원이 처음 K리그에 참가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큰손인 삼성그룹이 축구판에 들어오는 데 대해 기존 기업들의 반발심이 존재했고[4] 기어코 K리그에 입성한 수원이 엄청난 자금력을 동원하여 막강한 전력을 구축하자 기존 구단들 사이에서는 '수원은 이기자'라는 은근한 견제심리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심리는 그 중에서도 국도전철로 수원과 이웃한 도시이면서 모기업끼리도 재계 라이벌 관계인 안양이 가장 컸다. 다만 이때까지는 리그 내 치열한 매치업 중 하나 정도였고 더비까지는 아니었다.

3 전개와 중단 : 지지대 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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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원과 안양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불타기 시작한 데에는 두 개의 사건이 도화선이 되는데, 하나는 조광래 전 수원 코치의 안양 감독 취임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정원의 수원 입단이었다.

조광래 감독은 1999년에 안양 감독으로 취임하는데, 그는 원래 수원 초창기에 김호 초대 감독의 밑에서 코치로 재임하면서 수원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김호 감독과 극심한 불화를 겪고 한 시즌만에 수원에서 뛰쳐나오게 된다. 김호 감독과 앙숙 관계인 조광래 감독이 하필 안양의 사령탑을 맡은 데 대해 국내 축구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사건이 서정원의 수원 입단이다. 원래 안양 소속이었다가 프랑스스트라스부르 FC로 이적하여 활약했던 서정원은 국내로 복귀할 때 원소속팀으로 오겠다는 당초 합의를 깨고 수원과 계약한다. 이에 안양 측은 위약금을 요구하며 서정원과 법정공방까지 벌였다.[5]

이런 판국에 1999 시즌 K리그의 시작을 알리는 슈퍼컵 매치업이 하필이면 1998 K리그 우승팀인 수원1998년 FA컵 우승팀인 안양과의 맞대결이었다. 이 경기에서 안양 팬들은 서정원의 안양 유니폼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보였지만, 막상 경기에선 수원이 5-1로 압승을 거둔다. 양 팀은 그 시즌 K리그 리그컵 결승에서도 맞붙지만 이번에도 수원이 승리. 수원은 해당 시즌 K리그 챔피언에도 등극[6]하면서 안양을 압도했지만, 다음해인 2000 시즌에는 조광래 감독의 안양이 K리그에서 우승[7]하며, 두 팀은 K리그를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지지대 더비가 정점에 이르던 2000년대 초반에 양 팀 서포터스들은 각 팀의 팀명을 본따 수원은 치킨 혹은 닭날개[8], 안양은 치토스라 폄칭하며 더비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위에 있는 치토스 검열삭제 걸개나 돈닭은 싫다 걸개가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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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팀은 2001-02 아시아 클럽 선수권(AFC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에서도 타 아시아 클럽들을 때려잡으면서 결승에서 맞대결하기도 한다. 유럽으로 치면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가 만난 격.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수원이 승리. 이렇게 보면 각종 대회 결승전 등 주요 길목마다 수원이 안양을 때려잡은 것 같지만 사실 K리그로 국한하면 수원이 1999년부터 2002년까지 3년 넘는 기간 동안 안양을 한 번도 못 이긴 기간도 있다. 전적으로 보면 그럭저럭 치고박고했다.

2003년에는 네 번의 지지대더비가 성사되어 수원이 3승1무로 우세했고,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있었던 10월 8일 경기 이후로 안양의 모기업 LG에서 팀을 서울연고이전하는 바람에 지지대 더비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4 부활 : 오리지널 클라시코

안양시민축구단 창단을 공약으로 내건 최대호 안양시장 후보가 지방선거에서 안양시장으로 당선되자 축구팬들은 안양에 신생팀이 곧 창단될 것을 기대하면서, 덧붙여 지지대 더비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다.

이 짤에서도 보다시피 수원팬들은 이 팀과의 매치업을 북벌(北伐)이라 하지, 더비라고 하지 않는다. 프렌테 트리콜로도 신 지지대 더비가 열릴 걸 고대했을 것이다?!

구 지지대 더비의 일익이었던 구단 자체는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했고 신생 안양시민축구단은 별개의 구단이지만, 더비 매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 팬들 사이의 라이벌 의식이다. 따라서 구 지지대 더비에서 수원팬들과 으르렁거렸던 안양팬들이 지지하는 안양시민축구단이 지지대 더비를 다시 형성할 수 있다 하겠다.

여러 곡절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FC 안양이 창단되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FA컵 또는 K리그 클래식에서 지지대 더비의 부활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근데 수원팬들은 이제 치토스 말고 뭘 먹어야 하지?! 안양팬들은 치킨을 먹으면 된다지만 재창단한 FC 안양은 지역 특산물인 포도를 내세우고 있으니 포도를 먹으면 된다.게다가 팀컬러도 보라색이니까 말이다. 그럼 수원이 안양에서 FC 안양을 이기는 날이면 포도밭 습격하는 날이 되는 건가? 그리고 예상보다 일찍 더비가 성사되었다! 2013년 4월 18일, FA컵 32강 추첨을 통해 FC 안양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맞붙게 되었다. 여러 반응이 있지만, 우선 32강 대진 중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안양 서포터를 대상으로 온라인 생중계를 진행하던 FC 안양 서포터의 전언에 의하면, "시종일관 조용하던 추첨장이 (당시 추첨을 맡았던)김대의가 수원과 안양의 대진을 뽑자마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림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웃음실소까지 터져나왔다."고 한다.

더비 부활을 알리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FC 안양의 역사적인 첫 경기는 5월 8일 FC 안양의 홈구장인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후반 7분 안양 정재용이 선취골을 넣었으나 후반 42분 정현윤의 자책골, 후반 48분 서정진의 역전골로 수원이 2-1로 승리하였다.

5 주요 인물

  • 조광래
  • 서정원
  • 비탈리 - 두 팀 모두에서 활약한 우크라이나 출신 공격수
  • 박정석 - 서정원과는 정반대의 케이스로 수원에서 뛰다 해외로 진출하였다가 안양으로 복귀했다.
  • 뚜따 - 2002년 안양 소속으로 활약하였으나 조광래 감독과의 불화로 시즌 종료 후 방출. 그리고 2003년에 하필 수원으로 입단하여 안양 팬들을 충공깽의 나락으로 빠뜨린다. 뚜따는 수원 빅버드에서 열린 2003년 첫 번째 지지대 더비에서 후반전 결승골을 넣고 안양 벤치의 조광래 감독을 향해 도발적인 세레머니를 선보인다.
  • 진순진 - 2002년 수원 빅버드에서 열린 더비경기에서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려 팀에 2-1 짜릿한 원정승리를 안긴 주인공. 소속팀이 서울로 연고이전을 하게 된 후 대구 FC로 이적하자 안양 팬들은 진순진이 연고이전에 반발하여 팀을 나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선수였다.
  • 정용훈 - 2003년 안양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더비에서 골을 넣었고 경기는 2-2 무승부. 그해 8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남에 따라 이 골은 그의 생애 마지막 골이 되었다.
  • 에니오 - 지금 전북의 그 에닝요 맞다. 수원에서는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으나 지지대 더비에서만큼은 매번 맹활약. 2003년 빅버드에서 열린 안양과의 경기 도중 경기장 밖으로 향하는 공을 따라가다가 느닷없이 안양 벤치를 향해 캐논슛을 날리는 초강력 도발을 시전하였고, 잠시 후 이번에는 골대를 향해 진짜 캐논슛을 꽂아넣어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 나드손 - 2003년~2013년 10년 동안 구 지지대 더비의 마지막 득점자였다.
  • 오근영 - 2012년 수원의 단장직을 맡다가 사임하고, 2013년 안양의 초대 단장으로 취임
  • 최대호 - 2013년 현재 안양시장. FC 안양의 초대 구단주이며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안양시민축구단 창단을 공약으로 내걸어 시장에 당선되었으며 임기 중 구단 창단에 성공했다.
  • 한동원 - 안양 LG 치타스, FC 서울, 수원 삼성 블루윙즈, FC 안양에 모두 몸담은 경험이 있는 이색적인 이력의 소유자.

6 그랑블루 VS 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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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대 더비는 경기뿐만 아니라 양 팀 서포터들의 응원대결이기도 했는데, 주로 수원 그랑블루의 카드섹션과 안양 레드의 홍염의 대결로 요약된다.그런데 안양팬들이 팀을 잃어버린 사이에 K리그에서 홍염 금지규정을 만들었다. 안습 그래도 홍염 피울 안양팬들은 다 피운다. 단지 벌금을 낼 뿐
  1. 현재는 오리지널 클라시코로 불리고 있지만 저명성에서 지지대 더비가 훨씬 높다.
  2. 1번 국도(경수대로) 영동고속도로 북수원IC 부근. 정상에서 수원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간이휴게소가 있다.
  3. 영문 위키백과에서는 평소 위키백과에서 축구판 동북공정을 일삼기로 악명높은 한 유저가 지지대 더비 문서를 아예 삭제해 버리고 슈퍼매치 문서에 통합시켜 버리는 짓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그런 짓 좀 하지 말자. 역사왜곡이 별다른 게 아니고 이런 게 역사왜곡이다.
  4. 이를 무마하기 위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가입금 이외에 축구발전기금이란 걸 만들어서 삼성에게서 30억을 뜯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창단한 시도민구단들만 불쌍하게 피를 본다.
  5. 여담으로 재판에서는 서정원측이 패소하여 결국 위약금을 지급해야 했다.
  6. 유명한 샤샤신의 손 파문이 이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나왔다.
  7. 이 때 조광래 감독은 수원 코치 시절 김호 감독에게서 배운 지도법과 훈련법을 적용하여 취임 2시즌만에 팀의 전력을 탄탄하게 구축했다고 한다.
  8.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감바 오사카와의 대결은 닭다리 더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