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자유국 État indépendant du Congo | ||
국기 | 문장 | |
존속기간 | 1885년 ~ 1908년 | |
국가 | "Vers l'avenir" | |
위치 | 아프리카 | |
수도 | 보마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
국가원수 | 레오폴드 2세 | |
언어 | 사실상 프랑스어 | |
민족 | 200여개가 넘는 토착 민족 | |
표어 | 노동과 진보 | |
통화 | 콩고 프랑 | |
성립 이전 | 국제콩고협회 | |
멸망 이후 | 벨기에령 콩고 |
1 개요
콩고 자유국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잔악한 정치체제를 가진 막장 국가. 인세의 지옥. 그 뒤 콩고에 들어선 어떤 지배자와 체제도 이 나라보다 백 배는 나은 수준이다.[1] 이놈 앞에선 그 악명 높은 나치 독일과 일본제국도 한 수 접고 들어가야한다. 이들은 적어도 영토확장, 부국강병이란 명분을 지향하기라도 했지 콩고 자유국은 오직 레오폴드 2세의 잇속만을 채우기 위해 설립 및 유지되었으므로 더욱 막장이였다. 이런 면에서 콩고 자유국은 기업국가의 한 전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역사의 주요 무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이 나라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 부지기수다.
2 역사
2.1 건국 이전
이전부터 콩고 지역에 눈독 들이고 있었던 레오폴드 2세는 콩고 지역에 꾸준히 탐험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브뤼셀에서 지리학 학회를 열어 지지자들을 끌어은 뒤 1876년 국제 아프리카 협회를 개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고통받는 흑인들에 대한 구원이란 명분을 앞세워 교묘하게 이들을 속였다. 그것 때문에 국제적인 지지를 한 몫에 끌어들일수 있었다. 이후 여러 국가들을 설득시킨 끝에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레오폴드 2세의 지배가 공인되고 이 지역은 본격적으로 헬게이트가 열리게 된다.
2.2 건국 이후
레알 헬게이트 오픈
콩고 자유국 정부와 레오폴드 2세는 원주민 추장들에게 여러가지 선물을 준 뒤 이들의 인권과 재산권을 빼앗는 조약을 어려운 말로 교묘히 속여서 영토를 늘렸다. 또한 철도와 플랜테이션을 건설해 수탈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으며 당시 아프리카에서 마지막 세력을 쥐고 있던 오만을 비롯한 아랍인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국경 북방에 요새를 새우기도 하였다. 이런 돈이 어디서 나왔냐면 우선 벨기에 정부에서 돈을 빌려주기도 하였고 결정적으로 원주민들을 갈아넣어 고무와 상아를 채집한 돈으로 이런 인프라를 건립했다. 아, 물론 원주민들은 이런 혜택을 누리지도 못했고 이 돈들 대부분은 레오폴드 2세의 배때지 채우는데 들어갔다.
1891년 레오폴드 2세는 법을 제정하고 1892년 상아와 고무 무역을 독점해 버렸다. 곧이어 우방이-우엘레(Ubangi-Uele) 강 근처와 숲속 주변에 살고 있던 콩고인들을 강제로 추방했다.
레오폴드 2세는 당연히도 콩고 원주민의 삶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으며 자기 잇속을 채우기 위해 원주민들에게 가혹한 노역을 부과하였다. 이는 원주민들의 반발 및 저항을 불러 일으켰으나 이 때마다 콩고 자유국군과 매국노들의 학살로 진압되었다. 이러한 노역 및 학살때문에 1000만여명이 죽었다고 추산이 된다. 허나 이러한 광악무도한 정책을 실행시켰음에도 적어도 당분간은 무마를 잘해 외국의 눈을 속일 수가 있었다.
허나 이러는 것도 잠시 레오폴드 2세의 학정이 얼마안가 전세계 언론에 낱낱히 까발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제사회가 긴가민가 했으나 여러 의인들의 고발로 인해 증거가 착복되자 콩고 자유국과 레오폴드 2세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레오폴드 2세는 이러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원주민 권익 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연막작전을 펼치거나 언론을 매수해 여론 조작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런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비판 여론을 잠재울수는 없었고 결국 1908년 콩고 자유국 지역을 벨기에 정부에게 넘겨주는 형식으로 그는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다.
3 정치
더 말할게 있는가? 레오폴드 2세의 전제 학정 정치. 원주민들에 대한 가혹한 수탈로써 레오폴드 2세의 배때지를 채우는 말그대로 수탈을 위해 세워진 국가이다. 이 과정에선 말을 안 듣는 자들은 콩고 자유국군 군대가 모조리 탄압했다. 그런데 더욱 소름 끼치는 건 이런 미친 악귀의 편을 들어 같은 부족민들을 학살한 원주민 매국노도 있었다는 것이다. 콩고 같이 넓은 곳을 지배키 위해선 원주민 일부를 포섭을 할 필요는 있었지만...
3.1 범죄 행위
레오폴드 2세는 여기서 고무 채칩에 열을 내어 원주민들을 혹사시켰다. 고무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로 마을 인근의 넝쿨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 동이 나 버렸기 때문에 콩고의 원주민들은 열대우림의 넓은 지역으로 나가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들에게 보호장비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흑인 원주민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등이나 다리, 팔 등이 부러지거나 그대로 죽는 상황이 속출했다. 게다가 연중 열대성 폭우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고무나무가 자라는 지역은 습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고무채취는 아무리 힘이 좋은 사람들도 기피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레오폴드 2세는 각 개인들에게 어마어마한 노동 할당량을 부과 한 뒤 이를 채우지 못하면 처음엔 이들의 손을 두번째는 팔을 마지막엔 목을 도려냈다. 여기의 관리들은 열심히 일한 증거로 절단부위가 담긴 소쿠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랑하고는 했다. 이에 대해 반발이 있는 데는 군대를 보내 집단적으로 학살하였으며 죽은 자의 할당량은 그대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에게 이양되었다. 이런 연좌제의 늪에서 벋어나기 위해 원주민 부족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도 이러한 행위들이 알려지는 걸 막기위해 콩고 정부와 레오폴드 2세는 여러 공작을 펄쳤다.
어쨋든 이러한 학정 및 학살로 레오폴트 시대 이전 300만~1000만 정도로 추산되는 콩고 인구 중 최소 수백만명에서 최대치 1000만 가까이 콩고 자유국-벨기에령 콩고 초기까지 학살당하거나 희생되었다.
4 같이보기
- ↑ 사실 모부투는 착복이 좀 심해서 그렇지 독재 자체는 평범한 수준이었고, 아버지 카빌라는 본격적으로 독재를 하기 전에 전쟁이 터진 데다 주전론을 내세우다가 반대파에게 살해당하는 바람에 의외로 나쁜 이미지를 쌓지 못하고 갔다. 아들 카빌라는 그럭저럭 나라를 다스리는 온건 성향의 일반적인 독재자이다.
- ↑ 폴란드 출신 영국인 작가. 6개월간 무명 벨기에회 소속의 선장으로 콩고 강에서 배를 몰았다. 이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둠의 심연과 진보의 전초 기지를 집필했다.
- ↑ 벨기에군 지휘관. 각종 전쟁범죄를 진두지휘했다. 어둠의 심연에 등장하는 교역상 커츠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레전드 오브 타잔에서는 크리스토프 발츠가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