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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나 승부 따위에서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글자에서 유래한 주요 단어가 바로 패배, 패자, 패배자 등.

2 霸/覇(일반적인 의미)

바로 위와는 반대로, 대회 따위를 우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대회 2연패라고 하면 2연속 우승을 했다는 뜻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霸(본래 의미는 보름달)자에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용법이 있으나, 오늘날 사용되는 의미로서 보이는 최초의 용법은 伯(*praak)의 통가자(霸*praaks)로서이다. 본래는 주 종법제도하에서의 방백제에서 기원한 말이나, 제환공이 제후의 우두머리로서 인정을 받게 되면서, 의미가 점차 오늘날 볼 수 있는 "으뜸인 것"의 의미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霸 자는 맹자에서는 왕도정치와 배치되는 무단적 정치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되게 된다. 패도는 바로 그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패권주의, 혹은 경기를 제패함 따위의 용법으로 곧잘 사용된다.

3 霸/覇(바둑 용어)[1]

바둑에서 무한루프를 방지하기 위해서 특정 지점에 대하여 계속해서 두지 못하게 하는 룰. 혹은 그러한 지점.

바둑에서 패는 굉장히 특수한 룰이다. 보통 장기나 체스의 경우에도 존재하는 '동형 반복 금지'로 표현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장생이나 3패빅 같은 경우는 동형 반복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아[2], '동형 반복 금지'라는 표현은 부정확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바둑에서 가장 빈도가 높은 동형 반복이 패이고, 다른 형태의 동형 반복에 비해 빈도가 매우 높으므로 게임을 끝나지 않게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이다.

패의 모양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동형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는 팻감이라고 불리는 다른 곳에 착수하고 상대편이 그 수에 응대한 후에 다시 그 지점에 둘 수 있다.

일반적으로 팻감은 그 패를 이겼을 때 얻는 이익보다 큰 곳을 두어 상대편이 응대하여아만 하도록 한다. 만일 한 판의 바둑의 승부가 걸린 패라면 다른 팻감에 전혀 대응하지 않고 패를 이기는 경우가 있다. 이를 만패불청(모든 팻감을 듣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부른다.

룰 자체는 매우 단순하지만, 패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 및 이후의 판세 전체의 변화가 엄청나기 때문에 절대 만만히 볼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바둑에 가장 고급스러우면서도 난해한 규칙. 컴퓨터의 인공지능 발달에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기도 하다. 패를 받고 말고가 단순히 집 계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주변의 두터움 및 사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인데 2016년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내놓은 해결책은 아예 '패를 만들어 변수를 늘리는 대신, 깔끔하고 두텁게 막아 해결해 버리면서 변수를 줄인다, 이기기 위해서 굳이 패가 필요하지 않다'였다(...)

동형반복의 대표적인 예는 패가 있지만, 패 이외에도 동형반복의 경우가 존재하며, 이 경우 중에는 특수하게 무승부 판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거대한 사활이 걸린 패가 3군데 이상 존재한다면 양쪽이 모두 양보하지 않으려고 다른 패에 계속 착수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패의 룰로는 바둑이 끝날 수 없다. 이런 경우 판빅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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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패빅)

보통 이런 경우 패가 3군데인 3패빅의 경우가 가장 많으나, 아주 드물게 4패빅도 나오곤 한다. 가깝게는 2012년 9월 5일 이세돌 九단과 구리 九단의 삼성화재배 32강전 대국에서도 4패빅이 나왔다. 심지어는 5패빅(…)이 나올 가능성도 존재하는데, 코바야시 사토루 九단과 마샤오춘 九단이 맞붙은 1996년 제9회 후지쯔배 8강전에서 바로 이 사상초유의 5패빅이 나올 뻔 했으나, 초읽기에 쫓기던 코바야시 九단의 수읽기 미스로 빅은 나오지 않고 마샤오춘 九단의 반집승으로 끝났다. 관련글 이게 어떻게 가능했냐면, 일반 바둑이었다면 게임 후반부의 정말 자잘한 패 해소 끝내기가 될 상황이었지만, 반집승부였는데 반집짜리 패가 한꺼번에 5개가 걸려버렸다. 따라서 양 대국자가 5개의 패 중 하나만 양보해도 무조건 지는 상황이었으므로, 코바야시 九단이 정상적으로 수읽기를 했더라면 무승부가 선언되었을 것이다.

2014년 한국 바둑 대회의 결승전 중, 패 상황에서 반칙패가 나왔다.

패를 편의상 여러 가지로 분류해 부르기도 한다.

일종의 늘어진 패이다. 그 중에서도 사활에 관련된 경우인데, 그냥 얌전히 패를 메워서 해소하면 빅이 되지만 한쪽이 다른 쪽을 잡으러 가거나 혹은 빅도 내지 않고 살려고 하면 그 순간 부담이 일방적인 늘어진 패가 되어 이기려면 많은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형태. 따라서 실전에서는 그냥 빅을 내는 경우가 많다.
  • 단패/이단패
한 수/두 수로 해소가 가능한 패. 상대의 돌을 딴 자리를 스스로 메워 버리면 된다.
늘어진 패나 이단패쯤 되면 크기 계산과 팻감공작 등등에 많은 고민을 해야 하나, 이것은 비교적 단순한 크기 계산을 통해 패의 향방을 점칠 수 있어서 가장 쉬운(?) 패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천지대패
보통 수십 집 규모인 대마의 생사가 걸린 패로, 이 패에서 지게 되면 반드시 패배하게 될 정도로 큰 패를 말한다.
  • 승부패
그 결과가 승부에 크게 영향을 주는 패를 말한다. 일단 승부패가 발생하면 바둑이 매우 흥미진진해진다. 패를 내주고 다른 곳에서 실리를 취하는 맞교환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패를 승리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천지대패성의 거창한 패가 있기도 하는 반면, 반집 싸움에서 마지막 반패도 승부패가 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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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쑤 성 쉬저우시(徐州市)에 위치한 현이다. 이 많아 한 때는 패택(沛澤)이라고 불리웠다.

5.1 역사

  • 진나라(秦) : 군현제 체제에서는 사수군(泗水郡)이 설치되고 그 아래에 패현(沛縣)이 놓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한나라 시대에 패현은 "천고의 용이 날으는 땅 제왕과 장수 재상의 고을(천고용비지, 제왕장상향 - 千古龍飛地,帝王將相鄉)"이라고 불리웠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었던 모양
  • 전한 : 한고조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자, 사수군에서 고을을 떼어내어 패군(沛郡)을 만들었다. 고향우대조치 또한 옛 사수군의 중심지인 팽성(彭城, 현재의 쒸저우 시)과 그 주변의 현을 떼어내어 초국(楚國)을 설치했다.
  • 후한 : 패군은 패국(沛國)으로 바뀌었다. 이전 패군의 서남부는 여남군에 이관되었다.
  • 위나라 : 패국 초현 출신인 조조초현(譙縣)을 기반으로 초군(譙郡)을 설치하고, 패군의 영역을 대부분 떼어냈다. 패군은 불과 9개 현을 가진 작은 군으로 축소되었다.
  • 수나라 : 패현이 다시 설치되었다.
  •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동네에서 황제 두 명, 왕이 하나가 나왔다. 바로 유방조조, 조비. 그외에도 전한의 개국공신들의 대다수가 이 동네 출신으로, 이 동네 한량은 황제가, 개백정과 마부는 장군이, 동네 관리는 재상이 되버린 묘한 동네다. 그래서 나온 말이 '풍패지향(豐沛之鄕'인데, 한고조 유방의 고향이 '풍읍 패현'이라서 건국군주의 고향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뒷날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고향인 함흥시를 가리켜 '풍패지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5.2 소패(小沛)

소패는 전한·후한 시대 예주 패현의 별명이었다.

소패의 성에 촉한의 소열제 유비, 군웅 여포 등이 주둔하였다. 과정이 상당히 복잡한데, 우선 유비가 서주목 도겸의 요청을 받고 소패성에 주둔했다.[3] 유비가 서주목이 되자 여포가 유비에게 의탁해왔고 유비는 여포가 소패성에 주둔할 수 있도록 한다. 유비가 여포에게 뒷치기당해 서주를 빼앗기자 유비는 여포와 협상 끝에 소패에 주둔하였고, 그러다가 여포의 공격을 받아 소패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렇게 복잡한 사정이 있으면서 유비, 여포 등의 주요 캐릭터와 관련이 깊기 때문인지 평원, 신야와 함께 현(縣)임에도 불구하고 삼국지 시리즈에서 거점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1. 한국은 조선일보가 한자로 쓸 때 이렇게 쓰지만, 다른 곳에서는 고유어라는 게 정설이라 그런지 한글로만 '패'라고 쓴다(). 다만 다른 주장도 있다. 중국이나 일본은 kalpa(산스크리트어)→劫波를 줄인 劫
  2. 엄밀하게 말해서 장생이나 4패빅의 경우 발생확률이 대단히 희박하기 때문에 바둑계에선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혹시 나오면 무승부처리한다.
  3. 소패는 예주 소속이었지만, 서주의 주요 도시인 팽성과 딱 붙어 있어서 서주의 세력권으로 취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