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구

틀:군관련

한민구(韓民求)
1951년 8월 30일 ~
복무대한민국 육군
기간1975년 ~ 2011년
임관육사 31기
최종계급대장
최종보직합동참모의장
주요보직육군참모총장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39대 임충빈40대 한민구41대 황의돈
대한민국 국군합동참모의장
35대 이상의36대 한민구37대 정승조
역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43대 김관진44대 한민구(현직)
"방산비리는 생계형비리다." -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군인, 現 국방장관.


2 생애

1953년 8월 30일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세교리 (현 청주시 청원구)[1]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1971년 육군사관학교 31기로 입교하여 1975년 졸업과 함께 보병 소위임관했다. 위탁교육으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진학하여 1979년학사 학위를 받았다. 영관급 장교이던 1992년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

군 경력으로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육군사관학교 전사(戰史)학과 교수를 지냈고 국방부 정책기획국 정책조정과장, 육군본부 비서실장과 전략기획처장, 제53향토보병사단장 등을 지냈다. 국방부에서 근무하다가 중장 시절에 수방사령관을 지냈고 육군 참모차장을 지내다가 바로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했다.[3] 2010년에는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했고 2011년에 군문을 나섰다. 야전군사령관을 지내지 않았는데 그동안 맡았던 보직 등을 보면 야전군 지휘관보다는 정책 등을 다루는 관료에 가깝다.

2014년 6월 30일김관진에 이어 국방장관으로 취임하였다. 취임 직후에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어 대국민사과를 하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은 한 장관이 취임하기 전에 발생한 사건이며, 그가 취임하기 전에 조직적인 사건 축소·은폐 의혹이 있었으므로 한 장관보다는 김 전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14년 8월 5일에는 해당 사건에 책임을 지고 육군참모총장 권오성 대장이 사임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곽정임 여사와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3 여담

할아버지가 의병장이었던 한봉수이다.

김관진 장관의 정책통이라 불릴 만큼 행정형 군인으로 유명했는데 합동보직을 거의 거치지 않은 그가 합참의장까지 달 수 있었던 배경으론 육사 동기인 황의돈 장군의 단점 때문이란 얘기도 있다. 합참에서 주요 합동보직을 두루 거친 황의돈 대신 그가 합참의장이 된 것이 부동산 투기 등 청문회에서 까일 수 있는 요소를 많이 지닌 황장군에 비해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시선. 실제로 황의돈 총장은 부동산 문제가 불거져 6개월만에 사임했다.

업무 처리 방식이 치밀한 편이고 실제 성격은 점잖다고 한다. 2006년 열린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성깔 더럽기로 유명한 북한의 김영철[4]이 기싸움을 벌였을 때 그냥 허허 웃고 넘겼다고. [관련기사]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그 회담에서 남한은 한창 농번기겠다는 얘기로 인사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농사 이야기를 하던 중 한민구 대표가 최근 한국 농촌에 외국인 신부가 많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 얘기를 들은 김영철이 진심 못마땅한 표정으로 민족의 혈통을 더럽혀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단다... 이 말에 한민구 대표가 미소를 잃지 않고 한강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는 수준이라 다 같이 어울려 살면 문제될 거 없다고 받았지만 김영철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삼천리 금수강산이다. 잉크 한 방울 떨어뜨려선 안 된다'라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논쟁이 길어지고 분위기가 싸해졌다고 한다.

성격이 유순한 편이라 야전 출신의 거친 그런 게 없어서[5] 국방부 내에선 좋다는 얘기가 많다.[6]

군시절에는 백발이었지만 국방장관 취임 후 염색을 하였다.


4 논란

2015년 6월 16일 불거진 방산비리를 두고 ["예전엔 방산비리가 대형 비리였지만, 요즘은 생계형이다."]라는 너무나도 황당한 발언으로 공분을 샀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급여와 연금을 받는 고위직 군인들의 비리를 단순한 생계형 범죄와 동일선상에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방산비리 척결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는 의문을 낳고 있다. 결국 6월 19일에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1]] 그러나 한번 시작된 논란은 쉽게 꺼지지 않는 중. 예비역 위관급 장교들은 한민구를 진정한 이등병이라 부르고 있다. 이 발언 이후로 인터넷상에서 군납비리와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댓글에 생계형 비리드립을 치며 비꼬게 된 건 덤.

8월 12일 국회 국방위에서 8월 4일 발생한 'DMZ 목함지뢰 사건'과 관련해, '4일 오후 청와대에 북한군목함지뢰에 의한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보고를 올렸다는 발언을 하여 큰 논란이 일었다. 왜냐하면 다음날 통일부가 대통령이 참석한 경원선 복원공사 개시와 관련해 북에게 '고위급 실무자 회담'을 제안했기때문. 바로 전날에 북한에 도발을 당한 보고를 받고도, 통일부가 멀쩡하다는 듯이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꼴이 되어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으로부터 '청와대는 정신이 나간 것 아니냐'라는 질타를 받았다. 청와대는 원인불명 폭발사고라고 보고 받았다가 5일 오후에야 정확히 '북한군의 목함지뢰로 인한 폭발사고'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해명했고, 국방부는 한민구 장관의 발언이 '실수'였다고 입장을 정리, 발표했다.

지위가 불안정하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흘러나온다. 역대 국방장관 중 눈에 띄게 존재감과 파워가 크지 않다. 간간히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계급으로 밀어버리는 광경이 목격된다.

2015년 11월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질의 응답 과정에서 군이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국방부에서 교과서 기술 관련하여 교육부에 입장을 전달한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08년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서술을 고칠 것을 요구하였고 4.3 사건과 5.18 광주항쟁의 학살에 대해 군에 부정적인 서술을 고칠 것을 요구한바 있다. [기사]


2016년 7월 5일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을 두고 [그런 작은 것을 가지고 전체를 문제시]라는 발언을 했다. 다른 데는 다 멀쩡해서 그때 국방부 자체 조사만으로 가혹행위가 4천건이나 적발되었나 '그런 사람을 패서 죽이는 일은 거의 안 일어나는데 군대가면 맞아 죽는 것처럼 그런다'는 의도로 말한 것 같지만, 맞아 죽는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어도 군대에서 부조리를 당하거나,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았고, 군사법원의 문제점도 저 사건 하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으니 논점 일탈이다. 또한 이 발언을 할 때 피해자 고 윤일병의 어머니를 비롯해 군 피해자의 가족이 방청하고 있었다.
  1. 2014년 7월 1일부터는 청주시이다.
  2. 이때 인연으로 2014년에 연세대에서 연세를 빛낸 행정인상을 받았다.
  3. 이 무렵 병 입영식이 신종플루로 인해 실시되지 않았다가 2010년 2월부터 재개됐는데 2010년 2월 1일 다시 열린 육군훈련소 입영식에 참모총장으로서 직접 참석했다. 그때 입대했던 사람들은 난데없는 포스타 등장의 임팩트 탓인지 전역 후에도 이를 기억하고 있다.
  4. 별명이 승냥이이다.
  5. 실제로 군단장이나 야전군사령관을 거친 적이 없는 정책통 출신이다.
  6. 다만 수방사령관은 군단장급 지휘관이므로 군단장을 거치지 않았다는 표현은 틀린 표현. 그러나 사단장도 향토사단에서 지냈고 수방사도 손꼽히는 요직이긴 하나 최전선의 야전 군단과는 분명히 다른 작전체계나 교리로 움직이며(기본적으로 북침 저지 후 진격보다 서울 사수를 모토로 하는 부대니까...) 일선 장병들의 군기잡기도 야전 부대만큼 심하게 잡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분명 다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