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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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혜련(趙惠蓮)
출생1970년 5월 29일, 경상남도 고성군
신체160cm, O형
소속사코엔티엔
가족아들 김우주, 김윤아
남동생 조지환, 여동생 조혜숙
학력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연극영화학 석사
데뷔1993년 KBS 청춘 스케치
트위터트위터
종교창가학회개신교
국적일본대한민국

1 개요

한국연예인, 개그우먼. 대표적인 매국 연예인
1991년 KBS 대학개그제에서 김국진, 금병완과 한 팀을 이뤄 응시했으나 1, 2차 시험 통과 후 3차 개인선발시험에서 조혜련 혼자 탈락하면서, 4차 최종 대학개그제에는 김국진, 금병완만 출전하여 두 사람만 수상하고 조혜련은 데뷔에 실패하였다.
그 충격에 가출하고 공장에서 취직한 뒤 일을 하다가 다시 개그맨의 꿈을 키워 1993년 KBS 청춘 스케치에서 1등을 하며 KBS 10기 개그맨[1]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2년정도 KBS에서 활동은 했지만, 실질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개그맨 활동은 95년부터 MBC에서 더 많이 했다[2] . 90년대 중반 MBC '오늘은 좋은날'이라는 개그 프로에서 이경실, 이윤석, 김진수, 서경석 등과 프로그램을 이끌던 주축이었다.

2 전성기

'울엄마'라는 코너에서 아들 서경석을 둔 가난한 미혼모로 나오는데 서경석과 함께 빅 히트를 누렸다. 그 이후에는 호탕한 여장부 스타일의 개그를 주로 구사했으며 KBS의 여걸파이브나 여걸식스에서도 실질적으로 팀을 이끄는 리더로 활약했다. MBC의 코미디하우스에서 골룸 분장을 했는데, 원래 패널들을 웃기는 다양한 설정을 해놓고서 억지로 웃음을 참게 하는 '웃지마'라는 코너에서 엄청난 분장 싱크로율과 뛰어난 표정 연기 때문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심지어 다른 편에서는 김현철과 콤비로 나와 골룸 커플로 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MBC 개그 프로그램이 저물면서 동반하락세를 겪던 조혜련에게 좋은 반등의 기회가 됐다. 정작 조혜련 본인은 작가가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많은 고민을 했고, 촬영을 해놓고 화장실로 가서 너무 창피해서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남편 김현기까지도 밖에 나가면 "골룸 남편(...)이다!" 라고 놀리는 통에 바깥을 못 나갔다고 한다.

한편, 1991년 12월 11일 첫 회가 나간 뒤 시간대가 자주 변경되어 오다가 1995년 2월 7일부터 화요일 오후 7시 5분으로 고정되어 방영된 한편 같은 달 28일부터 MC제가 도입되었고 1997년 5월 20일부터 같은 요일 오후 11시대로 바뀐 SBS 코미디전망대를 개그맨 정재환,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장윤정과 공동 진행을 맡아 처음으로 SBS 프로그램 고정 출연을 했지만 못생긴 여자 조혜련, 잘생긴 여자 장윤정으로 구분짓는 등 여성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시각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으며 급기야 시간대를 변경한 지 얼마 안 되어 프로그램이 폐지(97년 6월 24일)되어 조혜련의 첫 SBS 진출은 실패로 끝났다[3].

90년대까지는 꽤 후덕한 몸매를 갖고 있었는데, 2000년대 초반에 운동을 갑자기 시작하더니 근육질 몸이 되었다. 그래서 태보다이어트 비디오도 몇 번 낸 적이 있었다. 후에 잡지 인터뷰를 통해 "나의 다이어트 방법은 검열삭제다"라고 용자스러운 발언을 하기도 했다(...)

골룸 연기로 인기를 크게 얻고 더 둘리스의 'Wanted'와 놀란즈의 'Sexy Music', 도나 섬머의 'Hot Stuff'를 샘플링하여 엉터리 발음으로(...) 녹음한 '아나까나'라는 곡을 내어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4] 그 후에도 'Nuit De Folie'를 엉터리 발음으로 발음하여서 '숑크숑크숑'이라는 쇼킹한 노래를 발매하였다. 들어보자. 그리고 조혜련 2집이 나왔다? 뭐라고요? 그리고 잡지와의 인터뷰를 하였는데 1번 항목이 아주 그냥 돌직구다. 1번 항목 주목.

2005년 이후에는 이때 인기를 기반으로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일본에 진출한 한국 개그우먼 1호가 되었다. 이 일본 진출 사연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배용준이나 이병헌, 류시원, 장근석처럼 일본 기획사 러브콜을 먼저 받은 게 아니라, 특이하게도 정말 단순하게 그녀 스스로의 노력으로 진출한 것인데,[5] 그냥 어느 날 조혜련이 일본 진출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직후, 일본 진출을 이미 한참 전에 성공한 윤손하에게 연락해 보기로 해서 바로 연락처를 찾아 전화했다고 한다.

놀라운 건 그때까지 사적인 친분도 전혀 없었고 방송국에서 만나면 그냥 인사만 하던 사이였음에도, 전화하자마자 평소에 알던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반말로 통화를 하면서 만나자마자 바로 도와달라고 했다는 점이다. 다행히 윤손하가 "일본 방송 관계자인 매니저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고, 2주 뒤 그 매니저를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 만난 매니저 유카라는 사람이 조혜련에게 한국에서 하던 요가와 몸개그를 시켜본 뒤에 조혜련이 물구나무 서기, 골룸, 엉덩이치는 춤 등을 바로 하자, "조혜련씨 당신의 열정은 알겠으나 6개월의 시간을 줄 테니 당신의 일본어를 늘려봐라. 그때 당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연구하겠다"라고 했다.

조혜련이 바로 "해보겠다"고 한 뒤, 일본어 선생님을 만나서 6개월 동안 운동을 하건 식사를 하건 일본어 단어장을 붙들고 살면서 매일 100개씩의 일본어 단어를 철저히 외우며 공부했다고 한다. 모자, 집 천정, 손가락, 의자, 창문 등등 자기 생활권 전역에 �안 외워지는 단어들로 도배를 하면서 결국 180일 동안 18000단어를 외우는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6개월만에 그 일본 매니저 유카를 만나자마자 일상대화 수준은 뭐든지 충분할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일본어를 하여 일본어 조혜련처럼 하면 6개월 정복? 그 사람과 윤손하 모두를 놀라게 했다는 점이다.

나중에 보니 그 사람도 윤손하의 요청이라 만난 거지 사실 기대치가 없었고 조혜련이 어설프게 일본어를 했다면 포기하도록 권유할 생각이었다고 하나, 직접 만난 뒤 "이 사람은 진짜 충분히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바뀌어 일본 진출을 도와주게 되었고 결국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몇 년 뒤 방송에 함께 출연하여 조혜련의 일본 진출 얘기를 할 때 조혜련이 "손하 덕에 진출한 것이라 정말 고맙다"고 하자 윤손하는 "난 소개만 했지, 내 덕에 한 게 아니라 정말 혜련 언니의 대단한 노력으로 성공한 것이다. 혜련 언니가 단기간에 정말 그 정도로 (일본어) 준비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빨리 일본어가 늘었던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조혜련은 일본 진출 이후로도 일본어 공부를 필사적으로 계속하여 몇 년만에 거의 반 통역사 수준에 이르게 되었는데, 당시 상술된 단어 붙이기는 물론, 운동을 위해 수영을 하면서도 매니저나 지인에게 물 밖에서 일본어 단어판을 들고 있게 하고 그걸 보면서 수영을 한 데다가, 방송하다가 쉬는 시간에도 단어를 외워댈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미친 듯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조혜련의 결심하면 바로바로 실행하고, 계속 죽도록 노력하여 이뤄내는 능력이 정말 역대급인 건 인정해야 할 듯. '미치면 미친다'의 대표 케이스

3 일본 진출

일본에서의 활동이 위주가 되면서 한국에서는 잘 보기 어려웠다. 간간히 뉴스세바퀴에 나오는 정도. JTBC유자식 상팔자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프로그램에서 기미가요가 나오자 열렬히 박수를 치고[6] 개그 소재로 한국을 비하하는 듯한 내용을 자주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기미가요에 대해서는 해당 노래가 일본의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음악인지 몰랐으며, 그냥 어느 가수의 노래인 줄 알고 박수를 쳐 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독도는 우리땅'을 개사한 '히라가나송'을 녹음하기도 하는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등 한국 내의 인기가 많이 하락한 상태다. 사실 일본 내에서의 인기나 인지도도 그리 높지는 않다.
조혜련의 만행.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2년에는 남편 김현기와도 13년의 결혼 생활을 끝냈다. 사유는 성격 차이라는 듯. 김현기의 외도 때문이라는 루머도 있었으나 조혜련은 이를 부정했다. 오랜 방송 활동과 일본 활동으로 인해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여 가족들과 많이 소원해진 것도 이유라고 한다. 지금은 아이들 양육 문제 때문에 전남편과도 곧잘 연락하고 같이 식사도 하면서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참고로 두 사람이 결혼한 과정도 특이한 편인데, 연애하던 시절에 조혜련이 당시 남자친구이던 남편에게 '몸무게를 몇 킬로그램 이상 빼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여 남편이 열심히 다이어트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조혜련의 외도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게 오히려 사실일 수도 있다 붕어빵 녹화 도중 아들 김우주 군이 "우리 엄마가 갑자기 다른 데 나가서 어떤 남자를 막 만져요"라고 증언했기 때문. 미쳤구나? 조씨는 급하게 "그 남자는 헬스 트레이너"라고 변명했지만 이를 보는 시청자들의 의혹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 이후 조혜련 부부는 평소에 같이 하던 매스 미디어 출연도 끊고 이후 정황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가 결국 2년 후 이혼과 동시에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방송활동을 중단했다가[7] 같은 해 11월에 SBS힐링캠프 출연을 시작으로 복귀했다. 유력한 사유 중 하나로 평가받는 아들 우주군의 발언. "엄마가 바람폈어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네? 현재의 남편과는 2014년 6월 재혼했다.

또한, 한 때 성매매 루머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다만, 사실이 아닌 듯 하다.

사실 탤런트 시험, 개그맨 시험을 모두 떨어진 후 좌절하여 과자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시 개그맨의 꿈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하던 지망생 시절부터 개그맨으로 성공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친 후에도 그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으로 가수 활동, 요가나 태보 같은 스포츠 영상 관련 산업, 일본 연예계 진출까지 이뤄내는 전무후무한 경력의 소유자였기에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인 노력으로 성공한 연예인의 모델'로 인정 받을 만한 사람이었으나, 일본 진출 후의 발언 문제로 인해 이미지가 급실추된 케이스다. 수단 방법을 가리며 성공을 지향해야 한다는 교훈의 산증인.

3.1 한국 비하 망언

한국은 음식 재료를 씻지도 않고 그냥 넣는다. 냉장고에 남은 거 다 넣고 만들면 부대찌개가 된다.

-일본 요리 프로

한국에서는 이런 데서도 깎아달라고 해야한다.

-일본 예능 프로인 오네맨즈에 출연했을 때 고급 명품샵에 들어갔을 때 한 말. 같이 방송 중이던 윤손하[8]마저 당황시켰다.

일본 예능 프로 링컨 출연 당시 일본 가수가 기미가요를 부르는데 박수를 쳤다.
일본의 개그를 존경해서 왔다. 한국 개그는 주로 몸을 써서 웃기기만 한다. 한국이 발전하면 지금의 일본처럼 되겠죠.

-다운타운 DX 출연 당시.

한국에서 제가 하는 방송이 이 프로를 표절했어요.

-메차이케 출연 당시.

한국 남자들은 여자를 많이 팬다. 그래서 이혼도 많이 한다.

-일본 예능 출연 당시.

한국 아나운서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려고 아나운서한다.

-아무리 봐도 노현정 아나운서를 타겟으로 비하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쓰미마셍... 캉고꾸진다까라..." 미안합니다... 한국인이라서...

-사랑의 에프런에 출연했을 때.

"한국에 누가 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해를 받는 게 속상하기는 하지만 동요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한국을 비하했다는 개그를 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면서 했던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망언을 한 사실이 목록으로 만들어질 정도라면... 답이 없다.

독도는 우리땅 노래에 일본어를 입혀 '히라가나송' 이라고 만들었다.

3.2 그 후

결국 조혜련은 논란중인 인물로 찍혔다. 거기다 근황에서 엄마가 뭐길래에서의 망언으로 완전히 찍혔다.
조혜련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고, 전성기 시절에 비해 방송 출연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예능 프로라는 맥락 속에서 한 말이 발언만 끊겨 나와 오해를 산 측면도 있다. 특히 기미가요 건은, 애초에 해당 노래가 기미가요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냥 가수의 노래인 줄 알고 박수를 쳤다는 것. 하지만 이미 이 사건 이후 안티들이 많아지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혜련팬이었던 사람들도 까는 사람이 많아졌다.

4 근황

2014년, 두 살 연하의 사업가와 새로이 교제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결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5년 2월 28일 무한도전에 출연했다. 그 이유는 조혜련이 10년 전에 무한도전 2기인 무리한 도전의 멤버였기 때문이다.

2015년 8월 3일 위기탈출 넘버원에 출연했다.

2015년 8월 23일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에 출연했다. 전 남편에게 애니팡 하트를 요청했다는 등 아찔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2015년 가을부터 인터넷으로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사이트. 참고로 중국어 강사인 동생 조혜숙 씨의 도움을 받았으며, 공부한 지 1년 2개월만에 HSK 5급을 취득했다고 한다.

2015년 11월 TV조선 엄마가 뭐길래에서 조혜련 아들과 딸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삶을 알아보는 프로그램에 나왔다.

2015년 12월 27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서 얼음공주로 분장하고 열창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노래를 정말 부자연스럽게 부른 탓에 굴러온 복덩어리를 상대로 95 : 4의 역대 최저표를 받고 탈락하였다. 굴러온 복덩어리라면 상대가 너무 강한 거 아니냐?

그나마도 그 중 두 표는 연예인 방청단 중 이 동정표로 줬다고... 본인 말로는 자기 목소리로 부르면 티가 너무 나기 때문에 목소리를 숨기느라 가성으로만 불러서 그렇다고 했다. 차라리 원래 목소리로 불렀다면 좀 더 나을 듯한데...[9]방송전 출연 당일부터 출연사실이 나무위키에 적혀있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방청객 중 위키러가 있었는 듯

2016년 2월 19일 나를 돌아봐이경규에게 당한 피해자 행세를 하는 기믹으로 게스트 출연했다.

자기가 받은 상처만 생각하고 그걸 말함으로써 똑같은 상처를 아이들이 고스란히 받게 된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는지...

-엄마가 뭐길래 2016년 7월 7일 방영분 유튜브 댓글 중에서.

2016년 7월 7일 엄마가 뭐길래에서 본인재혼한 남편과 "새로운 아이를 가졌으며 그 아이를 유산했다"는 내용을 아이들과 어머니 앞에서, 그것도 전국으로 방송되는 카메라를 방패삼아 말했다는 이유로 상당한 비난을 받고 있다. 안 그래도 어린 나이에 방송에 노출이 된 상태에서 엄마의 이혼과 재혼을 당해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인 아이들에게 불난집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실제로, 자식은 부모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특히, 많은 청소년 전문가들이 사춘기 때의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거나 "너 때문에 일을 한다"같은 책임감을 쥐어주는 뉘앙스의 잔소리를 한다면 그 짐을 그대로 가져가는 습성이 있어서 절대 삼가야 한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쉽게 넘길 고민도 아닌데다 이미 명백한 조혜련의 잘못으로 인해서 정서적으로 약해져 있는 조혜련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 그 와중에 본인의 충격보다는 "엄마가 애 낳다가 죽으면 어떻게 해?"[10]라고 말한 아들 김우주는 "혼란한 가정에서도 다행히 착하게 자라났다"며 칭찬을 받는 중이다. 견부호자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 중에서는 '이미 가족들이 알게 될 사실이었다','가족사를 자극적으로 방송에 내보낸 방송사도 잘못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조혜련의 가족들도 점점 관계가 나아지는 중이다.

유산 고백 후, 조혜련은 아이들에게 "지금은 훌쩍 커버렸지만 어릴 때처럼 한결같이 사랑한다. 너희가 원하지 않으면 더 이상 임신 생각 안할 거야."라는 말을 했다. 우주 역시 조혜련의 말을 듣고 엄마가 자신을 한결같이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엄마의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5 트리비아

  • 응답하라 1997이일화 역을 먼저 제안 받았다고 한다.[11] 당시 신원호 PD가 캐스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12] 여주인공의 엄마 역으로 조혜련을 떠올렸고 당시 중국에 있던 조혜련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칩거 중이었던 조혜련은 전화를 받지 못하고 이일화가 캐스팅에 OK를 하며 드라마 제작에 들어갔다. 이후 조혜련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응답하라 1997이 초대박 난 걸 봤다고.
  • 앞서 본 것처럼 1991년 12월 11일 첫 회가 나간 뒤 시간대가 자주 변경되어 오다가 1995년 2월 7일부터 화요일 오후 7시 5분으로 고정되어 방영된 한편 같은 달 28일부터 MC제가 도입되었고 1997년 5월 20일부터 같은 요일 오후 11시대로 바뀐 SBS <코미디 전망대>를 개그맨 정재환,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장윤정과 공동 진행을 맡아 처음으로 SBS 프로그램 고정 출연을 했지만 시간대를 변경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프로그램이 폐지(97년 6월 24일)되어 조혜련의 첫 SBS 진출은 실패로 끝났는데 이 프로그램은 역대 코미디언 출신 MC들이 정통 드라마 출연 경력을 가졌다. (정재환, 조혜련, 이봉원) 사족으로, '코미디 전망대'는 조혜련 이외에도 다른 방송사에서 활동해오던 여자 진행자들이 정통 드라마 출연 경력을 가졌다. (KBS 공채 탤런트 출신 김정난[13]과 MBC 공채 MC 출신 이매리.)
  • 과거에 창가학회 신자였지만 현재는 개신교로 개종했다.
  • TV조선 엄마가 뭐길래의 첫 출연 당시 조혜련이 아이들에게 대하는 태도 때문에 아이들과 갈등이 심했었는데, 조혜련의 어머니가 "죽으라고 엎어놨는데 안 죽었다"는 발언을 조혜련 본인 앞에서 함으로서 조혜련 본인은 어쩔 수 없더라도 자녀들까지 그런 환경에서 자란 엄마의 애정표현 방식 때문에 상처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티들마저(...) 염려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최근엔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손을 잡아주는 등 점점 사이가 나아지는 중이다.
  • 개그 스타일은 강하고 당찬 아줌마 스타일이다. 특히,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서 억지를 부리는 개그를 자주 구사한다. 덕분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데, 비호감 캐릭터가 필요할때 아주 적절하게 사용돼서 전성기 때는 나름대로 믿고 쓰는 개그우먼 중 하나였다.
  • 송일국의 연기선생님이었다고한다. 조혜련은 두려워말고 모든걸 질러버리듯 하라고 연기를 주문했다는데 그래선지 송일국은 주몽촬영당시 NG가나면 기합소리를 자주 내곤했다. 그에 놀라는 기성용 마누라의 표정이 압권. 사실 정극연기가 매우 좋은편으로 연극도 몇차례 공연한적이있다. 간판코너였던 울엄마라던지 웃지마에서 간혹 나오는 눈물연기와 진지한 모습을보면 코미디언으로서 보이지않고 몰입이 될정도. 본인도 연기에 욕심이 꽤 있었던듯하지만 개그우먼으로서의 프라이드가 더 컸기에...
  • 추석에 방영된 엄마가 뭐길래에서는 싸가지 밥 말아먹은 말투로 게시판 지분 차지는 물론 네이버 연예기사 댓글을 모두 평정했다.
  1. 91년 대학개그제처럼 처음부터 순수 공채를 뽑기 위해 체계적으로 만든 시험은 아니었고 몇 달간 주기적으로 수상자를 뽑았지만, 당해에 KBS 공채시험이나 정식 개그제가 없게 되면서 사실상 이때 수상한 사람들 중 일부를 개그 프로그램에 쓰면서 사실상 KBS 개그맨을 만들어, 이때 수상하고 KBS 개그에서 활동한 사람들을 10기로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 이때 수상했으나 KBS에서 활동하지 않고 나중에 다른 방송국 공채로 들어간 개그맨들도 있었다.
  2. 87년 제 1회 TV 개그맨 콘테스트 출신 박미선과 88년 제 2회 TV 개그맨 콘테스트 출신 이옥주가 91년 10월 SBS로 이적했고 제 1회 TV 개그맨 콘테스트 출신 이현주청춘행진곡 폐지와 함께 92년 3월 SBS로 이적했으며 91년 특채로 데뷔한 이영자는 93년 11월 오늘은 좋은 날에서 하차한 뒤 다른 방송사로 떠나게 되자 쓸 만한 개그우먼으로는 제 1회 TV 개그맨 콘테스트 출신 이경실 밖에 없어서 조혜련을 데려왔었다
  3. 그 동안 이 자리에는 이경실 이영자 등이 물망에 올랐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1995년 가을개편 때 이 프로그램에서 이봉원 후임 MC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
  4. 그런데, '아나까나'는 수준미달의 곡이라 하여 KBS에서 방송정지처분을 받은 바 있다(...) 아무리 그래도,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런 것은 조금 너무한 처사인 듯.
  5. 물론 당연히 한국에서 잘 나가는 개그우먼이라는 소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건 사실이지만, 음악으로 승부하는 가수나 영상으로 승부하는 배우와 달리 어차피 일본 연예계에서 코미디, 예능으로 살아남는 건 문화와 언어의 이해가 중요하지 한국에서의 인기로 인한 기반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6. 참고로, 당시 기미가요를 불렀던 사람은 미녀 엔카 가수로 유명했던 야시로 아키였다. 한국의 트로트 곡을 많이 리메이크를 하기도 했고 일본 가요계에서는 큰 족적을 남겼던 가수다. 최근에 CF에 출연해서 잔혹한 천사의 테제를 부른 적도 있었다.
  7. 이후에 힐링캠프에서 밝힌 바로는 본인은 웃음을 주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때문에 괴로운 모습으로 방송에 나오는 것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8. 참고로 조혜련이 일본 방송에 진출하도록 가장 초반에 도와준 사람이 바로 윤손하이다. 그것도 조혜련이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해서.... 그런데도 은인과 함께 출연한 방송에서 저런 이야기를...
  9. 다만 김새롬나에게 있어서 뜻깊은 언니라며 조혜련과 주먹이 운다에서 권투 대결을 했던 기억을 언급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새롬은 진심으로 투표한 걸로 보인다.
  10. 유산 소식을 듣기 전에.
  11. 다만, 섭외가 되었다면 당연히 좋은 소리는 못 들었을 것이다.
  12. 당시 캐스팅 제의를 하면 거절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배우들을 캐스팅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13. 진행 당시에는 본명인 김현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