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문서 : 김경문
목차
1 개관
그의 감독 스타일에 대해서 2015년 6월 1일 야구병법에서 소개한적 있다.#
2 상세
2.1 선수를 잘 만들어내는 화수분야구
투수는 절대 아니고, 야수만 그렇다.
대체로 이름없는 선수 몇 명을 엄청나게 밀어주는 경향이 있으며, 그 선수가 삽질을 하면 달의 남자라 불리며 김경문 감독과 함께 죽어라 까인다.[1] 그러나 달의 남자들이 포텐셜 폭발로 스타플레이어가 되면 이 칭호는 사라지고 이때까지 까던 팬들이 '이 선수는 될 줄 알았다' 면서 애널서킹을 해댄다. 이렇게 갑툭튀하는 선수들이 김경문 하에서는 굉장히 많이 나온다. 두산에서 그렇게 키워낸 선수가 육성선수로 들어온 손시헌과 김현수였고, 상무에서 제대하자마자 현대 유니콘스서 방출당한 후 손시헌의 추천으로 입단한 선린상고 동기 이종욱, 그 외에는 고영민, 이성열, 이원석 등이다. 물론 유재웅처럼 끝까지 터지지 않고 떠난 선수들도 많다.
팀 내 파워 게임과 세력 조율에도 매우 뛰어나서 나이가 든 선수들의 경우,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내보일 수 있도록 상당기간 기회를 부여한 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냉정하게 정리한다. 이 경우 떨어진 성적이 확실한 근거가 되므로 팬들도 지지를 보낸다. 대표적인 예가 안경현. 그리하여 서른 전후의 선수들에게는 문차일드에 속하는 것이 굉장한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성공해서 자리잡은 예는 임재철. 실패한 예는 문희성, 이승준, 정원석, 유재웅 [2] 등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강병철 감독과 그의 숱한 강병철의 양아들들을 생각하면 된다. 다만 기대주 타자들을 잘 발굴해 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개 다음 감독 좋은 일만 해주는 강병철 감독과는 달리 팀 내에서의 그의 자리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약간 차이가 있긴 하다.
NC 시절에도 이 장점은 그대로 적용되어 삼성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던 김종호를 도루왕에 수준급 리드오프로 만들었고, 투수로서 생명이 끝난 나성범을 중심 타자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신생 팀이다 보니 경험이나 수비력, 두께에선 아쉬움이 많은 NC 야수진이지만 베테랑 이호준의 뒷받침과 나성범과 모창민, 권희동 등으로 이뤄진 젊은 중심 타선의 화력은 수준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로도 모창민의 부진과 권희동의 입대 공백 등을 박민우, 김성욱, 김준완 등 기동력 있는 야수들을 육성해서 메꿔나가고 있다.
팀 케미스트리 관리에 있어서는 비교적 높게 평가받는 편이였다. 흑역사도 있기는 하지만 놀기 좋고 사고치기 쉬운[3] 서울 연고 구단인 두산에서 전반적인 팀 관리는 잘한 것이라는 평가가 중론.[4] 지방 구단인 NC에서는 더더욱 잡음이 적다. 일설에는 두산 시절에는 보이는 이미지보다 훨씬 엄했는데[5] 시행착오를 겪고 새 팀에서는 젊은 선수들을 상대로 보다 부드러운 이미지로 변신했다는 썰도 있었지만...
하지만 2016년에 승부조작이 터지고 여기에 NC가 세게 연루되면서 그냥 과거의 범죄두 드립과 맞물려 팀케미 쪽으로는 웬만해서 호평을 못듣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확정된 이태양에 조사받는 중인 이재학에 이제는 이민호의 외도 및 폭행 의혹까지 뜨면서 신인 육성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호평은 고사하고 거의 폭락해버린 상황. 9월 29일에는 추가로 테임즈의 음주운전 사실까지 적발되었다. 막상 김경문이 나간 후의 두산은 그간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11년 이후로 추가적인 범죄 적발 사실은 없는 형편이다.
2.2 투수 육성 및 기용에 대한 비판
김성근에 가려졌지만 투수혹사의 달인
2.2.1 두산 시절
치열한 경쟁에 의한 타자 육성에 비해 선발 투수 육성 능력은 (최소한 두산시절에는) 비슷한 세대의 감독 중 최악이었다. 200이닝 이팅이 가능했던 약쟁이다니엘 리오스가 떠나자마자 선발야구에서 손을 놓고 불펜야구로 전환해 버렸다. 덕분에 2011년 두산을 떠나기 전까지 용병을 제외하고는[6] 두산에서 제대로 된 선발 투수를 단 한 명도 키워내지 못했다.[7]
그 대신 중계 투수들을 잘 육성했냐면 더더욱 아니다. 전적인 예로 임태훈의 통산 등판기록을 보자.
2010년이야 5월부터 선발로 전환했다고 쳐도, 2007년은 순수 계투로 100이닝을 먹은 것이다!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는 2015년 권혁과 비교해 보면 된다. 권혁은 78경기에 나와 112이닝을 소화했는데, 경기당 이닝 수를 계산해보면 권혁보다도 임태훈이 더 높다. 게다가 2007년도는 1시즌의 126경기로 현재 144경기 체제에 비해 열 경기 이상 적다. 이뿐 아니라 10년 이상의 경험치가 축적된 권혁과 달리 2007년 당시 임태훈은 중고 신인도 아닌 고등학교 막 졸업하고 입단한 1년차 신인이었다.[8][9] 혹사 강도로만 보면 2015년 김성근의 살려조를 저리가라 할 수 있을 급의 더 악질적인 혹사인 셈이다.[10] 심지어 임태훈은 시즌 내내 불펜으로 구르고, 포스트시즌에서도 계속 핵심 계투로 뛰다가,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리오스를 3일 휴식만 시키고 4차전에 등판시키는 승부수가 실패, 자멸해버린 김경문이 팀에 올릴 선발 투수가 없다는 이유로 이미 5차전에 구원등판해서 패전투수가 되었던 임태훈을 한국시리즈 6차전에 선발로 등판시켜 버리는 역대급 혹사를 저질렀다. 선발로 뛴 2010년을 제외하면 임태훈은 3년동안 4600구 가까이를 던졌는데, 한국프로야구 사상 이 정도로 굴려진 중간계투는 없다. 결국 임태훈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2011년부터 비실대다 초라하게 은퇴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송지선 사건이 없었어도 진작에 퍼졌을 선수였던 것.
임태훈은 데뷔년도인 2007년에 무려 100이닝 가량을 던졌고 2008, 2009년에도 90이닝 가량 등판을 했다. 선발 자원이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문제는 임태훈이 계투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09년도 말부터 허리통증 때문에 퍼지기 시작했고, 2010년 초에 결국 탈이 나 부랴부랴 선발로 전환시켰다가 결국 그 해의 홈런공장장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야 선수 본인에게 탓을 돌릴 순 있어도, 선수의 컨디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김경문의 실책이다. 불미스러운 일로 야구판에서 사라진게 아니었다면 류현진 이후 씨가 마르다시피 한 KBO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신인이 선발이나 철저한 관리 속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한 감독의 욕심 속에서 혹사로 사라진 가장 큰 사례 로 가장 먼저 꼽혔을 것이다. 게다가 이재우는 2008, 2009년 불펜에서의 활약 이후 선발로 전환했다가 시즌 초에 인대가 끊어져 결국 재수술까지 가는 끝에 2013년이 되어서야 롱릴리프 정도로 뛸 수 있었다. 고창성은 아마추어 시절의 혹사때문에 1년을 쉬고 왔음에도 2년을 내리 신나게 굴리다가[11] 아시안게임조차 퍼진 상태로 나갔고, 결국 현재까지도 비실비실한 상황이다. 이용찬은 몸에 맞지 않는[12] 마무리를 맡겼다가 제대로 된 변화구 하나 없이 작대기 직구에만 의존하는 양아세이브 컬렉터로 만들고 말았다. 11년도에 선발 전환을 통해서 2012년도 성공의 초석을 닦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변화구 하나 장착 못시켜서 그 부족했던 선발자원을 고작 불안한 마무리로 써왔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10억과 금민철을 내놓고 데려온 이현승은 선발인지 계투인지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 이도저도 안되는 상태로 제대로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입대했다가 제대 후 15시즌에서야 마무리를 맡으면서 국가대표 A팀에도 승선하는 등 포텐이 터졌고, 노경은은 온갖 트러블 끝에 김진욱 감독 시절에서나 만개한다. 당시에는 김경문의 한계라기 보다는 두산 자원의 한계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했는데,[13] 김진욱 체제에서 선발진이 매우 크게 안정되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김경문이 안 좋은 쪽으로 재평가가 일어난 것이다.[14]
김경문의 투수육성과 운영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틀에서 이뤄진 것. 리오스-니퍼트 공백기의 두산과 니퍼트 이후의 두산을 보면 투수운용이 완전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다른 투수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혜천이 2003년 83경기, 2004년 79경기라는 과한 스윙맨 기용으로 인해 망가졌으며[15] 같은 해에 차명주는 77경기를 출장함으로 인해 망가졌다.[16] 정성훈이 2004년 79경기라는 과한 스윙맨 기용으로 인해 망가졌으며[17], 이 뿐만이 아니라 2005년에는 김성배를 72경기, 2006년에는 61경기에 기용하여 망가뜨렸고[18] 2007년에는 그 유명한 임태훈만 혹사를 시킨 게 아니라 또 다른 투수 금민철도 53경기를 넘김으로써 혹사를 시켰으며, 결국 금민철은 넥센에 이적하고 나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아야만 했다.
그의 혹사 기록의 절정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이루어졌는데, 팀의 마무리 이용찬이 불미스러운 일로 이탈한 상황에서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모두 최종전까지 치르는 혈투를 치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창성은 그 10경기를 모두 출장하는 전대미문의 혹사를 당하게 된다. 2009년에 64경기 74이닝 ERA 1.95, 5승 2패 16홀드 1세이브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이용찬과 신인왕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유망한 사이드암 투수는 그 혹사 이후 예전의 폼을 되찾지 못했고, 2010년 82이닝 ERA 3.62 22홀드, 2011년 50.2이닝 ERA 4.44 14홀드를 마지막으로, 당당한 1군 필승 셋업맨에서 9월 확대 엔트리 이후에나 간간히 얼굴을 비추는 2군급 투수로 전락해버렸다. 심지어 김경문 감독은 두산에서 재활에 매진하던 그를 2차 드래프트로 특별지명, 다시 NC로 끌고가버렸다. 야만없이지만 대졸에 국가대표 경력도 있는 그가 과도한 혹사 없이 적당히 관리받으면서 계투로 야구 인생을 유지했다면 바로 다음 해의 시즌이 끝나고 8년차 FA 자격을 얻게 되었을 텐데, 그가 거품이 부글부글한 현재의 FA 시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을 지 생각해보라.
그 외 자세한 스탯은 여기로.
2010 시즌 목표가 우승이라며 초반 1위를 노리려다 임태훈, 이재우, 고창성, 홍상삼 등 핵심 투수들이 연달아 무너지며 자멸한 것은 김경문식 불펜야구의 절정이라 부를 만하다. 김경문 감독의 입장에서는 김선우/켈빈 히메네스/이현승의 이닝 이터 트리오, 그리고 하위선발에 레스 왈론드를 배치, 5선발 자리에서 경쟁을 시켜 보면서 튀어나오는 선수에게 꾸준한 기회를 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2011년 선발을 강화한다고 하며 임태훈을 선발로 돌리기도 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4월 내내 1위를 목표로 중간계투를 빡세게 돌리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당시 임태훈은 5년째 당한 혹사로 인해 허리가 나가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고창성도 3년여의 혹사로 맛이 갔으며, 이미 혹사로 건초염을 앓고서 한참 쉬다 돌아온 정재훈마저 순식간에 맛이 가기 직전까지 몰렸다.
과거에 보좌했던 투수혹사의 달인 김인식 감독과 마찬가지로 김경문 역시 투수혹사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선동열과 함께 선발 자원도 거진 불펜에 때려박는 걸로 악명이 높았으며, 선발을 못 믿고 일찌감치 핵심불펜 투수를 투입하다보니 투수진이 일찍 소모되고, 그 틈을 메우려다 보니 선발수업을 받아야 할 유망주들을 계속 불펜에 제물처럼 투입하여 소모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는 이유로 까였다.. 라고 하지만 두산 당시에는 거의 까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한데, 지금처럼 인터넷 커뮤니티가 덜 활성화되었고, 베이징 올림픽 때 유입된 라이트 야구팬들이 그를 옹호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후임인 김진욱이 까이다가 뒤늦게 재평가받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기록으로 보면 분명히 김진욱이 김경문보다 장기적으로 팀에 더 도움이 되는 야구를 했지만, 한때 김경문은 그래도 찬양받고, 김진욱은 단기전의 미숙함으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14시즌을 거치며 김진욱이 재평가받고, 15시즌 김태형 감독 체제에서 두산이 우승을 하면서 김경문에 대한 재비판이 매우 커졌다.
물론 이에 대해 실드를 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 근거로는, 2군에서 유망주를 키워야 할 투수코치들이 역할을 못해주었다고 지적한다. 김경문 감독은 어디까지나 팀의 종합적인 관리를 추구하는 입장이어야 하고, 1차적으로 투수 육성에 있어서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투수코치 아니냐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은, 이미 1군에 붙어 있었던 이재우, 김선우, 김상현, 이혜천, 김명제, 이승학, 정재훈에다 2007년 이후 2군에서 콜업된 수준급 투수들만 해도 임태훈, 고창성, 홍상삼, 이용찬, 노경은, 금민철이며, 거기에다 히어로즈에서 트레이드해 온 이현승까지 친다면 투수가 없다느니 코치가 잘못이니 하는 타령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능력치로만 보면 당시 리그에서 두산의 투수진은 최고 수준이었다. 단지 믿을만한 선발이 없었을 뿐. 오히려 '15시즌 투수진이 선발 빼면 나을 게 전혀 없는 수준이었다. 두산의 2015년 포스트시즌을 투수 세 명이 끌고갔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당연히 투수코치들이 역할을 못했다는 건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로, 두산에는 당시에 김진욱 등이 투수코치로 있었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19]
그래서 믿고 데려온 선발감들이 한결같이 3이닝만 넘어가면 비실거리니 계투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는 반론도 있다. 오죽하면 선발이 5이닝만 넘기면 퀄리티 스타트에 비유하여 돡리티 스타트라고 팬들이 환호하기도 했었다.[20] 당시 리얼타임으로 보았다면 김경문 감독이 리오스의 빈자리를 메꾸려고 별별 실험과 고민 끝에 KILL 라인을 정립한 것을 알 수 있다.그리고 이름대로 다 죽었다 두산 투수들이 홍상삼처럼 다 계투 체질이었던 것도 아니지만, 암튼 이닝 길게 갈 선수가 하나도 없었다.정작 홍상삼은 선발로 기용했다는 게 함정 그 후 노경은과 이용찬이 김진욱 감독에 의해 선발진에 성공적으로 자리잡기까지 또 수년이 더 필요했다.
차라리 용병 탓을 하면 이해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차피 약물 의혹의 리오스만 해도 2007년에 혹사의 수준을 넘어 엄청난 등판을 했던 걸 생각하면 투수기용에 관한 한 김경문은 까여도 할 말이 없지 않느냐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오히려 '15시즌의 두산은 외국인 선수들이 단체로 드르렁하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토종 선수들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리고 타순을 채워나가면서 정규시즌 3위를 기록했고, 포스트시즌에서는 그 드러누워있던 외국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난 1명의 외국인 선수만을 쓰고 14년만에 업셋 우승을 달성했다. 다만 그 외국인이 넘사벽이었을 뿐
김경문이 투수 육성, 발굴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써 있었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그는 그냥 있는 투수들을 있는대로 갈아 넣었을 뿐이다. 그것이 때마침 두산의 두꺼운 뎁스와 연결되어서 수많은 선수들이 갈아넣어졌음에도 보충할 선수들이 서울이천팜을 통해 계속 보충될 수 있었을 뿐이고, 결국 팀을 한계까지 갈아넣는 무대포식 폭주기관차 운용이 한계에 이르자 그는 그대로 도망쳐버리고 말았다.[21] 혹사문제는 김성근이나 선동열, 김인식 등 KBO 리그에서 자유로운 감독이 없지만, 그것이 김경문을 실드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모든 혹사는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22] 야수진 운용이나 육성은 투수에 비해서 훨씬 낫긴 하지만, 그 유명한 두산의 화수분을 잘 받아먹은 결과일 뿐이다. 당장 그 전임인 김인식 감독 시절에도 정수근, 심정수, 김동주, 홍성흔등 젊은 야수들이 상당히 많았고, 트레이드된 심정수를 제외한 나머지가 주축이 되어서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 냈다.
즉 김경문은 투수 육성에 일가견이 전혀 없고, 대체 선수를 키워내는 능력이 사실상 전무함에도 투수를 초년차부터 있는 대로 굴려왔고 잘 던지면 무조건 혹사하다가 망가지면 다음 희생양을 고르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완전히 두산 투수진을 멸망에 이르게 만든 인간 백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NC팬들 중에는 두산 시절에만 그랬던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어디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NC에 가서도 그 버릇은 그대로여서 2015시즌 최금강을 시즌중에 너무 혹사한 나머지 플레이오프에서 써보지도 못 했고, 나성범을 투수로 기용[23][24]하는 운용을 펼치게 되었다. 마무리 선발 중간 오가면서 혹사당하는 이민호의 기용이 마치 예전 임태훈을 굴리던 방법과 너무 유사해 보인다. 둘은 얼굴도 똑 닮아서 두산 팬들은 이민호를 볼 때마다 기분이 너무나도 이상하다고 한다... 게다가 둘다 사생활이...
여기에 김경문 감독은 두산 베어스의 좌완 잔혹사를 끊어내긴 커녕 더 심화시켜 버렸다. 당연하지 멀쩡한 선수들도 다 갈아버렸는데 이는 김진욱 감독시절 유희관이 자리잡으며 안정되기 시작했고,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15시즌에는 장원준[25], 이현승, 진야곱[26], 허준혁, 이현호, 함덕주 등이 우수수 쏟아지면서야 끊어낼 수 있었다.[27][28] 뎁스 하나는 남부럽지 않은 이런 팀에서 도대체 뭔 짓을 한 거냐
2.2.2 NC 시절
특정 불펜 투수에 대한 과도한 기용이 있었지만, 퀵후크를 남발하며 여러 불펜을 동시에 혹사하거나 선발감 유망주를 모조리 불펜으로 갈아넣어 불펜붕괴가 일어난 경우는 없다.그건 그쪽이 비정상적인거고... NC에서는 신생팀 메리트로 용병을 한 명 더 기용할 수 있었고, 이 중 찰리 쉬렉과 에릭 해커가 이닝 이팅을 확실하게 해줬으며, 국내파 중에서는 이재학이 호투하면서 선발진은 괜찮아졌지만 지속적인 불펜 불안이 심해지면서 한동안 이재학을 마무리로 돌리기도 했다. 그나마 곧 다시 선발로 복귀시키고 나이든 손민한을 마당쇠로 기용하며 두산 시절보다는 선발에 무게를 두고 있다. 2014년이 지나면 용병+1 메리트가 없어질 것이고 불펜에서 마당쇠 역할을 해주는 손민한의 선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사이 팀을 얼마나 정비해서 NC의 투수진을 꾸려나가냐에 따라 향후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결정될 듯 하다. 일단 5월 초를 기준으로 보면 원종현과 홍성용이 불펜에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상당히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2013년-2014년은 선발진이 안정화 되어있었고 이닝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은 크게 불펜 혹사라고 여길 만한 기록도 없었지만 * 각각 13, 14년에 팀 불펜 내에서 많이 나왔던 임창민 원종현에 대한 말만 있었다. 하지만 원종현은 암으로 2015 시즌을 빠졌고 결국 혹사 당할만한 투구를 한적이 없다.2015년 5선발로 손민한을 투입하여 최고령or 역대최초 40대 10승 투수로 민한신으로 부활시켰다. 작년에 성공적인 마무리였던 김진성이 부상으로 빠지고 원종현마저 대장암으로 스프링캠프 중 빠진 볼펜에 마무리로 임창민을 마무리로 성공적으로 보직변경시켰다. 그러나 롱릴리프 역할의 최금강에 대한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특히 최금강은 한화의 살려조 및 넥센의 조상우에 가려져서 그렇지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등판을 많이 했던 편,[29]
다만 혹사로 2016시즌을 망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6 시즌에도 최금강은 여전히 잘 던져주고 있으며 선발 투수 4명의 공백기간에 대체 선발로 시작해 완전히 선발로 정착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10승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부분은 투수를 전부 불펜진에 갈아넣던 과거와 비교하면 달라진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투수 운영에 있어서도 5선발로 간 이민호의 경기만 아니라면 롱릴리프가 필요 없는 경기 덕분에 혹사를 부를만한 상황은 마땅히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불펜진에 구창모와 유격수 출신의 박준영이라는 신예가 등장하며 투수를 키워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장암을 이기고 복귀한 원종현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두산 시절의 '젊은 유망주는 곧 불펜으로 가서 팔이 갈린다'는 평가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다만 원종현, 임창민 등 주요 불펜 요원들이 상당히 많이 던졌고 후반기에 가서는 지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2.3 결론
각종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김경문 감독이 혹사를 시키는 감독이라는건 일부 맹목적으로 팀을 지지하는 NC팬들을 제외한 10개 구단 야구팬은 전부 다 인정한다. 물론 프로야구에서는 성적이 중요하고 성적이 좋으면 일정 부분 커버가 되는 것도 맞다. 평생을 불펜야구를 해왔고 SK로 부임 후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서 KBO 전체를 불펜야구 판으로 만들었던 김성근 감독이 그랬고[30] 해태왕조를 이끌던 김응룡 감독이 그랬고 베어스를 2회 우승 시킨 국민감독 소리 듣는 김인식 감독도 마찬가지다.
두산 팬들도 김경문 감독이 사령탑이던 시절에는 투타에서 초토화 상태였던 두산 야구를 발야구와 번트 없는 강공야구로 부활시키고 매년 가을야구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부분 진심으로 좋아했었다. 불펜 운영도 왕조라고 불리던 SK 팀에 맞서기 위해 우승을 위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라고 팬들이 먼저 나서서 김경문 감독을 옹호하던 시절도 있었다.[31]
그랬기에 두산 선발진이 약한건 두산의 한심한 투수자원들, 투수코치 탓이라고 생각했고 그 시절 두산이 불펜야구를 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후임인 김진욱 감독 체제에서 노경은, 유희관 등이 발굴되면서 선발야구가 이뤄지자 두산 팬들이 김경문의 투수 운용을 재평가하게 된 것이다.
김진성, 최금강, 임창민, 원종현 등의 사례가 예전과는 다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핑계나 쉴드 밖에 안되는 것이고 두산시절만큼 혹사 범주에 들어가는 투수의 수가 적다고 해서 그것이 옹호를 받거나 정당한 행위가 아니다.
2016 시즌만 봐도 암 투병 후에 5/31 복귀한 원종현이 64이닝을 넘게 던지고 있고 시즌 막판 어느정도 순위경쟁이 안정권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거나 비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잦은 등판은 계속 됐다.
이런 운영 방법이 꼭 2연투, 3연투, 투구수 제한 같은 뻔한 수치에는 어긋나지 않으니까 혹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정말 선수를 소모품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다. [32]
분명히 김경문 감독이 두산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 NC에서 팀을 운용할때는 그 전 보단 혹사를 덜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운영을 전혀 하지 않는 감독이라는 식의 이야기는 옳지 않다. 혹사 당하는 선수의 규모는 줄었을지 모르지만 특정 선수에 대한 사용 방식은 두산 시절과 비교해도 변한 것이 없다.
NC팬들도 좋은 성적의 달콤함을 즐기는 것도 당연히 좋지만 감독, 선수는 언젠가 떠나도 팀과 팬은 그 자리에 남는다. 지금 당장의 사심을 떠나서 좀 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2.3 감의 야구, 작두야구
작전자체에는 소극적인데 걸면 이상한 작전을 걸 때가 많다.거나, 일부 믿고싶은 놈은 못해도 끝까지 밀어주는데 왜 다른 선수는 그렇게도 못 믿는거냐?거나..
대체로 번트보다 강공을 선호하는 감독인데, 기묘한 타이밍에 갑자기 기습 세이프티 번트를 시도한다거나(대체로 실패한다;) 좌타자 상대로 갑자기 옆구리 투수를 기용하는 등 뜬금없는 작전이나 투수교체를 하곤 한다. 베이징 올림픽 때 좌투수인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좌타자인 김현수를 기용하는 장면[33]에서 성공하는 등 등 의외의 기용으로 재미를 보고, 작두타셨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성공했을 경우에는 확실히 신의 한수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패배를 남기는 편. 게다가 큰 승부에서 유난히 믿는 놈만 믿다가(이성열, 고영민, 이종욱 등) 자멸해 버리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34]
팬들은 대체로 이해해주는 편이었으나 2011년 감독의 감의 야구가 거의 매 경기 발동하고 대체로 실패하는 상황이 되자 똘끼로 야구한다며 '똘경문'이란 별명이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런동
좋은 쪽으로는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이승엽 정도?
마이크 소시아하고 닮은 점 중에 가장 부각되는 점이 이거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로, 소시아는 WS 우승이 있다. 투수혹사와 더불어 경기 내적으로 가장 비판받는 부분인데, NC에서 신생팀 대비 우수한 성적으로 다시 평가를 호전시키기는 했지만 NC의 전력이 계속 강해지는 시점에서 계속 고집스런 운영이 지속될 경우 적어도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재평가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35]
2.4 강공 위주의 선이 굵은 야구
김성근 감독의 스몰볼 야구와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김성근의 스몰볼 야구는 한점 한점 점수를 내고 철벽 마운드로 그 점수를 지키는, 치밀하게 이기는 야구라면 김경문 감독의 야구는 그와는 정 반대로 한방 한방 크게 점수를 내는 야구이다. 중장거리 타자(팀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한 김현수, 최준석, 이성열, 고영민이나 열심히 키우려 한 양의지, 김재환 등은 모두 중장거리 타자들이다)를 다수 보유한 것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득점권에서 번트를 적극적으로 대는 것 보다는 강공 위주로 점수를 내는 것을 선호한다. 선수들의 타격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구사할 수 없는 공격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그날 그날 타자들의 타격감에 따라 그 경기의 득점이 좌우되곤 한다. 이는 김경문 감독이 돌경문이라고 까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믿고 내보낸 선수가 득점권 기회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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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새는 이 표현은 화수분 야구를 의미하는 긍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문차일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 김경문 쉴드가 없어지자 2차 드래프트로 풀렸다.
- ↑ 수도권 외에 비슷한 문제가 많은 구단은 제2도시 부산 연고인 롯데
서면술사라던가 - ↑ 범죄두 드립이 난무하기는 하지만 2천년대 들어 같은 수도권 구단인 LG가 비밀번호 탈출하고도 수시로 팬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지는 것과 비교했을 때는 준수하다. 두산과 마찬가지로
LG와 달리호평을 받던 넥센도 음주운전 사고가 터진 것은 마찬가지. - ↑ 전임 김인식 감독시절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수습하고 바꾸는데 꽤 고생했다고.
- ↑ 이마저도 켈빈 히메네스를 제외하면 제대로 해 준 선수가 얼마 없다.
- ↑ 그나마 홍상삼이 싹을 좀 틔울 듯 했지만 2010년에 혹독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었다. 그리고 김진욱 감독 취임 후 불펜에서 포텐이 터지며 불펜 체질임이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김진욱을 정말 스승처럼 따르고 있는 노경은만 보면 답이 나온다.
- ↑ 갓 입단한 신인들, 특히 투수들에게는 더 확실한 관리가 필요하다. 프로경험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임태훈은 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입단했는데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할 정도면 소속 학교에서 거의 에이스급으로 활약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고교에서 에이스급 투수들은 엄청난 혹사를 당한다. 그렇기에 1~2년차 신인 투수들에겐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고교 시절 날렸던 유망주라면 더더욱.
- ↑ 참고로 임태훈 이후 고졸출신 신인왕은 나오고 있지 않다. 임태훈의 혹사는 두산 뿐 아니라 야구계 전체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 셈이다.
- ↑ 이와 가장 근접한 사례로는 2011년 박종훈 밑에서 밑도 끝도 없이 굴려진 당시 10대였던 임찬규가 있다. 사실 이것도 말이 좋아 가장 근접한 사례인거지 이 둘 간에도 18과 2/3이닝이나 차이난다.
- ↑ 심지어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는 준플레이오프 5경기, 플레이오프 5경기 전경기 출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 ↑ 본인은 그게 아니라고 하지만
- ↑ 사실 이종욱, 김현수, 손시헌 등의 뛰어난 야수 육성능력에 묻혔다고 보는게 맞다
- ↑ 물론 김진욱은 이후에 불펜 육성 실패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만 이때는 김경문이 물려주고 간 투수 자산 대부분이 박살난 상태였다. 이후 16시즌까지 영향을 미쳤다. 16시즌 최강 선발진을 구축하고 리그 1위를 달리는 두산의 유일한 약점이 선발이 내려간 다음 나오는 불펜이다.
- ↑ 결국 이혜천은 선발로 보직을 변경했고, 다행히 관리받게 된다. 이혜천 대신 혹사의 제물로는 2군에서 올라온 김성배가 낙점되었다.
- ↑ 특히 차명주는 2001년에만 84경기에 등판하는 정신나간 혹사로 인해 이미 몸 상태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런상황에서 하라는 관리는 안하고 신나게 굴린 것이다.
- ↑ 결국 정성훈은 군복무 이후에 재기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 ↑ 결국 김성배는 군복무 이후, 전형적인 2군투수로 전락했지만 롯데에서 부활했다.
- ↑ 당장에 당시 투수코치였던 김진욱이 감독이 되어 유희관과 노경은을 선발로 키워냈다.
- ↑ 정반대 용어(?)로, 선발 야구를 하던 조범현 감독 시절 KIA에서는 8이닝 이상(!) 2실점 이하(!!)를 기록하면 갸리티 스타트라고 칭하는 일이 있었다.
사실 굳이 선발이 강해서일 뿐 아니라, 득점력이 처참한 김기아 타선 때문에 퀄리티 스타트로는 승리를 못 따는 일이 많아서 붙은 이유도 있다 - ↑ 04-11년에 감독을 맡아 차명주는 04년 1년차에 77경기를 굴리고 망가졌고, 김성배는 05년 감독 2년차에 72경기에 내보내 굴리고 망가져서 롯데로 보냈고, 임태훈은 07년 감독 4년차부터 굴리기 시작해 3년간 개처럼 굴리고, 이재우는 04년부터 불펜, 셋업, 스윙맨, 선발 가리지않고 굴리다 2010년에 결국 팔꿈치 부상으로 12년이 되서야 돌아왔고, 정성훈도 1년차부터 79경기에 내보내는 등 감독 커리어 초년부터 혹사는 일상적이었다.
- ↑ 김성근만 봐도 과거에는 김성길과 김현욱, 신윤호, SK에서는 전병두, 윤길현등이 있고, 선동열은 권오준, 권혁, 정현욱 등을 족치던 걸로 악명높았다.
- ↑ 물론 나성범은 연세대 시절 대학리그를 씹어먹던 좌완이었지만 프로에 입단해서 타자로 전향한 지 어느 새 4년차가 되었고, 프로 무대에서 투수로 등판한 적 역시 없다. 아무리 나성범에게 자체 청백전 때부터 투수 연습을 시켰으며 시즌의 마지막 순간에 등판시키겠다고 공언... 사실 이 말을 여기서 지킨 것부터 우리 경기 졌소 하는 꼴이다.
코시에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플옵에 올릴 리가 없잖아쨌든 그러긴 했지만 프로생활 내내 타자로 뛰었던 선수를 올스타전이나 자선야구와 같은 이벤트전도 아닌 정식 경기에, 그것도 당장에 한국시리즈행이 결판나는 플레이오프 5차전 9회 초, 시즌의 마지막 경기일 수도 있는 경기였는데 그 경기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게 될 수도 있는 마운드에 내보냈다는 건 그 급박한 상황에서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나성범이 오타니 쇼헤이급이라면 모를까. - ↑ 게다가 멀쩡히 경기를 뛰고 있던 야수를 뜬금없이 투수로 등판시키는 운용으로 인해 그 경기의 지명타자 롤까지 날려버렸으며, 그로 인해 NC의 막강한 나이테 클린업 중에서 이호준이 9회 말 공격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투수진이 완전히 바닥난 것도 아니고, 크게 이기거나 크게 지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9회에 꼴랑 2점 차이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동점을 만들어 연장이라도 가려고 해야 정상인 마당에 이런 짓을 했다는 건 지켜보는 팬들 입장에서는 맥이 탁 풀려버릴 상황이고, 상대팀 입장에서는 거의 능욕당한 수준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시즌 내내 혹사 속에서 고생했던 불펜투수들은 어쩔.... 나성범의 투구내용이 그래도 나름 좋은 편이었으니 망정이지 혹시라도 그 타이밍에 불이라도 났다면, 만약에 나성범이 9회 초에 1점이라도 내줬는데 9회 말에 2점 따라가고 경기가 끝나기라도 했다면? 김경문은 전례없는 수준으로 개같이 까였을 것이다. 상황을 바꿔 두산 김태형 감독이 플레이오프 5차전 9회에 근소한 차이로 지고 있는데 팬서비스랍시고 뜬금없이 정수빈과 홍성흔을 배터리로 출장시켰다고 생각해보자. 이쯤되면 경질 얘기가 나와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 ↑ 단, 장원준은 외부 FA 영입이라 경우가 다르다.
- ↑ 이현승과 진야곱은 김경문 시절에도 있었지만, 미미한 활약이였다.
- ↑ 진야곱, 허준혁, 이현호는 더스틴 니퍼트, 이현승, 노경은의 부상과 유네스키 마야, 앤서니 스와잭등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으로 인해 생긴 로테이션의 공백을 메우며 선발 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 함덕주는 두산 불펜진에서 희망의 싹을 틔웠으며, 이현승은 시즌 전엔 선발로 예정되었다가 개막 직전에 닥친 부상을 딛고 마무리로 보직을 전환한 후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의 철벽과 같은 대활약으로 2015 WBSC 프리미어 12 엔트리에 뽑히며 국가대표 주전 마무리로까지 활약을 펼쳤다
- ↑ 롱릴리프로 최금강이 혹사 당한 이유로는 1선발 에이스였던 찰리 쉬렉의 급격한 부진과 이재학의 제구 난조로 인한 빠른 선발진 붕괴가 원인이 되었고 원종현이 대장암으로 빠지고 마무리였던 김진성마저 부상으로 빠지면서 볼펜진이 더 약해지며 노성호와 이민호 임정호 강장산 등을 같이 투입시켰으나 최금강이 퍼지기 직전까지는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였으나 혹사로 인해 후반기 부진으로 인해 성적이 나빠졌다.
- ↑ 김성근이 한화로 복귀하기 전까지의 위상과 성적이 안 나오는데도 투수를 갈아먹는 한화 감독 시절의 위상을 비교해보자
- ↑ 역대 KBO 감독 중에서 우승 커리어 없이 한 팀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감독직을 누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 ↑ 김태형 감독이 우승감독 임에도 시즌 중반까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던 부분도 두산의 얇은 불펜진을 핑계 삼아 이기는 상황에서의 무조건적인 정재훈, 이현승 투입이었다.
- ↑ 그 시즌 김현수는 좌투수 상대타율이 우투수 상대타율보다 높았다. 그래서 좌투수를 상대로 대타로 낸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작전이었다. 높이 평가할 부분은 만약 그 기용이 실패했을 경우 좌투수 상대로 좌타자를 내는 바보같은 기용을 했다며 비난을 퍼부었을 참새들의 입방아를 겁내지 않은 용기. 그런데 김현수는 그 다음해부터 장거리 타자의 스윙으로 타격을 개조하면서 좌투수 상대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즉 장타를 치기 위해 히팅포인트를 앞에 두면서 좌투수의 바깥쪽 변화구에 약해지게 된 것이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는 법이다
- ↑ 2015년은 특히, 이종욱 덕질이 심했다. 전반기야 그렇다 치지만, 후반기와 포시에선 거의 먹튀에 가까운 성적을 냈으나 , 이호준은 조영훈으로 잘만 교체해놓고, 이종욱은 김성욱,김준완이라는 훌륭한 대체제가 있는데도 (이호준-조영훈에 비해) 거의 교체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감독에 의해 검증된 선수라지만, 너무 심한 철밥통 뻘짓을 보여줬는데도 꿋꿋히 교체를 안하며 팬들의 속을 태웠다.
김종호는 잘만 교체했잖아 - ↑ 오히려 단기전 능력의 경우 국가대표 감독 경력으로 퉁치는 것이 말이 되고, 단기전 능력이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 팬들도 있지만 정규시즌 우승 경력조차 없다는 것은 분명 명장 대우를 받기에는 하나 아쉬운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