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 푸더 No.9 | |
김승대 (金承大 / Kim Seung-Dae) | |
생년월일 | 1991년 04월 01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경상북도 포항시 |
학력 |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영남대 |
키 | 175cm |
소속팀 | 포항 스틸러스 (2013~2015) 옌볜 푸더 (2016~) |
포지션 |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
국가대표 | 2경기 1골[1] |
2014년 K리그 영 플레이어상 | ||||
고무열(포항 스틸러스) | → | 김승대(포항 스틸러스) | → | 이재성(전북 현대 모터스) |
목차
1 소개
포항 출신으로 신화용과 함께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포항 스틸러스 유스까지 모두 거친 팀 내에 두 명 뿐인 로컬 보이였다.[2] 2011년 포항에 우선지명을 받아 영남대에서 뛰다가 2013년에 정식계약을 맺고 포항에 입단했다.
2 플레이 스타일
오프사이드 라인의 지배자.
김승대만의 특징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는 라인 브레이커에 걸맞는 움직임과 골 감각이다. 이는 한국 선수로는 거의 독보적인 능력이며 과거의 한국 축구 레전드들도 쉽게 가지지 못한 강점이다.[3] 거기에 1:1 상황에서의 결정력도 좋아서 질 좋은 패스까지 배급되면 거의 골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 다만, 뒤에서 영 좋지 않은 패스가 공급되면 별다른 활약을 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4]
초기에는 슈팅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골은 많지만 거의 모든 골이 가볍게 밀어넣은 골이고 강력한 슈팅으로 넣은 골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데뷔 시즌 한정으로, 그 이후 시즌에는 슈팅 성공률 66.6%를 전반기 넘어서까지 유지했을 정도로 일취월장해서 감아차기, 툭 밀어넣기 등 다양한 슛을 구사했다. 그리고 위의 부정적인 평가는 좀 억울할 법 하기도 한 것이, 플레이 스타일 상 골키퍼와의 1대1 경합이 주로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루어지며, 이런 경우에는 손세이셔널같은 강슛보다 정확하게 차 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즉, 옳은 평가가 아니라는 것. 선호 플레이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침투' , '패스하듯 정확한 슛팅을 구사'가 달려있다 하더라
3 클럽 경력
3.1 포항 스틸러스
3.1.1 2013 시즌
같은 포지션에 쟁쟁한 선배들[5]이 있었기에 기회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황진성이 다시 유리몸화 되고 신진호는 카타르로 임대 가고 박성호가 전반기에 죽을 쑤는 바람에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진성이 스플릿 라운드를 앞두고 무릎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 되면서 주전 자리를 꿰어찼다.
신진호와 황진성의 공백을 훌륭히 메꾸고 7월 2일 서울전에서는 고무열의 결승골을 어시스트 하는 활약을 보이면서 '포항 유스는 역시 미드필더 화수분'이라는 찬사를 받게 만들었다.
상위 스플릿 시작과 동시에 황진성의 이탈로 포항팬들은 "우리 리그 망함"하고 좌절했지만, 황진성의 공백을 완벽하게 매꾸면서 대한축구협회 FA컵 2013 결승에선 전북을 상대로 선취골을 넣고 팀을 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남은 리그 경기에서도 맹활약하며 2013 K리그 클래식 우승에도 크게 일조했다.
3.1.2 2014 시즌
2014년 전반기 이명주와 더불어 포항을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그리고 이명주는 월드컵 휴지기를 지나고 후반기가 시작하면서 중동으로 50억에 팔려갔다. 그리고 다음 시즌 본인도 포항의 다른 선수들을 지키기 위해 20억에 중국으로 팔려갔다
같은 포지션인 황진성이 계약 만료로 방출되어서 주전자리를 꿰차나 했지만, 김재성이 팀에 복귀하면서 주전경쟁은 계속 될 듯 했다.
그런데 자신의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이명주에게 넘겨주고 원톱으로 올라갔다. 전 시즌에는 가짜 9번(False 9)으로 뛰면서 제로톱의 역할을 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아예 포처로 뛰고 있는 것. 그래서 다들 실험적인 전술이라며 반신반의 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별 기대하지 않았던 김승대의 포처 원톱화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라간 이명주와 원투펀치를 이루면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하게 된다. 경기당 1골에 가까운 득점이고 슛팅당 70%라는 높은 확률로 득점을 성공시켰다. 이명주와 호흡이 환상적이고 김승대 자신도 인자기가 떠오를 만큼 수비 라인을 타는 솜씨며 골 결정력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는 김승대가 라인을 정말 잘 타는 것도 있지만 포항 선수들이 기본적으로 공간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탁월하고 그 와중에 이명주, 손준호, 김태수 등이 패스를 뿌려대니 상대 수비 라인을 학살하며 1:1 찬스를 만들어내는 것.
4월 20일 서울전에서 이명주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김재성과 패스 플레이후 개인 돌파로 서울 수비 6명을 바보로 만드는 환상적인 득점을 보여주며 이명주 없는 시즌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아울러 경기 막바지 보여준 며칠전 엘 클라시코에서 가레스 베일이 보여준치달쇼를 보여주며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경기 시간 87분 30초 부터 보면 감상 할 수 있다
폼이 어찌나 좋았는지 원투펀치에서 한준희, 장지현 두 해설위원이 입을 모아 홍명보호 발탁을 추천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은 이명주조차도 안 뽑은 홍명보가 김승대를 뽑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명주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아시안 게임 승선까지 불투명해지면서, 월드컵 브레이크 동안 중동의 알 아인으로 이적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명주의 킬패스를 받으며 라인 브레이킹을 일삼던 김승대는 이명주 대신 중원을 지키게 된 김재성과 호흡이 맞지 않으며 득점력이 폭망했고, 결국 황선홍 감독은 이런 저런 수를 모두 써보다 결국 이명주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중앙 미드필더 복구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김승대를 중미로 내리고 만다. 이명주가 나간 자리에 카타르에 임대로 보냈던 신진호가 복귀했으면 이명주의 역할을 그대로 맡기면서 김승대의 득점력을 보존할 수도 있었겠지만, 만악의 근원 포항 프런트답게 미적지근하게 신진호와 협상하다 결국 신진호는 카타르의 다른 클럽으로 임대 연장보내 버렸다.
결국 공미와 중미 사이에 어정쩡하게 위치하게 되면서 2014 전반기에 보여주었던 득점력은 하락, 그나마 예전 이명주가 맡던 역할에 서서히 적응해가며 새롭게 김재성, 강수일과 호흡을 맞추며 서서히 전반기의 폼을 회복하는가 했으나. 포지션이 바뀌면서 득점력은 하락. 그리고 손준호와 함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으나, 한 달간 팀을 떠난 동안 포항은 그대로 폭망했다. 본인도 더 이상 득점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막판에는 체력 저하까지 보이며 10골 8어시로 시즌을 종료. 2014 영 플레이어 상을 수상했다. 이명주, 고무열에 이어 3연속 포항 선수들이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나름 선전하긴 했지만 K리그 클래식에서 탑 클래스로 평가를 받던 이명주와의 환상의 콤비가 깨진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3.1.3 2015 시즌
라자르 베셀리노비치, 티아고 알베스 살레스 등을 영입하면서 이명주, 강수일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다시 2선으로 뛸 것으로 예견되었다. 원정 개막전인 수원 삼성과의 경기는 잘 뛰었으나 울산 현대와의 홈 개막전을 앞두고 발가락 부상을 당했다(...) 게다가 그 다음 경기가 FC 서울, 전북 현대를 연속으로 만나야 하는데 서울과의 경기에서도 출전하지 못 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 3월 국가대표 소집에 되지 못함도 서러운데 울산과의 경기가 수비진의 폭망으로 4:2로 대패를 당했다. 그리고 못뛴 게 분했는지 다음 홈경기인 서울경기서 특유의 라인브레이킹을 살려내며 2골을 넣고 팀을 승리로 이끈다.
이후 계속 겉돌면서 제로톱의 파괴력이 약해졌고 포처로써도 약점이 드러나 별 활약을 못했고 그와 동시에 포항의 공격진은 단체로 침체에 빠지면서 팀 성적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하지만 동아시안컵 출전 이후 자신감을 회복했고 경기력도 완벽하게 살아나서 다시 팀 성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시즌 기록은 34경기 8득점 4도움.
3.2 옌볜 푸더
시즌 종료 후 박태하 감독이 이끄는 중국 2부 리그 우승팀이자 2016년 중국 슈퍼 리그로 승격하는 옌볜 푸더로 이적설이 나왔다. 관련 기사 명주도 없고, 승대도 없고 그리고 결국 이적료 20억+@를 포항에 안겨주고 연변으로 이적했다. 포항으로서는 아쉽지만 포스코의 지원금이 또다시 삭감되어 70억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김승대가 안겨준 이적료 덕분에 나머지 FA인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현대판 심청이
다만 옌볜에서는 힘을 별로 쓰지 못하는 모양이다. # 김승대를 보낸 포항 팬들도 김승대를 맞이한 옌볜 팬들도 전부 아쉬워하는 중. 특히 포항 입장에서는 이적료는 감사하지만 김승대의 이탈로 빈공이 심화되었으니... 어쩌면 여름에 다시 국내로 돌아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6월까지는 옌볜에서 선발에서 제외되는 등, 여러 문제점을 보였고, 서포터즈와 지역 언론은 김승대를 교체하라는 여론이 빗발쳤으나, 박태하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용병교체는 없다"며, 김승대는 시간을 더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함인지, 김승대는 7월부터는 어느정도 활약을 하고 있다. 7월 9일 상하이 선화전에서 한골을 터트렸고, 7월 16일, 최용수가 지휘하는 장쑤 쑤닝전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 옌볜이 3:0으로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7월 23일에는 광저우 푸리전에서도 윤빛가람과 함께 대활약, 3-1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서 팀은 3연승, 김승대는 3게임 연속골을 넣었다. 이 세팀은 모두 상위스플릿에 있는 강팀들로서, 옌볜은 10위 밖의 하위권에서 일약 8위 안으로 뛰어 올라 중위권으로 발돋움 했고, 김승대의 위상도 높아졌다.
4 국가대표
같은 클럽이었던 신화용과 마찬가지로 성인 국대 운이 정말 없다.
2014년 전반기 리그에서 이명주와 함께 발군의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일각에서 월드컵 엔트리 승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으나 결국 탈락했다.
2014년 6월 1일 U-23 대표팀과 쿠웨이트의 친선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2:1 승리에 기여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뽑혔다. 당초 발탁이 유력시됐던 손흥민과 이명주 차출이 불발로 끝나면서, 김신욱과 함께 공격진을 이끄는 중책을 짊어지게 되었다.하지만 현실은 김승규, 이재성과 함께 하드캐리...
2014년 9월 5일 U-23 대표팀과 대전 코레일과의 친선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2:0 승리에 기여했다.
2014년 9월 10일 U-23 대표팀과 UAE와 비공개 연습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2:1 승리에 기여했다.
2014년 9월 14일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조별리그 A조 첫 경기 말레이시아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3:0 승리에 기여했다.
이광종호에 발탁된 이래 4경기 연속 득점이라는 미친 존재감을 뽑내고 있다. 일부 설레발언론은 벌써부터 이광종호의 황태자라며 추켜세우는 분위기.
이처럼 김승대가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면서 이광종호는 김신욱의 고공 플레이와 김승대의 라인 깨기라는 두 가지 옵션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9월 17일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조별리그 A조 두 번째 경기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1:0 승리에 기여,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9월 21일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조별리그 A조 마지막 경기 라오스전에서 64분 교체 출전해 89분 골을 기록, 2:0 승리에 기여했다. 이로써 아시안 게임 3경기 연속 득점을 달성했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의 활약으로 인해 슈틸리케 감독에게 낙점받아 10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전 명단에 포함되기에 이른다. 그것도 이동국과 함께 2명밖에 없는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뽑혔다. 단, 파라과이전에서는 조영철이 톱으로 나오고, 교체도 이동국이 투입되면서 국대 데뷔전은 조금 미뤄졌다.그리고 결국 코스타리카전도 출전 못했다
11월 14, 18일 중동 원정 때는 국대에서 제외됐다. 대신 박주영을 불러서 테스트했다.
2015 아시안 컵 대비 제주 전지훈련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동국과 김신욱 전부 부상으로 아시안 컵 출전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원톱 자원으로서 쓸만한 자원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 덕분에 아시안 컵을 통해 국대에 안착하는가 싶었는데...... 부상으로 전지 훈련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어지간히도 국대 운이 없다. 홍명보자선축구에 참여했는데 그 뒤에 오른쪽 엉덩이 근육 손상으로 인해 전지 훈련에서 제외되었다. 그의 대체자는 같은 아시안 게임 멤버인 이종호가 뽑혔다. 그러나 이종호도 결국 최종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2015년 3월에 다시 한번 평가전이 있었다. 이동국과 김신욱이 막 부상을 회복한 시점이라 선발이 유력했으나 또 부상을 당했다. 이번엔 발가락 부상. 이번에는 그 자리를 지동원이 메꾸었다.
2015년 8월 동아시아컵 엔트리에 들었다. 이미 슈틸리케 감독에게 눈도장을 받은 이정협, 이용재에 이어서 대표팀에서 한동안 멀어졌던 김신욱까지 다시 뽑힌지라 공격수로는 뽑히지 못했고 미드필더로 선발되었다.
2015년 8월 2일 중국전에서 선제 득점을 기록했다. 유럽파를 차출하지 못해 기성용이 빠진 상태에서 미드필러 라인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 우려가 많았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뜻밖에도 원톱 이정협 밑에 김승대 이종호 권창훈 이재성 등 드리블러가 아닌 공간 침투와 패스에 능한 선수들을 배치하며 4-5-1과 4-3-3을 자유롭게 오가는 전형을 선보였다. 경기 초반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아 답답한 모습을 보였으나 차츰 이들의 연계가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중국 미드필더들은 속수무책, 글자 그대로 능욕을 당했다.
이 날 김승대가 기록한 첫 번째 골은 이재성의 스루패스도 훌륭했지만 김승대 특유의 절묘한 라인깨기와 득점 감각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이재성의 스루패스가 중국 수비수의 발끝에 살짝 스치면서 김승대가 예상한 위치보다 발 가까이 붙어와서 퍼스트 터치가 나빴지만 당황하지 않고 후속 동작을 가져간 침착함은 A매치 데뷔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
대표팀의 두 번째 골 역시 이재성의 스루패스를 옆으로 밀어주면서 이종호가 골키퍼와 단독 찬스를 만들 수 있도록 해줬다.
5 기타
활동량이 많고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만큼 포항이 제로톱을 가동할 때 가짜 9번 위치에는 무조건 김승대가 뛴다. 2014 시즌에 포처 원톱으로도 효율성이 높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경기 중에도 변칙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안 그래도 공격수 부족에 시달리던 포항으로서는 매력적인 카드가 되었다.
김병수감독에 의하면 고등학교 때 측면에서 뛰었는데 대학교에서 가운데로 이동을 시켰다. 희한하게 측면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가운데에서 프리롤을 주면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순간 스피드가 좋으며 체력도 굉장히 좋아서 지구력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라는 평가를 했다.
영남대 시절 김승대는 골잡이보다는 도움에 능한 선수였다고 한다. 자신이 어떻게든 수비진을 따돌린 다음에 동료들에게 연결하는 능력이 좋았는데 득점은 3학년 때부터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유럽을 노크할 만한 골 결정력과 함께 강수일에게 제발 김승대의 절반만 닮으라고 할 정도다.
- ↑ 2015년 8월 09일 기준
- ↑ 탄탄한 유스를 자랑하는 포항이지만 의외로 로컬 보이는 극소수인데 보통 초등학교에서 잘하는 선수를 포철중에서, 중학교에서 잘하는 선수를 포철고에서 중간 스카웃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김병수 1호기~ ~이명주는 대구,김병수 3호기~~ 손준호는 영덕 출신이다. - ↑ 80년대 이전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구성하는 전술 자체가 빈약했고 90년대 이후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기보다는 피지컬과 발기술로 찍어누르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 ↑ 김승대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해주던 이명주가 2014년 여름에 이적하자 그 뒤로 힘을 못쓴 전례가 있고 2015년에는 전반기에 부진하다가 여름에 신진호가 복귀하면서 패스의 질이 높아지자 김승대도 다시 활약하기 시작했다.
- ↑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황진성이 있었고 스트라이커 자리에는 박성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