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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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맹(文盲)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순우리말로는 까막눈이라고 한다.

2 소개

그 나라의 교육 수준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뒤떨어졌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이 문맹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다는 말도 있다. 교육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문자 등의 해독이고, 공용어를 읽고 쓸 수 있는 교육은 어느 나라든 초등 교육의 핵심이다. 문맹률이 낮을수록 그 나라에는 최소한의 교육을 받은 사람의 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문맹률이 높은 나라는 학교시설과 교사수 등 교육 인프라의 부족, 교육 기회에 있어서 성별, 계층, 지역 등의 차별, 아동 노동이나 조혼 등으로 인해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원래부터 한국의 문맹률이 낮은 수준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문맹률이 얼마였는지 통계조사가 실시되지 않아서[1] 문맹률이 얼마인지 정학히 알수는 없지만 의무교육이 행정력의 미비로 실시되지 않았다는 점[2]과 함께 여자들이 일반적으로 서당이나 향교로 교육받으러가는 일은 없었으며[3] "낫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도 전해져 내려오며, 당시의 기록이나 예로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설화나 민담중에서도 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존재하는 걸 보면, 전반적인 문맹률이 높았으리라고 추측할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의 문맹률은 낮았지만[4] 조선인들의 문맹률은 크게 높았다.

그런 이유는 대다수의 조선인들이 소작농이었던지라 학교를 가지못할 만큼 경제력이 열악했고 학교에 다닐수있는 경제력이 된다해도 자녀 전부를 학교에 내보내는 경우는 좀체 드물었으며 설사 학교에 간다해도 학비가 상당해서 가정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기에[5] 기껏 학교를 다닌다 해도 중퇴하는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는 문맹률이 대체적으로 70%대 후반-80%대 정도에 달했다고 추산된다.[6]

의외로 일제가 가장 악랄한 모습을 보이는 1930년대 후반-40년대 전반기에는 문맹률이 조금씩 낮아지기는 했는데[7] 황국신민화 교육을 통해 군병력 징집을 쉽게 하겠다고(...) 학교를 증설한 영향이 컸다. 물론 좋은 의미로 시행한건 아니다. 어쨌든 1945년 해방 직후의 조선사람(분단 직전)의 문맹률은 78%에 달했으며[8] 이는 동시기 말레이시아(62%: 1947년 기준), 짐바브웨(64% 역시 1947년 기준)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이에 따라 미군정과 각 사회단체에서 문맹퇴치 작업에 열심히 나섰다. 실제 해방 직후 역사책과 국어독본책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하고 각 지역별로 공민학교와 국문강습소가 각 지역별로 속속 들어섰다. 그 결과 해방 3년 뒤인 1948년 문맹률은 광복 직후에 비해 거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졌고(41.3%) 이후 6.25 전쟁으로 문맹퇴치작업이 지지부진해졌다가 전쟁 이후에 다시 문맹퇴치작업이 농한기 농민들과 군입대한 병사들을[9] 대상으로 활발히 진행되면서 1958년 문맹률은 4.1%까지 떨어졌다.

한편, 북한에선 1945년 말에 문맹퇴치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불과 4년만인 1949년에 문맹이 전부 퇴치되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1949년에 문맹이 완전히 퇴치되었다는 주장 자체는 의심이 가지만 남한과 마찬가지로 문맹퇴치가 빨리 이루어진 것 자체는 사실이고,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북한에서 글을 모르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사실, 그 이면에는 공산주의 사상을 인민들에게 전파하고 더 철저하게 세뇌시키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북한 정권은 최소한 문맹 퇴치에는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광복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남이고 북이든 막론하고 문맹 퇴치작업이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어 문맹인 사람이 희귀해졌기때문에 이제는 피부로 와 닿지는 않는 문제긴 하다. 물론 문맹인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보통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일수록 문맹일 확률이 높아지는데(특히 할머님들), 실제로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신 어르신들 중에 가난하거나 배울 시간이 없어서 한글교육을 받지못하다가 이제서야 배우는 이도 있고, 배우기는 했는데 당대의 문맹퇴치 교육이 몇개월 단기과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기에[10] 배우기는 했는데 진도가 안 나간다거나 하는 이유로 까먹은 경우도 존재한다. 또 희귀한 경우이긴 하지만 부모와 학교가 전부 관심이 없어서 중학생인데도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례가 TV에 나온 적이 있다.

한국의 문맹률에 대해 통계청이 공식적으로 잡은 통계는 1966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통계청에서는 문맹률을 약 1% 이내 정도로 보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 그걸 그대로 가져다 썼다. 애초에 OECD에 들어가는 국가 정도 되면 대부분 문맹률은 1% 미만, 높아봐야 5%를 안 넘는 정도다 그러니 교육제도의 보편성과 관련 있는 문제이지, 한글 자체의 속성과도 전혀 상관없는 문제이다.

몇몇 국가에선 의외로 문맹의 비중이 높아서 연예인들 중에도 대본을 읽을 줄 몰라서 녹음한 것을 듣고 외웠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심각한 나라도 있다. 단순 문맹이 아니라 난독증 때문에 대본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톰 크루즈. 혹은 공용언어가 여러 개인 나라인 경우도 있고, 방언의 차이로 인해서 대본을 읽을 수 없는 나라도 있다. 보통은 집이 가난해서 교육을 못 받은 아이일수록 문맹이 되며, 성룡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신생 소련은 문맹 퇴치에 성공하였다. 러시아 제국의 문해율은 24%였다. 1938년 소련의 문해율은 남성 90.8%, 여성 72.5%였다. 1950년대 소련의 문해율은 100%가 되었다.

과거 이탈리아에서는 문맹인 사람들에게는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선거권은 '21세 이상인 남성으로써 글을 아는 자'에게만 부여했기 때문.

3 기타

문맹 퇴치, 즉 문맹이 많은 지역에 글을 가르치는데 큰 공헌을 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유네스코에서 세종대왕 상(King Sejong Prize)를 수여한다. 이 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유네스코가 한글을 높이 평가해서 이런 상을 만들었다는 오해가 있는데, 그런 것과는 관련이 없다. 사실, 세종대왕 상은 1989년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상이다. 유네스코의 세종대왕 상 사이트 그래서 상금도 한국 정부가 출연한 기금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문맹율과는 별개로 국제 연합 개발 계획에서 리포터로 전세계 문해율을 발표하고 있다. 문해는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문맹보다 높은 의미다. 2009년 보고에 따르면 문해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조지아다. 한국은 공동 21위. 다만 이 순위에서 한국을 포함해 중상위권 국가들은 모두 문해율이 99%에서 소수점 단위의 차이만 보이고 있으니 큰 의미는 없다 하겠다.

문서해독률은 단순히 글을 읽는 수준이 아니라 문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문맹률은 '글자'를 읽는 능력이고 문서해독률은 '글'을 읽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OECD에서는 IALS이후 국가간 문서해독률이나 컴퓨터 활용능력, 수리처리 능력 등 성인들의 능력을 측정하고자 하는 사업을 확대해서 PIAAC라는 것을 시작했고 여기에는 한국이 공식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한국은 그 순위가 전체적으로는 중위권, 젊은 세대(16-24세)만 보자면 최상위 그룹에 속한다고 한다.(긴 보고서 다 읽기 귀찮은 사람은 Figure 2.2랑 2.3참조). 다만 세대 격차가 가장 크게 나는 국가들 중 하나이다. [11]

국립국어원에서 08년 발행한국민의 기초 문해력 조사 pdf 자료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문맹률은 1.7% 로 대다수 60~70대였지만, 그 인구를 포함한 전 국민의 7%, 약 260만명의 사람들이 국어 생활에 기초적으로 필요한 문해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고 한다.(p116-117)

일부에서 한글전용이 문서해독률 저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딱히 근거는 없다. 차라리 독서율이 문서해독률과 관련이 더 높을 것이다. 요즘에는 과도한 어법 파괴를 범인으로 본다. 우리는 원래 우리말에는 거의 안 쓰는 피동, 사역형을 남발하거나, 영어를 흉내낸 수동태 문장을 쓰고 틀린 한자어를 함부로 만들어낸다. 이런 조건에 맞춰 글을 작성하면, 그 누가 읽어도 아리송한 문장을 만들 수 있으며 실제 우리 주변에서 그러한 문장을 남발한 서적, 기사, 논문 등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피동형이나 사역형이 외래 언어의 문법임을 생각해보면 얼토당토않는 번역체가 이 문제에 기여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서브컬쳐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속성이다. 당장 이고깽만 하더라도 언어나 문자 장벽으로 고생하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초반에 언어장벽에 부딪히더라도 나중엔 말을 할 수 있을 때 쯤이면 글도 다 깨우치는 경우가 많으니... 코난 더 바바리안 같은 경우처럼 컨셉 자체가 야만인인 경우 빼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글을 못 읽고 못 쓰지만 회화는 가능한 문맹과는 다르게,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지만 회화가 안 되는 케이스도 있다. 일본이나 한국의 영어교육에서 많이 발생하며, 미국인들은 어떻게 더 어려운 문자 쓰고 읽기는 되면서, 쉬운 회화를 못하는지에 대해서 놀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회화에 비교하면 그렇다는 뜻이지 문자 쓰고 읽기도 사실 높은 수준이 아니다. 예로 영어를 읽는 속도의 경우 원어민의 평균 읽기 속도는 한국인의 3배를 넘고, 능숙한 사람은 6배를 넘는다. 그래서 많은 한국사람들이 토익 파트7에서 고생을 하는 것이다.

한편 PC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가 소통을 지배하게 된 현상의 부작용으로 글자를 못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정확히는 글을 몰라서 못 쓰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나머지 손글씨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 중국의 경우 2014년 들어서 글자를 못 쓰는 중국인이 늘어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정확하게는 '손으로 한자를 못 쓰는' 중국인이 늘어난다는 것인데, 컴퓨터 시대에 들어서면서 글자를 자판에서 불러 쓰는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획수가 많은 한자를 손으로 쓰는 능력이 점차 퇴화하는 추세라고. 일본에서도 유토리 세대와 그 이후 세대에서 한자를 손으로 못 쓰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가뜩이나 겸양어 같은 고급 높임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고 지적받는 세대인데 손글씨마저 제대로 쓰지 못해 문제시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특히 젊은 세대에서 손글씨를 제대로 못 쓰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교사가 칠판에 제대로 판서를 하지 못해 지적을 받는가 하면, 아예 글씨 교정 학원에 다니면서 악필 교정을 겸해 손글씨를 다시 배우는 웃지 못할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10여년간 글씨 교정 학원을 운영해 온 전문가는 자판으로 글자를 입력하는 디지털 방식에 익숙해진 부작용으로 손글씨를 쓰는 손의 힘이 제대로 길러지지 못한 것과, 한국 특유의 과도한 교육열로 아이들에게 글씨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에는 소홀한 채 지나친 선행학습을 시키는 교육 풍토가 한 몫을 한다고 지적했다.

1920년대 소련에서는 문맹 퇴치를 위해 키릴 문자이렇게 기묘한 책자(후방주의!)를 통해 교육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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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2013-2016 에 소개된 한국부터 각국의 문해 점수평가이다.
한국보다 떨어지는 나라들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하지 않으며, 문제가 되지않는다.

3.1 세계의 문해율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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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설명
파랑문해율이 매우 높음 (97% 이상)
초록문해율이 높음 (90~97%)
연두문해율이 다소 높음 (80~90%)
노랑문해율이 보통임 (70~80%)
주황문해율이 다소 낮음 (60~70%)
빨강문해율이 낮음 (50~60%)
암적문해율이 매우 낮음 (35~50%)
검정문해율이 극히 낮음 (35% 이하)
회색자료가 부족하여 알 수 없음

4 문맹인 인물

4.1 실제

생존 당시 문자가 없던 사회속에 있던 인물과 전근대사회에서 굳이 글 쓸일이 없었던 서민들, 또는 평민출신으로 출세한 자들은 제외.

  • 동탁 : 평소에 그에게 은혜를 입은 어떤 노인이 아예 대놓고 동탁이 죽는다는 글귀를 써붙여 놓았는데도 문맹이라서 그걸 읽지 못해 죽었다. 옆의 부하[12]에게 물어봤지만 그 역시 동탁 암살계획의 인물이라 거짓으로 둘러댔다.
  • 무함마드
  • 석륵
  • 성룡 : 뜨기 전까지만... 실제로 대본을 못 읽어 동료들이 대본을 읽어주면 그것을 외워 연기를 했으며, 지금의 부인도 대본을 읽어주다가 맺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스타가 되고 나서는 문맹에서 벗어났다.
  • 왕평
  • 이디 아민
  • 잔 다르크
  • 칭기즈 칸 : 다만 그 당시 몽골지방에서는 글을 쓸수 있는 사람이 한족이나 거란족, 여진족에 비해서 상당히 적었다. [13] 몽골의 역사서인 원조비사도 구전으로 전해지던걸 중원에 입성한 뒤에야 위구르 문자로 썼다. 그리고 몽골어 항목에서 나와 있듯이, 다른 언어에 비해서 독자적인 문자가 느리게 나왔고, 그마저도 소련의 영향으로 인해 현대에선 키릴 문자로 표현한다.[14]
  • 카롤루스 대제
  • 티무르

4.2 가상의 인물

문자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한 작품에 출연하는 인물은 제외.

5 관련 링크

  1. 인구조사를 실시하기는 했지만, 위낙에 군역이나 세금을 내는걸 회피하려고 인구조사를 일부러 안 받으려 하는 가정이 많았던 때라서, 인구조사도 정례적으로 시행되기는 했지만 철저하게 시행된 거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했기에 문맹조사도 제대로 이루워지기는 힘들었던 것.
  2. 의무교육을 시행하자는 의견은 있었지만 너무 많았기에 실제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의무교육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1년에 적어도 수십만권의 교과서를 정부 주도로 찍어내야되는데 당시에는 세율이 상당히 낮아서 사초에 쓰인 종이도 빨아서 재활용했을 정도로 재정에 여유가 없었으며, 교통사정도 별로 좋지 않아 도로가 잘 닦여있지않았을뿐더러 기차나 트럭 같은 건 있을리가 없고 당시에 초고속 이동수단(?)이었던 이나 마차는 공무용 정도로나 쓰일정도로 비싼 물품이었기 때문에 그 만큼의 물품을 옮길려면 품이 많이 들었다
  3. 물론 여성을 위한 서당이 아예 없었던건 아니었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4. 일본내에서 의무교육제도가 1885년부터 도입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조선으로 오는 일본인들 대다수는 기본적으로 가나문자와 한자 수백자 정도는 쓸 줄 아는 게 다반사였고, 거기에다가 일본의 조선 침탈이 가속화되었던 1909년에 조선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적용되었고, 조선 내에서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특권층에 속해 있었기에 문맹률이 낮을래야 낮을수가 없었다.
  5. 공립학교에 간다 해도 학비의 상당부분을 학부모가 부담해야했다.
  6. 1910년대부터 20년대까지의 문맹률 조사는 대개 일본어 문맹을 기준으로 조사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흔히 일제초기 조사에서 문맹률이 99%였다고 나오는 자료들이 일본어 문맹을 기준으로 삼은것이다.) 신뢰도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물론 한글 기준으로 문맹률을 계산한 결과도 거의 80%에 달했고 더군다나 기껏 한글을 배워도 당대에 출간되었던 출간물 중에서 대다수(특히 신문)가 한자를 섞어쓰거나 일본에서 수입한 일본어 서적이었기 때문에 반문맹이나 다름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7. 물론 성인층은 여전히 매우 높았다.
  8. 이는 다른 식민지배를 당했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라서 베트남에서의 문맹률은 1945년에 80% 후반에 달했으며, 프랑스에게 지배당했던 알제리도 자원배분을 피에누아르와 친프파에게만 배분하는 바람에 대다수 아랍인들이 학교에 갈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인구가 문맹이었으며 인도 제국도 인구의 80% 이상이 문맹이었다. 물론 예외가 없었던건 아니지만 당시에는 드물었다.
  9. 그래서 군대에 다녀오면 사람이 된다는 말이 생겨났던것이다. 군대에 다녀오면 최소한 글자와 숫자는 읽고 쓸 줄은 알게 되고, 여러가지 유용한 기술들을 익혀둘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똥X기 같은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온 악습도 같이 전해져 내려온다는 것도 문제이기는 했다만
  10. 사실 당연한 일인 게, 성인들도 일을 해도 겨우 먹고사는 수준이었는데 더군다나 학교로 보낸다 해도 학생 수가 매년 폭증했기에 학교 자체가 터져나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발상일 리가 없다. 그래서 농한기나 일요일, 혹은 근무시간이 끝난 뒤에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11. 참고: 한글은 쉬운데 중장년 ‘실질 문맹’은 왜 많나?
  12. 연의에서는 이숙(李肅)
  13. 허영만 화백의 만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에서 몽골의 각 부족들은 문서를 교환하는게 아니라 사신이 직접 전달사항을 외워서 구전으로 전달하는걸로 묘사됐다.
  14. 다만 내몽골에서는 여전히 몽골문자로 표기한다.
  15. 비스킷이 문맹이 아니란 설정이 있었기에 기술. 2화에서는 주인공 미카즈키 오거스가 콘솔 화면에 뜬 건담 발바토스의 영문 스펠링을 보고는 "이거 뭐라고 읽어?"라는 말을 한다.
  16. 진리의 세계에 접하는 것이 무엇보다 고귀하다고 여기는 종족. 이들은 문자라는 전달 수단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힘이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진리의 종족의 수장격인 네스타는 언젠가 자신들에게 해악이 될 것이며, 거짓조차 전달하는 문자의 만연, 그 끝에 있는 것은 존엄을 잃은 인간의 가엾은 미래라며, 문자의 폐지를 주장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문자의 종족의 전사인 키류가 처형 직전 남긴 편지의 내용을 읽지 못했고, 편지를 건내주었던 병사의 왜곡된 진실을 곶이곧대로 받아들여버린다. 이는 현실세계와 진리의 세계, 양 측 사이에 '로고스 월드'라는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