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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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국과 민족에 충성한다.

우리는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
우리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자랑스런 노도부대 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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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태동의 근원을 나타내는 생성원리
一心, 시작과 끝이없는 무궁한 발전과 생동하는 부대 상징
4개 원조국을 짊어지고 나가는 수레바퀴
외부청색원견고한 단결을 바탕으로 애국정신 함양, 조국수호
백색원붕대 자유, 평화, 정의를 사랑하는 백의민족
내부청색원 청년의 기백과 용사의 기상을 바탕으로 한 성난 파도
적색원 태양처럼 뜨거운 노도용사의 정열과 애국충정

1 개요

반디캠

대한민국 국군 제2보병사단. 일명 노도부대. 질풍노도부대 부대 のど부대

경례구호는 1997년까지 '단결' 이었는데 이후 '충성'으로 바뀌었다. 또 '노도의 얼'이라는 구호가 있다. 간부 혹은 분대장이 '노도의 얼'을 선창하면 항목 최상단의 문구를 후창한다.

신병교육대에서 배우지만 자대로 가면 부대에 따라서는 해당 부대의 자체구호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듯? (2000년 이전에 경례구호는 '단결' 이었고 지휘자급 상관이 지나가면 한 명이 "단결, 연대장님 화이팅" 을 외치고 나머지 장병들이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엄지손가락을 높이들어 3번 제창했다.)

주둔지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래도 양구보단 나으리로 유명한 인제, 양구에 걸쳐 있다.

1947년 12월 1일, 조선국방경비대 제2여단을 모체로 제2연대, 제3연대, 제4연대를 기간으로 대전에서 창설되어 1948년 여순반란 사건 진압에 투입되었으며 1949년 5월 12일 2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여순사건 진압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기세가 성난 파도와 같다고 하여 노도부대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1950년 7월 25일 대구지구 방어사령부에 편입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제5연대, 제16연대, 제26연대로 제7보병사단과 함께 의정부 전선에 투입되었으나 예하부대가 서울에 도착하는 즉시, 건제에 상관없이 전방으로 축차투입되어 이게 다 채병덕 때문이다 궤멸[1], 7월 24일 결국 사단을 해체한다. 서울 수복 후 11월 17일에 서울 성동공업중학교에서 재편성되었다.

51년 5월 16일 파로호 전투, 9월 1일 김화지구전투 등에 투입되고, 52년 10월 14일 김화지구와 저격 능선에 투입되었다. 1953년도에 제1야전군에 배속되었고, 1959년 8월 28일에 양구 지역으로 이동한 이래 50년 넘게 주둔하며 양구나라를 먹여살리고 있다. 현재는 제3군단 예하에 있으며, 1968년 11월 울진ㆍ삼척지구 대침투작전, 1996년 9월 강릉 대침투작전 등 10여 차례 이상 대간첩작전을 수행하였다.

1968년 1월 23일에 육군 사단 특성화 계획에 따라 3개의 특수사단을 지정했는데, 그중 2보병사단을[2] 산악지형이 많은 곳에 주둔한 특성 덕에 미 육군 제10산악사단을 벤치마킹하여 산악사단으로 잠시 전환된 과거가 있으나 다시 보병사단으로 복귀하였다.

메이커 사단중 수도사단, 8사단과 함께 전방 철책 근무를 하지 않는 사단이다.[3] 철책 근무 없으니 좋은거잖아 만세!! 음?! 철책 근무설 시간에 뭐할까3군단 예하 예비사단으로 산악전과 대침투작전에 특화되어 있으며, 있는 훈련은 모조리 하고 없는 훈련은 만들어서 한다. 북한이 무슨 도발을 했다! 아니면 누군가 '강한 군대' 드립을 쳤다! 하면 최소 3박 4일 정도의 훈련을 각오하면 된다. 전 육군 보병 사단 중 가장 많은 훈련을 행하는 보병 사단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군생활 중 훈련 일수를 계산해보면 대략 15일에 한 번 꼴로 훈련이 있다. 보병 사단에서 가장 빡센 부대중 하나다 [4] 특히 산악 행군과 산악 구보의 진수를 맛볼수 있다.혹한기 훈련을 뛰어 보면 제대후 한동안은 웬만한 추위에 끄덕 없게 된다. (한 중대는 21사단의 작전지 중 한곳인 대X산으로 훈련중에 이동했는데 전자 온도계에서 영하 39도가 나와서 온도계가 고장난줄 알았다고) 21사단이 조금 더 춥지만 어차피 둘다 양구에 주둔한건 마찬가지...2사단 병력은 21사보고 더 춥고 험한데서 GOP경계한다고 짠하게 여기고 21사단 병력은 2사단 병력보고 훈련많고 많이 구른다고 불쌍히 여긴다..이렇게 두부대는 양구에서 하나.. 훈련이 힘들고 자주 있는 만큼 전투력 또한 매우 높은 정예 사단이다. 군대에서 예비라는 말이 좋은 말이 아니다. 참고로 예전 팀스피리트 훈련 최다 참가 부대.[5] 군생활 중 삽보다 총을 더 많이 들었다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는 부대 중 하나. 자랑은 자랑인데 왜 눈에서 무언가 흘러나오는 걸까?

참고로 민간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부대이기도 하다. 사실 간부가 아닌 의무복무자들은 군대를 나왔음에도 잘 알지 못하기도 하는 부대. 하지만 상대적으로 간부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엘리트코스 부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별따는 코스 중 하나라고. 그 덕분에 후에 장군이 되는 사람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특전사에서 복무하던 간부들이 꽤나 많이 거쳐가기도 한다. 어느 예하부대 이등병이 취사장 선임하사(?!)의 가슴에 달린 박쥐 뱃지에 노란 별이 세개가 달려있어서 멋있다고만 생각했더니 그 의미를 알게되고나서 흠좀무 했다는..[6]덕분에 병사들은 별의 별 고생을 다 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예비군 훈련을 가보면 별로 안보인다. (이건 뭐 그림자 부대도 아니고) 여튼 그렇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면서 역사가 길고 빡센부대.

2 환경

도로망이 정비되지 않았던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102보충대에서 2사단으로 배치를 받으면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양구선박중대에서 관할하는 LST라는 이상하게 생긴 군용수송선(납작한 거북이처럼 생겼다.탑승하고 군화를 벗는다.침몰에 대비해서(...) )를 타고 소양강을 질러 양구선착장으로 이동 후 트럭을 타고 사단 신병교육대로 이동하였다. (04년도부터 1군지사로 배속) 현재는 102보에서 버스로 46번 국도를 타고 신교대까지 다이렉트로 이동한다. (겨울에는 소양호 결빙문제로 구46번 국도로 이동했음)예나 지금이나 장정들은 이동수단 내에선 태반이 잠을 잔다. 01년도에 배치받았던 한 위키러의 증언으로는 그 당시 논산에서 102보 가는 열차나 양구에서 소양강 건너는 배에서 잠을 잤다간 호송병들의 불호령이 떨어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보통 홍천을 거쳐서 가게 되는데[7], 양구에 접어 드는 순간 (그것도 양구 남쪽인 남면) 갑자기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듯한 도로와 지형으로 '아 이제 양구에 들어섰구나' 하고 느낄수 있다. 이런 이유로 예전에는 102보충대에서 입대 장병들을 각 부대 신병 교육대로 보낼때 21사단 배속 장병과 함께 가장 마지막에 출발했다. 기간병들에게 절대 21사단나 2사단으로는 가지말라는 말을 들을수도 있었는데, 배치 부대를 통보 받고 나서 한번 좌절해 있는데 거기에 가장 마지막에 출발하면 왠지 모를 으스스함을 느낄수 있다. 도대체 어디에 부대가 있길래? 무서워

사단사령부 및 직할부대 등 소속부대 대부분이 양구에 주둔하고 있으나, 1개 연대는 인제, 포병연대는 예하 1개대대를 제외하고 모두 원통과 그 이북에 위치하고 있다. 양구지역의 전방경계를 담당하는 21사단, 인제지역의 전방경계를 담당하는 12사단과 함께 3군단을 구성한다.

포병연대는 2사단 해체후 연대 자체가 군단직할 포병여단로 재배치 된다는 얘기가 있었기 때문에 막사 신축계획이 전무했으나, 2012년 9월 기준으로 1개 대대와 연대 본부를 제외한 3개 대대가 신막사 사용 중에 있다. 연대 본부는 땅이 좁아서 신막사를 못 짓는다는 말이 있고 남은 1개 대대는 가 보면 도저히 신막사를 지을 엄두가 안나는 흠좀무한 고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라고 카더라[8][9]

후방 부대보다는 신형 보급물자가 빠르게 적용되는 편이다. 하지만 전방 GP, GOP 운영사단보다는 약간 느린 편이다. 전군이 엑스반도 차던 시절 전투 조끼는 01년에 보급되었으며, 신형헬멧은 약간 늦게 11년 이후 보급되었다. 그러나 일반 보병중대의 대전차 공용화기인 판저파우스트 3 의 보급은 동 시기에 이루어진 듯 하다.

3 중대급 KCTC 부대

01년~03년까지 2사단 예하 대대가 중대급 KCTC 대항군 부대 역할을 수행하였다. 즉, 현재 수행하고 있는 KCTC 전갈부대의 원조격인 셈. 이 대항군 임무로 인하여 3대대는 4개 중대 중 2개중대(및 본부중대의 지원)는 KCTC 훈련장에 나가 있고, 나머지 절반의 부대로 부대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덕분에 불침번도 절반(…), 각종 초계 임무도 절반의 병력으로 수행하여야 했다(물론 이는 대항군 훈련장에 나가있는 인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신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연간 훈련에서는 모두 제외되었으나(유격은 제외되었으나 혹한기는 뛰었다.), 대대 인원 절반으로 대대 임무와 대항군 역할을 모두 수행하였던 만큼, 대대원들은 말이 안나오게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 당연하지만 일정기간 대항군 훈련을 하고, 나머지 인원들과 교체하여 영내 거주하던 병력들이 대항군 훈련을 했으며, 훈련장에서 훈련 없을 때 대항군들은 삽을 들고 각종 작업을 병행하여야 했으니 그 고초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미 이 당시 KCTC 훈련에서 대항군의 전투 능력은 현재의 KCTC 전갈부대의 전투 능력만큼이나 타부대를 압도하는데, 이는 KCTC 훈련을 하러 오는 부대에 비해 대항군이 지형적으로나 훈련 횟수로나, 경험으로나 당연히 앞설 수밖에 없기 때문.

03년에 이르러 대항군 임무가 종료되고 기존 보병대대 편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전적은 2년간 무패를 기록했다고.

그리고 전군 최초로 포병이 KCTC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 사단 인원들이 마르고 닳도록 중대 마일즈, 소대 마일즈까지 아주 마일즈 장비는 도가 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똥군기도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훈련이 많아서 들어오면 빨리 자야하기 때문에 갈구거나 할 틈 새가 없다. 갈굼의 주요 골자는 "빨리 정리하고 자자" 이정도. 이것은 사단 전체의 분위기가 대체로 비슷했는데, 병장이라고 풀어지는게 아니라 병장 진급 하고 나서 더 힘들어지고 골아파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예를들어 오늘 중대전술 나갔다 왔으면 야밤에 전반야, 후반야 해야되고 내일 오전 과업이 주특기이고 오후는 진지 보수이고 그 담날은 사격.

뭐 이런식의 일과였다.

4 유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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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단 유격장은 소양강 상류에 위치하며 상수도 보호구역이므로 샴푸의 사용을 금지한다. 지금은 샤워장이 마련되어있어 상관은 없다. 단지 샤워장에 물이 나오질 않아서 그러지 그러나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유격장에 들어서면 야영지가 점점 산위로 올라가고 도대체 어디서 훈련을 받는 지 알수 없을 정도로 산 곳곳에 유격 훈련장들이 숨겨져 있는데, 도대체 이런 산중에 어떻게 훈련장을 만들었는지 처음 가면 새슴스레궁금하면서도 섬뜩한 기분이 든다. 참고로 예전에 삼청 교육대 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격장은 산의 계곡사이에 있으며 연병장에서 대략 30~50분간 PT체조로 몸을 굴리고 오전조, 오후조로 나눠서 계곡 곳곳에 있는 유격 코스를 차근차근 밟으면 된다. 각 유격 훈련장들이 산속에 곳곳이 숨겨져 있으므로 이동간에 간단한 오리 걸음만 시켜도 아주 강도높은 얼차려가 된다. 역시 유격엔 수통조가 최고다. 유격훈련 5일동안 맑은 산공기속에서 유격훈련을 배우면 된다. 이 곳에서 훈련의 백미는 부실한 안정망을 믿고 상당히 높은 절벽 사이에 설치된 도하선을 건너는 도하 훈련과 마지막 날 화생방훈련이다. 예전에는 11미터 수직 하강과 수평 하강 훈련을 했었다. 하강 훈련전에 입수해서 사고나지 않도록 물에 적응을 시키는데 한여름인데도 피티체조로 이미 헐떡거리는 몸에다가 강원도 산골짜기의 차가운 계곡물이라서 조교들이 잠수를 시키면 10초도 못버티고 꼬로록 소리내며 물 밖으로 머리 내밀려고 바둥거리곤 했었다. 수직 하강의 경우 조교의 외침에 따라서 잡고 있는 줄을 놓고 물속으로 입수하는 방식인데 스스로 잡고 있는 줄을 놓는 그 기분이 심히 골룸했다. 줄놓는게 무서워서 조교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도 끝내 입수하지 못해서 되돌아나와 다시 물먹고 피티 체조 복습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끝나면 차타고 가는게 아니라 대략 50Km정도 복귀 행군을 한다. 전투 부대는 다음 날 한번 더해서 100킬로 한다. 기본적으론 무박 2일 100킬로 행군이다 올때도 마찬가지. 그래서 보통 일요일에 행군해서 도착해서 텐트치고 숙영한다. 특히 31연대의 경우 유격장까지 가는 행군과 주둔지 복귀 행군이 매우 힘들다. 유격장으로 가는 행군의 하이라이트는 대공진지를 넘어가는 코스. 어느 순간 자면서 걷고 있는 자기 자신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웬만한 이등병들과 81미리 박격포 탄약수들은 거진다 낙오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끌고 들어서라고 끌고 간다. 나중에 애로사항 꽃피지 않으려면 평소에 체력을 길러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복귀 행군은 한참을 아스팔트를 걷는 강행군이며 이때 병사들은 좀비같은 상태로 그저 걸어야 하니까 정줄놓고 걷는 기계가 된것처럼 걷는다.
그리고 복귀후엔 평균적으로 3~6킬로그램이 빠진다.

유격의 꽃인 PT체조를 굴리는 연병장에는 '하면 된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상당히 기괴하다.

숙영지의 위치가 무척이나 괴랄하다. 지옥의 경사도를 자랑하는 타이어계단을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타이어 계단은 애교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무릎 높이만한 100정도의 돌계단을 올라가야되는 곳도 있다. 연도에 따라 중대규모로 숙영지 로테이션을 돌리는데, 운 없으면 최상층에서 D형 텐트를 쳐야한다. 식당으로 밥먹으러 내려가기 싫을 정도로 높다. 말 그대로 훈련이나 숙영 자체가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고 보면 된다. 맨 윗쪽에 텐트를 치게 된 중대는 대대 피엑스와 취사장이 아래에 설치되므로 물건을 사거나 밥을 타러갈때 등산을 한번 한다고 보면 된다.

인제군 원통 이북의 포병연대 병력은 유격훈련을 2사단 유격장인 아닌 12사단 유격장에서 받는다.만약 2사단 유격장으로 행군해서 간다면 가다가 전원 퍼진다 광치령을 걸어서 넘으라니, 지휘관이 미친게 틀림 없어요! 인제에 주둔한 쌍호 연대의 경우에는 인제에서 양구 2사단 유격장까지 광치령을 넘어 걸어 간다. 뭣이라?!

양구 최전방에 위치한 1개 포병대대는 유격훈련을 21사단 유격장에서 받는다.

5 사단가

금수강산 수도에서 한뜻에 뭉쳐
조국의 통일위해 노도와 같이
원수의 괴뢰군을 쳐무찌르니
장하다 그의 이름 2사단 용사 앗!

앗! 하는 부분은 보통 사단장급 지휘관이 오지않는 이상 사단가를 부를때 보통 하지않는다 예를들면 구보라든지

들어보기.

훈련소를 마치며 합창한다. 이때 힘차게 팔을 흔들며 부르는데, ( ゚∀゚)o彡゜ERIN!ERIN! 진짜로 똑같은 동작이다! 훈련병 시점에서 봐도 한 기수 전원이 동작을 맞추며 우렁차게 부르는건 굉장히 멋있다. 자대에 배치받고도 보통은 잘 부르지 않아 거의 까먹는 경우가 많지만 종종 부른다. 구보간 인솔자가 뜀걸음간/구보한다/군가는/사단가!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 외 중대단위 소대단위로 부대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10대 군가가 아닌 사가들이 존재했다. 일명 중대가 및 소대가. 최근에는 거의 부르지 않아 사실상 소멸 상태이다.

산악가(31연대 사가)


멸공의 산악에서 깃을 드높힌

우리들은 용감한 노도 용사들

(중략)

오늘도 노도와 같이 적군을 삼켜.

아아악! 산악의 노도부대

우리는 산악 사단 무적의 왕자!


사가를 부를때는 멜로디는 없고 리듬을 타면서 악을 쓰며 부른다.
10대군가도 멜로디는 뺀채 악을 쓰면서 (리듬만으로) 부르는 전통이 있으며, 실로 그 패기가 대단하다. 02년경 군가 제대로 부를것이라는 시정명령
이 있었으나 무시하고 계속 그렇게 불렀었다. (최근은 모름)

6 예하부대

  • 육군 연대급 이하 부대는 고유명칭(예 ; 육군 제 1보병연대)을 사용할 수 없고, 반드시 통상명칭(예 ; 육군 제3260부대)이나 애칭(예 : 한라산 부대)을 사용해야 합니다. 또 주둔지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 또한 작성할 수 없습니다. 내용 작성에 주의해 주세요.

6.1 쌍호연대

국경경비대 시절부터 존재했던 연대로, 2사단 내에서 가장 역사가 길다. 본래는 백인엽[10]장군의 지휘 하에 육직부대로 옹진반도를 수비하던 독립 연대(당시 육군본부 직할부대)였으나, 개전 이후 복잡해진 전선 상황에 따라 지연전을 벌이며 후퇴했다. 이때 화령장 전투에서 높은 전공을 세운다. 그 이후 낙동강 전선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육군 유일의 예비 독립연대[11]로 활용되었으며, 그때문에 인천상륙작전에 육군 유일의 작전 참가부대로써 작전에 참여했다. 그 후에 수도까지 탈환한다. 한국전쟁 당시의 가장 높은 전공인 인천상륙작전, 화령장전투, 수도탈환은 각각 편제된 보병대대의 이명으로 사용 중에 있다. 전후에는 주로 대간첩 작전에 투입되어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현재는 예비사단의 예비대로, 인제에 주둔하여 인제 방면의 수비를 맡고 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연대로써 자부심이 강하다. 자부심이 강한 만큼 상당히 힘들다. 훈련도 내무 생활도 전통은 개나발 폭행과 부조리와 사고의 역사만 가득하다

사단을 구성하는 주요 보병연대와는 다르게 쌍호연대는 수색중대를 제외한[12] 모든 대대가 연대본부와 그 직할대와 같은 주둔지로 묶여있다. 어지간한 지방의 대학교 캠퍼스 크기의 주둔지를 갖고 있다. 재미있게도 모든 중요 시설은 양구에 있는데[13], 쌍호연대만 단독으로 인제에 있다보니 그 어떤 훈련을 참가해도 행군 거리가 격이 다르다.[14] 지금이야 강원도의 도로 사정이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양구로 가는 길 조차 변변치 않았다. 70년대까지 쌍호연대에 자대배치를 받는 병사는 양구의 사단 본부에서 군용 보트를 타고 소양강을 줄기를 따라 연대로 왔다고 한다.

후반기 교육까지 다 마치고 와도 자대로 전입하지 않고, 다시 쌍호교육대(군기교육대 겸용)로 들어가 1주일 정도 교육을 받았었다. 90년대 중반에는 연대 전통과 정신 불어넣기, 태권도 교육을 주로 받지만. 유격 기초훈련과 유사해 매우 힘들었던 과정이다. 2000년대 말엽에는 이등병의 적응을 위한 집체교육 정도로 프로그램이 완화되었고, 2010년에는 없어졌다. 그 후 2012년 연대 신병 집체교육이 다시 새로 생긴뒤 유지중이다.

주둔지 상태는 화령장대대를 제외하고는 신막사를 사용중[15]이다. 지형적인 특징으로, 연대 바로 앞을 지나가는 내린천의 존재로 인해 여름엔 달궈진 내린천의 후끈한 공기가 주변 고지들에 막혀 못 빠져나가면서 연대를 삶아버린다. 겨울엔? 연대 자체가 고지대에 위치한데다가 산 중턱이라 끝장나게 춥다. 진짜 오지게 춥다. 추운 것도 추운 거지만, 주 초소 근처의 풍속 또한 굉장히 빠르니, 죽을 맛이 따로 없다.[16]

특징으로는 각 대대가 "미래 과학화 전투부대" 를 돌아가면서 맡는다는 것인데, 국군 보병대의 발전을 위해 개발되는 신 편제[17], 신식 교리나 무기체계를 시험하는 시험부대이다.정작 그러면서 신형 장구류 보급은 요원하다[18] XX년도엔 화령장대대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XK11의 시험운용부대였으며, 매일매일 KCTC 부대 수준의 마일즈 장비 착용 하 실전적 훈련을 시행하는 전투적 부대였다. 예를 들자면, 오전에 기상하여 밥먹고 바로 출동, 점심을 밖에서 먹고, 저녁도 밖에서 먹고, 야간전투를 한 뒤 다음날 오전을 부대에서 먹고(…) 근무취침을 하는 일과를 행하곤 했다. 그후 여단급 실험을 실시한후론..코렁탕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5년 전반기 마일즈 육군 최우수 중대로 쌍호연대 11중대가 뽑혔다! 2, 3, 5, 27사단의 각 대표 중대가 참여한 육군최강중대 선발대회에서 4강 3사단, 결승 27사단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 것. 그 후 해당 인원들은 전부 17일에 해당하는 포상휴가를 받았으며, 해당 대대는 출타율을 조정해가며 한동안 휴식여건 보장이 확실히 되었다. #

또한 부조리가 꽤 심한 연대다. 제 2 보병사단 내에서는 따로 분리되어 있는 포병대를 제외한다면 사단 내에서 사단 본부-연대 간 거리가 제일 멀어서 연대장이 사단장급의 권력을 가지는지라 사단 본부대의 명령따위 씹어버려도 알 방도가 없어 연대 자체적인 전통이니 뭐니 하는 것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헌병대가 즉각 출동하기 어려워 헌병 파견대라 하여 분견대가 연대 내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부조리는 보통 "전통" 을 내세워 합리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연대는 워낙 오래된지라 각종 부조리가 성행했었다.

이 부조리에 대해서는 상당히 굵직한 일이 많았다. 09년도엔 화령장대대에서 초소 성군기 위반으로, 헌병과 경찰이 동시에 부대 내에서 수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으며, 11년도까지 폭행이 잔존했고, 같은 해 사단검열 당시 사단 감찰부가 실시한 마음의 편지 수거 후 모 중대가 거의 해체 수준으로 갈려나갔다. 조사에 따르면 간부에 의한 내리갈굼 지시가 있었다고 하며, 어느 중대는 깔깔이를 못 입게 하는 부조리도 있었다고 한다. 계속해서 14년 이후에도 부조리 문제가 여전히 발생했다. 임병장 사태후 매 설문때 마다 피바람이 불었다..

연대 입구 바로 안쪽 로터리에는 쌍호 상이 있고 그 아래에는 연대가가 적혀있다. 11년까지는 확실히 민간인에게 개방한 px로 가는 길에 있으니 감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쌍호상의 성기를 만지면 무사전역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악명높은 삼청교육대의 교육장이 여기다. ㅎㄷㄷ

2사단에서 자대배치 받을 때 조교들이 칠연대, 꽃필연대라고 가르쳐주지만 사실 조교들도 자기 부대 빼고는 제대로 알리가 없으므로 쫄지 말자 하지만 여기연대는 긴장하는 것을 권장한다. 이정도로 사단내의 다른 연대들에 비해서 유독 악명이 높은 부대다. 민간사회에서도 유명한지 부대의 멸칭이자 악명인 좆칠연대를 포털에 검색하면 검색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수색중대의 경우 연대에 분리되어있으나, 2012년도 연대본부 신막사가 지어지면서 연대로 넘어오게 되었다.

6.2 백호연대

부대 예명은 백호부대. 1대대는 신병교육을 담당하며, 2대대(승공)와 3대대(통일), 의무, 수색중대는 하나의 울타리안에 있다. 1대대와 2대대는 신막사이며 3대대는 현재 구막사이나, 수색대대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수색대대 막사가 개수되는 바람에 시궁창. 3대대도 신막사로 개수를 검토중인데 차일피일 미루고있는 중이다.(하지만 00년 초~00중반까지 3대대가 단일건물 즉 아파트 식의 신막사였고 1대대와 2대대는 완전 예전 구형 막사였다. 나무 관물대에 침상마루)
여름이되면 3대대는 물부족에 시달린다. 또한 물탱크가 뒷산중턱쯤에 있기 때문에 보일러병이 여름만되면 땀을 뻘뻘흘리며 물탱크에 있는 물을 확인하러 가러 올라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 글을 읽는 백호연대 2대대, 수색, 의무중대 장병이 있다면 여름에 물을 아껴쓰자. 신병교육대대가 실거리 사격을 할 일이 있으면 나머지대대 장병들은 도보로 1시간 거리에 있는 1대대 실거리 사격장까지 멀쩡한 인도를 두고 산을 넘어서 가야한다. 배차신청을 해도 안내준다

부대가 한 울타리를 치고 사는데, 연대는 부대가 커지면서 주변 땅을 잡아먹은지라 군부대 안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위병소 출입 및 보안 문제로 항상 주민과 위병소 근무자들간의 마찰이 잦다. 근무체계가 바뀌어 담당하던 전문팀이 빠지고 다른 팀이 해당 근무를 맡으면서 아예 관리가 안되던 시절도 있었다.
부대 입구에서 올라가는 중간에 교회가 있으며 백호연대 전 인원과 길 건너의 수색대대,화학지원대 장병들을 수용한다. 이는 성당과 법당도 마찬가지로, 백호연대와 길 건너 수색대대, 화학지원대 장병들을 수용한다.[19]

참고로 예하 부대인 수색중대의 경우
2 대대 -> 본부 -> (수색) -> 3대대로 독립적으로 따로 막사를 운용하던 중대 였으나 (2006년까지) 이후 신막사 건립등의 이유로 타 부대와 같은 막사를 쓰게 되었다.

훈련이 미치도록 많은 연대. 특히 2대대의 경우 00년 초 당시 위관급 장교로는 건국이래 최초로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은 김승겸 중령이 대대장으로 부임하여 사단 전체에서 악명높은 빡셈을 자랑했다. 일주일 내내 교육훈련에 수요일마다 분대단위 사격(사로내에서 빵야빵야가 아니다. 사로위에 도열하여 총 내리고 있다가 분대장 구령에 맟추어 3점사로 북한군 타겟을 개발살내는 그런 사격이다. k3 사수도 사로위에 서서 연사로 갈겼다) 훈련마치고 주둔지 복귀하면 다음 훈련 준비하는 그런 대대였다. 후에 김승겸 중령은 대령진급 후 1사단 연대장으로 부임하였고, 이후 장성 진급 후 28사단장으로 부임하셨다고 한다.(사고많은 부대에 해결사로 가신게 아닌가 한다.)
백호연대는 사단 예비라는 소문이 있었는데[20],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단 주력이라 여겨지던 쌍호연대가 있음에도 주구장창 훈련에 불려나갔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은 사단 전체에 계속되고 있다. 일주일 단위의 훈련은 물론 2주 이상의 대규모 합동 훈련에도 자주 나갔는데 어느 한 군번은 군 생활 동안 이러한 대규모 연합 합동 훈련을 세 차례 에다가 RCT[21]를 2차례, 유격을 3차례(....)[22]나 받았다고 한다.(여기에 일반 교육 훈련, 종합 전술 훈련, 주특기 교육에 각종 전투력 측정까지 포함하면...거기에 혹한기, 호국 훈련 같은 것은 당연히 하는 훈련이다) 게다가 96년 강릉 대침투 작전 당시 2개월 넘게 X성산 - X대산 - X로봉 등으로 돌아다녔다[23]. 실제로 그 당시 전과도 있었다. 다만 전공을 올린 병사가 상근 예비역이어서 다른 현역들을 멘붕 시켰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 과정에서 6중대의 故 송관종 일병이 작전 중 전사하였으며 사후에 상병으로 진급되었고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당시 전공을 올리면 남은 군생활은 거의 면제 수준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는 소문이 퍼져있었다. 최상급 부대로부터 중대장에 이르기까지 휴가증을 받아 한 동안 쉰 다음, 간첩을 사살했으므로 민간인보다는 못하지만 나오는 포상금도 챙기고 남은 기간은 이리 저리 강연하러 다니면서 군생활 할수 있다는 소문. 그런데 공로를 세운 병사가 상근예비역에 남은 현역 생활도 채 2개월이 안남은 상황. 다른 병사들의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최근 페이스북 등 인터넷에서 떠도는 2011년 3월 외박나온 군인들을 민간 고등학생이 폭행한 사건의 피해 군인들 소속이 백호연대 소속이었으며, 신병교육대대 신임 대대장이 부임직전 훈련병으로 위장하여 훈련받은 부대도 백호연대다.

6.3 독수리연대

예명은 독수리 부대. 위 항목에서 언급된 대항군 부대인 3대대가 바로 이 연대의 3대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공군과 유엔군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 한국전쟁 최대의 전투 중 하나인 저격능선 전투에서 쌍호연대와 함께 고지 탈환 임무를 맡은 바 있다.또한 이 연대의 7중대는 한국전쟁 당시에 중공군 1개 연대를 막아낸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734고지전투). 막 00년도의 모 훈련에서는 연대의 수색중대가 화천 모 사단의 지휘통제실에 잠입하여 작계와 여러 보급품를 털어간 바람에 3개의 사단이 1개의 연대에게 춘천까지 거침없이 밀려 내려갔고, 결국 훈련이 강제로 종료되자(사실) 이에 분노한 화천 모 사단장은 작계를 갈아 엎어버렸고(소문) 3군단장은 입이 귀에 걸려서 703 특공연대 대신 이들 연대 수색중대를 군단 기동타격대로 임명해야 한다는 드립을 쳤다(사실) 이 사건 이후로 한동안 연대 장병들은 각종 신식 전술과 장비의 실험체로써 시달려야 했다. 3대대 전체가 대항군 부대로 탈바꿈한 사건이나 수색중대가 전군 최초로 마일즈 훈련을 실시했던 점 등이 그 증거.
연대위치는 양구군내 가장 가까운 지리적 위치에 있다. 현재는 2대대 3대대 모두가 신막사로 아주 좋은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어정쩡하게 신막사를 얻어서 상대적 구막사 신세가 된 1대대 지못미 직할 중대들도 신막사를 모두 이용하고 있어 여건은 좋은 편이지만 역시 훈련이 참 많은편

여담이지만 11년도 중반까지 충성 구호가 '충성 I can do!'였다. 이는 당시 연대장이 연대 자체적으로 추진한 부대운영시스템인 '독수리인생사관학교'의 일환이었으며, 이는 당시 사단장도 높이 평가하여 후임 연대장에게 이를 승계할 것을 권장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권장한 사단장도 바뀐 이후, 충성 구호는 아주 자연스럽게 충성!으로 복귀하였다.

6.4 포병연대

포병연대의 예명은 사단예명을 빌려 노도포병,
예하대대는 무공훈장의 이름을 따서 '무공','화랑','인헌','충무'

4개의 대대와 1개의 연대본부로 구성되어있으며 3개 대대와 연대 본부는 원통~인제에 주둔해있고 다른 1개 대대는 양구에 주둔해있다. 3개의 자주포부대와 1개의 견인포 부대로 구성되어있으며 모두 155mm이다. 선진병영(?)정책으로 유명한 동기생활관을 맨 처음 시행한 부대가 여기 대대중 하나이다(시설은 연대중 최강) 막사는 위에 써있듯이 연대본부와 굴지의 1개 대대를 제외한 전 부대가 신막사를 사용중이다 그러나 여기 부대에 배치되어 연대 내 다른 부대를 돌아다니다보면 1개 대대가 나머지 신막사부대를 월등히 초월할정도로 전방부대치고 괜찮은 시설로 중무장되어있어 부러울지도 모른다. 18포병대대는 전군 최초 포병이라는 위업을 가지고있는데 이 최초포병이라는게 같은날 창설된 포병대대가 5개나 더 있어서 최초는 아닌것같지만 참 웃기게도 부대 창설식이 제일 일찍시작하고 제일 빨리끝나서 사실상 최초포병이란다(?)By.해당부대 주임원사님.[24]

훈련 강도는 2사단에 걸맞게 한숨나올정도로 강하다 게다가 4개 대대중 3개 대대가 인제군에 주둔하고있어서 인제군이 주둔지인 12사단의 간섭을 심하게 받는다 즉, 인제의3개 대대는12사, 2사 포병연대 2개의 상급부대가 있어 잦은 훈련과 검열로 인해 간부든 병사든 깊은빡침이 올라올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포병이라 총 쏠일이 거의없긴 하지만 포병1개 대대가 사단 전투력순위 1위에 오른적도 있을정도로 보병못지않게 삽보다 총을 잘쏜다. 그래도 보병에는 못미치겠지만 보병 지원해준다고 이리저리 차출되는 병사들이있으니 따져보면 거기서 거기다 게다가 위수지역 자체가 전략적 요충지이다보니 각종 상황이 전술훈련날 포탄쏘듯이 뻥뻥 터져서 근무자와 당직계통을 상당히 힘들게하는것도 한몫한다.12년도에있었던 위병소 습격작전은 포병연대 출신들은 잘 알거다 그 당시 근무한 타 부대 병사들마저 상황전파로 그 상황을 들으면서 불쌍해 했으니 말 다했다(…)그리고 알 사람들은 아는 예비사단중 최상위권을 자랑하는 훈련많은 부대(특히17연대)의 지원포병부대인만큼 상급부대의 관심 또한 높아서 때때로 별다신분들도 오시고 언론에서도 자주 취재나와서 상당히 바쁘다그래도 생활여건과 외출.외박시 바깥 환경도 괜찮아서 모범적으로 군생활을 한다는 가정하에 놀땐 확실히 놀 수 있다.부대를 나와서 버스나 택시를 타서 버스기준으로 20분정도면 군인의도시 원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곳에 있는 고등학교(원통고)에 다니는 여학생들은 대개 행보관or주임원사님의 영애분이거나 군인과 긴밀한 커넥트가 있는게 함정

부대 생활은 생각보다 단순한데 상급부대 지침을 매우 잘 따라서 일과 시간이 딱딱 맞아 떨어져서 군인들의 빛과소금인 개인정비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 단, 어느 부대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행보관(행정보급관)의 짬이 중요하다. 주임원사급의 원사 행보관 때는 4시부터 체력단련이라는 명목으로 하루의 일과가 사실상 종료되었고, 다음해에 중사 행보관이 부임되자..... 상상하는데로 였다고 한다. 물론 훈련중이거나 상황생겼으면 그런거 바라지마라 쉴땐 쉬는대신 확실히 굴리거든~~

여담으로 생일날 당사자에게 전투휴무를 주는 제도가 처음 생긴게 여기 대대 중 하나다.생일빵때문에 아주 많은 일을 치른뒤에 생긴 제도라고 당당하게 말 못한다. 그마저도 눈치보여서 못쓴다는게 함정

한때 후반기 교육을 받는 자주포 조종수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부대였다. 오죽했으면 육군포병학교의 비공식 군가의 구절중 "노도로 가면 눈물나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7 기타

부대마크가 제2차 세계대전영국 공군 라운델과 똑같다. 2004년 경 부대마크가 저시인성으로 바뀌었는데, 테팔 프라이팬처럼 참 멋없게 변했다는 평이 많다.

2사단 헌병대가 초대형 병크를 저지른 적이 있는데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때 간첩에게 전사한 표종욱 일병을 탈영처리해버리고 유가족 분들에게 탈영한 아들 내놓으라고 지랄발광을 저질렀다. 심지어 (간첩이 노획해서 쓰던) 표종욱 일병의 군복과 유품을 확인했는데도 아들내놓으라고 지랄을 벌였다. 자세한 내용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문서 참조

마크와 관련된 농담 중 제일 흔한건 '과녁'. 또는 훈련이 많아서 피(가운데 붉은 원)가 맺히고 멍(파란 원)과 고름(흰색 원)이 생긴다고(...) 고름 대신 붕대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농담으로는 한창 아이팟이 유행할 시절 선임들이 신병 전입오면 사단 마크를 눌러서 노래를 부르지않으면 2사단이 아니라는 부조리 아닌 부조리가 있었다ㅎㄷㄷ 중요한건 이걸 제1신교대 조교한테서 들은거라는거지 조교마저 그러면 실제로 거의 다 하고 있었단 소리

만화가 메가쇼킹이 이 부대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했다고 한다.(정비대 취사병)

2010년 여름에 사단내 모 연대장이 연대 주둔지 담 근방 2M 내에 있는 모든 나무를 '사계확보'라는 명목으로 전부 잘라낼 것을 지시했었다. 하지만 해당 나무는 사유지에 속한 사유재산이였고, 이로 인해 물어준 돈이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였다 카더라

2사단은 후반기교육을 타부대보다 일찍 부활시켰다. 링크 이에 따라 2010년 독수리연대 1대대가 후반기 교육 대대로 새로 편성되었고, 해당 대대의 병사들은 사단 내의 타연대로 재편성됐다. 이 때에 병력관리가 매우 미흡하여 일부 병사는 머리카락을 민간인 수준까지 길렀다. 후반기교육 받을때 제일 무서운건 구보다 체력단련시킨답시고 헐떡고개를 두세번 왕복시키면 제 아무리 특전사급 체력을 가진 훈련병이라도 힘들어서 죽을라고한다 참고로 헐떡고개의 유래는 거기 올라간 사람들은 반도 못올라가서 헐떡인다고해서 지어졌다고한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연대 수색중대가 나오는데, 그 연병장을 돌고 헐떡고개를 한번 더 뛰어 올라가야 된다! 으악![25] 독수리연대 1대대는 2013년 말까지 교육대대로 운영되었고, 2014년부터는 다시 일반 보병대대로 전환되었다.

부대 개편과 관련하여 2사단의 향방에 대해 많은 소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방 GOP 경비여단 창설 떡밥과 기계화보병사단 개편 떡밥, KCTC 여단급 확장 계획이 어우러져서 2사단을 해체하며 신설 GOP 경비 여단 창설, 독수리연대를 KCTC로 보내버리고 남은 잔여 병력을 21사단, 12사단에 편입시켜 기계화보병사단으로 만든다는 소문, 2사단을 해체시키는 것은 상부의 강력한 건의로 무산되었고 대신 12사단을 쪼개서 2사단과 21사단을 기계화보병사단으로 만든다는 소문이 공존한다. 최근에는 기갑여단이나 공중기동강습여단 뭐 임마? 으로의 개편설도 나돌고 있다. 어떻게 될 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 [26] 앞서 말했다시피 내무 부조리나 똥군기는 별로 없는 편이었으며 부대 내 사건사고도 거의 없는 부대이다. 이는 가공할만한 양의 훈련과 과업에서 기인한 것. (몸이 힘들면 똥군기 부릴 틈도 또한 관심도 없어진다.)

진짜사나이 2에서 신병 이성종,돈스파이크의 투입과 함께 이 부대로 갔다.유격 훈련 주간이어서 김영철,슬리피와 함께 이 둘은 열외 F4가 되었다. 그대신 유격 에이스도 탄생했다

2000년대 초반에 양구군 동면에 위치한 자주포 대대에서 한 병사의 결혼식을 올려준 일이 방송을 통해 공개된 적이 있다. 해당 병사는 가정 사정으로 인해 식은 못 올리고 혼인 신고만 한 후 입대했는데 방송 촬영 중에 마침 좋은 소재이기도 해서 부대에서 가족을 초청해 결혼식을 올려준 것.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자주포에 타고 입장하는 신부의 모습이 압권이다(…). 당시 해당 부대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결혼식 비용은 110억 200만원이라고. 11억짜리 자주포 10대 동원(…).
  1. 이전 버전의 문서에서는 사단기를 잃었다고 언급되어 있지만, 이에 대한 근거는 부족하다. 해당 내용에 대해 알고 있는 위키러는 추가바람.
  2. 나머지 두 사단은 5사단11사단.
  3. 참고로 수도사단, 8사단은 기계화 보병 사단이다.
  4. 메이커 사단중에서 8기보사와 2사단 만이 예비 사단이다. 전체에서 가장 빡셀지도...거기다가 양구의 화려한 지형과 맞물리면..보통은 전 보병 사단에서 힘들기로 세손가락 안에 꼽힌다.
  5. 기본적으로 전투력 약한 부대를 한국군 대표로 보낼리가 없다. 그리고 옆에 주둔한 모 사단 연대들과의 연대 전투단 훈련에서 거의 항상 우위를 차지 한다. 2사단의 독수리부대 수색중대(사단 수색대도 아니고 연대 수색중대가)는 옆 화천 모사단의 지휘통제실(대대나 연대도 아니고 사단 지휘통제실!!)을 턴적도 있었다.
  6. 월계관에 노란 별이 세개있는 공수 휘장이면 강하 회수 300회 이상이다
  7. 2012년 이후로 경춘고속도로-배후령터널 루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홍천 루트로는 왠만해선 안 간다. 버스는 홍천을 경유하는 노선이 있다.
  8. 사단 내에서의 소문에 따르면, 4월에 보일러가 동파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 봄이 오고도 동파가 되는 한파와 고도를 자랑하는 것이다!
  9. 실제로 지형자체가 신막사가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경사 또한 없는 곳이 없다.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차리포대의 장병들은 행군 훈련시 45도 각도의 언덕을 0.7km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일명 눈물고개. 사실, 인근 부대로 넘어가는 3.5km 정도의 행군로가 있는데 부대 전체에서는 그 행군로는 눈물 고개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차리 포대원들 마음속의 눈물고개는 포대로 복귀하는 그 길이 맞다. 복귀 중 다른 중대들이 중간에 줄줄이 빠져나가는 모습은 정말 다리에 힘이 빠지게 한다.
  10. 이분이 그 유명한 백선엽 장군의 친동생이다.
  11. 예비대란 기동성을 확보 주요 전황에 투입하여 유용하게 사용한다는 교리에서의 예비대로, 이름과 달리 전혀 예비가 아니다.
  12. 2012년 연대본부 신막사가 지어지면서 수색중대도 넘어왔다.
  13. 예컨대 사단 포병 사격 훈련장이라거나
  14. 신교대 조교에게 쌍호연대 걸리면 전투화 한 켤레 더 준다는 농담을 듣던 시기도 있었다...
  15. 이것도 정말 최 근래의 일이다. 12년까지 화령장대대를 제외한 다른 대대 또는 직할중대들은 모두 목조막사를 사용했었다. 이 목조막사의 건축년도는 60년대며, 건물 해체시 프레임을 이루고 있는 나무 기둥에서 US ARMY마크가 발견되었다.
  16. 모 년도 혹한기 훈련 당시 주둔지 근처 고지에서 숙영을 했는데, 온도가 상상 이상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장비도 제대로 못 챙기고 일단 철수한 적이 있다고 카더라. 여기 떨어진 병사들의 무운을 빈다
  17. 국방개혁으로 전 육군 기본 편제가 다 바뀌게 된다!
  18. 국방개혁안에 공개된 바로는 예비사단은 16년부터 신형 장구류 패키지를 보급하기로 되어있다.
  19. 좀 기괴한게, 교회가 언덕 맨 위에 있고, 그 바로 아래에 성당이 자리한다. 성당에서 교회를 올려다보면 짓누르듯 자리잡고 있는 묘한 배치. 게다가 성당 옆에는 무명봉분이 하나 떡 자리잡고 있다(…)
  20. 그런 소문이 나돌만한 것이, 쌍호연대는 인제 원통 지역의 12사단, 독수리연대는 양구 지역의 21사단의 배후에 주둔하고 있었고 백호연대는 가장 후미인 남면에 위치해 있다. 실제로 96년 대침투 작전시 쌍호연대와 독수리연대는 일부 병력만 차출된 반면에 백호연대는 신병 교육대대와 주둔지 경계 병력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 연대가 출동했다.
  21. 연대 전투단 훈련, 연대장 고과 점수에 중요하며 연대장 재임시 그 평가차 한차례 한다. 연대장 평가 점수에 중요하므로 당연히 빡세게 진행한다. 보통 연대장 임기가 1년6개월에서 2년 정도인걸 감안할때 RCT를 2번 참가한것은 상당히 꼬인 케이스
  22. 군복무가 26개월이던 시절 여름에 유격을 하면 5월 내지 6월 군번은 가능하다. 자대 배치 받고 바로 한번, 말년에 전역하기 바로 전(...)에 세번째
  23. 27사 이기자부대와 함께 그 가운데서도 차단선 최전위에 위치했다고 알려진다.
  24. 최초창설 포병대대는 같은날 같은장소에서 동시에 했었다... 6.25 전쟁 당시 부대재편과정에서 지금과 같이 되었을 뿐... 맹호부대에 있는 10포병대대는 창설당시 7대대였으니 묘한 공감이 온다.
  25. 소소한 참고정보로, 3주의 주특기 교육 중 2개 기수가 겹칠 경우, 나중에 들어온 기수는 먼저 들어온 중대가 나갈 때까지 이 폭풍구보를 실시하지 않는다. 길이 좁아서 많은 인원이 뛰긴 어렵기 때문. 그때는 그저 연병장을 돌면서 먼저 온 중대의 명복을 빌 뿐이다. 아, 물론, 얼마 안가 자신들이 그 명복을 비는 다음 기수들을 보며 고개를 달려 올라간다.
  26. 2015년 현재 확정된 개편안이 나왔지만 여기나 썼다간 다들 아는것 처럼... 코렁탕 그저 아무도 예상못한 충격과 공포의 개편안이 확정되었다.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