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겸(삼국지)

위서 「이공손도사장전(二公孫陶四張傳)」
공손찬도겸장양공손도장연장수장로


陶謙
(132 ~ 194)

1 개요

후한 말의 군벌. 는 공조(恭祖).

2 정사

2.1 초기 생애

젊어서는 유생이었고, 효렴으로 천거되어 각지의 지방 장관을 맡았으며, 무재로 천거되었다가 여현령, 유주자사 등을 역임했다.

의랑을 지내다가 후한의 서쪽 변경에서 군무 경력을 쌓았다. 도겸은 강족을 토벌하러 서쪽으로 향하던 황보숭에게 발탁되어 함께 강족을 무찔렀다. 변장 · 한수의 난 때 토벌군 대장인 사공 행 거기장군 장온의 참군사[1]로 종군했다. 장온은 도겸을 불러 후히 대우했다. 도겸은 장온에게 속으로 불복하였으나, 술자리와 같은 자신의 편에 있는 사람들이 모인 사적인 자리에서는 되려 장온을 욕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안 장온은 분노하여 도겸을 변방으로 유배보냈으나, 어떤 사람이 장온에게 도겸을 풀어줄 것을 진지하게 간하여 도겸은 유배지로 가던 도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도겸에 대한 장온의 대우는 처음과 같았다.

이때까지 그가 쌓은 군무경력은 손견 다음으로 가는 수준으로, 당대의 그는 주변으로부터 제법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던 것 같다. 두 인물 모두 강동 출신이며, 서북변에서 벌어진 군사적 활동에 참여한 것도 그들이 가진 공통점이다. 다만 도겸이 손견보다 더 나이가 많았기 때문인지 도겸은 민정경력은 손견에 비해 더 오래되었고 그의 관위도 손견보다 높았다.[2]

2.2 서주자사

조정의 명령으로 도겸은 서주의 황건적 잔당들을 토벌하였고, 서주 지역을 장악하고 지방호족들과 연계하고 조정으로부터 이를 승인 받아 서주의 태수가 되었다.

동탁과 맞서 싸우는 주준을 지원하기도 했다. 동탁이 왕윤, 여포에게 죽은 후 이각, 곽사 등이 조정을 장악하자 도겸, 공융 등은 주준을 추대하여 연합군을 이끌고 이각과 곽사를 치고 황제를 받들어 모시고자 함을 권유했으나 주준은 이를 사양했다. 도겸은 공물을 보낼 사자를 조정에 보내었다. 사자에게 일러 샛길로 가게하였다. 이로써 그는 안동장군·서주목으로 옮겼고, 율양후에 봉해졌다.

어렸을 때 도겸은 공부를 잘했고 인망도 있었는데, 정작 서주자사가 되자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조욱을 소원하게 여겼고, 조굉과 같이 아첨하는 소인배들을 가까이하여 형벌과 정치는 형평을 잃어 선량한 사람 대부분이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당대의 명사로 유명한 허소가 도겸을 찾와 서주로 왔을 때 도겸은 그와 면담을 하였다. 허소의 평에 따르면, 도겸은 겉으로 겸손하고 깨끗한 명성을 추구하지만, 정직하지 못하다. 남을 후대하고 있지만 끝내 그는 반드시 변할 사람이었다고 한다. 실망한 허소는 도겸을 떠났다. 다만 이런 사례 중 하나가 자신의 초빙을 거부한 장소를 잡아들인 사실이다. 정작 장소는 대인배였는데, 도겸이 죽었을 대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을 정도였다.

정치에서 인사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실권이다. 그의 인사능력 나쁘지 않았다. 왕랑, 조욱, 미축, 진등 과 같은 인물은 모두 도겸이 조정에 추천하여 관직에 나서게 된 사람들이었다. 또 당시 서주백성들은 부유하여 충분한 먹을 거리가 비축된 상황이었으므로, 매우 많은 유민들이 서주에 몸을 의탁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도겸은 연산군과 같이 막무가내로 정치를 한 인물이 아니었다.

2.3 조조와의 대립

원술과 원소가 사이가 벌어지자, 공손찬과 동맹을 맺어 유비, 전해, 선경과 함께 포위망을 형성[3]하여 원소를 압박했으나 이들은 모두 원소와 조조에게 격파당했다.

천자를 자칭하던 궐선이라는 도적과 손을 잡아 함께 약탈을 일삼다가 그를 배신해서 죽이고 군대를 흡수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공손찬과 협력하여 조조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다가 조숭을 죽게 한 것이 원인이 되어 조조에게 공격당해 연전연패했다. 한때는 고향 단양으로 도주하려고 했을 정도. 전해와 유비가 원군으로 오고 여포가 조조의 근거지인 연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조조가 퇴각하자, 사망하기 직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객장으로 와 있던 유비에게 서주를 양도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 도겸은 인망이 자자한 인물로 그려진다. 예주 지역을 평정하여 자신의 근거지로 삼게된 조조는 전란을 피해 남하하였던 조조의 부친 조숭에게 서신을 보내 모시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안 도겸은 조조와 사귀고자 하여 자신의 부장인 장개와 군사를 보내 조숭의 일가를 보호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조숭이 가진 재물에 욕심을 낸 장개가 조숭과 그 일가를 살해하고 보물을 차지하고 도망하였다. 이리하여 도겸은 이를 명분으로 삼아 제후들에게 공문을 띄우고 서주로 군사를 이끌고 단숨에 서주로 진군한 조조와 싸우게 되었다. 정사에서 도겸은 조조의 군세에 맞서 끝내 서주를 지켜냈던 것과 달리 연의에서 그는 조조의 군세가 서주를 침략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심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하는 허수아비같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급기야 "차라리 나 혼자 죽겠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묶어 조조에게 보내려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이후에 이어진 그의 행적은 유비의 도움을 받았다가 얼마 뒤 세상을 떠나며 유비에게 서주를 맡긴다는 식으로 정사와 같다.

한 마디로 연의에서 그려지는 도겸은 통솔력과 용병술은 낮추어졌는데 반해 인의와 덕망은 상향되도록 조형된 인물이다. 이는 도겸 뿐 아니라 유표, 공손찬[4] 등 유비에게 우호적이었던 인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변화이며, 유비 본인에게도 똑같은 보정이 걸려 있다.

4 평가

선역으로 등장하는 연의와 달리 정사 삼국지에서의 평은 굉장히 좋지 않다. 어진 이들을 멀리하고 소인배를 등용하여 주의 정사를 어지럽혔고, 참칭한 역적과 결탁하였다는 것 등등. 도겸에 대한 부정적인 평은 비단 삼국지뿐 아니라 후한서 등 다른 사서에서도 발견된다. 그런데 어떤 사서는 연의와 마찬가지로 도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평가 면에서 상반되는 것이 특이한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는 후한 말 군벌의 열전이 거의 조조의 입장에서 서술되었기 때문에, 도겸이 정말 폭정을 베풀었던 인물이었던가에 대해서는 부당한 면이 없잖아 있다.[5]

정사에서 그려지는 도겸은 문무를 겸비한 호걸로, 젊어서부터 공부를 좋아해 유생이 되어 효렴으로 천거되었다가, 관직에 출사한 뒤로는 군무에서도 활약했다. 문약한 늙은 선비로 그려지는 연의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도겸은 정치적인 야심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카리스마와 안목도 가지고 있어서 서주에 자리잡은 이래로 산동과 강소성 일대에서 강력한 군벌로 군림했다. 도겸은 원술 그리고 공손찬과 연합하여 원소와 조조의 동맹에 대항했는데, 한때 도겸은 조조조차 쉽게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성한 세력의 수장이었다.

천자가 동탁에 의해 강제로 장안으로 수도를 옮기고 제후들과의 연락을 끊었을 때, 왕랑의 조언에 따라 도겸은 샛길로 공물을 바쳐 안동장군과 서주자사로 승진하였고 율양후에 봉해졌던 사실을 문제로 삼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동탁이 집권하여 폐쇠적인 상황이 되어버린 중앙정권에 근왕을 하지 못하니 공물을 보낸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도겸이 서주에서 이룩한 공로와 서주의 사회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정치적 입지를 황제에게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은 것이다. 동탁이 패망한 다음 이각곽사가 집권했을 때 도겸은 주준을 태사로 삼도록 추천하였고 이각 등을 토벌하여 천자를 맞이하려고도 했다. 즉, 도겸은 한황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는 황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는 셈이다. 이보다 이전에 반동탁연합이 궐기할 당시 영천에 있던 주준을 맹주로 받들어 동탁에게 대항한 것을 생각하면 도겸은 확실히 천자가 지닌 상징성이 당시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꿰고 있었다.

도겸이 서주에 대한 지배권을 유비에게 이양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당시 서주의 주요 호족이나 주요 관료들(미축진등 등)이 유비를 지지했다. 도겸 스스로도 미축에게 "유비가 아니면 서주를 안정시킬 수 없다." 고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서주에는 유비를 지지하는 여론이 폭넓게 퍼져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조치로 조조가 서주를 칠 명분을 없앨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호족 세력들이 단합하여 유비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 가운데 조표는 소패의 진궁, 여포와 내통하여 유비가 함양의 원술과 싸우러 출정하였을 때 성문을 그들에게 내주었을 정도로 유비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무튼 유비는 도겸을 도운 일로 인하여 잃은 것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서주 대학살로 인하여 조조야말로 민심을 크게 잃었다.

조숭을 죽였다고는 하지만, 후대를 하다가 부하가 욕심을 내서 조숭을 살해하여 오해를 덮어쓰게 된 연의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역사적으로는 조숭 살해 당시, 당시 정세는 원소와 조조의 연합과 원술,도겸, 그리고공손찬의 연합이 대립하였다. 193년 가을 이전에 조숭이 장개에게 살해당했다. 조조가 서주를 침략했으나 군량이 부족해 군대를 잠시 물렸다. 조조는 다시 서주를 침공하였으나 여포가 반격하여 퇴각하였는데, 조조의 군세가 돌아가며 일으킨 서주 군민들에 대한 무단학살이 벌어진 때는 진수의 삼국지와 자치통감 그리고 후한서의 기록이 다르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일본의 삼국지 각색물에는 도겸이 마치 대대로 서주를 다스린 것 마냥 묘사되어 있기도 한데, 실제로 도겸은 황건적을 토벌하면서 서주를 세력권으로 삼아 당대에 군벌로 성장한 것이다.

조조의 업적 중 한개라고 알려진 둔전제를 처음으로 시행한 사람이 도겸이라는 재미있는 설이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면 둔전이라는 정책 자체는 이미 그 전부터 존재해왔다. 조조가 처음으로 시행한 것이 민둔이다.

5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연의의 이미지를 반영했는지 대대로 흰수염이 풍성한 맘씨 좋은 할아버지 포트레이트로 등장. 좀 난이도가 있는 진영이다. 진규, 진등, 미축, 손건 등이 B급 문관 정도의 능력치를 보이고, 무장이 조표 밖에 없다. 본인 능력치도 통솔, 무력은 바닥에 지력, 정치도 70이 안되는 안습함[6]을 보여주고 그나마 매력만 70대...익주의 유언을 2단계정도 다운그레이드 시켰다고 보면 된다.

삼국지 시리즈에서 전통적으로 도겸 세력을 대표하는 컬러는 연한 녹색.

삼국지 3에서는 심히. 능력 자체가 처량하고 안습하다. 능력치는 지력 57 / 무력 53 (뭐?) / 매력 75 / 정치 64 / 육전 42 / 수전 21 로 제법 구린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도겸도 문제지만. 삼국지3 특성상 문관들이 너무 많다. 믿을만한 부하라고는 조표/장개/차주 등인데. 차주는 하비태수로 되어있으나. 충성이 70대인지라. 공융이 뺴돌리면 답이 없어진다. 더군다나 간옹도 여기서 나온다. 장개와 조표또한 반골인지라. 구호탄랑 걸려서 모반 때리면 진짜 개노답 수준이다. 더군다나 조조건달라는 희대의 깡패가 옆에 있어서. 195년이 지난 이후부터는. 몇만씩 몰려오고, 탈탈 털린다. 또한 수명이 희박해서 몇년 있어봤자 금방 죽어 버리고. 믿을만한 인재가 하나도 없다. 간손미 가 부하로 있어도 그냥 서글픈 수준.

삼국지 7에서는 특이하게도. 무력이 72다. (문관 영감이 무력72라니. 말세로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47/37/68/57. 병법은 혼란, 매도. 본인의 능력은 형편없지만 진규 부자와 미축이 있고 서주 지역에 유능한 장수가 제법 있어 할만하다. 영웅집결 기준으로 광릉 지방에 여대, 장제, 진교, 진건, 낭야 지방에 왕상, 왕융, 제갈탄과 제갈상 부자, 회음지방에 보즐과 보천, 보협 부자 등. 공백지인 소패 지역까지 보면 팽성에 엄준, 소패의 설종 부자, 누현, 당빈, 정밀, 환범 등 좀 더 등용할 수 있는 장수가 많다. 이런 장수들을 빨리 등용해서 조조가 확장하기 전에 원술, 공융, 장각 등 세력을 병합하여 세력을 키우자.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50/33/65/65/77에 특기는 농업 1개뿐이라 좀 우울하다. 여담으로 생년이 알려진 사실무장중에선 최고 연장자다. 132년생으로 나오는 다른장수는 황보숭, 유언, 진규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생년이 알려지지 않았다.

삼국지 11에서 특기가 없고,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하비에서 쫒겨나 방어가 어렵고 땅 갯수도 적은 소패에 주둔하고 있는 데다가, 주변 세력이 여포관구검인만큼 살아남기가 어려운 세력이다. 특급 난이도에서는 여포, 장료, 고순, 문앙, 문흠 등이 동시에 공격을 오는 끔찍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진등, 진규 부자의 계략으로 헤쳐나가는 수밖에는 없다. 장수의 질로만 보자면 엄백호정원같은 하드코어 세력보다야 훨씬 양호한 편이나 주변 여건이 너무나도 좋지 않다. 역사 시나리오에서는 군웅할거에서는 시작하고 1년도 되지 않아 역사대로 서주를 유비에게 넘겨주고 죽게 되며[7] 이벤트를 끄더라도 수명의 문제로 죽게 된다. 이럴 경우 컴퓨터는 보통 진규를 군주로 세우는 편. 반동탁연합 시나리오를 제외하면 여러모로 도겸으로는 통일하기가 어렵다.

삼국지 12에서 매력이 없어지면서 전 능력치 60대 이하라는 안습이 되고 말았다. 도겸씨 지못미 한조소란, 반동탁연합, 서주변천 시나리오까지 군주로 등장하며, 진등 외에는 전장에서 쓸 만한 장수가 없기에 역시 난이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서주를 버리고 형주나 강동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정도. 영웅집결에서의 영지는 다시 하비를 되찾았으나, 진출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 특해 공백지인 소패를 함부로 점거했다가는 여포와 조조의 맹공을 받게 되므로...그렇다고 북해 쪽으로 진출하자니 이번 작에서의 공융태사자가 지나칠 정도로 강력하므로 뚫기가 쉽지 않기도 하다. 특별 시나리오인 신장전생에서는 전작의 영웅집결마냥 하비를 우에스기 겐신에게 빼앗기고 소패로 이동하게 된다. 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하드코어한 세력 중 하나. 일러스트는 아마도 조조가 서주를 침공하여 위기에 처했을 때 항복과 항전 어디를 골라야 하는지 고민하던 걸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발탁무장과 동맹의 난이도 하락 등으로 약소군주들이 전체적으로 쉬워진 삼국지 12에서 오히려 더 난이도가 상승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 13에서는 전작과 능력치는 같다. 반동탁연합과 영웅집결 시나리오에만 등장하는데 반동탁연합에서는 그나마 강동에 빈땅이 많아서 손쉽게 확장할수있지만 이번작에는 하비 바로 밑인 광릉에서 장초가 새로 등장하기때문에 장초와 경쟁하게되었다. 그러나 장초 본인이 C급 무장이고 휘하들도 형편없는데다 도겸이 시작부터 하비, 낭야, 소패 3곳을 보유하기때문에 왠만하면 도겸이 지지않는다. 이후 손견, 유표보다 빨리 강동을 먹은 후에 주변 정세를 살피면서 진행하자. 영웅집결에서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하비에서 시작한다. 11에선 하비에 있던 여포가 소패로 가는 바람에 서로 위치변경했는데 그래도 어렵다. 얼마안가 여포도 조조에게 망하고 공융도 태사자를 여전히 보유한데다 북으로 진출하기 어려운편. 차라리 강동으로 남하하여 장초와 원술부터 먹고 손견과 대치하도록하자.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단병 계열로 등장하며, 무력 53, 지력 61, 통솔력 42의 평범한 능력치를 갖는다.

첫 전투인 사수관 전투 시작 이전에 말을 걸면 자신도 돕겠다면서 레벨 4 상태의 NPC로 호로관 전투까지 참전하는데, 유비 3형제만으로도 공략 가능한 전투들이므로 경험치를 쌓기 위해 유비 3형제만으로 공략하는 것이 좋다.

이후에는 조조에게 공격당하자 미축을 보내 유비에게 지원을 요청하며, 서주 전투에서 레벨 10으로 등장한다. 다만 성 안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진격이 빠르다면 사실상 전투에 참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뒤 분기에서 조조와 화친이 아닌 전쟁을 선택하면 소패 전투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후에는 연의 내용처럼 유비에게 서주를 맡기고 리타이어.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경기병 계열로 등장하며, 무력 74, 지력 72, 통솔력 64로 능력치가 상향되었다. 처음에는 영걸전과 마찬가지로 호로관 전투에서 NPC로 참전하며, 이후에는 서주 보복전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도겸을 쓰러뜨리면 백은갑옷을 얻는다. 이후 내용은 연의와 동일.

삼국전투기에서는 미분류지만 전형적인 영감 캐릭터로 나온다.

다만. 정사를 반영한 내용이라 그런지. 유비를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 유비가 지목한 내용중 하나가. 조조와 원소를 하나의 라인으로 그린 반면. 도겸이나 공손찬등을 기타 등등의 부류로 지목했다는 점을 착안했다면. 유비가 조조의 싸움에 끼어드는게 무리가 아니라는 지론은 합당하다는 고증이 일맥상통한게 당연한 수순이다. 공손찬을 지지해서 원소와 싸웠으니. 조조가 유비를 좋게 볼 리가 만무한 까닭에. 유비가 평원을 버리고 서주로 근거지를 옮긴것은. 앞날을 내다 본 혜안이라는 설도 분분하다. 연의에서는 장개가 죽였다고 하나. 어디까지나 조조세력의 건곤일척을 배척하기 위해 무한 도전을 한 것에는 여지없는 까임방지는 해결 할 수 없을것이다. 베르단디의 부름을 받고. 강을 건너.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유비의 협박에 못이겨(...)

화봉요원에서는 전쟁 중에 전위에게 살해된다.

평설 인물 삼국지에서는 노략질과 약탈을 일삼던 그 당시 불량 군웅들과 아주 진배없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다만 도겸은 머리를 굴려서 일반백성에게서 고혈을 짜먹으려는 게 아니라 대군웅으로 자리잡은 조조에게서 밑천을 크게 뜯어먹을 궁리를 하던 무뢰배로 묘사했다. 그래서 장개에게 시켜서 조숭을 납치하도록 시켰는데 조숭이 격렬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조숭을 죽이고 만다. 이에 꼭지가 돌아서 눈에 뵈는게 없어저버린 조조는 도겸을 죽이려고 했지만 도겸은 여기서 또 이기적인 잔머리를 굴리는데 서주 백성들을 고기방패로 삼아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아주 단단히 복수귀가 되어버린 조조였는지라 그러거나 말거나 조조는 도겸의 목을 얻기 위해 무슨짓이든 다했고 결국 서주대학살이 자행되었다. 일이 이지경까지 꼬이자 도겸은 유비에게 모든걸 떠넘기고 도주했다. 하지만 도겸에게 등떠밀려 억지로 서주를 맡은 유비는 도겸과는 생각이 달랐다. 유비는 서주를 맡자마자 서주 백성들을 어르고 달래서 안정시키고 서주 백성들을 자신의 등 뒤로 숨겨 보호했다. 도겸의 가신이였던 손건과 미축 등이 유비가 죽는 순간까지 유비를 따른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였다.

드라마 삼국에선 연의와 마찬가지로 서주의 인망을 얻고 있는 할아버지로 등장한다.

연의와 마찬가지로 조숭에게 선의를 베풀었다가 부하의 배신으로 조숭이 살해당했고, 조조는 이를 이용해 서주를 점령하려 한다.

이에 도겸은 아들을 사자로 삼아 원소, 유표, 원술에게 지원을 요청하는데, 이미 조조가 표문을 보낸바가 있고, 조조와 싸우고 싶진 않은지라 아예 거절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등 사실 상 거절한다. 게다가 허유는 대놓고 '어리석은 짓'이렀다고 도겸 아들 앞에서 도겸을 깐다. 패드립

그러나 유비가 도겸과 서주를 구하기 위해 지원에 응했고, 유비의 지원으로 인해 전투가 잠시 길어진 상황에서 여포의 뒷치기로 인해 조조군은 철군하게 된다.

이후 유비는 도겸의 부탁에 따라 소패에 주둔하게 되고, 얼마후 도겸이 죽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유비를 대면하는 과정에서 서주가 조조에게 공격당할 것[8]을 걱정하며 유비가 그 누구보다도 서주를 원하나 남의 위험을 기회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유비도 인정한다.). 그리고 다른 군벌들을 거론하며 그 쪽에 넘기는게 어떠냐고 말하는 유비에게 "안 되오, 서주는 그대 아니면 안 돼"[9]도겸 창작물의 유언 중 가장 완벽한 유언라고 말하며 유비에게 서주를 맡기고 죽는다.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에서는 전직 금고털이범이나 갱생하고 알바로 생계유지를 하는 청년으로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도겸(레전드히어로 삼국전) 참조.
  1. 참고로 손견도 똑같은 직책에 있었다.
  2. 같이 장온의 참군사가 되기 직전 손견은 군승 · 별부사마였고 도겸은 태수였다.
  3. 도겸은 연주 동군 발간현에 주둔하였고, 상술된 세 인물도 원소와 조조 주변에 주둔하였다.
  4. 다만 공손찬은 다소 애매할 수 있다. 원인은 해당 문서 참조.
  5. 원소만 봐도 《정사 삼국지》에서는 거품을 물고 비판하는데, 《후한서》에 남겨진 원소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다. 다만 원소와는 다르게 도겸의 경우는 후한서에서도 딱히 우호적인 서술이 없다.
  6. 다만 삼국지 ds2에서는 70대 이상이다.
  7. 플레이어 세력일 시에는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
  8. 이 세계관에서 조조는 군량없으니 서주 백성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했으니 도겸이 괜히 염려하는 건 아니다.
  9. 자신을 유일하게 도와준 존재는 유비 뿐이고, 특히 원소쪽은 도겸에게 모욕까지 줬으니 유비 외에 서주를 넘겨주고 싶은 존재가 있느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