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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인기를 얻던 시절의 모습
등려군(덩리쥔), 鄧麗君, 邓丽君, テレサ・テン
1953년 1월 29일~1995년 5월 8일 (향년 만 42세)
동아시아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던 아시아의 가희(歌姫)
白天听老邓, 晚上听小邓
1 개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주로 중화권 및 일본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가수다.중화민국, 홍콩, 일본, 중국까지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아시아의 가희(歌姫)"라 불렸다.
소위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청아한 미성의 소유자로, 간드러지는 소프라노 음색으로 유명했다. (원래 중화권의 전통가요는 남자든 여자든 리릭, 맑고 가벼운 소리를 선호한다.)
중화권 국가들과 일본에서의 명성에 비하면 한국에서의 대중적 가수 인지도는 안습. 그럼에도 첨밀밀(甜蜜蜜, 톈미미), 야래향(夜來香, 예라이샹)[2]이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위예량따이퍄오워디신)은 두리안같은 한국 가수들도 많이 불렀던 곡이고, 멜로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정도이다. 다만 노래는 들어봤어도 가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다.... 테레사 텡과 등려군이 동일인이라는걸 아는 사람조차도 극히 드물 정도니. 한국에서 활동한 적이 아예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지만.어디서 들어본 멜로디의 근원
그가 부른 노래 중에서는 원래는 다른 가수가 먼저 불렀지만 건전가요에 가까운 노래도 있다.
매화와 중화민국송 유튜브
월량대표아적심과 첨밀밀 유튜브
2 이름
본명은 덩리쥔(鄧麗筠, 등려균)이지만,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 덩리쥔(鄧麗君, 등려군)이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이 이름을 활동할 때 썼다. 중국어에서 '筠'과 '君'은 발음이 같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발음이 같은 글자로 애칭을 많이 붙여준다. 영문 이름은 Teresa Teng으로 이 이름은 일본에서 활동할 때도 '테레사 텐(テレサ・テン)'으로 계속 불렸다. 이 영문이름 테레사는 그녀 자신이 존경한다고 이야기했던 테레사 수녀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는 설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세례명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종교가 천주교이다.
3 인생
3.1 출생, 그리고 데뷔
1953년 1월 29일, 중화민국의 타이완 성 운림현 바오중 향에서 출생했다.양친 모두 중국 본토 출신이다. 부친은 중국의 하북성, 모친은 산동성 출신이다. 부친은 국민혁명군의 직업군인으로, 국공내전 후에 대만으로 쫓겨왔다. 부친의 영향인지 군 위문공연에 열심히 활동하였고, 중화민국에서는 '군인들의 연인'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아직도 중화민국 국군 내에서는 덩리쥔이 인기다. 인기투표에서 늘 1등한다.
1970년, 16세에 당시 중화민국의 인기 드라마인 '징징(晶晶)'의 주제가인 '당신만 보면 웃음이 나요(我一見你就笑)'를 불렀고 그후 5년 정도 대만과 홍콩을 중심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73년에는 홍콩에서 만난 '도라스(トーラス)'의 사장 후나키(舟木稔)를 만나 일본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3.2 일본 활동
아이돌 계열의 노래인 '오늘밤일까 내일일까(今夜かしら明日かしら)'를 취입했으나 별 성과를 얻지 못하자 곧 엔카 계열로 전환하여 '공항(空港; くうこう)'을 취입, 대히트를 하여 당시 '레코드 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 방송에도 활발하게 출연한다. 더 드리프터즈의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한것도 이 때의 이야기. 그러나 1979년 인도네시아 위조여권을 사용한 것이 발각되어 국외 추방당했다. 급히 일본에 가야해서 인도네시아 출신 친구가 만들어 준 여권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후 1984년까지 미국, 홍콩, 중화민국에서 활동하다 일본시장에 재입성, '속죄(償還; つぐない)', '애인(愛人; あいじん)'이 각각 150여만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가 200여만 매가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 '전일본 유선방송 대상(全日本有線放送大賞)' 최초의 동서(東西) 유선 대상 3해 연속 대상 및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1985년 12월에는 생전 마지막이 되는 솔로 콘서트를 NHK홀에서 진행하였다. 또한 같은 1985년에는 조용필의 일본 활동 후 '돌아와요 부산항에(釜山港へ帰れ)'를 부른 가수로도 유명하다(단, 최초 취입은 1983년 渥美二郞. 이후 계은숙, 美空ひばり, 森昌子 등이 취입/노래).
1987년 이후 일본에서 그다지 활동하지 않다가 1994년 11월 NHK '가요 자선콘서트(歌謡チャリティーコンサート)'에 출연하였다.
1995년 취입할 예정이던 '잊지마(忘れないで; Time to Say Goodbye)'는 그녀의 사망으로 취입되지 않았다가 2001년 일본가수(幸治)에 의해 추도음반으로 발매되었다.
3.3 중화권 활동
중화민국 출신이라서 대만 및 홍콩, 마카오 등 중국어권 지역에서의 활동도 활발했다.
1979년 위조여권 사용으로 일본에서 추방된 이후 중국어권에서 활동하였는데, 덩리쥔의 오리지널 노래도 흥행했지만, 만주국에서 활동한 이향란(李香蘭; 山口淑子)의 노래들을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유명해진 곡들로는 '夜來香', '三年' 등이 있다. 그러나 대만 출신이 문제가 되었는지, 이향란이 만주국 찬양, 2차대전 종전 후 일본 귀국 활동 등을 한 이유가 문제가 되었는지,[3] 중화인민공화국은 1983년까지 덩리쥔의 곡을 금지했다. 실제로는 양안관계가 해소된 1987년까지 덩리쥔의 노래를 금지했는데 형식적인 금지였을 뿐이다. 개나 소나 다 덩리쥔의 노래를 듣고 다녔고, 심지어 단속하는 공안들도 덩리쥔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덩리쥔의 인기는 엄청났고, 그녀의 노래들을 금지하면 금지할수록 오히려 그녀의 곡들을 더 많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에 '낮은 덩샤오핑이 지배하고, 밤은 덩리쥔이 지배한다'라는 말이 유행했다.그러고 보니 둘 다 같은 등씨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금지곡이었던 덩리쥔의 노래는 국민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어 수많은 소문과 유언비어, 특히 콘서트에 관한 소문이 많았다. 실제로 그녀는 평생동안 중국 공연을 추진했으나 천안문 사건 반대집회 등 중국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실 때문에 중공이 그녀의 공연 추진을 백지화시켰다.
1987년, 일본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이후로는, 홍콩 및 대만에서 간간히 활동하다가 1990년 이후 홍콩 반환 등의 문제로 프랑스의 파리로 거주지를 옮겼다.
3.4 사망
덩리쥔이 사망했다는 소문은 1990년과 1991년에 한번씩 있었으나 유언비어였으며 갑자기 1995년 5월 8일 요양을 목적으로 가끔 방문하던 태국 치앙마이의 메이핀호텔에서 기관지 천식 발작으로 향년 42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990년부터 동거 관계에 있었던 14세 연하 프랑스인 스테판 퓨엘이 최후의 간호를 했다고 한다.
같은 달 28일 타이베이에서 국장급의 장례가 치뤄져 전 세계 3만여명의 팬들이 몰렸다. 덩리쥔의 관은 중화민국 국기와 중국 국민당 당기로 덮였다. 묘소는 타이베이시 동북에 자리하고 있으며, 묘 앞에서는 동상과 레코드 장치가 설치되어 덩리쥔의 노래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덩리쥔을 추모하기 위해 사체를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매장하였으며 사후 50년 정도는 생전 모습 그대로 둘 예정이라고 한다.
공식적으로 기관지 천식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발표되었지만, 마약 복용설, 민주화운동 및 반정부운동에 관련한 중국 공산당에 의한 암살설 등 여러가지 음모론이 있다.물론 당연히 음모론 일뿐. 천안문 사건이 일어나자 규탄시위에도 참석했었으니 암살설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음모론일뿐, 검증된 바 는 없다.북한에서는 덩리쥔이 사망하자 돈 좀 벌어보려고 덩리쥔 사망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병맛스러운 짓을 벌였다(...). 북한에서 발행한 덩리쥔 추모 우표엔 '華人歌星鄧麗君'라고 써져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북한이 이런걸 만드니까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찰스 왕세자 와 다이애나 스펜서의 결혼 기념 우표보단 덜 생뚱맞다.
4 기타
등려군이 한국에서 이름이 많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첨밀밀'이라는 영화 덕분이지만 덩리쥔이 동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인기를 얻지 못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그렇지만 홍콩 영화가 많이 들어오던 시절, 홍콩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첨밀밀(甜蜜蜜)이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은 등려군이라는 가수, 심지어 노래 제목을 모르는 사람들도 노래를 들려주면 한번쯤 들어봤다고 많이 얘기하고 한국 가수들도 많이 부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사망한 지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등려군은 많은 중국인들에게 근대 이후 역대 최고의 중화권 가수로 평가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본토의 가요계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아예 전멸하디시피 해버렸고 그 여파 때문에 등려군 사후에는 아직까지도 아시아권에서 이름을 날리는 중국 본토 출신 가수가 하나도 없기 때문.[4] 그나마 2000년대 이후에 중국 경제와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많이 상승하면서 중국 가요계도 그 빛을 보려나 싶었으나 동시기에 유튜브의 등장으로 인해 유럽과 영미권 지역의 뮤지션들과 한류폭풍이 불어닥쳐서 중국 가요계를 사실상 완전히 점령하디시피 하는 바람에... 등려군같은 가요계의 인재가 더더욱 나오기 힘들어졌다.
2012년 11월 11일, 갑자기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를 유지했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덩리쥔의 일대기가 방영되었는데 지도에 '일본해(동해)'라고 영문표기 되어 있었기 때문.
성룡이 처음 헐리우드로 진출했을 시기인, 80년대 초반, 미국에서 지내던 등려군과 사귄적이 있었는데, 성룡이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반면, 등려군은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해서 헤어졌다고 한다.
2015년 응답하라 1988 9화에서 성덕선이 중국으로 떠나기 위해 짐싸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나왔다.
가수 혜이니와 닮은꼴이다. 첨밀밀 앨범 표지를 보면 많이 닮았음을 알 수 있다.
5 추천곡
아래의 곡들은 추천하는 곡들이다.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멜로디라는게 공통점.
('원곡명(한국식 독음)'으로 작성바람.)
鄧麗君(등려군) - 甜蜜蜜(첨밀밀) |
- 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7]
鄧麗君(등려군) - 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 |
- 美酒加咖啡(미주가가배)[8]
- 我心愛的小馬車(아심애적소마차)
- 我只在乎你(아지재호니) [9]
- 相思淚 (상사루)
- 忘記他 (망기타)[10]
- 何日君再來(하일군재래)[11]
- 南海姑娘(남해고낭)[12]
- 留不住你的心(류부주니적심)
- 好夢太匆匆(호몽태총총)
- 小城故事 (소성고사)
- 但願人長久 (단원인장구)[13]
- 愛你一萬倍(애니일만배)
- 你可知道我愛誰(니가지도아애수)
- 再見我的愛人(재견아적애인)
- 江水悠悠淚長流(강수유유루장류)[14]
- 夜来香(야래향)[15]
- 絲絲小雨(사사소우) - 이슬비라는 뜻이다. 후렴구의 애절함이 아주 인상적.
- 高山靑(고산청) - 阿里山的姑娘(아리산적고낭) 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 [16]
- 逍遙自在(소요자재)[17]
- 一水隔天涯 (일수격천애)[18]
- あなたと共に生きてゆく (아나타토공니생키테유쿠) [19]
- ↑ 우리나라에서는 의역하여 "낮에는 등소평이 지배하고, 밤에는 등려군이 지배한다."로 알려진 말. udn tv《大而話之》"白天聽老鄧 晚上聽小鄧" 唱進大陸人心裡 및 네이버 중국시사문화사전 - 덩리쥔 참조.
- ↑
한국어로 보면 발음은 좀 당황스럽지만한국에서는 화교 출신 가수 주현미가 번안도 해서 부르고 원곡 그대로도 불러서 알려진 곡이다. - ↑ 이향란(李香蘭)은 예명. 본명은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로 일본인 히키아게샤이다. 항목 참조.
- ↑ 애초에 등려군은 대만 출신 가수라서 문화대혁명 이후로 중국 본토 밖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로 성공한 중국 출신 가수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 ↑ 마에카와 키요시(前川清) 라는 가수가 녹음한 유명한 엔카인 長崎は今日も雨だった(나가사키엔 오늘도 비가 내리네) 라는 곡의 번안곡. 원곡은 일본에서는 국민가요 수준으로, 나가사키를 상징하는 대표곡 중 하나이다.
- ↑ 한국의 듀오 그룹 두리안이 I'm Still Loving You라는 제목으로 번안해서 불렀다.
- ↑ 한국인들에게는 첨밀밀과 함께 덩리쥔의 대표곡으로 잘 알려져있다. 중화권에서는 위의 첨밀밀과 더불어 등려군의 대표곡을 넘은 세대를 초월한 명곡. 제목은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하네"라는 뜻
- ↑ 중국인들에게 첨밀밀과 함께 가장 많이 알려진 곡.
- ↑ 일본에서 테레사 텡 명의로 발표된 '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의 번안곡이다.
- ↑ 왕가위 감독의 영화 타락천사의 삽입곡으로 유명하나, 영화에 삽입된 음원은 등려군의 곡이 아닌 관숙이(關淑怡) 라는 가수가 리메이크한 곡이다.
- ↑ 1930-40년대 상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주선(周璇) 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으로, 그녀의 노래들은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는데, 주선의 대표곡으로 夜上海(야상해), 天涯歌女(천애가녀), 花樣年華 (화양년화), 永遠的微笑(영원적미소) 등이 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년화가 그녀의 노래에서 영화 제목을 따왔으며, 그 곡이 영화에 삽입 되기도 하였다.
- ↑ 姑娘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덩리쥔의 노래들 중 제목이 '姑娘'으로 끝나는 노래들을 팬들이 '姑娘시리즈'라고 부르기도 한다.
- ↑ 소식의 시가 水調歌頭(수조가두)에 곡을 붙였는데, 왕비의 리메이크로도 유명하다.
- ↑ 중국적인 느낌이 강한 곡. 중국에서는 줄여서 '江水悠悠'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 ↑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문근영이 부른 OST인 '그댄 몰라요'의 원 버전이다. 극중에서 중국어로 부르기도 했다. 원곡은 이향란(李香蘭) 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만주국,일본의 배우겸 가수 야마구치 요시코의 곡이다.
- ↑ 영화 감독 장철이 작곡한 곡으로 그의 첫번째 영화 아리산풍운의 삽입곡으로 쓰였던 곡을 리메이크 하였다. 장철 자신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 곡의 가사를 썼다고 언급을 하였지만, 중국이나 대만, 홍콩의 기록을 보면 장철의 이름을 작사가 아닌 작곡으로 올려놓고 있다. 따라서 본 각주에도 작곡을 하였다고 표기한 것이다. 그러나 곡 자체도 장철의 순수 창작이 아닌 대만 원주민 민요를 약간 편곡했다고 한다. 참고로 아리산풍운은 대만 원주민에 대해 다룬 영화로, 대만 광복 후 최초의 극영화라 알려져 있고, 또한 장철의 첫 번째 영화, 즉 감독 데뷔작 이지만 현재는 필름이 소실된 상태다.
- ↑ 渡哲也(와타리 테츠야)의 くちなしの花(치자나무의 꽃) 의 번안곡으로, 원곡은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やくざの墓場(야쿠자의 무덤) 이라는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다.
- ↑ 森森(삼삼) 이라는 여가수의 곡을 리메이크
- ↑ 위의 제목 규칙에 따라 한국어 독음으로 기입. 오다 테츠로가 작곡하고 ZARD가 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