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역사

1 개요

잉글랜드 축구 1부 리그가 1992년 '프리미어 리그(Premier League)'란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한 이후 새 시대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클럽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878년 중산층 노동자들 중 Lancashire Yorkshire의 뉴턴 히스 지사 노동자들이 쉬는 시간에 모여 만든 것이 그 유래며, 뉴턴 히스 LYR F.C.(Newton Heath LYR F.C.)란 이름으로 창설되었다. 1902년 4월 26일부터 새롭게 지금의 이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가지게 되었다.

1906년에 1부 리그로 승격하고, 1908년 첫 리그 우승, 다음 해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 이후 1911년에 두 번째 리그 우승을 했다. 1950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후로 풋볼리그 강자로 떠올랐다. 이 시절 맷 버스비 감독 체제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전신인 유러피언 컵에서도 맹활약하여 리그를 넘어 유럽 최정상이 될 뻔했으나, 비슷한 시기에 클럽은 잊을 수 없는 시련을 겪었다. 1958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마치고 귀국하던 도중 맨체스터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중간 경유지인 뮌헨에서 추락하는 대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축구사의 가장 치명적인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유나이티드는 그들의 세계 정상 등극을 위해 약 10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 최악의 사고에서 한 명의 젊은 선수가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그는 66년 월드컵의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보비 찰튼이었다. 찰튼은 그의 별명이 "그라운드의 노동자"였을 만큼 지칠줄 모르는 스피드와 가공할 킥력으로써 세계의 미드필드를 호령했다. 그리고 드디어 맨체스터에는 축구사를 통틀어 단 몇 명의 진짜 천재들 중 한 명이 합류한다. 그는 북아일랜드의 전설 조지 베스트 였다.
마침내 67/68 시즌 당대 최고의 보비 찰튼조지 베스트를 앞세운 유나이티드는 레알 마드리드와 벤피카 리스본을 연파하고 그들의 오랜 염원인 챔피언스 컵을 차지한다. 그것은 잉글랜드 클럽으로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그가 은퇴한 후에 잠시 주춤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86년 감독에 부임한 알렉스 퍼거슨경에 의해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알렉스 퍼거슨 경이 감독을 맡으면서 맨유는 1992년 프리미어 리그 개편 이후 EPL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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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출범 후, 퍼거슨의 맨유는 3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프리미어 리그 개막과 더불어 맨유는 2012-2013 시즌까지 한번도 3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고, 19번 시즌 중 12번을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가장 성공적인 행보를 보인 EPL 구단이 되었다. 2012-2013 시즌에는 잉글랜드 구단 최다 우승 기록인 20회 우승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8-1999 UEFA 챔피언스 리그 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을 결승전에서 누르고 UEFA 챔피언스리그 2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 해 맨유는 UEFA 챔피언스 리그, 프리미어 리그, FA컵 3개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하여 잉글랜드 구단 중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또한 2007-2008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첼시 FC를 승부차기 끝에 누르고 우승하여 통산 3회 챔스 우승과 더블을 기록하면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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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유 그 자체였던 퍼거슨 감독의 은퇴

그러나 퍼거슨 감독이 2012-2013 시즌 20번째 우승을 달성한 후 은퇴하고 데이비드 모예스루이 판 할을 거쳐 2016년 5월 27일 주제 무리뉴가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1.1 세 남자의 이야기

100년이 넘는 맨유의 역사는 세 남자의 이야기로 정리 될 수 있다. 어니스트 망날, 맷 버스비, 그리고 알렉스 퍼거슨이다. 이 세명이 들어올린 맨유의 트로피는 맨유 전체 트로피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맨유의 20회의 리그 우승은 모두 이 세명이 들어올린것이었다. 한 클럽의 역사가 단 3명의 감독에게서 나온 것은 일반적인 축구계 문화에서 익숙치 않은 그림이다.

어니스트 망날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작을 알렸으며, 맷 버스비는 잉글랜드 축구에 최초로 유스시스템을 선보이며 축구 클럽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고, 알렉스 퍼거슨맨체스터 유나이티드EPL리그를 세계 최고의 위치에 자리잡도록 만들어냈다.

1.1.1 어니스트 망날

맨유 경력 : 1903-1912 (9년)

맨유 경력 : 471전 242승 139무 90패 [승률 51.38%]
우승 경력 : 1부리그 2회 [1908,1911], FA컵 1회 [1909], 커뮤니티 쉴드 2회 [1908,1911]

어니스트 망날 부임 이후, 빌리 메레디스, 샌디 턴불 등의 선수들과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08년 첫 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FA컵, 커뮤니티 쉴드를 우승하며 맨유의 첫 전성시대를 이어갔다.

1.1.2 맷 버스비

맨유 경력 : 1945-1969 (24년)

맨유 전적 : 1141전 576승 266무 299패 [승률 50.48%]
우승 경력 : 1부리그 5회 [52,56,57,65,67], FA컵 2회 [48,63], 커뮤니티 쉴드 5회 [52,56,57,65,67], 유로피언컵 1회 [68]

망날 시대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맷 버스비 [1] 감독 아래에서 다시 한번 전성기를 구가한다. 버스비경은 세계 최초의 체계화된 유스시스템을 통해 적극적으로 유스를 육성하여 평균 연령 최연소 리그 우승을 통해 맨유의 장기적인 미래를 다듬었고,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유럽무대에 참가해 유로피안컵(UEFA 챔피언스 리그 전신)을 우승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로 만들었다.

1.1.3 알렉스 퍼거슨

맨유 경력 : 1986-2013 (27년)

맨유 전적 : 1500전 895승 338무 267패 [승률 59.66%]
우승 경력 : 프리미어리그 13회 [93,94,96,97,99,00,01,03,07,08,09,11,13], FA컵 5회 [90,94,96,99,04], 챔피언스리그 2회 [99,08], 리그컵 4회 [92,06,09,10], 커뮤니티 쉴드 10회 [90,93,94,96,97,03,07,08,10,11], UEFA컵 위너스컵 1회 [91], UEFA 슈퍼컵 1회 [91], 인터컨티넨탈컵 1회 [99], FIFA 클럽 월드컵 1회 [08]

맷 버스비시대 이후 조용하던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애버딘 FC를 이끌며 수십년간 이어져온 셀틱 FC레인저스 FC의 양강 체제를 무너뜨리고, FC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 CF를 격파하며 위너스컵을 우승시킨 명장 알렉스 퍼거슨 [2]이 감독으로 취임하며, 90~00년대 세계 최고의 구단으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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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리그 경쟁력을 박살 냈던 헤이젤 참사의 여파를 보여주는 리그 그래프)

헤이젤 참사로 잉글랜드의 모든 클럽이 5년간 유럽 대항전에 나갈 수 없게 되고, 그로 인해 프리미어리그 경쟁력(UEFA 리그 순위 3위에서 29위로 수직 하강)이 박살났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일개 클럽이 아니라 리그를 세계 정상에 다시 올려 놓겠다 -알렉스 퍼거슨-

퍼거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의 축구 위상 자체를 세계 최고로 끌어올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더 나아가 EPL, 리그를 상징하는 인물.[3] 1999년 맨유의 트레블은 맨유 우승만이 아니라 잉글랜드 리그를 침몰에서 다시 구해놓은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영연방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퍼거슨이 들어올린 것은 트로피가 아니라 영국의 자존심이라고 말했으며,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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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장으로 보는 알렉스 퍼거슨의 25년간 미친 존재감)[4]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EPL에서 축구 감독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 짧다는 얘기가 있다. 2006년 영국 워릭 경영대학원(Warwick Business School)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05년까지 잉글랜드 감독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약 2년이었다. 허나 퍼거슨 감독은 무려 27년간 재임하고, 성공신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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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쓰고 '알렉스 퍼거슨'이라고 읽는다)

1.2 Next Generation: Who is the fourth?

2013년 여름,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데이비드 길 단장[5]이 함께 은퇴하며, 유나이티드는 새로운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맷 버스비가 토대를 이룩한 유나이티드의 문화를 바탕으로 알렉스 퍼거슨은 찬란한 꽃을 피웠고, 유나이티드 뿐만아니라 EPL의 인기까지 세계 최고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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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취임한 에드 우드워드 단장의 발언들은 현재 최고 인기 리그인 EPL와 전 세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닌 가치와 인기를 대변한다.

Woodward's vision is to have an 'elite' player in every position.에드우드워드의 비전은 '엘리트'선수들을 모든 포지션에 갖는 것이다.

Says MUFC different because players must 'immediately' be 'top clas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즉시 전력감의 탑클래스여야 한다.
I'm gonna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거절할 수 없는 오퍼(가격)를 제시할 것 이다 - 에드 우드워드 단장-

● 맨유는 세계 최고의 축구 팀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스포츠 팀이다.

● 역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올드 트래포드란 이름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 수익의 확실한 성장으로 우리는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언제든지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투자할 능력이 있다는 얘기다.
흔쾌히 투자할 용의가 있다. 고정 예산은 없다. 재정적으로 우리는 강력하고, 운영 가능한 자금이 있다.
● 우리는 감독을 지원해주는 역할이기 때문에 풋볼 디렉터가 없다. 결정권은 감독에게 있다.
퍼거슨 감독은 재임 시절 직접 영입 명단을 낙점하면, 조엘 글레이저와 데이비드 길 단장에게 통보, 협의하는 식이었다. 매번 이적 시장에서는 그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이 정책을 유지할 것이다. 원한다면 우리는 일찌감치 최고 이적료를 경신할 수도 있었다. 금액 한도는 절대 없었다.
● 유나이티드의 야망은 승리이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승리를 원한다. - 에드 우드워드 단장-

지금의 이적 시장에서 미친듯한 물가 상승은 레알 마드리드 CF(갈락티코 정책)와 슈가 대디 (첼시 FC, 맨체스터 시티 FC, 파리 생제르맹 FC)의 등장에서 비롯되었지만, 모든 축구 클럽의 이상적인 롤모델인 '자급자족 운영' 만으로 자이언트 클럽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이 있기에 가능했던 긴축 재정을 끝내고 최근 이적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했다.

최근 몇년간 나타난 이적시장에서 유나이티드의 모습은 수익 대비 자연스러운 지출이다. 세계 축구의 상업화, 이적 시장의 물가 상승, 맨유 클럽의 수익을 볼 때, 이적시장에서 최근의 유나이티드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 도리어 그동안 긴축재정으로 우승을 했던 알렉스 퍼거슨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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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1 ~ 2012/13(퍼거슨경 은퇴) 시즌,이적료 지출 순위)

FFP와 TV 중계권료 인상은 EPL에 변화를 가져왔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러한 상황을 헤쳐나갈 NEXT GENERATION 감독을 원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네 번째 남자는 누가 될 것인가. 그를 찾기 위한 유나이티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1.2.1 유나이티드의 네 번째 남자는 누가 될 것인가

2011년 게리 네빌, 2013년 폴 스콜스, 2014년 라이언 긱스 등 맨유 황금기를 이끌었던 '퍼거슨의 아이들'이 차례로 은퇴하고 맨유는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이 하게되었다. '퍼거슨의 아이들' 중 필 네빌은 맨유로 돌아와 1군 코치로 일한 적이 있고, 니키 버트는 현재 맨유 유스 코치로 미래의 새싹들을 육성하고 있다.

퍼거슨 감독의 유산 덕분에 재정적으로 황금빛 엘도라도 맨유 시대가 도래한 반면, 축구 면에 있어서는 맨유의 정체성이나 다름이 없던 명장 퍼거슨의 은퇴 여파로 인해 3년간 모예스, 반할과 함께 고통과 인내의 세월을 보냈다. [6] [7]

1.2.2 후임 고려사항

현재로서는 맨유 후임감독직으로는 선수 커리어는 레전드일지라도 감독경험이 부족하면 선호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ex. 라이언 긱스)

노력이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는 분야가 바로 스포츠이다. 명선수 출신 감독들의 경우, 선수들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능력 밖의 기술이나 전술을 요구하다 선수들 및 코칭스태프와 불화를 겪은 사례가 꽤 있다. 레슬링으로 예를 들어보면, 알렉산드르 카렐린은 "상대방이 방어 자세를 취한다고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상대의 허리를 잡고 들어올리세요."라고 말해서, 강의를 듣는 레슬링 선수들을 멘붕하게 만들었다.

또한, 선수로 필요한 역량 분야와 감독이 필요한 역량 분야가 다르고 , 선수 시절의 멘탈로는 감독직을 수행할 수 없다. 선수 시절에는 자신이 맡은 임무만 충실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많다 보니 팀 동료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쓸 이유나 여유도 없거니와 기술과 심리적인 부분 역시 감독이나 코치들이 맡을 일이지 자신은 자기의 컨디션이나 기량만 신경쓰면 별 문제가 안된다. 문제는 감독이 된 이후로는 이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정적으로 격해있는 경우나 들뜬 선수들을 잘 추스려 이성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는 역할이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다.

무언가를 잘한다는 것이 그것을 잘 가르킨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선수와 감독, 애초에 전혀 다른 직종이라 할 수 있는데 선수 시절 화려한 업적만 보고 '감독에 앉혀놔도 잘하겠지'라는 기대를 품는 것은 오류인 셈이다.

1.2.3 무리뉴 감독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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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7일 월클 감독[8], 주제 무리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9] 무리뉴는 퍼거슨경과 특별한 친분을 지닌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는 퍼거슨경을 존경하며 실제로 자기는 그를 맨유의 구단원들이 하듯이 "BOSS" 라는 표현으로 부른다고 밝힌 바 있다.[10] "퍼거슨은 전세계 모든 감독들의 BOSS입니다."

● 포르투에 있을 때 맨유랑 경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맨유를 존경하기 시작했어요. 포르투에서 처음으로 상대 팀 감독이 찾아와서 선수들을 축하해 줬거든요. 우리 포르투칼 문화에선 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퍼거슨경을 존경했습니다. 늘 그분을 존경하고 찬양했죠. -무리뉴-

● 2008년 무렵 나는 주제에게 이렇게 말했던 게 기억난다. "내가 언제 은퇴할 지 모르겠어. 나이가 들수록 은퇴하는 게 무서워져서 어렵군" 주제가 대답했다. "은퇴하지 마세요. 감독님이 있어서 제가 계속할 수 있는 겁니다" 그는 다른 도전을 하고 있지만 꼭 잉글랜드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퍼거슨경-
주제 무리뉴는 유나이티드를 감독하고 싶어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는 정말 그걸 하고 싶어한다. 주제와 퍼거슨은 생각했다. 퍼거슨이 떠날 때, 그들은 주제가 감독직을 맡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롭 비즐리-
● 잉글랜드 축구는 무리뉴를 가장 흥분시킨다. 그가 언젠가 EPL로 컴백할 거라고 믿는다. 무리뉴와 나는 인터밀란에서 친한 친구가 되었고 대화를 통해 속마음도 나누는 사이다. 만일 그가 맨유에서 제의를 받는다면 받아들일 거라 확신한다 - 2010년 베슬리 스네이더르-
● 퍼거슨(와인친구)경은 저한테 큰 비밀을 말해줬어요. 사람들은 잘 모르는 비밀을요. 그만두기로 결심하기 한두 달전에 말을 해줬죠. 저를 믿는다는 뜻이겠죠. 아니면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저는 두려웠어요. 그러다 마침내 언론에 발표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전 세계의 모든 감독들이 맨유를 거대한 구단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무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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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되는 것은 특별한 영광이다. 세계에서 가장 알려지고 존경받는 클럽 중 하나다. 다른 클럽이 갖고 있지 않는 신비로움과 로맨스를 가졌다.

●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와있다. 맨유 감독직은 모두가 원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자리에 오를 수 있고 내가 지금 이자리에 있다.
● 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왔다. 맨유는 내가 자이언트 클럽이라 부를 수 있는 클럽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맨유는 최고의 감독이 필요했고, 이를 맡기 위해선 준비가 돼어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준비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맨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지난 3년간 그들의 모습이며, 또 다른 하나는 클럽의 역사다. 나는 지난 3년의 기억을 잊고, 오직 역사에만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그 운명이 내 손에 달렸다. 지난 3년의 암흑기를 팬들의 기억에서 잊게 해주겠다.
퍼거슨은 나에게 우산과 와인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우린 하나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가질 것이다. 중요한 옵션이다.
● 전 팬들이 제게서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가 함께이지 않으면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 그들이 클럽에 품고 있는 열정이 어메이징하다고 생각합니다. 클럽 역사에 있어 새로운 챕터입니다. 감독이 바뀔 때, 전 그것이 슬픈 순간임을 항상 느낍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챕터입니다. 우린 새로운 인물들을 불러들였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누군지 혹은 누가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우리의 그 누구보다도 훨씬 중요합니다. 팬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은 클럽을 향한 것이고, 저를 향한 사랑도 클럽의 한 남자에게 향한 것임을 압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전 즉시 유나이티드의 셔츠를 입었으며 이러한 클럽과 셔츠를 대표할 수 있어서 전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전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무리뉴-

● 무리뉴의 꿈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지. [11]

● 무리뉴는 항상 퍼거슨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으며 그처럼 되는 것이 무리뉴의 꿈이기도 하지. - 칼데론 (레알 마드리드 전 회장)-출처


▲ 무리뉴 맨유 감독 부임을 축하하며 첫 날 함께한 에드 우드워드 단장과 '유나이티드의 대부' 보비 찰튼

맨유 감독 부임 첫날, 무리뉴를 환영하러 온 보비 찰튼경과 대화를 나누며, 맷 버스비의 아이들(조지베스트, 데니스 로, 보비 찰튼)이 포르투칼 흑표범 에우제비오가 이끄는 벤피카를 이기고 챔스 우승을 한 것에 대해 농담을 하기도 했다. 당시 보비 찰튼경이 2골을 넣어 벤피카를 탈락시켰고, 맨유가 챔스 우승을 했다.

맨유는 무리뉴가 부임한 첫 이적시장에서 즐라탄 [12], 포그바, 에릭 바이, 미키타리안을 영입해 화제를 모으며 16/17시즌을 시작했다.

2 역대 시즌

나무위키에 2008년 부터 맨유 시즌 항목 이 존재하는데, 이는 맨유 2008년 이전의 역사, 즉 퍼거슨 감독이 더 팔팔했을 때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축구계 혁신적인 감독들은 대체적으로 예측가능한 커리어를 보낸다. 젊은 혁신가는 그 이전의 과거 세대의 혁신가를 공부하고,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다. 보통 혁신자들이 커리의 정점을 찍는 것이 30대 후반~40대. [13] 즉, 대다수의 한국 해외축구팬들은 퍼거슨 감독의 머리가 더 반짝이며 돌아가는 40대 퍼거슨을 거의 없다. 70대에도 번쩍임을 유지했는데 파릇파릇한 영감은 얼마나 더 머리가 번쩍였을지 ㄷㄷㄷ

빅클럽 감독이 당장의 성적 압박에 시달리며 스트레스가 큰 것을 감안해 볼 때, 70대의 퍼거슨 감독을 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놀라울 뿐.

심지어 퍼거슨 감독은 2007년 부터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진 건강상의 이유로 맥박 조정기를 달고 다니면서 맨유를 운영했다!!!!!!!!!!
퍼거슨을 오랫동안 봐온 고전 올드비들은 건강으로 영감 헤어드라이어가 예전같지 않음을 점점 느끼고 있었다... 맨유팬들의 걱정은 퍼거슨 뿐
건강, 나이를 극복하고 번뜩임을 유지할 수 있던 것 자체가 놀라우며, 이를 국내 해외축구팬이 퍼거슨 감독을 볼 수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행복이었을 지도?! 퍼거슨은 박지성을 맨유에 입단시켜, 국내 해외 축구 중계에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심지어 맨유에 퍼거슨이 부임한 1986년은 1985년 5월 29일에 일어났던 헤이젤 참사로 인해 잉글랜드 리그에 역대급 암흑기(3위안 최상위 리그에서 29로 추락한 잉글랜드 리그)가 도래한 후였다. 퍼거슨 감독이 맨유에 왔을 때 맨유 금고는 바닥이 난 상태였으며, 그가 원하는 지원도 해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머리가 번뜩일 때 리그빨, 선수빨, 돈빨, 클럽빨을 받지 못했던 것. 맨유 클럽에 금고가 바닥난 상태에, 헤이젤 참사로 유럽리그 랭킹도 추락. 이런 상황에서 선수를 사고 팔면서 이적료를 충당했기 때문에 리빌딩을 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영감이 더 엄청 난 것은, 이제 맨유를 유럽대회를 나가지 않아도 수익이 증가하는 메가 클럽으로 만들어버렸다. UEFA 금지조항이 예전만큼 효력이 생길 수 없게 맨유가 너무 거대하게 커져버린것. 자이언트 클럽

대다수 한국 팬들이 본 퍼거슨은 이미 정점을 찍은 후인데, 그마저도 맨유를 글레이저 구단주가 인수하면서 부채가 생겨, 이적료를 지르는 것(선수빨)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퍼거슨 영감은 이마저도 유망주를 영입해서 스스로 키우고, 알짜영입으로 매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래의 2008년 시즌 부터 기록은, 70대 영감이 2013년 5월에 은퇴 하기 전 거의 말년의 모습이다.

대다수 혁신가라고 불렸던 감독들은 이미 노쇠화로 이미 사라지고 볼 수 없는 70대의 나이에도, 놀랍게도 여전히 리그 톱놀이하는 퍼거슨 영감의 말년을 국내 해외축구팬들은 본 것. 2008년 시즌 이후의 퍼거슨 영감만을 보고 그를 논하는 사람하려는 타팀팬을 보면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드립이 떠오를 수 밖에. 그대 감독의 70대를 기대해. 몇십년 뒤에 봅시다?!

자로야, 내 너에게 안다는 게 무엇인지 알려 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니라 -공자-

후임감독 무리뉴가 영리한 것이, 맨유가 잘될 때는 퍼거슨감독을 언급하고, 맨유가 잘 되지 못하면 팩트를 말한다.

이는 이전 맨유의 후임감독들이 망할 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퍼거슨 쉴드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과는 정반대 모습으로, 맨유 후임감독으로서 무리뉴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과거 무리뉴 특유의 모든 것을 본인이 안고가는 행보와도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어쩌면 무리뉴의 변화는 그만큼 그가 맨유에서 오래있고 싶다는 마음이 일으킨 것을 수도 있다. 무리뉴의 변화를 환영한다 투자한 만큼 성과는 확실히 냈던 그의 커리어에 기대를 하는 중.

퍼거슨 이후 후임감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후임감독이 맨유 역사와 문화에 흡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UEFA, 잉글축협 FA, 맨유 인수로 인한 구단주 부채 등 역대급 모래주머니를 차고 이를 극복해갔던 본좌의 행보를 알았다면, 후임감독이 망해갈 때 퍼거슨 쉴드를 쓸 생각도 못했을 것.

이미 퍼거슨이 부임 하기 전 '금고가 바닥이 났던' 맨유와, 퍼거슨이 물려준 황금빛 엘도라도 맨유가 다르다.

맨유는 퍼거슨 감독 덕분에, 리빌딩에 필요한 시간을 막대한 돈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자이언트 클럽'이 된 것.

다른 빅클럽도 당장 성적을 요구하는데, 메가 빅클럽 맨유가 왜?!

기본 중의 기본을 몰랐던 데다가, 심지어 막장 인터뷰 스킬로 팬들의 마음조차 잡지 못했기 때문에 모예스와 반할이 경질된 것.

2.1 맨유 트레블 시즌

▲ 맨유 트레블 98/99 시즌 골 모음 동영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잉글랜드 최초로 트레블을 기록한 축구클럽이다.

퍼거슨경의 스승인 조크 스타인이 셀틱을 이끌고, 세계 최초로 트레블이자 영국 최초 트레블을 기록했다.

조크 스타인 감독은 제자 퍼거슨경에게 맨유 감독직을 하지 못한게 후회된다고 이야기 했고, 이는 다른 클럽으로 부터 러브콜을 많이 받았던 퍼거슨이 맨유의 감독으로 오기로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 4개를 일컫는 것이고, 그 중 잉글랜드 리그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피엘이다. 셀틱은 스코틀랜드 리그 클럽에 속해 있다.

2.1.1 캄프 누의 기적

맨유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

자세한 사항은 캄프 누의 기적 항목 참고

2.1.2 맨유 트레블 주역

▲ 맨유 트레블 팀에 관한 다큐멘터리

2.1.2.1 올레 군나르 솔샤르

○ 캄프 누의 기적의 주인공
○ 퍼기 타임의 지배자
솔샤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고 '슈퍼 서브'라는 별칭을 얻으며 팀의 교체카드로서 두드러진 활약을 했다.
○ 솔샤르의 축구인생 중 가장 인상적인 골을 꼽자면, 노팅험 포레스트와의 원정 경기를 꼽을 수 있다. 8-1이라는 승리를 거둔 이 경기에서 솔샤르는 교체 12분 만에 4골을 넣았다.
○ 199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넣은 극적인 골도 빼놓을 수 없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맨유는 테디 셰링험의 득점으로 동점을 이끌어냈고, 솔샤르는 경기의 결과를 뒤집는 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우승을 이끌며 트레블 달성을 주도했다. 바로 이 순간은 솔샤르가 전설적인 선수로써 등극할 수 있도록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2.1.2.2 테디 셰링엄

○ 캄프 누의 기적의 주역

2.1.2.3 데이비드 베컴
2.1.2.4 로이 킨

○ 알렉스 퍼거슨 경은 로이 킨은 자신이 열정적으로 경기하는 모든 곳에서 축구 선수와 맨유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라고 했다. 로이 킨은 맨유가 강조하는 불굴의 정신과 성공에 대한 열망을 지닌 전형적인 선수이다.
○ 선수들을 규합하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는 그의 이미지가 맨유의 1990년대를 정의한다.
○ 로이킨이 맨유를 떠나는 날 퍼거슨 경은 "동시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이자 "우리 팀의 눈부시고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에우제비오는 로이킨의 빅 팬이라고 말한 적 있다.
○ 상대편 역습 상황시 볼을 끊어 주는 홀딩 역할과 볼을 뺐은 후 공미나 공격수에게 볼을 건네주는 앵커 역할을 모두 잘 소화했던 수미형 미드필더

2.1.2.5 라이언 긱스

○ 왼발의 마법사
○ 라이언 긱스는 17개의 주요 상과 함께 팀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선수이다.
○ 현란한 드리블 기술과 폭발적인 스피드를 인정 받아 1991/92 시즌을 주전으로 시작했다.
○ 2004년 9월 리버풀 전에 출전하여 2-1로 승리하면서 바비 찰튼 경(759) 및 빌 폴크스(688)와 함께 United에서 6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 2007년 3월 안필드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때 맨유에서 700경기에 나선 두 번째 선수가 됐다
○ 2011년 3월, 긱스는 리버풀전에서 리그 607번째 출전을 기록하며 보비 찰튼경의 기록을 경신했다.

2.1.2.6 게리 네빌

○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
○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

2.1.2.7 폴 스콜스

○ 20년 동안 맨유의 살림을 책임진 중원사령관. 팬들에게 '생강 왕자(Ginger Prince)'라는 별명을 얻었다.
○ 언제나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깔끔하고 짜임새 있는 패스를 하는 스콜스의 모습은 현대 경기에서 가장 보기 드문 광경 중 하나이다.

2.1.2.8 드와이트 요크
2.1.2.9 앤드루 콜
2.1.2.10 야프 스탐
2.1.2.11 니키 버트
2.1.2.12 데니스 어윈

○ 맨유 입단 10년만인 2001년 St Patrick's Day에 그는 500 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 13개의 우승 메달을 얻음으로써 맨유에서 두 번째로 메달을 많이 획득한 선수로 남아 있다.

2.1.2.13 피터 슈마이켈

2.2 맨유 클래식 경기

퍼거슨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던 맨유 선수들은 은퇴 후에 감독으로 진출한 경우가 많다. 퍼스트 감독으로 데뷔한 선수는 총 31명. 이피엘 팬들에게 이젠 축구 지도자의 모습으로 더 익숙해진 그들의 맨유 선수 시절의 향기를 느껴보자.

○ 캡틴 마블 브라이언 롭슨(맨유 앰배서더), 마크 휴즈(현 스토크 시티 감독), 스티브 브루스, 폴 인스가 있던 시절 맨유. 상대팀 감독은 크루이프.

반니(현 PSV 유스코치), 솔샤르 등이 선수 은퇴 후에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러시아 축구클럽에 투자하려고 했던 로만이 이 경기를 보고 퍼거슨 축구에 매료돼어, 영국 축구 클럽으로 투자를 선회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기는 4-3으로 맨유 승.

2.3 최근 시즌

2.3.1 2008/2009시즌

우승한 대회 : 프리미어리그, 리그컵, 커뮤니티 실드, 클럽 월드컵

2.3.2 2009/2010시즌

우승한 대회 : 리그 컵

2.3.3 2010/2011시즌

우승한 대회 : 커뮤니티 실드, 프리미어 리그

2.3.4 2011/2012시즌

우승한 대회 : 커뮤니티 실드

2.3.5 2012/2013시즌

우승한 대회 : 프리미어리그

2.3.6 2013/2014시즌

우승한 대회 : 커뮤니티 실드

2.3.7 2014/2015시즌

우승한 대회 : 그런 거 없다 망한시즌

2.3.8 2015/2016시즌

우승한 대회 :FA컵

2.3.9 2016/2017시즌

우승한 대회 : 커뮤니티 실드
새로운 감독과 함께할 시즌 과연 그 결과가 어찌될지?

자세한 사항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16~2017시즌 항목 참고.
  1. 맷 버스비의 업적: 축구계 최초 체계화된 유스 시스템 창조, 축구계 최초 축구화 끈 도입, 잉글랜드 클럽 최초 챔스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전신인 유러피언 컵을 의미), 잉글랜드 리그 역대 최연소 리그 우승 (평균연령 22세팀), 맨유의 전통 다이나믹한 공격축구 그리고 붉은 악마 창조, FIFA 국제 축구 역대 명예의 전당 감독 선정, 영국 최초 기사 작위 클럽 감독, 세계 최초 유일의 교황 작위 축구 감독, 유럽 최초 황금 유스팀으로 챔스 우승과 리그우승 달성, 리버풀 FC 밥 페이즐리의 스승
  2. 퍼거슨경은 애버딘 FC시절, 셀틱 FC의 10분의 1도 안되는 금액으로 수십년간 이어진 셀틱 FC, 레인저스 FC 양강 체제를 무너뜨렸다.에버딘을 이끌고 뮌헨레알 마드리드 CF를 격파하며 위너스컵을 우승. 당시 퍼거슨은 UEFA 클럽랭킹 70위 대의 클럽이었던 애버딘 FC를 UEFA 클럽랭킹 9위로 올렸다.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애버딘 FC을 이끌며 클럽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퍼거슨은 애버딘 FC에서도 레전드 감독이다.
  3. 알렉스 퍼거슨이 끌어올린 EPL의 전세계적 인기와 그로 인해 얻게된 엄청난 TV 중계권료는 결론적으로 리그의 중위권팀에게도 기회를 주게 되었다. 중계권료 (재정적 윤택)를 바탕으로 리그 중위권 클럽들이 더욱 두터워진 것이다. EPL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리그다. 세리에A가 몰락한 것은 돈 때문이었다. 선수영입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지만 세리에A의 재정상태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파르마 FC, 피오렌티나는 파산했다.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거듭되며 전체적인 수준이 하락했다. EPL은 다르다. 일각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EPL 리그 20위가 라리가 양대산맥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의 중계권으로 받는 돈을 넘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4. 도저히 영어를 못 읽겠다면 해석으로 그가 있을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24명, 인테르는 19명, 첼시는 15명, 유벤투스 뮌헨 맨시티는 14명, AC밀란은 13명, 바르샤는 11명이 거쳐갔다. 그중에 그가 들어올린 통산컵 갯수랑 맞먹는 곳은 뮌헨 단 한곳이며, 리그만 봤을땐 그 어떤 클럽도 알렉스 퍼거슨보다 많은 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다.
  5. 데이비드 길은 맨유 은퇴 후, 영국 FA 부회장과 FIFA 집행위원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6. 맨유는 곧 퍼거슨이라는 것에 비추어 볼 때. 모예스와 반할에 대한 전 세계 맨유팬들의 생각은 아래 멘트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 퍼거슨경 왈 "데이비드 모예스는 맨유를 과소평가했다."
    ● (점유율에 대해) 퍼거슨경 왈 "상대 진영으로의 침투가 되지 않은 채 점유율만 높은 것은 시간 낭비다. 반니 같은 선수를 포워드진에 두고 있는 한 우리는 그에게 공을 빨리 공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 박자 빠른 패스, 중앙에서 사이드로 벌려주는 패스, 또는 수비수 간 패스, 이 부분에서 변화가 있어야 했다"
    ● (노트 메모에 대해) 퍼거슨경 왈 "전반이 끝나기 몇 분전에 나는 항상 가서 무엇을 말해야 할까 생각한다. 거의 무아지경이다. 정신을 집중한다. 나는 노트에 적는 걸 믿지 않는다. 나는 드레싱룸으로 가면서 내 노트를 보면서, '오 30분에 이렇게 했으니까 됐어'라고 말하는 걸 상상할 수 없다. 나는 그 방식이 선수들에게 인상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치차리토 왈 "반할은 변함없이 딱딱한 성격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 강하다. 안첼로티는 퍼거슨 같이 좀 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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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거슨 감독 은퇴 당시 후임 모예스의 삽질을 예감했던 사람들
  8. 무리뉴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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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2월 19일에는 인터밀란, 첼시, 레알마드리드 3개의 경기장에서 팬들이 다들 무리뉴를 외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9. '엘리트 선수들을 모든 포지션에 갖는 것'이 비전이라고 말했던 에드 우드워드. 즉전감의 탑클래스을 원했던 그는 이를 맨유 감독직에도 실천했다. height=50%
  10. 스페인 저널리스트 디에고 토레스의 책에 의하면 "무리뉴는 퍼거슨을 그의 동료이자 좋은 친구 그리고 대부로 여겼다. 그는 그와 퍼거슨이 깊은 유대감을 갖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가 모아온 트로피들이 어느 누구도 그를 맨유 감독을 위한 경쟁에서 범접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예스가 맨유 감독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아주 실망했다고 한다. ‘모예스는 아무 대회도 우승하지 못했잖아!' 무리뉴는 전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크게 우는 것을 여러 사람이 들었고, 그 소식이 입소문을 타고 번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소식에 아주 충격받았다고 한다. 무리뉴는 계속 잠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했으며 모예스 선임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5월 7일 밤부터 5월 8일 아침까지 호텔에 틀어박혀 끊임없이 이곳저곳 전화를 해댔다. 그리고 모예스의 선임은 5월 9일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 재미있는 사실은 펩도 책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에 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2011년 7월 바르샤는 아우디 컵에 참가하기 위해 뮌헨으로 갔었다. 펩은 뮌헨 훈련장(Säbener Strasse)에서 준비하는 것을 좋아했어. 바르샤의 훈련장보다 작았고 기술적인 시설들도 더 적었는데도. 펩은 감명받았고 비서에게 말했어.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들어, 언젠가 이 곳에서 감독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겠지' 펩은 이와 유사한 말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했지. 2011년 5월 그는 그의 상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분석하기위해 OT로 갔어. 퍼거슨의 팀은 4-1로 샬케를 이겼어.펩은 그 때 그의 친구에게 돌아보며 말했어. '난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언젠가 이곳(OT)에서 감독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겠지.' 펩은 언제나 유럽의 전설적인 팀들과 선수들을 존경해왔어 숭배에 가까울정도로.' 출처 (퍼거슨경이 감독직을 제의했다면 어떻게 했겠는가 라는 질문에) 펩 왈 "그랬다면 아마 난 맨유 감독직 제의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아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 영어 실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퍼거슨경이 빠르게 말할 때는 알아듣지 못했다." 감독들의 꿈의 구단, 맨유그리고 결국 이웃사촌이 되어버린 둘... 과연?!
  11. 태권도 유단자 즐라탄은 성실한 모범 납세자로 유명하다. 이 분들과는 정반대의행보를보이고 있다.
    그리스 경제를파탄시키는 데 한 몫했던 탈세의위험성을 알고 있는 개념인, 즐라탄.
    ● (잡지 '르 몽드'와의 인터뷰 중) 난 연봉의 75%를 세금으로 내는데 올랑드 대통령은 한게 뭐야? 내가 프랑스 대통령 보다 낫다.
    (탈세로 징역형을 받은 회네스 전 바이에른 뮌헨 회장에게) 와이네스에게 내가 할 말은 단 한 가지다. 아 회네스였나? 아무튼, 나는 그를 내 세금 상담역으로 두고 싶은 마음이 없다.
  12. 2016년 사이먼 쿠퍼 기자가 2등분된 축구 감독 커리어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혁신가와 그들의 나이를 논한 바 있다. 그 글에서 흥미로운 것은 요한 크루이프, 아리고 사키, 반할 모두 45세에 마지막 챔스컵을 들여 올렸다는 것. 자세한 내용은 원문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