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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에서 아재 중,장년층들만의 스포츠가 되기까지
목차
1 건국 초기 (1830~1840)
야구가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그 중심은 지금의 보스턴, 뉴욕, 볼티모어였다. 이 당시엔 미식축구나 농구가 없고 라운더스 ,축구, 럭비, 크리켓 등 영국식 스포츠가 영국 이민자들 사이에서 널리 행해졌는데, 웃기게도 이 미국 이주민자의 대부분이 크리켓보다 라운더스가 더 인기있는 영국 중북부 지방 출신이라서 라운더스가 미국에서 많이 행해졌고 이 결과 1830년에는 보스턴에서 라운더즈를 모방한 타운볼(town ball)이라는 경기가 시작되었다. 3년 후인 1833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또 비슷한 시기 뉴욕에서도 저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의 타운볼이 성행했고 그것이 발전하여 비로소 지금의 야구가 되었다고 한다.
야구의 기원에 관한 또 다른 하나의 설은 군인이었던 애브너 더블데이라는 사람이 1839년 미국 뉴욕에서 최초로 야구를 만들어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건 조작으로 드러나 그냥 설로 이야기된다. 자세한 건 야구/기원 항목을 볼 것.
아무튼 19세기 중엽 무렵 미국 각지에 보급되어 발달하면서 이 당시 야구는 미국 전역을 대표하는 최고의 생활스포츠로 발전하면서 국기(國技)스포츠의 토대를 마련했다.
2 메이저리그의 창설 (1860~1900)
그 후 1857년 헨리 카드웍이 규칙을 대폭 개정해 양 팀의 공격과 수비를 9이닝으로 한정하는 룰이 만들어졌다. 또한 1867년 월리엄 커밍즈가 커브를 고안하는 등 투수의 투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타자들이 단 1점도 뽑지 못하는 셧아웃(shutout) 게임도 심심찮게 벌어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투수에게 갖가지 제한이 가해지게 됐는데, 베이스온볼스(base on balls) 규칙이 제정된 것도 그 한 예이다. 1869년에는 마침내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라는 최초의 프로 야구 팀이 창단되었다. 그리고 1875년 신시내티·세인트루이스·루이스빌 등에서 잇따라 프로 야구 팀이 생겨나 내셔널리그(national league)가 탄생했다. 프로 야구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초기부터 뜨거웠다. 그러자 1882년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이라는 새로운 리그가 만들어졌고, 1901년 아메리칸리그로 발전하였다. 당시 야구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탄생한 프로스포츠리그였으며 동시에 가장 인기있는 생활스포츠이자 유일한 인기있는 프로스포츠였다. 이때부터 미국인들은 야구를 크리켓과 비교하며 크리켓은 영국 폼잡는 얼간이들이 하는 오락활동이지만, 야구는 카우보이들의 일대일 격투정신을 기반한 스포츠라며 자랑하였다. 참고로 이 당시엔 NFL이고 NBA고 뭐고 없었다.
3 베이브 루스 시대 ,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 (1900~1970)
스포츠 선수를 목표로 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종목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과 비교해서 어떤 것이 가장 나은지,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 종목에 빠져들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요? 저는 공 치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 베이브 루스
야구의 기본적인 룰의 체계화와 상업적 프로리그인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가 프로스포츠로서의 자생력을 갖추고,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미국 전역에서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많은 미국인들이 도전했는데, 1914년 7월 야구계의 판을 뒤집고 홈런이라는 야구의 꽃을 만들어낸 선수가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하면서 미국 야구의 첫 역사, 스토리가 발생되었다. 베이브 루스는 이 당시 좌완투수로 활약하면서 매우 뛰어난 피칭을 선보였고, 당시 리그에서 월터 존슨과 함께 최고의 투수로 떠오르게 되었다.
1920년, 베이브 루스를 마침내 보스턴 레드삭스가 당시 비명문, 비인기팀이었던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시켰고. 이것이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에 의한 팀을 만들고 야구를 넘어 미국 최고의 스포츠스타를 발굴해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이적으로 인해 베이브 루스는 양키스를 20세기 미국 최고 명문 스포츠팀으로 그 위상을 끌어올렸으며, 베이브 루스 본인 역시 미국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밤비노의 저주라는 미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히스토리가 탄생하면서 미국 프로스포츠 최초의 라이벌 매치인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라이벌전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쉽게 말해 이 당시에 메이저리그는 그야말로 과장 하나 없는 미국 최고의 넘사벽 인기스포츠였으며 베이브 루스를 모르면 간첩이었고, 심지어 미국 본토에 노예로 이주한 흑인들 역시 따로 니그로 리그를 창설하여 야구를 하고싶어 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 시대에 야구가 가장 최고로 인기 있었던 건 미국내에서 프로스포츠로서의 가장 큰 입지와 자생력을 가지고 있었기도 했지만 1920년, 1930년 조 디마지오 , 루 게릭 등 최고의 스타성을 가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과 야구 특유의 턴제 게임의 중독성, 또 홈런이라는 그 당시 여타 스포츠보다도 시각적으로나 기록적으로나 화려했던 요소가 야구의 꽃으로 정착된 이유 등이었다.
이후 메이저리그는 수많은 야구 룰의 개정을 통해 1950년대까지 많은 룰의 발전을 이루었고 1960년대부터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상업컨텐츠로서 자리를 완고히 하면서 여러 새로운 팀들이 창설되어 메이저리그에 참여하였고, 기존 팀들이 미국 서부 지역으로 연고지 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리그 확대와 팀의 증가, 연고지의 이동에 따라 여러 팀들의 원정거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늘어나게 되자 1969년 연고지를 기준으로 서부와 동부지구로 재편하였다. 1969년 2개 지구제로 리그가 확대되었을 때의 규모가 양대리그 각각 10개팀 씩 총 20개 팀이었다. 이후 1977년 AL와 NL에 신생팀이 2팀씩 생겨 총 28개 팀이 참가했다. 이러하여 명실상부 미국 전역에서 즐겨하는 최고 인기스포츠로 발돋움하였다. 물론 야구란 종목 자체의 인기를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였었지만 그동안 야구란 틀 안에서의 경쟁도 막심했다. 1914년 당시 시카고 컵스라는 최고 인기팀을 중심으로 한 페더럴 리그가 메이저리그를 압박하며 경쟁을 했었고 , 1950년 경에는 멕시코의 석유재벌 네루가 니그로 리그, 페더럴 리그에서 방출된 선수들을 긁어모아 멕시칸 리그를 메이저리그에 대항하는 제3리그로의 도모를 시도했었으나, 이는 메이저리그의 압박으로 무산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메이저리그는 멕시칸 리그를 사실상 합병하여 지금의 마이너리그 트리플A 리그중 하나로 축소시켜버린다.
4 NFL과의 경쟁시작 , 선수노조 파업 (1970~1990)
피트 로즈의 시대야구 역사상 가장 재미없는 시대
그러나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를 달리던 메이저리그 옆에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나타난 프로미식축구리그 NFL이 어느새 인기가 급상승하기 시작하였으나 당시 메이저리그는 그런 NFL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이미 같은 야구리그인 1914년 페더럴 리그와의 흥행 경쟁에서 승리하여 오히려 페더럴리그를 합병한 메이저리그는 이미 미국 전역이 인정하는 확고한 국기스포츠로 자리잡았었기에 앞으로의 발전만 보고 있는 형편이었다. 실제로 1965년 당시 NFL은 MLB 인기의 2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오히려 NFL은 골리앗 수준의 MLB 인기를 따라잡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모색했는데 그 중 하나가 MLB시즌을 피해 리그 기간을 9월에서 다음 해 2월에 종료시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MLB팀의 인기가 완고한 공업대도시 지역을 피해 미국 전역에 지방 소도시나 남부에 연고를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텍사스. 야구가 뉴욕 등 동부지역을 통해 급상승했듯이 미식축구는 텍사스 지역을 통해 급상승하였다.
그리고 70년대 TV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NFL의 인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였고 마침내 MLB와 엇비슷한 인기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 원인으로는 현대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야구가 다소 정적이고 턴(turn)제 스포츠이기 때문에 그보다 역동적인 미식축구가 TV중계에 유리해서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으나, 일각에서는 이때 당시는 여유롭고 느린 여가활동이 대세였고, 야구가 미국인들의 일상적 취미이기도 했기 때문에 단지 정적이라는 것이 원인이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 오히려 NFL이 MLB의 리그기간을 피해 MLB의 시즌이 열리지 않는 동안의 최고 인기스포츠로 자리잡았고, 슈퍼볼 등 축제로서의 이미지를 굳히면서 그 인기가 급상승했다고 보는 스포츠 전문가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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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인기를 보면 메이저리그와 NFL의 인기는 동률이다.
그렇게 NFL과 MLB는 미국의 양대 국기(国技)로서 서로 굳혀진 "축제"와 "일상의 스포츠"로의 공생을 이어가는 듯 했으나, 1971년 이래 MLBPA 메이저리그 선수노조와 메이저리그 사무국간의 갈등으로 선수노조의 파업이 발생하면서 리그 경기가 간간히 열리지 않기도 했다. 또 이 당시 메이저리그는 데드볼시대로 점수가 나지않는 극심한 투고타저에 휩쓸리면서 일명 "재미없는 야구"로 상당수의 팬들이 NFL이나 이제 막 분주하게 상업스포츠로서의 발을 넓히고 있었던 NBA로 건너갔다. 이때부터 NFL은 메이저리그를 ~매우 약소한 차이로~ 따돌리고 명실상부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이 파업 속에서도 메이저리그는 확고한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 중 하나였으며 미국의 조사기관인 헤리스 폴의 조사에 의하면 70-80년대 메이저리그와 NFL의 인기는 양 리그 모두 20%대로 비슷했다.
5 다시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스테로이드 시대(1990~2003)
미국 전역이 야구에 다시 한번 미치던 시절약쟁이들의 홈런파티 경연장
가장 역동적인 야구시대
그렇게 NFL에게 최고 인기스포츠 자리를 내주고 2위 혹은 NFL 비시즌 기간의 미국 최고 인기스포츠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져나가던 MLB는 90년대 전 프로스포츠에 닥친 대약물시대의 타격을 가장 먼저 입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기술적으로 삼진을 잡는 기교파 투수보다 약물의 힘에 의존한 파이어볼러나 강속구투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타자 중에서도 약물의 힘을 빌어 배리 본즈, 새미 소사 , 마크 맥과이어 등의 괴물타자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팬들은 베이브 루스 이후 다시 부활한 홈런시대를 대환영했고,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가 홈런왕 타이틀을 놓고 약홈런대결을 매경기 펼치면서 ABC와 ESPN은 맥과이어와 소사의 출전경기를 매일 미국 전역에 생중계했으며 미국의 유명 기업 맥도날드와 펩시, 코카콜라등은 광고경쟁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기용하여 광고효과를 극대화시키려고 하였다
또 시카고 컵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팬이 이때 많이 불어났다. 청정타자중에서도 켄 그리피 주니어라는 당시 흑인이면서도 미국 스포츠의 아이콘이 등장하면서 대중적 화제 면에서도 이미 다시 NFL을 넘어서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부활하는 시기였다. 물론 그 당시에도 헤리스폴 조사에서는 NFL의 손을 더 들어주고 있으나, 그 당시 ESPN의 전국중계 횟수와 뉴스 기사에 언급되는 것을 봤을 때 메이저리그가 NFL을 앞서며 인기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인기는 배리 본즈가 행크 아론, 베이브 루스의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고, 또 경신하면서 더 최고조에 달아올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팬 역시 이때 많이 늘어났다. 많은 야구 팬들이 아직도 이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야구가 그 어느 스포츠보다도 역동적이고 ,파워풀하고 ,지루하지 않은 베이브 루스 시대 이후 최고의 전성기로 기억된다.
6 미국 최고의 상업 인기컨텐츠로 , 악의 제국 시대 (2003~2009)
- 2007년 당시 당시 야구의 인기를 보여주는 미국 인기스포츠 구글검색량 자료. NFL보다도 화제성에서 한 수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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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ESPN의 홈페이지 분위기, 스타파워라는 문구의 MLB기사>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의 시대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시대
벤츠, 나이키, 뉴욕 양키스가 A로드의 당시 가치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2005년, 호세 칸세코가 자서전에서 스테로이드 시대 최고 타자들의 상당수가 약물빨 사기꾼이라는 것을 밝히며 미국 야구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나 메이저리그 제2의 전성기를 이끈 일등공신들 배리 본즈, 새미 소사, 마크 맥과이어 , 로저 클레멘스 등이 주축이라 충격이 더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같이 폭발하던 메이저리그인기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는데, 하루 걸러 새로운 스타플레이어들이 주구장창 쏟아졌기 떄문이다. 대표적으로 알렉스 로드리게스, 매니 라미레즈, 데이비드 오티즈, 블라디미르 게레로, 알폰소 소리아노, 데릭 지터, 데이비드 라이트, 아드리안 벨트레, 카를로스 벨트란, 더스틴 페드로이아 등 뉴 스타들이 대거 출몰하는 동시에 뉴욕 양키스의 구단주인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악의 제국 건설로 당시 메이저리그 인기는 하늘까지 치솟았다. 데릭 지터는 농구의 마이클 조던 다음으로 미국 최고의 인기스타였고,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의 최고 스포츠스타였으며 뉴욕 양키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스포츠클럽으로, 보스턴과 양키스의 라이벌 매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스포츠라이벌전으로 꼽히는 등 양적으로나 흥행 면에서나 메이저리그는 이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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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MLB 사무국은 MLB TV를 런칭하며 미국 4대스포츠중 가장 선도적이고 진보적인 스포츠컨텐츠를 자체 생산하게 되었다. NBA과 NFL은 이를 벤치마킹에 각각 스포츠방송국을 개국하였다. 2008년엔 새로운 양키스타디움이 건설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경기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7 극단적 투고타저의 시작, 쇠락의 길 (2010~ 2015)
그렇게 스테로이드 시대가 저문 이후, 약물 파동에도 메이저리그 인기는 굳건할 것만 같았으나 새로운 스타들인 알렉스 로드리게스, 매니 라미레즈, 데이비드 오티즈 마저 약물을 복용한 것이 밝혀지면서 많은 타자들의 일명 약빨이 드러났다. 엄격한 도핑 검사가 계속되었고 더 이상 약을 빨 수 없게 된 타자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하락하면서 다시 1970년대의 재미없는 데드볼 시대로 회귀해버렸다. 2011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의 월드시리즈는 월드시리즈 역사의 자존심을 구긴 시리즈로 기록에 남았는데, 두 자리수 시청률은 커녕 고작 7.3%이라는 역대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에 그쳐버린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TV 하나에만 치중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NFL의 슈퍼볼이나 NBA의 NBA 파이널은 시청률이 10년 전과 변함이 없었으며 오히려 반등의 여지까지 보이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메이저리그의 인기가 전보다 많이 하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였다.
이때부터 미국 야구팬들 사이에선 "미국에서 야구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미국 젊은이들이 야구를 기피하고 있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나, 인기 팀인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 진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어물쩡 넘어갔다. 그러나 2012년 들어 메이저리그가 인기를 끌던 다른 국가들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자체 프로야구리그가 없어 TV 중계와 선수수급 등 모든 컨텐츠를 메이저리그에 맡겼던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등지의 야구 인기 하락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베네수엘라에서는 2013년 생활체육 가입자 수에서 넘사벽으로 여겨졌던 야구를 축구 종사자가 뛰어넘었고,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야구보다 농구, 축구를 더 즐기는 추세를 보였다.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현 상황을 "'야구존립의 위기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2014년 들어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데이비드 오티즈 등 왕년의 대스타들의 은퇴마저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티켓을 팔아줄 뉴 스타조차 사라지는 추세가 되어버렸다.
- 위기의 미국 야구 (워싱턴 스트리트 저널 - 2015년 5월 27일)
- 미국 MLB의 위기, 야구장엔 어르신만…
- 21세기 들어 위기에 빠진 메이저리그…'지루하다'…젊은층 외면에 고령팬만 남아
- 메이저리그가 위기인 진짜 이유(김형준 칼럼 - 2015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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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야구 팬들의 근심에 더욱 찬물을 끼얹은 것은 2014년 ESPN이 내놓은 미국 4대 스포츠 인기별 12-24세 젊은이들의 관심도 통계였다. 야구팬들에게 이 통계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는데, 12-24세 미국 젊은이들이 미식축구를 MLB보다 2배나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15년에 들어서는 쿠바와 일본에서도 젊은 층들의 이탈이 점점 심해지는 등 전 세계적으로 야구의 위기가 불었다. 이에 새로 취임한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야구의 전통과 역사를 고집하지 않고 시대에 맞춰 새로운 젊은이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야구의 근본을 흔들더라도 야구의 인기 부활을 도모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세한 것은 롭 맨프레드 항목 참고.
2015년 5월에 들어서는 스테판 커리, 르브론 제임스를 앞세워 마이클 조던 시대 이후 죽어가던 인기에 다시 호흡기를 단 NBA에게 인기스포츠 2위 자리를 내주었다. 야구의 파트너를 자부하던 ESPN 마저 NBA를 야구보다 더 중시하기 시작했고 2014년부터는 아예 NBA 파이널 시청률이 MLB 월드시리즈 시청률을 역전하며 점점 더 격차를 벌려나갔다. 또 2001년 460만명에 달하던 리틀야구 회원 수가 2011년에는 200만명 수준으로 급감하자 리틀야구협회는 회원수 조사를 폐지해버렸다. 2015년에 실시된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현역 스포츠스타 30인을 뽑는 조사에서도 야구선수는 단 한 명도 들지 못했다. 위의 전 시대 야구인기 항목들을 보면 정말 메이저리그의 위상이 얼마나 매우 급격히 떨어졌는지 알수있다
전문가들이 야구가 2010년대에 들어 급격히 몰락한 이유에 대해 진단한 바로는 첫째, 스마트폰의 보급화, 둘째, 야구 자체의 득점력 감소, 마지막으로 지금껏 누려온 흥행과 인기 탓에 나태해진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홍보마케팅 등을 이유로 뽑는다. 1번을 얘기하자면 결국 스마트폰의 보급화로 많은 팬들이 던지고,치고,달리는 시간보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야구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경기시간도 길고, 중간중간 너무 텀이 길어 지루하다"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또 2번째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매우 많은 젊은층들이 야구를 기피하고 떠나는데 일조했으며 이에 전문가들은 3번의 이유를 들며 지금까지 메이저리그는 젊은이들이 야구를 떠날 동안 무슨 혁신을 시도했고, 젊은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라고 꼬집고 있다. 그것들이 바로 시간 단축 , 불문율, 마케팅, 세계화 인데, 사무국은 이 4가지 부분에서 모두 부진하며,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NBA는 공격제한시간을 둬서 빠른플레이를 유도해 공격적인 모습을 농구의 대표적인 트렌드로 자리잡게 했으며 , 이외에도 다양한 국제마케팅으로 르브론 제임스 , 제임스 하든, 케빈 듀란트 ,스테판 커리등을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냈고 그 동시에 세계화에 성공했으며 각종 고리타분한 보복구 문화 ,세레머니 금지 등 오랜 역사를 고집중인 메이저리그와 달리 역사와 전통, 상대에 대한 과장된 존중보다는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와 야생미 넘치는 세레머니로 팬들을 위해서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스테로이드 시대부터 시작된 흥행에 나태해져 변해가는 시대에 시간 단축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않았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역시 비록 미국을 제외한 타국에서의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그 주목적은 야구의 세계화라는 가짜 명분을 들고서 자신들의 국제적인 이익, 외국 선수 수급을 위한 일종의 쇼케이스-홍보대회라는 것이다. 또 배트 플립이나 젊은 층들이 좋아할만한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도 지금껏 사무국은 배트 플립을 하고 빈볼을 맞는 선수들을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문화 확산에 대한 노력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젊은층의 이탈과 동시에 운동능력이 뛰어난 흑인 선수들의 NFL, NBA로의 과도한 쏠림까지 도모했으니 말 다했다.
8 부활을 위한 노력 (2015~ 현재)
그러나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버드 셀릭이 작성해놓은 야구의 부활을 위한 차세대 계획들을 모두 실현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지적했던 야구 중간중간에 텀을 없애기 위해 농구처럼 투구제한시간 일명 스피드업 제도를 야구의 기본 룰로 고정시켰으며 이로 인해 경기시간이 평균적으로 10분이 단축되는데 성공했고 전보다 경기의 흐름이 한템포 빨라지면서 젊은층의 더 이상의 이탈은 멈추는데 성공했다.물론 너무많이 빠져나가서 문제다
또 이외에도 코치와 스태프에 마운드 방문시간과 이닝 사이 광고시간, 선수의 투구피칭 연습시간등을 모두 단축시켜 전체적인 경기 템포의 흐름을 빠르게 가져갈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스트라이크 존을 쓸개골 위까지 좁혀 젊은 팬들이 좋아할만한 홈런이나 압도적인 구위로 삼진을 잡아내는 투수들이 많아지도록 유도중이다. 또 배트 플립에 관련해서도 브라이스 하퍼같은 스타선수들이나 커미셔너에 의해 그 인식이 점차 바뀌어 최근엔 배트 플립을 행하는 선수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는 배트 플립 항목을 참조하자. 맨프레드 커미셔너, 배트플립을 싫어하는 건 구닥다리 문화
또 최근엔 SNS 마케팅에서도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다양한 유튜버들에게 비밀리에 지원을 하여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출연시켜 젊은층들에게 인지도를 알리려고 노력중이다. 또 크리스 브라이언트 , 브라이스 하퍼등은 선수 본인의 스타성과 더불어 메이저리그 자체의 지원으로 메이저 기업들의 광고후원을 받고 메인모델로 발탁되어 미국 전역의 인지도를 넓히면서 전국적인 스타로 점점 성장하고 있다. 특히나 브라이스 하퍼는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선수 1위로 뽑혔을 정도로 그 결과가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퍼의 인기에 대해선 브라이스 하퍼 항목을 참조하자. NBA선수인 존 웰을 2위로 따돌리고 워싱턴 D.C에서 명실상부 가장 인기있는 선수로 확인되었다.2015 워싱턴 포스트 현지 팬들 설문조사 인기순위
또 이외에도 2015년엔 호세 바티스타의 배트 플립등의 화제성으로 캐나다에서 부진하던 MLB ,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인기가 CFL 케내디언 풋볼과 토론토 랩터스의 인기를 넘어 NHL에 이은 2위 인기스포츠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특히 시청자 역시 캐나다 인구수의 절반이 봤을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이끌어내 메이저리그의 부활이 다시 가속화되고 있는 추세다. '하키보다 야구' 캐나다는 블루제이스 열풍 야후 캐나다 스포츠사이트의 2016년 현재 조회수 순위는 NHL(하키)-MLB(야구) - NBA(농구) -NFL (미식축구) - CFL(케네디언풋볼)순이다 토론토의 PS, 캐나다 국민 48%가 지켜봤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에서 젊은층의 야구인기는 4대스포츠중 꼴지수준이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선 더욱더 자극적인 시각적인 요소를 늘리는 쪽으로 경기방향을 유도하고 보다 스피디하게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6년 시즌 관중 수는 7,315만여 명으로 전년보다 61만 명, 2007년에 비해 635만 명 줄어들었고 평균 관중 수도 2010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져 지속적인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