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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 서울고등학교 |
한자 | 서울高等學校 |
로마자 | Seoul High School |
개교 | 1946년 3월 5일 |
교훈 |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키자 |
성별 | 남자고등학교 |
유형 | 일반계 고등학교 |
운영형태 | 공립 |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197(서초3동) |
홈페이지 |
"어디서나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어라. ""Always be indispensable where you are."
1 개요
서울고등학교(서울高等學校)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에 있는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이다.
서대문 옆에 있는 경희궁을 허물고 세워졌던 왜정 시대의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 자리에 해방 이후 1946년 김원규 초대 교장에 의해 현재의 공립 서울중·고등학교가 세워졌다. 중학교 입시 폐지 이후 서울중학교는 자진 폐교하였고, 서울고등학교만 남았다. 1980년에 정부의 강남개발시책에 따라 경희궁터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횡단보도 두개만 건너면 보이는 위치에 상문고등학교가 존재한다.
2 연혁
- 편집중. 수정금지.
- 1946.03.05 : 개교식 및 입학식을 거행(12학급, 학생522명, 교사34명)
- 1946.03.05 : 2.1 신설중학교 초대 교장에 김원규 선생이 취임. 개교 사무를 옛 경희궁터에서 개시
- 1947.06 : 교명을 서울중학교로 확정
- 1948.04.20 : 교가와 교기를 제정 발표
- 1948.12.20 : 교지 '경희" 창간
- 1949.06.15 : 제1회 졸업식 거행(6년제 135명 졸업)
- 1950.06.28 : 6.25동란으로 무기 휴고
- 1951.03.17 : 부산 보수공원에서 노천 수업
- 1951.09.01 : 학제 변경으로 서울중학교(3년제)와 서울고등학교(3년제)로 분리. 김원규 교장 선생 양교 교장을 겸임(중학교 15학급, 고등학교 21학급)
- 1951.12.31 : 서울중학교를 "서대문중학교"로 교명 개칭
- 1952.03.13 : 부산 송도에서 학교 신문 "경희학" 창간호 발행
- 1952.03.31 : 신제 중,고등학교 제1회 졸업식 거행(부산에서)
- 1952.04.08 : 서울 잔류학생과 서울의 지방 학생을 위하여 서울중고등학교 서울분교를 개교하고, 고한권교감이 업무 관장
- 1953.07.01 : "서대문중학교"를 "서울중학교"로 교명 환원
- 1953.10.01 : 정부 환도로 전교 개교(본관, 후관은 영국군 사용, 강당 체육관에서 간막이 수업)
- 1954.12.08 : 중.고등학교 교장 분리 발령으로 서울중학교장에 윤양모선생 취임
- 1955.08.15 : 밴드반, 광복10주년 기념행사에 처녀 시가 행진
- 1955.08.27 : 김원규 교장. 중.고 교장 겸임 발령
- 1956.06.10 : 개교 제 10주년 기념식. 포층탑 건립 제막
- 1956.12.07 : 도서관 개관(수용 인워 150명)
- 1957.04.15 : 기독교학생회 "천성회"에서 교훈석 건립
- 1958.10.05 : 특별 교실 2층 중축 낙성
- 1958.11 : 제1회 경희문학상 제정
- 1960.03.01 : 3.1탑 건립, 제막
- 1981.02.28 :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제5회 졸업생 배출 후 페교
- 1984.04.29 : 제18회 대통령배 쟁탈 전국고교 야구대회 우승
- 1984.08.25 : 제14회 봉황대기 쟁탈 전국고교 야구대회 우승
- 1985.02.28 : 학급 증설로 60학급 편성
- 1985.04.26 : 제19회 대통령배 쟁탈 전국고교 야구대회 우승
- 1986.10.03 : 개교 40주년 기념 예술제 개최
- 1992.06.27 : 초대교장 어록비 제막(제14회 졸업생 졸업 30주년 기념 사업)
- 1992.08.01 : 한국일보 주최 제2회 전국고교 학력경시대회 단체 금상, 개인 대상, 은상, 장려상 수상
- 1993.10.14 : 관악반(밴드반)부활
- 1994.09.16 : 교내체육대회
- 1995.11.25 : 제1회 우리 문화와 역사 서적 독후감 발표 및 토론대회 개최
- 1996.03.30 : 개교50주년 기념식(명예졸업장 수여 및 서울고역사관 개관)
- 1996.05.11 : 제30회 대통령배 전국고교 야구대회 준우승
- 1996.09.14 : 개교 50주년 기념예술제 개최
- 1997.03.01 : 2학급 감축, 58학급 편성. 제19대 교장에 장종택선생 취임
- 1997.10.27 : 서울시교육청 지정 시범학교 발표(독후감 발표 및 토론대회를 통한 독서효과의 극대화 방안)
- 1998.02.13 : 제50회 졸업식(1,019명, 졸업누계 35,027명)
- 1998.03.01 : 2학급 감축, 56학급 편성
- 1998.06.20 : 제5회 무등기 전국 야구대회 준우승
- 1998.11.25 : 화장실 시설 전면 개보수
- 1999.02.11 : 제51회 졸업식(1,007명, 졸업누계 36,034명)
- 1999.03.01 : 2학급 감축 52학급 편성
- 1999.09.01 : 제20대 임동권 교장 취임
- 2000.02.12 : 제52회 졸업식(913명, 졸업누계 36,947명)
- 2000.02.15 : 제21대 김병철 교장 취임
- 2000.03.01 : 3학급 감축 47학급 편성
- 2002.02.15 : 제 54회 졸업식(707명, 졸업누계 38,511명)
- 2002.03.01 : 5학급 증설 52학급 편성
- 2003.02.07 : 제 55회 졸업식(631명, 졸업누계 39.142명)
- 2003.03.01 : 제 22대 윤웅섭 교장 취임
- 2003.03.01 : 3학급 감축 49학급 편성
- 2004.02.11 : 제 56회 졸업식(675명, 졸업누계 39,817명)
- 2004.03.01 : 학급 감축 48학급 편성
- 2004.09.01 : 제 23대 성기원 교장 취임
- 2005.02.03 : 제 57회 졸업식(553명, 졸업누계 40,370명)
3 서울고등학교 정보
학교는 매우 넓은 편으로, 얼마 안되는 거리에 있는 서울교육대학교만큼 부지가 넓다. 정문에서 버스 타면 후문에서 버스가 설 정도로 넓다. 건물도 많은 편이다. 1,2학년과 3학년은 서로 다른 건물을 사용한다. 또한 대부분의 건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시설은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건물도 지어진 지 꽤 됐고, 군데군데 금이 가거나 노후한 부분이 있다. 딱 보면 그냥 옛날 남고다.
교복은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다. 물론 동복만. 동복은 네이비 블레이져에 회색 바지, 흰 셔츠에 검은 타이이다. 전통적인 '프레피 룩'의 형태를 띄고 있다(넥타이만 제외하면). 그에 반해 하복은 굉장히 촌스럽다. 변변찮은 디자인과 기괴한 색감때문에 죄수복/인민군복이라고 불릴 정도.[1]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입다보면 다들 적응해서 나중엔 이상함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2014년 하복을 일부 기간 대체하는 생활복이 생겼다.[2]
이 죄수복[3]이 계속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이유는 6.25 전쟁과 관련이 깊다. 서울고등학교는 대한민국에서 전쟁 당시 고등학교 중 가장 많은 학도병과 전사자를 배출하였다. 서울고에 가면 당시 참전 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담긴 비석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당시 초대 김원규 교장이 언제든지 전쟁이 나면 참전할 수 있도록 교복을 제작하도록 지침을 내렸고 이에 따라 군복 느낌의 교복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카더라. 그래도 너무 심하게 촌스럽다.
서울고등학교 학생회는 그 유래가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교 초기에는 학교장의 지명으로 학생회장을 임명했다. 추후에 군사정권에 들어서 학도호국단으로 개편됨에 따라 연대장이 학생회장의 역할을 했다. 송호근 서울대학교 교수는 서울고등학교 최초의 직선제로 당선된 학생회장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서울고등학교 학생회장단 선거가 런닝메이트 제도로 실시됐다. 한 번 당선된 사람과 그 사람과 함께했던 후보는 그 다음년도 선거에서도 유리했다. 이런 제도는 일방적으로 기존 학생회에 유리하다는 비판이 많았고 2012년 66대 학생회장단 선거 과정에서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났다. 67대 학생회에서는 이런 문제를 청산하고자 학생회칙 개정을 추진하였으며 이는 학생회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특권을 내려놓고 더욱 민주적인 선거 제도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학생회의 권한이 매우 적다. 모든 일을 전부 결제받아야 하며 내걸은 공약 추진의 대부분의 비용은 사비이다. 또한 성적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수업도 빼먹고 일하러 가야되고 학업에 좋지 않은 여건이다.
현재는 70기 학생회가 당선자 신분이며 2016학년도 2학기 부터 공식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교가 가사에 교명이 들어가지 않는 드문 케이스의 학교이다. 교가는 3절까지 있는데 이걸 OB들이 와서 자기들은 다 외운다며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 서울고등학교 동아리
서울고등학교는. 문과 계열에서는 경희신문부, 영자신문부[4], 영어토론부, 교지편집부가 유명하고 이과계열에서는 화학부(CERAS), 물리부(APCIS), 환경생물부(SECRET), 발명영재부(INFINITE) 등이 유명하며 예체능 계열로는 밴드부 (센세이션)가 있다. [5] 2013년도 까지만 해도 대학 입시에서 수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동아리 활동이 매우 활발했으나 현재에 들어서는 다시 내신의 중요하다는 마인드로 바뀌면서 동아리 활동이 비교적 소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3학년은 절대로 동아리활동에 참여 못하도록 막고 있다.[6] 하지만 여전히 서울고 생활에 있어서 동아리가 차지하는 부분은 굉장히 크며, 학생들도 대부분 학교내 동아리가 타학교에 비해 활발히 활동하는 것에 만족하고있다.
2015년부터 68대 학생회가 동아리 체계화를 활성화시킴으로서 신입생들이 동아리 선택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참고로 서울고 주변 학교들은 "대면식" 이라는 이름 하에 소개팅을 하는데 정말 씐난다. 문제는 가끔 개념없는 학교들이 그냥 서로 만나고 놀고 끝나면 문제가 없는데 서로 이상한 짓들을 한다는 것.. 일전에는 서울고는 아니지만 한 학교 동아리가 벌칙으로 여학생 쇄골에 술을 따라 마시게 했다 라는 소문이 돌았던 적도 있어서 결국 서울고 학생회는 학생 보호와 예방 차원에서 서울고 동아리들에게 대면식을 금지했다. 하지만 암암리에 그들은 씐나게 즐기고 있다고 한다. 해피엔딩
5 야구부
서울고는 전통의 야구부가 유명하다. 1954년에 창단 했으나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고, 1974년에 재창단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KBO 리그 포수 레전드인 김동수, 야생마 이상훈, 아기호랑이 안치홍, 2007년 신인왕인 금지어도 이 학교 출신이며 2015년 신인드래프트때 황금사자기 MVP를 수상한 서울고 투수 최원태는 신인으로써는 파격적인 계약금 3억 5천만원을 받고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했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문서 참조.
6 출신인물
과거 고교 비평준화 시절 경기고등학교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서울대학교에 학생들을 많이 진학시키는 학교로 유명했다. 최고로 많이 보낼 땐 1975년도 730명 졸업에 서울대만 재수생 포함 435명 보낼 정도.[7][8] 참고로 3등은 경복고등학교. 특히 자연계가 강한 걸로 유명했고, 한국 사회 전반에 다양한 분야로 동문들이 진출했다. 그런 가운데 분야별로는 강한 분야, 다소 약한 분야의 차이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랜 역사에 비해 정계, 관계 등의 진출이 다소 약하다거나 이공계, 의료계, 재계, 금융계, 언론계, 학계, 문화예술계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괄목할 활약상을 보인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개교 시(1940년대) 이북에서 자유를 찾아 월남한 피난민 자제들이 주류를 이루던 상황에서 지역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정계 입문보다는 재계나 학계, 의료계 등으로 많이 진출했고, 그러한 전통이 후배들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도 그렇고 지금도 고려대학교보다는 연세대학교를 비교적 많이 보내는 것 같다(...) 물론 당대 라이벌인 경기고등학교나 경복고등학교 등에 비교해서 그렇다는거지 정계 진출 역시 여타 학교에 비해서는 상당한 수준이다. 그리고 평준화 이후엔 망했어요.. 물론 강남 이전으로 그 격차는 과거 타 명문고교에 비해 덜했으나 그래도 과거 비평준화 시절과 비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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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수
- 김종진
- 문학진
- 심양홍
- 유영
- 임창욱
- 이은결
- ↑ 페이스북 전국 고등학교 최악의 교복 선정에서 2등을 차지했다
- ↑ 체육시간에는 입지 못한다.
- ↑ 인민군들이 입는 옷이랑 매우 흡사해 인민군복이라 불리기도 하다.
- ↑ 2013년에 선후배간 군기 문제로 몸앓이를 해서 잠시 활동이 중단되었었다. 현재는 복구되어 활동중임.
- ↑ 여기가 왜 유명하냐면 시나위의 신대철이 만들고 임재범같은 많은 음악가들이 이 동아리 소속이였기 때문.
- ↑ 하지만 명목적으로는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의 고3 담임선생님들이 반 학생 전부를 자습 동아리로 편성하고 동아리 활동시간에 자습시킨다
- ↑ 그래도 그 해 1등을 못했다. 당시 경기고는 서울대에 500명 이상 진학...
- ↑ 한 기수에서 장관급 6명을 배출했다 하여 유명해진 기수인 27회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가 바로 이 때이다.
- ↑ 동문회 홈페이지에서는 검색되고 있지 않지만 포털의 공식 학력에 기재되어 있고, 역시 대외적으로 여러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으므로 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