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나 졸리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여우조연상
제 71회
(1999년)
제 72회
(2000년)
제 73회
(2001년)
주디 덴치
(셰익스피어 인 러브)
안젤리나 졸리
(처음 만나는 자유)
마샤 게이 하든
(폴락)
이름안젤리나 졸리 (Angelina Jolie)
본명안젤리나 졸리 피트 (Angelina Jolie Pitt)[1]
시민권미국, 캄보디아
출생1975년 6월 4일,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직업배우, 영화 제작자, 작가, 사회 운동가
활동1982년 – 현재
신장169cm
가족조니 리 밀러 (1996 – 1999)
빌리 밥 손턴 (2000 – 2003)
브래드 피트 (2014 – ), 3남 3녀

1 개요

헐리우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배우 중 한명

각진 턱, 두꺼운 입술로 대표되는 헐리우드 미녀 섹시스타 여배우의 대명사

미국배우이자 감독.

배우 존 보이트[2]와 배우 마셸린 버트런드의 1남 1녀 중 둘째이다. 아버지쪽으로는 독일인과 슬로바키아인, 어머니쪽으로는 프랑스캐나다인, 네덜란드인, 독일인, 아메리카 원주민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예전에 아버지의 성 '보이트'를 공식적으로 지웠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는 아래에 설명되어 있다. 한때 아버지가 방송에 나와 딸의 목을 조르고 싶을 정도라고 말할 정도로 험악한 사이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툼 레이더>에서 사이 좋은 부녀로 출연해 애틋한 연기를 펼쳤다(…) 역시 배우들

트레이드 마크는 각진 턱, 광대와 입술. 특히 졸리의 입술은 두꺼운 입술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전세계에서도 인정하는 미국의 대표 헐리웃 여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스타라면 말 다했다. 또한 누구도 닮기 힘든 매우 독보적인 비주얼을 소유한 지라 오랜 기간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덤에 자리하고 있다.

2 할리우드 배우가 되기까지

대중들은 잘 모르지만 어린 시절부터 개인사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배우이다. 우선 아버지 존 보이트와 어머니 마셸린 버트런드은 졸리가 1살이 되던 해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아버지의 불륜. 게다가 이혼한 후에 보이트는 전처가 두 아이들을 키우며 어렵게 사는데도 전혀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애정이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의 문제로 가정이 파탄나는 상황을 겪다보니 자연히 졸리는 아버지를 심하게 원망하며 자랐다.

어렸을 때는 사람들과 껴안는 걸 싫어했다고 한다. 심지어 엄마와 껴안는 것도 싫어했다고. 10대와 20대 초반에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면도칼로 자해하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당시 난 다른 인간과 어떠한 유대감도 느낄 수 없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첫 영화 출연은 7살 때인 영화 'Lookin' to Get Out'에서. 아버지와 함께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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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0대 초에 연기 학교에 들어갔으나 2년 만에 중퇴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후에는 '장의사'가 꿈이었던 졸리는 '시체 방부 처리법'을 공부해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절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다시 연기학교로 돌아갔으며 ,16세때 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검은 옷만 입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번번히 오디션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이후 뉴욕대학교 예술학과에 진학, 연기를 공부하고 성실하게 졸업했다.

섹시한 액션 스타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아카데미상 1회, 미국 배우 조합상 2회, 골든 글로브상 3회를 수상한 의외의 연기파 배우다.

1993년 저예산 영화 <사이보그 2>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1995년 사이버 스릴러 영화 <해커스>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1997년 <조지 웰러스>로 골든 글로브상을 받으면서 전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졸리는 게리 시니스가 연기한 알라버마 주지사 조지 웰러스의 두 번째 아내 코르넬리아 윌러스 역을 맡았다.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며 골든 글로브상 최우수 미니시리즈/ 텔레비전 영화를 비롯해 여러 상을 수상했다. 또한 졸리는 에미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1998년 졸리는 HBO의 <지아>에서 슈퍼모델 지아 카란지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는 1980년대 중반 헤로인에 중독되면서 삶과 경력이 파괴되고, 에이즈로 삶을 마감한 카란지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이다.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상과 에미상에 2년 연속으로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골든 글로브와 미국 배우 조합상을 수상했다.

1999년 <본 콜렉터>의 연기가 호평을 받으며 점점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00년 <처음 만나는 자유>로 또 한번 골든 글로브를 수상하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 때까지 주로 TV 드라마나 인디 영화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대중적 인지를 얻고 스타로 떠오르게 된 작품은 2001년 <툼 레이더>다. 여러모로 조니 뎁하고 비슷한 경력. 영화 자체는 평은 안좋지만 그건 시나리오와 연출의 문제였고, 지금까지 많은 라라 크로프트 모델들이 나왔지만, <툼 레이더> 영화에서 원작 게임의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의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썰면 한 접시' 입술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인물이라는데는 다들 이견이 없을정도. 이후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여성 액션 스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2005년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2008년 <원티드>, 2010년 <솔트>, 2010년 <투어리스트> 등 액션 영화의 주역이 되어 연달아 성공시켰다.

2009년, 2011년, 2013년에는 <포브스>에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출연료가 높은 여배우'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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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로 섹시함으로 유명한데도 007 시리즈에서 본드걸이 되는 건 관심없다고 한다. 왜냐면 제임스 본드역을 맡고 싶어서.# 그리고 2010년 스파이 영화 <솔트>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그 염원을 이루었다.

2008년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체인질링>에서 부패한 정부관료들에 의해 어처구니 없이 자기 아이를 바꿔치기당하는 상황을 맞은 여성을 열연하며 관객들을 감동시켰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그러나 한국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2011년에는 <피와 꿀의 땅에서>로 영화 감독 데뷔를 했다. 2014년, 차기작으로 감독한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여 실존 인물 루이스 잠페리니가 전쟁에서 겪은 상황을 그린 영화 <언브로큰>이 개봉했다. 본 영화의 주요 캐스팅 중에는 미야비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 주인공인 루이 잠페리니와 안젤리나 본인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1억 6천만불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 성공한다. 이 영화에서 특히 일본군의 학대가 묘사된 부분이 많아 일본 우익의 공적이 된 듯하다.日本 이미지 훼손했다며 일부 웹사이트에서 악마라고 언급 안젤리나 졸리는 한국의 사주를 받은 반일 운동가

2014년 6월 3일 US 위클리는 졸리가 최근 영국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새 영화 <클레오파트라>만 찍고 은퇴하겠다는 의향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

그리고 조만간 정계 진출을 할 것이며 사회운동가로 전업할 것을 선언하였다.

3 자선활동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는 등 인권운동가로도 활동중이다. 국제적 봉사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UN 국제시민상의 최초 수상자가 되었으며, 수많은 국제인권상을 수상했다. 또한 2014년 영국 왕실로부터 훈장을 받았다.[4]
현재까지 유니세프에 개인이 낸 가장 큰 금액을 기부했으며, 10여년간 자비로 캄보디아, 시에라리온, 탄자니아, 파키스탄 등 30여개국의 난민 캠프를 방문하여 이들의 처지를 알리고 국제적 원조를 받도록 도왔다. 수단의 종교탄압을 비판하다가 수단정부에서 방문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또한 미 국회에 접촉하여 국제 난민을 위한 법을 지정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다. 2015년 8월에는 유엔난민기구 특사로 미얀마에 가서 아웅산 수지와 함께 미얀마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2005년에는 큰아들의 이름을 딴 매덕스 졸리 재단을 통해 캄보디아 최빈곤층에게 거주지, 수자원, 교육, 의료 등을 지원하는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재단은 이후 매덕스 졸리-피트 재단으로 명칭을 바꾼 후 아프리카에서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를 확대해나가는 중이다. 또한 캄보디아, 케냐, 아프가니스탄 등에 15개 이상의 어린이 학교를 세웠으며, 딸의 고향인 이디오피아에 자하라 어린이 병원을 건립하여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이를 치료하도록 돕고 있다. 출처

캄보디아의 매덕스와 이디오피아의 자하라 베트남의 팍스를 입양하여 피트와 함께 키우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 <피플>의 2012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인물 순위에서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어떠한 사람들은 졸리의 과거와 사생활로인해 비난하기도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매년 100억원 가까이를 기부하는 그녀의 선행과 아름다움을 부정 할 수는 없다.

4 연애사

첫 남편 조니 리 밀러하고 1996년에 결혼해 1999년에 이혼했으며, 두번째 남편 빌리 밥 손튼(나이차가 엄청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과 2000년에 재혼했으나 2003년에 이혼했다. 그리고 2005년에 현재의 약혼자인 브래드 피트를 만난다. 여담으로 양성애자이며, 첫 남편인 밀러와 결혼하기 전에 일본계 모델이자 배우인 제니 시미즈와 사귄 적이 있었다. 그러나 피트와 사귀고 나서 여자와의 관계를 더는 갈구하지 않게 되었다고 밝혔다. 배우 이미지도 양성적인 매력이 있어서, 레즈비언 역도 꽤 잘 소화해냈고 여성 팬도 일반적인 여성 섹시 스타와 달리 꽤 많다.

브래드 피트와는 2005년작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포스터를 나란히 함께 장식했다. 영화를 같이 찍은 해 전처 제니퍼 애니스톤과 피트와 엮이는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더욱 유명세를 탄다. 덕분에 포털 사이트에서 졸리 관련 기사가 인기 뉴스로 뜨면, 댓글에서는 꼭 졸리가 나쁘다느니 피트가 나쁘다느니 애니스톤이 불쌍하다느니 하는 댓글이 우수수 나왔었다. 덕분에 귀네스 팰트로는 묻혔다... 사실 직접적으로 증거는 없고 그러려니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일단 엮인 세 명은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없다고 일축했고.[5]

연애 초기까지만 해도 졸리의 괴팍하고 불같은 성격을 피트가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의외로 무난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특히 부부가 기부와 봉사활동에 자주 참여해 이미지가 엄청 좋아졌다. 할리우드의 대표 잉꼬 커플로 손꼽히며 둘이 합쳐 '브랜젤리나'라고 불릴 때가 많다. 피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인 샤일로[6], 녹스, 비비언, 입양한 아이들인 매덕스, 팩스, 자하라까지 모두 여섯 명이다. 지금도 추가 입양을 고려 중이라고 하지만 아직 입양 소식은 없다. 쌍둥이를 낳은 후, 잡지 '피플 앤 헬로'에 쌍둥이 사진을 판매했다. 무려 1400만 달러에! 이는 가장 비싼 유명인 사진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 돈은 졸리-피트 재단에 기부됐다.

2009년 별거와 결별설이 나돌았으나 본인들은 이를 완전히 부정하며 오히려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염장을 질렀다(…)
2010년 1월 24일부터 이혼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는 루머가 널리 퍼졌었다. 두 사람은 재산을 분할하기 위해 유명한 변호사에게 이혼 소송을 수임하고, 육아 문제에서는 공동 양육권을 갖기로 했다 카더라. 이로써 피트가 애니스톤과 다시 합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허나 두 사람은 애초에 결혼한 적이 없으니 이혼이니 뭐니부터가 웃긴 이야기.[7] 게다가 소문의 근원지가 되는 영국 신문사는 가십거리라면 뭐든지 싣고 보는 습성이 있어서 소스 신뢰성이 한없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 커플의 대변인도 이별설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피트-애니스톤 재회설이 간간히 제기되었지만, 애니스톤은 나름대로 다른 남자와 잘 사귀고 있다. 현재 애니스톤은 저스틴 셔룩스와 약혼한 상태. 그리고 비단 졸리가 아니더라도 한국에 흔히 번역되는 헐리우드 연예인들의 기사는 대부분 신빙성 없는 루머를 확인도 안하고 퍼오는 것이다. 졸리-피트-애니스톤 셋을 가지고 거의 소설수준의 기사가 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공식 인터뷰라든지 영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신뢰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2012년 브래드 피트가 청혼했지만, 두 사람은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하기 전까진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피트 지못미 201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2014년 8월 23일 브란젤리나는 프랑스의 가족 예배당에서 아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관련기사

2016년 9월, 안젤리나 졸리가 브래드 피트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였다. [8]

5 여담

졸리는 왕성한 자선 사업을 펼치고 있다. UNHCR 친선대사였고, 이때 공로로 UN 기자단으로부터 '세계시민상'을 받기도 했다.

졸리는 수입의 3분의 1은 쓰고, 3분의 1은 남한테 주고, 3분의 1은 저축하는 자신의 룰을 만들어 엄격히 지키고 있다.

3개 국가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 미국, 캄보디아, EU. 캄보디아에서 펼친 자연 보존 노력으로 캄보디아 왕으로부터 시민권을 부여받았고, 보스니아 전쟁 후 펼친 전후 복구 노력으로 유럽 명예 시민권을 받았다.

파일럿 면허를 갖고 있고, 경비행기를 소유하고 있다.

스턴트 대역을 쓰기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라라 크로프트' 역을 할 때는 스턴트 연기의 80%를 본인이 직접 했다.

얏타맨 실사영화에서 도론죠역에 캐스팅되었다. 그러나 본인이 거절했고 그 자리는 시모츠마 이야기에서 활약한 바 있는 후카다 쿄코가 안젤리나 졸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퀄리티가 극도로 떨어졌다. 만약 졸리가 도론죠 역할을 했더라면 얏타맨 제작비의 거의 전부를 졸리 개런티로 탕진한 꼴[9]이 되었을 것이다.

문신을 많이 하는 배우다. 한자 死(죽음)와 勇(용기)도 새겨져 있다.

PR을 담당하는 개인 퍼블리스트가 없다. 졸리 같은 A급 배우가 PR 담당자를 두지 않은 건 상당히 이례적. 모두 자기가 알아서 처리한다고 한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아버지 존 보이트와 어머니 마셸린 버트런드는 보이트의 불륜으로 인해 졸리가 1살이 되던 해 이혼했다. 이후 경제적 지원과 연락이 두절되었고, 졸리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기며 자랐다. 이후 졸리가 유명해지고 나자, 관심병 기질이 있는 존 보이트[10]가 미디어에 그녀의 사생활을 폭로하고 뒷담을 수차례 늘어놓는 바람에 둘은 사이가 더 벌어졌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보이트가 졸리를 정신 이상자로 모는 발언을 하기도 하고, 이후 캄보디아 아이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겨 둘 사이는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이 금이 갔다. 이후 약 7년 간 교류가 없다가 예비사위 피트의 중재로 그럭저럭 좋아졌고, 어머니의 마셸린의 사망을 계기로 완전히 화해했다고 한다. 2009년 12월 인터뷰에서 존 보이트가 "메간 폭스는 내 딸하고 비교도 안 된다"라고 밝힌 것을 보면 관계를 많이 회복한 것으로 추측한다.

원래 머리색깔은 아버지 존 보이트를 닮아 금발이었으나 어머니가 졸리가 4살 때 갈색으로 염색. 그게 맘에 들었는지 이후 이 색깔을 유지한다고.

어머니 마셸린은 딸이 밖으로 나돌다가 마약에 손댈까봐 차라리 남자친구가 14살인 졸리의 방에서 동침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그래도 걱정이 됐는지 옆방에서 잤다고.

젊은 시절에는 막장 이미지를 달고 다녔다. 마약, BDSM, 다자연애 경험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했고, 친오빠와 공석에서 딥키스를 해서 근친상간 루머가 돌기도 했다. 또한 피를 담은 병을 남편과 교환해서 가지고 다니는 등 괴팍한 행동으로 타블로이드지에 연속으로 기사거리가 되었다. 생방송 인터뷰에서 남편이었던 빌리 밥 손튼과 함께 등장하면서 "오 우리 방금 카섹스하고 왔어요"하고 자랑하는 등, 사람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중2병 기질이 있었던 듯. 흑역사

그러다 철이 든 계기가 된 것은 2001년도에 툼 레이더를 찍기 위한 캄보디아 방문이었다. 내전으로 인한 비참한 상황을 목격한 졸리는 자신이 너무 편하게 살았음을 깨닫는다. 이 때부터 캄보디아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빈민 지원과 환경보호 운동을 시작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졸리는 첫 아이인 매덕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매덕스를 입양하여 어머니가 된 후 자신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자신을 학대하는 성격이라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육아를 포기하고 있었으나, 캄보디아에서 봉사하며 아이들을 돌보았던 경험에서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매덕스를 키우며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계속했고, 피트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둘이서 함께 국제적으로 선행의 범위를 넓혀나갔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너무나도 충만했고 삶의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임신하여 쌍둥이를 낳았고... 현재 피트와 졸리는 매덕스(2001년생, 캄보디아에서 입양), 팍스(2003년생, 캄보디아에서 입양), 자하라(2005년생, 에티오피아에서 입양), 샤일로(2006년생), 녹스(2008년생), 비비엔(2008년생) 여섯 아이를 키우고 있다.

2013년 5월에 양측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 가족력상 암 유발 유전자[11]가 있어서 그대로 지낼 경우 유방암 발병 확률이 87%나 되었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졸리의 어머니 마셸린 버트런드는 난소암으로 2007년에 사망했는데(향년 56세) 이 암 유전인자를 졸리가 물려받았다. 배우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 성형(유방 재건)수술을 통해 유방의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3년 6월 루퍼트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 중 두 곳인 News Corp & News International에 졸리-피트 부부가 소송을 제기했다.# 2004년부터 2005년 한창 이 둘의 관계를 놓고 떠들썩한 와중에 졸리 주변인과 졸리의 휴대전화 메시지와 통화를 도청 해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결별설을 크게 터뜨렸던 것 역시 이쪽 회사였다고.

꽤 일찍 폐경이 찾아왔다고 한다.

2015년 3월에 난소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되어 난소 절제 수술을 받았다. 관련기사 졸리는 모계로부터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율이 매우 높은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어머니, 외할머니, 이모 등 외가에서만 3명이 관련 암으로 사망한 바 있었다. 졸리의 경우에도 최근 난소에서 악성 종양이(암은 아니라고 한다) 발견되었고, 이미 폐경에 접어들었기에 난소절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대신 자궁에 여성 호르몬 패치 삽입 시술을 받았음을 밝혔다.

졸리는 "이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명확해졌다.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 손주들도 만나보고 싶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아이들이 나중에 '우리 어머니는 난소암 때문에 사망했다'라는 말을 하게끔 만들고 싶지 않다" 라고 인터뷰에서 토로했다.

2015년 3월 성을 안젤리나 졸리-피트로 바꿨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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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 역시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보톡스 안하고 스스로도 늙어가는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이상할 것이 없다고 발언했다. 본인이 이미 미모 절정까지 찍고 왔기에 한점의 후회도 없는 듯. 팬들도 졸리가 늙는걸 부정하고 계속 성형수술을 하는 또래 배우들보다 훨 낫다며 찬양하는 중이다. 좌우지간 클래스는 영원하다.

여러 연예 매체들의 카더라 소식에 따르면 섭식장애에 걸려 굉장한 저체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주변 사람의 이야기들 뿐이고 공식적으로 확인이 된 건 없다. 관련기사

  1. 원래는 Angelina Jolie Voight였지만 보이트(Voight)라는 성을 공식적으로 지운 상태. 2015년에 남편인 브래드 피트의 성을 따라 피트로 바꾸었다.
  2. <미션 임파서블>의 팀장, <아나콘다>의 뱀 사냥꾼,<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NSA간부 역 등으로 익숙한 배우.왠지 전부 악역이다. 그래도 진주만의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트랜스포머의 국방장관 같은 선역도 곧잘했다럼스펠트 닮은 건 안자랑.
  3. 틴에이저 때의 졸리. 모델일을 하며 찍은 사진이다.
  4. 외교무대에서 주어지는 훈장인 '세인트마이클앤드세인트조지 훈장' 2등급을 명예 훈장 형식으로(honorary DCMG) 받은 것이다. 이와 같이 영국에서 외국인에게 훈장을 부여할 때는 정원에 구애받지 않는 명예 훈장 형식으로 주어서, 그것이 2등급 이상의 훈장이라도 기사작위(Sir or Dame)와는 관계가 없도록 한다. 외국인이 영국의 군주에게 기사로서 충성할 필요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졸리는 자신의 이름 뒤에 이번에 받은 훈장의 약칭 'DCMG' 를 명기하는 식으로 수훈사실을 표시할 수 있다. 첨부된 기사 본문 내용 중 "졸리는 이에 따라 이름 뒤에 'DCMG'를 사용할 수 있지만, 영국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를 '데임 앤젤리나'라고 부를 수는 없다."가 바로 이런 의미이다.
  5. 애니스톤의 절친인 코트니 콕스도 둘은 결혼생활동안 서로에게 충실했다고 했을 정도다.
  6. 원래 이름은 샤일로였지만, 부모가 샤일로 본인의 뜻을 받아들여 존이란 이름도 쓰기로 했다.사실이 아니다. 피터팬을 읽고 그에 감명받아 존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고 피트가 토크쇼에서 말한 것이 찌라시를 통해 루머로 퍼진 것. 샤일로의 톰보이적인 느낌에 대해서는 오빠들에 대한 동경 등등 이야기가 많지만 사실 외할머니대부터 내려온 집안 내력이라고 한다. 졸리 자신도 어린시절 그렇게 행동했다고.
  7. 미국의 동성애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들은 결혼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췄다. 참고로 둘은 영향력 있는 LGBT 서포터즈다.
  8. BBC
  9. 클레멘타인은 진짜로 제작비의 거의 전부를 스티븐 시걸의 개런티로 탕진했다.
  10. 2014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시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미디어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관종 기질이 있다.
  11. BRCA 돌연변이 유전자. 유방암, 난소암, 자궁내막암의 발병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