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전투조종사)

1 개요

대체로 적기를 5기 이상 격추시켰을 때 에이스 칭호를 받게 된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독일 공군,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의 독일 제국 공군 파일럿들만 죽 늘어놓으면 5대가 무슨 유치원생 장난질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독일군이 우수한 조종사를 휴식은 거의 없이 미친듯이 전선에서 굴려서 나온 특수한 케이스인데다가 독소전쟁 개전 초기의 소련 공군 조종사들은 독일에 비해 기체와 파일럿 숙련도가 미숙했던지라 이렇게 엄청난 스코어가 나온 것이다. 초창기의 소련 전투기들은 말그대로 하늘을 나는 관으로서 고고도에서는 엔진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 저고도에서 싸워야 했다. 물론 독소전에서 공중전은 대체로 중저고도에서 벌어지기는 했지만 고고도로 올라가지 못한다는건 고도의 우위를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고 이는 공중전에서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 게다가 고고도에서 출력문제는 대전기간 동안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반면에 독일 공군은 최상급의 성능을 가진 항공기와 수년간의 실전으로 단련된 조종사들이었으니 소련 공군은 탈탈 털리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서부전선을 보면 독일공군 파일럿들은 그야말로 "혹사"당했고,[1] 연합군보다 출격 횟수가 무려 5배에서 10배까지 많았다. 그에 따라 교전횟수도 당연히 연합군보다 많았으며, "평균적인" 5기 격추 파일럿은 연합군은 1,000명이 넘어가는데[2]적지만 독일군은 880여명 밖에 없다. 그야말로 격추댓수의 부익부 빈익빈, '살아남는 운좋고 실력좋은 놈은 독식하고, 운없고 실력없는 놈은 사망할 수 있는'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신병 조종사가 참가하면 그의 운명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에이스가 되거나, 하늘에서 제대하거나 물론 그중 소수의 독일 공군 에이스 조종사들의 기록에는 의무적인 출격 이외에도 본인이 원할 때 출격하고 얻은 기록이 포함 되있는 점을 볼 때 출격 자체를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인원의 여유가 좀 있던[3] 미군이나 영국군은 일정 이상의 전과를 낸 사람을 후방으로 빼서 교육이나 지휘 계통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해서[4] 일정 수준 이상의 격추수가 쌓일 수 없기도 했다. 다만 이 로테이션 제도는 미 육군 항공대 네에서는 전부 실시한 것은 아니었다. 아예 이런게 없는 부대도 있었을 정도이다. 사실 여유가 있던 수준이 아니었다, 미군은 대전 후기에는 정원 14,000명의 정규사단 20개를 편성할 수 있는 300,000명의 파일럿을 본토에서 양성하고 있었고, 그 정도면 지금 나가있는 조종사들이 다 쓸려나가도 48년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계산하에 비행학교 정원을 줄이고 훈련강도를 높였다. 미국이 대전 중 생산한 공군기의 숫자가 20만대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른 나라는 항공기가 파일럿보다 많았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전체적인 조종사의 질을 확 높이는데(일종의 '상향 평준화') 아주 좋은 역할을 담당했다. 우선 조종사들은 일정 전과를 달성하면 안전한 후방으로 배치될 수 있으므로 전방에서 언제 교전으로 전사할지 모를 부담감을 던 채 의욕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또한 일선 조종사들이 실전에서 쌓은 경험들은 교범만으론 배울 수 없는, 새내기 조종사들에게 교전에서 살아남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었다.

물론 이렇게 좀 성과를 쌓으면 후방으로 송환하는 상황에서도 20대 이상을 잡는 연합군 에이스 조종사도 놀랍고, 그렇게 숫적으로 불리했음에도 살아남아서 전과를 낸 독일군 조종사들도 엄청나다.

참고로 귄터 랄의 인터뷰에서 이 질문이 나온 적 있는데, 간단히 3항목으로 설명해 주셨다. 첫째, 일단 독일군은 동부 전선에서도 활동했고, 여기는 적들이 널려 있었다. 게다가 위에 언급된 것 처럼 대전 초반부는 물론 중반기(!) 까지만해도 야라레메카[5]의 향연이었던데다 소련군의 파일럿 스킬도 보잘것 없었기에 양민학살이 벌어진 것이다. 둘째, 연합군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서부 전선을 통털어 엄청난 규모의 연합군 항공대가 마주할 수 있었던 독일군 기체는 얼마 없었다.[6] 애초에 격추할 적이 없는데 격추수가 낮은 것은 당연했다. 셋째, 위에 언급된 것의 반복으로, 독일군 조종사들은 하늘에서 요단강 건널 때 까지 싸웠기 때문.[7]

저격수가 유명해지려면 적어도 저격으로 해치운 적의 숫자가 몇십, 몇백을 자랑하는게 일반적인 반면에 이쪽은 5대만 잡으면 되니 상대적으로 숫자가 꽤 떨어지는데, 이 5대라는 숫자가 저격수에 비해서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저격수의 살해수는 다수의 일반 보병과 약간의 '동업자'를 포함한 것으로 '동업자'의 비율은 다른 희생자에 비해서 절대 소수인 반면에[8] '에이스' 칭호를 받는 전투기 조종사는, 비록 전투기 조종사가 공군 내에서도 상당한 정예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자신과 동급 또는 그 이상의 훈련을 받은 '동업자'와의 전투에서 5대를 잡을 때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을 뜻하니 대단한 것이다. 물론 이 쪽은 지면 저격당해서 사망하는 저격수 끼리의 대결과는 달리 전투기는 재수 좋으면 탈출해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 패배가 반드시 사망을 뜻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당연하지만 재수 좋으면. 그리고 병신될 확률도 감안해서. 일단 탈출했다 하더라도 저고도라면... 그야말로 고어물을 찍게 된다. 그리고 탈출이 가능한건 어디까지나 탈출을 안하면 조종사가 직접 맞지 않더라도 거의 100% 죽기 때문에 마련된 장치일 뿐이다. 자신의 바로 뒤에 수백kg~수t 단위의 연료와 폭발물을 단 채로 적의 폭발물을 탄두로 가진 미사일이나 철갑+소이탄두의 기총 소사를 받는 상황이다. 오히려 지상의 보병이야 말로 '동업자' 상대로 싸울 때는 즉사할 부위를 맞는게 아니라면 후방으로 후송되서 살 수 있다는 기대라도 있지, 조종사는 부상 입은채로 탈출한다면 구조될 때 까지 살아남는다고 보장도 못한다.

현대전에서 자기 전투기에 적는 격추수는 자신이 격추되면 0대로 돌아온다는 소리가 있는데, 농담이다. 일단 베트남 항공전에서 유명해진 미 해군의 랜디 '듀크' 커닝햄이 5기 격추해 에이스단 날 SAM에 얻어맞고 격추당했지만 여전히 에이스로 기록된다. 참고로 베트남 항공전 최고 킬수 기록은 월맹군의 응우엔 반 쿡의 9기. 동 시기 미군의 전설적 파일럿 로빈 올즈 대령의 격추수는 4기로, 에이스 기준에도 미달하는 수준이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적 전투기를 다 제압한 뒤 자기 윙맨에게 미사일 발사를 시켰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베트남 항공전 최강자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미군은 에이스 달면 후방으로 빠지는데, 이 양반은 베트남에 계속 남아서 싸우고 싶어 킬수를 조작해 줄였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응우엔 반 쿡의 킬수가 1위인게 맞다. 현재 제트기 에이스 최고 킬수는 17기 기록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의 지오라 '호크아이' 엡스타인(전역 후 엘 알 항공사에서 기장 근무)이다. 2차대전 때의 루프트바페의 네임드 에이스들도 다들 두어번 격추당한 경험이 있었다.

간혹 가다가 자기가 올린 전공을 동료에게 넘기고 신고하지 않는다거나(독일의 발터 크루핀스키 소령이나 미해군의 데이비드 맥켐벨 중령) 일부러 출격회수와 격추기록을 누락시켜서 더많은 공중전을 하고자 했다는 인물도 존재한다.(미군의 도날드 브레이크슬리 대령)

일부 에이스들의 경우 격추 횟수에 소수점 이하의 수치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건 적기를 격추는 시켰는데 부서지기만 하고 살아서 도망쳤다는 뜻(...)은 아니고, 분명 격추를 시켰으나 혼란한 전장 상황 때문에 누가 격추시켰는지 정확히 알 수 없을 때는 같은 편대원들에게 격추 수를 나눠서 계산했다. 가령 아군의 10명의 조종사가 적기를 5기 격추시켰는데, 이걸 각각 누가 격추시켰는지 조사를 해도 알 수가 없는 경우 각 조종사에게 0.5기의 격추수를 배분하는 것.

상술한 이유들 때문에 2차 세계대전에서 세워진 기록들은 현대에 다시 깨어지기는 몹시 힘들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전술기들은 극도로 복잡해지고 비싸졌으며 조종사들 역시 극도로 전문화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에 그렇게 극단적인 우세가 가능하다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에리히 하르트만,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군터 랄급 슈퍼 에이스 조종사만으로 이루어져 있어도 한국 공군은 쓸려나간다. 더군다나 현대 전투기가 몇달만에 뚝딱 생산해낼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말이다.

2 나무위키에 등재된 에이스들

밀덕들은 이들을 흔히 에이스라고 하지만 전투기와 달리 전차의 경우는 격파수를 아무리 늘려도 공식적으로 에이스라고 부르진 않는다. 일단 혼자 모는 물건이 아니니...[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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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지어는 (비록 사촌형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1차대전에서 굉장한 끗발을 날린 에이스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게다가 이사람은 원수다!)까지 전투기 조종사로 직접 출격하는 막장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2. 미국은 1297명, 영국도 영연방을 포함하면 1200명을 넘어간다.
  3. 헌데 항공기 조종사의 총원은 독일이 더 많다. 물론 항공기 조종사가 전부 전투기 조종사인건 아니고 미군과 영국군을 합치면 독일군보다 많아지기는 하는데 영국이 19만명, 미국이 24만명인데 독일은 34만명이다. 물론 미국은 일부가 태평양에 배치되어 있었고 독일은 동유럽에 주로 배치되어있었기는 하지만.
  4. 강제송환은 아니고 조종사 본인에게 후방에 배치될 수 있는 선택권을 준 것. 물론 대부분의 경우 후방 근무를 선택했지만 실전에 환장한 이들도 물론 있었다.
  5. 특히 당시 소련제 비행기들은 목재로 만들어져 있었던지라 MG151-20 mm HE탄두 앞에 제로센처럼 쉽게 불타올랐다. 그나마 제대로 된 기체들이 후반기에 나오게 되는 이유는 랜드리스로 양질의 재료가 공급된데다가 그동안 생긴 설계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6. 아돌프 갈란트가 압도적인 연합군 전투기의 숫자와 조종사의 숙련도에 기겁하기도 했을 정도다.
  7. 사실상 나치독일이 패망했다봐도 되는 1944년 말에도 소련공군과의 전력차는 7배이나, 교환비는 루프트바페가 3배 높았다. 다만 동부전선의 경우 정말로 죽고 죽이는(만약 운이 좋게 착륙에 성공하거나,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죽는다고 봐야되는) 곳이라 파일럿의 사망률이 높았다고 한다. 또한 파일럿들에게 있어서 탈출해도 뭘하든 일단 자신의 비행기를 잃으면 확실하게 죽는다라는 부담감이 심했을 듯. 실제로 독일 에이스의 경우 상당히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8. 그래도 꽤 비율을 차지하긴 하는게, 저격수의 주 임무 중에는 자신의 동업자를 처리하는 '역저격'이 있어서 동업자와 싸울 기회가 나름 존재한다. 외부 지원이 없이 보병만으로 상대한다는 전제하에서는 저격수를 처리하기 가장 좋은건 똑같은 '동업자'니까... 사실 저격수를 상대하기에 가장 좋은건 동업자가 아니라 포병, 공중 폭격, 20mm 이상의 기관포나 박격포, 시가전이라면 대전차 로켓이나 대전차 미사일 등의 중화기 지원을 불러 저격수를 매복했을 거라 보이는 지역이나 건물을 통체로 쓸어버리는 거다. 그러나 실제론 이러한 화력으로 쓸어버릴 수 없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고 이런 대응은 시간이 걸리기에 결국 적을 관측하는 눈이 되어 줄 수도 있는 저격수의 엄호는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카를로스 헤스콕 같이 역저격이 저격 회수의 절반인 괴수도 있지만 이건 저격수 전체로 봤을 때는 극소수.
  9.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막장짓으로 유명하지만 엄연히 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에이스 맞다.돼지가 될 줄은 예상못했지만(...)
  10. 스트라이크 위치스 덕분에 모에선 맞은 케이스가 상당하다, 아니 거의 다다.
  11. 현재도 지상공격기 가지고 기록이 진행중이나 아직까지 이 사람이 격파한만큼 실적 올린 사람은 없다.
  12. 대전차포는 기본적으로 위장을 하여 쏘기 전까지 위치를 알기 힘든 경우가 태반이다. 오토 카리우스도 대전차포 한 대의 가치는 전차 2대의 가치가 있다고 말할 정도. 실제로도 많은 전차들이 매복한 대전차포의 먹이가 되었다.
  13. T-34 에이스로 종전까지 6~70대 이상을 격파하였다. T-34로 가장 많은 전차를 격파한 인물(...).
  14. SS 판터 전차 에이스. 크니스펠과 함께 몇 안되는 부사관 에이스. 아르덴 대공세 당시, 판터를 타고 미군부대를 유유히 돌아다닌(...) 만헤이 활극과 교차로에서 셔먼 9대를 격파한 바르크만의 교차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전후 소방관으로 일했으며 2009년에 사망.
  15. 티거 2 에이스. 소련기갑사단을 단독으로 급습하여 39발을 발사하여 39대의 적전차를 파괴한 에이스. 전쟁 말까지 후퇴하면서도 100대 이상의 소련군 전차와 29문 대전차포를 격파. 전후까지 생존하여 1997년 8월 8일 사망.
  16. 나스호른 에이스. 나스호른은 강력한 88 L 71과 뛰어난 기동성을 대가로 전투실 장갑이 10mm 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소총탄조차도 맞으면 승무원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17. 격파 대수 100대. 애칭은 '발티'. 미하일 비트만의 포수. 비트만의 격파기록을 논할 때 볼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
  18. 격파대수 12대지만 그가 유명한 것은 레들리 월터스와 함께 미하엘 비트만을 격파한 것으로 추정 되기 때문.
  19. 조 에킨스와 함께 비트만을 격파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 총 18대를 격파했으며 2015년 4월 23일 사망했다.
  20. 독일군 '차량' 258대 격파 셔먼의 능력을 굉장히 잘 사용한 사례 전차도 12대 격파했다고 함. 이 중 절반 정도가 5호 전차 판터이다
  21. T-34/85로 쾨니히스티거 3대를 격파한 이야기의 주인공. 14대 격파.
  22. 격파대수 50여대로 T-34/76 에이스이자 연합군 최대의 격파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전사.
  23. 일본의 단 둘뿐인 전차 에이스. 할힌골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24. 하지만 독일 전차에이스 32명의 격파 수만 모으면 총합이 3000대+@가 넘어간다. 에이스라고 안하기엔 또 너무 괴물같은 전적들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