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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드라마)의 일본 인물들을 다루었다. 일본 인명의 경우 해당국에서 불리는 이름과 한국식 이름이 다르므로 구별하여 서술한다.
과거 《대왕 세종》과 《정도전》 등에서 일본과 명나라 사람들이 각국 언어로 연기를 펼쳤기 때문에, 《징비록》에서도 일본측 인물들이 일본어를 사용할지 궁금해 하는 시청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앞선 두 작품은 외국인들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고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했다. 그나마 명나라 고정배역 비중이 좀 높았던 《대왕 세종》에서조차도 간헐적으로만 등장하는 조연이었고 배역 수도 흔치 않았다. 거기다 조선 말을 익혔다는 설정이 있어 어느 순간에는 명나라 사람들끼리 조선말을 쓰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징비록》에서는 일반적인 사극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도 한국어로 연기를 하는데, 외국인(남만인, 조선인)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일본어로 연기한다. 외국인과의 접촉 시간이 가장 길었던 4화 조선 통신사 접견 장면에서 도요토미와 가토 등이 모든 대사를 일본어로 연기하는데, 일본인끼리 대화할 때는 한국어로 연기하더라도 일본어로 말하고 있다고 설정된 것이다. 이는 당시 소 요시토시 등이 조선과 도요토미 양 측을 다 속일 수 있었던 이유가 언어의 차이덕이었기 때문이다. 고증을 위한 필요요소인 것.
또 하나의 특이점이라면 일본인끼리는 인명, 지명의 독법을 '도요토미 히데요시, 쓰시마, 다치바나 야스히로'와 같이 일본식으로 표현하며, 조선측은 '풍신수길, 대마도, 귤강광'과 같이 조선식 한자 음독을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청자의 혼동을 막기 위해 기존과 달리 일본식, 조선식 음독을 동시에 자막으로 표시해준다.
일본측 고증에 대해서는 NHK의 자회사의 협찬을 받았다고 한다. #[1]복식이나 인물이나 자문 제대로 안받은것 같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도요토미 휘하 가신들이 실제 역사에 비해 묘하게 나이를 먹었다. 임진왜란이 터진 1592년 당시래봐야 각각 가토 기요마사는 만나이로 30살, 이시다 미츠나리는 32살이고, 희끗희끗한 수염마저 나있는 고니시 유키나가는 37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생을 많이 해서 일찍 늙었다는 농담도 있다. 그나마 젊어보이는 우키타 히데이에 역시 실제로는 20살의 새파란 애송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동안이나 노안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그 인물이 나이에 맞는 외모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참고로 비교적 짧은 화수와 적은 제작비 때문인지 언급만 되고 안나온 무장들이 꽤 많다. 대표적인게 초장부터 주구장창 언급되서 한번쯤 나오나 했다가 결국 끝까지 안나온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고 그 외에도 아들내미는 나오는데고니시가 국서위조할때 언급된 구로다 간베에, 그냥 자기 부대가 당했다고 언급된 안코쿠지 에케이, 한산도 대첩 직전 마에다 토시이에에게 가토 기요마사와 세트메뉴로 언급되는 후쿠시마 마사노리, 자기 분량은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다 뺏기고 고니시의 대사 한 마디로만 언급되는 시마즈 요시히로등이 있다.
등장인물들은 일본의 전통문화가 밥상 뒤집기라는 것을 널리 알려주고 있다.(...)
1 도요토미 가문
- 네네 - 오지영
도요토미의 정실 부인. 자식이 없으며 그 때문에 츠루마츠의 생모인 요도와 묘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듯 하다. 그러다 츠루마츠가 죽자 히데쓰구를 히데요시의 양자로 들이도록 마에다에게 부탁한다. 이후 피임약을 요도에게 강요하다가 도요토미에게 들켜 피임약을 뒤집어 쓰는 굴욕을 겪기도 하며 요도가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자 경계하는 눈빛을 보인다. 일본사극에선 여유만만에 남편앞에서도 안주눅드는데 여기선 좀 약하다...
이 요도가 아니다!
도요토미의 측실. 도요토미의 유일한 아들인 츠루마츠의 생모로서 병약한 츠루마츠를 걱정하며 츠루마츠의 죽음에 슬퍼한다. 11화에서 네네에 의해 도요토미 히데츠구가 관백의 자리에 오르자 이에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여 도요토미가 위로하는 등 쩔쩔매게 한다. 이후 24화에선 도요토미가 어머니의 사망에도 조선행을 강행하려하자 아들을 회임하였음을 고백한다.
여담으로 징비록 갤러리와 야갤에서는 배우의 외모로 주목받는다.
- 츠루마츠 - 황원
CG인줄 알았다.
도요토미와 요도도노의 첫째 아들. 병약해서 도요토미가 걱정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2화에서 등장했는데, 배역을 맡은 생후 9개월 된 아기가 생애 첫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시간을 포함하여 무려 6시간이 걸린 촬영에서 단 한 번도 울지 않고 다양한 표정을 지어서 현장의 스태프들이 놀랐다고 한다. 링크로 걸린 기사에도 아기의 다양한 표정이 나오는데, 히데요시 역을 맡은 김규철을 빤히 쳐다보면서 뭔가 오묘한 표정을 짓는 게 인상적이다. 덕분에 '징비록 츠루마츠'라는 검색어도 완성되었다.
4화에서 역사기록대로 조선통신사가 보는 자리에 히데요시 품에서 오줌을 쌌다. 7화에서 죽지는 않지만 몸이 허약해서 히데요시가 걱정하는 모습이 나온다. 8화에서 좀 나아지나 했지만 9화에서 결국 죽고 만다. 이후에도 도요토미가 츠루마츠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조선땅을 선물 하겠다느니 어머니와 츠루마츠의 유골과 힘께 조선으로 가겠다는등 자주 언급 되기도 한다
- 도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 풍신수차) - 유세형
도요토미의 누나인 닛슈의 아들. 네네와 마에다의 요청에 따라 히데요시의 양자가 되어 관백에 취임한다. 1595년 히데요시에 의해 모반 혐의로 할복자결을 명받았는데, 히데요시에게 자신의 딸만은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도요토미와 요도도노의 둘째 아들. 히데요시가 히로이마루를 안으면서 츠루마츠처럼 아비보다 먼저 떠나지 말라고 언급하는데, 옆에 있던 네네가 츠루마츠는 그만 잊으라고 한다.
- 미츠키 - 송보은
츠루마츠를 돌보는 여인. 분홍색 옷을 입고 항상 히데요시 근처에서 츠루마츠를 보살피고 있다. 그와 겸해서 히데요시의 차 담당. 히데요시에게 국화차와 명나라 차를 내온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에도 시대 복장을 하고 나온다.[2]
2 일본측 주요 인물
-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우희다수가) - 김리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하대를 하고 존댓말을 듣는 만큼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것으로 묘사된다.[3] 애초에 히데요시의 양아들인데 이후 8군 사령관으로 임명된다. 그리고 한양을 점령한 고니시에게 진군을 멈추고 한양에서 민심수습 및 대민정책을 시행 할 것을 명한다. 그러나 이순신에 의해 도도 다카도라의 수군이 괴멸되고 보급로가 차단되었다는 소식에 급히 대민정책을 중지시키고 평안도와 남도에서 조선군이 압박을 하려하자 당황하면서 대비에 나선다. 이후 곽재우가 일으킨 군사들에게 남쪽에서 올라오는 군사들이 공격받자 의병에 대해 조선에 그런 군대가 있었냐면서 크게 분노하면서 조사하라고 부하들에게 닦달한다.
26화에서는 고니시가 심유경과 50일간 휴전을 맺자 분노하지만 고니시와 제장들의 설명에 납득한다. 24화 후반에 소수의 병사들을 이끌고 평양성으로 가다가 이일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는다. 이후 분노하여 조선 왕들의 무덤을 도굴하겠다고 난리친다. 32화에서 행주산성의 권율군을 공격하나 대패... 본인은 변이중 화차에 저격당해 또 부상을 입는다.
총대장이라 쓰고 바지사장이라 읽는다이라지만 현실은..가토와 고니시가 싸울 때마다 호통협박을 치며 수습하고 있다.(...) 조선군에게 습격 당한 것보다 부하들 싸움에 고통 받는 우키타
45화에서 고니시로 인해 본국 소환을 명령 받은 가토가 또 다투자 등장하여 싸울 거면 영지를 걸고 캐삭빵 싸우라고 하면서 둘의 싸움에 질렸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 히데요시를 제외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5]이기도 하다. 히데요시는 별명인 '마타시로'로 칭하는데 고증 오류이다. 마에다 토시이에를 친근하게 부르려면 아명인 이누치요(犬千代)나 별명인 마타자에몬(又左衞門) 등으로 부르는게 맞다. 전국시대를 다룬 소설이나 만화책, 드라마에서 항상 나오는 유명한 이름인데 어디서 마타시로란 이름을 듣고 가져다 붙였는지 모를 노릇.[6] 마타시로(又四郞)는 엉뚱하게도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별명이다.
첫 등장이 나름 인상깊었는데 히데요시가 딱봐도 고니시, 이시다, 가토같은 조무래기들과는 다른 대접을 했다는 점, 도쿠가와나 히데요시 둘 중 하나라도 조선에 가면 안 된다 하여 논파했다.[7] 이는 실제로 마에다 토시이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이자 심복일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막역한 사이였음을 반영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달리 히데요시가 그 만큼은 믿을만한 친구로써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때문이다. 토시이에 본인도 작중에서는 히데요시의 견해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직언을 서슴치 않지만, 최측근답게 밀어줄때에는 확실히 밀어주고 있다. 작중에서는 어째 구로다 간베에의 포지션도 함께 맡은 느낌.
츠루마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의원들을 죽이는 도요토미를 만류하고 선봉장 선정에서 가토보다도 더 우수하게 작전을 짜는 모습에 고니시를 선봉장으로 추천한다. 11화에서는 히데쓰구에게 내정을 맡기자는 네네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를 하며 이를 도요토미에게 권한다. 13화에서는 도요토미가 조선으로 가고 싶다며 자신의 의견을 묻자 반대한다. 도요토미가 내심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지만 도쿠가와를 경계해야한다며 단호한 시라소니 눈빛으로 반대의 뜻을 밝혀 태합의 뜻을 물리쳤다. 15화에서는 히데요시에게 승전을 축하하면서 전후 조선에 휴식용 별장을 만들자고 하며 이시다의 말에 따라 조선왕을 영주로 삼자고 한다. 그러나 조선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는 이시다의 말에 히데요시와 마찬가지로 반대를 한다. 16화에서 히데요시와 함께 세계지도를 보며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명나라내의 반란소식에 명나라 접수가 쉬워진다는 히데요시의 의견에 동의하며 수로를 이용하자는 이시다의 의견과는 달리 명나라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수륙에서의 양동작전으로 명을 정복하자고 조언한다. 덤으로 요동에서 세력을 키우는 여진족, 특히 누르하치를 경계하고 있다. 17화에서는 히데요시를 비롯한 일본인들과는 달리 조선과 일본의 풍습이 다르다며 조선왕이 도망쳤을 가능성을 말한다. 18화에서 히데요시와 바둑을 두고 한 수 물려주라는 히데요시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한다. 21화에서는 계속되는 수군의 패전에 대해서 수군장수들의 복귀를 청한다. 22화에서는 이순신의 상대로 칠본창 중에서도 실력과 명성이 떨어지는 와키자카가 발탁된 것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드라마 내내 히데요시의 상담 역으로 등장했으며 히데요시의 최후 자리에도 함께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9] 고니시가 1년만에 나고야성을 지으라는 도요토미의 명에 반박하려고 나서려 하자, 고니시를 말려 결과적으로 그의 목숨을 구하는 결과를 내고, 본국에서 보급을 맡는다. 11화에서는 일본 본토와 교토 방어 및 본국 반란 집안을 위해 13만(나고야: 10만명 + 교토: 3만명)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도요토미에 의해 한달 반 안에 조선 도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할복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한 고니시를 걱정하는 등 고니시한테 은근히 우호적인 행동을 보인다. 아마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고니시가 서군에 참가하는 이유를 만들기 위함인 듯 싶다.이 드라마는 대체 징비록이야? 태합입지전이야? 14화에서 고니시가, 협상을 위해 본군의 분위기 조성을 해달라는 밀서를 받는다. 15화에서 승전에 축하하면서 조선왕을 죽이는 대신 영주로 삼고 조선 민심을 수습하자고 했으나 그 부분에서 바로 히데요시와 마에다의 쓴소리를 듣는다. 16화에서 명나라내의 반란소식을 전하며 인천 제물포에서 모든 병력과 물자를 군선에 싣고 해로를 통해 명나라를 공격한다는 의견을 낸다. 17화에서 병사들의 피로와 사기를 생각하여 1년정도는 병사들을 휴식해야 하고 조선민심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내 히데요시가 협박을 하자 바로 굴복한다. 이후 18화에서 부산에 가 전황설명을 듣는다. 24화부터는 고니시와 합류한다. 32화에서 행주대첩에 종군하나 대패... 여담으로 헤어스타일이 다른 일본 장수들과 약간 다른데 이는 일본 드라마 천지인에 나오는 이시다 미츠나리의 헤어스타일을 모방해서... 늙은 오구리 슌
http://img.kbs.co.kr/cms/drama/jing/about/cast/cecast/icsFiles/afieldfile/2015/02/06/cast1.jpg
자신의 영지인 쓰시마의 안전을 생각하여, 조선과 일본 간의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전란이 일어나면 도요토미가 쓰시마를 전초기지로 삼아 수탈을 일삼을 것이라 여겨 노심초사하고 있다.
선조가 정해왜변 때 조선을 침략한 해적과 사화동과 끌려간 조선 백성들의 송환을 요구하자, 겐소가 난감해 하는데도 불구하고 선조의 요구에 따랐다.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방문하자 고니시 유키나가와 짜고 도요토미와 조선 양측을 엿먹이는 국제 사기를 벌인다(물론 장인인 고니시의 반전 이유 및 상술한 자신의 영지인 대마도의 안전과 무역 중단을 막기 위해서이다). 다만 도요토미가 정말 명을 치려 하는 미친 놈이라서... 자신의 영지에 있던 기술자 두명을 불러들여 국서까지 조작했으나 결국 아무소득도 없었고 조선의 행보에 답답해 하며 어떻게든 쓰시마의 피해를 줄여보려 한다. 12화에서 자신의 할당량인 5천명의 군사를 모으지 못하여 히데요시와 가토의 반협박을 받고, 당장 히데요시의 심기를 건드려 쑥대밭이 되는 것보다는 나으며 쓰시마의 병사들은 1군의 후방에 배치하여 보호해주겠다는 장인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징집을 한다. 이후, 대마도에서 군을 점검하던 고니시의 명을 받고 마지막으로 조선을 방문하지만 정작 경상좌주사 박홍은 "공손하게 하던가"라는 말이나 하고 기껏 선조에게 알리는데는 성공했으나 선조는 오히려 자신을 잡으라는 명을 내려졌고 이에 실망하여 "바보 같은 조선놈들! 다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란 말과 함께 조선을 탈출한 뒤 선봉장인 장인과 함께 침공한다. 14화에서 숨어있다 고니시를 향해 달려가는 노인을 죽여 장인을 구하고 가토의 진격소식을 전하며 가토에게 역전될 것을 염려한다. 그리고 포로 중에 역관이 있으며 이 역관을 이용해 자신이 사신으로 갔을 때 선의사로서 마중나왔던 이덕형을 통해 협상을 하자는 의견을 전했고 탄금대에서 신립과의 일전을 기다리며 병사들에게 전투태세를 갖추라 명한다. 15화에서 신립의 군대를 보고 병력을 나누어 양쪽에서 협공을 하자고 제안하였고 고니시의 지시에 따라 몰려있는 신립과 김여물을 향해 조총사격을 지시한다. 이후 피해상황을 보고하며 조선군의 도성방어를 걱정하며 도성함락 지연을 우려한다. 이후 작전회의에서 한양으로 가는 두 길을 설명하고 회의가 끝난 뒤에 고니시의 지시에 따라 선봉군을 이끌고 먼저 출발을 하며 이덕형의 소식을 묻는 고니시에게 조선조정이 협상의 뜻이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낸다. 17화에서 대민정책과 민십수습을 명한 우키타의 명령서를 받은 고니시의 명에 남아있던 보름치의 군량 중 3일치를 푼다.
소 요시토시를 보좌하는 승려. 조선과 도요토미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는 소 요시토시를 설마 별일이야 있겠냐며 달래곤 한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 앞에서 부처님의 가피 운운하는 게 불편했는지 요시토시가 "전하가 내전에나 관심있었지 언제 쓰시마에 신경을 쓴 적이나 있습니까?"라고 하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후 요시토시와 함께 국서를 위조하여 조선에 가서 여러 사정을 했으나 결국 아무 소득도 없었고 조선의 행보에 답답해한다. 이 후, 고니시에게 오히려 선봉장으로 나설 것을 조언한다. 이후에도 요시토시와 함께 어떻게든 전쟁을 막으러 노력하지만 결국 고니시와 요시토시와 함께 1군으로서 함께 조선으로 향하고 부산진을 시작으로 군대와 함께 도성으로 향한다. 기독교 신자와 전투에서 막 이긴 병사들 앞에서 나무관세음보살 운운하며 탄식하는 걸 보면 눈새 기질이 있는 것 같다 도성으로 향하면서 죽은 조선군과 백성들의 시신에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가토가 한양을 먼저 점령할 것을 걱정한다. 임진왜란 참전 이후로 대사는 거의 나무아미타불 일색에다 전사하거나 살육당한 조선군과 백성을 보고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표정등 별다른 비중이 없다. 그러나 고니시의 뒷편에 항상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미친 존재감을 나타내는 듯. 16화에 들어서야 고니시에게 조선왕을 잡았을 때 어떤 처분을 할 것인가를 물어보면서 제대로 된 대사가 나온다. 17화에서 고니시의 명에 따라 글을 아는 조선인들을 모아서 조선백성들을 안심시키는 벽보를 붙이며 주막에서 음식을 대접한다.이후 20화에선 이덕형과 회담을 하게되지만 조선이 길을 빌려주지 않아서 이렇게 됐다는등 적반하장을 부리는 바람에 결렬된다..24화에선 보급로 차단과 전염병등 상황이 좋아지지 않자 홧김에 고니시가 스님은 조선과 협상하기 위해 데려온것인데 대체 꿀빨면서 뭐했냐며 갈군다...
소 요시토시 이전에 조선에 외교 활동을 위해 파견되었는데, 히데요시에게는 뱃길이 험해 사람을 보내지 못한다고 전하는 편지를 보냈다. 히데요시가 이에 대해 추궁하자 조선이 히데요시를 두려워 한다면서 통신사를 보낼 엄두도 하지 못한다는 거짓말을 하는데, 사신단 일행으로 따라간 자를 통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밝혀진다. 히데요시로부터 꽃이 사람보다 나은 이유는 꽃은 질 때가 되도 변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며, 도요토미의 명령으로 가토에게 처형당했다.
여담으로 이 사람은 실제 류성룡의 저서 <징비록>에 언급이 자주 된다. 해당 배역을 맡은 서동수가 체구가 큰 편이고 수염도 희끗희끗한 수염을 붙이고 등장하데, 이는 징비록의 묘사를 반영한 것으로 징비록에 의하면 그는 '몸집이 우람하고 흰 머리털과 수염을 길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히데요시가 나고야성 축성을 반대하는 신하를 참살할때 우키다 옆에 서있는 것으로 등장. 이 때문에 다이묘인 우키타와 동급의 인물로 설정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으나 가토 휘하의 무장으로 나온다. 주군인 가토를 수행하다가 우연히 우키타 옆에 서있게 된 모양이다 12화에서 사격훈련을 하던 중 임신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병사를 보고 부인을 보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병사는 그 때문에 탈영으로 오인을 받아 공개처형되고 말았고, 처형되는 모습과 시신을 보며 오열하는 부인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아이를 낳은 부인에게 노잣돈을 주며 고향으로 보낸다. 아마, 훗날 투항에 대한 복선을 깐 것으로 보인다. 13화에서 가토의 명에 의해 선봉장을 맡게 된다. 14화에서 가토의 명에 따라 고니시보다 충주로 가기 위한 지름길, 울산과 경주를 거치는 루트를 설명하고는 주군을 따라 조선으로 건너가서 자기가 말한 루트로 한양으로 진격하지만 학살되는 조선군과 백성들의 모습에 전쟁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결국 15화에서 조선까지 끌려가서 죽을 수 없다며 가토에 투항사실을 보고할 것 같은 병사들을 처리한 뒤 자신의 군사들을 이끌고 투항길에 떠나는데 드라마 상에서는 가토군을 따라 조선 땅에 오고 곧바로 투항과 귀순을 했다는 행장록의 기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병사들을 이끌고 지도로 길을 찾던 중 피신하던 이일에게 투항을 하려 했으나 이일이 도망치면서 무산. 이후 17화에서 경상도로 내려가 김수에게 찾아가 조선말로 투항을 받아줄 것을 요청한다. 이를 믿지 않자 부하들에게 무장해체를 시키며 성의를 보이고 항복하는 이유를 묻는 김수에게 더이상 참혹한 전쟁에 나가 죽기싫다고 답한다. 이후 19화에서 곽재우에게 일본군 보급로를 알려주며 일본군 보급부대 급습에도 참여한다.
-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흑전장정) - 문상훈
3군 사령관으로 진격로 결정권에 대해서 고니시의 편을 든다. 이후 조선수군에 의해 일본 수군이 전멸하고 보급이 끊겼으며 조선수군의 수장이 이순신이라는 것을 보고한다.
-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 모리길성) - 최우영
4군 사령관으로 진격로 결정권에 대해서 고니시의 편을 들며 우키타의 명령에 따라 강원도로 향한다.
수군 장수로 옥포에서 이순신에게 포위되면서 패배하며, 간신히 달아나는 것에 성공한다. 여담으로 옥포해전에서의 패배이후의 절규가 볼만하다.앞으로도 깨질 걸 생각하면....
수군 장수로 육군에 합류해서 군사를 이끌고 이광이 이끄는 삼도근왕병을 용인에서 격파했다. 21화에서 이순신을 상대할 장수로 추천받으며 이순신의 수급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고 22화에서 쓰시마에서 도착한 추가 전투선들이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견내량으로 진격을 명한다. 그리고 본인 인생 최대의 패전을 당한다. 이후 이순신에게 복수를 맹세한다. 이후 47~50화에 등장하여 칠본창답게 칠천량 해전에서 나름 전략적 식견을 보이며 조선수군을 궤멸하나, 명량해전에서 또다시 이순신에게 털리고, 노량에서 또 털리게 생겼다.3연벙 지못미
- 오타 카즈요시(太田一吉, 태전일길) - 김태형
히데요시가 파견한 고니시측의 감시원.정치장교 히데요시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고니시의 사정도 생각하지 않고 압박을 하여 고니시의 스트레스를 높이고 있으며,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13화에서 히데요시가 고니시에게 감시역으로 보냈다는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다.
승려로 심유경과 고니시가 거짓 조건을 통한 강화 협상으로 명, 일본 양국을 속이기 위한 작업으로 명의 봉공안을 위조해 협력을 요청하려고 했으며, 겐소가 죠타이를 설득하려고 했다가 오오만도코로의 제를 지내기 위해 오사카에게 갔다고 언급된다. 이후 겐소가 명의 봉공안을 조작해서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요청대로 하지 않으면 해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하자 사이쇼는 거짓을 말하고 해를 당하는 것도 똑같다면서 거짓으로 말하는 것을 거부하며, 히데요시 앞에서 봉공안을 사실대로 읽었다가 이를 들은 히데요시가 불만을 가지고 할지에 대한 것을 묻자 그런 말은 없다고 알려준다.
- 고이치 - 염철호[17]
가토 기요마사의 부장으로 고니시군의 이동상황과 전과에 대한 보고나 조언등을 담당하고 있다. 가토의 열폭 수습 담당
3 순왜[18]
- 사화동 - 안성헌
"하지만 그건 분명히 아시오. 어째서 나같은 반민들이 생기는지 말이오. 양반님네들은 내지도 않는 조세를 우리네 같은 피죽도 못 먹는 놈들이 모두 떠 안고, 녹봉 한 푼 없는 군역을 평생 이고 살아야 하고, 나오지도 않는 특산품을 공납하라고 목을 죄니 도대체 이 놈의 나라는 누구를 위한 나라란 말이오. 이런 나라에서 살 바에야 왜놈이 되든 떼놈이 되든 무슨 상관이냐 이 말이오. 내가, 내가 죽을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지만 날 이렇게 만든건 당신네 양반하고, 왕이란 말이오"
정해왜변 때, 왜구들의 길잡이 노릇을 했던 조선인 반민. 조선 조정의 요구와 소 요시토시의 협조로 2회에서 조선으로 송환되며, 정해왜변으로 부모님을 잃은 이천리에게 죽을 뻔 하기도 했다. 처형을 앞두고 갑자기 '비격진천뢰!'라고 외쳐서 선조와 류성룡이 경악했다. 비격진천뢰 개발은 선조와 류성룡, 화포장 이장손 등만이 알고 있던 극비 사항이었기 때문. 류성룡이 목숨만은 보존해주겠다는 약조를 믿고 조선에 파견된 수 십의 간자를 통해 비격진천뢰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말하였으나 결국엔 처형이 확정되고 죽기 전날 밤에 찾아온 류성룡에게 위의 대사를 말한다. 그리고 이 대사야말로 본작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할 수 있다. 작가는 민초는 뭘 하든, 어떤 상황이든간에 착취당하고 구원받아야 하는 약자로 만들고 조선 지배층은 자기배만 불리는 권리 무한 책임 전무 집단으로 만들어놓았는데 해적에 붙어 많은 조선인들을 죽게 만든 앞잡이조차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로 포장하는 이 대사는 그 대표격이다. 맥락을 잘못 잡으니 스토리도 류성룡같은 일부 선인만 무능한 지배층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상상의 영역으로 가버리는 상황.
전작 정도전의 민중묘사와 비교되어 까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도전에 경우에도 혼란한 시대와 착취로 고통받는 민중들을 자주 표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뒤집어 엎으려는 정도전 일파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미화하진 않았다.
- 국경인 - 이현걸
임해군을 포획하여 가토에게 바쳐 회령, 경성 지역의 통치를 위임받았으며, 가토에게 임해군을 믿지 말라면서 거짓말 밥먹듯 하고 짐승처럼 난폭하다고 했다. 임해군이 왕(선조)이 아닌 세자(광해군)에게 항복 문서를 보내게 하는 것에 대해 가토에게 의구심을 품어 고이치가 조선 조정이 둘로 나뉘어 세자가 전쟁 지휘를 한다는 것이 사실임을 알려주며, 가토가 누가 왕이냐고 하자 피난간 왕이 왕이지만 실제 업무를 보는 것은 세자라는 것을 알려준다.
역사상으로는 정문부가 군사를 일으키면서 죽임을 당하지만 가토가 한양으로 내려와 고니시와 신경전을 벌이는데, 고니시의 언급으로 가토가 정문부의 공격으로 쫓겨났다는 언급만 나와서 가토가 정문부의 공격으로 쫓겨난 이후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극 중에서 자막으로 이름이 나오거나 언급되지는 않지만 임해군, 순화군, 회령의 관리들을 잡아들여 바치고 가토에게서 회령, 경성 지역을 다스리도록 위임받거나 가토와의 대화에서 조선에서 자신은 회령에서 유배온 죄인일 뿐이라는 언급을 통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 공휘겸 - 신재도
일본군의 길잡이를 하고 경주부윤을 자칭하며, 일본 장수에게 술을 대접하다가 곽재우, 심대승 등이 이끄는 의병들이 공격하자 밖으로 칼을 들고 나왔으며, 곽재우가 일본군을 몰살시킨 것을 보고 겁먹은 채로 칼을 들고 있다가 곽재우에게 참살당했다.
- 김순량 - 고원석
- ↑ NHK는 자사 대하드라마 고우에서 도요토미를 만나러온 조선 통신사를 표현하기 위해 KBS에 협찬받은 적이 있다.
- ↑ 처음 나올 때만 해도 머리를 늘어뜨렸는데 갑자기 에도 시대 식으로 머리를 틀어올리고 나온다.
- ↑ 본래 고니시 유키나가는 우키타 히데이에의 아버지인 우키타 나오이에의 가신 출신이었고 우키타 히데이에의 관위와 영지 규모 또한 다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 ↑ 야인시대의 시라소니하면 아는 그 배우 맞다. 연개소문에서 연개소문의 책사 죽리 역으로 출연.
- ↑ 히데요시는 생전에 토시이에를 필두로 오대로를 구성하여 이에야스를 견제하고자 하였으나, 히데요시와 토시이에의 잇다른 사망으로 인해 결국 실패한다.
- ↑ 해서 후반부에는 그냥 성인 마에다로 부른다.
- ↑ 히데요시가 조선에 가면 일단 츠루마츠나 모친을 돌보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에야스만 조선에 보내면 위화도 회군 꼴난다. 설령 히데요시와 이에야스가 둘 다 가더라도 혼노지의 변 꼴이 날 수 있다. 따라서 둘 다 일본에 남아있는 것이 낫다.
- ↑ 정도전(드라마)에서 강내관으로 나왔다. 대조영(드라마)에서는 현소 역을 맡은 박유승과 함께 이문의 부장으로 출연했었는데 이번에도 또 박유승씨와 함께 나온다. 그것도 같은 이민족 진영으로.
- ↑ 히데요시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에 히데요리와 요도도노를 지지하는 서군의 사실상 총대장.
- ↑ 성이 두 개로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항목 참고.
- ↑ 추노에서 김성환(큰놈이), 정도전에서 민무구, 불멸의 이순신에서 도공 장평 역으로 나왔다.
- ↑ 대조영에서 이문의 부장, 정도전에서 심효생 역으로 나왔다.
심효생 때와 비교하면 수염이 없는 것 때문에 굉장히 젊어보인다.참고로 이 분 프로필에 나이가 나오지 않았지만 KBS 100인 이사회 카페의 프로필에 1964년생으로 등재되었다. - ↑ 야인시대에서 털보, 대왕의 꿈에서 당고종 역으로 나왔다.
- ↑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조카인 이완으로 나왔다.
이순신의 조카에서 이순신의 적이 되었다대조영에서는 연남건, 대왕의 꿈에서는 덴지 덴노를 맡았다. - ↑ 정도전에서 권근으로 나왔다.
- ↑ 극중에서는 조선식 음독이 생략되었다.
- ↑ 불멸의 이순신에서 왜교성 전투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장으로 나왔다.
고니시에서 가토로 갈아탔다 - ↑ 일본군에 항복한 조선 백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