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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인류 문명 상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가 손꼽을 정도로, 군사학은 사회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또한 군사학은 역사, 기술, 관습, 이념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에 단편적으로 다룰 수 없는 분야이다.
그런 만큼 그 사회의 군사 전문가는 문외자가 함부로 개혁을 주장하는 것을 달갑잖게 볼 것이다. 실제 역사 상에서도 백면서생이 뇌내망상으로 짜낸 군사개혁이나 신기술을 주장했다가 창피당한 일이 흔하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좋은 예)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모가지 간수하기 힘들다.
때문에 일개인이 군사적 변화를 주장하려면, 당대에는 미처 발상이 미치지 못했지만, 간단하게 적용 가능하고, 즉각적인 효험이 드러나는 부분을 파악하는 안목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기술은 다른 세력에서 손쉽게 흉내낼 수 있다. 사실 현대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군사학에는 표절이 없다.
군사력에서 뒤쳐지는 것은 국가적인 손해이자 국가의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군사 분야에서는 저작권이나 특허 따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편이다.
고로 군사학으로 돈 벌어 먹고 살기는 일반 기술에 비해 매우 어렵다. 고작해야 군사적 선견지명을 높이 사는 군주나 군사 전문가의 조언자 정도의 역할이 한계이기 쉽다.
일단 지구상에서 있었던 고대에서 근세까지의 군사적 기술 조류를 대강 살피면 이하와 같다.
- 탈것 : 전차(바퀴와 차체 구조 개량), 기마병의 등장(승마 가능한 전투마 품종 개량. 전투용 등자와 안장, 마구의 도입)
- 전술 : 망치와 모루. 기습과 매복. 병력의 집중을 통한 지역적 우세. 방패진/장창진 등 집단병진 도입. 스웜 전술. 중기병+랜스 돌격. 궁수 집단운용. 테르시오[1]. 카운터마치[2]. 저격.
- 군사편제 : 봉건제, 용병, 각종 징병제, 상비군, 예비군/둔전병
- 무기와 방어구 개량 : 방패의 개량(라운드 실드->카이트 실드->히터 실드), 사슬갑옷->판금갑옷, 방어구의 중후장대화에 따른 한손무기에서의 양손무기로 변화, 각종 투사무기(투척도끼, 다트, 장궁과 각궁, 쇠뇌, 총기)...
- 공성병기 : 투석기, 공성타워, 토산 무너트리기, 터널 파기, 화공, 생화학전(시체 던져넣기)
- 수성 구조물 : 화살 방어 장애물, 토성(모트 앤 베일리), 산성, 석성, 해자, 포격 대비 요새, 참호...
- 화약 도입 : 대포, 화승총/머스킷, 탄피(페이퍼 카트리지-금속탄피), 후장총, 연발총(다총신 총기, 리볼버, 자동화기), 폭탄
- 통신체계 : 파발/메신저, 봉화, 전서구, 감시탑, 망원경, 수기신호, 전신, 무전...
- 보급 : 보급체계. 전투식량의 발전.
이런 기술들은 대부분 시대적, 기술적, 사회적, 금전적 상황이 받쳐줘야 가능한 것들이다.
보급 체계만 해도 군사적 문제라기보단 국가적 경제력 문제이고, 인구나 사회적 문제로 징집이 효율적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상비군은 봉건세력 일부로 최소화하고 용병을 도입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당대의 군사전문가들이 어리석어서 신기술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못 받쳐줘 못 쓰는 경우도 많다.
2 제식훈련
보는 순간 뭐야 이게? 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기관총과 화포의 발달 이전 모든 전쟁은 병사가 대열을 유지하는데 승패가 달려있다고 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전쟁사를 보면 전투 중에 죽는 병사보다 퇴각이나 패주때 죽는 병사가 더 많았다. 고대 전투의 전사자 교환비가 큰 전투가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단 진형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공격력을 발휘한다. 팔랑크스, 테르시오, 전열보병 등 현대인이 보면 뭐야 그냥 서있는 거잖아? 라고 생각할 법 하지만, 그런 대열에 진 군대는 대체 뭐가 되겠는가. 저 대열들도 나름대로 축적된 경험과 밥먹고 전쟁만 생각하는 자들이 연구 끝에 만들어낸 것이다.
동양에서도 진법 훈련은 매우 중시 여겼으며 저런 대열이나 진법을 제대로 구사하려면 제식 훈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제식 훈련의 장점은 많은 인원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고, 상명하복이 확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높으신 분들이 보기엔(그리고 적군, 특히 훈련도가 낮은 적군이 보기에도) 제식 훈련이 잘 되어있는 군대는 강해보인다! 만약 제식 훈련 같은 것이 체계적으로 잡히지 않은 세계에 떨어졌을 때 당신이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행운을 잡게 된다면 얼른 제식 훈련을 도입해 보자. 적들은 마치 하나의 개체가 된 것처럼 통일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당신의 병사들을 보며 위축감을 느끼고, 높으신 분들은 일단 군기가 엄정하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줄 것이다.
물론 당신은 진법에 대해 문외한일 터이니 일단 병사들을 당신의 지휘하에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게 된 다음에 그 시대의 진법이나 대열을 열심히 배워서 적용해보자. 아, 당연히 제식훈련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선 병사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얼차려는 물론이고 - 정 못해 먹겠으면 구타가 필요하다. 당연히 구타는 야만적 발상이라 질색할 사람이 있겠지만 명장이라 칭송 받는 이순신만 해도 말 안 듣는 병사는 엄하게 처벌했다. 민주주의 사회의 국민개병제가 이루어진 상황이 아닌 이상, 혼란스러운 세상이라면 내일은 저 나라 오늘은 이 나라 백성이 되는 병사들을 구타나 E같은 행위가 없이 통제하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민족주의같은 사상을 널리 퍼뜨려 병사들 하나하나가 철두철미한 애국자가 되지 않는 이상 무리다.
예를 들어 프랑스군은 프랑스 혁명때 군내 구타가 금지되었지만, 그래도 이념과 애국심덕에 높은 군기와 조직력을 유지했고 나폴레옹 시기에는 당대 최고 수준의 정예병들이였다. 물론 채찍만 주면 하극상이 발생할 확률이 높으니 최소한 자작농 수준 이상의 높은 보수와도 같은 확고한 당근이 필요하다. 그런게 없다면 북한군의 재래일 뿐이다. 또 얼차려나 구타를 쓰더라도 군형법이나 규정에 어디서 누가 뭘로 몇대를 때릴지 명확하게 정해놓고, 장교같은 지휘자들이 공개적으로 무슨 죄로 무슨 벌을 내리노라 하고 선고하고 집행하게 하는게 좋다. 30년 전쟁 당시 스웨덴군이 이런식으로 군법은 매우 엄하지만 처벌시 반드시 재판을 거치도록 했는데, 당시 듣보 스웨덴군의 활약이야 말 할 것도 없다.
그렇지 않고 고참병이나 장교들이 꼴리는대로 때리게 한다면 그냥 똥별들이 되는 것이다. 또 이렇게 구타를 군법의 테두리 안에 가둬 둔다면, 나중에 없앨때도 비교적 빠르고 쉽게 할수 있다. 또한 가급적 신체를 단련할 여지가 있는 얼차려를 주는게 좋다. 예를 들어 오리걸음 같은 얼차려는 전혀 육체 단련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무릎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현재 금지된 얼차려이다.
당신이 만약 군재가 없다고 해도 제식훈련을 제대로 숙지한 병사들은 일단 자기 몫은 해줄 수 있다. 물론 통제하는 당신이 전투 중에 공황상태에 빠져 지휘를 못하면 당신은 원균이 되고 병사들은 그냥 시체가 된다.
다만 당신이 떨어진 곳이 마치 20세기 초의 전장상황처럼 각종 대량살상병기나 광역마법이 판치는 곳이라면 애초에 당신이 중용될 가능성도 없고 이미 제식훈련이 정립된지도 한참 되었을 게 분명한데다 어설픈 제식을 도입하다가 쓸데없는 똥군기나 잡는다고 까이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3 총검
총검은 그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간단한 아이디어에 비해 의외로 총의 등장 이후에도 한참 뒤에야 전장에 데뷔한 무기이다.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총 그 자체는 전장의 주역으로 부상했는데도, 총검이 전 유럽 보병들의 제식무기로 채택된 것은 한 세기가 넘게 지난 1660년대였다.
또한 총검은 그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간단한 아이디어에 비해 대단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초기 머스킷은 연사속도가 아주 느렸기 때문에 총검의 등장 전에는 머스킷 사수라도 도검 등을 소지하고 백병전에 대비해야 했으며 이 경우 총을 버릴 수 밖에 없었으나, 총검이 등장하면서 굳이 총을 버릴 필요도 없고, 칼 같은 근접무기를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게 되었기 때문에 총검은 아주 효과적인 장비로 각광을 받았다. 게다가 총의 길이를 활용해 총검을 장착하면 총을 창처럼 쓸 수 있기 때문에 종래의 창병은 점차 축소, 폐지되었다. 따라서 만약 매치락(화승총)의 시대에 떨어진 당신이 총검을 전장에 도입한다면, 전쟁사에 당신의 이름이 남으리라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다. 물론 그 세계에 이미 총이 전장에서 대량으로 운용될 만큼 보급되어 있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지, 총? 그거 맛있는거임? 상태거나, 이제 겨우 핸드캐논이 등장한 수준이라면 말짱 황이다(...)
총이 이제 막 전장의 주역으로 떠오른 매치락의 시대를 기준으로 살펴보자면, 이 시대의 화승총은 크게 머스킷(Musket)과 아르퀘부스(Arquebus)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머스킷은 초기에는 무게가 무려 7~10kg에 달해 사수들이 받침대를 가지고 다녀야 할 지경이었으니 포기하는 게 낫다. 여기다 총검을 달겠다는 건 K3나 M60에 총검을 달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인 뻘짓이다.하지만 아르퀘부스의 경우에는 평균적으로 길이가 1m, 무게 5kg정도였는데, K2 소총의 길이가 약 1m,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군의 소총이었던 브라운 베스의 무게가 약 5kg정도였다는 걸 감안해 볼 때 총검을 착검하면 충분히 실전성을 기대해 볼 만하다. 그리고 아르퀘부스가 도태될 때쯤에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7~10kg에 달했던 머스킷이 아르퀘부스 수준으로 가벼워질 것이니 착검이 충분히 가능해진다.
실제 제작에 들어갈 때 최대의 난관은, 역시 총에 총검을 어떻게 결속시킬 것인가이다.
당신이 공학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면, 총검 자루를 쇠로 만들고 이음고리를 달아서 총신에 끼워 고졍시키는 소켓식 총검을 개발하면 전투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가늠쇠(?) 역할을 하는 총신 위의 돌출부를 고정용으로 사용했던 브라운베스용 총검도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켓식 총검의 개발이 너무 어렵다면, 총검 자루를 나무로 만들어서 총구에 직접 꽂아버리는 플러그식 총검부터 시작해도 된다. 총구에 총검을 꽂았으니 당연히 착검하면 총을 쏠 수가 없게 되고, 나무 총검자루가 뚝 부러지거나, 총구에서 총검이 빠지질 않거나 반대로 어이없이 쑥 빠져버리는 등 문제는 속출하겠지만, 처음에는 이런 플러그식 총검으로도 충분히 획기적이다. 어차피 빨라 봤자 1분에 한 발을 발사하는 수준이었던 당시의 총기로서는 적이 가까이 있을때 저렇게 총구를 막는 총검을 착검해 다가오는 적을 찌르는 것이 그리 비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플러그식 총검은 근접전이 벌어졌을 때 따로 무거운 무기를 휴대하지 않아도 되었고, 또 사용법도 간단하다는 점 때문에(그냥 총구에 꽂고 냅다 찔러버리면 되니까)처음 도입됐을 때부터 총병들에게 각광받았다.
제강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총검을 쓰다가 총열이 휠 수 있다.
물론 현대의 총기도 총열이 휘는데 구식기술 총기가 안 휠 리는 없다. 그러나 총기를 '가져간'상황이라서 수리와 재보급이 불가능하거나 하지 않는한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다. 기본적으로 총신 제작은 당대 최고의 야금기술을 밑바탕으로 한다. 역사적인 사례를 보면 총신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상당히 두껍게, 혹은 공을 들여 만들며, 단순 주물이 아니라 얇게 편 철판을 때려가며 돌돌 말아 만들거나 두꺼운 철판을 말은 것을 두세겹 겹치고 용접, 보링 가공 마무리를 하는 식이다. 둘 다 상당한 강도를 자랑하니 쉽게 휘지 않고, 이런 총열이 휠 정도면 창을 들었든 검을 들었든 결과는 마찬가지. 비교적 저퀄리티인 롤러 압착 방식도 있지만 이쪽은 대량양산기법이니만큼 조금 고장나도 새거 사면 되니 걱정할 필요없다. 그리고 총검술은 전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소이므로 약간의 전투손실은 당연한 일이다. 제강기술을 최대한 뒷받침하면서, 총검을 결합할 때 총열과 대좌(라이플 스톡 전방부)를 길게 빼내 총신만이 아닌 총몸 목제부가 총신을 지지하도록 설계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전술적인 면에서 주의할 점으로는, 총검이 도입되었다고 절대로 우왕ㅋ굳ㅋ 하면서 곧바로 창을 버려서는 안된다!
실제 역사에서 파이크의 도태에는 총검의 보급 외에도, 휠락 및 플린트락 머스킷의 보급으로 보병의 화력 자체가 전체적으로 향상되어 최대의 적이었던 기병의 위협 자체가 약해졌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화승총 수준의 총에 총검 달았다고 바로 창을 버렸다간 적군의 구식 기병의 닥돌에 오히려 짓밟히기 십상이다.
또 총검은 개발했지만 총검술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걱정할 수가 있는데, 이 점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초기 총검술 자체가 창술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그립이 애매한 점을 제외하면 대체로 단창술에 가깝다. 아예 총검만 개발해서 던져줘도 다루는 법은 그 시대 사람들이 알아서 잘 해결할 것이다.
4 탄약포
머스킷의 탄알 한 발과 1회 발사 정량에 해당하는 만큼의 탄약을 종이 등으로 포장한 것이다. 끝(...)
이게 뭐가? 장난쳐? 라고 반응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화승총의 시대에 이걸 널리 보급할 수만 있어도 획기적인 발전이다.
초기 화승총의 시대에는 화약 플라스크를 따로 들고 다니면서 총알 한 발을 쏠 때마다 일일히 화약을 넣어 주어야 했는데, 이 방식은 무지 귀찮고 짜증나고 시간걸리는 건 다 제쳐놓더라도 화약의 양을 까딱 잘못 쟀다간 총열이 폭발해 인생퇴갤하기 딱 좋았다.
이 때문에 16~17세기 유럽의 머스킷총병들은 보통 그 숫자가 12개였기 때문에 '12사도'라 불렸던 나무 탄통들을 어깨에 주렁주렁 걸고 다녔다. 12사도를 이용한 장전법은 화약을 일일히 재서 넣어 주던 시절보다 훨씬 빨랐으며 총열이 폭발하는 사고도 방지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존재했다. 12사도를 사용하려면 먼저 탄띠에서 탄통 하나를 풀거나 단검으로 끊어낸 다음에 뚜껑을 열고 그 속의 화약을 총구에 부어넣은 다음 총알가방에서 총알을 또 따로 꺼내 장전봉으로 총구에 밀어넣는 여전히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탄통을 매단 끈들이 걸핏하면 서로 엉켜서 총병들을 열받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화약뭉치를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거나 다름이 없으니 자칫 불똥이라도 잘못 튀었다간 그대로 인간폭죽이 될 수가 있었다.
하지만 탄약포의 보급은 이런 총병들의 고생거리를 크게 덜어 줄 것이다. 탄약포를 사용한 장전법은 그저 탄약가방에서 탄약포 하나를 꺼내 입으로 물어뜯은 다음 총과 화약을 동시에 총구에 부어넣기만 하면 되기에 훨씬 빠르고 편리하며, 상대적으로 부피와 무게가 작은 탄약포를 탄약가방에 보관하면 되니까 운반과 안전 면에서도 12사도보다 훨씬 낫다.
다만 발명 이상으로 중요한 건 오히려 보급이다!!!
화승총 시절 사람들이라고 탄약포 정도도 생각해 내지 못했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기록상 최초의 종이 탄약포의 등장은 무려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 역사에서처럼 밀랍이나 왁스, 동물성 기름 같은 재료로 탄약포를 코팅해 평소에는 쉽게 젖거나 찢어지지 않으면서도 전투중에는 간단히 찢을 수 있는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종이가 너무 귀하다면, 실제 역사에서처럼 리넨 천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탄약포를 보급하기 전에는 해당 세계의 입에 대서는 안 되는 종교, 문화적 금기에 대해 꼼꼼히 조사하도록 하자. 이걸 게을리했다가 성난 총병들의 폭동에 직면한 뒤에 후회해도 그땐 이미 늦다. 세포이 항쟁의 직접적 계기가 힌두교도/이슬람교도들에게 절대금기인 소기름/돼지기름으로 코팅한 탄약포의 지급이었다는 걸 명심하도록 하자.
4.1 장약
여기서 좀 더 발전해 대포가 나왔다면 포와 포탄의 규격화와 정량으로 포장된 장약의 개념을 퍼뜨리고 계산과 실험을 통해 사표(射表)를 만들 수 있다.
근대가 되기 전까지 대포 사격을 할때 포병들은 장약을 마구잡이로 넣고 포를 쐈다.[3] 게다가 포와 포탄의 규격이 없었기 때문에 조준과 사격은 순전히 한 포를 계속 다룬 숙련된 포수의 감에 의존했고, 장약량에 따라 포의 위력이 오락가락해 포탄이 적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하거나 장약을 너무 많이 넣어 포가 터지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포와 포탄의 규격화와 포장 장약을 사용해 포의 위력과 사거리를 예측가능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장약의 낭비를 막기만 해도 포병 운영에 있어 혁신적인 결과를 가저온다.
여기에 사표를 만들면 빠른 계산을 통한 신속한 사격이 가능해진다. 상대보다 빠르고 정확한 포사격을 할 수 만 있어도 당대의 포병의 천재, 포병의 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물론 규격화는 기술 발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장약량을 계산해 미리 포장해 사용하는 것만 해도 포병 운영에 있어 한 수 앞서 나갈 수 있는 기술이다.
5 격발장치 개량
총기 개량 역사의 핵심을 차지하며, 기술력이 요구되는 부분.
전장식 총의 격발장치는 매치락 → 휠락 → 플린트락 → 퍼커션 캡의 순서로 개발되는데, 우리가 노려야 할 것은 최종 테크로. 요구 지식수준은 높으면서 제작에 필요한 기술력은 낮은...한마디로 만드는 법을 알아내기는 어렵지만, 알면 만들기는 쉬운, 그럼에도 효과는 매우 뛰어난 퍼커션 캡이다.
퍼커션 캡을 활용한 총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것은 플린트락 소총을 제작할 수 있을 기술력과 뇌홍 같은, 뇌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민감한' 화약. 핵심물질인 뇌홍의 경우는 수은을 질산으로 녹인 질산수은에다 에탄올을 반응시키면 얻을 수 있다. 이제 그것을 점화약 부분에 끼울 수 있게 만든 얇고 작은 구리통에 조금 넣어서, 발사장치가 때릴 수 있도록 하면 끝. 매치락밖에 없을 경우 '때리는' 기구도 만들어야 할 테지만 총기를 만들 정도의 세계라면 스프링을 만드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을테니 노력해보자.
이 발사기구 하나만으로 총기의 성능은 혁명적으로 강해진다. 후장총을 만들어 연사하고 싶다고? 일단 성능 좋은 무연화약부터 개발한 다음 그곳의 기술자들에게 떠넘겨라. 문외한이 덤벼서 될 일이 아니다.
화약 개발에 대해서는 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화학#s-1.4 항목을 참고하자.
6 탄두개량
만약 당신이 사는곳에 초기형 라이플이 있다면, 라이플을 쓰기위해 탄을 헝겊에 싼 뒤 망치로 두들겨서 장전을 하고 있다면 미니에 탄은 높으신 분들이 당신을 아끼게 해 줄 물건이다.
미니에탄의 구조는 '탄을 유선형으로 한다'. '탄의 뒤쪽을 파서 홈을 만들어 둔다'정도 뿐. 이 사소한 개량만으로 탄이 '안쪽에서 커져서 강선에 맞물리는' 현상을 일으킬 수 있으며, 동시에 라이플의 장전속도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어진다.
라이플에 미니에 탄을 쓰다보면 '녹은 납이 강선에 낀다'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발생할 텐데, 그 부분은 탄두 표면에 구리를 씌우는 풀 메탈 재킷 방식으로 해결을 보자. 참고로 탄두에 구리를 씌우는 것은 현대에도 대체품을 찾지 못해서 계속 써먹어온 방식이다.
다만 아직 흑색화약을 쓰는 중이라면 저 납매 문제가 전투 중에 불거질 정도로 심해지지는 않는다. 납매 끼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전투불능상태로 몰아갈 정도로 심해지고 구리 피막을 씌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무연화약을 사용하면서 탄속이 매우 커졌을 때부터다. 정 신경쓰인다면 납에 안티몬 등을 조금 섞어 하드캐스트 납을 만들어주어서 잘 뭉개지지 않도록 만들면 해결된다.
7 지연신관
만약 초기형 화약병기가 사용되고 있던 시기라면 만들어보자.
비격진천뢰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벽이나 문을 좀 부수고, 사람 몇 때려잡는게 고작인 대포라는 병기가 광범위 살상병기로 변하게 된다.
구조는 의외로 간단...하지만 그 간단한 구조를 만드는데 의외로 기술력이 필요하다는건 감안하자.
8 컴파운드 보우
활에 도르래를 연결해서 그 힘의 작용과정을 변화시킨 활.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간단하면서도 활이라는 형태의 무기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성능을 자랑한다. 도저히 화약을 만들어낼 수 없겠다 싶으면 개발 해 보는것도 방법. 단점도 있지만, 쇠뇌에 응용해버리면 그 단점은 거의 무의미해진다.
...단, 이걸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정말정말정말 짧을거란건 각오 해 두자. 이 활을 보급해 당신의 적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데 성공한다면, 바로 다음날에 상대 진영에 이 활을 카피 뜬 물건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연사가 중요한 군용 활의 입장에서 볼때, 발사 속도가 느린 컴파운드 보우의 단점은 꽤 문제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컴파운드 보우가 일정 이상 탄속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나무 화살은 쪼개지기 쉽다는 단점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9 정치적 측면
군사학을 논할 때 정치의 영향을 얼마나 논할지는 그 때 그 때 다르다.보통 사소한 국지전 수준이라면 정치의 영향을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못해도 한 지방 이상의 점령전 혹은 국가의 존망을 걸고 싸우는 대규모 전쟁이라면 절대 군사에서 정치를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전쟁을 할 때는 어떤 상대와 싸울지, 상대와 싸운다 할지라도 어떤 수준으로 싸울지, 어떤 상대를 동맹군으로 끌어들일지를 논하는 것이 요구된다.
구체적일 경우,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
- 1. 전쟁을 하기 전 철저히 명분을 따질 것.
- 물론, 반드시 도덕적으로 절대 선일 필요는 없다.
- 다만, 국제정치에서 다수의 국가 혹은 세력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고 적대국을 분열시킬 수 있을 정도의 명분[4], 못해도 제3국 상당수를 적으로 돌리지 않을 정도, 하다못해 자국 국민들만큼은 수긍할 정도의 명분[5]이 요구된다.
- 2. 정복전을 수행할 경우 가급적 철저히 민심을 얻어라.
- 방어전을 수행하는 경우에라도 아국의 주요 지역의 민심은 얻어두는 것이 권장된다.
- 전투 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정복전을 수행할 경우 현지 군사력이 우세하더라도 게릴라가 준동하여 그 지역에 상시 병력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우리가 군사적으로 약하더라도 현지 민심이 우리를 따르면 최소한의 승산이 있다. 국공내전 당시 하드웨어가 딸린 공산군이 국민당을 이긴 것 역시 결국은 민심의 지지 덕이다. 구체적으로 살피자면, 평소 국민들이나 현지 주민들에게 식량, 의료, 의복을 평소에 혹은 점령지 위무 과정에서 잘 지원하거나 좀 더 사회적으로 발전된 동네인 경우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교적 발전 정도가 떨어졌다 할지라도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내지는 종교 등의 측면에서 충동적인 차원으로 선동을 하는 것도 좋다. 민심을 얻지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지역 유력자[6]들을 포섭한다면 대충 비슷한 효과는 낼 수 있다. 다만, 민심을 활용하는 것 역시 어느 정도의 정규군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정규군적 기반이 없다면 공자측 입장에서는 그냥 밀어버리고 상황을 종료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때로 전쟁을 벌이는 양국간 병사들의 증오심이 극에 달해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는 수준에 이른 경우, 이 때 타국에 쳐들어갔으면 반드시 적국의 현지 민심을 얻을 필요는 떨어진다. 총력전은 어떤 의미로 정치싸움과 비슷한데 정치싸움에서는 중간에 선 사람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전쟁에서 이기기 전에 아군에 의해 지휘관 목이 달아날 수 있다.
- 3. 약탈은 군기 문란 및 자국 평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자제함이 타당하다.
- 약탈이란 본디 남의 것을 무력으로 빼앗는 것인 만큼 자제함이 타당하다. 그러나 동시에 약탈은 참전 병사들의 가장 큰 전쟁 보상이며, 전쟁에 나가서 한몫 단단히 벌어올 기회이기도 함으로, 이를 금지하는 것은 군기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수 양제는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약탈 금지령을 내렸지만, 막상 결정적인 때에 평양에서 먼저 도착한 수군이 약탈을 하다가 결사대 500명에게 각개격파를 당해 육군의 보급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살수대첩으로 이어지는 큰 실패를 겪는다.
-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몽골같은 유목 부족에 소속되어 있다면 경제적 이익 획득을 위해 약탈이 권장된다고 할 수 있다.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적 관습에 따라 승자의 약탈이 어느 정도는 용인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이 때는 사회적 관습 하에서 허용함이 타당하다. 다만, 몇몇 소수 집단이나 유력자, 문화인, 신전, 주요 건물 등의 약탈 정도는 금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들을 회유할 여지를 부여하는 것이 요구될 수 있다. 이 외에도 약탈의 기간 정도는 제한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종교적인 동네의 경우 신전은 절대 건들면 안 된다. 종교를 건드리는 것만큼 어그로 끄는 소재는 드물다.
- 약탈의 방법론의 경우, 약탈에 따른 군기 문란을 막기 위해 약탈 방식 역시 어느 정도는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 가령 몽골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전에 특정 가옥에 화살을 꽃아 그 집만 약탈을 하도록 하는 방식이 좋다.
- 이 외에도 약탈품의 분배 측면에서도 계급 등에 따라 분배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 이 외에도 제3국을 전쟁에 끌어들일 때 물질적 포섭이 필요할 수 있겠는데 이 경우 특정 지역의 약탈권을 보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7]
- 4. 작전을 실행할 때 군주의 신임을 확보하고, 권력자들에게 작전에 대해 간섭받지 말아야 한다. [8]
- 특정 작전을 실행하고자 할 때 군주의 신임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전장에 있지도 않는 권력자들에게 작전에 대해 간섭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주방어인데, 적의 기세가 강할 때 섵불리 공격해 피해를 보는 것을 피하고 방어하면서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일격에 몰아치는 방식은 확실히 이상적이지만, 언제 적의 기세가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다리다보니 군주의 의심을 사고 다른 권력자들의 모함을 받게 되는 사례가 역사속에 비일비재했다. 왕전이 최대한 몸을 굽히고 보신에만 매달리는 것처럼 꾸며 진시황의 의심을 피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또한 점령지 주민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 바로 점령할 수 있음에도 시간을 끌어 스스로 항복하게 유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도 군주의 신뢰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악양과 왕전이 그토록 시간을 끌면서 온갖 탄핵을 받으면서도 국왕의 신임덕에 적국들을 무사히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
10 보급
여러 군사기술적인 면 못지 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항목이다. 이걸 등한시 하다가는 북한군 꼴 나기 쉽다.
굳이 북한군까지 가지 않더라도 보급이 충분치 못해 사기가 떨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중세 시대에 대군을 이끌 경우 보급은 현지 약탈이 되기 쉬운데, 이러한 약탈은 현지인들의 반감을 사기 쉽다. 때문에 보급라인을 확보하여 현지인들의 약탈을 최소화 할 수 있다면 적국의 시민들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이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는 먹고 살기 위해 군에 가는 시민들도 있었기 때문에 보급이 잘 되는 군대라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군사 세력들을 자기 밑으로 들어오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육포, 병조림과 같은 전투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면 군장을 메지 않아도 되므로 기동성의 향상을 노릴 수 있다.[9] 또한 오래 둬도 상하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전투 역시 가능해진다.
만약 군사적 재능이 없는 대신 회계와 같은 물자 관리에 관련된 기술이 있다면 보급쪽으로 실력을 발휘해도 군주만 개념있는 자로 만난다면 큰 총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고제 유방이 1등 공신으로 소하를 꼽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
보급을 하면서 그 뒷처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밥을 먹고 남은 흔적을 최소화 하거나 더 늘려서 적이 우리쪽의 군세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게 하는 것도 전략.
전국시대의 중국에선 손빈이 밥솥을 같이 쓰게 하는 방법으로 그 흔적을 줄여 적장에게 '병력이 줄어들었다'고 착각시켜 함정에 끌어들여 적군의 장수를 혼란시킨 사례가 있으며 역으로 흔적을 늘려 적장이 '분산한 병력이 합류해서 부대가 커졌다'고 판단하게 해서 추격을 막은 사례[10] 역시 있다. 그 외에 근대에는 소련군이 먹다 남은 통조림 캔을 함부로 버리는 바람에[11] 적군에게 병력의 규모가 들통난 사례도 있다.
아군의 보급을 신경쓰는 것 못지 않게 적군의 보급을 교란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적의 수가 아군보다 많을때 유지하기 위한 군량이 많은 것을 노려 청야전으로 소모시키거나 군량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방법이 있고, 중세 유럽이 배경인 경우 수성중인 성의 공용 화로를 망가트리는 것만으로도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당시 주식인 빵을 굽는 노심은 마을 공용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
시대에 따라서는 둔전제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농민 출신 병사가 많은 시대에는 남는 병력들이 자신들의 경력을 살릴 수 있고 체력 훈련까지 겸할 수 있으며 식량까지 확보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특히 이렇게 둔전으로 가꾼 땅의 일부를 병사들이 개인 소유로 얻을 수 있게 한다면 병사들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게 만들 수 있으며 실제로 둔전제를 운영한 자들은 이런 의도를 노린 바 있다. 동로마 제국의 테마 제도가 대표적인 사례. 단, 이 방식은 개인 소유를 '지키는' 것에 강하지만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데에는 힘이 부치는 경향이 있으며 통치가 잘못되면 애써 얻은 땅을 다시 권력자들에게 빼앗긴 자들이 반란 세력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개인 소유의 땅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비율을 알아보고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술이나 군 장비, 병과 등의 체제가 복잡해져 군 정예화가 필요한 시점에서는 둔전제는 오히려 군사 교육에 방해가 될 뿐이므로 다른 인력을 식량 생산에 전념하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다.
11 심리전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다 해도 전쟁의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심리전이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특히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는 심리적인 기폭이 상당하며, 미신 같은 것에도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다. 만약 그 세계에서 통하는 미신이 있는 경우, 그것에 맞추어 아군의 사기를 늘리고 적군의 사기를 떨구는 방법을 쓸 수 있다. 미신이나 점술을 부정하고 계몽시키는 것보다 그것을 적절히 이용하는 방법이 훨씬 쉽다. 만약 타지에서 멀리 떨어진 자들을 상대할 경우 사면초가의 일화처럼 향수를 자극할만한 요소를 쓰는 것도 방법이며, 김유신의 경우처럼 불길한 징조를 역으로 이용하는 책략도 있다.[12] 만약 적군이 출신 지역에 따라 편제가 다른 경우나 기타 갈등 요소가 있는 경우 이를 이용해 팀웍을 무너뜨리는 방법도 있다. 북한군은 그런 것도 필요없이 알아서 무너졌지만(...)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칫 극단적 민족주의로 퍼지기 쉽고, 중세와 같은 배경에서는 일부 귀족들을 제외한 농민 출신들에게는 제대로 된 애국심을 일깨워주기 어려우니 시대 배경에 따른 조절이 필요하다. 일단 나라를 사랑하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아군이 우리나라의 정치가 옳고 적국의 정치가 잘못되었다고 믿게 만들수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된다. 하다못해 자신들을 이끄는 장수가 단순한 상관이 아닌, 가족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어도 사기를 올릴 수도 있다. 전국시대의 유명한 전략가인 오기가 이러한 방식으로 병사들을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만약 상대 적장이 우주방어로 아군을 말려 죽이려 한다면 이 심리전으로 그걸 깰 수 있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많은 병력을 이끌고도 돌진하지 않고 짱박힌 장수는 군주의 의심을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에 관련된 헛소문을 퍼트리는 방식으로 의심을 사게 하면 장수가 교체되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13] 특히 이런 일로 교체된 장수들은 대부분 닥돌형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이쪽에서 함정을 파고 역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 테르시오 운용법을 보면 시대에 따라 즉, 중기병의 감소로 기병돌격력의 변화에 따라 방어력을 가감하는 등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장창과 총만 준다고 테르시오라는게 아니라는 것
- ↑ 후방행진이라 불리는 것으로 네델란드 마우리츠가 개발. 내용은 별거 없고 전열이 쏘고 사격 후 맨뒤로 간 다음 그 다음열이 나와서 쏘고 맨뒤로 가고 이런것. 일제사격에서 끊임없이 공격할 수 있게 개량 된 것이다
- ↑ 나폴레옹 시대 이전 쯤 되야 규격화된 포와 장약 조절 같은 포병 운영에 필요한 것들이 나온다.
- ↑ 가령 상대국 국왕이 찬탈자라던가, 악의 축이라던가
- ↑ 가령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과 그에 참여한 한국같은 나라는 욕을 먹었지만, 적어도 한국 국민들은 반공주의 명분 하에 베트남전 수행에 적극 참여했다.
- ↑ 특히 조선시대 의병장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유력자들은 벼슬 등의 형태로 유혹하기도 쉽고, 명분 등의 측면에서 설득할 경우 넘어오기도 쉽다.
- ↑ 아즈텍 정복 당시 코르테스가 써먹었다.
- ↑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 역시 '장수가 군대를 이끌 때에는 아무리 군주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게 있는 법입니다.'는 요지의 주장을 하며 왕이 아끼던 애첩 두명을 처형한 바 있다.
- ↑ 단, 장기적으로 보존식품을 먹을 경우 사기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자. 지금도 군대에서는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일반적인 배식을 가능한한 많이 할 것을 권하고 있다.
- ↑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시전했다고 한다. 정확한지는 확인바람
- ↑ 산과 바위가 많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을 할때 통조림을 묻을 곳이 없어 그냥 방치할 수 밖에 없었다.
- ↑ 별이 떨어져서 아군이 동요하자 연에 등불을 매달아 띄워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퍼뜨려 사기를 오히려 올렸다.
- ↑ 한니발의 경우는 우주방어하는 적장의 재산만 약탈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모두의 의심을 사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