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시오 빌라도

(폰티우스 필라투스에서 넘어옴)
  • 라틴어 : Pontius Pilatus (폰티우스 필라투스)
  • 이탈리아어 : Ponzio Pilato (폰치오 필라토)
  • 영어 : Pontius Pilate (폰셔스 파일럿)
Τί ἐστιν ἀλήθεια;

진리가 무엇인가? Quid est veritas?(요한 복음서 18장 38절, 공동번역성서)
진리가 무엇이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역)/What is truth?(영어역)/Was ist Wahrheit?(독일어 공동번역)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듣는다.(18:37)[1]"라는 예수의 말에 대한 대답. 영어권 쪽에서도 "진리가 대체 뭔데?" 투의 회의적이거나 조롱조로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예수는 대답하지 않고, 빌라도도 이 말 후에 예수를 풀어주라 주장하는 것을 보면 별로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고도 추정된다. 아무튼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였다.[2](18:38)"
Ἰδοὺ ὁ ἄνθρωπος.

자, 이 사람이다. Ecce Homo!(에케 호모[3]) (요한 복음서 19장 5절, 공동번역성서)
자, 이 사람이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역)/보라 이 사람이다(개신교역)/이 사람을 보라!(철학서)/Behold the Man!(영어역)/Seht, da ist der Mensch!(독일어 공동번역)

매질 후 가시나무 관과 자주색(황제의 용포) 옷을 입혀 내보낸 후 다시 한 번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무죄를 알리면서 호소하는 장면으로, 성화의 소재로서 자주 활용되었다.[4] 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초인의 이미지를 예수의 이러한 수난에 빗대어 썼다.

1 개요

한국의 개신교의 옛날 표기법 성경에서의 명칭은 본디오 빌라도로 저 이름으로도 리다이렉트된다. 본명은 폰티우스 필라투스이다.

로마 제국의 군인으로 AD 26년부터 36년까지 유대 총독이였으며, 예수십자가형에 처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루살렘 일대는 이 사람이 어느 정도 자율적으로 통치한 것으로 보이며, 이 지역 최고 의회와[5] 밀접한 협력 관계에 있었다. 여기서 쉽게 눈치챌 수 있지만 당시 유대 속주의 최고 의회는 20세기 초 한반도로 따지면 조선유교회 정도의 친일파에 해당하는 작태를 보였다. 이 시기 최고 의회에 소속된 사제들 중 "열심당원에게 암살당했다"고 기록된 이들이 있는 건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라틴어로서 'Pontio Pilato'는 원명의 탈격으로,[6] "sub Pontio Pilato (폰티우스 필라투스 아래에서)"라는 구절이 사도신경에 있다. 하지만 이것과는 관련 없이 에스파냐예수회 선교사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 가톨릭의 표기법 규칙 때문에 "본시오 빌라도"가 되었다. 스페인어로는 "뽄시오 삘라또" 정도로 읽는다.[7]

2 역사적 기록

로마인임에도 정작 성경 외에 그의 신원에 대한 로마 쪽의 기록은 없는 수준이며, 성경 외의 그에 대한 로마의 기록은 유명한 역사가 타키투스가 연대기에서 네로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설명하면서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예수라는 사람이 폰티우스 필라투스에게 처형당했다" 정도로 짧게 언급하는 정도 밖에 없다. 오히려 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대 지역의 역사가들의 기록을 통해 그의 행적을 살펴봐야 하는 실정이다.

유대 철학자 필로는 빌라도를 거칠고 악의가 있으며 잔인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의 역사적인 저작물들 중 하나에서 빌라도가 부임하고 나서 곧 유대인들을 적대하였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남아있는 행적들을 보면 썩 좋지 않은데, 빌라도는 로마에 저항하는 유대인들을 유혈 진압하는 군사적인 탄압 외에도, 유대교 성전에 로마식 신상(神像)을 달았다가 유대인들의 반발로 철회한다거나, 성전의 자금을 가져다가 로마식 수도관을 건설하는 정책을 세웠다가 유대인들의 항의에 직면하기도 했다.

생몰년도나 어디서 나고 어디서 죽었는지도 불명. 아버지가 스코틀랜드에 파견나갔던 외교관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스코틀랜드 땅에서 태어났다는 떡밥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전설 비슷한 이야기다. 워낙 기록이 희박해서 한 때는 그리스도교 측에서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었으나, 1961년에 신약에 기록된 재임시기에 만들어진 비문이 이스라엘에서 발견되었고, 거기에 그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한 사람임이 증명되었다.

3 직함에 대해서

빌라도의 직함을 총독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냐는 여부에 대해서 소소하게 문제제기가 있다. 빌라도는 유다이아 속주를 관할하지만, 또한 더 상위의 속주인 시리아의 총독 밑에 있었는데, 이 때문에 그의 직함을 총독으로 번역하는게 오역이 아니냐 하는 것. 일단 라틴어로 쓰자면 빌라도는 Praeses이고 시리아 총독은 Proconsul이므로 구분이 되며, 이런 면에서는 꽤 설득력이 있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총독'이라는 한국어는 식민지의 관할권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굳이 익숙하지도 않은 Proconsul과 Praeses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번역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또한 군인황제 시대의 로마사를 이야기 할때 정제와 부제를 가리지 않고 이해가 쉽도록 모조리 황제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를 보면 무작정 오역이라 몰아붙이긴 힘들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의 집필진들조차 이렇게 역덕들이나 신경 쓸 엄격한 어휘 구분을 하지는 않는데, 이를테면 루카 복음에서는 시리아 총독이고 유다이아 총독이고 간에 그냥 Praeses로 적혀있고, 똑같은 저자가 쓴 것으로 매우 강하게 추정되는[8] 사도행전에서는 시리아 총독과 동급인 아카이아 총독을 Proconsul로 적었다.

즉 애초에 당대 사람들은 이 둘의 구분에 큰 의미를 둔게 아닌데[9] 신자들을 햇갈리게 하면서까지 이 둘을 구분하는게 큰 의미를 가진다고는 하기 힘들 것이다. 일례로, New Jerusalem Bible에서는 Praeses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이 쓰인 부분은 (시리아 총독이든 유다 총독이든 구분 않고) 모조리 governor로 번역했고, Proconsul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이 쓰인 곳은 원문 그대로 Proconsul로 옮겼다. 그런데 여기서 시리아 총독와 유다 총독을 모두 govermor로 옮긴게 오역이라 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성경 집필진도 신경 안썻다(...)

4 듣보잡이었나?

기록이 부실한 점을 보면 크게 별 볼 일 없는 듣보잡 인물이 예수를 처형한 것 때문에 현대까지 알려진 것처럼 보인다. 사실 로마 제국의 지방 총독 휘하의 관료는 셀 수 없이 많고, 이후에 뭔가 큰 일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 평범한 공무원들 사람들 가운데 현대까지 알려진 인물은 거의 없다. 이 시대의 인물들 가운데 현대까지 인지도가 높으려면 황제 아니면 뭔가 정말로 비범한 군사적, 문화적 업적을 세운 사람 정도. 사실 황제도 별 업적이 없으면 이름도 까먹는 경우가 많은데, 고작 지방 관료 정도 지위로 현대까지 이름을 알린 건 예수 빨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

다만 지금 시점에서 그렇다는 거고, 당시 로마 정계 시점에서는 높으신 분으로 엄청난 고위직이자 정계의 중요 인물이었다. 성경만 봐서는 알 수 없겠으나 로마 역사서와 당시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시리아 총독은 집정관령으로, 원로원이 터치할 수 없는 높은 자리이다. 게다가 당시 이 지역은 로마의 가상 적국 1호인 파르티아의 최전선으로 무려 2개 군단이 상주하는 자리였다. 이런 집정관령 총독 자리는 시리아 지방[10]과 영국 북부지방, 라인강 게르마니아 전선, 도나우강 전선, 북아프리카 전선 등이 있다. 그의 직속상사 루키우스는 집정관의 측근 세력이라는 것이 입증이 되는 사례이기도 하다.

예수를 처형하자고 유대 속주 최고 의회 성직자들이 난리를 피울 때 그리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의 관점도 사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많은 그의 입장에서 잡범(...)인 예수를 죽이네 살리네 자체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쓸데없이 시리아 총독에게 보고했다가 불벼락을 맞을 수도 있으니....

5 성경에서 언급된 빌라도

예수는 본래 신성모독으로 기소되어 유대 지방 최고 의회에 출두했는데, 속주의 최고 의회에서는 사형을 내릴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성직자들은 예수정치범으로 몰아 빌라도의 법정으로 보냈다. 성경에 따르면,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고 여러 차례 가야바 파벌을 설득하려 했으나 끝내 가야바 파벌들에게 떠밀려 예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신약성경 마르코 복음서에서 빌라도는 바라빠[11]를 처형하느냐 예수를 처형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예수를 죽이라는 히브리들의 의견에 떠밀려서 대충 예수를 사형시키기로 결정하고,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하며 손을 씻은 비굴하고 교활한 법조인 정도로 묘사된다. 예수의 죄는 찾으려 해야 찾을 수 없고, 그렇다고 바라빠를 처형하겠다고 하면 이스라엘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 같고...

여기서 가나안 지방의 명절인 유월절에는 우리나라의 광복절 특사 비슷하게 죄수를 1명 풀어주는 전통이 있었다는 배경 설명이 나오는데, 문제는 이게 떡밥이라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에 그런 관습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오직 성경에만 나오며, 4개 복음서 이외의 다른 기록에는 그에 관한 전승이 나타나지 않는다. 때문에 이 선택 부분 자체가 후대의 창작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 있으며, 로마와 그리스에는 존재하던 풍습이라는 이론도 있다.

사실상 예수의 처형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임에도 예수가 죽는 것을 방조했다.[12] 앞에서 언급되었듯 속주의 최고 의회에서는 사형 선고를 내릴 권한이 없었으므로, 빌라도가 끝까지 거부하면 예수는 정치범으로 기소되지 않을 수 있었고 사형 선고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가야바와 성직자들이 강력하게 빌라도를 압박하여, "만일 그자를 놓아준다면 장관&지사님은 카이사르의 충신이 아닙니다."라고까지 했다.듣고 보니 진짜 불쌍하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스카리옷 유다와 비교하면 의외로 그렇게까지 심하게 비난받지 않는 편.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는데 왜 안 그랬을까 쯧쯧쯧." 정도의 중립적인 시선으로 본다. 이건 아무래도 이 인물이 예수의 지지자도 반대자도 아닌 제삼자였던 점과, 복음서에 묘사된 끝까지 예수를 처형하기를 주저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이미 복음서에서도 빌라도가 이스라엘인을 학살했다는 글귀가 있는데, 루카 복음서에 빌라도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많다.

바로 그 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빌라도가 희생물을 드리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하여 그 흘린 피가 제물에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일러드렸다. (루카 복음서 13장 1절, 공동번역성서)

 

헤로데[13]와 빌라도가 전에는 서로 반목하고 지냈지만 바로 그 날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 (루카 복음서 23장 12절, 공동번역성서)

 
복음서에 묘사된 빌라도의 태도는 실제 빌라도의 태도라기보다는 호교론적인 의미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특히 로마인들을 겨냥한 것으로, "우리가 하느님으로 받드는 이스라엘인 남자가 빌라도 장관에게 사형을 당하긴 했지만, 로마 법에 어긋난 사악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유대 총독은 그저 최고 의회의 압박 때문에 사형을 선고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범법자를 숭배한다고 하지 마라!"인 것이다.

6 사도신경에서 언급된 빌라도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가톨릭의 사도신경)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개신교의 사도신경)

 
사도신경에서 본시오 빌라도를 언급하며 그를 깐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사도신경의 라틴어판에서는 'sub Pontio Pilato'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본시오 빌라도 아래에서'라는 뜻으로, 본시오 빌라도에 의해서 고난받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 가톨릭이나 성공회[14]에서 쓰는 사도신경이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수가 언제 처형되었는지 시간을 명시하는 목적이 크며, 또한 빌라도에게 단죄의 책임을 돌리지 않는 서술이다. 빌라도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했다면 '본시오 빌라도에게(a Pontio Pilato)' 고난을 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가톨릭이 빌라도가 이뻐서 이렇게 말해주는건 결코 아니고, 최소한의 쉴드(...)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다만 한국 그리스도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개신교에서 외는 사도신경에서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오역되어 있으니, 빌라도가 일요일마다 까이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영원히 고통받는 본시오 빌라도 빌라도를 배신자로 취급하는 개신교의 경우 빌라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설교도 많이 한다.(예문)

7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언급한 빌라도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필라투스에 대해 언급한다. 당대의 비기독교도가 예수와 필라투스에 관해 쓴 거의 유일한 문헌이다.

필라투스는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의 후임으로 유다이아에 부임했다. 그가 부임할 때, 카이사레아에 주둔하던 군대를 예루살렘으로 재배치하고 유대지사 중 처음으로 황제의 초상을 예루살렘으로 들여왔기 때문에 유대인에게 불만을 샀다. 결국은 유대인들의 강경한 반발로 초상들을 다시 카이사레아로 옮긴다. 심지어 치수공사를 통해 예루살렘에 물을 끌어왔음에도 그마저 성수 장사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불만거리였다. 유대인들이 필라투스에게 항의하는 집회를 계속 열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해산시켰지만 갈수록 먹히지 않았고, 결국 진압은 유혈사태로 비화되지만 일단은 소요를 잠재우는 데 성공한다. 그 즈음 유대인 유력자들의 압력으로 예수를 처형한다.

이후 사마리아인들의 종교 집회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는 과정에 티라타바라는 마을 근방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사마리아인들은 시리아 총독인 루키우스 비텔리우스에게 항의한다. 비텔리우스는 필라투스를 10년 동안 있었던 유대 지사에서 해임시키고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유대에서의 폭력사태에 대해 답하도록 로마로 보낸다. 하지만 그가 로마에 도착할 때, 티베리우스가 죽는다[15]

8 여러 곳에서 언급된 빌라도

3~4세기의 교부 에우세비오가 교회 전승에 따라 저술한 교회사에 따르면 가이우스 황제의 명령으로 자살했다고 한다. 이게 맞다면 티베리우스 대신 칼리굴라가 대신 폭력사태의 책임을 물어 자살을 지시했을 수도 있다.

꿈자리가 사나웠다며 처형을 말렸던 빌라도의 아내가[16]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전승이 있는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도 묘사되었다. 빌라도의 아내의 꿈에 대한 얘기는 메리에타 데이비스의 "천국에서 보낸 9일" 책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야사 중에는 아예 빌라도가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예수를 옹호하다가 순교했다는 것까지 있다. 단성론 계열인 이집트콥트 교회에티오피아 정교회는 빌라도의 아내를 성녀로 모시고 있는데, 이 전승에서 빌라도의 아내의 이름은 클라우디아 프로쿨라라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정교회, 개신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17] 한편 빌라도 자신이 주교가 되었다는 전설, 빌라도가 처참하게 처형당한다는 외경의 이야기도 전한다.[18]

이와 같이 유대 장관 외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많은 역사 소설의 떡밥이 되는 인물이다. 대체역사를 모아둔 만약에라는 책에서는 유대인들의 반항을 묵살하고 예수를 풀어 준 후 관찰자로 등장한다.[19] 러시아의 문호 불가코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죄없는 예수를 처형한 죄책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으로 꽤 비중있게 등장했다.[20] 한국에서도 임동진[21]이 주연한 연극 <빌라도의 고백>이라는 1인극이 만들어졌다.

빌라도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티베리우스에게 보냈다는 "빌라도의 보고서"가 있었으나 위작으로 밝혀졌다.
  1.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번역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 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2.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역에서는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3. 교회 라틴어로는 엑체 호모라고도 한다. 액체 호모가 아니다
  4. 관련 그림들.스페인 에케호모화 훼손사건도 있다….
  5. 흔히 산헤드린이라 일컬어지는 그것이다. 그러나 산헤드린은 고유명사가 아니며, 그냥 최고 의회를 일컫는 그리스말 쉬네드리온의 아람어 변형일 뿐이다.
  6. 성경에 등장하는 라틴어 인명 대부분이 그렇다. '티베리우스'를 '디베료'로, '아우구스투스'를 '아구스도'로, '클라우디우스'를 '글라우디오'로, 코르넬리우스'를 '고넬료'로... 등등. 전부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알고 있는 라틴어 인명의 '-us'를 '-o'로 바꾸고, 'ㅋ, ㅌ, ㅍ' 등의 격음을 'ㄱ, ㄷ, ㅂ' 등의 평음으로 바꾸면 대충 개신교 성경에서의 표기가 나온다.
  7. 예수회 설립자 이냐시오 데 로욜라스페인어로는 이그나시오 데 로욜라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로욜라는 스페인 사람이므로 스페인어로 읽는 게 딱히 틀린 건 아니다.) 서강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이냐시오 성당의 명칭 유래이며 군인들의 수호성인이다.
  8. 전통적인 성서 이해 뿐만 아니라, 현대 성서비평학에서도 두 책의 저자는 같은 사람인 것으로 강하게 추정한다.
  9. 조잡한 비유를 하자면, 한국인들이 '대구광역시'이든 '경주시'이든 편하게 '대구시'와 '경주시'로 부르는데, 외국인이 대구 메트로폴리탄 시티'로 옮겨야 하고, '대구 시티'는 오역이라 주장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구분 따위는 장식입니다. 미래인들은 그걸 몰라요
  10. 물론 빌라도 당시엔 시리아 속주는 황제령으로 전환.
  11. 복음서에 따라 강도살인을 저지른 죄수로 나오기도 하고, 열심당원으로 히브리인 민족주의 혁명가로 나오기도 한다. 두 설 모두에서 공통된 점은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악질 범죄자임은 틀림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설마 죄인이라는 증거자료가 아무것도 없는 예수를 죽게 하려고 이런 대흉악범을 석방시키겠냐?'라는 생각으로 바라빠를 디민 것이라 할 수 있다.
  12. 이 방조했다는 게 빌라도 입장에선 나름 억울할 수도 있을 만한 게, 요한 복음서 19장에 보면 꽤나 적극적으로 예수를 풀어주려고 힘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빌라도의 아내 역시 남편에게 예수의 무고를 증언하며 놓아주기를 권했으나 당시 유대인들이 적극적으로 십자가형을 주청했다.
  13. 이 때의 헤로데는 헤로데 안티파스이다.
  14. 공동번역성서를 쓰는(...) 성공회의 기도문에서는 본티오 빌라도라고 한다.
  15. 티베리우스는 기원후 37년에 죽는다.
  16. 마태오 복음서 27장 19절 : 빌라도가 재판을 하고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전갈을 보내어 "당신은 그 무죄한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간밤에 저는 그 사람의 일로 꿈자리가 몹시 사나웠습니다." 하고 당부하였다.
  17. 다만 개신교 계열 라디오 방송인 극동방송의 방송인 주일드라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뤘을때 빌라도의 아내이름을 클로디아로 설정했다하긴 그냥 빌라도의 아내라고 했으면 심심했겠지
  18. 외경에서 빌라도에 대해 이렇게 말이 다른 것은, 결국 외경이 쓰여진 시절에도 빌라도에 관한 소식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19. 이 책에서 예수는 무려 97세란 경이적인 장수를 누리고 평온하게 사망한다.
  20. 사실 단순히 잠을 못 이루는 정도가 아니라 그 죄책감 때문에 죽어서도 죽지 못 하는 상태였다. 무려 1만 2,000번의 잠 못드는 만월을 반복하고 있다고 언급된다. 거장이 자유를 부여하고 나서야 예수의 곁으로 떠났다.
  21. 원래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는 연기자였으나 후에 신앙심이 깊어 목사가 되었다. 애마부인에 출연한 흑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