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트레이드

한화 이글스의 주요 선수 트레이드를 정리해 놓은 항목.

1 1994년

1994년
팀명트레이드 선수트레이드 선수팀명
한화이정훈, 장정순정경훈, 정영규삼성

올드 한화팬들 앞에서 절대로 말을 꺼내면 안될 최악의 트레이드. 당연히 이 트레이드를 주도 및 실행한 사람은 이글스의 금지어이다. 당시 한화팬들은 이정훈 트레이드 안 된다라고 트레이드에 반대한 팬들도 있었다.

2 1995년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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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김상국박은진현대

3 1999년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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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전상렬, 홍원기김경원두산

당시 한화는 이영우, 송지만, 제이 데이비스에 외야 백업으로 최익성을 트레이드 해오면서 자리가 없던 전상렬백재호, 임수민, 강석천에 밀려 역시 자리가 없던 홍원기를 내주고 송진우, 정민철, 이상목을 제외하면 터무니 없이 약했던 선발진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두산베어스 투수이자 신인시절 1점대 마무리였다가 진필중에 밀린 김경원을 데려온다. 이 결과는 결국 두산에게 쾌재를 부르게 했는데, 김경원은 몇년도 안가서 구위 저하로 별 활약 없이 은퇴하게 되고 전상렬은 두산에서 주전과 백업을 오고가며 두산 외야진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홍원기는 김민호의 은퇴시기가 가까워지며 주전 유격수를 지키다 손시헌의 등장으로 현대로 트레이드 되고도 백업 내야수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후 현대에서 은퇴한다.

4 2003년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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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채상병문동환두산

최고의 트레이드

희대의 트레이드이기도 한데. 정수근 보상 선수로 두산은 문동환을 지명, 투수가 필요했던 한화는 포수가 급했던 두산에 채상병을 제안해서 두산이 승낙,문동환이 한화로 오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화가 젊은 포수 주고 퇴물투수 데려왔다고 말이 많았다. 유승안이 작심하고 4승15패라는 영 좋지 않은 성적 찍으면서도 풀타임 소화 시켰고 그 결실은 2005년 10승 9패 방어율 3점대. 2006년 16승9패 방어율 3점대 초반을 찍으면서 맺게 되었다. 채상병도 홍성흔이 돌아올 때까지 쏠쏠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윈윈이었던 트레이드.

5 2004년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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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송지만권준헌현대

황금 독수리라 불렸던 국대급 외야수 송지만과 당시 타자에서 투수로 전환 후 주가를 올렸던 권준헌과의 트레이드. 당시 송지만은 프런트와의 마찰이 심했고 그 이듬해에 송지만과 이영우 둘 다 FA였기 때문에 한화 프런트는 과감히 한 명을 포기해야 했다. 최고 38홈런을 치는 등 파워가 상당했고 교타력을 제외한 전체적인 면에서 이영우보다 나았으나 우타였던 점, 당시 부상을 안고 있었고 프런트 및 코치진과 불화가 있었던 점, 그리고 50홈런을 치는 괴물들이 있었기 때문에(...) 1번을 쳤던 이영우를 선택. 송지만을 트레이드를 한다. 당시에도 논란이 심했지만 2005~2007년 한화가 잘나가면서 묻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이 이후 한화 외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송지만 거르고 남긴 이영우는 병역비리가 걸렸고... 결국은 부상후유증으로 망했어요......

6 2008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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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심광호이여상삼성

현재윤의 부상으로 진갑용을 받쳐줄 마땅한 백업포수가 없던 삼성에 김인식 감독이 먼저 심광호를 제시했다고 한다. 당시 삼성 2군 유망주 중 촉망받던 이여상을 데리고 오며 괜찮은 트레이드로 평가되었으나 이여상은 결국 터지지 않고 2차 드래프트에서 롯데로 갔다. 심광호 역시 백업으로 뛰었지만 별 활약은 못했고 결국 2년만에 방출되어 LG로 가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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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신종길강동우KIA

2008년 시즌 종료 이후 단행된 트레이드. 최연소 사이클링 히트도 치면서 기대를 받았던 신종길이었지만 생각보다 성장해주지 못하고 방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한화의 제이 데이비스 이후의 중견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저니맨 생활을 하고 있던 강동우와 트레이드되었다. 김인식 감독은 또 유망주 내주고 노장 얻어온다며 까였다. 그러나 강동우가 한화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며 세계 최고령 1번타자로 활약하는 사이 신종길은 기아팬들의 미움을 받으며 계륵취급을 받고 있다가 2013년에야 겨우 포텐을 터트렸다. 2012년 까지는 한화가 압승인 트레이드였지만 2013년부터의 신종길의 활약과 강동우의 은퇴로 균형이 맞아들어간 모양새.

7 2009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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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김창훈, 조규수이대수두산

한대화 감독이 리빌딩의 일환으로 추진한 트레이드. 김민재의 은퇴와 함께 공백이 되어버린 한화의 유격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단행되었다. 이대수도 좋은 수비에 비해 빈약한 타격으로 1.5군감 정도의 평가를 들었지만 조규수와 김창훈[1]은 정말이지 못 써먹을 수준이었다. 사실상 두산에 자리가 없는 이대수의 앞길을 터줌과 동시에 정말로 선수가 없는 암흑기 한화[2]에 대해 두산과 김경문 감독이 선심성으로 응한 트레이드라고 볼수 있겠다.

한화로 온 이대수는 기대한 롤 이상으로 타격에 눈을 떠서 2011년에는 전에는 꿈도 못 꾸던 3할의 타율을 기록하며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2013년 시즌 후에 FA대박까지 터트리고 14시즌 SK로 트레이드 되며 전과 전혀 달라진 위상으로 친정팀에 돌아갔다. 빛이 보이지 않던 한화의 내야를 그나마 풍요롭게 해 준 트레이드.

한편 조규수는 얼마안가 은퇴했고 김창훈은 좌완 사이드암 계투라는 희귀함으로 조금더 버텼지만 결국 2014년에 방출되었다.

8 2010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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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마정길 + 3억원마일영넥센

시즌 개막 직전 단행된 일명 마-마 트레이드

사이드암 불펜 투수였던 마정길과 좀 부진했지만 그럭저럭 했던 마일영의 트레이드. 사실 이 트레이드의 경우 강산을 다시 한 번 되돌린 시점에서 본다면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렇지 못했으니 가정은 필요 없다. 당시 한화의 경우 선발로도 활약했던 마일영이 불펜으로 괜찮게 활약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으나 현실은...2011년시즌 중 3개월 잘하고 나머지 버로우 반면 마정길은 2009년 한화의 불펜을 떠맡았던 것처럼 변함없이 넥센 불펜을 이끌고 있다. 대실패. 그리고 마정길이 현재도 현역인데 마일영은 얼마전에 방출되었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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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안영명, 박성호, 김다원장성호, 김경언, 이동현KIA

2010시즌 중반에 전격 단행된 트레이드. 양 팀간에 논란이 많은 트레이드이다. 대체적으로 기아쪽이 더 호평이었으나 13시즌에 들어서면서 악평받던 한화 쪽도 호평으로 돌아서고 있는 트레이드로, 2015년 시점에서는 한화의 압승으로 결론이 났다.(단, 장성호의 활약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이 틀드의 결과는 사실 장성호가 시즌말미까지 기대치만큼 해주진 못했지만 11~12시즌 초중반에 타선에서 쏠쏠했으며 김태완이 돌아오기 전까지 잘 막아줬고 옛날만큼의 타율은 나오진 않지만 김태균, 김태완이 부재한 상황에서 선구안들이 다들 이상한(...) 한화타자들 중에서 출루율이 가장 좋아 어쨌든 나갔다는 점에서 그나마 점수를 줄 수 있다고 하겠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범호 보상 선수로 안영명을 데려오고(...) 기아로 갔던 나머지 두 선수들이 제 몫을 못해주고, 이 트레이드의 진 주인공 김경언은 기대이상의 활약을 해주는 시점에서 이미 기아 FAIL(...) 최종적으로 김경언은 KIA에서였으면 꿈도 못 꿨을 FA 계약까지 맺고 갓경언으로 숭배되며 한화의 주축 타자로 거듭난 데다, 장성호송창현을 데려오기까지 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그래도 유일한 생존자 김다원이 14시즌부터 희망을 봤다는 것이 기아로서는 위안거리다.

안영명이 1년도 안 되어 한화로 리턴했고, 박성호 또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다 2015년 트레이드로 안영명을 쫓아 다시 한화에 둥지를 틀었다는 점 또한 상당히 이채롭다. 결국 KIA에 남겨진 건 김다원 뿐...

이동현이 실패한 게 유일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9 2011년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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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유원상, 양승진김광수LG

역시 시즌 중반에 단행된 트레이드다. 당시 대다수 한화팬들은 유원상이 간 것에는 별 문제삼지 않았다(...) 하필 +@가 추가되지 않고 김광수 데려온 것에 대해만 문제 삼았을 뿐. 유원상이 2012년 각성하고 WBC에 승선하면서 엘지 쪽으로 승리가 기울었으나 유원상한테 쌓인게 많았던(...) 치킨한화팬들은 기적이라며 놀라워하기만 했다

반면 김광수는 탈쥐효과라는 말이 무색하게 엄청난 부진을 겪으며 김광수소폭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닉네임을 획득한다. 송신영이 FA로 넘어와 NC로 가기 전까지 분식회계를 했던 장본인. 한화로 오면 탈쥐효과는 사라진다? 결국 유원상이 준수한 불펜으로 성장한 데다 군면제까지 받게 된 반면, 김광수는 2014년부터 전력외 선수가 되어 2015년 KIA 타이거즈로 팔려가며 이 트레이드는 대실패로 귀결되었다. 더군다나 한화시절 내내 김광숯이라고 까이던 김광수가 기아에서 프로입단 16년만에 포텐이 터지면서... 한화만 안습해졌다.

10 2013년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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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장성호송창현+(@)롯데

김태균,최진행을 제외한 한화 야수 중에서 가장 값어치 있던 장성호김태완이 복귀하자 트레이드 자원으로 내놓았다. 수준급 1루수가 급했던 롯데가 송창현+@[3]을 제시했으나 한화는 호구스럽게쿨하게 송창현만 받고 끝냈다. 그런데 송창현이 13년 시즌 말미에 싹수를 보여주었고 장성호는 기대만큼 해주지 못하면서 2013시즌은 일단 한화가 득을 본 트레이드라 하겠다. 그리고 장성호가 5경기뛰고 롯데측과의 불화로 방출되면서 한화가 이익을 봤다. 다만 송창현도 이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재활과 입대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체감상 큰 성공이라 하긴 어렵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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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상훈길태곤삼성

한화는 군면제 좌타 외야 유망주를 트레이드 자원으로 내놓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데려온 상대는 이제 막 포수에서 투수로 포지션 전환한 길태곤이었는데 이상훈이 2군에서 좋은 성적을 내주고 한화에서 귀한 군필/면제자원이라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샀다. 아마도 김응룡 감독이 떡대를 좋아한다는 점이 가장 크고 둘째로 이상훈의 피지컬을 보건데 한계가 있을 거라 판단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길태곤이 신고선수로 전환되고, 이상훈이 2군에서 제 몫을 해주면서 일단은 한화가 손해를 본것으로 보인다.

11 2014년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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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대수, 김강석조인성SK

한화로서는 윈윈을 기대할수도 있는 트레이드. 일단 나이가 40을 바라보는 포수를 그냥 무작정 선수로만 데려왔을 가능성은 없고 한화 신인 포수들(김민수, 정범모)의 성장을 위해 2~3년 정도 플래툰 형식 혹은 차후 코치를 맡아서 투수리드를 가르치라는 의미 같다. 칰무원 조경택 짤린다 멘토 역할을 할 현역 베테랑 포수가 없던 한화라서 김민수와 정범모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미운털이 박혔는지 어차피 쓰지 않던 고연봉자 이대수를 치우고 취약 포지션 포수를 보강한 것도 의미가 있다. 다만 조인성과 신경현 코치는 동갑이다. 현재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는 신경현과의 공존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신경현은 2군 코치였던 관계로 1군의 조인성과 공존하는 시간이 거의 없어 큰 문제는 없었다.

2014년말 현재로선 한화 쪽이 대성공한 트레이드. 조인성은 기대대로 젊은 포수들의 멘토링을 충실히 해 정범모의 가시적인 성장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후반기 팀내 주요전력이 되어 좋은 활약을 펼쳤다. 반면 이대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 머물렀으며, 김강석은 반전의 계기를 아직 찾지 못했다. 김응용 감독의 유일하다시피 한 유산으로 평가받는 트레이드.

더군다나 김강석이 2015시즌 끝나고 방출되면서 SK가 손해를 본 것이 맞다고 확인되었다. 이대수가 15년 9월에 나름 괜찮게 해 줬지만 조인성에 비해서 활약이 없다는게 문제.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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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현금 5억 5천만원정현석삼성

한화가 전 삼성 투수 배영수를 FA 영입하면서 삼성은 보상선수로 정현석을 택했는데, 정현석은 위암 초기 진단을 받아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태였다. 한화는 삼성의 정현석 지명의사를 듣고 정현석의 상태를 삼성에 전달했으나 삼성은 그대로 정현석을 영입했는데, 며칠 후 문제가 된 것. 당초 배영수의 당시 연봉(5억 5천만원)의 200%와 정현석을 한화로부터 받게 된 삼성이었으나, 두 구단의 협의하에 한화가 배영수의 연봉의 300%의 보상만을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행정적으로는 12월 14일 정현석은 삼성 선수가 되었기에, 이 절차는 현금 트레이드의 형태로 진행되어 정현석은 이틀만에 고향팀으로 돌아온 셈이 되었다.

12 2015년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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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양훈이성열, 허도환넥센

2015.4.8일 오후 3시 경 갑작스럽게 발표된 트레이드. 수비가 되는 포수와 좌타 거포를 원했던 한화와 선발 투수가 부족한 넥센이 카드가 단번에 맞추어져 이루어졌다.
그리고 양훈은 넥센가서 이지풍 트레이너의 코칭을 통해 선발로 부활하나 싶었지만 다음 해 폭망한다. 허도환칰금님차일목에 밀려 나가리, 이성열은 그놈의 선풍기 스윙 때문에 대타로만 나오다가 약쟁이의 시즌아웃으로 간간히 선발 출장 중이다.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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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유창식, 김광수, 오준혁, 노수광임준섭, 박성호, 이종환KIA

5월 6일[4] 오전 9시경 갑자기 발표된 대형 트레이드. 한화팬들의 애증의 대상 유창식이 고향팀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1군 좌완 불펜이나 선발 투수로 활용가능한 임준섭을 데려왔다. 한화팬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오고 있는데, 유창식의 포텐셜을 아쉬워하거나 전체 1라운더 유창식을 스물일곱 살 미필 투수로 바꾸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앓던 이를 뺀 홀가분함을 이야기하는 팬들도 있다. 한편 유창식과 함께 이동하게 된 김광수에 대해선 전력외 자원이어서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지만, 타격 재능을 인정받던 오준혁과 매우 성실한 준족 외야수로 알려진 노수광에 대해서는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받아온 선수들 역시 이종환은 이미 트레이드해 온 이성열과 중복으로 여겨질 수 있는 자원이며, 박성호야 원래 한화에서 왔으니 한화팬들이 뻔히 알고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다소간 밑지는 장사를 했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이 트레이드는 불펜진의 과부하를 우려하던 김성근 감독이 먼저 제안하여 성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6년 현재 시점에서 임준섭은 사이버투수로 전락했고, 박성호는 부상, 이종환은 똑딱이 신세에 머물면서 한화가 이득을 본 부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 기아 입장에서도 메인 카드인 유창식은 여전히 불이나 지르면서 아직까지는 소득이 없다. 그런데 의외로 덤으로 준거나 마찬가지인 방화신기였던 김광수가 35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호 성적을 거두고, 오준혁, 노수광이 1군과 2군을 오가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한화의 손해쪽으로 분위기가 굳어지는 중이다.

16시즌 들어 이 트레이드는 과거 LG-KIA의 트레이드를 연상시키는 조공 트레이드가 되어버렸다. 15시즌이 플루크 시즌이라고 믿었던 김광수는 어느새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방어율 3점대를 유지하는 리그상위권 셋업맨이 되어버렸고, 타격 주루 포텐은 있지만 아직 터지지 않았고 수비에 큰 문제가 있다던 노수광과 오준혁은 기아의 1번과 2번을 번갈아가며 차지해 오준혁-김호령-노수광으로 이어지는 20대 초반의 외야수들은 KIA의 외야 리빌딩을 한방에 끝내버렸다. 물론 메인 카드였던 유창식은 결국 고향 팀에서 포텐을 터트리는 데 실패하고 이후 승부조작 경력이 발각되어 흑역사가 되면서 기아 입장에서는 옥의 티가 되었지만...

반면 임준섭은 부상으로 인한 재활과 군입대로 최소 2년에서 3년동안 1군에 올라올 수 없고, 박성호는 방출, 이종환은 간혹 대타요원으로 기용 되지만 2할대 초반의 타율을 보여줌으로써 한화의 현재와 미래를 몽땅 쓸어다가 KIA에 바친 꼴이 되어버렸다.
  1. 일단은 두산에 필요한 좌완 불펜투수이긴 했다만......
  2. 어느 정도 수준이었냐면 10시즌중 주전 3루수 송광민의 시즌 중 입대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자 손지환을 급하게 영입할 수 밖에 없었다. 선수 지명과 지원을 소홀히 한 프런트와 젊은 선수 육성과 군입대 문제 해결 등에 무관심했던 김인식감독의 시너지가 어우러져 일어난 병맛 사태 실제로 한화의 암흑기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부분이다.
  3. 롯데 측은 한화가 +@를 제시할 줄 알았으나 안했다는 것에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4. 공교롭게도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가 일어난 지 2년 뒤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