戱曲.
1 정의
대사(臺詞)를 중심으로 하여 인물의 동작이나 무대 효과에 관한 스테이지 디렉션(stage directions)을 첨가하여, 문자로 표현한 것을 가리킨다.
희곡은 분명 문학의 한 갈래이지만, 공연예술인 연극의 대본이기도 하다. 그만큼 연극과 희곡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희곡은 결코 연극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며, 희곡 자체만으로도 문학성을 갖추고 있다. 즉, 희곡은 극작가 개인(혹은 집단)이 자신의 생각과 사고 등을 표현하는 고유한 문학적 활동이며, 소설, 시 등의 다른 문학 장르과 달리, 공연화가 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있다. [1]
이와 달리, 연극은 희곡이 연출가, 배우, 무대 디자이너 등 여러 공연요소와 만나 공연물로 탈바꿈한 종합예술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연극은 희곡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2]
간혹 '희곡'과 '희극'을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희극(喜劇)은 연극의 양식으로, 즐겁고 우스꽝스러운 내용에 해피엔딩인 코미디(comedy)를 말한다. 희극의 반대말이 바로 비극이다.
2 어원
본래 희곡(戱曲)이라는 단어는 가무가 중심이 되는 중국의 전통극을 가리키는 말이었다.[3] 이것을 근대 일본에서 서구의 'Drama'에 대한 번역어로 사용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4]
그리고 Drama라는 용어는 그리스어인 dran(행동하다라는 뜻의 동사) + ma(결과를 뜻하는 명사 어미)의 합성어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행동하기로 표현되는 문학 양식이라는 소리다.[5]
3 역사
서구의 근대희곡은 현대문학이 시작된 시발점이기도 하다. 중세 문학은 기사문학과 영웅담, 괴담집에 불과했는데 이를 체계적으로 기승전결 및 인물구성과 복선의 개념을 갖춘 현대적 소설이 등장하게 된 계기에는 그에 앞서 점진적으로 발전한 근대 희곡이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희곡은 고대 그리스시기부터 존재했었고, 이 시기 연극은 시간, 장소, 사건이 일치되어야 했었다. 그러니깐 극단적으로 말해서 공연시간이 1시간이면 희곡의 시간 흐름도 1시간이어야 했고, 장소의 전환 같은 것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대표되는 초현실적 해결장치가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6]
사실상 이러한 시간, 장소, 사건의 일치는 하나의 고정관념이 되었고, 모든 연극은 하루 안에, 한 장소에서 한 가지 사건만을 나타내야 했었다. 그런 가운데 셰익스피어는 이 시간과 장소의 일치를 깨부순 희곡을 창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19세기 과학 혁명과 프랑스의 문예운동은 낭만주의극을 탄생시킨다. 이 낭만주의극은 바로 셰익스피어에 대한 재조명과 절대적인 찬사 속에서 이루어졌다. 낭만주의 극 시대의 희곡은 자연스러운 시간과 공간을 채택하여 실생활과 같은 모습을 그려냈으며, 이 시기 멜로드라마와 그 공식이 탄생했으며, '웰메이드 드라마(Well-made Drama)'라는 용어도 이 시기 생겨났다.
그 공식이란 것이 1) 관객(독자)이 감정이입을 할 만큼 멋지고 잘난 주인공이 어떤 사건에 휘말려 긴장이 형성되고, 2) 관객(독자)은 알지만 주인공이 모르는 어떤 비밀 때문에 위기가 생기고, 3) 그러던 중에 반전이 생겨서 긴장감을 자아내다가, 4) 사건이 해결되고 주인공이 승리하는 식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것 같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공식 때문에 그 작품이 그 작품 같고 비현실적인 요소로 욕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근대연극과 근대희곡이 탄생하게 된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지만, 19세기 때까지만 해도 일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실생활의 평범한 언어를 쓰며 일상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불유쾌하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돈 내고 즐기러 왔는데 왜 그런 걸 봐야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노르웨이의 헨리크 입센(1828~1906)에 이르러, 진정한 근대희곡이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희곡 속에 사회적 문제를 담기 시작했으며, 인물의 행동이나 말투 등을 통하여 인물의 성격이나 소망, 현 상황 등을 드러내는 '서브텍스트[subtext]'들이 풍부하게 활용되었다. 특히 그의 희곡인 인형의 집은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작가'이자, '희곡사 및 연극사에서 빼놓아서는 안될 인물'로 만들었다.
이러한 입센의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 스트린드베리, 체호프, 버나드 쇼,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의 극작가가 등장했고[7], 현대의 사실주의 뿐만 아니라, 표현주의와 상징주의 같은 다양한 문학이론과 희곡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즉, 19세기 이후 극작가들이 과거의 연극 주류를 정면으로 배격하고 오늘날 현대문학에 당연시되는 여러 장치와 소재들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데, 현대문학은 바로 이들의 연구성과를 받아먹고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인지 문학평론가들은 극작가를 소설가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두는 경향도 많다. 실제로 해외 문학저널에서는 희곡의 비중이 많은 편으로, 극작가들이 홀대받는 것은 국내만의 특징.
이는 우리나라에서 연극의 위치 문제이기도 하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는 보더라도, 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 한편으로 과거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개판이었던 것이 크다. 일제시대 때에는 어떤 극작가가 창작한 작품이 인기가 있다 싶으면 비슷하게 베껴서 창작하여 공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었던 데다가, 극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공연하기도 했다. [8] 그리고 '신극(新劇)운동'이라 하는 비영리/반직업적인 연극운동에서 실질적인 근대연극이 출발한 터라, 대중성이나 상업성과는 거리를 두는 경향이 강했다. 돈을 버는 목적보다는 문화운동이라는 사명감이 더 컸던 터라 직업으로서의 본격적인 극작가 출현은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9]
또한 결정적으로 5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의 성장과 70~80년대 TV드라마의 등장...
돈 안되고 열악한 희곡 보다는,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가 훨씬 더 돈이 되니... [10] 당연히 그 방면으로 사람들이 갈 수 밖에 없다. 당장 희곡 공모전보다는 시나리오 공모전이 훨씬 더 많고, 상금도 많다. (...)
우리나라의 전통극은 문자화된 희곡이 존재하지 않았고, 구전으로 전승되었었다. 조선말기 신재효에 의해서 판소리 6마당이 문자화된 바 있었으며, 구한말 일본을 통하여 서구의 연극개념과 신파극이 들어오면서 문자화된 희곡 창작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희곡작품은 연구자마다 제각각이다. 이광수의 <규한>(1917)을 언급하기도 하고, 실제 공연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조명희의 <김영일의 사(死)>(1920)가 거론되기도 한다. 불과 10여 년전까지 조중환의 <병자삼인>(1912)이 근대 희곡의 시작이라고 언급되었었지만, 일본 신파극인 <희곡 우승열패>의 번안임이 밝혀졌다.[11] 그래서 지금은 최초로 지면에 발표된 희곡으로 언급되곤 한다.
분명한 사실은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김우진, 김정진(김운정), 송영, 유치진 등 본격적으로 희곡을 창작하는 극작가들이 등장했으며, 1935년 동양극장이 생기면서 월급제의 전문 극작가가 탄생했다.[12]
4 나무위키에 등재된 희곡 작품 목록
- 갈매기
- 경숙이 경숙아버지
- 고도를 기다리며
- 군도
- 결혼
- 도덕적 도둑
- 뜻대로 하세요
- 로미오와 줄리엣
- 리어왕
- 레드
- 맥베스
- 밤으로의 긴 여로
- 베니스의 상인
- 보이체크
- 빌헬름 텔
- 살로메
-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 서상기
- 세일즈맨의 죽음
- 세자매
-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 십이야
- 아마데우스
- 아테네의 티몬
- 어둠의 힘
- 오누이
- 오셀로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원술랑
- 에쿠우스
- 자명고
- 진지함의 중요성
- 줄리어스 시저
- 크루서블
-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 템페스트
- 파우스트
- 피그말리온
- 필로우맨
- 하녀들
- 한여름 밤의 꿈
- 햄릿
5 관련 항목
- ↑ 본질적으로 모든 희곡은 공연을 전제로 창작된다. 단기 현재 공연하기 어렵거나 쉽거나의 정도 차가 있을 뿐이다. 가령 파우스트의 경우, 당대엔 기술적인 문제 등으로 결코 공연될 수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숱하게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 ↑ 물론 우리 전통극인 판소리나 탈춤처럼 문자화된 희곡 없이 구전되었으며, 공연 상황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문자화가 안 되었을 뿐, 이야기의 골격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환경연극'처럼 어떠한 이야기도 없는, 진짜 희곡이 없는 연극이 존재하긴 한다.
- ↑ 훈몽자회에 따르면 戱는 '노릇'을, 曲은 '노래'를 가리키며, '가무로서 고사를 표현하는 것'을 '희곡'이라 일컫는다.
- ↑ 물론 경우에 따라 Drama는 연극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극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Play가 희곡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당장 playwright/playwriter가 극작가로 번역되는 것처럼...
- ↑ 이재명, 『극문학이란 무엇인가』 참조
- ↑ 한정된 시간과 장소에 사건을 해결해내야 하다보니 수습 불가능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찌보면 필연적(?)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 ↑ 엄밀하게 스트린드베리는 입센과 동시대의 극작가이긴 하다;;
- ↑ 당장 인터넷에 희곡 제목을 검색하면 그 희곡을 너무나도 쉽게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 ↑ 1900~20년대 신파극의 경우에는 쪽대본과 함께 어떠한 줄거리 흐름이 존재하고 거기에 맞게 배우가 사실상 애드립을 하는 터라, 극작가가 탄생하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현존하는 신파극 대본은 없다. 당장 1910년대 유명한 신파극인 이수일과 심순애도 소설이 존재할 뿐 현존하는 당시 희곡은 없다.
- ↑ 물론 넓은 의미에서 희곡의 하위 범주에 시나리오를 두는 경우도 있지만...
- ↑ 김재석, 「<병자삼인>의 번안에 대한 연구」(2005)에서 처음 밝혀졌다.
- ↑ 그 이전까지는 극단 내 전속 극작가를 두는 수준이거나, 아예 극작가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