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군산상고 야구부에서 넘어옴)
2016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라
(전반기)
40px광주동성고등학교50px광주제일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50px인상고등학교
50px전주고등학교50px진흥고등학교45px화순고등학교50px효천고등학교
2016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라
(후반기)
40px광주동성고등학교50px광주제일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영선고등학교
50px전주고등학교50px진흥고등학교45px화순고등학교50px효천고등학교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Gunsan Commercial High School)
창단1968년
소속 리그전라권
감독석수철
연고구단NC 다이노스
우승 기록[1]11회

대회우승준우승4강
대통령배3회(1976, 81, 86)-3회(1971, 75, 2005)
청룡기2회(1982, 84)4회(1974, 76, 88, 93)3회(1973, 83, 90)
황금사자기3회(1972, 86, 99)3회(1975, 76, 85)
봉황대기3회(1982, 96, 2013)2회(2010, 16)
협회장기---
1972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1976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제일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공주고등학교
1981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제일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부산고등학교
1982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북일고등학교
1982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광주제일고등학교
1984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북일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서울고등학교
1986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서울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북일고등학교
1986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전주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신일고등학교
1996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충암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신일고등학교
199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상업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경기고등학교
2013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고등학교[2]군산상업고등학교휘문고등학교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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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명수
호남 야구의 시발점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한 팀이자, 호남 야구의 산파 역할을 해낸 강호.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보여준 기적적인 대 역전승으로 인해 일약 역전의 명수라는 별칭이 붙은 팀이다.

2 연혁

2.1 '역전의 명수'의 탄생

1968년 훗날 프로야구 탄생에 큰 기여를 한 이용일이 사업 기반이 있던 군산 지역에 야구붐을 일으키고 싶어서 만든 팀이 군산상고였다. 단순히 고교팀만 덜렁 만든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팜 시스템 형태로 제대로 구축을 한 팀이었다. 당시 국가대표 출신으로 선수에서 막 은퇴한 최관수 감독을 영입하면서 1971년에는 신생팀 주제에 대통령배 4강에 오르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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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가 최관수 감독.

하지만 그 무렵 선수들이 대형 사고를 치는데, 당시 고교생이었던 김준환, 김봉연 등이 술을 먹고 거리에서 시비가 붙어서 싸움을 벌이다가 적발된 것이었다. 자칫 선수들의 퇴단과 야구부의 존폐가 위험해 질 수 있던 상황에서 최관수 감독은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자신의 책임이라면서 선수들의 퇴단을 말리고, 선수들을 불러놓고 "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내 잘못이 크니, 나를 때리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실제로 못 때리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손수 이렇게 때리라는 시범을 보였다고(...) 그렇게 탈선으로 인한 문제는 수습되었다.

명장 밑에 약졸 없다고, 이 일 이후 군산상고는 확실히 더욱 강력해졌다. 그리고 고교야구가 지속되는 한 계속 회자되는 명승부가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일어났다. 부산고와 결승에서 만난 군산상고는 9회말 시작 전까지 1:4로 뒤지면서 끌려갔다. 그러나 9회말 공격에서 연속 안타와 상대의 주루 방해를 묶어서 극적으로 4점을 내면서 기적적인 대 역전승을 이뤄내며 창단 첫 우승에 성공했다. 이 역전승 이후로 군산상고의 별명은 역전의 명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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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군산상고 야구부. 가운데줄 제일 왼쪽에 있는 선수가 김성한.

그 뒤 최관수 감독의 지도 아래 1976년 대통령배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등, 강호로 부상했지만 1979년 최관수 감독이 파킨스씨 병으로 은퇴[3] 하면서 군산상고의 태동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2.2 화려한 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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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군산상고는 지역 출신의 우완 에이스 조계현이 등장하면서 활력을 찾았다. 1981년 고교 1학년의 신분으로 에이스 자리를 차지하면서 대통령배 우승, 이듬해인 1982년에는 청룡기와 봉황대기 2관왕을 달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면서 팀의 전성 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러나 이 세 번의 우승은 강속구를 가진 조계현의 팔을 희생시키면서 얻은 대가였고, 조계현은 팔색조로 불리는 기교파로 프로 무대를 풍미할지언정, 고교 무대에서 보여줬던 속구의 위력은 사라지게 되었다.

조계현이 졸업한 후, 이 번에는 이광우가 등장하면서 다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광우, 정명원, 최해식이 뛰던 1984년의 군산상고는 청룡기 우승에 성공하면서 다시금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 들이 졸업한 후에는 이 번에는 왼손 에이스 조규제가 등장했다. 조규제를 필두로 한 군산상고의 선수들은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를 석권하며, 1986년 고교야구를 군산상고의 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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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대통령배 우승. 마운드에서 껴안고 있는 인물은 조규제(투수)와 이성일(포수).

1986년에는 대통령배에서 경남고를 상대로 연장 11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다시금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군산상고는 1980년대 6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문으로 이름을 높일 수 있었다.

2.3 저력은 보여준 시대(1990년대)

영광이 많았던 1990년대가 지나간 후에는 전반적으로 군산상고 야구부는 침체기에 빠졌다. 1993년 청룡기 준우승은 있었지만, 4강에 들지 못하고 초반에 짐을 싸야 했던 시절이 더 많았다. 그래도 간간히 걸출한 인재들이 등장하면서 성세를 높은 것은 위안거리였다. 1996년 언더핸드 정대현을 앞세운 군산상고는 김수경의 인천고를 누르고 봉황기 통산 2번째 우승에 성공하면서 위용을 빛냈고, 1999년에는 초고교급 왼손 투수 이승호를 앞세워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했다.

그러나 1999년 이승호의 군산상고가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하던 해는 지역 연고를 하고 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마지막 시즌이었고, 쌍방울이 사라지면서 지역 야구단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KIA의 지원도 특별한 것이 별로 없었다결국 이는 지역 인재들의 꾸준한 유출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지환으로 초등학교는 군산에서 나왔지만, 서울로 야구 유학을 떠난 경우였다. 한화의 김혁민도 군산상고를 다니다가 성남서고로 떠나갔다.[4] 이런 사례가 계속 증가하면서 군산상고는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2.4 암흑시대, 그리고 서광은 비출것인가

2000년대 군산상고가 과거의 위상과 비슷한 성과를 낸 것은 단 한 번. 2005년 모교 출신인 김성한 감독의 지휘 아래 차우찬, 황선일, 원종현 같은 선수들의 활약으로 대통령배 4강에 입성했을 때였다. 그 외에는 대부분 초반 탈락이 일상이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우수한 인재들이 유출이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군산상고에게 어느 정도 서막이 보인 것은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였다. 2010년 봉황대기 준우승을 차지한 후, 2013년에는 마침내 조현명의 호투 속에 봉황대기 우승과 전국체전 우승에 성공하면서 제법 길었던 무관의 시대를 끝냈다. 다만, 인재 유출이라는 고민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고 구단이 지역과 큰 연관이 없는 NC 다이노스[5]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016년 봉황대기에서 막강한 타선을 앞세워 인천고를 20:7, 개성고를 7:0, 4강에서 덕수고를 8:4로 꺽고 결승까지 진출햇으나 연장 13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휘문고에게 끝내기를 맞고 패배했다. 이날 경기에서 휘문고의 타자주자를 벤치 멤버가 태클(...)거는 바람에 휘문고의 끝내기 안타가 무효처리가 되며 일말의 희망이 피워지나 했으나 다음 타자에게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맞고 패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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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끝내기 안타 취소장면.[6]

3 출신 선수[7]

이름포지션프로입단경력
김봉연내야수1982년 원년멤버연세대-상업은행-한국화장품-해태(1982~1988)
김일권외야수1982년 원년멤버상업은행-한양대-성무-한양대 중퇴-해태(1982~1987)-태평양(1988~1990)-LG(1991)
김준환외야수1982년 원년멤버상업은행-해태(1982~1989)
김용남투수1982년 원년멤버한양대-해태(1982~1986)-빙그레(1987~1989)
김성한내야수, 투수1982년 원년멤버동국대-해태(1982~1995)
김평호외야수1986년 1차 5라운드동국대-해태(1986~1990)-쌍방울(1991~1995)
이건열내야수1986년 1차지명동국대-해태(1986~1997)
백인호내야수1987년 1차 지명동국대-해태(1987~1992)-쌍방울(1993~1996)-해태(1997~1999)
이동석투수1987년 2차 1라운드 1순위동국대-빙그레(1987~1991)-쌍방울(1992~1993)
조계현투수1988년 1차 지명연세대-농협-해태(1989~1997)-삼성(1998~1999)-두산(2000~2001)
이광우투수1989년 1차 지명원광대-해태(1989~1991)-OB/두산(1992~2001)-LG(2002)
정명원투수1989년 2차 2라운드원광대-태평양/현대(1989~2000)
최해식포수1990년 1차지명건국대-쌍방울(1990~1994)-해태(1994~2001)
조규제투수1990년 1차지명연세대-쌍방울(1991~1998)-현대(1998~2000)-SK(2000~2002)-현대(2003)-KIA(2004
~2005)
신경현포수1998년 2차 1라운드동국대-한화(1998~2013)
정대현투수1997년 고졸우선지명[8]경희대-SK(2001~2011)-롯데(2012~)
이진영외야수1999년 1차지명쌍방울(1999)-SK(2000~2008)-LG(2009~2015)-kt(2016~)
김상현내야수2000년 2차 6라운드해태/KIA(2000~2002)-LG(2002~2009)-KIA(2009~2013)-SK(2013~2014)-kt(2015~2016)
이대수내야수2001년 신고선수 입단SK(2001~2007)-두산(2007~2009)-한화(2009~2014)-SK(2014~)
이승호투수2000년 1차지명SK(2000~2011)-롯데(2012)-NC(2013~2015)-SK(2016~)
문규현[9]내야수2002년 2차 10라운드롯데(2002~)
김연훈내야수2007년 2차 2라운드성균관대-KIA(2007~2008)-SK(2008~2015)-kt(2016~)
원종현투수2006년 2차 2라운드LG(2006~2010)-NC(2012~)
이준호외야수2010년 신고선수 입단고려대-KIA(2010~)
차우찬투수2006년 2차 1라운드삼성(2006~)
황선일외야수2006년 2차 4라운드LG(2006~2014)-한화(2015~2016)
전우엽[10]투수2008년 1차지명KIA(2008~)
한희투수2009년 2차 1지명LG(2009~)
박종훈투수2011년 2라운드SK(2010~)
김호령외야수2015년 2차 10라운드동국대-KIA(2015~)
박계현내야수2011년 6라운드SK(2011~)
조현우[11]투수2015년 2차 2라운드kt(2014~2015)-롯데(2015~)

4 관련항목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2. 2010년 우승팀으로 봉황대기가 주말리그 시행 관계로 2년간 폐지되었다가 부활함
  3. 최관수는 기업은행 군산지점에서 은행원과 군산상고 야구부 감독 겸업을 하고 있었다.(이용일이 기업은행 사장에게 "군산지점 실적 향상에 도움을 주겠다"라며 부탁해 데려온 케이스) 1978년에 전남,전북 기업은행 지점 대항 축구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최관수도 참가했다가 철봉에 세게 부딪혔다. 그 후 1년후에 파킨슨병 선고를 받아서 이용일이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4. 같은 지역 라이벌 전주고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대로라면 전주고로 진학해야 했던 넥센의 강지광은 중3 때 전라중에서 상인천중으로 전학했고 인천고로 진학했다.
  5. 어디까지나 신인 1차지명 한정일 뿐이다.
  6. 다만 이건 야구규칙상 당연한 것인데 원래 타자주자는 누구와도 신체적 접촉이 있어서는 안된다. 다만 한국야구계에서는(KBO 리그 포함) 이를 어느정도 눈감아 주는 편이라 논란이 되지 않았을 뿐.
  7.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
  8. 프로입단을 거부하고 경희대로 진학했으며 대학 진학중이던 1999년에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 신생팀 SK 와이번스가 지명권을 인수했다.
  9. 재학 당시 이름은 문재화
  10. 학창 시절 이름은 전태현
  11. 학창 시절 이름은 조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