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밤 코너 |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
목차
1 개요
MBC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50분부터 방영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이 처음 창설될 당시의 정식 명칭은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였으며, 그 이후 이름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정식 명칭이 변경되었고 2011년 3월 6일의 개편 이전까지 이 명칭이 존속되다가 개편 이후에는 우리들의 일밤으로 프로그램명을 변경했고, 2012년 4월 29일부터는 그냥 일밤이란 이름으로 방송 중이다. 다만 일밤이란 애칭은 이전부터 계속 불려왔다. 예능계의 모닝와이드
1980년대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방송하는 장수 예능 프로그램. 긴 역사 만큼이나 수많은 포맷을 시도하며 성공을 이끈 컨텐츠들이 많았다. 90년대~2000년대 초반에는 대한민국의 최고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으며, 역사적으로 봤을때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 중 하나. 2000년대 이후 월드컵을 다룬 이경규가 간다 등 일부 프로그램은 2000년대 이후 시청률 집계 기준 30%를 돌파하기도 했다. 대중적인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도 네명이나 출연한 바 있다.[1]
이 프로그램은 MBC가 자체 제작하며, 2012년 3월부터 3개월 간은 MBC 파업이 장기화됨으로 인해 외주 제작으로 변경되었다.
2 역사
2.1 리즈 시절
2.1.1 일요일밤의 대행진
1980년대 초에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2]. 첫 MC는 박상규. 이 때엔 밤 10시 경에 했었다. 코미디로 포맷을 변경하고 시간대를 이동한 후, 두번째 MC는 김병조였으며, 그 후에도 20년 넘게 많은 코너와 많은 연예인이 거쳐간 매우 유서깊은 프로그램이다.
일밤대행진 시절에는 1980년대 초중반기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일요일 프라임타임대를 책임지던 프로그램이었다. 연출은 그 유명한 송창의 PD. 미국식 라이브 쇼를 모방하여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경쟁사 라고는 해도 하나밖에 없었다 KBS가 희극인들의 연기력과 물량빨 막강한 제작비로 비교적 정통 희극(유머 일번지 등)을 선보였다면, MBC는 주로 소속 개그맨들의 개인기와 유행어에 의존하는 영향이 있었지만 구성의 참신함으로 승부했다. 특히 프로그램 전체가 시사 풍자로 채워져 있었다는 점에서 미국식 라이브 코미디 쇼의 강한 영향을 느낄 수 있다. [3] 물론 땡전뉴스 시절이라 지금 보면 프로파간다성이 상당히 짙지만, 정치가 아닌 사회쪽 시사풍자들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수위가 높을 정도다. 그리고 김병조 옹은 여기서 '배추머리' 캐릭터와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같은 유행어를 터뜨려댔다 또한 MBC 전속 코메디언 이외에도 이 프로그램에서 맹활약을 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다름아닌 장포스로 유명한 성우 김기현이었다. 김기현은 이 프로그램의 나레이션을 전담하면서 목소리로 맹활약했는데 특히 여러 코너들 중 '최후의 심판'과 '죄와 벌'은 사실상 김기현이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2.1.2 일밤 1기 : 리즈 시절 1, 몰래카메라
이처럼 1980년대 말기까지는 미국식 쇼프로를 답습하여 1앵커 진행 + 쇼트(꽁트 코너)로 구성된 코미디 쇼였고, 1988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제목으로 개편된 이후에도 이 포맷을 유지했다. 콩트 중에서는 '미주알 고주알', '헬로우! 일지매' 등이 나름대로 히트했던 작품이다.
그런데 1989년 자니 윤이 '쟈니윤 쇼'를 KBS에서 진행하며 제대로 된 미국식 코미디쇼를 선보이게 되자, 일밤은 이를 벤치마킹하여 주병진이 맡던 '미주알 고주알'을 확대편성하여 꽁트와 토크쇼가 혼합된 형식으로 프로그램 포맷을 변환시켰고, 이 전략이 주효하여 일밤은 이내 크게 인기를 끌게된다. [4]
1991년 말 주병진이 하차한 이후 이 프로그램은 사실상 이경규에 의해 움직였는데 그 동안 거쳐간 MC인 주병진, 노사연, 최수종 등이 MC만 한 것에 비해 이경규는 MC와 몰래카메라 촬영, 시네마천국 등 이 프로그램에 딸린 코너의 상당부분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다. 즉 이 시기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의 소유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이휘재의 인생극장'에서는 이휘재가 주역이지만 그 이휘재를 이경규가 개그맨으로 키웠다.
주병진, 이경규, 노사연의 3인 트리오가 스턴트나 판토마임에 도전하는 초기 시절도 이후 추억의 프로그램 소개류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평을 받았고, 그뒤 이경규를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몰래카메라가 대히트하며 일요일 예능의 절대강자로 자리잡았다. 당시 영화홍보를 위해 방한했던 이연걸이 한국 쇼프로에 출연한 무대가 바로 일밤이었을 정도. 그리고 이경규는 무도 기믹을 이용해 변발에 마괘자 분장을 하고 나와서 이연걸을 빵 터뜨렸다
이후 주병진이 속옷사업의 대성공 개인사정으로 하차한 이후 메인MC를 최수종이 맡기도 했다. 당시 반응은 "잘하던 사람 빼고 뜬금없이 뭥미"가 대부분이었지만 나름대로 진행을 잘했고[5], 또 이경규 및 주변 개그맨 혹은 게스트 연예인들이 영화를 코믹하게 재현하는 새로운 코너 '시네마 천국'을 만들어 역시 성공할 수 있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이경규의 원조 몰래카메라가 이 시기에 있었던 코너다.
2.1.3 일밤 2기 : 리즈 시절 2, TV인생극장
1993년 이문세가 메인MC를 맡게 되었는데, 이휘재, 이홍렬, 이경실 등 MBC 희극인실 인력이 주축이 된 새로운 멤버를 맞아들여 다시 한 번 전성기를 이어갔다. 참고로 이 멤버들은 토요 버라이어티 대에도 활약했는데 "오늘은 좋은날", "콤비 콤비" 등 이 당시는 그냥 MBC가 주말 예능을 다 해먹던 시기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의 리즈시절.
이 때의 주요 코너는 이휘재의 "그래 결심했어"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TV인생극장', 이홍렬의 '한다면 한다', '형! 어디가?' 제목이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15년 후에 리바이벌해먹나 등이 있다. 김희애부터 최진실까지 수많은 당대의 스타들이 인생극장의 카메오로 출연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2.1.4 일밤 3기 : 리즈 시절 3, 양심냉장고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울다는 말이 있듯이 1990년대 중반 인생극장 코너가 종영된 뒤 일밤 시청률은 2%대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이경규는 이 당시 본래 전공이던 영화에 집중했으나 복수혈전이 이경규의 기존 개그맨 이미지 때문에 영화가 망(?)하면서[6] MBC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이후 MBC의 코미디 프로에 꾸준히 출연하며 "별들에게 물어봐~" 같은 희극연기로 재기에 성공했고, 마침내 일밤에도 합류한다.
그리고 이경규가 간다 코너를 통해 전설을 썼다.
양심냉장고의 위업은 해당 문서 참조.
농담이 아니라 이 코너가 생기기 전에는 횡단보도 앞에 정지선이라는 게 있다는 걸 기억하는 운전자가 드물었다.(...) 1980년대 '안전벨트 캠페인'과 함께 MBC가 한국 교통발전사에서 크게 한 건 한 사례.[7] MBC의 간판 예능PD 중 하나였던 김영희PD는 이를 통해 완전히 스타PD로 올라섰고[8], 아예 MBC 예능 자체가 이후 몇 년 동안 '공익 예능'으로 바뀌어버린다.[9]
그리고 이경규가 간다는 4년 후인 2002 월드컵 시절 코너 포맷을 바꾸어 또 한번 포텐이 폭발하게 된다.
2.1.5 일밤 4기 : 김용만, 김국진, 제2의 전성기
더불어 이 시기는 김용만과 김국진 등 KBS에서 이적해 온 '감자골 4인방'이 쩌리 신세에서 벗어나 일밤에 본격적으로 터를 잡는 시대였기도 하다. 또한 많은 신인급 연예인들이 유명세를 타며 인기스타가 될 수 있는 발판도 되어주었다. 이들 감자골 멤버들은 2000년대 일밤의 레전드 코너와 함께하게 되는데 이 당시 코너들의 면면을 보면 러브하우스를 비롯하여 브레인 서바이버, 대단한 도전, 건강보감, 김국진의 여보세요, 게릴라 콘서트 등이 있다. 그냥 해당 문서 들어가서 봅시다
2000년경 일요일 밤에 방영 당시 신장개업 대작전에 출연한 H.O.T. 방영 모습이다.
이경규가 간다는 양심냉장고 프로젝트 종영 이후 묻혀있다가 2002년 갑자기 부활했는데, 바로 월드컵 경기장 관중석에서 예능식으로 경기중계를 하는 것이었다. 이경규와 함께 파트너로 조형기가 투입되었는데, 이게 다시 대박이 났다. 방송 포맷 자체는 지극히 간단한 것이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열풍이 워낙에 대단했기 때문에 그냥 가만 놔둬도 명장면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2006년에는 KBS에서 공식방송사 지위를 이용해서 냉큼 신정환과 아이들을 독일에 보냈다.
2.2 일밤 5기 : 그냥 침체기
파일:일밤로고2005.jpg
2005년 4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사용된 로고.
2.2.1 도저히 답이 없다
이처럼 일밤은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일요일 예능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지만, 점차 SBS와 KBS의 일요예능이 뜨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피튀기는 3강구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2004년 말부터 브레인 서바이버와 대단한 도전이 매너리즘에 빠지며 SBS의 X맨을 찾아라과 KBS의 여걸 파이브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고, 2005년 이 두 코너를 내리고 상상원정대 등[10]을 내세웠지만 당연히(?) 하락세가 가속화되면서 일밤은 상당 부분 꼴찌를 기록하며 체면을 많이 구겼다(....).
2006년 즈음해서 천사들의 합창, 차승원의 헬스클럽과 이경규가 간다(독일 월드컵 편) 등의 계기로 어느 정도 반등에 성공했고, '돌아온 몰래카메라'와 '경제야 놀자', '동안클럽'이 2007년까지 일밤을 이끌었다. 정리하자면 영광의 시절은 딱 2000년대 중반까지[11][12]... 2009년 1월부터는 폐지 논란이 있었을 정도로 시청률이 안습 그 자체가 되었다.
그리고 2008년 12월 14일에 한국 예능사상 불멸의 기록인 1,000회를 맞게 되었으며 1,000회 기념으로 이경규를 비롯한 일밤에서 활약했던 출연자들이 출연해 세바퀴 컨셉처럼 훈훈한 특집으로 꾸며졌으며 여기서 MVP를 타게 된 이경규는 2008년 12월을 마지막으로 MBC를 떠났다.(...) 이후에도 놀러와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MBC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은 건 아닌 것 같지만, 더 이상 MBC에서 주말예능은 하지 않는다. 이경규 문서에 있는 PD와의 불화설 등이 다 이 시기에 루머로 돌던 것들이다. 이후 이경규는 SBS에서 라인업 한 번 말아먹고 KBS에서 남자의 자격을 성공시키며 재기하게 된다. 몇 번 재기하는거냐 이 아저씨
그 외에도 2008년 12월까지는 '우리 결혼했어요'로 체면치레 정도는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코너인 세바퀴가 아줌마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09년 1월부터의 상황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2009년 3월에 세바퀴가 토요일 밤으로 분리편성되면서 대망이라는 새 코너를 편성했으나 大亡했다. 결국 5회만에 종영크리.
2009년 5월 개편부터 대망의 여섯 MC들을 데리고 새로운 코너 '퀴즈프린스'를 준비했으며, 소녀시대가 연기 교육을 받으며 단편 공포영화의 주인공을 뽑는 코너, 그리고 실제 커플 2쌍만 나오는 걸로 변경된 '우리 결혼했어요'의 3코너 체제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두 코너마저 종영이 확정되고, '소녀시대의 힘내라 힘'도 맥없이 종영되고 말았다. 힘을 내지 못했다.
그해 7월 5일부터 건강보감과 대단한도전을 섞어놓은듯한 신코너 '좋은 몸, 나쁜 몸, 이상한 몸(이른바 몸몸몸)'을 방송했지만 4회로 아웃. 이와 동시에 '우리 결혼했어요'를 분리시키고 '오빠밴드'와 '노다지'의 2코너 체제로 프로그램을 개편했다.
'게이온 오빠밴드'는 초반에는 호평이 있었고 매니아층을 형성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가면 갈수록 하던 걸 또 하고 또 해서 식상해졌다. '노다지'는 경쟁 프로인 1박 2일이 너무 강한 나머지 무플이었다. 고정 출연자 중에 정니콜이나 조권, 신동이 있어서 일부 카라/2AM/슈주 팬들이 본방을 봤지만 그 뿐이다. 그 외에도 프로그램이 전체적으로 8~90년대의 그것 같다. 결국 2코너 모두 종영 결정.
그 후 뾰족한 수가 생길 때 까지 임시 코너를 편성하고 시간을 벌려 했지만 그 임시 코너의 퀄리티는 대략 이 윗문단의 것 이하.
2.2.2 김영희 체제
파일:일밤로고2009.jpg
2009년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사용된 로고.
2.2.2.1 김영희 PD의 복귀, 그러나...
결국 남은 수는 공익성이라고 생각했는지, 과거 공익예능으로 일밤의 리즈시절을 이끌었으며 남미 배낭여행하고 돌아온 '쌀집 아저씨' 김영희PD를 필두로 공익적인 코너들을 대거 신설했다. 헌터스, 단비, 우리 아버지 등의 코너가 모두 공익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김영희 PD는 '1박 2일을 뛰어 넘을수 있는 비책이 있다', '우리는 76박 77일'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시청률은 여전히 무리. 물론 이전의 2 ~ 3%에 비하면 오른 것이기는 하나 6 ~ 8%에 머무는 시청률도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 시청률이다. 게다가 헌터스는 동물 보호 단체의 디스로 4주만에 조기종영당했고...헌터스가 조기종영 당한 날의 전체 시청률은 5.3%에 불과했다. 다행히도 단비나 우리 아버지가 평가나 내용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옆동네 패밀리가 떴다가 멤버 교체 이후 삽질 모드가 된 지라, 다시 시청률이 9~10%로 올랐고, 마침내 시청률 20위권에 진입했다. 진심으로 야! 신난다~
그러나 여전히 동시간대 시청률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밤은 위 코너들을 모두 종영, 공익성을 버리고 웃음에 집중한 뜨거운 형제들과 오늘을 즐겨라 2코너 체제로 개편했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및 MBC노조 파업 이후 오랜 공백 끝에 방송이 재개되면서 뜨거운 형제들의 '아바타 소개팅'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제대로 웃긴 코너가 등장하여 드디어 희망이 보이는듯 했으나 아바타 소개팅의 약발이 빠지면서 시청률도 함께 하락, 내홍을 겪다가 결국 김구라가 하차하고 포맷을 크게 바꿔 보았지만 시청률은 다시 오빠밴드 때의 수준으로 복귀. 오늘을 즐겨라 역시 부진을 면치 못했다.
2.2.2.2 김영희 PD의 마지막 승부수, 그리고 최후
결국 또 다시 칼을 뽑아 들었다. 일밤이 1,100회를 맞는 2011년 3월 6일에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인 본격 MBC 아나운서 공개 채용 버라이어티 신입사원(일밤), 그리고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가수들이 노래로 한판 붙는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로 개편한다. 이와 함께 프로그램 정식 명칭을 일요일 일요일 밤에서 우리들의 일밤으로 변경했다.
다만 신입사원 신설을 처음 발표할 때는 3코너 체제로 갈지, 기존 2코너 중 하나를 대신해 들어갈지를 고민 중이라는 발표를 했었다. 그러나 이후 이승기가 1박 2일에 하차한다는 루머가 나오자 얼마 안 가 위와 같은 급격한 개편을 발표했다. 이는 일밤 측에서도 갑자기 내린 결정인지, 기존 프로그램의 촬영자들도 종영 예정을 전혀 모르고 녹화에 참가했다가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됐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승기는 1박2일에 빠지지 않는다고 밝혔다.#1#2#3
개편 전 주에 방송된 '스페셜 세시봉 콘서트'[13]가 그 전의 일밤보다 높은 시청률[14]을 기록, 드디어 시청률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게다가 개편 전에 이미 광고가 완판되었다고 한다. 김영희 CP가 말하길 3년 전만 해도 겨우 두세 개 밖에 팔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새로 개편하는 일밤에 대해 시청자들은 물론 광고주들의 기대 또한 컸었다.
그리고 3월 6일 새로 개편한 코너인 나는 가수다가 레전드급 가수들의 최고의 무대를 안방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발편집 상황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시청률에서도 동시간대 런닝맨을 앞서는 등 호조를 보였으나, 기본적인 시청자와의 약속조차 깨버린 희대의 병크짓으로 상황이 급변, 결국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영희 PD는 경질되었다.# 또한 안우정 예능국장 또한 구두 경고를 받았다.
그렇게 쉬고 있던 김영희 피디였지만 2012년 2월 일밤으로 돌아온다고 밝히고 나는 가수다 시즌2 준비에 들어갔다.
2.3 일밤 6기 : 노병은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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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사용된 로고. 이 문서 맨 위의 로고는 현재 로고인데, "우리들의"를 뺐다.
2.3.1 일밤 부활의 선봉장, 나는 가수다
2011년 3월 나는 가수다가 방영되면서 전국에 나는 가수다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심지어 KBS는 나는 가수다 성공에 자극받아 카피 프로그램인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를 토요일 시간대에 편성했을 정도. 카피가 원조보다 오래 사는 현실. 한때 1박 2일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시청률이 오르기도 했다. 과거의 일밤을 생각하면 엄청난 반전이었다. 해당 문서 참조.
2.3.2 다시 침체, 그리고 대대적 변화
그러나 이런 나는 가수다 마저 시간이 갈수록 화제성이 떨어지며 다시 한자리수 시청률로 떨어지는 등 위기를 맞이하면서 재정비를 위해 2012년 2월 시즌1이 마무리됐다. 일밤의 운명은 앞으로 나는 가수다의 시즌2의 성공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이 방영중이던 룰루랄라도 시청률 부진으로 폐지되면서 나는 가수다 시즌2 방영전까지는 또 땜빵식의 코너 편성이 불가피해졌다.
결국 MBC에서 연이은 시청률 부진과 파업으로 인해 일밤의 제작을 처음으로 외주제작사에 맡겼다. 제작사는 코엔미디어. 새 코너가 3월 11일부터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MBC 파업으로 인해 미뤄지다가 18일부터 방송되었다.
하지만 일밤 최초의 외주 제작체제의 첫방의 시청률은 1부 꿈엔들 1.7%, 2부 남심여심 2.8%. 이정도면 종합편성채널 수준이다. 이정도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망했어요!
결국 꿈엔들은 방송 한달여만에, 남심여심도 시청률 부진으로 6월초 종영됐다. 이후 나는 가수다 2가 단독 코너로 편성되다 일밤 1부 시간대로 케이블 채널인 MBC every1에서 5년째 방영중이던 무한걸스가 공중파로 전격 편성됐으나 황당하게도 MBC는 2달여만에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무한걸스를 다시 케이블로 퇴출시켜 버렸다. 토사구팽 돋네!
무한걸스가 퇴출된 1부 시간대에는 무한도전의 결투특집 하하 VS 홍철로 선보였던 포맷의 승부의 신이 편성됐으나 승부의 신도 시청률 부진으로 3개월만인 2012년 11월 25일에 종영되었고, 2012년 12월 2일부터 빈자리에는 2012년 추석특집으로 방영되었던 매직콘서트, 나가수2도 2012년 12월 30일을 끝으로 마무리되고 그 자리에는 아빠! 어디가?가 편성됐다.
2.3.3 되찾은 영광, 아빠! 어디가?와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2013년 1월, 일밤은 2008년 파일럿 프로로 선보인 '친친'을 정규 프로로 바꾼 아빠! 어디가?를 편성했다.
사실 1박 2일이나 붕어빵 같은 프로의 아류작으로 보였던 이 코너는 매주 시청률을 조금씩 올리더니 결국 나가수 리즈시절 이후 처음으로 두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아빠 어디가 열풍으로까지 표현되는 코너의 인기에 눌려 KBS의 남자의 자격은 101개 미션 달성도 다 못하고 97개까지만 하고 결국 4년만에 폐지크리를 당하고 말았다.
2부 시간대에 방영중이던 매직콘서트의 후속 코너 진짜 사나이 또한 초반에 좋은 평가를 받으며 상승세. 드디어 1년 6개월 만인 2013년 4월 28일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코너 시청률로는 초반까지는 런닝맨이 1위이긴 했지만 일밤의 경우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가 둘다 선방했고 2013년 6월 9일에는 런닝맨을 추월하고 1위를 했다.
이렇게 두 코너의 상승세와 더불어 2013년 8월 4일 17.5%의 시청률로 개그 콘서트를 제치고 일요일 예능 왕좌로 군림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세한 건 후술.
2.3.4 하락세와 상승세의 롤러코스터에서
2013년 말부터 다시 점점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2013년 12월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는 1박 2일 시즌 3의 영향으로, 아빠! 어디가?도 멤버 교체로 시즌2가 되면서 시청률이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예전과 같은 인기와 대세를 얻진 못하는 중. 하지만 아빠 어디가는 4월 13일 막강한 적인 K팝 스타 시즌3 막방버프가 있었음에도, 시청률이 0.3%프로 상승해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진짜 사나이도 헨리가 새멤버로 투입된 2월 이후 다시 꾸준히 동시간대 1위를 하는 등뭐...욕하려고 보는 것도 일단 욕하려고 '보는' 거니까..., 완전한 하락세는 아니고, 일요일이 좋다와 꼼수편성을 하는 공영방송의 아침 4시에 시작할 지경인 코너 해피 선데이와도 소수점 차이로 싸움을 하며 근소하게 시청률 1위를 유지 중이었다.
2014년 5월 11일 기준으로 아빠! 어디가? 시즌2와 진짜 사나이 두 코너 모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었다. 그리고 6월 15일에는 유일하게 두자릿수 시청률 10.5%를 기록하면서 1위를 했다. 그러나 경쟁사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 가족이 등장하는 바람에 시청률은 두자리 수를 더이상 넘지 못하고 있었고,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도 시청률은 높았으나 별로 큰 화제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여군특집으로 역대 최고 시청률인 19.8%를 기록하면서 화제가 되는 듯 했으나 꾸준한 시청률을 기록중인 해피 선데이에 밀렸다.
이후 K팝 스타 시즌4가 방영되며 아빠! 어디가? 2기는 사실상 꼴찌를 기록했으며, 진짜 사나이도 이 당시에는 1박 2일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런닝맨은 그나마 시청률 면에서 앞서면서 2위를 유지 중에 있었다. 하지만 2014년 말부터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도 몇주째 런닝맨한테 밀리기 시작했고, 아빠! 어디가? 2기도 종영되면서... 아빠! 어디가? 2기 후속 프로그램이었던 아빠! 어디가? + 동물농장이었던 애니멀즈와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의 개편 성공여부가 일밤의 존폐를 결정했을 텐데, 시청률은 양극화를 달리고 있었다. 애니멀즈는 5%도 안 되는 저조한 시청률이었었던 반면에,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는 두번째 여군특집으로 또다시 화제를 모으면서 시청률이 10%를 넘으며 호가하고 있었다. 결국 애니멀즈는 3월 29일을 끝으로 종영되었으며, 후속으로는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이 편성됐다. 2015년 5월 현재, 복면가왕이 좋은 화제성과 적어도 애니멀즈보다 훨씬 높고 슈돌에 맞서 9%라는 안정적 시청률을 보여주어 일밤을 다시 상승시키고 있다.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도 10% 이상 정도로 2위는 큰 무리 없이 사수하고 있어 통합 시청률은 9~10%정도로 다시 상승하면서 한동안 중위권 정도는 계속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15]
2016년 봄, 간단히 일밤의 형국을 요약해보자면 복면가왕은 1부 시간대에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제압하며 1등을,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는 1박 2일 시즌 3에 밀려 10%대를 찍으며 2위를 달리고 있다. 만약 진짜 사나이가 현재 비판받고 있는 매너리즘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2부에 다시 들어올 런닝맨과 다시 피터지는 2위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런닝맨이 더 노답이라 시청률 2위 유지는 무난할 듯.
2.4 약 5년간의 부진 이유
2.4.1 단기처방
일밤이 프로그램을 자꾸 내렸던 이유는, 역시 일요일 동시간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에 밀려 방송 3사중 제일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기가 좋다면 '레귤러'로 고정화했지만 조금이라도 상승세를 못 탄다 싶으면 바로 종영했다.
무한도전도 방송 초기 안습상태에서 올라왔던 걸 생각하면 기다림이 좀 부족하지 않은가라는 평가를 받았다.[16]
많은 시청자들은 X맨을 찾아라 이후 수십개의 코너를 세웠다 허물었던 SBS 일요일이 좋다의 안습 일요예능 시대를 잇고 있다면서 부활을 염원하기도 했다. KBS의 해피 선데이의 옛날 흑역사급 코너도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자주자주 내리면서 회전력을 높이면 좋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프로그램에 악영향을 끼친다. 사실 예능 대부분은 오랜 시간 패널들간의 유대와 친밀도, 그리고 여러 사건 등으로 형성되는 캐릭터에 의존하게 된다. 이는 우연히 단번에 생기는 경우도 생기지만, 대부분은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해서 캐릭터가 생기면 해당 패널은 그러한 캐릭터에 맞는 행동으로 상황을 발생 시킬 수가 있고, 다른 패널들은 그에 대응할 수 있어서 안정감이 생긴다. 또 그렇게 되면 패널들이 서로를 예상하면서 주거니 받거니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분량확보와 웃음 발생이 가능한 것. 그렇기에 대부분 패널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만드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매번 시청률이 부진하다고 이렇게 잘라버리면 패널들이 캐릭터를 잡을 수가 없는 것. 아니면 겨우 잡혀가던 도중에 프로그램이 끝. 그렇기 때문에 해당 프로그램은 제대로 된 예능의 재미를 미쳐 보여주기 전에 접어버리니..
또 캐릭터 문제 말고 이런 식의 종영과 신설을 반복하게 되면 MBC 프로그램에 대한 분위기가 '또 얼마 후에 접겠지'로 흘러서 애초에 시청층이 붙지 않을 위험이 있는데다가, PD들의 조급증이나 부담감을 부추겨서 이후에 나오는 프로그램들도 나사가 빠진 채로 나오는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결국 부활한것도 단기처방으로 이것저것 바꾸다가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가 터진 거고 위에 예를 든 무한도전도 이름만 무한도전 유지했지 결국 초기 컨셉 다 바꾸고 멤버도 물갈이 해서 터진거라 딱히 단기처방이 문제라 보기도 힘들다.
2.4.2 매너리즘
다른 요소로는, 프로그램들이 신선함이 부족하고 프로그램 구성도가 확실히 떨어졌다. 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양상이거나 특징점이 없다. 그렇다보니 신선함을 위해 공익성에 무리수를 둔 집드림같은 프로그램이 편성되는 불상사[17]가 발생한다. 아니면 조금 흥한다 싶으면 한도 끝도 없이 그것에 매몰된다. 후자의 경우 나가수와 뜨거운 형제들이 대표적인데, 초기에는 신선함으로 시청률 경쟁에서 청신호가 보이는 듯 했으나. 나가수 같은 경우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전설들의 드림매치의 신선도가 점점 떨어지면서 프로그램이 정체되었고[18] 뜨거운 형제의 경우 서술됐다시피 아바타 소개팅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서 시청자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또한 MBC 특유의 문화(...)라고 볼 수 있는 파업이 자주 일어난지라 고정수요층이 떨어저나가는 감이 없지 않다. 엔하본관 폭파 역사를 보면 이해가 될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밤에서 분리된 우리 결혼했어요나 세바퀴는 시청률이 동시간대 상위권에 속한다.(물론 우결은 매주마다 붕어빵에 지기만 했지만...) 물론 시간대가 상대적으로 시청률을 얻기 쉬운 시간대이기도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자체 방송을 하면서 해당 지역 시청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2.4.3 외적 요인들
다만 이 때는 MBC 예능 전체가 상당히 쇠락해 있던 시기임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함깨 나오던 공포의 쿵쿵따, 위험한 초대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반전드라마에도 밀리는 지경이었으니.. 무한도전이 '토요일' 프로그램 안에 있으면서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 등을 이어가던 것이 바로 이 시기다. 게다가 2000년대 중반 일요 예능판에 '1박 2일이 등장, MBC를 아예 양민학살 시켜버린다. 아멘 그런데 지금은 1박2일이 진짜사나이에 밀리지 않나 비켜라 런닝맨이 나가신다 여운혁 CP가 주축이 된 '황금어장' 계열(무릎팍도사, 라디오스타)과 유재석의 '놀러와'(그나마 지역국 일부는 자체방송), 무한도전을 제외하면 변변한 예능이 없던 시절이다.
하지만 위의 서술은 2002~2012년 정도를 통틀어 서술한 것으로서 2008년 이전 일밤이 압도적으로 밀렸던 적은 X맨의 전성기였던 2005년 정도밖에 없으며[19] 황금어장과 무한도전, 놀러와 등으로 대표되는 2006~2010년 정도의 MBC 예능은 일밤을 제외하면 타 방송사에 우위에 있던 시절이다. MBC 예능 전체가 장기적으로 쇠락한 시기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시기 MBC 예능, 특히 일밤의 쇠락은 공익예능의 쇠퇴와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초기 1박2일의 컨셉 중 하나가 "나만 아니면 돼~!" 였고, 자사의 무한도전 또한 스튜디오 녹화 시절에는 상당히 수위가 센 프로였음을 생각하면... 다만 이 암흑기를 나름 재평가할 요소가 있는데, 이 시기 일밤은 MBC 예능의 산실 역할을 했다. 세바퀴와 우리 결혼했어요는 일밤의 한 코너에서 시작했고, 인기를 끌자 독립해서 다른 프라임타임대로 옮겨간 케이스다. 그래서 뜨던 시청률이 도로 가라앉는 악순환 상상 원정대 같은 코너들도 정형돈의 예능인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했던 프로였고 이 인연 덕에 무한도전에 꽂아졌다. 다만 뜨거운 형제들 같은 코너는 띄워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망했고, 건강보감 등 오래 가긴 했지만 시청률 면에서는 그닥이었던 코너도 많다.
2.5 총평
어쨌든 숱한 롤러코스터의 와중에서도 종영의 압박을 이겨내고 몇 번이고 부활한 레전드 프로그램, 방영하는 매주가 기록의 연속인 대단한 프로그램임에는 틀림없다.
2015년 12월 6일부로 1,343회 방영. 심지어 이건 일요일밤의 대행진 시절은 빼고 1988년부터 센 기록이라는 점(....)
3 방송 코너
3.1 방영중인 코너
방송시간 순서대로 정렬.
3.2 종영된 코너
가나다 순
- 간다투어
- 건강보감[20]
- 게릴라 콘서트
- 경제야 놀자
- 국토대장정
- 꿈엔들
- 나는 가수다
- 나는 가수다 2
- 남심여심
- 내조의 여왕의 유산의 유혹
- 노다지
- 놀이왕
- 단비
- 대단한 도전
- 대망
- 대한민국 스타랭킹
- 동안클럽[21]
- 뜨거운 형제들
- 러브하우스
- 룰루랄라
- 매직콘서트 이것이 마술이다
- 몰래카메라[22] - 돌아온 몰래카메라
- 무한걸스[23]
- 미스터 요리왕
- 바람에 실려
- 벌별랭킹
- 배워봅시다
- 불가능은 없다
- 브레인 서바이버
- 상상원정대
- 생활백서 고수가 간다
- 소녀시대의 공포영화 제작소
- 소녀시대의 힘내라 힘!
- 승부의 신
- 시네마 천국
- 신장개업
- 신입사원(일밤) - MBC 창사 50주년 특별 기획
- 아빠! 어디가?
- 아빠어디가2
- 양심냉장고
- 애니멀즈
- 오늘을 즐겨라
- 오빠밴드
- 우리 아버지
- 이경규가 간다
- 일밤 드라마 패러디 극장
- 인생극장
- 전국이 들썩 - 사람들이 승부예측을 하는 코너로 후에 무한도전 하하 vs 홍철, 승부의 신 형식에 차용되었다.
- 집드림
- 탄생을 축하합니다 - 산모와 신생아 관찰 다큐. 신동엽진행. 의료전자기기에 재밍을 일으킬수도 있는 무전기를 든 채로 병원내에서 촬영해서 물의를 일으킨적도 있다. #
- 차승원의 헬스클럽
- 패러디 극장
- 한다면 한다[24]
- 한판승부
- 헌터스 - 에코 하우스 등
3.3 일밤에서 분리 편성된 코너
4 경쟁 프로그램
5 같이보기
- ↑ 엄밀히 말하면 현직 대통령으로서 출연한 사람은 김대중 뿐. 1996년 7월 일산에서
운동복 차림으로 새벽에이경규가 간다에 깜짝 출연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2002 한일 월드컵 때 선수단 격려차원에서 라커룸을 방문할때의 모습을 이경규가 간다를 통해 보여주기도 했다. 노무현의 경우 김대중 지지 선언 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당원 시절이던 1997년에 잠깐 얼굴만 출연한 바 있고 이명박은 서울시장 시절,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 각각 '행복한 나눔 고맙습니다'라는 코너에 출연한 적이 있다. - ↑ 공식 시점은 81년 3월 29일.
- ↑ 유머 일번지의 경우 진행자 없이 쇼트 콩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본 민방의 코미디 쇼에 가까웠다. 이후 KBS도 진행자 시스템이 들어오고 버라이어티로 변화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쇼 비디오 쟈키.
- ↑ 다만 주말 코미디쇼 자체는 이보다 역사가 더 오래 되었는데, KBS의 '토요일 전원출발'은 현재 '해피 선데이'의 조상격 프로그램이다. 일본 TBS의 '8시다! 전원집합'과 제목이 상당히 비슷하기는 하지만(...)
- ↑ 최수종의 원래 성격이 침착하고 자상한 성격이었는데 최수종은 자신의 진짜 성격을 이 프로그램 진행에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그게 나름 성공의 원인이 되었다.
- ↑ 의외로 크게 적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이경규가 벌어놓은 재산 상당수를 까먹었다...
- ↑ 198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안전벨트는 거의 하지 않고 다녔고, 교통경찰이 단속하면 "재수없게 걸렸네"라고 생각하며 뇌물을 찔러주던 시기였다(...) MBC는 1984년부터 달걀을 자동차에 빗댄 캠페인 광고로 음주운전과 안전벨트 관련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이 이후 인식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 ↑ 그 이전에도 코미디 버라이어티에서 이경실이 붙여준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 때문에 나름 인지도는 있었다.
- ↑ 이 계보는 양심냉장고에서 시작해 '느낌표', '명랑 히어로'까지 이어진다.
- ↑ 전국이 들썩, 놀이왕, 신동엽의 d-day, ��진호야 사랑해, 추격남녀, 미스터 요리왕, 매력인시대, 허니허니, 남녀대백과사전, 검색대왕, 고수가 왔다, 고맙습니다, 일밤서당
뭐 끝도 없냐... 더 있을지도 모른다 - ↑ 이경규가 간다 독일 월드컵편이 분기점. 그 후로부터는 하향곡선을 조금 탄 뒤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가 2009년 1월부터 침체.
- ↑ 다만 2006-2008년은 일요일이 좋다와 해피선데이가 더 심한 부진에 빠져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동시간대에서는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 ↑ 2011년 놀러와 설 특집이었는데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미공개 영상을 추가 편집하여 방송되었다.
- ↑ 1, 2부 각각 12.4%, 14.4%를 기록. 동시간대 KBS2 해피선데이는 통합 20%, SBS 일요일이 좋다는 1부 12.8%, 2부 7.4%를 기록한 걸 보면 근래 MBC의 해당 시간대에선 보기 드문 시청률이다. 게다가 재방송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 ↑ 다만, 진짜 사나이는 여군특집 이후 2기 출범 뒤 가끔 런닝맨과 1~2% 차이로, 심지어 0.x%의 미묘한 차이로 2등을 사수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성은 아직 있다.
- ↑ 무모한 도전은 중반 이후 하락세, 초반엔 상승세에 시청률도 그럭저럭 나오다가 막판 2달에 하락세. 그 후 종영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무리한 도전의 상승세로 결국 존속(독립 프로그램 편성)이 가능했다.
- ↑ 집드림이 나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MBC가 프로그램을 물갈이 한다는 점은 MBC가 타사 프로그램들과 경쟁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집드림 같은 경우 애초에 런닝맨이나 일박이일 등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다른 사람 집 주는게 재밌나? 서로 미션하면서 뛰는게 재밌나?이런 프로그램은 시청률 경쟁이 피튀기는 주말 오후에 편성하기에는 좋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 ↑ 어 정말 이 사람들이 나와서 완장떼고 노래 만으로 붙는거야? 하는 반응으로 시청률이 좋았지만, 이후 저 사람도 나오는구나 식으로 분위기가 변하면서 시청률이 하락 추세에 들어갔다.
- ↑ 2002년 경에 공포의 쿵쿵따의 인기로 슈퍼TV에 잠시 밀리기는 했지만 큰 격차가 있지는 않았다.
- ↑ 2014년 9월 10일에 '건강보감 리턴즈'로 임시 부활.
- ↑ 2006년 4월부터 2008년 3월까지 2년에 걸쳐서 방송되었던 건강 버라이어티 코너였다. 당시 박경림(후반부엔 이휘재와 교체)과 박명수가 진행을 맡았다.
- ↑ 일밤 역사상 가장 메이저한 코너였다.
- ↑ 무한걸스는 원래 방송되던 MBC every1으로 돌아갔다. 2012년 6월 후반부터 동년 8월 중반까지 MBC 일밤의 코너로 방송되었다.
- ↑ 1995년에 방송되었던 코너로 이홍렬이 MC를 맡았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처음으로 시도한 코너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당시에는 방송으로 내보내기에 파격적이었던 번지점프와 스쿠버다이빙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코너였다. 또한 터미네이터 2의 T-1000 패러디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