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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1.1 국가대표

  • 1954년 월드컵 : 헝가리에게 0-9로 패한 기록은 지금까지도 월드컵 최다 점수차 경기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터키에게도 0-7로 패배.[1][2]
  • 1958년 월드컵 : 축구협회 직원이 FIFA에서 온 월드컵 참가신청 서류를 분실하는 바람에 예선 참가조차 못 했다. 사실상 한국 축구국대의 진짜 첫 흑역사(축구)인 셈이다.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 호전했지만 3경기 합쳐서 겨우 1골밖에 못 넣고 3전 전패.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때의 차범근 감독 : 대회 도중에 경질되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대한민국 참조.
  • 1992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선 대표팀을 전부 실업선수 위주로 짜서 보냈다가[3] 듣보잡 태국한테도 져서 예선광탈크리를 먹어버리는 바람에 당시 김우중 축구협회장이 사임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더군다나 이 대회에는 한국 최대의 라이벌 일본을 비롯하여 중국, 사우디, 이란 등 아시아 축구의 별들이 한자리에 모인 데다가 대립 관계에 있는 북한까지 한마디로 라이벌이란 라이벌은 다 나갔으니 박탈감과 소외감, 굴욕감은 말 다했다. 덕분에 언론들한테도 엄청 까였다.[4]
  • 1994년 월드컵 예선 도하의 기적 : 한일전에 0:1로 패하며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 양상으로 흘렀고, 급기야 자력진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의 도움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기적.
  • 1996년 아시안컵 이란전 2:6 패 이란 쇼크 [5]
  • 쿠칭 참사 :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1997년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회 조별리그 브라질전에서 아다일톤에게 6골을 먹고 3-10으로 패배.[6]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 예선 첫 경기부터 투르크메니스탄에 패배하면서 흔들리더니 8강전에서 홈팀 태국에게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연장 골든골을 허용하며 1:2로 패배. 아무리 태국 홈에선 브라질도 쩔쩔맨다지만... 만약 그 당시 인터넷만 활성화되어 있었다면 그 당시의 감독 허정무와 선수들은 2014년의 홍명보호 이상으로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것이다.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터키와의 3,4위전에서 홍명보의 볼 컨트롤 실수로 하칸 수쿠르에게 경기시작 11초만에 실점[7]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목메달
  • 움베르토 코엘류
    • 오만 쇼크
    • 몰디브 쇼크 : 2006 독일 월드컵 예선 한국 대 몰디브 전에서 한국팀이 보여준 OME 수준의 축구. 쿠엘류 감독은 이 경기 이후 잘린다. 결과는 허무하게 0:0. 공격을 30번 넘게 했는데 그 약하디 약한 몰디브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비겼다. 덕분에 몰디브는 경기 후로 일주일간은 축제 분위기였다고.
  • 조 본프레레(a.k.a.조봉래)
  • 핌 베어벡
  • 조광래호조광래 감독 경질 과정 : 한일전을 갈아마시고 레바논 쇼크를 일으키는 등 막장행각 끝에 전격 경질. 조광래호 자체가 흑역사지만 경질 과정도 또 하나의 흑역사를 창출했다.[8] 자세한 건 조광래 항목 참조.
    • 삿포로 참사 : 한일전 역사상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0도 아니고 3-0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일본한테 떡실신 당해버렸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본한테는 이겨야 한다든가 거의 무패일 정도로 한국이 우세했으나 이 경기 이후에는 일본 축구가 한국을 초월했다는 인식까지 들 정도로 졸전이었다. 그 후폭풍이 막강한지 선수들과 조광래 감독은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또한 이 사건 이후 국민들은 이와 같은 사건이 또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랬는데 4년 후 삿포로 참극을 뛰어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 레바논 쇼크
    • 삼연뻥
  • 최강희호
    •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 마지막 경기 - 홈 경기인데다 압도적인 점유율에 15개의 슈팅을 퍼붓는 일방적인 공격을 펼치고도 단 한 골도 뽑아내지 못했다. 반면에 상대팀인 이란은 단 한 번의 슈팅을 골로 연결시켜 1:0 승리를 낚았다. 경기 후 한국 국대는 이란 감독과 선수들의 조롱을 받는 등 초상집 같은 분위기 속에서 2014 월드컵 본선 출정식을 거행해야 했다. 경기 전부터 언론전을 시작한 최강희 감독으로 인해 전국민의 관심이 집결되었었기 때문에 한국 축구팬들은 물론이고 평소 축구에는 별 관심 없었던 한국인들도 한꺼번에 엄청난 굴욕을 느껴야 했다.
  • 홍명보호
  • 신태용호
    • 도하 쇼크 : 초반에는 적절한 압박으로 전후반에 1골씩 넣어 좋은 분위기였으나, 일본의 역습으로 처절하게 무너진 사례. 불과 14분 만에 3골을 허용한 대한민국은 거짓말처럼 우승을 놓치게 되었다.

1.2 프로축구

  • K리그 승부조작 사건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 역대 K리그 최악의 흑역사.
  • 김종부 이중계약 파동 : 이 사건으로 모 팀은 팀 해체까지 고려했고, 프로축구에 최초로 드래프트제가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선수 본인도 심적인 불안정 끝에 프로무대에서는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묻혀 버렸으니 선수에게나 구단에게나 축구계 전체에게나 흑역사.
  • 황선홍 홍명보 드래프트 거부 파동
  • 윤상철 : 한때 K리그 역대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있을 정도로 K리그의 레전드이며 LG 치타스의 레전드였으나 1997 시즌이 끝난 후 자신이 헌신한 구단으로부터 임의탈퇴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유인즉슨 구단과의 연봉협상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자, 윤상철이 타구단의 더 좋은 조건의 제의를 받고 이적해서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까봐 우려한 LG가 국내 어느 타구단에서도 뛰지 못하도록 임의탈퇴를 걸어버린 것. 결국 윤상철은 오스트레일리아 세미프로 리그로 이적해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고 은퇴해야 했다.현대판 고려장? 이래놓고 후에 야반도주연고이전을 한 GS측에서 윤상철을 팀 레전드로 부르는 행태를 보여주면서 웃지못할 코미디가 되었다.
  • 박주영 우선협상 위반파동 : 대체로 바로 위 김종부 파동이 비슷하게 재연. 드래프트가 도입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도 똑같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고려대가 원인이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박성화 : 2007년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불과 2주 뒤 부산 감독직을 그만두고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사건으로 K리그가 대표팀 앞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잘 보여준 사건.
  • 변병주 :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과정에서 에이전트에게 검은 돈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 시즌 중 전격 구속.
  • 대구 이글스(대구 FC의 초창기 팀명)
  • 광주 FC의 팀명 선정 과정 - 광주 레이어스
  • 수없이 많은 각 팀 서포터스 간의 경기장 충돌사건
  • 수 차례에 걸친 연고이전 사례들
  • 부산 아이파크송종국 등번호 영구결번 사건 : 송종국이 페예노르트로 이적하자 부산 프런트들이 송종국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 효과만을 노린 졸속행정이라는 비판만 받았고, 설상가상으로 송종국이 부산이 아닌 수원으로 이적해 K리그에 복귀하자 비난이 더욱 거세어져서 결국 영구결번을 스리슬쩍 백지화했다.
  • 부산 아이파크의 연고이전 시도[10]
  •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 알 사드
  • K리그 통산 10000번째 골 : 김태영 선수가 넣은 자책골이었다. 기분이 뭔가 그렇다.
  • Here is another Old Trafford
  • 2010년 8월 4일 FC 바르셀로나 vs K리그 올스타 친선경기 - 일명 K리그 국치일
  • 2010년 하반기 성남의 홈인 탄천종합운동장의 잔디 상태
  • 1999년 챔피언결정전 샤샤신의 손 사건[11]
  • 2003년 시즌 부천 SK : K리그 역사상 최고기록인 22경기 연속무승 기록 달성.
  • 2006년 포항 스틸야드 관중난입 및 김성호 주심의 관중폭행 사건 : 이런 전적에도 불구하고 김성호는 이후에도 심판활동을 계속하면서 포항 경기에 배정되면 병맛 판정을 일삼으면서 포항의 주적이 된다.
  • 2008년 경남 FC vs FC 서울 주심 판정 항의 사건 : 경기 중 주심이 판정 번복으로 서울의 득점을 인정하자 당시 경남의 감독인 조광래를 필두로 팀 자체가 항의 차원에서 35분동안 경기 진행을 거부하면서 추가시간이 무려 28분이나 주어진 희대의 사건.
  • 2010년 K리그 챔피언십 결승[12]
  •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 vs 대전 시티즌 경기 후 두루치기 사건 : 대전 시티즌 항목 참고바람.
  • 박병모 단장 시절의 광주 FC : 말 그대로 낙하산 인사. 채용 비리 등 여러 악행을 저지르고 서포터들은 퇴진 운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2012년 첫 승강제 시즌때 강제 강등된 상주와 함께 첫 강등의 희생양이 되었다.
  • FC 서울 팬안정환 욕설 사건 : 서울과 수원 간의 2군 리그 경기[13]에서 한 서울 팬이 안정환에게 다 들리도록 심한 수위의 폭언과 욕설을 반복했고 결국 해서는 안 될 드립까지 일삼자 안정환이 참지 못하고 관중석으로 난입하려 한 사건. 결국 안정환은 제지당하고 제 발로 퇴장당했으며 안정환이 걸어나가는 와중에도 그 서울 팬은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너희 같은 애들 때문에 한국축구가 발전이 안되는 거야."라는 안정환의 일갈이 유명하다.
  • 설기현 - 포항 시절 뒷통수에 이어 인천에서도 전지훈련 다 뛰어놓고 시즌 개막 직전 은퇴하는 뒷통수로 화려하게 커리어를 마무리하며 K리그에서의 설기현을 거의 금지어급으로 만들어버렸다.
  • 2015년 강수일의 도핑 파문.자라나라 수염수염
  • 홍준표 구단주 시절과 안종복 단장 시절의 경남 FC : 2013~2014년 용병 비리 사건과 심판 뇌물 수수혐의로 안종복 단장이 구속되었고, 홍준표 구단주는 2014년에 여러 망언을 일삼다가 강등 후 급기야 해체하겠다고 말했다. 2015년에는 박치근 단장을 앉혔는데 박성화 감독에게 스토야노비치 선수를 9골 넣고 출전시키지 말라고 지시했으며 결국 스토야노비치는 경남과 계약이 해지되었다.
  • 부산 아이파크의 2015년 : K리그 우승팀이자 기업구단 첫 강등의 불명예를 기록하였고, 이에 서포터들은 부산 선수들에게 욕설과 물병투척, 유니폼 화형까지 할 정도로 분노게이지가 올라갔다.
  • 전북 현대 모터스
    • 베트남 쇼크 : 빈즈엉과의 원정 경기에서 그야말로 극악의 경기력을 선보인데다, 키르기스스탄 출신 주심의 기가 찰 오심 퍼레이드 끝에 수비수만 2명이나 퇴장을 당하면서 2:3으로 역전패했다. 전북이 워낙 못하기도 했지만 주심은 매수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편파 판정을 남발했으며 특히 세번째 실점으로 이어진 페널티킥 반칙은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쪽이었다. 김창수는 상대 선수에게 발을 밟혔음에도 오히려 경고 누적으로 퇴장. 전북의 얼 빠진 듯한 경기력과 주심의 막장 판정이 콜라보레이션을 이룬 것. 이 날 패배는 47년만에 처음으로 한국 구단이 베트남 구단에게 패한 것으로, 베트남 쇼크가 국가대표에 이어 클럽 대항전에서도 탄생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흑역사.
    •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1.3 기타

  • 서울시청 축구단 해체 : 남자축구는 충분히 기반이 다져졌으니 여자축구를 활성화시킨다는 명분하에 시청측에 의해 2003년 내셔널리그 시즌 도중에 날벼락 해체. 이후 서울시측은 안양 LG 치타스 팀의 서울 연고이전을 진행함으로써 서울시청 해체는 타 연고지의 프로팀을 빼오기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었냐는 추측을 낳았다.[14]
  • 2011년 대한민국 축구계 전체 : 박지성, 이운재 선수 등 에이스 선수들 은퇴후 2011년은 대한민국 축구 시련의 해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아시안컵 우승 실패부터 시작하여 윤기원 선수의 자살,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한일전 0:3 완패, 이수철 전 상무 감독 자살, 레바논 쇼크와 이에 따른 조광래 감독의 경질로 인한 후폭풍들,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실패, 그외에 갖가지 문제들이 겹치며 축구팬들 입에서 '올해는 되는 일이 없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 한국 내셔널리그 고양 국민은행, 울산 미포조선의 K리그 승격 거부 : 프로 입성비와 운영비 증가 부담을 이유로 승격을 거부하고 내셔널리그에 잔류했다. 두 팀의 의지문제였다기보다 승격 혜택이 크지 못한 한국 축구계의 체질 문제가 더 컸던 사건. 이로 인해 대한민국 프로축구 리그의 승강제 도입이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2012년이 되어서야(실제 시행은 2013년부터) K리그를 둘로 쪼개서 키우는 방향으로 일단 도입되었다.
  • 2010년 고교클럽 챌린지 리그 승부조작 사건
  • 박종우 독도 세레머니 사과편지 논란[15]
  • 경기고 축구부[16]

2 해외

2.1 FIFA 월드컵

  • 1950년 월드컵 마지막 경기 (우루과이 2 - 1 브라질) : 축구 열기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서 안방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브라질 대표팀을 보고 대회가 끝나기 전부터 브라질 축구 협회를 비롯한 각계에서 우승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겨도 되는 우루과이전에서 역전패하면서 2위가 되어 버렸고, 결국 미리 터뜨려 놓은 샴페인들은 김칫국이 되어 우승 기념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었다. 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조기가 걸렸으며 우승을 눈 앞에서 놓쳐버렸다는 것에 분노한 브라질 축구 팬들이 훌리건으로 돌변하여 폭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곳곳에서 권총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등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렸다. 이 분위기 때문에 우루과이 선수단도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귀국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당시 경기가 열렸던 구장의 이름을 따서 마라카낭의 비극이라고도 불린다. 그 이후로 우루과이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4강을 기록했을 뿐 단 한번도 월드컵 우승을 못 하고 있다. 브라질은 안 그래도 자국에서 멋대로 독립해나간 우루과이가 띠꺼운 나라였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브라질은 우루과이를 증오하는 마음에 날개를 달았다. 또한 이때까지 브라질의 유니폼은 흰색이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익숙한 상의 노란색, 하의 파란색의 카나리아로 바뀌게 되었다.
  • 1994년 미국 월드컵의 여러 흑역사
    • 잠비아의 비행기 사고 : 세네갈과의 원정 경기를 위해 이동하다가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한 선수 전원이 사망했다. 또, 이 사고의 여파가 너무 컸던지 FIFA가 예선 일정을 연기하는 배려를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선 진출의 기회도 놓쳐 버렸다. 지못미
    • 일본의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 마지막 이라크전에서 2:1로 앞서다가 30초를 못 버티고 동점골을 허용함으로써 첫 본선 진출을 4년 뒤로 미루게 되고 결국 일본 입장에서는 도하의 비극이라 불리며 흑역사로 남는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한국은 극적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하니 이름하여 도하의 기적이다. 당연히 한국 입장에서는 흑역사가 아니다. 그런데 왜인지 위 항목에 존재한다. 뭥미? 이 사자성어 때문에; 구사일생
    • 로베르토 바조(이탈리아)의 결승전(대 브라질) 승부차기 : 120분 동안 양쪽 다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승부차기까지 가서 2:3으로 뒤져 있는 상황(이탈리아 2명, 브라질 1명 실축)에 마지막 5번째 키커로 나왔는데 바조가 성공하고 브라질의 5번째 키커가 실패하기를 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바조의 슛은 크로스바 위로 붕 떠 버리며 그대로 브라질의 우승으로 경기 종료. 결국 팀을 힘겹게 결승까지 이끌어 영웅으로 대접받았던 바조는 승부차기 똥볼실축 한 방에 그만 역적으로 추락해 버렸다.
    • 콜롬비아에스코바르자살골 : 에스코바르는 이 자살골을 넣고 귀국 후 총살당했으니 말 그대로 자살골이 되어 버린 것이다.
    • 경기장 전체의 날씨 : 40도가 넘는 더위 때문에 관중도 선수도 굉장히 힘들어 했다.
    • 마라도나금지약물 복용 : 본선 두 경기를 치른 직후 받은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인 에페드린 양성 반응이 나와 출전금지를 당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16강에 간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었으나 결국 16강에서 루마니아에게 2:3으로 패해 탈락한다.
    • 슈테판 에펜베르크의 욕설 사건 : 조별예선 한국전에서 독일은 초반에 3:0으로 앞서다가 후반전에 한국팀이 3:2까지 맹렬히 추격하자 관중들이 독일에게 야유를 보내자 그 관중들을 향해 법규를 날리고 미국에서 법규 날리는 패기 그대로 퇴장당한 뒤 강제로 귀국당했다. 그리고 이 경기 이후 에펜베르크는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국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 2002 한일 월드컵 때의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 첫 경기에서 독일한테 0 : 8로 떡실신당하더니 카메룬에 0-1로 당하며 시망. 마지막 경기인 아일랜드에는 0-3. 3전 전패에 합계 0득점 12실점. 말 그대로 승점셔틀. 이거 참 안습. 여담이지만 그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2006년에 한번 본선에 올라 스페인과 우크라이나에게 신나게 썰린 뒤 월드컵 본선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췄다.
  • 2002년 한일 월드컵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의 경기 (아르헨티나 0 - 1 잉글랜드) : 마이클 오웬이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심판을 속이고 얻어낸 패널티킥을 성공시켜 더러운 승리를 달성했다. 마이클 오웬의 자해공갈에 말려든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는 그 이후 두 번 다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다. 하늘은 공평했는지 그 마이클 오웬은 2006년 월드컵에서 삽질하고 그것을 끝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으며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시 12년 후아르헨티나 대신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 대신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연달아 쳐발리고 조별리그에서 일찌감치 광탈했으며 숙적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결승에 진출하는 장면을 바라봐야만 했다. 쌤통이다.
  •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의 오심 사건 : 우즈베키스탄과 바레인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은 1-0으로 앞서던 전반 39분 페널티킥을 얻어 추가골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키커가 슛을 하기 전 동료 선수가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유로 주심은 이 골을 무효 처리하였고 바레인에게 간접 프리킥을 줬다. 하지만 이는 규정상 명백한 오심이었으며, 경기는 그대로 1-0으로 끝났다. 우즈베키스탄이 이 부분에 대해 몰수승으로 처리해달라고 제소하자 FIFA는 나중에 오심을 인정하였고 해당 경기에 대해서는 재경기를 선언하였다. 한 달뒤 다시 열린 경기에서 두 팀은 1-1로 비겼고 나흘 뒤 열린 2차전에서도 0-0으로 끝나 최종적으로 1-1로 끝났다. 결과는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바레인이 올라갔으며, 우즈베키스탄은 오심으로 인해 억울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 2006 독일 월드컵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대표팀 : 아르헨티나전이 화근이였다. 지역예선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으로 양호한 경기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괜찮아도 이런 꼴을 당했으니 더더욱 안습. 실제로 아르헨티나 전이 끝난 직후 세르비아 축구팬이 경기장 바닥에 주저앉아서 아주 서럽게 펑펑 울었다. 세르비아 깃발로 눈물을 닦아가며... 참고로 이 대표팀은 이 월드컵을 끝으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분리되면서 해체된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대표팀에서 몬테네그로 선수는 단 1명. 사실상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 2006 독일 월드컵 16강전 포르투갈 대 네덜란드 : 16개의 옐로카드와 4장의 레드카드가 쏟아져나온 막장 오브 막장 경기. 뉘른베르크의 전투로 불리기도 한다. 이 경기에서 양 팀은 역대 월드컵 한 경기 최다 경고, 최다 퇴장의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으니 말 다한 셈.
  • 2010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의 중동 국가대표팀들 : 중동 국대 5팀을 포함한 10개의 아시아 국대 팀이 최종예선 올라감 → 4.5장 중 본선 직행 4장을 동아시아 3국(한국, 북한, 일본)과 호주가 따 냄 →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이 플옵으로 밀려남 → 바레인이 사우디를 제치고 오세아니아와의 대륙간 플옵 진출 → 그러나 그 바레인도 대륙간 플옵에서 뉴질랜드에 패하며 본선 진출 좌절. 결국 중동팀 올킬당함. 침대축구 항목 참조.
  • 2014년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에서의 북유럽 국가대표팀들 : 북유럽에서 유일하게 톱시드를 받은 노르웨이가 6번 시드인 아이슬란드에게조차 쳐잡히며 조 4위로 광탈 하고 노르웨이를 이긴 그 아이슬란드가 플레이오프 진출, 스웨덴은 독일에게 걸려 플레이오프로 진출, 덴마크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경쟁에서 꼴찌가 되어 광탈, 핀란드는 디팬딩 챔피언인 스페인에다가 1998년 월드컵 우승국인 프랑스가 걸려 두 거인의 벽을 넘지 못하고 광탈. → 북유럽에서는 두 팀만 플레이오프로 진출했는데 아이슬란드는 크로아티아에게, 스웨덴은 포르투갈에 밀려 본선 진출 좌절. 결국 북유럽팀 올킬당함.
  •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AFC : 아시아의 티켓 4.5장으로 진출한 4팀[17]의 성적이 모두 합쳐 3무 9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전원 조 4위로 짐을 싸야 했다.
  • 1994 FIFA 월드컵 미국 예선에서의 다비드 지놀라 : 2경기를 남겨 놓은 상황이었는데 남은 상대는 이스라엘과 불가리아(그것도 둘 다 프랑스가 홈)였다. 이기면 불가리아전과 상관없이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던 이스라엘에 패하고도, 마지막 경기였던 불가리아 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본선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놀라는 그 마지막 경기 막판에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며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하며 프랑스를 탈락시켰다.불가리아전의 실수 이로 인해 지놀라는 프랑스 축구 팬들로부터 역적으로 낙인 찍혔으며 1998년 자국 월드컵에서는 아예 자국 국대의 우승을 가만히 앉아서 응원할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참고로 이 당시 이스라엘은 조꼴찌로 광탈했으며 이스라엘이 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의 전적이라는게 1승 3무 6패였는데 그런 이스라엘의 유일한 승리가 바로 프랑스전. 3-2로 이겼다.
  • 로베르토 로하스 스캔들 : 1990년 월드컵 예선 브라질과 칠레의 경기에서 브라질의 관객이 던진 폭죽을 당시 칠레 골키퍼였던 로베르트 로하스가 맞은 것처럼 속여 연기를 했고 칠레 선수들이 경기장을 나온 사건이다. 추후 조사 결과 이는 거짓으로 드러났고 이 경기는 칠레의 0-2 몰수패에 1994년 월드컵 예선 출장 금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고 로베르트 로하스는 영구 제명 당했다.
  • 베른의 난투극 : 1954년 월드컵 브라질과 헝가리의 경기 후 양 팀 선수가 충돌한 사건.
  •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 8강에서 아르헨티나를 맞아 경기시작과 동시에 아르헨티나 주장인 안토니오 라틴을 퇴장크리... 그리고 결승에서는 크로스바를 맞고 나간 공을 골이라 판정. 열받은 서독 축구팀은 이 골이 노골이라는 증거사진까지 찍어서 제출했는데도 불구하고 편파판정으로 골인으로 편파판정했다. 물론 하늘은 공평했는지 2010년 월드컵 16강에서 두 팀이 만났을 때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 정치적으로 이용된 월드컵
    •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 제 2차 세계대전의 원흉인 무솔리니에 의해 여러 편파판정이 작용된 월드컵이다. 덕분에 애꿎은 줄 리메만 노벨평화상이 박탈됐다.
    •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 아르헨티나 군부의 인권탄압에 항의하기 위하여 서독의 프란츠 베켄바워(Franz Beckenbauer) 등 유명선수들이 불참하였고, 오심과 폭력적인 경기내용으로 얼룩진 진정한 흑역사 월드컵이다.
  • 2006년 독일 월드컵 :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결승전 도중 일어난 지네딘 지단박치기
  •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광탈 굴욕
    • 1966년 북한 쇼크 : 1승 1패 상태에서 북한박두익에게 결승골을 허용하고 패하는 바람에 조 3위로 밀려나며 광탈. 그 후 선수단은 몰래 입국했다가 성난 팬들에게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았다.
    • 2010년 2무 1패 광탈 : 파라과이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시작부터 영 좋지 않았고, 최약체로 꼽혔던 뉴질랜드를 상대로도 간신히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리고 슬로바키아에게 2:3으로 패하며 16강 진출이 완전히 좌절됐다. 게다가 이건 이탈리아가 사상 최초로 월드컵에서 1승도 못 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고 또한 당시 팀은 디펜딩 챔피언에 걸맞지 않게 꼴찌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 2014년 1승 2패 광탈 : 첫상대였던 잉글랜드를 상대로 1:2 승리를 거두며 기분좋게 출발. 하지만 2차전에서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0:1 패배, 그리고 3차전에서도 우루과이를 상대로 0:1로 패하면서 경기 결과 1승 2패로 남아공 대회에 이어 2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당시 D조에는 두 우승후보 이탈리아와 잉글랜드가 한 조에 있었는데, 경기 결과 이 두 팀이 광탈을 한 것이다. 그나마 1무 2패로 1승도 못하고 꼴찌로 탈락해버린 잉글랜드에 비하면 이탈리아는 양반...인가? 그나마 이번 월드컵에선 그래도 지난 대회완 달리 1승이라도 거뒀잖아?
  • 일본과 잉글랜드의 2010 남아공 월드컵 평가전 : 전반전에 일본이 선취골을 넣었으나 후반전에 자책골을 내리 두골 넣으며 2:1로 역전패했다(...). 세골 넣고 패배한 일본의 위엄. 잉글랜드는 결과적으로 한 골도 못 넣은 셈. 일본의 1군이 자국팀이 어딘지 헷갈린 모양이다.
  • 프랑스 대표팀의 월드컵 광탈 굴욕
    • 1994년 불가리아 쇼크 : 프랑스는 이 월드컵의 마지막 지역예선 경기에서 비겨도 본선진출인 상황에서 불가리아에게 패하여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헌데 그러기 이전에 이스라엘에게 패한건 프랑스가 유일했다. 이스라엘은 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1승 3무 6패를 달성했는데 1승의 상대가 프랑스였다. 근데 이 이전 대회에도 나오지 못한 것이기에 더 열받을만 했다. 사실 이때도 약체로 평가되던 키프로스랑 비겼지.
    • 2002년 세네갈 쇼크 : 지단의 부상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개막전부터 월드컵 처음 나온 세네갈한테 패하더니만 1무 2패, 그것도 무득점으로 탈락하는 굴욕을 당했다. 직전 대회의 우승과 당시 피파 랭킹 1위로써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프랑스가 못 이긴 정도가 아니라 단 1골도 못 넣고 조기 탈락을 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의 탈락은 팬들에게 있어서 가히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전 대회 우승국이 거둔 최악의 성적 기록도 갈아 치우는 굴욕을 당했다.[18]
    • 2010년 남아공 쇼크 : 자세한 건 항목 참조.
  • 독일 대표팀의 흑역사
    • 1982년 히혼의 수치 :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의 조별예선에서 알제리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한 서독은 12강에 진출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와 짝짜꿍을 하고 승부조작을 했다. 경기 내용도 전반 10분에 흐루베쉬가 선제골을 넣고 80분 동안이나 백패스로 공만 돌리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유로 1984를 시작으로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는 모든 팀이 실시간으로 경기를 치르도록 바뀌었다.
    • 1998년 충격패 : 크로아티아가 첫 출전국이라고 깔보고 있던 독일은 크로아티아에게 오히려 0-3으로 패하고 만다. 망신. 진짜 흑역사다.
    • 2002 월드컵 지역 예선 잉글랜드와의 홈 경기에서 1:5로 떡실신 : 이기기만 해도 본선 진출 확정인데 이후 삽질까지 합쳐서 본선 진출을 잉글랜드한테 빼앗겨 버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플레이오프에서 우크라이나를 잡고 간신히 본선에 진출했다.
  • 2014년 브라질대 독일 준결승전 7:1. 일명 미네이랑의 비극 : 월드컵 축구의 명가 브라질이 4강전 홈그라운드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브라질 월드컵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
  • 우승후보들의 광탈
    • 1950년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 1966년 브라질과 이탈리아
    • 1994년 프랑스와 잉글랜드(본선진출마저 실패)
    • 1998년 스페인[19]
    • 2002년 네덜란드(본선진출 실패) 히딩크의 저주?
    • 2010년 이탈리아, 프랑스(예선 무승)
    • 2014년 스페인, 잉글랜드, 이탈리아
  •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5골 차 이상의 참패 기록들(굵은 글씨는 대회 최다 골차 패배)
    • 9골 차
      • 대한민국 0:9 헝가리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 자이르 0:9 유고슬라비아 (1974 FIFA 월드컵 서독)
      • 엘살바도르 1:10 헝가리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20]
    • 8골 차
      • 쿠바 0:8 스웨덴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 볼리비아 0:8 우루과이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 사우디아라비아 0:8 독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7골 차
    • 대한민국 0:7 터키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 아이티 0:7 폴란드 (1974 FIFA 월드컵 서독)
    • 북한 0: 7 포르투갈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 6골 차
    • 미국 1:7 이탈리아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 네덜란드령 동인도 0: 6 헝가리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 스웨덴 1:7 브라질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 멕시코 0:6 서독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 페루 0:6 아르헨티나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 헝가리 0:6 소련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 세르비아-몬테네그로 0:6 아르헨티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
    • 브라질 1:7 독일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21]

2.2 기타 국가대항전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의 일본 대표팀(남자부) : 각 조 1위 팀 6팀과 2위 팀 중 가장 성적이 좋은 2팀(도합 8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조별 라운드에서 일본은 북한, 시리아, 파키스탄과 같은 조가 되었고, 파키스탄과 시리아에 승리하며 북한과 비기만 해도 8강에 갈 수 있었으나 지는 바람에 2위로 밀려났고 추가 직행권조차 얻지 못해 광탈했다.
  • 201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의 토고 대표팀 : 개최국인 앙골라로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콩고민주공화국의 카빈다에서 무장괴한 3명에게 총격을 당하여 5명이 사망하였고, 결국 대회에서 기권하였다.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아데바요르는 이 충격으로 대표팀에 은퇴 선언을 하였지만, 후에 다시 복귀하였다.
  • 1983년 FIFA U-20 월드컵에서의 북한 대표팀 : 아시아 동부지역 예선 1위로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냈으나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의 심판 구타 사건으로 2년간 국제대회 출전정지 크리를 먹으며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참고로 이 대회에서 북한 대신 본선에 나간 대한민국이 4강에 오르며 붉은 악마로 최초로 불리는 계기가 된다.
  • 유로 1992에서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 지역 예선에서 조 1위로 본선 진출권을 따냈으나 유고 내전 크리로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참고로 이 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 대신 본선에 나간 덴마크가 우승을 차지했다.
  • 유로 2004에서의 프란체스코 토티 : 1차전인 덴마크전에서 상대편 선수인 크리스티안 폴센에게 몰래 침을 뱉는 바람에 3경기 연속 출장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대표팀도 1승 2무의 성적을 거두고도 스웨덴과 덴마크에게 밀려 탈락하는 불운의 주인공이 되는 바람에 이미지를 회복할 기회마저도 박탈되고 말았다.
  • 축구전쟁 : 1969년 7월 축구경기가 계기가 되어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일어난 전쟁
  • 독일 대표팀의 흑역사
    • 유로 2000, 유로 2004 조별예선 탈락
  • 유로 2012네덜란드 : 감독이 자기 사위만 열심히 귀여워한 덕에 팀 자체가 멘탈붕괴되었고 독일전에서는 승부조작을 의심할 정도로 성의없게 뛰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 대해서 네덜란드 선수들은 아예 그가 뭔짓을 하든 그냥 내버려뒀다.
  • 믿기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 유로 2016 예선전 세르비아 대 알바니아 :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파르티잔 스타디움에서 전반 41분 알바니아의 한 관중이 알바니아 정치 관련 깃발을 미니헬기에 띄워 그라운드에 내려보냈는데 이를 본 세르비아 선수들은 깃발을 치우는 중에 알바니아 선수와의 충돌이 일어났고 흥분한 세르비아 관중은 오물투척 및 그라운드 난입으로 경기가 중단되었고 경기 결과는 세르비아의 3대0 승리로 처리되었지만 세르비아는 관중 난입을 막지 못해 승점 3점 삭감에 2경기 무관중 경기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알바니아가 이에 대해 항소하였고, 재판부가 관중 난입을 제대로 막지 못한 세르비아의 책임이 더 크다고 판단하여 알바니아의 손을 들어 알바니아가 3대0으로 승리한 것으로 반전되었으며, 이에 따라 세르비아는 승점 -2점으로 대회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였다. 잘못은 알바니아가 했는데, 징계는 세르비아가 먹었다. (...)

2.3 클럽축구

2.3.1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2.3.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뮌헨 비행기 참사 : 뮌헨에서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당시 매트 버스비 감독이 잉글랜드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영입한 유망주들과 코칭 스태프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매트 버스비 감독이나 보비 찰튼 같은 소수의 생존자들 덕에 맨유는 팀을 재건하는데 성공한다. 잉글랜드 대표급 선수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잉글랜드 대표팀에게도 흑역사.
  • 데이비드 모예스
  • 루이 반 갈
2.3.1.2 아스날 FC
2.3.1.3 리버풀 FC
2.3.1.4 에버튼 FC
  • 피터 존슨 前 회장
2.3.1.5 리즈 유나이티드
  • 피터 리즈데일
2.3.1.6 블랙번 로버스
  • 벤키 그룹
2.3.1.7 토트넘 핫스퍼

2.3.2 프리메라리가

2.3.2.1 FC 바르셀로나

2.3.3 세리에 A

2.3.3.1 AC 페루자 칼치오
  • 루치아노 가우치 前 구단주
2.3.3.2 ACF 피오렌티나
  • 비토리오 체키 고리 前 구단주
2.3.3.3 토리노 FC
  • 수페르가의 비극 : 1949년 5월, 토리노 인근 수페르가 언덕에 비행기가 추락해 비행기에 탔던 토리노 FC의 선수와 스탭이 전원 사망했다. 당시 토리노 FC는 세리에 A의 대표적인 클럽이었으며 지역 라이벌 유벤투스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 강팀이었다. 하지만 이후 선수와 스탭이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구단 운영진만 남아서 팀을 꾸려나가야 했고 결국 유벤투스에게 이탈리아 대표 클럽이라는 명칭을 넘겨주고 쇠퇴해 갔다. 그나마 소수라도 살아남은 뮌헨 참사보다 더한 흑역사.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 소수의 생존자들이나마 있어서 팀이 재건될 수 있었으니...안습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들도 많이 죽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대표팀에게도 흑역사.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 1926/27 : 토리노의 스쿠데토 박탈.

2.3.4 터키 쉬페르리그

  • 파쏘리그

2.3.5 기타

  • 우한 광구 : 중국의 프로 축구 클럽. 2008년 중국 슈퍼 리그에서 편파적인 징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중도 기권을 선언. 모든 경기가 0 : 3 몰수패로 처리된 뒤 중국 축협으로부터 구단 등록 취소와 참가 자격 박탈 처분을 받으면서 해체됨.
  • 2002년 마다가스카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149-0 사건 : AS 아데마와 디펜딩 챔피언인 SOE의 경기였는데, 당시 원정 팀이었던 SOE측 감독이 심판 판정에 크게 분노하자 선수들이 고의로 자책골을 끊임없이 넣어 AS 아데마가 가만히 앉아서 149-0으로 승리한 사건이었다. 이에 AS 아데마 선수단과 팬들은 어이없어서 웃기만 하고 관중들은 너도나도 입장료 환불을 요구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결국 경기는 취소되고 아데마의 3-0 몰수승으로 끝났으며 SOE 감독 및 선수들은 출전 금지 및 구단은 벌금형 및 무관중 경기 처벌로 강력하게 처벌당했다. 자책골 고만 넣어, 미친놈들아! 149 : 0이라는 황당한 스코어는 결국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않은 점수가 되었다. 일본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왔다.

2.3.6 대륙간 클럽대항전

지속적인 추가바람.

2.4 개인

  • (축구감독으로서의) 그레이엄 수네스
  • (축구감독으로서의) 디에고 마라도나 : 브라질과 같이 남미의 양대산맥이라는 아르헨티나를 끌고 가서 남미에서 베네수엘라와 쌍벽을 이룬다는 축구약체 볼리비아에게 1-6 패배, 그것도 모자라서 엔트리가 완전히 개판이였다. 마라도나가 부임하고 나서 5위까지 추락했다가 페루와 우루과이를 이기고 극적으로 4위에 안착. 엔트리는 아르헨티나 수비진에 반드시 필요한 하비에르 사네티에스테반 캄비아소를 제외시킨 것이 큰 실수. 본선에서는 대한민국을 4:1로 발라버리는 등 나름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8강에서 독일을 만나 영혼까지 털렸다. 마라도나에 대한 평가는 선수로서의 마라도나와 감독으로서의 마라도나가 극과 극을 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중동 리그팀인 알 와슬의 감독이 되었으나 실력부족으로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두고 잘렸다.
  • (발렌시아 감독으로서의) 로날드 쿠만 : 07-08시즌 키케감독의 매너리즘등으로 부진을 겪던 발렌시아 C.F.를 그야말로 똥통으로 빠트린 감독. 그나마 에베르 바네가의 발견, 마지막 우승컵인 국왕컵을 선사했으나 이 업적을 전부 뒤엎을 전설의 호아킨 산체스 원톱과 아리즈멘디 윙백기용 등 끝없는 기행이 이를 전부 무마시켜버렸다.
  • (발렌시아 감독으로서의) 게리 네빌 : 15-16시즌 성적부진으로 중도경질된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 감독의 대타로 부임했으나, 부임 과정부터 구단주 피터 림과의 인맥 논란 등으로 인해 순탄치 않았고, 경기력은 제 2의 쿠만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수준이었다. 그나마 8~9위 정도에서 버티던 팀을 리그에서 17%라는 극악의 승률을 시전하며 10위권 밑으로 추락시켜버렸으니 설명이 필요없다. 결국 부임 4개월만에 경질. 박쥐군단 레전드중 한명인 다비드 알벨다는 네빌에 대해 쿠만보다 더하다라믄 평을 했을 정도.
  • 야나기사와 아쓰시의 실축들
  • 펠레의 저주
  • 라이언 긱스의 월드컵 도전사.[25]
  • 이동국의 월드컵 도전사.[26]
  • 칼리드 아스크리 : 실력 자체는 리그 탑급이었지만, 종종 나온 황당한 실수의 임팩트가 너무나도 거대해서...
  • 박지성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이적
  • 기성용트위터 사건
  • 먹튀
  • 저메인 데포루이스 수아레스 : 마이클 타이슨에 이은 핵이빨의 전설을 써나가고 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의 데이비드 모예스. 에버튼 시절 모예수였던 사람이 1년만에 모했으, 모했수로 별명이 바뀌었다. 성적은 2순위라 쳐도 팀 자체를 망쳐버린 것은 덤. 결국 본인 감독 커리어사상 처음으로 경질을 겪게된다. 그나마 루이 반 갈의 삽질덕에 재평가를 어느정도는 받고 있지만...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의 하비에르 아기레 : 에스파뇰 감독 시절 때의 승부조작 의혹에 연루되어 이미지가 날아가버렸고 덩달아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8강에서 탈락하는 등의 수모를 겪다가 스페인 측에서 고소장이 접수 된 이후 경질되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루이 반 갈 : 모예스의 경질 이후 월드컵이 끝난 뒤 호기롭게 부임했으나, 3백을 억지로 적용시키려다 실패하고, 천문학적 이적료를 쓰고도 챔스권에 턱걸이하고, 답이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는 등 어째 가면 갈수록 모예스보다 더하다는 평까지 듣고 있다. 그나마 애슐리 영같이 퇴물이던 선수를 갱생시키거나, 마커스 래시포드같은 특급 유스를 발굴해내는 능력은 살아있지만, 전술적인 측면과 선수 기용면에서 답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는게 문제. 앙헬 디 마리아를 억지로 중앙에 배치했다가 폼 다 죽이고, 웨인 루니를 원톱으로 기용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 부임 첫해에는 그래도 후반기에 선전하며 리그 4위를 기록했지만, 15-16시즌 현재, 챔스에 이어 유로파에서도 광탈했으며 리그에서는 챔스권 진입이 힘들어보이는 상태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적료 4500억을 쓰고 이 성적이라는거. 다비드 데 헤아를 비롯한 몇몇선수들의 맹활약 아니었으면 유로파도 힘들었을거라는게 중론이다.

2.5 기타

  • 고쿠시칸대학 축구부 성추문 사건 : 일본 풋볼 리그에 참가하고 있던 2004년 12월에 부원 15명이 15세 소녀를 상대로 성추행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고쿠시칸대학 축구부의 JFL 마지막 경기는 0 : 3 몰수패로 처리되고 그 시즌을 끝으로 JFL에서도 퇴출되었다. 그리고 성추문에 연루된 부원 15명은 모두 퇴학 처분. 당시 고쿠시칸대학 총장이 기자회견까지 열어서 사죄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래도 축구부가 잠시 해체됐다가 불행 중 다행으로 이듬해 4월에 활동을 재개하긴 했다.
  •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의 나이속임
  • 브라질의 선수-심판 살해사건 : 브라질의 아마추어 축구 경기 중에 심판인 오타비오 다 시우바(Otavio da Silva)가 선수인 주지뉴(Josenir Abreu)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는데, 이에 주지뉴가 거칠게 항의하자 오타비오가 날카로운 흉기로 주지뉴를 찔러 중상을 입힌 사건. 결국 주지뉴는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에 사망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사건이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에 분노한 피해자의 친구들과 일부 관중들이 그 자리에서 오타비오를 에워싸 돌로 내리친 뒤 참수하고 다리를 잘라 버린 것이다. 이들은 오타비오의 잘린 머리를 장대에 꽂아 그라운드 한 가운데에 세워놓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후에 도주하다가 체포되었다. 남미의 훌리건들이 저지른 막장 사고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사건 중 하나로 손꼽힌다.
  1. 사실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도 않은 절대적으로 빈곤한 여건에서도 지역예선에서 일본에 압승을 거두었고 본선 상대팀들이 당시 세계최강 헝가리와 강호 터키였음을 감안하면 선전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엄청난 선전이었다. 해외 언론에서도 20-0 수준의 결과를 예측했지만 고작 9-0으로 끝난 것에 경악했다. 오히려 키퍼에게 대단하다며 사인을 받아간 관중도 있었다.
  2. 당시 세계최강으로 불렸던 헝가리와 지역예선에서 전통의 강호 스페인을 물먹이고 본선에 올라왔던 터키를 상대로 제대로 준비조차못하고 전쟁으로 인해 대회 개막일에 겨우 도착했던 대표팀이었기에 비록 큰 점수차로 패하긴 했어도 지금같은 기준으로 졸전이라고 성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조금만 더 잘 준비가 되었다면 터키전에서는 그래도 해볼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들도 있었다. 여담으로 불과 7년후인 1961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렸던 친선전에서는 접전끝에 아쉽게 0대1로 석패한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3. 지금으로 치면 내셔널리그 선수 위주로 짜서 보낸 것.
  4. 여담으로 당시 이 사태에 AFC에서 화들짝 놀라 모든 대회(아시안컵 예선, 본선, 월드컵 예선 등)에 무조건 A대표팀을 구성해 참여하도록 강제규정했다고 한다.
  5. 이는 선수들이 일부러 8강 상대가 이란인점을 감안해서 자신들을 들들볶던 박종환감독을 내쫓으려고 고의로 태업을 했다는 소리가 있다. 전반전에 2:1로 앞서가다 후반에 갑자기 5골을 먹히는게 말이 안되는 일이라 거의 태업 확정이지만.. 여전히 말로만 나타날뿐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태업이다, 아니다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6. 그런데 16강전에서 브라질이 벨기에를 0-10으로 바르면서 묻히긴 했다.
  7. 2014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월드컵 본선 최단시간 실점 신기록이다. 그 실수의 원흉 홍명보는 대한민국 국대 사령탑을 맡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도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흑역사를 알제리전에서 만들었다.
  8. 조광래 경질을 외쳤던 팬들도 이건 너무 심하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9. 장현규는 자살이 아닌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로 사망하였다. 기사 링크
  10. 안양 LG에 밀려 좌절. 이 사건으로 부산의 인기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갔고 이후에도 과거의 영광을 못 찾고 있다.
  11.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샤샤는 K리그 MVP가 유력했음에도 그 자격을 사실상 박탈당했고, 결국 K리그 MVP 준우승팀인 부산의 안정환에게 돌아갔다.
  12. 팀들도 팀들이지만 경기 내용면에서도 오심으로 우승팀이 결정되었다는 면에서 흑역사이다. 1차전에서는 제주가 2-0으로 앞서던 중 서울의 데얀이 오프사이드 위치에서 만회골을 넣어 2-2 무승부의 빌미를 제공했고, 2차전에서는 서울의 공격수가 제주 수비수에게 몸통박치기를 했는데 서울의 페널티킥이 선언되었고 선제골로 이어져 서울 2-1 승리에 기여했다. 그야말로 심판 합작으로 우승팀이 결정된 사건.
  13. 하필 관중석에서 내는 소리가 선수들에게 잘 들릴 수밖에 없는 2군 경기였다(...)
  14. 이 부분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서울시청 축구팀의 해체는 사실 1999년부터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지만 서울시청 팀은 태생 자체가 서울시립대학교 재학생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문제는 체육특기자 제도 개정으로 당시 체육계열 학과가 없었던 서울시립대는 1999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체육특기자를 받을 수 없게 되었고 그 뒤로는 다른 팀에서 밀려온 선수들을 받아서 겨우 연명하고 있던 상태였다.
  15.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세레머니는 금지되어 있다.
  16. 경기고등학교에서 축구부와 야구부 중 한 부를 폐부시키기로 하여 제비뽑기 결과 두 부가 축구 경기를 하여 진 쪽이 폐부하기로 결정되었는데 예상외로 야구부가 축구부를 7:1로 이기는 바람에 축구부가 폐부되었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른 도시전설일 뿐이므로 취소선 처리. 경기고 축구부 항목 참고.
  17. 대한민국, 일본, 호주, 이란.
  18. 그 전까지는 1962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이 1966년 월드컵에서 1승 2패에 4득 6실로 탈락한 것이 디펜딩 챔피언이 거둔 최악의 기록이었다.
  19. 대진이 꼬여서 이렇게 되었다. 나이지리아가 파라과이와 비기기만 해도 스페인은 16강에 진출할 수가 있었는데 나이지리아는 파라과이에게 1-3으로 쳐발려서 2승 1패를 달성했고 이 때문에 스페인은 불가리아를 6-1로 대파하고도 탈락했다.
  20. 그러나 헝가리는 아르헨티나와 벨기에에게 밀려 조 3위로 예선에서 탈락하였다.
  21. 위의 미네이랑의 비극 참고. 심지어 이 것은 조별리그도 아니고 무려 월드컵 4강전에서 나온거다!
  22. 위의 칼치오폴리와는 달리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행한 승부조작 사건이다.
  23. 이 판정으로 인해 당시 주심이었던 루보스 미첼은 경기 후 첼시 팬들의 잇단 협박성 항의를 받고 축구계에서 은퇴했다.
  24. 그 중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하비에르 아기레가 연루되어있다.
  25. 그가 듣보잡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선택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애초부터 그는 웨일스 대표팀 소속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항목 참조.
  26.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활약하여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으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거스 히딩크의 마음에 들지 않고 팀의 색깔과 다르게 행동하여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는데 하필이면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준결승에 진출했다. 결국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월드컵 개최 직전 부상을 당해 또 제외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러서야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으나 주전이 아닌 후보였고 실제 뛴 경기시간이 몇분 되지 않았다. 다만 그 짧은 몇 분 조차도 본인이 이른바 물회오리슛, 카페베네슛으로 비아냥당할 역대급 실책으로 말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