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림 압둘 자바

(루 앨신더에서 넘어옴)
The 50 Greatest Players in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History
NBA 역사상 위대한 선수 50인
in 1996. ESPN / 영상
네이트 서몬드네이트 아치볼트데이브 빙데이비드 로빈슨데이브 코웬스돌프 세이즈레니 윌킨스
래리 버드로버트 패리시릭 베리마이클 조던매직 존슨모제스 말론밥 페팃
빌 러셀빌 셔먼빌 커닝햄빌 월튼샤킬 오닐샘 존스스카티 피펜
아이재아 토마스얼 먼로엘빈 헤이즈엘진 베일러오스카 로버트슨웨스 언셀드윌리스 리드
윌트 체임벌린월트 프레이저제리 루카스제리 웨스트제임스 워디조지 거빈조지 마이칸
존 스탁턴존 하블리첵줄리어스 어빙카림 압둘 자바칼 말론케빈 맥헤일클라이드 드렉슬러
폴 아리진패트릭 유잉피트 마라비치하킴 올라주원할 그리어찰스 바클리밥 쿠지
이름카림 압둘 자바 (Kareem Abdul-Jabbar)[1]
생년월일1947년 4월 16일
신체 조건218cm(7' 2")[2], 102kg
포지션센터
드래프트1969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밀워키 벅스에 지명
등번호33번
역대 소속팀밀워키 벅스 (1969~1975)
LA 레이커스 (1975~1989)
수상내역NBA champion 6회
NBA Finals MVP 2회 (1971, 1985)
정규시즌 MVP 6회 (1971-1972, 1974, 1976-1977, 1980)
NBA All-Star 19회 (1970-1977, 1979-1989)
All-NBA First Team 10회
(1971-1974, 1976-1977, 1980-1981, 1984, 1986)
All-NBA Second Team 5회 (1970, 1978-1979, 1983, 1985)
NBA All-Defensive First Team 5회 (1974-1975, 1979-1981)
NBA All-Defensive Second Team 6회 (1970-1971, 1976-1978, 1984)
NBA Rookie of the Year (1970)
NBA All-Rookie Team (1970)
NCAA champion 3회
NCAA Final Four Most Outstanding Player 3회 (1967-1969)
Naismith College Player of the Year (1969)
1971년 ~ 1972년 NBA 정규시즌 MVP
윌리스 리드카림 압둘 자바
(루이스 앨신더/개명)
데이브 코웬스
1974년 NBA 정규시즌 MVP
데이브 코웬스카림 압둘 자바밥 맥아두
1976년 ~ 1977년 NBA 정규시즌 MVP
밥 맥아두카림 압둘 자바빌 윌튼
1980년 NBA 정규시즌 MVP
모제스 말론카림 압둘 자바줄리어스 어빙
1971년 NBA 파이널 MVP
윌리스 리드카림 압둘 자바
(루이스 앨신더/개명)
윌트 체임벌린
1985년 NBA 파이널 MVP
래리 버드카림 압둘 자바래리 버드
1971년 ~ 1972년 NBA 올해의 득점왕
제리 웨스트카림 압둘 자바
(루이스 앨신더/개명)
네이트 아치발드
1975년 ~ 1976년 NBA 올해의 블락왕
엘모어 스미스카림 압둘 자바빌 윌튼
1979년 ~ 1980년 NBA 올해의 블락왕
조지 T. 존슨카림 압둘 자바조지 T. 존슨
1985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메리 루 레튼카림 압둘 자바조 패타노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영구결번
No. 33
밀워키 벅스 영구결번
No. 33

1 개요

ESPN 선정 역대 최고의 센터

NBA농구 선수. 본명은 퍼디낸드 루이스 앨신더 주니어(Ferdinand Lewis Alcindor, Jr)였지만,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이름을 바꿨다. 신장 218cm, 체중 102kg. 주 포지션은 센터.

NBA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레전드. 보통 위대한 농구선수들을 꼽으라 하면 대부분이 마이클 조던 바로 다음으로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과 함께 그를 꼽는데, 이 셋 중에서도 카림을 맨 앞에 놓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1969년부터 1989년까지 뛰었으며 통산득점 38,387 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NBA 통산 1위에 해당한다. 20년간 선수생활한 것도 통산 1위였지만, 자바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로버트 패리시가 21년 뛰는 바람에 통산 2위. 단 출전 시간은 압둘 자바가 여전히 통산 1위이다.

세이버메트릭스로 보더라도 엄청난데

  • WS 단일시즌 1위(25.37 / 1971-72시즌)
  • WS 통산 1위(273.41)
  • OWS[3] 단일시즌 1위(18.31 / 1971-72시즌)
  • OWS 통산 1위(178.92)

(...)

2 업적

뉴욕 출신으로 1947년에 태어나 14세 때인 1961년부터 파워 메모리얼 아카데미[4] 시절 잭 도나휴 감독[5]에게 농구수업을 받았다. 고교 시절 71연승을 기록하는 등 고교 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을 보여왔고, 1966년에 농구명문 UCLA에 입학, 출전했던 3년동안 전부 NCAA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서 싹수부터 시퍼랬다. 이 시절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루머는 입학 직후 1학년과 상급생으로 나눠져서 연습경기를 했는데 압둘 자바가 주축이 된 1학년팀이 상급생팀을 발라버렸다. 문제는 그 상급생들이 그 직전해 NCAA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한 주전 멤버들이었다는 거.

아무튼 1학년을 마치고 NCAA 토너먼트에 데뷔한 카림의 대학생활은 딱 한마디로 설명 가능하다. 역대 최고의 NCAA 선수.[6] 이 시기 UCLA가 NCAA 토너먼트를 7연패하는 최전성기를 구가하는 와중에 1967년에서 1969년까지가 압둘자바의 시대였다. 얼마나 사기 유닛이었냐면, 카림이 2학년 시즌 마치자마자, NCAA에서 덩크 금지 룰을 만들 정도. 덩크 슛 항목 참조. 그리고 덩크가 금지당한 이 괴수께서는 손수 스카이훅을 개발해내신다.[7]

NCAA는 단기간 리그파괴를 피할수 있었지만 대신 NBA의 빅맨들에겐 20년의 재앙을 선물해줬다. 졸업과 동시에 1969년 드래프트에 참가, 전체 1번지명으로 창단된지 2년된 밀워키 벅스에 지명 됐다. 그러고는 당연히 신인왕 획득. 이 때 NBA의 라이벌 리그인 ABA에서도 카림을 꼬시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는데, 바로 원하는 팀에서 데뷔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드래프트 당시부터 엄청난 대우를 받았던 것.

입단 2년차에 일찌감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금도 존재감이 없는 밀워키 벅스 역사의 유일한 우승이 이 시기였다. 이 때 밀워키는 고작 창단 3년차로, 창단 후 가장 빨리 우승한 구단이 되었고, 이는 여지껏 안깨지고 있다. 커리어가 굉장히 길어지고, LA 레이커스 시절의 모습이 많이 방송되어서 기억엔 많이 남아있지만, 밀워키 벅스에서 6시즌을 보냈던 선수이다. 빌 러셀에 치이고, 윌트 체임벌린에 치이는 등 우승에 한끝 모자랐던 은퇴를 앞둔 오스카 로버트슨이 도와 우승을 이뤄냈다.[8]

하지만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대도시인 뉴욕에서 태어나 LA에서 대학생시절을 보낸 압둘 자바에게 미국 중부지역의 소도시 밀워키는 그에게는 그야말로 따분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우승직후 팀에게 끊임없이 "내가 들어와서 당신들 숙원인 우승도 시켜줬잖아. 나 밀워키에서 할 만큼 했으니, 고향인 뉴욕이나 뉴저지로 트레이드 해줘" 하고 징징 시전.[9] 결국 팀은 그의 소원대로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 시켰다. 그후 밀워키 벅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설명이 必要韓紙?[10]

그러고는 1975년 이적후에는 핵심선수로 뛰다가 1980년 매직 존슨과 제임스 워디가 온 후에는 그들에게 공격을 맡기고 자신은 골밑 수비에 전념하는 런앤건의 골키퍼가 되어 41세[11]까지 선수로 활약하며 19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나이들어서 매직 존슨에게 팀 리더 역할을 물려주기 전까지 레이커스의 제1옵션이었다. 물론 매직이 팀의 리더가 된 후에도 속공상황이 아닌 하프코트 오펜스 상황에서의 카림은 안정감 그 자체라 38세 시즌까지 평득 20점에 야투율 50% 후반대를 찍었다. 그만큼 늙었어도 괴수였단 이야기.

3 스카이훅

밀워키 벅스 시절의 스카이훅슛

그의 주특기인 "스카이 훅슛"은 타점이 높고 깊은데다 슈팅 레인지가 넓어서 막을 수 없는 신기였다. 훅슛은 원래 골밑에서 포스트업을 하다가 한손으로 대충 던져놓거나 덩치들이 힘으로 욱여넣다시피하는 막슛(혹은 반대쪽 팔로 고 올리는 슛...)에 가깝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상대 수비와 직각으로 서고, 일차적으로는 슛하지 않는 반대 손으로 수비를 견제하며 던질 수 있기에 빅맨에게는 배우면 좋은 필수 무기로 각광받았는데... 이러한 훅슛과는 달리 그의 훅슛은 위 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말 부드러운 릴리스를 가졌고, 조금 과장해서 3점 라인 안쪽이라면 어디서나 던질 수 있는 정도. 웬만한 중거리슛의 거리에서 던졌기 때문에 안 그래도 막기 어려운 훅슛을 거의 막을 수 없었다. 보통 막으려면 뒤쪽에서 달려들어서 공을 릴리스하기 전에 찍어야 하는데 이게 말이 쉽지(...).

젊은 압둘자바의 스카이 훅슛은 빠르고, 민첩하게 올라갈수는 있었지만 레이커스 시절의 압둘자바보다는 릴리즈가 좀 더 느리고, 레인지도 조금 떨어졌다.


물론 다 못 막은 것은 아니고, 자바처럼 영화 코난에 출연하기도 했던 NBA 선수 윌트 체임벌린은 한 경기 동안 두 차례 블록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것도 이미 커다란 무릎부상으로 전성기때의 운동능력을 거의 상실한 채로! 그러나 이 장면은 잘보면 첫번째 슛은 스카이 훅슛보단 일반적인 훅 슛에 가깝고, 두번째는 골텐딩이다.[12]

막은 사람으로 치면 디트시절 데니스 로드맨도 있다. 그밖의 네이트 써몬드같은 수비실력만큼은 레전드였던 선수들도 종종 블락하곤 했다.

이 슛이 하도 유용하기에 당대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 근 30년간 많은 선수들이 연습을 시도했지만 택도 없었다.(...) 가끔 NBA게시판에 뉴비들이 "스카이훅 킹왕짱이라던데 왜 저거 연습하는 사람이 없음?" 이란 질문을 간간히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근래에 자바가 교습다니면서 여러 센터들에게 전수하기도 했지만 실전에서 써먹은 선수는 거의 전무. 왜 거의냐면 딱 한명 제대로 써먹은 선수가 있기 때문인데, 또 다른 먼치킨인 매직 존슨이 바로 그 선수. 물론 매직 또한 스카이훅을 그대로 따라하진 못했고, 베이비 훅, 혹은 주니어 스카이 훅이라고 손목을 쓰는 훅슛이라기 보단 반대쪽으로 던지는 플로터처럼 띄우는 스타일로 나름대로 응용버전을 개발해서 말년까지 유용하게 써먹었다. 87년 파이널 4차전에서는 이걸로 결승골을 성공시키기도. 아래의 장면이 그것.[13]

4 기타

무하마드 알리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계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흑인 고유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진보 성향의 인물이다. UCLA 2학년 시절 수니파로 개종했으며[14]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차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활약한 흑인 전차부대의 역사를 조명하는 책을 포함해 여러 책을 집필했고, 각종 매체에서 인종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였다. 2014년에는 사회주의 성향의 자코뱅이라는 잡지에 NCAA에서 대학생 운동선수들을 보다 공정하게 대우할 것을 촉구하는 글을 투고하기도 했다. #. 2015년에는 워싱턴 포스트 칼럼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고 버니 샌더스 지지를 선언했다.#

EA의 고전게임인 Lakers vs. Celtics and the NBA Playoffs에 등장했는데 스카이훅슛은 쏘면 대부분 들어갔다.

농구 이외에도 부업으로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사망유희에 출연했으며 자바와 이소룡의 대결은 액션 영화계에서 알아주는 명장면이다.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작중 자바가 맡은 배역의 이름은 하킴(...) 실제로 이소룡에게 무술 지도를 조금 받았으며, 이 때 배운 정권으로 시합중에 자신에게 하드파울을 시전한 켄트 벤슨을 가격했고, 턱이 부서지는 부상을 입히게 했다. 이소룡은 이에 대해 실망의 표현을 했고, 압둘자바도 크게 뉘우치고, 그 이후 누군가를 경기중에 때린 적은 없다. 여담이지만 카우보이 비밥 2화에서는 이 하킴을 오마주한 압둘 하킴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며, 역시 이소룡의 절권도를 사용하는 스파이크 스피겔과 위 영상을 오마주한 대결을 벌인다. 물론 곧이어 등장한 아인 때문에 개판이 되지만

이외에도 1980년작 코미디 영화 '에어플레인!'[15]에서는 로저 머독#)이라는 비중있는 조연 비행기 부조종사 역으로 나온다. 그리고 꼬마 승객이 "나 당신 알아요, 분명 카림 압둘 자바야!" 라고 하는데 딱 잡아뗀다(...). 그리고 "울 아빠가 당신은 디펜스 능력이 부족하댔어요"라고 깐족거리니 꼬마의 멱살을 쥐고 "내가 그 얘기 NCAA 때부터 들었거덩?"하며 자폭한다 극중에서 상한 생선을 먹고 실려나간[16] 후에는 안 나온다(...). 조종사 부조종사 항법사 몽땅 실려나갔다 이래야 재난영화지 근데 이거 코미디 영화라능

그러나 은퇴한 뒤로는 수 차례의 사업 실패로 인해서 시망하고, 이 때문에 미국 운동선수 사이에서는 늙어서 자바처럼은 되지 말자 식으로 수군거린다고. 지못미...

2009년 9월에는 前 NBA 선수 및 NBDL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감독 자격으로 방한하여 KBL 올스타팀과 대결을 펼친 적이 있다. 당시 무명시절의 샘 해밍턴이 행사에 참여해 그를 인터뷰한적이있었는데 샘의 말론 예상밖으로 재밌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게다가 섹시하지도 않았다고한다.[17]

만화 슬램덩크에서 채치수의 방에 붙어있는 포스터의 주인공이다. 그 밖에도 서태웅의 1학년 팀과 채치수의 2, 3학년팀이 연습경기를 할 때, 채소연이한나 매니저가 위에 언급된 1학년 시절 압둘자바의 팀이 선배들을 연습시합에서 박살내버린 일화를 얘기하며 등장했다.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미국팀 일원인 럭키 글로버는 이 사람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농구선수 출신 공수도 유단자라는 점이 특히...

2008년 말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2011년 2월 완치 소식을 발표했다.

2013년 LA 다저스로 이적한 류현진에게 싸인을 받은 적이 있다. 류현진은 압둘 자바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자바 형님 은퇴하실 때 겨우 4살 먹은 꼬꼬마였으니...

2015년 짱구는 못말려 X파일 3기 23화 '트레저 헌터 봉미선'편에서 사망유희 촬영 당시의 코스프레를 한 채 나왔다.그래도 만화인데 그래 그럴 수 있어근데 NG장면은 왜 나오는 건지..

2015년 9월 셜록 홈즈의 형인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출간했다. 1870년대 20대 초반의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라고 한다.
  1. 개명 전 이름은 퍼디난드 루이스 앨신더(Ferdinand Lewis Alcindor, Jr)
  2. 원래는 219.7cm(7' 2.5")였는데 나이드셔서 줄었다.
  3. 공격 기여도.Offensive Win Shares
  4. 1984년 폐교.
  5. 그는 1972년부터 16년간 캐나다 농구 국대 감독을 지휘했다.
  6. 그에 비견될 만한 선수는 커림과 마찬가지로 3년 연속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고 2년 연속으로 무패 우승한 그의 대학 후배 빌 월튼 정도 뿐이다. 카림과 월튼이 재학하는 동안 UCLA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는데,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서 후술되는 7연속 우승을 포함해 무려 9번이나 우승하기도 했다.
  7. 엄밀히 말하자면 훅슛을 창조해낸 것은 아니다. 이미 NBA 초창기에 LA 레이커스의 전신인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의 조지 마이칸이 리그를 지배할 때, 그가 즐겨 쓰던 슛이 현대에 부르는 훅슛이다. 압둘자바도 이를 참고했고, 특유의 길죽길죽한 비주얼과 높은 타점으로 독특한 폼을 선보였던 것이다. 훅슛은 기본적으로 빅맨이 팔을 위로 쭉 뻗은 상태에서 쏘는 것이라 일반 슛보다 타점이 훨씬 높고 쏘는 속도도 빠르며 블럭하기가 훨씬 힘들지만 한손으로 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압둘자바의 훅슛은 기존의 훅슛과 다르게 팔을 아예 골다 반대방향으로 (물론 수평으로 뻗는게 아니라 ↗요 정도 각도로 위쪽으로) 뻗은 상태에서 카림 특유의 높이와 점프력을 이용해 올라가서 쏘는 것이기 때문에 안 그래도 타점이 높은데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더 올라가기 때문에 앞에서 막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비교적 타점이 낮은 뒤쪽에서 막는다고 해도 기본 높이가 너무 높고 빨리 올라가기 때문에 블럭하기 불가능한 건 마찬가지. 이토록 특이한 슛이라 기존의 훅슛과 구분해서 '스카이훅'이라고 부르는 것. 슛 장면을 보면 알겠지만 보통 훅슛은 툭 던지는 느낌이라 포물선을 그리 높이 그리지 않지만, 스카이훅은 길고도 높은 포물선을 그린다. 물론 이렇게 하면 난이도는 극악으로 올라간다. 훅슛이 공을 올려놓는 느낌이라면 스카이훅은 거의 반대쪽에서 투척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그러나 카림은 극강의 손끝감각으로 이런 어려운 슛을 높은 확률로 넣을 수 있어 주무기로 써댈 수 있었던 것. 다른 빅맨들도 스카이훅이 위력적인 건 알지만 알아도 어려워서 못 쓴다.(보통 선수들같으면 터프샷이라 피해야하는 페이더웨이를 주무기로 썼던 마이클 조던과 같은 케이스다) 정리하자면 훅슛은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처럼 훅슛을 던지는 것은 NBA 역사상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8. 사람들은 이를 LA 레이커스의 후배 센터샤킬 오닐과 비교한다. 둘 다 다른 팀에서 시작했고, 많은 업적을 이루어냈지만 본인이 싫어서 먼저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결국 LA로 오는 과정이 닮아있다.
  9. 팀도 우승으로 이끌고 해줄만큼 해줬으니 고향팀으로 가고 싶었다는 것이 명분. 트레이드를 먼저 시켜달라는 것이 압둘자바의 요구였고 팀도 어차피 더이상 못 잡을거 아니까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그나마 원래는 고향 뉴욕이나 뉴저지로 가고 싶어했는데 트레이드 카드가 안맞아서 벅스 프런트는 압둘자바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안으로 LA로 트레이드 된다.
  10. 그렇다고 해도 카림은 밀워키에서 6시즌동안 매시즌 매경기 40분 이상 뛰면서 20-10을 밥먹듯했고, 밀워키 벅스 유일한 파이널 우승과 73~74시즌 파이널 준우승등 신생팀 밀워키 벅스의 리그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 거기다 트레이드 하지 않았다면 자유계약으로 나갈 것이 확실했다. 다름아닌, 벅스의 우승을 같이 이끈 오스카 로버트슨이 1970년 존 하블리첵등과 함께 NBA를 연방법원에 제소하여 1976년 FA제도의 초석이 되는 선수의 자유이적을 보장하는 판결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카림 압둘 자바가 75년 이후 팀에 남았더라도 근 시일내에 이루어졌을 FA제도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이 때문에 밀워키도 미련 없이 자바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실제로 NBA에서 자유계약제도가 생긴 것은 1976-77 시즌 종료후로, 최초의 자유이적은 당시 LA 레이커스의 가드 캐지 러셀이 되었다. 러셀은 시카고 불스로 1년 계약을 맺고 자유이적했다.
  11. 참고로 카림이 LA로 이적한 첫해, 훗날 1981~82년부터 레이커스의 감독을 지낸 레전설 헤드코치 팻 라일리는 선수로 뛰고 있었다. 카림과 라일리는 1945년생 동갑.
  12. 무지막지한 타점 외에도 바로 저 점이 훅슛이 아닌 '스카이훅'이 막기 힘든 이유이다. 일반적인 훅슛은 타점이 위에 있기 때문에 수비가 찰싹 달라붙으면 블럭이 가능하다. 그런데 스카이훅은 타점이 골대 반대편에 있어서 포물선을 비교적 높게 그리기 때문에 수비수의 팔을 지나갈 때쯤 되면 볼이 하강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높이로 블럭해봤자 골텐딩이 된다. 사실 골텐딩 룰 자체가 50년대에 조지 마이칸 때문에 생겨난 지라 60년대~70년대 초에는 골텐딩이 지금처럼 엄격하게 불리지는 않았다. 또한 NBA의 규모도 현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선수들이 생계를 위해 부업을 할 정도였다) 현재 룰이었으면 더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상의 장면도 현재같으면 무난히 골텐딩이 불렸을 장면.
  13. 매직은 특이하게 포인트가드였음에도 포스트업과 골밑에서 마무리 능력, 특히 훅슛능력이 일품이었다. 또한 특이하게 포인트가드임에도 점프슛을 거의 쏘지 못해 세트슛을 이용했다. (이와 별개로 슛 능력 자체는 좋은 편이었다) 이는 매직의 신체조건 탓인데 206cm란 신장은 지금도 파워포워드, 적어도 스몰포워드는 보는게 일반적인 신장이고 당시에도 빅맨을 보는게 당연한 신장이었다. 게다가 매직은 키만 큰게 아니라 덩치도 크고 힘도 세서 득점을 할때 매치업 상대로 포스트업으로 죽죽 밀어내고 마무리를 하는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훅슛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소속팀 공격의 거의 전부를 본인이 시작했기 때문에, 패스를 받아서 점퍼로 마무리하는 플레이를 할 일이 없었고 점퍼를 연마할 기회도, 이유도 없었다.
  14. 원래 종교는 가톨릭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말콤 X 등의 영향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흑인 미국인들이 꽤 있었다.
  15. 레슬리 닐슨류 코미디 영화로 유명한 "ZAZ 사단"의 초기작으로 1984년에는 우주를 배경으로 속편까지 나왔다.(...) 레슬리 닐슨 옹 본인도 돌팔이 의사 역으로 내내 등장한다. 그 전까지 레슬리 닐슨은 멕베스 등 온갖 심각한 역만 도맡아 하던 정극배우였다(...).
  16. 정작 실려나갈 때는 파일럿 셔츠 밑에 레이커스 유니폼 하의, 무릎보호대, 경기용 고글까지 모조리 착용한 모습(...)이다.
  17. 샘해밍턴의 미니홈피에 사진과 소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