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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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啓東
1952년 6월 26일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52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서울 보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며 1980년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등의 재야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복귀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따라가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노태우대통령의 4000억 원 비자금 건을 폭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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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노태우 비자금 혐의 증거를 폭로하는 모습. 이 장면은 노태우의 구속, 그리고 이어지는 신군부 주요 인사들의 법정 심판으로 이어졌다. 의장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황낙주 당시 국회의장이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1995년)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신기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선거에서 낙선하고 나서 통합민주당(1995년) 낙선자들과 함께 1997년 3월 하로동선 식당을 창업하여 1999년까지 운영한 적이 있다. 노무현, 유인태, 김원웅 등과 함께 사업을 같이 했다.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되었는데 누수되는 비용들이 많아서 남는게 별로 없었다고 한다.

이후 통합민주당 이기택 총재의 당 운영 노선을 비판하며 김원기, 노무현, 김정길 등과 통합추진국민회의(통추)를 조직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이 당내 대선후보 출마 문제와 내홍을 겪었고, DJ의 패권정치[1]와 3김정치에 대한 반대의 기치를 걸고 신한국당과 통합하면서 한나라당이 되자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1999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대한 김영삼 정부의 대처와 검찰수사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가두연설을 하고 다녔는데, 당시 유세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서울 종로구에서 노무현이 이 가두시위의 연사를 맡았는데 "이 썩은 3김정치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이 종로에 노무현을 당선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합니다"라고 주장했는데 그 발언 자체가 사전 선거운동으로 적발되었다. 당시에는 사전선거운동기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발언을 한 노무현을 처벌하지 않고 박계동이 사전선거운동으로 기소되어 대법원에서 벌금 600만 원을 선고받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박계동 전 의원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해서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 및 정부 비리에 대한 폭로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이 일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였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하자, 박계동은 "억울하게 출마길이 막혔으니 사면복권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니가 한나라당 소속으로 있는 한 안 된다. 새정치국민회의로 오면 해주겠다. 그리고 좋은 지역구에 뒷배까지 봐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출처 결국 사면, 복권을 영영 받지 못하게 된다.

이후 몇 년 동안 택시 기사로 근무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송파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5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행사에서 이재정 통일부장관에게 폭언을 하여 물의를 빚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로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일호에게 밀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국민생각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유일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맨날 유일호한테만 밟힌다

택시기사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서 2015년부터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택시기사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개선활동을 하고 있다.
  1. 1992년 대선의 패배로 정계은퇴했던 김대중1995년 정계복귀하고 자신의 계파를 중심으로 통합민주당을 탈당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다. 새정치국민회의는 창당과 동시에 제1야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