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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가 사람들에게 나타난 사건을 일컫는다.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대부분은 가톨릭 및 성모 신심이 있는 루터교, 성공회 등 일부 개신교 신자이지만, 간혹 신자가 아닌 경우도 있다. 비슷한 경우가 예수의 발현 사례로 예수님이 나타난 경우. 이쪽도 가톨릭 및 개신교 신자들이 주로 목격했다.[1] 사실 성모 발현을 믿는 개신교 교파는 성공회 밖에 없다.[2][3]또한 칼뱅주의를 계승하고 있는 장로회 쪽은 애초에 신비체험,은사,방언 등에 대해 매우부정적인 입장이고 더욱이 예수가 아닌 다른 영과의 접촉이라면...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른 개신교 교파도 크게 다를건 없다. 요컨데, 개신교에서는 성공회를 제외한 교파들은 성모 발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4]
각 지역에서 나타나는 성모 발현은 그 지역의 주교와 교황청의 인증 작업을 거쳐 비준하게 되는데, 이 기준은 그 발현이 의미하는 바가 교회의 교리와 합치하느냐 아니냐가 크게 좌우된다. 반대로 별다른 교리적 메시지 없이 기적에만 치중된 발현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사도들의 순교 이후 맥이 끊긴 공적인 계시를 사적인 계시를 통해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이며, 혹여나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한 악마와 혼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욱 신중을 가하는 것이다.
또한 발현된 성모의 모습은 지역마다 모습이 다른데, 이는 민족과 문화가 크게 좌우된다. 대표적인 예로 멕시코의 과달루페에서 발현한 성모는 전형적인 멕시코 원주민의 모습을 띠고 있다. 사실 발현 유무와 관련 없이 지역마다 성모의 의상이나 생김새가 민족성을 따라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한복을 입은 성모의 성화나 성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성모와 관련하여 성상이나 성화에서 이상현상이 일어나는 등의 자잘한 사건들도 많지만, 여기서는 직접 발현한 사건들만 다루기로 한다. 아래의 10개의 발현 사례 외에는 교구 차원에서만 인준했거나, 다른 종파에서 인준했거나, 아예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주의를 요한다. 특히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은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도 어긋나는 이단이다. 한편 메주고리예의 성모 발현 같은 경우는 교리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아직 사건의 경위가 입증되지 않아 인가받지 못했다. 다만 순례는 허락된 상태.
이런 성모 발현으로 인해 간혹 나주 성모동산이나 베이사이드 발현 같은 과대망상증 환자들이 생기는데, 성모 발현에서 종말을 이야기한다는 등의 메시지가 있다면 거의 가짜라고 봐도 무방하다. 성경에도 예수가 그날과 그 시간은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했는데,[5] 여기서 아들은 바로 예수 자신. 하느님의 삼위 위격 중 구세주도 모르는 날을 대체 성모 마리아가 어떻게?? 카나의 혼인잔치를 들며 성모님이 그런 것을 먼저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성경을 똑바로 읽어보면 성모 마리아가 "예수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하여라", 즉 하느님이 시키는 것이나 똑바로 하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교황청에서 인정한 성모 발현의 메시지의 거의 대부분은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기도하고 보속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라는 아주 기초 중의 기초를 말할 뿐이다.
또한 교황청에서 인정한 성모발현의 경우에도, 가톨릭 신자들에게 반드시 그 발현의 사실성과 성모님이 하셨다는 말씀을 다 믿어야만 하는 의무는 없다. 자신이 믿기 어렵다면 믿지 않는다고 해도 신앙적으로 잘못이 아니다. 이렇게 '반드시 믿어야 할 의무는 없음'은 꼭 성모발현이 아니더라도 다른 천사나 성인의 발현, 환시 등의 사항에도 마찬가지다. 즉, 교황청에서 인정한다는 표현은 곧 "믿어도 괜찮다" 라는 거지 "믿어야 한다" 가 아니다.[6]
2 성모 발현 사건
2.1 교황청에서 인정한 발현
- 과달루페의 성모│Nuestra Señora de Guadalupe│1531년 12월 12일
-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근방 테페약 언덕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당시 57세의 원주민 성 후안 디에고(St. Juan Diego)에게 나타났다. 과달루페는 '돌뱀을 쳐부수다'라는 뜻을 지닌 아즈텍어 '테 콰틀라소페우(Te Coatlaxopeuh)'를 '테 과틀라소페우(Te Quatlaxopeuh)'로 잘못 들어 만들어진 단어.
- 로의 성모│Notre-Dame du Laus│1664년~1718년
- 프랑스의 생 테티엔 르 로(Saint-Étienne-le-Laus)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브누아트 랑퀴렐(Benoîte Rencurel)이라는 양치기 소녀에게 나타났다. 2008년에 교황청이 공인함으로써 21세기 들어 최초로 비준한 성모 발현이다. 성모는 브누아트에게 그 지역의 작은 성당을 잘 지키고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과 그들을 위해 피정의 집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브누아트 랑퀴렐은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되었다.
- 파리의 성모│Notre-Dame de Paris/Médaille Miraculeuse│1830년 7월 18일
- 프랑스 파리의 뤼뒤박(Rue du Bac)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으로, 통칭 '기적의 메달' 사건. 성 카트린 라부레(St. Catherine Labouré) 수녀에게 나타났다. 기적을 바라는 신자들로 북적이는 곳으로, 기적의 메달은 이곳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여느 성물방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 라 살레트의 성모│Notre-Dame de La Salette│1846년 9월 19일
- 프랑스 라 살레트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11세 소치기 소년 막시망 지로(Maximin Giraud, 1835~1875)와 15세 소녀 멜라니 칼바(Mélanie Calvat, 1831~1904)에게 나타났다. 앞의 3개의 발현과는 조금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는데, 성모는 울면서 이 세상의 비극적 운명을 경고하며 인간의 자만을 지적하고 회개를 호소했으며, 이 때는 마침 과학·기술·철학적 발전이 이루어질 시기였다. 성모는 두 목동에게 따로따로 메시지를 남겼는데, 막시망에게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멜라니에게는 무시무시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 목동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거의 동시에 감자 기근을 비롯하여 각종 혁명과 폭동[7]이 일어나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고. 이 발현이 있은 뒤 비신자였던 막시망의 아버지 제르망 지로가 세례를 받고 가톨릭에 입교했으며, 성모가 나타난 우물은 말라 있었다가 다시 물이 솟아나왔다. 이후 막시망은 교황령 소속의 군인이 되었고, 멜라니는 수녀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의 언론이 두 사람을 많이 공격했다고 한다.
- 루르드의 성모│Notre-Dame de Lourdes│1858년 2월 11일
- 착한 의견의 성모│Our Lady of Good Help│1859년 10월
- 미국 중서부 위스콘신 주의 그린베이시 챔피언이라는 작은 마을에 당시 28살인 벨기에 이민 처녀 에이델 브리스에게 성모 마리아가 3번 발현한 사건으로, 당시 성모는 눈부시게 흰 옷을 입고 허리에는 노란 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별 장식 관을 쓴 모습이었다. 성모는 "나는 하늘의 여왕으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한다"며 "너도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응답했다. 성모는 또 브리스에게 아이들을 모아 구원을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치라고 말했다. 2010년 12월 8일 인가를 받았다.
- 퐁맹의 성모│Notre-Dame de Pontmain│1871년 1월 17일
- 프랑스의 퐁맹(Pontmain)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12살의 외젠 바르베데트(Eugène Barbedette)와 10살의 요셉 바르베데트(Joseph Barbedette) 형제에게 나타났다. 러시아 군대가 프랑스 전역을 침략, 위태로운 상황을 맞던 처지에서 발현 후 10여일 만인 1월 28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자 많은 이들이 발현한 성모를 '희망의 성모'라 부르며 발현 장소를 순례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1872년 2월 2일 교황청의 정식 인가를 받았다.
- 노크의 성모│Marian apparition of Cork│1879년 8월 21일
- 아일랜드의 카운티 메이요(County Mayo) 노크(Knock)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19세기 후반 아일랜드는 영국의 억압과 대기근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마을 주민 15명에게 나타난 성모는 흰옷을 입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성 요셉과 성 요한과 함께였다. 현재까지 공인된 성모 발현 가운데서 단 한 마디의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특이한 경우이다.
- 파티마의 성모│Nossa Senhora de Fátima│1917년 5월 13일
-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루치아 도스 산토스(Lúcia dos Santos), 프란치스코 마르토(Francisco Marto), 야신타 마르토(Jacinta Marto)에게 나타났다. 일명 파티마의 제3예언으로 인해서 각종 대중매체와 음모론의 단골소재로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 보랭의 성모│1932년 11월~1933년 1월
- 바뇌의 성모│Notre-Dame de Banneaux | 1933년 1월 15일~1933년 3월 2일
- 벨기에의 바뇌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가톨릭 신자가 아닌 12세의 소녀 마리에트 베코(Mariette Beco, 1921~2011)에게 나타났다. 이 때 성모는 자신을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소개하며 마리에트를 작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는데, 이 샘물로 씻거나 마시는 사람들은 병이 치유되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진행형. 물 떠가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 발현 사건은 1941년에 교황청의 비준을 받았다. 이후 마리에트는 다른 발현 체험자들과는 달리 수도자가 되지 않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바뇌 성지에는 한국인 수도자가 상주하고 있다.
- 아키타의 성모│秋田の聖母マリア│1973년 6월 12일~1973년 10월 13일
- 일본의 아키타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귀가 어두웠다는 사사가와 카츠코(세례명 아녜스) 수녀에게 나타났다. 이 때 성모의 메시지는 파티마와 많이 비슷하다고 한다. 또한 다른 발현 사건들처럼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는데, 이 사례 중 하나는 사사가와 수녀의 청력이 회복된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치유의 당사자 중에는 한국인도 있었다. 1984년 관할 니이가타 교구장 이토 쇼지로 주교는 아키타의 성모 메시지와 눈물이 참되다고 인정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8]도 1988년 6월 아키타 성모상의 눈물과 성모 발현 메시지가 믿을 만한 것이라고 밝혔다.
- 키베호의 성모│Our Lady of Kibeho│1981년 11월~1983년
- 르완다에서도 가장 궁벽한 마을인 키베호, 그곳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알퐁신, 아나탈리, 마리 클레르 세 여학생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르완다가 회개하지 않으면 피의 강을 이룰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인종 간의 종교적 갈등과 미움으로 인해 20세기 후반 끔찍한 분쟁이 일어날 것임을 예언했다. 그리고 1994년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이 폭발하여 백만 명이 사망한 르완다 내전은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2001년 6월 29일에 비준되었다.
2.2 교황청에서 인정하지 않은 발현
- 모든 어머니의 도움이신 우리 로사리오의 성모│Our Lady of Roses,Help of Mothers│1970년 4월 7일~1995년 1월 1일
- 나주의 성모│Our Lady of Naju│1985년 6월 30일 ~ 2024-12-06 21:10:46
- 한국의 전라남도 나주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성모 발현.윤홍선 율리아에게 발현했다고 주장하지만 교황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관할 광주대교구는 교도권에 순명하지 않는 교회의 일치를 파괴하는 행위로 규정하였고 이곳에 관계하는 모든 이들은 파문#s-2이다.
- 메주고리예의 성모│Our Lady of Medjugorje│ 1981년 6월 24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성모발현. 처음엔 두명의 아이, 이후 6명의 아이가 성모발현을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현재 가톨릭 교회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고 검토 중이며 신자들의 개인적인 순례는 허용된 상태다.일부에서는 메주고리예가 나주처럼 커다란 사기극이라고 생각하거나 교황청에서 인정하지 않았기에 순례를 꺼리는 사람도 있다.
2.3 콥트 정교회에서 인정한 발현
이 발현들은 가톨릭 교회에서는 인정되지 않지만 콥트 교회에서 인정한 성모 발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현재 두 건이 알려졌다.
- 자이툰의 성모│Our Lady of Zeitoun│ 1968년 4월 2일 ~ 2년간 이집트 카이로 근처 자이툰 지역에 있던 콥트교 성당에서 일하던 이슬람교도 기술자 파룩 무하마드가 성당 위 지붕에 서있던 여인의 형상을 목격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성모의 형상은 수시로 자이툰 지역 콥트교 성당에 나타났다. 일설에는 당시 이집트의 대통령이었던 가말 압델 나세르도 목격했다고 전해진다. 발현 1달만에 콥트 정교회 측에서 성모 발현을 인정했다.
- 아슈트의 성모│Our Lady of Assiut│ 2000년 ~ 2001년 이집트의 아슈트에서 목격됬다는 성모 발현. 자이툰의 성모 발현과 달리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다만 콥트 정교회측에서는 이 지역의 성모발현을 인정했다.
- ↑ 이쪽도 주로 가톨릭에서 언급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멕시코의 어느 예배당에서의 예수 발현.
- ↑ [1]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성공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모발현은 3건이다.
- ↑ 루터교가 성모공경을 인정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같은 견해는 아니다.물론 칼뱅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교파들보다야 그 정도가 강하긴 하나, "예수의 육체의 모친"이외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도 부정적이다. 또한 성모승천 역시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수 없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초창기부터 루터회에서는 가톨릭의 성모신심을 우상숭배라며 강하게 주장해왔고, 지금도 교단이나 개교회별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이러한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사실 성공회에서도 고교회파 일부에서나 강한 성모신심을 갖지, 복음주의(저교회파)쪽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관점이 다른 개신교 교파와 별반 차이없다. 성모신심을 강하게 비난하지는 않을 뿐.
- ↑ 교파나 교단 차원 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믿는것도 결코 좋게 보지는 않는다.
- ↑ 마태오 복음서 24, 36.
- ↑ "교황령으로"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정한 교리는 성모승천과 성모무염시태 둘 뿐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개념과, 예수가 그리스도 즉 선택받은 구세주이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삼일 뒤 부활하였으며 다시 재림할 것을 믿는 것은 기독교로서 너무나 기본적인 교리이기 때문에 교파 막론하고(가톨릭이든 정교회이든 개신교이든간에) 당연히 반드시 믿어야 하는 교리이다.
- ↑ 1848-1849년 혁명을 가리킨다.
- ↑ 훗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