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아드보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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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본프레레호
(2004 ~ 2005)
아드보카트호
(2005 ~ 2006)
베어벡호
(2006 ~ 2007)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조 본프레레
(2004 ~ 2005)
딕 아드보카트
(2005 ~ 2006)
핌 베어벡
(2006 ~ 2007)
페네르바흐체 SK 감독
디르크 니콜라스 "딕" 아드보카트
(Dirk Nicolaas "Dick" Advocaat)
생년월일1947년 9월 27일
국적네덜란드
출신지헤이그
포지션미드필더
소속팀ADO 덴 하흐 (1966~1973)
샌프란시스코 게일즈 (임대) (1967)
로다 JC (1973~1977)
VVV 펜로 (1977~1978)
시카고 스팅 (1978~1980)
ADO 덴 하흐 (1979~1980)
스파르타 로테르담 (1980~1982)
K. 베르헴 스포르트 (1982~1983)
FC 위트레흐트 (1983~1984)
지도자DSVP 감독 (1981~1984)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1984~1987)
HFC 하를럼 감독 (1987~1989)
SVV 감독 (1989~1990)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1990~1992)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992~1995)
PSV 아인트호벤 감독 (1995~1998)
레인저스 FC 감독 (1998~2002)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2~2004)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감독 (2004~2006)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5)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5~2006)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감독 (2006~2009)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9~2010)
AZ 알크마르 감독 (2009~2011)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0~2012)
PSV 아인트호벤 감독 (2012~2013)
AZ 알크마르 감독 (2013~2014)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4)
선덜랜드 AFC 감독 (2015)
페네르바흐체 SK 감독 (2016~ )

1 소개

선수시절 미드필더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ADO 덴 하흐에서 축구를 시작해 샌프란시코 게일즈, 로다 JC, VVV 펜로, 시카고 스팅, 스파르타 로테르담, 베르헴 스포르트, FC 위트레흐트에서 활약하였다.

2 감독 생활

2.1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이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HFC 하를렘, SVV를 거쳐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8강에 올리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1995년 PSV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선임되어 네덜란드컵과 리그 우승을 이루었다. 1998년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리그 우승을 이루었다. 2002년 루이스 판 할의 뒤를 이어 다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이끌었으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체코와의 유로 2004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먼저 2득점을 한 뒤 지나치게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펼치다 내리 3실점을 해 역전패를 당한 것이 결정타였다.

유로 2004 본선 이후 독일의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불과 6개월 만에 경질되었다.

2005년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면서 서둘러 계약을 해지했다.

2.2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조 본프레레 감독의 후임자를 찾던 대한축구협회의 요청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이 당시 아드보카트와 UAE 축구 국가대표팀 사이에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드보카트는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해버려, UAE 축협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렇게 취임한 지 몇 달 안 되어, 공교롭게도 바로 직전 지휘봉을 잡았던 아랍에미리트와 친선경기를 치렀는데... 이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2006년 새해 첫 경기였는데, 믿지 못할 패배에 다들 어안이 벙벙. 대한민국을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지만 경질되버린 전임 감독 본프레레는 어떻게 UAE한테 다 패배할 수 있느냐며 아드보카트를 깠다(...). 이후 이어진 홍콩 칼스버그컵 등에서는 나름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고,[1] 특히 이 과정에서 조원희이호아드보카트의 황태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하지만 월드컵 직전 스코틀랜드에서 가졌던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1-3으로 대패했다.[2] 경기 내용 또한 좋지 않아, 본선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다.[3]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결과적으로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1승 1무 1패의 괜찮은 성적을 냈다. 특히 월드컵 본선 원정 첫 승은 2006년이 처음이었다.[4]

아드보카트호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정상급의 골게터였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를 보유한 토고를 격파하며 원정 첫 승을 맛본다. 당시 토고의 팀 분위기는 콩가루 수준이었으며, 독일인 감독은 경질설까지 나돌 지경이었다. 홍명보호알제리전 직전, 불화설 돌던 알제리팀의 헛소문을 생각하면 된다. 물론 실제로도 토고의 팀 분위기는 최악이었고, 그 탓에 방심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토고는 생각보다 강했다. 한국은 경기 초반, 거세게 밀어붙이는 토고에게 휘둘렸다. 결국 선제골까지 헌납했으나, 토고의 수비 핵심이던 주장 아발로가 퇴장당하며 경기는 급격하게 한국 쪽으로 기울었다. 아발로의 퇴장과 함께 얻은 프리킥을 이천수가 성공시키며 동점, 그리고 안정환이 때린 중거리슛이 수비에 맞아 굴절되며 골망을 흔들었다. 그렇게 한국은 2:1 역전승을 거둔다.[5]

조별 라운드 2번째 경기에선 이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프랑스를 상대로, 박지성의 동점골에 힘입어 무승부를 거두었다.
다만 이 당시 프랑스는 유럽 지역예선 당시부터 본선 조별 라운드가 끝날 무렵까지 멕시코와 함께 톱시드 팀 중 최약체로 불릴 정도로 상태가 영 좋지 않았고 특히 팀의 핵심인 지네딘 지단은 시종일관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명성을 무색하게 했다. 뭐 토너먼트 진출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되었지만... 이 당시 스위스도 프랑스를 상대로 득점 없이 비겼었기 때문에 단순히 프랑스와 비긴 것이 그렇게까지 엄청난 성과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당시 프랑스는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이었고, 원정 첫 승의 기세를 몰아 프랑스를 상대로도 잘 하면 승점 3점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프랑스는 프랑스였다. 토고와 마찬가지로, 프랑스는 전반전 내내 엄청나게 한국을 몰아붙였다. 이빨 빠진 호랑이인 줄 알았는데, 급하게 틀니 끼고 돌아온 호랑이였다(...). 물론 그랬으니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겠지만.
토고전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전반 초반 일찌감치 실점을 허용했으며, 사뇰은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한국진영을 휘저었다. 특히 경합상황에서, 골라인에 아슬하게 걸친 볼을 이운재 키퍼가 동물적 감각으로 무지막지하게 쳐내지 않았다면 초장부터 2실점을 당할 뻔 했다. 후반 들어 이천수와 교체된 설기현이 올린 크로스를 조재진이 받아 헤딩으로 떨구었고, 이를 받아 박지성이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프랑스 입장에선 시종일관 한국을 거세게 몰아붙이다, 후반 중반에 동점골을 허용해버린 것. 붉은 옷을 입은 한국 응원단이 가득한 관중석을 배경으로, 마침 카메라에 잡힌 레몽 도메네크 당시 프랑스 감독의 똥씹은 표정이 이날 경기의 포토제닉(...).
후반전 종료 직전, 프랑스에게도 기회가 왔는데 지네딘 지단의 패스를 받은 티에리 앙리이운재 키퍼가 1:1상황을 맞았다. 모두들 숨을 죽인 채 이렇게 역전을 허용하는 것인가... 싶었는데... 앙리의 페인팅 동작에 속지 않은 이운재가, 앙리의 슈팅을 쳐내버렸다. 그렇게 1:1로 경기 종료.

프랑스 축구팬들은 스위스전 무승부는 그저 아쉬움만을 표현한데 반해, 한국전 무승부에 대해서는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사실 다 이긴 경기였는데 놓쳐버렸으니... 2경기 동안 프랑스가 얻은 승점은 단 2점에 불과했다. 심지어 MBC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어느 청년은 "무승부도 과분하다. 후반에 프랑스는 없었고 골을 전혀 못 넣었다."라고 퍼붓기도. 그 와중에 뒤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태극 부채를 흔드는 서양 청년은 뭘까 실제로 당시 경기를 보면 후반 종료 직전에 안정환의 프리킥이 살짝 빗나갔는데 만약 들어갔더라면 아마 프랑스에서 폭동이 터졌을지도. (...)]당시 프랑스 대표팀 선발 라인업 다만 이 당시에는 해당 선수들 중 상당수가 노쇠화로 전성기가 지난 상태인지라 네임밸류에 걸맞는 기량을 선보일 수 없었다.[6]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 앞선 주석에서 설명된 것처럼, 토고가 승점 자판기로 전락해버려 토고를 잘 털어야 16강 진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은 한골 차 승리를 거두는 바람에[7] 급박해졌다. 스위스와 비겨도, 골득실에서 밀려 16강에 탈락하게 되었으니 마음이 급할 수 밖에... 결국 급한 마음으로 과하게 공격을 퍼부었으나 잘 먹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날 첫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던 박주영이 쓸데없는 파울을 허용하며 프리킥을 내줬고,[8] 이를 센데로스가 최진철을 튕겨내며 선제골을 뽑아냈다.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센데로스는 꿋꿋하게 골 세레머니(...). 득점을 해도 모자랄 판에 실점을 해버렸으니 한국은 더더욱 조급해지며 경기가 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후반 중반, 한국진영에 쇄도하던 스위스 선수가 오프사이드 라인에 걸렸다고 판단한 부심이 깃발을 들었다. 그러자 일제히 한국 수비는 멈춰섰고, 아랑곳없이 들어오는 알렉산더 프라이를 막아선 건 골키퍼 이운재 뿐이었다. 1:1 상황에서 프라이의 슈팅은 한국의 골망을 갈랐다. 그리고 주심은 스위스의 득점을 인정했다. 한국선수들은 격렬하게 주심과 부심에게 항의했으나,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의 고질병이지만,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는 이상 경기는 그대로 속개된다. 한국 선수들은 부심이 든 깃발만을 보고 멈춰섰던 것...[9]

후반 막판에 들어서며 한국은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결국 패배를 맛보며, 16강 진출에 실패한다. 월드컵이 끝나고 2006년 6월 30일로 아드보카트는 감독직을 끝냈고, 이후 국가대표팀 감독은 수석 코치였던 핌 베어벡이 승계하였다.[10]
비록 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비판은 전임 감독들에 비해 많지 않았다. 대회를 준비할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대표팀 전력을 제법 끌어올려, 당시 기대치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와 비슷한 정도로 낮았던 대표팀이 사상 첫 원정 승리 및 종합적으로 1승 1무 1패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 것이 큰 이유였다. 무엇보다 어그로를 스위스전 심판인 오라시오 엘리손도와 당시 골을 기록한 선수인 알렉산더 프라이 제프 블래터가 먹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월드컵이 개막하기도 전에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감독으로 부임하기로 사전 협상을 끝마쳤던 상황이었던지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2010년대 들어 아드보카트가 월드컵 이후에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연임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축빠들이 상당히 많은데, 월드컵 성적 여하에 따라 대한축구협회와 추가 계약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니트와의 사전 협상을 진행해 월드컵 직후 러시아로 곧바로 날라간 선택을 한 건 아드보카트 본인이다.

가뜩이나 8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동안 파브를 비롯해 몇 가지 TV 광고를 찍어가면서 축구 외적인 돈벌이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당시 언론에서도 아드보카트를 거스 히딩크 급의 지도자로 포장해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미리 계약한 대로 바로 러시아로 날랐기 때문에 전형적인 먹튀의 수순으로 비춰졌다. 더군다나 당시 알렉산더 프라이의 추가골의 빌미를 제공했던 이호를 비롯해 당시 대표팀에서 많이 까였던 김동진을 애제자로 데려갔던 터라 아예 세 명이 세트로 묶여서 까였다.(...)

또한 전술적인 면에서도 비판을 받았는데, 당시 조 최하위의 전력으로 평가되는 토고를 상대로 지나치게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특히 후반 40분경부터 한국 진영 내에서 볼을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응원하던 축구팬들에게도 까였다. 결국 16강 진출을 다투던 스위스에 비해 골득실에서 밀리는 불리한 상황을 안고 스위스와의 맞대결을 가져 무조건적인 승리를 위해 무리한 경기 운영을 펼친 결과 오히려 스위스에게 얻어맞았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비록 스위스전 당시 전체적인 판정이 스위스에게 유리하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스위스를 상대로 그다지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것도 도마에 올랐다. 사실 당시 대표팀은 설령 프랑스에게 졌더라도 스위스만 이겼으면 16강 진출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즉, 결과적으로 보면 버려도 상관없었을 프랑스와의 경기는 나름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반드시 잡아야했던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이 비판의 대상이다.

취임 이후 여러 평가전에서 당시 3백 체제였던 대표팀 수비를 4백으로 전환하기 위해 여러 조합을 실험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뜬금없이 3백으로 회귀했기에 평가전에서 헛되이 시간을 허비한 것이 이나냐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덧붙여서 아드보카트 본인이 국가대표팀에 발탁하고 적극적으로 기용해 황태자 소리까지 들었던 조원희를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거의 기용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김동진-이영표 라인을 가동해 이영표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끌어내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 또한 비판의 요소 중 하나이다.

2.3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이후

월드컵 이후 한동안은 한국 축구팬들에게 이러한 비판에 시달려야만 했으나, 2007년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이어 2008년 UEFA 컵 우승 등 기록할만한 성과를 내자 평가가 바뀌었고, 애제자였던 김동진이 러시아에서 맹활약을 펼치자 기존의 먹튀 감독에서 선수 한 명 제대로 키워준 감독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2007년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 제니트가 연봉을 대폭 인상한 제계약 협상을 제시하자 바로 호주 축협의 뒤통수를 치고 제니트와 연장 계약을 함에 따라 호주쪽에서 비난을 받았으며, 2009년 제니트와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 비난에 시달리다 경질되는 등 계약 관련으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 PSV 아인트호벤과 호주 국가대표팀을 겸임했던 히딩크처럼 벨기에 국가대표팀과 AZ 알크마르의 감독을 겸임했으나, 양 쪽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아 1년여 만에 그만두었다.

그 뒤 2010년 히딩크의 후임으로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유로 2012에서 1승 1무 1패로 본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물러났다.[11] 이후 2012년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유로파 리그에서 F조 3위로 탈락하는 등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시즌 후 감독직 은퇴를 선언하며 축구계를 떠났으나 2013년 AZ 알크마르의 임시감독으로 깜짝 복귀 하여 시즌을 마쳤다. 2014년 7월 22일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2014년 11월 15일 취임 4개월만에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하였다. 다만 아드보카트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게, 성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이 알바니아와의 경기에서 일어난 양 국가간의 충돌 사건으로 인해 승점 3점을 잃어버렸던 것이기 때문.

그 후 한동안 무직으로 보내다가 2015년 3월 17일, 포옛 감독을 경질한 선덜랜드 A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결국 선덜랜드를 강등의 위기에서 구해내었다. 다만 다음 시즌에도 계속 팀을 지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구단과 선수들에서는 그가 계속 팀을 지휘하길 원하지만, 본인은 은퇴 쪽으로 마음을 굳힌듯 싶은데, 이미 한차례 은퇴를 선언 하며 축구계를 떠났다가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한 전례가 있는지라..... 과연 진짜로 은퇴할지..... 다만 아드보카트의 부인은 남편이 은퇴하길 원한다고 한다.

결국 2015년 5월 28일 감독직 은퇴를 결정했다. 역시 와이프가 제일 쎄다.[12] 하지만 2015년 6월 4일 1년 재계약에 합의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여사님께서 바가지를 긁기 시작하시는데..... 15-16시즌에 팀 성적이 좋지 않자 10월 4일에 사임했다.

이리하여 그대로 은퇴할 것으로 여겨졌으나 네덜란드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합류가 결정되었다. 기사에는 수석코치라고 났지만, 실제로는 테크니컬 디렉터에 가까운 역할로 보이며, 감독인 대니 블린트가 경험이 부족하다는걸 감안한 인사로 보인다. 참고로 현재 네덜란드 축구협회는 경험이 부족한 블린트를 위해 수석코치로 이미 마르코 반 바스텐을 선임해 놓은 상태다. 사실상 블린트는 바지고, 아드보카트와 반 바스텐이 실질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여차하면 유로 예선 탈락으로 입지가 불안한 블린트를 경질하고[13] 두 사람 중 하나를 다시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돌연 네덜란드 대표팀의 수석코치 자리를 사임하였는데, 터키 쉬페르 리그의 명문팀 페네르바흐체 SK의 감독에 선임되었다.

3 여담

거스 히딩크오대영 희동구, 조 본프레레를 조봉래라고 한것처럼 이 감독도 한국화(?)된 별명이 존재했는데 아동복(...)이라고 한다. 이외에 '안복환'이란 별명도 있었다. 아동복 이후의 대한민국 국대 후임인 핌 베어벡가방(...)

한국에서는 보급형 히딩크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히딩크의 커리어를 흉내내려 하는 거 아닌가 싶은 행보를 보였다. 한국 대표팀 감독 당시에는 히딩크 감독과 친한 것으로 인식이 되었으나 둘 다 러시아에서 활동할 때 의견 충돌이 있었는지 히딩크 감독이 대놓고 인터뷰에서 친구가 아니며 친구가 될 필요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팀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내빼는 듯이 계약해지를 하거나 다른 팀과 계약하는 행보를 여러번 보였다.

아드보카트가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있는 동안 도미노피자에서 아보카도를 넣은 피자를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 피자의 이름은 리꼬쏠레 피자. 2009년쯤 그 맛없다던 타이타레 피자와 조용히 묻혔다.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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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슛돌이 1기 당시, 슛돌이 멤버이자 미취학 아동최성우에게 굴욕(?)당하는 장면. (...) 주변 및 네티즌 사이에서는 버르장머리없는 행동이라는 악평이 있었다. 엄연히 환갑인 할아버지한테 저런 행동을 하는건 해외에서도 봐주기 힘든지라..... 하지만 표정에서 보다시피 아드보카트는 오히려 손자보듯 엄청 흐뭇해했다. (...)

포켓몬스터를 패러디한 플래시 작품아보의 패러디로 나왔다.

2015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태극호가 승승장구하자 축구 대표팀 스태프들의 슈틸리케 감독에 대해 호평하는 인터뷰 내용 중 여태 외국인 감독들은 네덜란드 출신이었는데 조금 계산적이었다는 언급의 내용이 있는데 아드보카트의 행보를 봤을 때 아마 상당한 부분은 그를 지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복수형으로 표현한 걸 봐선 휴가를 자주 갔었던 히딩크 감독과 (임명된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이익을 추구한)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감독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듯. 본프레레 감독이랑 베어백 감독만 억울하다.
  1. 칼스버그컵에선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승리했다. 물론 칼스버그컵의 특성상, 크로아티아도 2군을 내보냈고 한국 역시 국내파로 구성된 멤버였다.
  2. 월드컵 개최지가 독일인데, 전지훈련 캠프를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에 차린 것에 대해 약간 잡음이 있었다. 아드보카트가 선호하는 국가에 일방적으로 캠프를 차렸다고...
  3. 이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의 축빠 및 언론에서는 가나의 전력을 크게 쳐주지 않는 분위기였으며, 심지어 몇몇 축빠들은 가나의 전력을 토고보다 약간 나은 수준 정도로 평가하기도 했다.
  4. 2006년 월드컵 국가 대표팀은 공격력 만큼은 역대 최고의 대표팀으로 꼽힌다. 최전방에 훅 불면 날아가던 시절의 박주영, 이동국(부상으로 본선 out), 안정환, 조재진. 미드필드진의 이천수, 설기현, 박지성, 김남일, 이을용에다가 오버래핑을 기대할 수 있는 이영표, 조원희(1번 항목)까지. 특히 절정의 기량을 자랑하던 이 당시 이천수의 측면돌파는 유럽 수비수에게도 통했다.
  5. 원정 첫 승은 값진 성과였지만, 결과적으로 상대 수비가 퇴장당한 상태에서 수적 우위를 가지고도 다득점을 거두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어쩌면 아발로가 퇴장당하지 않았다면 경기내용은 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토고는 조별 라운드에서 승점자판기로 전락하여, 토고를 잘 털어야 16강 진출이 보장되던 상황이었다. 마지막 스위스전에서, 과할 만큼 공격 일변도로 나아가다 일격을 맞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 스위스 모두 토고를 상대로 2골차 승리를 거두어, 대한민국은 스위스를 이기지 못하면 16강에 진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스위스와 비겨 1승2무가 되었더라도, 골득실에서 밀려 탈락이었다.
  6. http://kfa.or.kr/record/history_nation.asp 저기서 프랑스 누르고 2006년 경기보면 나온다.
  7. 스위스와 프랑스는 모두 토고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었다.
  8. 전임 감독이었던 본프레레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며 당시 떠오르는 신성이었던 박주영을 탐탁찮게 여겼다. 그리고 이 경기를 통해 본프레레의 발언은 예언이 되었다.
  9. 우리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부심이 판단한 위치도 사실 애매했다. 무엇보다 주심이 휘슬이 불지 않았다면 경기 속개가 맞는 일이었다. 당시 신문선 해설위원은 담담하게 이를 전했지만 격앙된 국내팬들에 의해 거의 인민재판에 가까운 공격을 받았다(...). 거 바른 말도 때를 봐가면서 해야됩지요
  10. 애초 핌베어백의 승계를 염두에 두고 수석코치로 임명한 의도도 있었다.
  11. 그리스와 1승 1무 1패로 승점이 같았고 골득실차도 그리스보다 앞서있으나, 승자승을 우선으로 하는 대회 규정으로 인해 탈락했다. 이때 러시아는 그리스에게 패배한 것이 원인이 되어 탈락하였다.
  12. 2006년 부인과 함께 K리그를 관전하던 모습을 보면 아드보카트 여사의 포스가 장난아니다. 감독 은퇴 안하려다가 인생 자체를 은퇴할지도 ㄷㄷ
  13. 히딩크가 초반 체코와 아이슬란드 원정에서 지고 터키와 홈에서 비기며 초반 분위기를 망쳐놨기에 히딩크 탓으로 몰고 블린트를 동정하는 여론이긴 하지만 팀 분위기를 반전 시킬 수 있는 기회였던 아이슬란드와 체코와의 홈경기, 터키 원정에서 모조리 지며 히딩크 때는 그나마 있던 본선 진출 가능성을 아예 날려버린 블린트도 책임이 결코 만만치 않다.